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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소은이 마차 안에서 들은 첫 번째 비명은 홍연의 것이었다.
그 소리는 바퀴가 돌다리에 부딪히는 굉음에 거의 묻혀 버렸지만, 열두 해 동안 자신의 곁을 지켜 온 시녀의 목소리를 소은이 알아듣지 못할 리 없었다. 그녀는 무릎 위에 올려놓았던 작은 보퉁이를 떨어뜨리고 급히 휘장을 걷었다.
“홍연아? 무슨 일이냐?”
대답 대신 거친 발소리가 들려왔다. 뒤따르던 마차의 등불이 갑자기 흔들리더니, 그 앞을 검은 옷을 입은 사내들이 가로막았다. 소은이 몸을 내밀었을 때에는 이미 홍연이 마차 아래로 끌려 내려오고 있었다.
홍연은 두 팔을 붙잡힌 채 버티고 있었다. 그중 한 사내가 그녀의 머리채를 움켜쥐자 머리 장식이 바닥에 떨어졌고, 소은이 직접 수놓아 준 연분홍색 비단 끈이 흙탕물 속으로 굴러갔다.
“아씨! 문을 잠그세요! 절대로 나오시면 안 됩니다!”
홍연이 소리쳤다.
사내가 그녀의 입을 막으려 하자 홍연은 그 손을 깨물었다. 비명이 터지고 잠시 혼란이 일어난 사이, 소은은 마차 문을 열어젖혔으나 발을 내딛기도 전에 밖에서 문짝이 거칠게 닫혔다.
쇠빗장이 걸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어라! 저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하는 것이냐!”
소은은 문을 두드리며 마부를 불렀다. 그러나 마부는 대답하지 않았고, 마차는 곧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퀴가 구르는 동안 홍연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소은은 문고리를 붙잡고 몇 번이나 몸을 부딪쳤지만, 밖에서 잠긴 문은 조금도 열리지 않았다.
“마차를 세워라! 서 장군의 명을 받고 온 것이 아니더냐!”
그제야 마부가 대답했다.
“장군께서 보내신 마차가 맞습니다, 낭자.”
소은의 손이 멈추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홍연을 붙잡아 가는 것이냐?”
“저는 낭자를 목적지까지 모시라는 명만 받았습니다.”
“목적지가 어디냐고 묻지 않았느냐!”
마부는 더는 대답하지 않았다.
소은은 숨을 고르며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그곳에는 붉은 비단 끈 하나가 묶여 있었다. 매듭 안쪽에 가느다란 푸른 실이 숨어 있었는데, 어젯밤 무헌이 그것을 묶어 주는 동안 소은은 몇 번이나 울음을 참아야 했다.
그가 처음으로 함께 떠나자고 했기 때문이다.
왕자 이경원과의 정혼이 선포되기 전에 도성을 떠나면 두 사람 모두 역모의 의심을 받을 수 있었다. 북방군을 이끄는 무헌이라 하더라도 왕실의 정혼을 가로막았다는 죄를 피하기 어려웠으므로, 소은은 차라리 자신이 혼자 떠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무헌은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내가 너를 보내는 줄 아느냐.'
그는 그렇게 묻고 한참 동안 소은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내가 데리고 간다. 동이 트기 전에 마차를 보낼 테니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고 기다려라.'
소은은 그 말을 믿었다.
어린 시절부터 오라버니라 부르며 따랐던 사람이었다. 그가 북방으로 출정할 때마다 무사히 돌아오기를 빌었고, 돌아온 날에는 다친 곳이 없는지 살피느라 밤을 새우기도 했다.
무헌이 자신을 여인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에는 기쁘면서도 두려웠다. 그와 자신 사이에 놓인 세월과 신분, 왕실의 눈길이 얼마나 무거운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소은은 결국 그의 손을 잡았다.
