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오라버니라 부르던 날, 그가 미쳤다: Chapter 1 - Chapter 10

14 Chapters

1화

윤소은이 마차 안에서 들은 첫 번째 비명은 홍연의 것이었다.그 소리는 바퀴가 돌다리에 부딪히는 굉음에 거의 묻혀 버렸지만, 열두 해 동안 자신의 곁을 지켜 온 시녀의 목소리를 소은이 알아듣지 못할 리 없었다. 그녀는 무릎 위에 올려놓았던 작은 보퉁이를 떨어뜨리고 급히 휘장을 걷었다.“홍연아? 무슨 일이냐?”대답 대신 거친 발소리가 들려왔다. 뒤따르던 마차의 등불이 갑자기 흔들리더니, 그 앞을 검은 옷을 입은 사내들이 가로막았다. 소은이 몸을 내밀었을 때에는 이미 홍연이 마차 아래로 끌려 내려오고 있었다.홍연은 두 팔을 붙잡힌 채 버티고 있었다. 그중 한 사내가 그녀의 머리채를 움켜쥐자 머리 장식이 바닥에 떨어졌고, 소은이 직접 수놓아 준 연분홍색 비단 끈이 흙탕물 속으로 굴러갔다.“아씨! 문을 잠그세요! 절대로 나오시면 안 됩니다!”홍연이 소리쳤다.사내가 그녀의 입을 막으려 하자 홍연은 그 손을 깨물었다. 비명이 터지고 잠시 혼란이 일어난 사이, 소은은 마차 문을 열어젖혔으나 발을 내딛기도 전에 밖에서 문짝이 거칠게 닫혔다.쇠빗장이 걸리는 소리가 들렸다.“문을 열어라! 저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하는 것이냐!”소은은 문을 두드리며 마부를 불렀다. 그러나 마부는 대답하지 않았고, 마차는 곧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바퀴가 구르는 동안 홍연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소은은 문고리를 붙잡고 몇 번이나 몸을 부딪쳤지만, 밖에서 잠긴 문은 조금도 열리지 않았다.“마차를 세워라! 서 장군의 명을 받고 온 것이 아니더냐!”그제야 마부가 대답했다.“장군께서 보내신 마차가 맞습니다, 낭자.”소은의 손이 멈추었다.“그렇다면 어째서 홍연을 붙잡아 가는 것이냐?”“저는 낭자를 목적지까지 모시라는 명만 받았습니다.”“목적지가 어디냐고 묻지 않았느냐!”마부는 더는 대답하지 않았다.소은은 숨을 고르며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그곳에는 붉은 비단 끈 하나가 묶여 있었다. 매듭 안쪽에 가느다란 푸른 실이 숨어 있었는데, 어젯밤 무헌이 그것을 묶어 주는 동안 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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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전하께서 어찌 이곳에 계십니까?”경원은 대답하지 않고 소은의 손목을 바라보았다.“붉은 끈이 잘 어울리는구나. 누가 묶어 주었느냐?”소은은 본능적으로 손을 감췄다.“홍연은 어디 있습니까?”“그 아이가 걱정되느냐?”“제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홍연은 상관없는 아이입니다. 부디 풀어 주십시오.”경원은 잠시 소은을 바라보다가 곁에 있던 병사에게 고개를 끄덕였다.대문 안쪽에서 거친 발소리가 들려왔다.두 병사가 홍연을 끌고 나왔다.소은은 처음에 그 모습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 홍연은 머리카락이 풀어진 채 두 손을 뒤로 묶이고 있었고, 한쪽 뺨이 심하게 부어 있었다. 입가에서 흘러내린 피가 턱과 목덜미를 적셨으며, 걸음을 옮길 때마다 다리를 절었다.“홍연아!”소은이 달려가려 하자 병사가 창대를 가로질렀다.홍연은 소은을 발견하고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병사가 그녀의 어깨를 눌러 무릎을 꿇리자, 젖은 돌바닥에 부딪힌 무릎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다.“아씨, 저는 괜찮습니다.”홍연은 억지로 웃으려 했지만 입술이 터져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제가 아씨를 잘못 모셨습니다. 그러니 저 때문에 마음 쓰지 마시고…….”“네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그러느냐!”소은의 목소리가 떨렸다.“전하, 제가 시켰습니다. 홍연은 제 명을 따랐을 뿐입니다.”경원은 소은의 말을 듣고도 홍연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충직한 시녀구나. 