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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novel oleh 홍피코

이혼 전 금욕주의

이혼 전 금욕주의

“이혼할 때까지, 섹스도 하지 말죠.” 사랑 없는 결혼은 쉬웠다. 섹스 없는 결혼은 그렇지 않았다. 정략결혼 3년 차, 한서인은 남편 권재하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서로의 조건이 맞았고, 몸도 잘 맞았다. 사랑이 없었으니 끝내는 것도 쉬울 줄 알았다. 문제는 이혼 발표까지 남은 두 달. 같은 집에서 살고, 밖에서는 여전히 부부여야 한다. 달라진 건 단 하나, 서로를 더는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는 것. 그런데 하지 않기로 한 순간부터, 3년 동안 아무렇지도 않았던 남편이 자꾸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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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17화
서인은 휴대전화 알람이 울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익숙하지 않은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몇 초쯤 지나서야 자신이 재하의 침실에서 잠들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옆자리는 비어 있었고, 재하가 일어난 지 꽤 됐는지 이불도 정리되어 있었다. 휴대전화로 시간을 확인하니 평소보다 조금 늦게 일어났지만 출근 준비에는 지장이 없었다. 밤새 한 번도 깨지 않고 잤는데도 몸이 개운하지 않았다. 서인은 침대에서 내려와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재하가 식탁에 앉아 있었다. 커피를 마시며 태블릿으로 무언가를 확인하던 그가 서인을 발견하고 화면을 껐다. “일어났어요?” “네.” “좀 더 쉬지 그래요.” “출근해야죠.” 서인은 맞은편에 앉았다. 식탁에는 토스트와 과일, 커피가 준비되어 있었다. 서인은 입맛이 없어 토스트만 집어 들었다. “오늘도 늦겠네요.” “아마요. 은행 쪽에서 연락이 올 수도 있고, 건설 쪽도 아직 정리가 안 돼서.” 재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인은 토스트를 반쯤 먹다가 내려놓았다. “그게 다예요?” “아침엔 원래 많이 안 먹잖아요.” “어제도 제대로 못 챙겨 먹었을 거 아니에요.” “점심은 잘 챙겨 먹을게요.” 재하는 더 권하지 않았다. 식사를 마친 뒤 두 사람은 함께 현관을 나섰다. “서인 씨.” “네?” “데려다줄까요?” “괜찮아요. 기사님 와 계세요.” 재하는 서인이 차에 오르기 전 한마디 덧붙였다. “무리하지 마요.” “그럴게요.” 서인은 평소처럼 인사하고 차에 올랐다.*** 한성 본사에 도착하자마자 서인은 전날 채권단 회의에서 추가로 요구받은 자료부터 검토했다. 은행에서는 아직 대출 연장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고, 한성건설의 일부 현장은 공사가 재개됐지만 다른 현장에서는 협력업체와의 협의가 계속되고 있었다. 전날 급하게 제출했던 자금 계획에서도 수정할 부분이 발견돼 재무팀이 아침부터 다시 자료를 정리하는 중이었다. 오전 회의가 끝나자 주거래은행에서 건설 계열사의
Terakhir Diperbarui: 2026-10-23
Chapter: 116화
서인은 회의실에 들어가기 전 화장실에 들러 찬물로 손을 씻었다. 거울 속 얼굴이 평소보다 창백했다. 밤새 회사에 있었으니 당연했다. 화장을 고치려고 파우치를 꺼냈다가 다시 가방에 넣었다. 지금 와서 화장을 조금 고친다고 피곤한 얼굴까지 감출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상무님, 채권단 측 참석자들 도착했습니다.” “네. 바로 갈게요.” 서인은 손을 닦고 화장실을 나왔다. 회의실에는 주거래은행을 비롯한 주요 채권 금융기관 관계자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한성 측에서는 한정호 회장과 재무 담당 임원들이 참석했다. 서인은 전날 밤부터 여러 번 수정한 자료를 앞에 놓았다. 