Todos los capítulos de 열한 번째 보모가 되었더니 말 없는 대군의 딸이 나에게만 속삭인다: Capítulo 11 - Capítulo 20

80 Capítulos

11화. 장부 첫 줄의 값

소리 방으로 돌아와 문을 닫고 나서야 손을 폈다. 손바닥에 손톱 자국이 옅게 남아 있었다.대군 나리께 장부를 보여 드리겠다고 바로 답하지 못했다. 소리에게 먼저 허락을 받겠다고 했다. 그 말은 그대로 지켜야 했다.나는 작은 책상 앞에 앉았다. 소리는 침상에 다리를 접고 앉아 얼룩이의 귀를 만지고 있었다. 방울이 옷깃에 닿을 때마다 작은 소리가 났다.“소리야. 오늘부터 네가 한 말을 적어도 될까?”아이는 인형의 귀를 한 번 눌렀다. 고개를 들지는 않았다.“네가 누구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내가 직접 들은 것만 적을 거야. 말하지 않은 날도 빈칸으로 두지 않고 적을 거고.”나는 소리가 대답할 때까지 기다렸다. 아이는 얼룩이의 귀를 접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나는 더 묻지 않았다.책상 위에 종이를 놓고 먹을 갈았다. 먹 가는 소리가 방 안에 낮게 이어졌다. 물이 먹에 스미자 냄새가 났다. 오른손 손등의 먹물 점이 종이 위에 비쳤다.먼저 날짜를 적었다. 그 아래에 한 줄을 썼다.『오늘 0마디』소리는 내가 붓을 놓을 때까지 인형만 만졌다. 나는 종이를 접지 않고 책상 한쪽에 두었다. 감추지도, 아이 앞에 내밀지도 않았다.“장부는 여기 둘게. 보고 싶으면 봐도 돼. 싫으면 덮어 둘게.”소리는 고개를 조금 들었다. 시선이 종이에 닿았다가 내 손으로 옮겨 왔다. 아이의 손은 인형에서 떨어지지 않았다.“오늘은 말을 한 적이 없으니 0이라고 적었어. 네가 내 앞에서 말하지 않은 시간까지 내가 안다고 쓰지는 않을 거야.”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나는 종이를 다시 보았다. 숫자와 글자가 한 줄에 놓여 있었다. 빈칸보다 나았다. 적어도 내가 오늘 들은 것이 없다는 사실은 남았다.침상 곁으로 가자 소리는 얼룩이를 품에 안았다. 나는 방 한쪽에 놓인 방석을 펴고 앉았다. 아이에게 가까이 가지는 않았다. 잠시 뒤 소리가 인형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나를 봤다.“목이 마르니?”소리는 고개를 저었다.“그럼 이대로 있을게.”나는 손에 든 수건을 접어 무릎에 놓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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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주련 뒤의 값

“깨어 있소?”문밖의 건우가 다시 물었다. 나는 소리의 등을 살폈다. 아이는 내 소매에 머리를 기댄 채 눈을 뜨고 있었다.“예. 깨어 있습니다.”“놀랐소?”“조금요.”나는 소리의 말을 건우에게 옮기지 않았다. 아이는 내 귀에만 말하겠다고 했고, 나는 그 약속을 지켜야 했다. 건우는 문밖에서 한동안 기다렸다. 소리가 얼룩이를 품에 안자 그제야 발소리가 멀어졌다.나는 책상 위 장부를 덮지 않았다. 오늘 적은 1마디는 그 자리에 두었다. 소리는 눈을 감지 않고 종이 끝을 바라보다가 손가락으로 얼룩이의 귀를 눌렀다. 나는 이불을 고쳐 주고 방석에 앉았다. 아이의 숨이 고르게 이어질 때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3월 20일, 나는 건우의 서재로 불려 갔다.서재 문은 열려 있었다. 안에는 책상과 낮은 책장, 벽에 걸린 주련이 보였다. 먹 냄새가 났다. 책상 위에는 서란의 붓이 놓여 있었다. 나는 문턱에 서서 안을 살폈다.“대군 나리, 부르셨습니까?”건우는 책상에서 종이를 내려놓았다.“서재를 정리할 사람이 필요하오. 보모가 맡아 줄 수 있겠소?”“소리 곁을 오래 비우지 않는다면 맡겠습니다.”“오래 걸리지 않게 하겠소. 급한 일이 있으면 바로 돌아가시오.”“예.”나는 소매에 넣어 둔 주판알이 움직이지 않게 팔을 붙이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오래 쌓인 먼지 냄새가 났다. 먼저 책상 위에 놓인 종이들을 모양대로 맞췄다. 책은 크기대로 나누지 않고, 건우가 쓰던 자리에 그대로 두었다. 서란의 붓도 건드리지 않았다.건우는 맞은편에서 읽던 문서를 접었다. 내가 책장 쪽으로 가자 의자에서 일어났다.“무엇부터 치우면 되겠소?”“책상 위 종이는 제가 정리하겠습니다. 책은 위치를 옮기지 않겠습니다.”“좋소.”“벽과 바닥에 먼지만 닦아도 되겠습니까?”“그렇게 하시오.”나는 마른 천으로 책상 가장자리를 닦고, 바닥에 떨어진 먼지를 쓸었다. 책장 아래쪽에는 얇은 나무 조각이 몇 개 흩어져 있었다. 조각을 하나씩 주워 쟁반에 담았다. 끝이 깨져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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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비밀 약속의 값