네가 어디로 떠나는지 끝내 말하지 않더라.”그는 천천히 소은을 돌아보았다.“그래서 그 아이의 동생을 데려오라고 했지.”홍연의 얼굴이 굳었다.소은은 그녀가 몸을 떨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경원을 바라보았다.“동생이라니요?”“아직 어린 남동생이 있다더구나. 병든 어미와 함께 도성 남쪽에 산다지?”경원은 마치 별것 아닌 이야기를 꺼내듯 말했다.“홍연이 끝내 입을 열지 않으면 그 아이에게 물어볼 생각이었다.”홍연이 몸부림쳤다.“전하! 제 동생은 아무것도 모릅니다!”“그러니 네가 말하면 되지 않느냐.”경원의 목소리는 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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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소은은 한려진의 혼례복을 바라보았다.“누구와…… 혼인하십니까?”한려진은 잠시 소은을 바라보다가 시녀들에게 물러나라고 손짓했다.“아직 못 들으셨군요.”그녀는 한 걸음 다가와 소은의 손을 잡으려 했다. 소은이 물러서자 한려진의 시선이 손목에 묶인 붉은 끈으로 향했다.“서무헌 장군과 혼인합니다.”소은은 그 말을 듣고도 곧바로 이해하지 못했다.무헌이라는 이름은 분명 자신이 알고 있는 그 남자의 이름이었다. 그러나 그가 한려진과 혼인한다는 말은 어젯밤 자신이 들었던 약속과 도저히 이어지지 않았다.“장군께서…… 오늘 혼례를 올리신다고요?”“예. 오늘부터 제 부군이 되실 분이지요.”한려진은 소은의 얼굴을 살피며 미소 지었다.“윤 낭자께서도 기뻐해 주실 줄 알았는데, 표정이 좋지 않으시네요.”소은은 경원을 돌아보았다.“전하, 이 혼례는 무엇입니까?”“보이는 그대로다.”“서 장군께서 제게…….”소은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경원은 그녀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서 장군이 네게 무슨 약속이라도 했느냐?”소은은 입술을 다물었다.어젯밤의 도주 약속을 이 자리에서 인정하는 순간 무헌에게 어떤 죄가 씌워질지 알 수 없었다. 경원은 그 사실을 이용하듯 한동안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말하지 못하겠느냐?”그가 물었다.소은은 고개를 숙였다.“장군을 직접 만나겠습니다.”“만나게 될 것이다. 다만 그 전에 할 일이 있지.”경원이 한려진을 바라보자 그녀가 기다렸다는 듯 손짓했다.시녀들이 혼례복의 긴 뒷자락을 펼쳤다.“윤 낭자, 부탁 하나 드려도 될까요?”한려진은 자신의 치맛자락을 내려다보았다.“혼례복의 안쪽 매듭이 잘못 묶였어요. 이대로는 예를 올릴 때 옷자락이 뒤틀릴 것 같은데, 윤 낭자는 바느질을 잘하시잖아요.”소은은 한려진을 바라보았다.“시녀들이 있지 않습니까?”“물론 있지요. 하지만 저는 윤 낭자가 직접 해 주셨으면 해요.”한려진은 다정하게 웃었다.“장군께서도 윤 낭자를 친동생처럼 아끼셨다면서요. 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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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그러나 마당에서는 홍연이 신음하고 있었다.소은은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방석은 얇았고, 밤새 젖은 바닥의 냉기가 무릎을 타고 올라왔다. 한려진은 그녀가 완전히 자세를 낮춘 것을 확인한 뒤에야 시녀에게 바늘과 실을 가져오라고 명했다.“윤 낭자께서 손수 정리해 주시니 참으로 영광이네요.”한려진이 말했다.소은은 대답하지 않고 혼례복의 안쪽을 살폈다.매듭은 일부러 느슨하게 풀어 놓은 것처럼 보였다. 옷감이 상한 곳도 없었고, 시녀들이라면 누구든 쉽게 고칠 수 있는 부분이었다.그녀는 한려진이 왜 자신을 불렀는지 알았다.혼례복을 정리할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었다.소은이 무릎 꿇은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이다.“윤 낭자, 손이 떨리시네요.”한려진이 내려다보며 말했다.“혹시 오늘 제 혼례가 마음에 들지 않으세요?”소은은 실을 당겼다.“옷을 정리하고 있습니다.”“저는 그저 걱정되어서 여쭤본 거예요. 장군께서 윤 낭자를 오래 돌보셨다고 들었으니, 이제 다른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시는 것이 서운할 수도 있겠지요.”