회의는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지난주 금요일에 가압류 결정까지 났는데, 어제 언론 보도가 나오기 전까지 본사에서도 파악하지 못했다는 겁니까?” “건설 계열사에서 보고를 누락했습니다. 현재 전체 현장의 미지급 내역을 다시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럼 다른 계열사에서도 같은 일이 없다고 어떻게 확신합니까?” 서인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실제로 다른 계열사에도 같은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는 중이었다. 은행 측 관계자가 자료를 덮었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 조건대로 대출을 연장하기는 어렵습니다.” 한정호가 입을 열었다. “어렵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한성하고 거래한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지금 와서 전부 회수하겠다는 겁니까?” “회장님, 저희도 내부 심사 절차가 있습니다.” “그 절차라는 거, 지금까지는 없었습니까?” 한정호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서인이 자료를 앞으로 밀었다. “이번 주 만기 건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서인은 가압류된 공사대금 30억 원을 제외하고, 대출 연장이 지연되는 경우까지 반영한 수정 자금 계획을 설명했다. 주거래은행 담당자가 자료의 한 부분을 짚었다. “이 부족분은 어떻게 충당하실 계획입니까?” “계열사별 가용 자금과 회수 예정 채권을 다시 확인하고 있습니다. 단기 조달이 가능한 금융기관과도 협의 중이고요.” “아직 확
Terakhir Diperbarui: 2026-10-23
Chapter: 115화
“상무님, 급하게 확인하셔야 할 게 있습니다.” 서인은 출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재무팀장의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에요?” “한성건설 쪽에 가압류가 들어왔습니다. 조금 전에 기사까지 나왔고요.” 서인은 노트북을 열었다. 경제면 상단에 한성그룹의 이름이 걸려 있었다. [단독] 한성건설 하도급대금 미지급…공사대금채권 가압류에 부도설 확산 한성건설이 협력업체에 공사대금을 지급하지 못했고, 해당 업체가 한성건설이 발주처에서 받을 공사대금채권에 신청한 가압류가 법원에서 받아들여졌다는 내용이었다. 다른 현장에서도 대금 지급이 지연되고 있다는 증언까지 실려 있었다. “가압류 결정이 언제 났어요?” “지난주 금요일입니다.” “그런데 왜 이제 보고해요?” “건설 쪽에서 협력업체와 협의 중이라며 보고를 미뤘답니다.” 서인은 기사를 끝까지 읽었다. “가압류 대상 채권부터 확인하세요. 지급 기한이 지난 미지급금도 현장별로 전부 정리하고요. 건설 대표님하고 재무·법무 담당자들 열 시까지 회의실로 들어오시라고 하세요.” 전화를 끊자마자 비서가 문을 두드렸다. “상무님, 회장실에서 올라오시랍니다.” “열 시에 긴급회의 잡았어요. 자료 준비해 주세요.” 서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 한정호는 회장실에서 누군가와 통화 중이었다. “가압류가 들어올 때까지 대체 뭘 하고 있었어! 그런 걸 보고라고 올린 거야, 지금?” 서인이 들어서자 한정호는 손짓으로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됐어. 당장 본사로 들어와!” 전화를 끊은 한정호가 휴대전화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가압류까지 들어왔는데, 그걸 이제야 보고했다는 게 말이 돼?” “저도 방금 보고받았어요. 열 시에 건설 대표 들어오기로 했고요.” “은행에서도 전화가 왔어. 기사에 나온 게 사실이냐고.” 한정호가 책상을 내리쳤다. “그놈들은 회사가 망할 때까지 입 다물고 있을 작정이었대냐?” “다른 현장도 같은 문제가 있는지 확인해야 해요. 우선 전체 미지급금부터 파악할게요.” “문제가
Terakhir Diperbarui: 2026-10-22
Chapter: 114화
