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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작가: 손이영
그 남자는 바로 유강후였다.

유강후는 고급 소재의 흰 셔츠에 긴 다리를 감싸는 검은색 바지를 입고 차갑고 위엄 있는 표정을 지은 채 길에 서서 눈길을 끌었다.

그의 옆에 있는 여자는 하얀색 명품 정장을 입었는데 몸매의 볼륨감이 잘 드러났다. 맑고 귀여운 외모에 눈웃음도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다.

두 사람은 무슨 말을 했는지 곧 여자는 유강후의 팔짱을 끼고 앞으로 걸어갔다.

두 사람이 멀리 걸어가는 모습을 본 온다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책을 얼굴에서 떼어냈다.

하지만 이때 유강후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멀리서부터 안도연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온다연은 유강후의 눈빛에서 차가운 기운을 느꼈고 순간 머리가 질끈거리면서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다행히 유강후는 곧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온다연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상현 씨, 미안해요. 저 볼일 있어서 이만 가야 할 것 같아요.”

강상현이 말도 하기 전에 온다연은 이미 보지 말아야 할 것은 본 듯한 표정으로 재빨리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문 앞에 도착하기도 전에 유강후와 그 여자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피하기에는 너무 늦은 온다연은 몸을 곧추세우고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 할 수 없이 외쳤다.

“삼촌!”

유강후은 시선을 온다연이 입고 있는 무릎까지 오는 하얀색 원피스로 옮겼다가 아픈 기색이 역력한 얼굴을 쳐다보며 냉정하게 말했다.

“친구랑 여기서 켜피 마신 거야?”

“강후 씨, 누구야? 왜 강후 씨를 삼촌이라고 불러?”

여자는 놀란 표정을 지은 채 애교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유강후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담담하게 말했다.

“우리 형수님의 조카야.”

여자는 놀란 듯 온다연을 훑으며 말했다.

“강후 씨가 말했던 그 조카군요. 언제 이렇게 많이 컸어요?”

여자는 손을 내밀어 온다연에게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반가워요. 저는 강후 씨 친구 나은별이에요.”

사실 나은별이 자기 소개하지 않아도 온다연은 그녀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전에 유씨 가문에서 나은별을 여러 번 몰래 관찰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부잣집 아가씨는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는다. 항상 차갑고 말수가 적은 유강후조차도 마음을 전부 나은별에게 주었다.

나은별은 영원히 햇볕 아래에서 사는 공주였지만 온다연은 어두운 구석의 초라한 잡초에 불과했다.

온다연이 입을 열기도 전에 강상현이 쫓아왔다.

“저기, 휴대폰을 안 가져갔어요.”

온다연은 재빨리 휴대폰을 받아 들고 말했다.

“고마워요!”

강상현은 머리를 긁적이며 귀 끝이 빨개진 채 말했다.

“다연 씨, 혹시 카카오톡 추가해도 돼요?”

온다연은 빨리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 재빨리 강상현과 카카오톡을 추가했다.

다만 두 사람 모두 유강후의 눈빛이 점점 더 차가워지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다연아, 이 사람이 네 친구야?”

온다연이 입을 열기 강상현이 웃으며 말했다.

“아니요. 오늘 선 자리에서 처음 만난 사이예요.”

“선 자리?”

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뜨고 눈가의 어둠이 짙어졌다.

온다연은 깜짝 놀라 고개를 숙였다.

부드럽고 하얀 손가락에 힘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요. 그냥 평범한 같은 학교 친구예요. 삼촌, 은별 씨, 우리는 이만 갈게요. 두 분 데이트 잘하세요.”

그렇게 말한 후 온다연은 강상현을 끌고 밖으로 도망치듯 나갔다.

문 앞에서 강상현이 웃으며 말했다.

“저분이 진짜 다연 씨 삼촌이에요? 정말 젊고 남자 연예인보다 더 잘 생겼네요.”

온다연은 기억 속 깊은 곳에 있는 누군가와 왠지 모르게 닮은 얼굴을 바라보며 마음이 흔들렸다.

그러나 그녀는 재빨리 말했다.

