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s los capítulos de 열한 번째 보모가 되었더니 말 없는 대군의 딸이 나에게만 속삭인다: Capítulo 21 - Capítulo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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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열병의 값

소리의 입술이 닫혔다.마당에 서 있던 사람들은 누구도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건우는 아이 앞에 선 채 손을 내리지 않았다. 소리는 얼룩이를 품에 안고 아버지를 올려다봤다. 어제 그 한마디가 끝이었다는 듯, 입술은 다시 굳게 다물려 있었다.나는 소리 옆으로 다가가지 않았다. 아이가 돌아설 곳을 막지 않으려고 한 걸음 비켜 섰다. 소리는 나를 보지 않았다. 대신 건우의 옷깃을 손끝으로 잡았다가 놓았다.건우가 무릎을 굽혔다.“고맙다, 소리야.”그는 더 말하지 않았다. 소리도 대답하지 않았다. 얼룩이의 귀를 손바닥으로 문지르던 아이의 손이 조금씩 느려졌다.오 어멈이 작은 상을 가까이 옮겼다. 소리는 상에 놓인 물을 마시지 않았다. 생일 옷을 입은 채 자리에 앉아 얼룩이의 배를 두드렸다. 나는 아이가 피곤해 보인다고 생각했지만, 사람들 앞에서 더 묻지 않았다.손님들이 돌아간 뒤에도 소리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말을 다시 해 보라고 하지 않았다. 오늘 입을 열었으니 내일도 그래야 한다고 약속시킬 생각도 없었다. 건우는 문 안쪽까지 아이를 데려다준 뒤, 소리가 혼자 옷을 갈아입을 수 있도록 방을 비웠다. 나와 오 어멈은 아이가 부른 뒤에야 안으로 들어갔다.소리는 얼룩이를 침상에 놓고 그 옆에 누웠다. 나는 아이의 이불을 가슴 아래까지만 덮었다. 아이는 이불을 끌어당기지 않았다. 눈을 감은 뒤에도 얼룩이의 귀를 쥔 손이 풀리지 않았다.얼마나 지났는지 모를 때, 소리가 이마를 찡그렸다. 숨이 평소보다 빨랐다. 나는 손등을 아이의 이마에 댔다. 열이 있었다.“오 어멈.”내 목소리가 낮게 나왔다.오 어멈은 문 가까이에 놓아 둔 물그릇을 들고 왔다. 손바닥을 소리의 이마에 댄 뒤 곧바로 물그릇을 내려놓았다.“뜨겁구나. 등잔을 조금 더 밝혀라.”나는 심지를 살짝 올렸다. 불빛이 커지자 소리의 볼이 붉게 보였다. 오 어멈은 젖은 천을 접어 이마에 올렸다. 소리는 눈을 뜨지 않았다.“소리야.”대답은 없었다.“내가 여기 있어.”나는 아이의 어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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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새벽 마루의 값

“엄마, 서랍 말 안 했어요…”소리의 목소리가 잦아든 뒤에도 나는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오 어멈의 손이 물그릇 위에 멈췄다. 문가에 있던 건우도 고개를 들었다.소리는 눈을 감고 있었다. 얼룩이의 앞발을 쥔 손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아이의 숨은 아까보다 조금 느려졌지만, 이마의 열은 아직 남아 있었다.나는 소리의 입가에 손을 대지 않았다. 방금 들은 말을 되묻지도 않았다. 아이가 잠결에 뱉은 말을 붙잡으면, 눈을 뜬 뒤에도 그 말에 매달려야 할 것 같았다.건우가 문가에서 한 걸음 다가왔다가 멈췄다.“들으셨소?”나는 고개를 끄덕였다.오 어멈은 소리의 이마에 얹은 천을 살폈다. 천이 한쪽으로 밀려 있었다. 오 어멈은 아이의 머리카락을 건드리지 않게 천을 다시 접어 놓았다.“잠결에 한 말입니다. 지금 물으시면 아이가 놀랄 수 있어요.”내가 건우에게 말했다.“알겠소.”건우는 더 묻지 않았다. 그는 침상 가까이 오지 않고 문 안쪽에 섰다. 나는 그 모습을 확인한 뒤 소리의 손을 바라봤다. 얼룩이의 귀가 손가락 사이에 눌려 있었다.오 어멈이 낮게 말했다.“숨은 조금 나아졌어요.”“예.”“보모님도 물을 드세요. 목이 다 쉬었겠네.”“괜찮습니다.”오 어멈은 빈 잔을 내 앞으로 밀었다. 나는 잔을 들고 물을 마셨다. 