곁에 앉은 부인 하나가 웃음을 참지 못했다.한려진은 그쪽을 돌아보며 난처한 듯 미소 지었다.“오해하지 마세요. 윤 낭자께서는 장군을 친오라버니처럼 따르셨다고 해요.”그 말이 퍼지자 손님들 사이에서 수군거림이 커졌다.소은은 고개를 숙인 채 바늘을 움직였다.손끝이 떨려 바늘이 살을 찔렀다. 붉은 피가 손가락에 맺혔지만 그녀는 곧장 천으로 감싸고 작업을 계속했다. 피가 혼례복에 묻으면 한려진이 그것을 핑계 삼아 또 무슨 일을 벌일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그러나 한려진은 소은이 손가락을 다친 것을 놓치지 않았다.“어머, 피가 나네요.”그녀는 시녀에게 손짓했다.“새 천을 가져다주세요. 제 혼례복에 피가 묻어서는 안 되니까요.”소은은 상처 난 손을 감쌌다.그때 한려진이 한 걸음 앞으로 움직였고, 소은의 손에 들린 바늘이 비단을 스쳤다. 실이 팽팽하게 당겨지면서 혼례복 안쪽의 가느다란 금실 한 올이 끊어졌다.한려진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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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이제 일어나셔도 돼요.”그러나 소은이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마당에서 큰 소란이 일었다.홍연이 병사의 손을 뿌리치고 대청 안으로 뛰어든 것이다.그녀는 소은 앞에 엎드렸다.“아씨, 안 됩니다!”홍연의 목소리는 피와 울음에 젖어 있었다.“저 때문에 이러지 마세요. 저는 맞아도 괜찮으니 아씨께서는…….”병사가 뒤따라 들어와 홍연의 머리채를 붙잡았다.소은은 급히 홍연을 끌어안았다.“손대지 마라!”병사가 두 사람을 떼어 놓으려 하자 소은은 홍연의 몸을 감싸며 버텼다. 홍연은 자신 때문에 소은까지 다칠까 두려운 듯 그녀를 밀어냈지만, 소은은 놓지 않았다.“전하, 이제 그만하십시오. 시키신 일은 모두 했습니다.”경원은 두 사람을 내려다보았다.“아직 끝나지 않았다.”그는 홍연에게 물었다.“네 주인이 누구를 만나러 도성을 떠나려 했느냐?”홍연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모릅니다.”“정말 모르느냐?”“아씨께서는 제게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경원은 한동안 홍연을 바라보다가 병사에게 손짓했다.병사가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소은은 그 앞을 막아섰다.“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경원의 시선이 소은에게 향했다.“무엇을?”소은은 입술을 떨었다.자신이 무헌과 도망치려 했다고 말하면 그가 위험해질 수 있었다. 그러나 홍연이 계속 고문당하는 것을 지켜볼 수도 없었다.그녀는 두려움 속에서 무헌이 어젯밤 했던 말을 떠올렸다.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을 믿으라고 했다.소은은 그 말을 붙잡고 겨우 입을 열었다.“서 장군을 만나러 가던 길이었습니다.”대청 안이 술렁였다.경원은 놀라지 않았다.“장군과 무슨 약속을 했느냐?”소은은 잠시 눈을 감았다.“함께…… 도성을 떠나기로 했습니다.”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경원은 그제야 만족한 듯 웃었다.“들었느냐?”그는 주변의 관리들을 돌아보았다.“왕실의 정혼녀가 다른 사내와 도주하려 했다고 스스로 인정했다.”소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그녀는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깨달았지만, 이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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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자신을 왜 혼례청으로 보냈는지, 한려진과의 혼례가 무엇인지 묻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홍연의 목숨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다.“제가 도망치자고 했다고 말씀하셔도 괜찮아요. 