서인은 재하를 바라보다 사뭇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무슨 일 있으세요?” “왜요?” “갑자기 식사를 하자고 하시니까요. 어떤 일 때문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재하가 웃었다. “회의 관련해서 후속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마침 식사 시간이기도 하고요.” “아, 그러세요?” “곤란하십니까?” 서인은 결국 웃었다. “아뇨. 좋아요. 가죠.” 재하가 먼저 회의실 문을 열었다. 서인은 가방을 챙겨 그의 뒤를 따랐다. 우진 본사 밖은 점심을 먹으러 나온 직장인들로 붐비고 있었다. 서인은 재하와 나란히 걸으며 물었다. “어디 가는데요?” “최고급 접대 코스로 모시겠습니다.” “기대할게요.” 십 분쯤 걸어 도착한 곳은 큰길에서 한 블록 들어간 골목의 작은 돈가스집이었다. 오래된 간판 아래로 점심을 먹는 손님들이 보였고, 유리문에는 손으로 쓴 영업시간 안내가 붙어 있었다. 서인은 간판을 올려다보다 재하를 돌아봤다. “여기요?” “네.” “최고급 접대 코스라면서요.” “맞는데요.” 재하가 문을 열어주자 서인은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식당은 근처 회사원들로 거의 가득 차 있었다. 두 사람은 안쪽에 남은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재하 씨가 이런 데도 오는구나.” “왜요?” “그냥요. 조금 의외라서.” “직원들이 맛집이라고 추천해 줬어요.” 메뉴판에는 돈가스와 치즈 돈가스, 생선가스 정도가 적혀 있었다. 두 사람은 기본 돈가스를 주문했다. 잠시 후 수프가 나오고, 이어 큼직한 접시에 돈가스와 밥, 양배추 샐러드가 담겨 나왔다. 서인은 돈가스를 한 조각 잘라 입에 넣었다. 바삭한 튀김옷 아래로 고기가 부드럽게 씹혔다. 재하가 돈가스를 자르며 말했다. “전에 여기서 먹으면서 서인 씨 생각이 났어요.” 서인이 고개를 들었다. “왜요?” “입맛에 맞을 것 같아서.” 서인은 돈가스를 한 조각 더 잘라 먹었다. “제 입맛을 잘 아시네요.” 재하가 웃었다. 식사가 어느 정도 진행됐을 때 서인이 오전 회의 이야기를 꺼냈
Terakhir Diperbarui: 2026-10-22
Chapter: 113화
재하는 회의실에 앉아 이촌동 복합개발 사업 보고서를 검토하고 있었다. 지난주 실무 협의에서 수정된 내용을 확인하고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을 때, 비서가 다가왔다. “한성 측 참석자분들 모두 도착하셨습니다.” “들어오시라고 하세요.” 재하는 보고서를 덮었다. 곧 회의실 문이 열리고 참석자들이 차례로 들어왔다. 먼저 들어온 담당자들과 인사를 나누던 재하는 뒤따라오는 서인을 발견했다. 짙은 회색 재킷에 검은 슬랙스 차림이었다. 한 손에는 노트북을, 다른 손에는 서류가 든 파일을 들고 있었다. 서인이 맞은편 자리에 앉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네, 한 상무님.” 아침까지만 해도 자신을 재하 씨라고 부르던 여자였다. 그런데 이렇게 마주 앉아 존칭을 주고받고 있으니, 재하도 조금 우스워졌다. 그는 입가에 옅은 웃음을 남긴 채 회의실 앞의 스크린을 확인했다. 그사이 참석자들이 자리를 잡고 노트북을 켰다. “그럼 시작하시죠.” 회의실 조명이 어두워지고 화면에 첫 번째 자료가 올라왔다. 회의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우진 측 담당자가 지난 회의 이후 조율된 사항을 보고했고, 한성 측에서는 추가 검토 결과를 설명했다. 사업 일정과 운영사 선정, 양사 간 비용 분담에 관한 내용이 차례로 이어졌다. 재하는 보고를 들으며 필요한 부분을 확인했다. 아직 합의되지 않은 항목은 추가 검토를 지시했고, 일정이 겹치는 부분은 우선순위를 다시 잡도록 했다. 서인도 중간중간 질문을 던졌다. “운영사 선정 전에 수익 배분 기준부터 확정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지금 안대로면 수정할 때마다 검토를 다시 해야 해서요.” 한성 측 담당자가 준비한 자료를 넘겼다. “그 부분은 저희도 같은 의견입니다. 수정안에 반영해두었습니다.” “그럼 그 기준으로 우진 측에서도 검토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서인이 맞은편을 바라봤다. 재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죠. 수정안 먼저 공유해 주세요.” “네, 대표님.”