그 선택을 후회할 날이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마차가 동문으로 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은 한참 뒤였다. 길바닥의 울퉁불퉁한 감촉이 익숙한 관도로 바뀌었고, 좁은 골목을 빠져나오자 사람들의 말소리와 풍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소은은 휘장 틈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붉은 등이 걸린 대문이 보였다.
그 아래에는 혼례를 알리는 비단 장식이 드리워져 있었고, 마당 안쪽에서는 손님들이 웃으며 술잔을 주고받고 있었다.
소은은 마차가 멈추자마자 문을 두드렸다.
“여기가 어디냐? 나는 동문으로 가야 한다!”
밖에서 쇠빗장이 풀렸다.
문이 열리는 순간 소은은 뛰어내리려 했으나, 마차 양옆에 늘어선 무장한 병사들을 보고 발을 멈추었다. 그들의 허리에는 왕실 친위대의 패가 달려 있었다.
“윤 낭자께서 오셨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경원이었다.
그는 혼례청의 대문 앞에 서서 소은을 기다리고 있었다. 밤새 비가 내린 탓에 마당에는 물웅덩이가 남아 있었지만, 그의 신발과 옷자락에는 흙 한 점 묻어 있지 않았다.
그때 회랑에서 급한 발소리가 이어지더니 문밖의 병사 하나가 다른 병사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서 장군께서 별원으로 가셨다. 전하께서 서약서를 가져오라 명하셨으니 이 방에 남은 종이도 거두어야 한다.”소은은 손가락의 붕대 안쪽에 감춘 푸른 실을 만졌다. 자신이 확인한 것은 편지의 마지막 두 줄이 자신의 글씨가 아니었다는 사실과 서무헌의 인장이 진짜였다는 사실, 그리고 봉랍에 붙어 있던 실이 어젯밤 손목에 묶였던 끈의 실과 감촉이 달랐다는 사실뿐이었다.그러나 그 작은 차이조차 자신이 직접 확인한 것이었다. 그녀는 더는 누군가의 약속만 믿고 기다리지 않기로 하고 문으로 다가가 경원에게 직접 할 말이 있다고 전해 달라고 요구했다.문밖의 병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회랑 끝으로 달려가던 다른 병사가 돌아오더니 별원 안쪽에서 새로운 명령이 내려왔다고 알렸다.“서 장군께서 끝내 서명하지 않으시면, 홍연의 동생부터 끌어내라는 전하의 명이시다.”소은이 다시 문을 두드리려는 순간 마당 쪽에서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창가로 달려가자 조금 전 별원 안으로 끌려갔던 홍연의 동생이 다시 마당에 나타났고, 아이의 양팔을 붙잡은 병사들은 그를 서약서를 가져갈 궁인이 지나가는 길목에 세워 놓았다.아이는 누나를 찾으며 몸을 비틀었지만 병사들이 팔을 놓아주지 않았다. 소은이 창살을 붙잡고 아이를 풀어 주라고 외치는 동안 궁인은 별실 문 앞으로 다가와 서약서를 거두겠다고 알렸고, 문을 지키던 병사는 안쪽의 빗장을 풀기 시작했다.소은은 탁자 위의 종이를 바라보았다. 무헌이 아직 서명하지 않은 서약서와 자신이 감춘 푸른 실을 모두 지켜야 했지만, 지금 마당에 붙잡힌 아이를 그대로 두고 증거만 살필 수는 없었다.그녀는 문이 열리자 궁인 앞을 막아서며 경원에게 직접 말하겠다고 요구했다. 궁인은 왕자의 허락 없이는 소은을 데려갈 수 없다고 대답했고, 소은이 물러서지 않자 병사들이 다가와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그 순간 마당에서 아이가 다시 누나를 불렀다.소은은 병사들