물은 밤새 방 안에 두어 미지근했다. 한 모금으로 목을 적시고 잔을 내려놓았다.건우는 내 쪽을 보았다.“문 밖 마루에 앉아 쉬시오. 오 어멈이 여기 있겠소.”“소리가 깨어날 수 있습니다.”“내가 곁에 있겠소. 오 어멈도 있고.”건우는 소리 쪽을 보았지만 다가가지는 않았다. 아이가 눈을 뜨면 바로 아버지를 볼 수 있도록 문 안쪽에 자리를 잡았다.나는 침상에서 한 걸음 물러났다. 얼룩이의 앞발을 꼭 쥔 손은 풀리지 않았다. 이마의 천도 그대로였다. 오 어멈이 내게 눈짓했다.“잠깐만 나가 계셔요. 소리가 깨면 바로 부를게요.”나는 문턱을 넘었다. 연화채 마루에는 새벽 공기가 들어와 있었다. 방 안의 약 냄새가 문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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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새 조항의 값

“엄마, 서랍 말 안 했어요…”소리의 목소리가 잦아든 뒤에도 나는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오 어멈의 손이 물그릇 위에 멈췄다. 문가에 있던 건우도 고개를 들었다.소리는 눈을 감고 있었다. 얼룩이의 앞발을 쥔 손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아이의 숨은 아까보다 조금 느려졌지만, 이마의 열은 아직 남아 있었다.나는 소리의 입가에 손을 대지 않았다. 방금 들은 말을 되묻지도 않았다. 아이가 잠결에 뱉은 말을 붙잡으면, 눈을 뜬 뒤에도 그 말에 매달려야 할 것 같았다.건우가 문가에서 1걸음 다가왔다가 멈췄다.“들으셨소?”나는 고개를 끄덕였다.오 어멈은 소리의 이마에 얹은 천을 살폈다. 천이 한쪽으로 밀려 있었다. 오 어멈은 아이의 머리카락을 건드리지 않게 천을 다시 접어 놓았다.“잠결에 한 말입니다. 지금 물으시면 아이가 놀랄 수 있어요.”내가 건우에게 말했다.“알겠소.”건우는 더 묻지 않았다. 그는 침상 가까이 오지 않고 문 안쪽에 섰다. 나는 그 모습을 확인한 뒤 소리의 손을 바라봤다. 얼룩이의 귀가 손가락 사이에 눌려 있었다.오 어멈이 낮게 말했다.“숨은 조금 나아졌어요.”“예.”“보모님도 물을 드세요. 목이 다 쉬었겠네.”“괜찮습니다.”오 어멈은 빈 잔을 내 앞으로 밀었다. 나는 잔을 들고 물을 마셨다. 물은 밤새 방 안에 두어 미지근했다. 1모금으로 목을 적시고 잔을 내려놓았다.건우는 내 쪽을 보았다.“문 밖 마루에 앉아 쉬시오. 오 어멈이 여기 있겠소.”“소리가 깨어날 수 있습니다.”“내가 곁에 있겠소. 오 어멈도 있고.”건우는 소리 쪽을 보았지만 다가가지는 않았다. 아이가 눈을 뜨면 바로 아버지를 볼 수 있도록 문 안쪽에 자리를 잡았다.나는 침상에서 1걸음 물러났다. 얼룩이의 앞발을 꼭 쥔 손은 풀리지 않았다. 이마의 천도 그대로였다. 오 어멈이 내게 눈짓했다.“잠깐만 나가 계셔요. 소리가 깨면 바로 부를게요.”나는 문턱을 넘었다. 연화채 마루에는 새벽 공기가 들어와 있었다. 문틈으로 약 냄새가 났다. 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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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과자 한 상자의 값

“비결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습니다.”내가 답하자 은재는 상자를 내려다봤다. 끈은 풀려 있었고, 뚜껑은 반쯤 열려 있었다. 소리는 얼룩이를 안은 채 상자 옆에 앉아 있었다. 손끝으로 뚜껑을 두드렸지만 과자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그럼 대군 나리께서 웃으시는 건 보모님 때문이 아니군요.”“제가 그렇게 말한 적은 없습니다.”“그렇지요. 제가 먼저 짐작했습니다.”은재는 물잔을 두 손으로 감쌌다. 잔에 입을 대지는 않았다. 소리는 얼룩이의 귀를 만지며 은재를 살폈다.“소리야, 상자를 닫아 둘까?”내가 묻자 소리는 상자 안을 들여다봤다. 쌀과자와 꿀과자가 종이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아이는 과자 하나를 집어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은재는 아이의 손을 지켜봤다. 