모든 죄를 제게 돌리셔도 좋으니 저 아이만은 풀어 주세요.”무헌은 홍연을 바라보았다.그녀의 부어오른 얼굴과 묶인 손을 확인한 순간 그의 턱이 굳어졌다.“누가 저 아이를 저렇게 만들었습니까?”낮고 차가운 목소리였다.소은은 그 말을 듣고 가슴이 저릿해졌다.무헌이 자신들을 구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그러나 경원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왕실의 정혼녀를 도주시킨 죄를 물었을 뿐이오.”“시녀에게 그런 죄를 물을 권한은…….”무헌이 말을 잇기도 전에 경원이 손을 들었다.마당에 있던 병사들이 홍연의 남동생을 끌고 들어왔다.아직 어린 소년이었다.소은은 홍연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일으키는 것을 보았다.“안 돼! 저 아이는 안 됩니다!”홍연은 병사들에게 매달리려 했지만 묶인 손 때문에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소년은 누나의 얼굴을 알아보고 울음을 터뜨렸으며, 병사는 그 아이의 어깨를 붙잡아 마당 한가운데 세웠다.경원은 무헌을 바라보았다.“장군, 내가 왜 오늘 혼례를 서둘렀는지 이제 알겠소?”무헌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전하.”“장군이 왕실의 정혼녀를 데리고 도망치면, 그 일을 도운 사람들은 모두 죄인이 되오. 저 아이도 예외가 아니지.”경원은 소년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그러나 장군이 오늘의 혼례를 예정대로 진행한다면, 나는 이 일을 조용히 덮을 수도 있소.”소은은 경원의 말을 듣고 무헌을 바라보았다.그제야 이 혼례가 단순한 배신이 아니라 누군가가 준비한 함정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경원은 무헌에게 선택을 강요하고 있었다.소은은 무헌의 얼굴을 살폈다.그가 경원의 협박을 거절하고 자신을 데리고 나갈 것인지, 아니면 홍연과 그 동생을 살리기 위해 다른 길을 택할 것인지 알 수 없었다.무헌은 한동안 침묵했다.그러다 경원에게 물었다.“저 아이들을 풀어 주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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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한려진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경원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나 소은은 무헌이 정말로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오라버니…….”그녀가 부르자 무헌은 고개를 돌렸다.소은은 그에게 다가가 손목의 붉은 끈을 들어 보였다.“어젯밤 제게 이걸 묶어 주셨잖아요.”무헌의 시선이 붉은 끈에 머물렀다.“함께 떠나자고 하셨잖아요. 저는 그 말씀을 믿고 모든 것을 버렸어요.”소은은 울음을 삼켰다.“그런데 어째서 다른 여자와 혼례를 올리시는 겁니까?”무헌은 입술을 다물었다.경원과 한려진, 혼례객들이 모두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소은은 그 시선을 느꼈지만 더는 물러서지 않았다.“저를 버리신 겁니까?”무헌의 눈빛이 흔들렸다.그는 소은의 손목을 붙잡으려다 멈추었다.소은은 그 손을 바라보았다.어젯밤 자신을 안아 주던 손이었다.그 손이 지금은 자신에게 닿는 것조차 망설이고 있었다.“대답해 주세요.”소은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제가 믿었던 사람이 오라버니였다는 사실까지 후회하게 만들지는 말아 주세요.”무헌의 얼굴이 일그러졌다.그러나 그는 끝내 소은이 원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대신 경원을 향해 몸을 돌렸다.“혼례를 진행하겠습니다.”대청 안에 낮은 탄성이 퍼졌다.소은은 무헌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그는 한려진의 곁으로 걸어갔다.한려진은 그가 다가오자 기쁜 듯 미소 지었고, 시녀들은 혼례복의 옷자락을 다시 펼쳤다.소은은 그 광경을 보면서도 울지 못했다.무헌이 홍연을 살리기 위해 그런 선택을 했다는 사실은 알 것 같았다. 