“엄마 서랍은 다른 데 있어요.”나는 쟁반에서 손을 떼었다. 소리는 얼룩이를 안은 채 내 귀에 입을 가까이 댔다. 아이의 숨이 귓바퀴에 닿았다가 멀어졌다.“그 말은 나한테만 해도 괜찮아?”소리는 얼룩이의 귀를 엄지로 눌렀다.“아줌마한테만 했어요.”“알아. 그런데 네가 말하기 싫은 일은 말하지 않아도 돼.”“아줌마도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안 돼요.”“응. 네가 허락하지 않으면 말하지 않을게.”나는 주련 아래 쟁반을 그대로 두었다. 조각은 찾은 순서대로 놓여 있었다. 내가 적은 종이도 책상 끝에 있었다. 소리는 그쪽을 바라보지 않았다.“집사 아저씨가 또 물어보면요?”“네가 말한 걸 내가 들었다고 하지 않을게. 필요한 건 내가 확인할게.”“정말요?”“정말이야.”소리는 얼룩이를 내려다봤다. 아이는 인형의 배에 손바닥을 댔다가 손을 거뒀다. 방울이 옷깃에 닿으며 작게 울렸다. 나는 소리의 목을 보지 않으려 했다. 방울이 어디에 달렸는지 알고 있었지만, 아이가 감추고 싶은 것을 먼저 들여다보고 싶지 않았다.“우리 둘만 아는 약속을 만들까?”“약속이요?”“응. 네가 지키고 싶은 걸 내가 지킬 수 있게.”소리는 입을 다문 채 나를 봤다. 나는 방석을 아이에게 가까이 밀지 않았다. 소리가 앉아 있는 자리를 바꾸고 싶을 때 스스로 옮기게 두었다.“1번째는 서랍 이야기야. 네가 먼저 말하기 전에는 나도 다른 사람에게 묻지 않을게. 집사님이 물어도 네 말을 옮기지 않을게.”소리는 고개를 아주 조금 끄덕였다.“2번째는 네가 하는 말이야. 네가 아줌마 귀에만 말하고 싶으면, 나는 다른 사람에게 그대로 전하지 않을게. 아버지께도 네가 허락하기 전에는 말하지 않을게.”소리의 눈이 내 얼굴에 멈췄다. 나는 말을 보탰다.“네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나한테 해도 돼. 하지 않아도 돼.”“아버지한테도요?”“응. 네가 괜찮다고 할 때까지.”소리는 얼룩이의 등을 문질렀다. 인형의 배 한쪽에 새 실이 짧게 튀어나와 있었다. 나는 그 실을 보았지만 손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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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우산의 값