무슨 말을 하려다 입술을 다물었다. 소리는 은재가 기다리는 동안 과자 종이를 손끝으로 눌렀다.“먹기 싫으면 두어도 돼.”내가 말했다.소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상자 뚜껑을 닫지는 않았다. 은재도 상자를 가져가겠다고 하지 않았다.“제가 드린 것인데도 먹지 않아 죄송합니다.”“죄송할 일은 아닙니다.”“제가 고른 과자라서요. 소리가 좋아할 것 같았습니다.”“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과 실제로 좋아하는 일은 다를 수 있습니다.”은재는 잔을 탁자 위에 놓았다. 잔 밑에 물기가 둥글게 남았다.“보모님은 소리가 싫다고 하면 바로 물러나십니까?”“제가 싫다고 말하는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할 수는 없습니다.”“그럼 아이가 계속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요?”“말하지 않는 것도 소리가 정한 일이라면 기다립니다.”은재는 소리 쪽을 보았다. 소리는 얼룩이의 앞발을 쓸고 있었다. 손가락이 인형의 박음질 자리를 따라갔다.“대답을 기다리는 건 어렵지 않습니까?”“어렵습니다.”나는 상자 뚜껑이 더 열리지 않도록 손바닥을 올려 두었다. 소리가 과자를 꺼내려다가 생각을 바꾸면 상자 안의 종이가 바닥에 떨어질 수 있었다.“하지만 아이가 말하지 않았는데 제가 먼저 대답을 정해 버리면, 그다음부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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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은재의 값

은재가 말을 마치자 건우 나리는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등잔 받침에는 태운 종이의 재가 조금 남아 있었다. 은재는 그쪽을 보지 않고 두 손을 무릎 위에 얹었다.“그 말씀을 소리 앞에서 하실 필요는 없었습니다.”내가 말했다.“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제가 가져온 편지 때문에 대군 나리께서 거절하신 것이니, 제 입으로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았습니다.”“편지를 가져온 일은 은재 아가씨의 잘못이 아닙니다.”건우 나리가 말했다.“하지만 제가 그 편지를 들고 이 집에 왔습니다.”“그 편지를 쓴 사람은 따로 있소.”은재가 고개를 들었다. 건우 나리는 재가 남은 받침을 탁자 안쪽으로 밀었다. 손가락에 재가 묻었지만 닦지 않았다.“할아버지께서 제게 편지를 맡기셨습니다. 대군 나리께 직접 전하라고 하셨습니다.”“그렇다고 아가씨 뜻까지 정해진 것은 아니오.”“제가 제 뜻을 말할 자리가 없었습니다.”은재는 목소리를 낮췄다. 소리는 방 안쪽에 앉아 얼룩이를 안고 있었다. 아이의 시선이 은재와 건우 나리 사이를 오갔다. 나는 그쪽으로 몸을 조금 돌렸다.“소리는 들을 필요 없는 이야기입니다. 후원으로 나가서 말씀을 이어도 되겠습니까?”건우 나리가 나를 보았다.“소리 곁을 지킬 사람이 필요하오.”“오 어멈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은재 아가씨와 후원에서 이야기하고 오겠습니다.”“좋소. 나는 진평군께도 뜻을 전하겠소.”은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대군 나리께서 직접 말씀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돌아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아가씨가 전할 일이 아니오.”건우 나리는 짧게 답했다. 은재는 입술을 다물었다. 더 권하지 않았다.나는 소리 곁으로 가서 얼룩이의 귀를 확인했다. 한쪽 귀가 접혀 있었다. 소리는 내 손을 보고 자기 손으로 귀를 펴 주었다.“은재 아가씨와 잠깐 후원에 다녀올게. 오 어멈이 곧 올 거야.”소리는 얼룩이를 끌어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건우 나리는 문을 열어 주었다. 은재가 먼저 나갔고, 나는 뒤따랐다. 문을 닫기 전에 건우 나리가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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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화. 쌀 이름의 값