소은은 탁자 위의 서약서를 가리켰다. 무헌이 그 문서에 무엇을 적든 자신의 동의가 있었다고 말하지 말라고 요구하면서, 한려진의 혼례를 축하한 적도 없고 무헌과의 관계를 끊겠다는 서약에 동의한 적도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그리고 제가 쓰지 않은 문장 때문에 죄인이 된다면, 그 문장이 누구의 손에서 나왔는지 끝까지 확인하겠습니다.”무헌은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입술을 움직였지만, 그때 문밖에서 병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경원이 다시 부르고 있으며 홍연의 동생을 별원 안쪽으로 옮기라는 명령이 내려왔다는 말에 소은은 창가로 다가갔다.마당에서는 아이를 붙잡은 병사들이 별원 안쪽의 문을 열고 있었다. 아이는 홍연을 부르며 몸을 뒤틀었지만 병사가 팔을 붙잡고 끌어당기자 더는 버티지 못했고, 소은이 창살을 붙잡는 사이 작은 몸이 문 안쪽으로 사라졌다.무헌은 소은을 향해 돌아섰다.“내가 반드시 너를 데리러 오겠다.”그 말은 어젯밤에도 들었다. 소은은 그가 진심으로 약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그 약속을 믿고 올라탔던 마차가 어디로 향했는지 이미 알고 있었으므로 이번에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무헌이 문으로 향하자 소은은 그가 나가기 직전 조용히 말했다.“홍연과 동생을 구할 방법을 찾으십시오. 하지만 저를 위해서라는 말로 제 뜻을 지우지는 마십시오.”그의 걸음이 멈췄지만 소은은 다가가지 않았다. 무헌이 끝내 돌아오지 않은 채 밖으로 나가자 병사들은 곧바로 문을 닫고 쇠빗장을 걸었고, 소은은 한동안 문을 바라보다가 탁자로 돌아왔다.경원이 서신을 거두는 과정에서 봉랍 가장자리에 붙어 있던 푸른 실이 떨어졌는지, 탁자 한쪽에 아주 작은 실밥이 남아 있었다. 소은은 손가락에 감긴 천을 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그것을 집어 들었다.실은 생각보다 거칠었다. 어젯밤 무헌이 묶어 주었던 붉은 끈의 안쪽에 들어 있던 푸른 실은 부드러운 비단실이었는데, 지금 손에 들린 것은 표면이 조금 더 거칠고 꼬임도 단단했다. 색은 비슷했지만 같은 실이라고 단
소은이 홍연을 붙잡으려는 순간 병사들이 별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홍연의 양팔을 붙잡아 일으켰고, 홍연은 동생을 놓아 달라며 몸부림쳤으나 다친 다리에 힘을 주지 못해 다시 비틀거렸다.무헌이 병사들의 앞을 가로막았다.“저 아이는 치료가 먼저다. 데려가려거든 의원부터 불러라.”경원은 문밖에 서 있던 궁인을 불러 홍연에게 준비해 두었던 약과 붕대를 가져오지 말라고 명했다. 그 말을 들은 홍연은 소은의 옷자락을 붙잡았고, 소은은 경원이 치료를 허락하겠다고 했던 말을 떠올리며 그에게 돌아섰다.“서약을 받으시면 정말 홍연과 동생을 풀어 주실 겁니까?”“그것은 서약의 내용과 장군의 태도를 보고 결정하겠다.”소은은 경원이 끝내 석방을 약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혼례청에서도 그는 무헌이 혼례를 올리면 홍연을 풀어 줄 수 있다고 했지만, 혼례가 끝난 뒤에도 홍연을 붙잡아 두었다. 이번에도 무헌이 서약을 쓰면 아이들을 놓아주겠다는 확답은 없었다.“장군, 들으셨습니까? 전하께서는 서약을 받으신 뒤에도 홍연을 풀어 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무헌은 경원을 바라보며 허리 쪽으로 손을 움직였다가 멈췄다. 평소라면 검이 있어야 할 자리였으나 혼례복을 입은 그는 무장을 하고 있지 않았고, 경원은 그 움직임을 지켜본 뒤 문밖의 병사들에게 창을 거두지 말라고 명했다.“장군의 군권이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이곳은 왕실의 관할이오. 설마 군사들을 불러 정혼녀를 데려가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겠지?”무헌은 손을 내렸지만 서약서에는 여전히 손대지 않았다. 경원은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내일 아침까지 서약을 남기지 않으면 소은의 도주를 정식으로 고발하고, 그 일을 도운 자들까지 조사하겠다고 선언했다.그는 홍연을 데려가려는 병사들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서신함을 들고 문밖으로 나갔다. 소은은 홍연의 손을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었지만, 병사들이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자 더는 버틸 수 없었다.홍연은 끌려가면서도 소은을 걱정하는 눈빛으로 돌아보았다. 소은은 반드시 방법을 찾