그러나 그가 자신에게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은 채 다른 여자의 곁에 서는 모습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경원이 그녀에게 다가왔다.“이제 알겠느냐?”소은은 대답하지 않았다.경원은 그녀의 손목에 묶인 붉은 끈을 내려다보았다.“서 장군이 네게 무엇을 약속했든, 결국 그는 자신이 지켜야 할 것을 선택한 것이다.”소은은 무헌을 바라보았다.그는 혼례상 앞에 서 있었다.한려진이 그의 곁에서 옷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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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무헌은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소은아, 무엇을 하는 것이냐?”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마침내 매듭이 풀렸다.소은은 붉은 끈을 두 손으로 잡고 무헌에게 내밀었다.“돌려드리겠습니다.”무헌의 얼굴이 굳었다.소은은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저는 이 끈을 받으면서 오라버니께서 저를 버리지 않으실 거라고 믿었습니다. 왕실이 저를 잡으러 오더라도,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더라도, 오라버니만은 제 손을 놓지 않으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그녀는 숨을 고르며 말을 이었다.“그런데 오늘 제가 본 것은 달랐습니다.”무헌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소은은 그 떨림을 보았지만 더는 기대하지 않았다.“홍연이 피를 흘리고 있을 때도, 제가 다른 여자의 혼례복을 붙잡고 무릎을 꿇었을 때도 오라버니께서는 저를 구해 주지 않으셨습니다.”그녀는 붉은 끈을 무헌의 손 위에 올려놓았다.“그러니 이제 이것을 제가 가지고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무헌이 끈을 붙잡았다.그 순간 소은은 그의 손이 자신의 손등에 닿는 것을 느꼈다.어젯밤에는 그 손길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지금은 피가 묻은 자신의 손을 그가 잡고 있다는 사실조차 견디기 어려웠다.소은은 천천히 손을 빼냈다.“혼례를 축하드립니다, 서 장군.”무헌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그녀가 그를 오라버니라 부르지 않은 것은 처음이었다.소은은 더는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몸을 돌려 홍연에게 다가가려 했으나 경원의 병사들이 앞을 막았다.경원은 소은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아직 돌아갈 수 없다.”소은은 그를 돌아보았다.“무엇이 더 남았습니까?”“네가 인정한 도주에 관하여 왕실에서 물어야 할 것이 있다.”그는 궁인에게 명했다.“윤소은을 별실로 데려가라. 시녀와는 따로 두고, 누구도 허락 없이 만나지 못하게 하라.”홍연이 소은을 향해 달려오려 했다.그러나 병사들이 그녀를 붙잡았다.“아씨!”소은은 홍연에게 손을 뻗었다.“홍연아, 걱정하지 마라. 내가 반드시…….”말을 끝맺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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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윤소은이 홍연의 목소리를 들은 것은 별실에 갇힌 지 한 시진이 넘어서였다.문밖에서 쇠사슬이 돌바닥을 긁는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짧게 신음했고, 뒤이어 병사가 시녀의 이름을 부르며 걸음을 재촉했다. 소은은 침상에서 일어나 문으로 다가갔다. 혼례청에서 홍연을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그 아이는 이미 혼자 걷기도 어려울 만큼 다쳐 있었으므로, 지금 들리는 발소리가 홍연의 것인지 확인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홍연아, 네가 거기 있느냐? 내 목소리가 들리면 대답해 보거라.”문밖의 움직임이 잠시 멎었다. 