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 주시면 적어 두겠습니다.”변 집사의 눈썹 한쪽이 올라갔다.“적어 둔다?”“저는 들은 말을 잊지 않으려고 적습니다. 오늘 집사님이 하신 말씀도 날짜와 같이 적어 두겠습니다. 3월 4일, 우물가 길목.”변 집사는 한참 나를 보다가 아무 말 없이 돌아섰다. 열쇠 소리가 연화채 담을 따라 멀어졌다. 나는 그 소리가 다 사라진 뒤에야 주먹을 폈다. 손바닥에 주판알 자국이 셋, 동그랗게 찍혀 있었다.연화채로 돌아오니 소리가 방문 앞 마루에 앉아 있었다. 얼룩이를 무릎에 앉히고, 내가 간 쪽을 보고 있었다. 나를 보자 아이는 얼룩이의 앞발을 들어 흔들었다. 얼룩이가 나를 맞은 것이었다.나는 마루에 걸터앉아 얼룩이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손을 들어 손짓을 했다. 오른손 손가락을 모아 입 앞으로 두 번 가져가는 모양이었다.소리가 고개를 기울였다.“이건 밥이라는 뜻이야. 우리 어머니랑 쓰는 말이야.”아이의 눈이 내 손에 붙었다.“우리 어머니는 귀가 거의 안 들려. 그래서 우리 집은 말을 손으로도 해. 밥, 물, 자자, 좋아, 싫어. 어머니는 내 입보다 내 손을 먼저 봐.”나는 하나씩 보여 주었다. 물은 손바닥을 오므려 입에 대는 모양. 자자는 손바닥을 모아 뺨에 대는 모양. 좋아는 엄지를 세우는 모양, 싫어는 손바닥을 펴서 좌우로 젓는 모양. 손짓을 하는 동안 내 손등의 먹물 점이 아이 눈앞에서 오르내렸다. 아이의 눈은 손짓보다 그 점을 더 오래 따라다녔다.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더 보여 주었다. 손바닥을 입 앞에 대고 숨을 한 번 내쉬는 모양이었다.“이건 우리 어머니가 나를 부르는 손짓이야. 내가 아기였을 때 어머니는 내 울음소리를 못 들었대. 그래서 밤마다 손바닥을 내 입에 대고 숨이 닿는지 봤대. 숨이 닿으면 내가 거기 있는 거고. 그래서 지금도 나를 부를 때는 이렇게 해. 숨소리 모양.”소리는 따라 하지 않았다. 얼룩이의 귀만 만지며 보기만 했다. 나는 재촉하지 않고 손을 내렸다. 저녁 바람에 처마 끝 풍경이 한 번 울렸다.그날 밤,
Last Updated : 2026-10-25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