무헌은 곧바로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턱을 넘기 전에 왕실 병사들이 창을 교차해 길을 막았고, 무헌이 멈추지 않자 병사 하나가 왕자의 명령 없이는 누구도 마당에 나갈 수 없다고 고했다.“아이를 일으켜 세워라. 조사할 일이 있다면 내게 묻고, 저 아이에게 손대지 마라.”무헌의 명령이 마당까지 들렸는지 병사 하나가 아이를 일으켜 세웠다. 그러나 경원이 손가락을 움직이자 곧바로 아이의 팔을 다시 붙잡았고, 무헌은 창을 쥔 병사들과 경원을 차례로 바라보다가 문턱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소은은 무헌이 아이를 구하려고 움직였다는 사실을 보았다. 동시에 그가 멈춘 순간 아이가 다시 끌려가기 시작했다는 사실도 보았다.경원은 궁인에게 검은 문서함을 가져오라고 명했다. 함 안에는 두꺼운 종이와 붓, 먹, 인주가 들어 있었고, 그는 그중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종이를 꺼내 무헌 앞에 펼쳐 놓았다.“말로 하는 약속은 쉽게 뒤집힐 수 있으니, 장군이 자신의 뜻을 문서로 남겨 주면 좋겠소.”무헌은 탁자 앞에 돌아왔지만 붓을 받지 않았다. 경원은 그가 종이를 내려다보는 동안 한려진을 정식 아내로 맞이하고 윤소은과의 사사로운 관계를 끊겠다는 뜻을 직접 적으라고 요구했다.“장군이 그 서약을 남기면 오늘의 도주 소동도 더는 문제 삼지 않을 수 있겠지.”소은은 경원이 내민 종이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쓰지 않은 문장 두 줄이 도주 서신에 덧붙여졌다는 이유만으로 죄를 인정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었는데, 이제는 무헌이 직접 쓴 서약서가 두 사람의 관계를 끊는 증거가 될 참이었다.“전하께서 원하시는 것이 제 정혼을 지키는 일이라면, 제게 직접 물으셔야 합니다. 장군께서 저와 관계를 끊겠다는 서약을 쓰신다고 해서 제가 무엇을 선택했는지까지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경원은 소은의 말을 듣고 붓을 탁자에 내려놓았다.“네가 선택한 것은 왕실의 정혼을 어기고 다른 사내와 도망치는 일이 아니더냐?”“그 선택에 대한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모르는 곳에서 장군이 제 삶을 대신
“제가 어젯밤 보낸 편지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두 줄은 제가 쓴 것이 아니고, 아래에는 장군의 진짜 인장이 찍혀 있습니다.”무헌이 서신을 다시 펼쳐 들자 경원이 곧바로 끼어들었다.“내가 이미 설명했소. 장군이 직접 내게 가져온 편지라고 말이오.”소은은 무헌의 손가락이 종이 가장자리를 움켜쥐는 것을 보았다. 그는 경원의 말을 부정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편지를 넘겼다고 인정하지도 않은 채 서신을 탁자에 내려놓았다.“장군께서 정말 전하께 넘기셨습니까?”무헌은 소은을 바라보았다. 한때 그녀가 그 눈빛 하나만으로 안심했던 남자였지만, 지금 그가 보여 주는 표정에서는 어떤 대답도 읽을 수 없었다.“소은아, 지금은 그 편지에 관하여 더 묻지 말거라.”소은은 그 말을 듣고도 당장 대꾸하지 못했다. 