은재의 마지막 말이 귀에 남아 있었다. 진평군은 청죽당의 쌀이 어디로 가는지 안다고 했다.5월 4일, 나는 큰곳간 문 앞에 섰다. 오 어멈이 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문틈은 손가락 하나가 겨우 들어갈 만큼 벌어져 있었다.“보모님, 여긴 오래 서 있으면 안 됩니다.”“저도 압니다.”“집사님이 열쇠를 갖고 계십니다. 문을 열어 달라고 하면 왜 그러느냐고 물으실 테고요.”오 어멈은 부엌 쪽을 살폈다. 큰마당에서 사람들 발소리가 오갔다. 곳간 문에는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문틈 안쪽은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다.“문 안으로 들어가자는 게 아닙니다. 안에 적힌 표를 확인하고 싶습니다.”“표가 있다고 하셨지요.”“입고한 쌀을 적은 표가 문 안쪽 나무판에 꽂혀 있다고 하셨습니다.”오 어멈은 입술을 다물었다. 손에 든 바구니 손잡이를 고쳐 잡았다. 바구니에는 마른 나물이 조금 담겨 있었다.“변 집사님이 쌀을 들일 때마다 종이에 적어 붙였습니다. 제가 부엌에서 몇 번 봤습니다. 장부에 옮긴다고 떼어 내지는 않았어요.”“그 표에 적힌 수를 모두 더하면 올해 들어온 쌀이 나옵니까?”“그럴 겁니다. 표마다 섬 수가 적혀 있었으니까요.”“장부에는 얼마라고 적혀 있다고 들으셨습니까?”“694섬이었습니다.”오 어멈은 그 수를 말하고 바구니 손잡이를 놓았다가 다시 잡았다.“그 숫자를 직접 보셨습니까?”“변 집사님이 장부를 펼쳐 놓고 확인하는 걸 봤습니다. 합계를 읽었어요. 제가 잘못 들었을 리는 없습니다.”“올해 실제로 들어온 쌀은요?”“480섬입니다. 들어오는 날마다 부엌에서도 쌀을 받아 썼으니 제가 모를 수가 없지요.”“그럼 214섬이 맞지 않습니다.”“그 차이를 그냥 두면 소리 아씨 몫부터 줄어듭니다.”오 어멈은 문틈을 바라봤다. 손등에는 부엌에서 묻은 쌀겨가 남아 있었다. 나는 소매 속 주판알을 만지작거리다 손을 멈췄다.“지금은 합계를 확인해야 합니다. 장부를 훔치거나 열쇠를 가져올 생각은 없습니다.”“그런 생각을 하셨다면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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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화. 밀랍의 값

호위 처소 안에는 말린 가죽 냄새와 기름 냄새가 섞여 있었다. 나는 문 안쪽에 서서 소매 끝을 만졌다. 손등의 먹물 점이 어제보다 옅어 보였다.유성직은 낮은 탁자 앞에 앉아 있었다. 칼집을 닦던 손을 멈추고 나를 봤다.“보모님, 무슨 일이십니까?”“곳간 일로 의논드리고 싶습니다.”성직은 칼집을 옆에 내려놓았다. 탁자 위에는 접은 천과 작은 기름병이 놓여 있었다. 그는 그 물건들을 한쪽으로 밀었다.“곳간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올해 입고 표의 합계와 장부에 적힌 합계가 다릅니다.”“얼마나 다릅니까?”“표에는 480섬, 장부에는 694섬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차이는 214섬입니다.”성직의 눈이 내 손을 향했다. 나는 손을 소매 밖으로 꺼냈다.“제가 장부를 직접 본 것은 아닙니다. 오 어멈이 장부의 합계를 봤다고 했습니다. 저는 문틈으로 안쪽 표를 확인했습니다.”“표를 모두 보셨습니까?”“보이는 표는 확인했습니다. 겹쳐서 읽을 수 없는 것은 셈에 넣지 않았습니다. 다만 오 어멈이 표의 수를 읽어 주었고, 저는 그 수를 더했습니다.”“그 표가 올해 들어온 쌀을 모두 적은 것이 맞습니까?”“오 어멈은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저는 표가 붙어 있는 것만 봤습니다. 다른 곳에 표가 더 있는지는 모릅니다.”성직은 탁자 모서리에 손을 올렸다. 손가락 끝이 접힌 천을 눌렀다.“그럼 214섬이 사라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군요.”