3월 26일, 나는 소리와 함께 연화채 우물가에 나왔다. 비가 오기 시작한 참이었다.처마 끝에서 떨어진 물이 우물가 돌바닥에 튀었다. 소리는 얼룩이를 품에 안은 채 빗물이 고이는 자리를 보고 있었다. 옷자락이 젖기 전에 안으로 데려가야 할지 망설였다. 아이는 비를 피하려 하지 않았다. 손을 내밀어 빗방울을 받았다.“소리야, 비를 맞고 싶어?”아이는 손바닥을 펼쳤다. 물이 가운데에 조금 고였다. 소리는 그 물을 들여다보다가 손을 기울여 돌바닥에 흘렸다. 얼룩이의 머리에는 물이 닿지 않도록 팔을 둥글게 감쌌다.“얼룩이는 젖으면 안 되나 보네.”소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인형을 내게 건넸다. 나는 얼룩이를 받아 처마 아래 놓인 방석 위에 앉혔다. 소리는 방석을 한 번 확인한 뒤 빗속으로 돌아갔다.“우물 쪽으로는 가지 말자. 돌이 미끄러워.”소리는 우물 테두리에서 떨어진 곳에 멈춰 섰다. 나는 아이와 우물 사이에 서지 않았다. 다만 소리가 돌바닥의 고인 물을 밟아도 우물 쪽으로 밀려가지 않는지 살폈다.비는 조금씩 굵어졌다. 빗방울이 소리의 머리카락을 적셨다. 아이는 눈을 감고 얼굴을 들었다. 입술은 다물려 있었지만, 어깨가 들썩였다. 웃을 때 나는 숨소리였다.나는 손에 든 수건을 내려다봤다. 머리를 닦아 주면 아이가 싫어할 수도 있었다. 소리는 젖은 소매를 펼쳐 물을 털었다. 물방울이 바닥에 떨어졌다.“추우면 들어가자.”소리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아이의 옷이 얼마나 젖었는지 살폈다. 소매 끝과 치맛자락에 물이 묻었지만, 옷이 몸에 달라붙을 만큼 젖지는 않았다.“그럼 조금 더 보고 있자. 우물 가까이는 가지 말고.”소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발끝으로 고인 물을 건드렸다. 물이 얕게 갈라졌다가 다시 모였다. 소리는 그걸 보고 한 번 더 발을 움직였다. 나는 발을 내딛지 않았다. 아이가 놀이를 멈추고 싶을 때까지 기다렸다.하녀가 처마 안쪽에서 마른 수건을 하나 더 가져왔다. 나는 수건을 받아 손에 걸쳤다.“아씨, 옷이 젖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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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재 가루의 값

3월 28일 밤이 되었다. 나는 소리 방 앞 복도에 앉아 아이의 잠든 숨을 들었다.문은 닫혀 있었지만 안쪽에서 작은 소리가 들렸다. 이불이 스치는 소리였다. 소리가 몸을 뒤척일 때마다 목에 건 방울이 옷깃에 닿았다. 울리지는 않았다.나는 무릎 위에 펼친 말 장부를 덮었다. 오늘 소리는 내 귀에 속삭이지 않았다. 아이가 입을 다문 날도 장부에 적기로 한 뒤로, 나는 말을 기다리는 동안 빈 줄을 그냥 두지 않았다. 소리가 잠들기 전까지 조용히 곁에 있었다는 것과, 얼룩이를 품에 안고 누웠다는 것을 짧게 적었다.복도에는 젖은 나무 냄새가 남아 있었다. 비가 온 다음 날이라 처마 끝에서 물이 떨어졌다. 물방울이 바닥에 닿을 때마다 얕은 소리가 났다.나는 문턱 아래를 살폈다. 먼지가 조금 밀려 있었다. 문 앞을 쓸고 지나간 자국인지, 발이 스친 흔적인지 분명하지 않았다. 손가락으로 만지지 않고 눈으로만 보았다.낮에도 소리 방 앞을 지나는 사람은 많았다. 오 어멈이 죽을 들고 오고, 하녀가 빨랫감을 가져갔다. 호위가 안채와 마당 사이를 오가기도 했다. 그중 누가 밤에 이곳을 지나는지 나는 몰랐다.밤마다 문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잠든 뒤였다. 처음에는 처마에서 떨어지는 물소리와 구별하지 못했다. 그러나 발소리는 문 앞에서 멈췄다가 다시 멀어졌다. 같은 자리를 오가는 듯했지만, 문을 여는 소리는 없었다.어젯밤에도 그랬다. 나는 문을 열지 않았다. 소리가 자다 깰까 봐서였다. 오늘은 발소리가 지나가더라도 누가 왔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다.부엌 어멈이 복도 끝에서 걸어왔다. 손에는 작은 나무 그릇이 들려 있었다. 그 안에 재가 담겨 있었다.“부엌 아궁이에서 털어 왔어. 이만하면 되겠니?”“예. 많이 필요하지 않습니다.”오 어멈은 내 옆에 쪼그려 앉았다. 나무 그릇에서 마른 재 냄새가 났다. 재 위에 섞인 숯 조각이 그릇 안쪽을 긁었다.“문턱에 뿌리려는 거지?”“얇게 깔아 두려고 합니다. 발이 닿으면 자국이 남을 겁니다.”“문을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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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순찰의 값