무헌이 자신을 보호하려는 것인지, 경원의 주장 가운데 무엇인가가 사실이어서 대답하지 못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자신이 쓴 편지에 누군가 죄를 인정하는 문장을 덧붙였고 그 아래에 무헌의 인장이 찍혀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했다.그녀는 홍연의 상처를 살피던 수건을 내려놓고 무헌 앞으로 다가갔다.“제가 쓴 편지에 누군가 문장을 덧붙였습니다. 그 문장 때문에 저는 왕실의 정혼을 거역한 죄인이 되었고, 홍연은 저를 도왔다는 이유로 붙잡혔습니다. 그런데 장군께서는 제가 무엇을 알아야 하고 무엇을 몰라야 하는지까지 대신 정하실 생각입니까?”무헌은 소은에게 한 걸음 다가왔다가 그녀의 손가락에 감긴 천을 발견하고 움직임을 멈췄다. 피가 다시 배어 나온 천을 바라보던 그의 손이 소은의 손목을 향했지만, 그녀가 몸을 뒤로 물리자 더는 다가오지 않았다.“네가 위험해질 수 있다.”“저는 이미 위험합니다. 제가 한려진 낭자의 혼례복을 정리하며 무릎을 꿇었을 때에도 장군께서는 저를 구하지 않으셨고, 홍연이 끌려갈 때에도 막아 주지 못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진실을 묻는 것마저 위험하다고 하시면, 저는 무엇을 믿고 기다려야 합니까?”무헌은 서신을 다시 집어 들었다. 그가 종
소은은 홍연을 의자에 앉히고 물그릇을 가져왔다. 홍연이 물을 마시려다가 소은의 손가락에 감긴 천을 발견하자, 소은은 자신의 손을 감추는 대신 수건을 적셔 홍연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어디가 가장 아프냐? 의원을 불러 달라고 했으니 조금만 견디거라.”홍연은 입술을 떨며 고개를 저었다.“아씨께서 저 때문에 혼례청에서 그런 일을 당하셨습니다. 제가 조금만 더 조심했더라면…….”“네가 나를 지키려 했다는 것을 안다. 그러니 지금은 그런 말보다 네가 살아 있는 것이 중요하다.”소은은 수건을 적셔 홍연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 상처에 물이 닿을 때마다 홍연의 어깨가 움츠러들었지만, 그녀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었다.소은은 문밖에 병사들이 서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목소리를 낮췄다.“동생은 어떻게 되었느냐?”홍연의 눈빛이 흔들렸다.“제가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에는 살아 있었습니다. 병사들이 마당에 데려다 놓고 제가 말을 듣지 않으면 어머니까지 잡아오겠다고 했습니다.”소은은 손에 들고 있던 수건을 내려놓았다. 홍연의 가족이 붙잡혀 있다는 말은 경원이 혼례청에서 했던 협박이 빈말이 아니었다는 뜻이었다.“네가 마차에서 끌려 내려왔을 때, 마부가 누구를 만났는지 기억하느냐?”홍연은 잠시 문밖을 살피다가 소은에게 몸을 가까이 기울였다.“붉은 꾸러미를 건네는 것을 보았습니다. 마부가 혼례청 뒤편에서 검은 모자를 쓴 사람에게 작은 꾸러미를 넘겼는데, 그 사람은 얼굴을 가리고 있었습니다.”“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보았느냐?”“얼굴은 보지 못했습니다. 다만 병사들이 길을 비켜 주었고, 마부가 허리를 깊이 숙였습니다. 제가 그 모습을 보자 그 사람이 마부에게 무슨 말을 했고, 곧바로 병사들이 저를 붙잡았습니다.”소은은 탁자 위의 서신을 돌아보았다.붉은 꾸러미 안에 편지가 들어 있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자신을 태운 마차가 혼례청에 도착한 직후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에게 물건이 전달되었다는 사실은, 서신이 무헌의 손에서 곧바로 경원에게 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