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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카운트다운, 너를 버릴 시간
이혼 카운트다운, 너를 버릴 시간
Author: 도도화

제1화

Author: 도도화
“이대로 서명하시게 되면 임서율 씨는 앞으로 5년, 어쩌면 그것보다 더 오래 이곳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회사가 개발한 물품 특성상 저희는 계약이 끝나기 전까지 임서율 씨의 신분을 철저하게 숨길 것이고 그 누구도 임서율 씨를 찾아내지 못하게 할 겁니다. 그런데도 서명하시겠습니까?”

“네, 서명하겠습니다.”

임서율은 단호한 얼굴로 서류 하단에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모든 절차는 10월 20일에 완료될 예정이며 완료 즉시 저희 측 직원이 다시 연락을 드릴 겁니다.”

임서율은 고개를 끄덕이며 휴대폰을 확인했다. 오늘은 10월 1일, 디데이까지 앞으로 20일 정도 남았다.

...

백화점 앞에 서 있던 임서율은 거대 스크린을 통해 흘러나오는 일주일 전 발표회 영상을 보고는 표정을 굳혔다.

“성운 그룹의 차주헌 대표가 웨딩드레스를 아직 입어 보지 못한 아내를 위해 3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직접 웨딩드레스를 디자인했다고 합니다. 그 가격은 가히 숫자로 매길 수 없는...”

웨딩드레스 얘기가 처음으로 대외에 전해졌을 당시, 사람들은 차주헌이라는 남자를 가진 임서율이야 말로 인생 승자라며 너도나도 부러워했다.

돈 많고 잘생기고 거기에 로맨틱하기까지 한 남자는 희귀 동물처럼 매우 드물었으니까.

길을 거닐던 두 여자는 발걸음을 멈추며 부럽다는 눈길로 영상을 바라보았다.

“너 그거 알아? 차주헌은 자기 와이프가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떤 걸 싫어하는지도 다 알고 있대. 보통은 결혼에 골인하면 관심을 잘 안 가지잖아.”

“차주헌 공처가인 거 모르는 사람도 있어? 전에 와이프가 차 사고로 각막을 이식해야 할 수도 있었을 때 한 치의 망설임 기증 동의서에 서명했잖아. 다행히 수술이 잘 돼서 이식까지는 필요 없었지만.”

“어디 그것뿐이야? 꼭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고 와이프 기분 좋아지라고 늘 선물을 사준다잖아. 그것도 매번 엄청 비싼 거로. 요즘은 사귀는 사이에도 기념일을 까먹는 남자들이 태반인데 차주헌 와이프는 어떻게 딱 차주헌을 골랐대? 부럽다. 부러워.”

임서율은 두 사람의 말을 들으며 코웃음을 쳤다. 그녀는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차라리 귀가 안 들리던 때가 더 나을 뻔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임서율이 청력을 잃게 된 건 대학생 시절, 차주헌이 친구와 치고받고 싸우다 의자로 맞을 뻔했을 때 그 앞을 막아서 대신 맞아줬기 때문이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동기들은 임서율만 보면 귀머거리라 놀렸고 또 ‘남자 때문에 청력까지 잃은 미련한 애’라며 빈정거리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그녀를 지켜줬던 남자가 바로 차주헌이었다.

“임서율, 너 귀머거리 아니야. 앞으로는 내가 네 귀가 되어줄게. 네가 다른 사람 때문에 상처받지 않게 내가 언제나 곁에서 지켜줄게!”

그러나 영원할 줄 알았던 행복은 짧게 반짝이다 사라지는 불꽃놀이처럼 금방 사라져버렸다.

며칠 전, 청력이 기적적으로 돌아온 그 날, 임서율은 차주헌에게 이 소식을 전하러 갔다가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듯한 광경을 목격해버리고 말았다.

그녀 말고는 무뚝뚝한 태도로 일관하던 남자가 꿀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목소리로 웬 여자와 통화하며 사랑을 속삭이고 있었다.

임서율은 그날을 떠올리면 아직도 피가 거꾸로 솟고 심장이 쿵쿵거렸다.

‘차주헌, 나는 널 붙잡을 생각 없어. 내 자존심을 짓밟아가면서 너를 붙잡는 짓, 나는 안 해. 네 세상에서 깔끔하게 사라져 줄 거야.’

임서율은 미리 준비해둔 이혼합의서를 고이 접어 예쁜 상자 안에 넣었다. 그러고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이만 집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런데 그때 익숙한 차 한 대가 그녀 바로 옆에 멈춰 섰다.

차주헌은 긴 다리를 뻗으며 차에서 내리더니 빠르게 다가와 수화를 써서 말했다.

“미안, 내가 좀 늦었지. 그런데 백화점 안에서 기다리라니까 왜 밖에 나와 있어. 안 추워?”

그는 속상하다는 듯한 얼굴로 임서율의 두 손을 꼭 잡으며 자신의 온기를 나눠주었다.

“빨리 차로 가자.”

임서율은 차주헌의 뒤를 따라가며 이를 꽉 깨물었다. 심장이 꼭 날카로운 무언가에 의해 찔린 것처럼 숨이 막힐 것 같았다.

그녀는 사랑이라는 게 생각보다 고결하지 않고 생각보다 빨리 식는 감정이라는 걸 그 사랑이 다 끝나가는 순간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차로 돌아온 차주헌은 임서율에게 안전벨트를 매주다가 그녀의 무릎에 놓인 상자를 발견하고는 손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그건 뭐야?”

임서율은 금방 터질 듯한 속마음을 애써 억누르며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내가 준비한 우리 결혼기념일 선물.”

차주헌은 그 말에 미소를 짓더니 손을 뻗어 상자를 열어보려고 했다.

“잠깐만.”

그런데 그때 임서율이 그의 손을 덥석 잡으며 제지했다.

“지금은 안 돼. 이건 기념일 당일에 열어야 해.”

차주헌은 안에 든 내용물이 무척 궁금했지만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랑스러운 생명체를 만지듯 그녀의 콧방울을 살짝 꼬집었다.

“알겠어. 기념일에 열어볼게. 그럼 이제 웨딩 사진 찍으러 갈까?”

“그래.”

“율아, 나는 드레스를 입은 네 모습이 얼마나 예쁠지 벌써 기대돼. 나중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돼서 오늘을 떠올리면 가슴이 찡하겠다. 그렇지 않아?”

임서율은 아무 말 없이 그저 미소만 지었다. 두 사람에게 펼쳐질 미래 같은 것이 있을 리가 없었다.

‘차주헌, 그 상자를 열었을 때 어떤 표정을 지을지... 그게 더 궁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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