건우의 말이 끝나자 변 집사는 허리에 찬 열쇠 꾸러미를 움켜쥐었다. 열쇠가 서로 부딪혀 짧게 울렸다.“호위가 복도를 지키는 것과 집사가 아이를 살피는 것은 다릅니다.”“그렇소. 하지만 아이 방 앞을 밤에 오갈 까닭이 있다면 먼저 내게 알려야 하오.”건우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변 집사는 대답하지 않고 바닥에 떨어진 재를 내려다봤다.나는 문턱을 살폈다. 변 집사 신발에서 떨어진 재는 아까보다 넓게 퍼져 있었다. 발자국은 아직 남아 있었다. 문 앞에서 멈춘 자국과 돌아간 자국을 구분할 수 있었다.“집사님께서는 밤에 소리 방 앞에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문은 열지 않으셨다고도 하셨습니다.”“그랬소.”“그렇다면 그 말씀까지 기록하겠습니다.”변 집사의 눈이 내 손으로 옮겨 왔다.“어디에 기록한다는 거요?”“확인한 사실을 따로 적어 두겠습니다. 자국만 보고 문을 열었다고 쓰지는 않겠습니다.”“보모가 집안일을 기록할 권한이 있소?”“제가 본 일을 적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습니다.”변 집사는 건우를 보았다. 건우는 나를 대신해 답하지 않았다. 다만 문턱에 남은 자국을 다시 살피고 있었다.“집사, 안채 출입을 10일 동안 금하겠소.”변 집사의 손이 열쇠 꾸러미 위에서 멈췄다.“대군 나리. 제가 이 집 곳간과 안채를 함께 살펴 왔습니다. 제가 안채에 들지 못하면 관리가 어렵습니다.”“안채 일은 오 어멈과 호위에게 맡기겠소. 필요한 물건은 사람을 통해 전하시오.”“밤에 아이를 살핀 일로 10일이나 출입을 막으시는 겁니까?”“문을 열지 않았다는 말은 들었소. 그렇다고 아무 말 없이 아이 방 앞을 오간 일이 없던 일이 되진 않소.”변 집사는 입술을 다물었다. 건우는 처벌을 더 붙이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자국을 밟지 말라고 소리치지 않았다. 오 어멈과 쑥이도 문 앞에 선 채 움직이지 않았다.나는 문턱에서 한 걸음 물러났다.“재가 더 퍼지기 전에 발자국을 그려 두겠습니다. 기록이 끝나면 바닥을 치우겠습니다.”“그렇게 하시오.”건우가 고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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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상인 딸의 값

아침상에 올릴 쌀을 부엌으로 나르던 하녀가 내 앞에서 걸음을 늦췄다. 뒤에 있던 하녀도 그랬다. 둘은 서로 눈을 마주치고는 쌀자루를 내려놓았다.“보모님.”먼저 말을 건 하녀가 손에 묻은 쌀겨를 털었다.“어제 들은 말이 있습니다. 보모님 댁에 빚이 있다는 말이요.”나는 쌀자루 옆에 놓인 바가지를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하녀는 눈을 들지 않았다. 다른 하녀는 자루 끈을 매만졌다.큰마당에는 아침 일을 하던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물을 긷던 하녀가 걸음을 멈췄고, 부엌에서 나온 오 어멈도 문가에 섰다. 건우는 사랑채 쪽에서 마당으로 들어오다가 사람들 사이에 멈춰 섰다.나는 하녀 둘에게만 대답하지 않았다. 마당에 있는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목소리를 조금 높였다.“제 아버지 이름으로 된 빚이 92냥입니다.”쌀겨를 털던 하녀의 손이 멈췄다. 물동이를 든 하녀는 내려놓을 곳을 찾듯 발밑을 보았다.“배 사고로 아버지가 화물을 잃었습니다. 집은 담보로 잡혀 있습니다. 저는 보모 삯을 받아 그 돈을 갚으려고 이곳에 왔습니다.”누군가 짧게 숨을 들이켰다. 나는 말을 더 보탰다.“그렇다고 아이를 맡은 일이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제가 받은 일은 소리를 돌보고, 먹고 자는 것과 말한 것을 기록하는 일입니다. 제가 잘못한 일이 있으면 그 일을 두고 말해 주십시오. 집안의 빚을 소리에게 덮어씌우지는 말아 주십시오.”건우는 내 곁으로 오지 않았다. 사람들 사이에서 한 걸음 떨어진 채 나를 보고 있었다. 그가 대신 말할 기색은 없었다.오 어멈이 앞치마에 손을 닦았다. 손등에는 쌀뜨물이 묻어 있었다.“나도 아들 빚이 있어요.”사람들이 오 어멈을 돌아보았다. 오 어멈은 두 손을 앞치마에 댄 채 말을 이었다.“아들 하나 키우며 벌어 둔 돈보다 빚이 먼저 불었지요. 내가 갚고 있소. 이 집에서 밥 짓는다고 그 빚이 사라진 건 아니오.”오 어멈은 물동이를 든 하녀를 바라봤다.“빚이 있다는 말만으로 사람 손까지 못 믿게 되면, 여기서 일할 사람은 얼마 남지 않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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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소매의 값

