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문턱에 둔 손을 거두지 못했다. 건우 나리는 찻잔을 내려놓은 채 나를 보고 있었다. 서재에는 먹 냄새와 차 냄새가 섞여 있었다. 나는 방금 들은 말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손등의 먹물 점만 문질렀다.“대군 나리께서 소리 곁에 계시면 됩니다.”“그대 곁에서도 기다릴 수 있소.”“저는 소리가 아닙니다.”“알고 있소.”건우 나리는 말을 더 붙이지 않았다. 나는 찻잔을 받치던 손을 옆구리에 붙였다. 마음에 들었다고 말하면 그에게 어떤 답을 더 해야 할 것 같았다.그는 책상 위 서란의 붓을 바라보다가 다시 나를 보았다.“하영 씨.”“예, 대군 나리.”“손짓말을 배우고 싶소.”그 말은 앞서 나눈 이야기에서 이어졌지만, 나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소리가 허락하면 알려 주겠다고 했고, 건우 나리도 기다리겠다고 했다. 소리는 지금 잠들어 있었다. 내가 대신 허락할 일은 아니었다.“소리에게 물어보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그렇소. 그래서 지금 배우겠다고 청하는 것은 소리에게가 아니라 그대에게요.”“제가 가르쳐도 된다는 뜻입니까?”“그대가 괜찮다면 말이오.”나는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어머니와 내가 쓰는 손짓은 둘만 알아보는 것이 많았다. 소리에게도 몇 가지 알려 주었지만, 그 아이가 무엇을 받아들일지는 매번 달랐다. 건우 나리에게 먼저 가르쳐도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가려야 했다.“소리에게 말을 시키는 손짓은 가르치지 않겠습니다.”“그럴 생각은 없소.”“대답을 재촉하는 손짓도요.”“알겠소.”“필요한 말만 하겠습니다. 기다려도 된다는 말, 그만해도 된다는 말, 그리고…….”나는 ‘고맙다’를 입 밖에 내지 않고 손가락으로 먼저 짚었다. 배우려는 사람에게 손짓을 보여 주기 전에, 무엇을 가르칠지 정해야 했다.“고맙다는 말은 알려 드릴 수 있습니다.”“그 정도면 충분하오.”“손을 보고 따라 하셔야 합니다. 말로 외우시면 헷갈릴 수 있습니다.”“그렇게 하겠소.”나는 문 쪽을 살폈다. 소리 방과 서재 사이가 멀지는 않았지만, 소리가
Last Updated : 2026-10-25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