소은이 다시 이름을 부르려는 순간 무언가 단단한 것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낮은 신음이 들렸고, 병사 하나가 문 앞으로 다가와 조용히 하지 않으면 시녀를 다른 곳으로 옮기겠다고 경고했다.“저 아이를 어디로 데려가는 겁니까? 상처가 심하니 의원부터 불러 주십시오. 의원을 들일 수 없다면 물과 깨끗한 천이라도 보내 주시면 됩니다.”병사는 왕자의 허락 없이는 시녀에게 아무것도 줄 수 없다고 대답했다. 소은이 문에 손을 얹은 채 물러서지 않자 그는 다시 소란을 피우면 시녀를 더 깊은 별원으로 옮기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덧붙였고, 그제야 그녀는 더 묻지 못한 채 뒤로 물러났다.홍연이 어디로 끌려가는지 알아내려고 소리를 높일수록 그 아이가 다칠 수 있었다. 혼례청에서 이경원은 소은이 무릎을 꿇지 않으면 홍연을 벌하겠다고 했고, 그녀가 끝내 한려진의 혼례복을 정리한 뒤에도 홍연을 풀어 주지 않았다. 이제 소은은 경원이 내세우는 조건이 반드시 지켜질 약속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별실에는 작은 침상과 탁자, 물그릇 하나가 놓여 있었으며 창문에는 굵은 쇠창살이 박혀 있었다. 소은은 탁자에 놓인 수건을 찢어 손가락에 감았다. 혼례복의 장식을 바로잡느라 바늘에 찔린 손끝에서는 피가 조금씩 배어 나왔고, 오래 꿇려 있었던 무릎은 몸을 굽힐 때마다 욱신거렸다.상처를 감싸던 소은은 무심코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어젯밤까지 그곳에 묶여 있던 붉은 끈은 혼례청에서 서무헌에게 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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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소은이 먼저 청하자 경원은 대답 대신 함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는 소은의 손가락에 감긴 천을 한 번 내려다보더니 의자를 끌어 앉으며 궁인에게 문을 닫으라고 지시했다.“네가 오늘 가장 많이 부른 이름이 홍연이더구나. 그렇게 아끼는 아이라면 나도 앞으로는 대하는 방법을 달리해야겠지.”그가 함의 뚜껑을 열자 접힌 서신 한 통이 드러났다. 소은은 익숙한 종이의 색을 알아보았지만, 경원이 손짓하기 전까지는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다.“서무헌과 도망치려고 쓴 편지라지? 네가 직접 확인해 보거라.”소은은 탁자 앞으로 다가가 서신을 펼쳤다. 첫머리에 적힌 글씨를 보는 순간 어젯밤 자신이 무헌에게 보낸 편지라는 사실을 알아보았다. 동이 트기 전에 동문 밖에서 기다리겠다는 약속과, 그가 끝내 오지 못하더라도 원망하지 않겠다는 말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소은은 무헌에게 왕실의 정혼을 거역하라고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그가 오지 않는다면 혼자 떠나겠다고 마음먹었으므로 편지에도 마지막까지 물러날 길을 남겨 두었다.그런데 편지 아래쪽에는 기억하지 못하는 두 문장이 덧붙어 있었다.왕실의 정혼을 거역하고 서무헌을 따르겠다는 내용이었으며, 도주를 계획한 사람이 자신이므로 이를 도운 사람들에게 죄를 묻지 말아 달라는 말까지 이어져 있었다. 그 문장을 읽는 동안 소은의 손끝이 차갑게 식었다.자신이 무헌을 기다리기로 했다는 사실과 왕실의 죄를 인정하는 문서를 직접 작성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특히 마지막 문장은 홍연과 마부를 비롯해 자신을 도왔다는 이유로 붙잡힌 사람들에게까지 죄를 돌릴 수 있는 내용이었다.“이 마지막 두 줄은 제가 쓰지 않았습니다.”경원은 의자 팔걸이에 팔을 얹은 채 그녀를 올려다보았다.“그 위의 글씨는 네 것이 맞느냐?”“맞습니다. 그러나 아래쪽은 누군가 제 필적을 흉내 낸 것입니다.”“한 장의 편지 안에서 네 글씨가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는 말이냐? 네가 불리해지자 말을 바꾸는 것은 아니고?”소은은 그의 조롱에 대꾸하지 않고 서신을 창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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