내 말이 끝나자 건우는 숟가락을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소매가 대답했다면, 내가 물은 말도 알아들었겠구려.”“소리가 듣고 있었습니다.”“그렇다면 기다려 보겠소.”건우는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소리는 내 소매를 놓지 않은 채 밥그릇을 내려다봤다. 한 숟가락을 먹고 국을 한 번 떠먹었다. 나는 아이의 손을 잡아 빼지 않았다. 손가락이 내 소매를 놓을 때까지 그대로 두었다.식탁에 앉은 사람들은 각자 밥을 먹었다. 오 어멈은 국그릇을 더 놓을 자리를 살폈고, 쑥이는 부엌 쪽에서 작은 반찬 그릇을 가져왔다. 건우는 소리에게 말을 더 걸지 않았다. 아이가 숟가락을 내려놓을 때마다 그릇을 바라보다가 자기 밥을 먹었다.소리는 밥을 반쯤 먹고 숟가락을 멈췄다. 건우가 놓은 숟가락과 소리의 숟가락이 식탁 위에 나란히 있었다. 아이는 건우를 보았다. 아버지가 숟가락을 들어 밥을 먹는 모습을 한참 살폈다.건우가 밥을 한입 더 먹었다. 소리는 내 소매를 놓았다. 손이 무릎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 손끝이 입술에 닿았다. 아이는 손바닥을 펴서 건우 쪽으로 조금 내밀었다.손짓은 작았다. 입술에 닿은 손끝이 앞으로 나왔고, 손바닥이 위로 향했다.건우의 숟가락이 멈췄다.소리는 손을 거두었다. 얼룩이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었다. 식탁에 앉은 누구도 먼저 말을 하지 않았다. 부엌에서 국이 끓는 소리가 작게 났다.“소리야.”건우가 아이 이름을 불렀다. 소리는 아버지를 바라봤다. 입은 열리지 않았다.“맛있다는 뜻이냐?”소리는 손가락으로 밥그릇을 가리켰다. 그리고 아까와 똑같이 손끝을 입술에 대고 손바닥을 펼쳤다.건우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그래. 맛있구나.”소리는 숟가락을 들었다. 밥 한 숟가락을 더 먹었다. 건우는 아이가 먹는 모습을 보고 자기 그릇으로 시선을 돌렸다. 식탁에 있던 사람들은 그제야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나는 소리의 손을 보았다. 방금 손짓은 누구에게 배운 모양이 아니었다. 아이는 내가 입술에 손을 대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을 것이다.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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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숨소리의 값