“상현 씨, 저한테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좋을 거예요. 카카오톡은 삭제하세요. 제 연락처를 갖고 있는 건 상현 씨에게 좋지 않아요.”

강상현이 놀란 표정으로 온다연을 쳐다보며 이유를 묻기도 전에 온다연은 이미 돌아서서 자리를 떴다.

여름비는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온다연이 커피숍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고 원래 밝았던 하늘도 갑자기 무서울 정도로 어두워졌다.

온다연은 제때 비를 피하지 못해 온몸이 흠뻑 젖었고 주변에 숨을 곳이 없어서 길가의 나무 밑에 서서 비가 조금 그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잠시 후 검은색 마이바흐가 갑자기 빠른 속도로 지나가면서 물보라를 일으켜 온다연에게 튈 뻔했다.

차 문이 열리고 차갑고 낮은 목소리가 비를 뚫고 들려왔다.

“차에 타!”

온다연은 거센 빗줄기 뒤로 차 안에 있는 사람을 확실하게 보았다.

그의 마른 손목은 열린 차창을 누르고 있었고 담담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온다연과 유강후 사이에서 비가 거세게 내렸지만 그녀를 내려보는 듯한 고고한 분위기는 비를 뚫고 전해졌다.

온다연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유강후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잠시 망설이던 온다연은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가 갑자기 몸을 돌려 뛰었다.

유강후는 빗속에서 점점 작아지는 온다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눈을 살짝 감았다.

공기의 기압은 조금 전보다 더 낮아졌고 이권은 저도 모르게 부르르 떨었다.

“도련님, 다연 양을 데려올까요?”

유강후는 얇은 입술을 일직선으로 앙다물고 온다연이 멀지 않은 곳에서 버스에 올라타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말을 뱉어냈다.

“다연이 지내는 곳으로 가.”

온다연은 유강후의 차 불빛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버스 안에서 계속 뒤돌아보았다. 더 이상 보이지 않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온다연은 왠지 유강후가 점점 더 무섭게 느껴졌다.

버스에서 내린 후에도 비가 여전히 줄어들지 않았다. 온다연은 우산이 없어 비 속에서 터벅터벅 걸으며 건물로 들어갔다.

원래도 열이 내리지 않았는데 한참 비를 맞자 더 심해졌다.

어두운 복도 전등은 고장 난지 오래됐지만 아무도 고치지 않았다. 밖의 희미한 빛이 스며들어 바닥을 비추자 이 오래된 공간이 더 낡아 보였다.

온다연의 몸은 이미 거의 다 젖어 있었고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한 데다가 조금 전에 긴장한 상태였기 때문에 집에 돌아오자 긴장이 풀리면서 몸에 힘이 쫙 빠졌다.

온다연은 녹슨 계단 손잡이를 잡고 천천히 올라갔다.

문 앞에 도착했을 때 온다연은 가방을 커피숍에 두고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손에는 휴대폰만 들고 있었다. 그녀는 쓴웃음을 지으며 벽에 기댄 채 바닥에 앉았다.

유강후를 만날 때마다 좋은 일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키도 잃어버렸고 휴대폰 배터리도 다 떨어졌다.

이제 비가 그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방법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건물 입구에서 낮고 느린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누군지 보려고 고개를 들어보았지만 머리가 너무 무거워 간신히 고개를 들었을 때 날씬하고 반듯한 실루엣만 보였다.

시원한 솔 냄새가 온다연의 콧속을 파고들었고 숨 쉴 때마다 그 냄새에 휩싸인 것 같았다.

정신이 흐릿했던 온다연은 그 향기에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더듬거리며 말했다.

“사, 삼촌...”

유강후였다.

유강후는 그곳에 서서 움직이지 않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축축한 머리카락이 온다연의 창백한 뺨에 붙어 그녀의 하얀 피부와 예쁜 눈썹이 더욱 돋보였다.

그리고 열 때문에 입술은 유난히 붉어서 마치 그에게 키스를 하라고 유혹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유강후은 눈가가 검게 물들었고 천천히 온다연에게 다가와 물었다.

“나를 보고 왜 도망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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