“없습니다.”“장부가 틀렸는지, 표가 모자란지, 쌀이 다른 곳으로 갔는지도 모른다는 말씀이군요.”“예. 지금 제가 아는 건 서로 다른 합계가 있다는 것뿐입니다.”성직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바깥에서 말이 발굽을 옮기는 소리가 났다. 그는 문 쪽을 돌아보지 않았다.“집사님께서는 곳간 열쇠를 모두 가지고 계십니다.”“열쇠를 가진 사람이 1명이라는 사실만으로 잘못을 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그렇습니다. 그래도 다른 사람이 확인할 수 없는 건 문제입니다.”“그래서 대군 나리께 먼저 말씀드릴까 했습니다.”“왜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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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화. 긴 속삭임의 값

5월 12일 밤, 나는 소리 방의 작은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무릎 위에는 말 장부가 놓여 있었다. 소리는 침상 끝에 앉아 얼룩이를 안고 있었다. 목의 놋쇠 방울은 옷깃 아래로 들어가 있었다.“오늘은 0마디로 적을까요?”내가 묻자 소리는 얼룩이의 귀를 만졌다. 대답은 없었다. 나는 장부에 붓을 대지 않았다.소리가 말을 하지 않는 날에도 장부에는 한 줄을 남겼다. 하지만 그 줄을 쓰는 일은 내가 정했다. 소리에게 말하라고 재촉하는 표가 되어서는 안 됐다. 오늘의 말 수를 묻는 것과 말을 받아 내는 일은 달랐다.“아직 밤이 남았으니 기다릴게요.”소리는 인형의 귀를 접었다가 놓았다. 나무 호랑이 집 안쪽에는 얼룩이가 들어갈 자리가 있었다. 소리는 인형을 그곳에 넣지 않고 가슴에 안았다.나는 장부를 덮었다. 소리가 내 손을 보았다. 손등의 먹물 점에 시선이 잠시 머물렀다가, 다시 얼룩이의 얼굴로 돌아갔다.“오늘은 말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해도 돼요.”소리는 고개를 조금 숙였다. 나는 자리를 옮기지 않았다. 침상까지 다가가 앉지도 않았다. 소리에게는 내가 먼저 가까이 가지 않는 편이 나을 때가 있었다.방 안에는 촛불 타는 소리와 얼룩이의 털을 쓸어 넘기는 소리만 났다. 나는 붓을 씻어 두고 장부를 책상 한쪽에 놓았다. 소리는 인형의 배를 손바닥으로 덮었다. 그 아래에 새로 꿰맨 실이 조금 보였다.“얼룩이 배가 벌어질까 봐 걱정돼요?”소리는 인형을 더 꼭 끌어안았다. 내가 질문을 거두자 그제야 손가락에 들어간 힘이 풀렸다.“대답하지 않아도 괜찮아요.”나는 물그릇을 소리 쪽으로 밀어 놓았다. 소리는 물을 마시지 않았다. 그 대신 방울을 손끝으로 눌렀다. 소리가 나지 않도록 천천히 잡고 있었다.그날 밤 나는 장부를 펴지 않았다.◓5월 13일, 나는 같은 자리에 앉아 말 장부의 앞장을 펼쳤다. 소리의 첫 줄은 3월 17일의 0마디였다. 그 뒤로도 소리가 말하지 않은 날에는 0마디를 적었다. 숫자 옆에는 내가 본 일을 짧게 덧붙였다.소리는 침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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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화. 기다림의 값

나는 그 말 뒤에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소리는 얼룩이를 안고 내 앞에 서 있었다. 방울을 쥔 손은 가슴에 붙어 있었다. 나는 아이가 내 소매를 놓을 때까지 기다렸다.소리는 손가락을 하나씩 폈다. 얼룩이의 귀를 만지고, 인형의 배를 손바닥으로 덮었다. 나는 그 손이 움직이는 동안 다른 질문을 하지 않았다.“아줌마.”소리가 내 귀에만 닿게 속삭였다.“응. 듣고 있어요.”“아버지한테 말 안 할 거죠?”“소리가 허락하기 전에는 말하지 않을게요.”소리는 내 얼굴을 살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리는 얼룩이를 품에 안고 침상 쪽으로 돌아갔다. 나는 장부를 펼치지 않았다.5월 16일, 연화채 평상에는 소리와 나만 앉아 있었다. 소리는 얼룩이를 무릎에 올려놓았다. 