건우의 손이 상 위에서 멈췄다. 꼬였던 손가락은 풀렸지만, 손바닥은 아직 반쯤 안으로 말려 있었다.소리는 얼룩이의 등을 눌렀다. 입가를 가린 손 아래로 어깨가 한 번 더 움직였다. 쑥이는 부엌 문가에서 고개를 돌렸고, 오 어멈은 식혜 그릇을 내려놓았다.건우가 제 손을 내려다봤다.“내 손짓이 그렇게 우스웠느냐?”소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얼룩이의 귀를 잡고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입가에 남은 웃음은 바로 사라지지 않았다.“소리야.”건우가 아이를 불렀다. 소리는 아버지를 보았다. 건우는 손을 무릎 위에 내려놓았다. 다시 손짓을 보여 주지 않았다.“웃어도 괜찮다. 내가 잘못 만든 모양이니.”소리는 얼룩이를 안아 상에서 내렸다. 발이 땅에 닿자 내 옆으로 왔다. 내 소매를 잡지는 않았다. 얼룩이의 앞발을 매만지면서 식혜 그릇을 보았다.오 어멈이 그릇을 소리 쪽으로 조금 밀었다.“더 마시고 싶으면 마시거라. 천천히 마셔도 된다.”소리는 손을 뻗어 그릇을 잡았다. 한 모금만 마신 뒤 상 위에 내려놓았다. 건우는 아이가 그릇을 놓을 때까지 기다렸다.“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소.”그는 소리에게 말했다. 아이는 대답하지 않고 얼룩이를 품에 안았다. 건우는 더 묻지 않았다. 상 위에 놓인 붓을 가져가려다가 손을 멈췄다. 붓은 아직 종이에 닿지 않은 채였다.나는 소리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 아이가 내 곁을 지나 문 쪽으로 가자 그 뒤를 따라갔다. 건우는 우리보다 먼저 나서지 않았다. 식혜 그릇을 상 가운데로 옮기고, 상 아래에 떨어진 숟가락을 주워 오 어멈에게 건넸다.연못가에는 바람이 불었다. 물가의 버들잎이 서로 닿아 작게 소리를 냈다. 소리는 얼룩이를 품에 안고 연못에서 떨어진 돌 위에 앉았다. 발끝은 땅에 닿지 않았다.나는 아이에게 가까이 가지 않고 몇 걸음 떨어져 섰다. 건우도 내 곁에 섰다. 소리가 물에 손을 넣으려 하지 않는지 살폈다. 아이는 얼룩이의 귀를 잡고 연못을 바라봤다.“연못에 잉어가 있소.”건우가 말했다. 소리는 물속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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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아버지의 값

건우는 서란의 붓을 천 위에 내려놓았다.나는 접어 둔 천을 벼루 옆에 놓았다. 소리는 얼룩이를 품에 안은 채 책상에서 내려와 있었다. 아이는 내 옆에 서서 붓을 바라봤다.“이제 연화채로 갈까요?”내가 묻자 소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건우는 책상 위에 흩어진 종이를 한쪽으로 모았다. 아이가 그은 선과 점이 적힌 종이는 따로 두었다.“그 종이는 치우지 않겠소.”“소리가 두고 싶어 하는지 먼저 물어보겠습니다.”건우는 종이를 든 손을 멈췄다. 소리를 보자 아이는 종이 쪽으로 다가갔다. 손가락으로 모서리를 눌렀다. 건우는 종이를 책상에 다시 놓았다.“이대로 두면 되겠구나.”소리는 종이를 한 번 더 누르고 돌아섰다. 얼룩이의 앞발이 아이의 팔에 걸렸다. 내가 그 앞발을 고쳐 주려다 손을 거뒀다. 소리는 스스로 인형을 끌어안았다.서재 문을 나서자 건우가 내 걸음에 맞춰 걸었다. 연화채까지는 86걸음이었다. 셋이 말없이 걸었다. 소리는 가운데에서 얼룩이의 귀를 만졌다. 건우는 아이의 앞을 막지 않았다.연화채에 도착하자 소리는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문 앞에 멈춰 섰다. 건우도 안으로 따라 들어가지 않았다.“오늘 종이는 서재에 두겠소. 소리가 다시 보고 싶을 때 가져오면 되오.”소리는 방 안에서 아버지를 봤다. 건우는 더 묻지 않고 몸을 돌렸다. 나도 뒤따라가려는데 소리가 내 소매 끝을 잡았다.나는 걸음을 멈췄다.“같이 있을까?”소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내 소매를 놓고 방 안으로 걸어갔다. 얼룩이를 침상 위에 앉힌 뒤, 인형의 앞발을 가지런히 모았다. 나는 방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문 가까이에 앉았다.건우는 안뜰을 지나 사랑채로 갔다. 뒤돌아보지 않았다. 소리는 아버지가 사라진 쪽을 잠깐 바라본 뒤 얼룩이의 코를 만졌다.“오늘은 서란 마마 이야기를 더 하지 않아도 돼.”소리는 내 얼굴을 살폈다.“하고 싶은 말이 생기면 그때 해도 돼. 아무 말도 하기 싫으면 그것도 괜찮고.”아이는 얼룩이를 무릎 위에 놓고 배를 두드렸다. 손바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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