인형의 한쪽 귀가 풀려 솜이 조금 보였다. 소리는 그 부분을 손으로 가리지는 않았다. 대신 귀 끝을 두 손가락으로 잡고 늘어뜨렸다.“얼룩이 귀가 더 풀렸네요.”소리는 인형을 내 쪽으로 밀었다가 다시 거두었다.“내가 봐도 될까요?”소리가 인형을 내 무릎 위에 놓았다. 나는 풀린 실을 살폈다. 실을 당기면 귀가 더 벌어질 수 있었다. 나는 인형을 돌려 귀 안쪽까지 확인하고, 늘어난 실을 손톱으로 가볍게 눌렀다.“꿰매면 다시 쓸 수 있어요. 다만 지금은 바늘이 없네요.”소리는 손을 내밀었다. 얼룩이를 돌려 달라는 뜻 같았다. 나는 인형을 넘겼다. 소리는 귀를 다시 만지지 않고 인형을 품에 안았다.평상 끝에서 발소리가 났다. 건우 나리가 다가와 우리와 조금 떨어진 자리에 섰다. 소리는 아버지를 보았다가 내 손등을 보았다. 먹물 점 위에 소리의 시선이 잠시 머물렀다.“보모.”“예, 대군 나리.”건우 나리는 평상에 앉지 않고 소리의 맞은편에 섰다. 소리는 얼룩이를 안은 채 몸을 조금 돌렸다. 건우 나리는 아이의 얼굴을 보고도 말을 서두르지 않았다.“소리와 이야기를 나눴소?”“예.”“내게 해 줄 수 있는 이야기가 있소?”나는 소리의 손을 보았다. 아이는 얼룩이의 귀를 잡은 채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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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화. 변방의 값

나는 그 말을 듣고 바구니에 넣으려던 실을 내려놓았다. 건우 나리는 얼룩이의 꿰맨 귀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친 손가락은 무릎 위에 놓여 있었다. 약을 발랐던 자리는 이미 말라 있었다.“그때 서란 마님께서 앓고 계셨습니까?”건우 나리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손끝이 무릎 위에서 한 번 움직였다가 멈췄다.“그랬소. 내가 떠나기 전부터 몸이 좋지 않았소.”그는 얼룩이를 보던 눈을 거두었다. 평상에 놓인 바구니에는 바늘과 실이 담겨 있었다. 나는 바늘 끝이 밖으로 나오지 않게 천 조각을 덮었다.“변방 군영으로 가라는 명을 받았소. 집에 남아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지.”“얼마나 머무르셨습니까?”“돌아오기까지 시간이 걸렸소.”건우 나리는 말을 짧게 끊었다. 더 말하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입을 다물었다가, 다시 열었다.“돌아왔을 때는 장례가 끝난 뒤였소.”나는 얼룩이의 귀를 꿰맨 실을 보았다. 한 땀씩 들어간 실이 천을 붙들고 있었다. 실이 끊어지지 않도록 손톱으로 눌러 두었다.“누가 알려 주었습니까?”“집에서 전했소. 서란이 세상을 떠났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이미 돌아오는 길이었소.”건우 나리는 그 말 뒤에 손을 내리지 않았다. 나는 그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대답을 듣고 싶어 내가 먼저 묻기는 했지만, 그가 말을 다 마칠 때까지 기다리는 일도 내 몫이었다.“소리는 그때 이미 입을 닫았소.”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흐리지 않았다.“내가 아이 앞에 섰을 때 소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소. 손을 내밀어도 오지 않았고, 이름을 불러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소.”나는 바구니 옆에 놓인 얼룩이를 보았다. 소리가 아버지에게 인형을 내밀던 손이 떠올랐다. 그 손은 얼룩이를 내놓았다가 다시 품에 안았다. 말 대신 손이 먼저 움직였다.“대군 나리께서 돌아오셨을 때 소리는 몇 살이었습니까?”“세 살이었소.”“그때부터 지금까지 소리가 입을 열지 않았습니까?”“그렇소. 적어도 내 앞에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소.”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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