Terakhir Diperbarui: 2026-10-21
Chapter: 112화
서인은 재하를 올려다봤다. 재하는 대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서인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 웃었다. “아뇨.” “…….” “나도 좋아요. 요즘.” 재하는 잠시 그녀를 내려다봤다. “그럼 됐어요.” 서인은 다시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창밖으로 놀이공원의 불빛이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관람차가 내려가는 동안 두 사람은 더 이야기하지 않았다. 밖은 어느새 어두워져 있었다. 길을 따라 조명이 켜져 있었고, 광장 너머에서는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서인이 고개를 돌리자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퍼레이드 하나 봐요.” 재하도 그쪽을 바라봤다. “보고 갈까요?” “그래요.” 두 사람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쪽으로 걸었다. 퍼레이드가 지나가는 길 양쪽에는 이미 관람객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앞줄에는 아이들이 앉아 있었고, 그 뒤로 사람들이 서 있었다. 서인과 재하도 조금 뒤쪽에 자리를 잡았다. 잠시 뒤 음악이 커지면서 광장의 조명이 어두워졌다. 길 끝에서 수백 개의 전구를 두른 차량이 모습을 드러냈다. 형형색색의 의상을 입은 무용수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었고, 아이들이 손을 흔들자 그들도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화려한 차량들이 차례로 지나가고 마지막 음악이 끝나자 관람객들도 하나둘 흩어지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볼 게 많네요.” “그러게요.” 두 사람은 사람들의 흐름에 섞여 출구 쪽으로 걸었다. 낮에 지나왔던 길이었지만 가게마다 조명이 켜져 있었고, 회전목마에서는 여전히 음악이 흘러나왔다. 출구가 가까워질수록 놀이기구의 소리도 멀어졌다. 서인은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봤다. 멀리서 관람차가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다. *** 주차장에 도착하자 서인은 조수석에 앉아 신발부터 내려다봤다. 하루 종일 돌아다녔더니 발이 꽤 아팠다. 재하가 운전석에 앉으며 물었다. “피곤해요?” “조금요.” 서인은 안전벨트를 매고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차가 주차장을 빠져나오자 창밖으로 놀이공원의 조명들이 스쳐 지나갔다. 서인은 휴대전화
Terakhir Diperbarui: 2026-10-21
다정한 지옥

다정한 지옥

십 년 전, 윤이재는 연쇄살인사건에서 홀로 살아남았다. 피로 물든 집에서 그녀를 찾아낸 사람은 스물다섯의 형사, 강태혁이었다. 그리고 십 년 후. 다 잊었다고 생각한 이재 앞에 그가 다시 나타났다. “십 년 전과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죽은 범인. 다시 시작된 사건. 그리고 하필 지금, 자신을 찾아온 강태혁. 이상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를 다시 만난 순간부터, 끝난 줄 알았던 그날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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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76화
이재는 잠시 태혁을 바라봤다. “네.”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태혁이 이재를 끌어안았다. 숨이 막힐 만큼 세게. 이재도 그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익숙한 체온과 향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반년이나 지났는데 몸은 너무 쉽게 기억해냈다. 이재는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태혁 씨.” “네.” “좀 세요.” 팔에 들어간 힘이 조금 풀렸다. “미안합니다.” 이재가 태혁의 셔츠를 움켜쥐었다. “놓으라는 건 아닌데.” 잠시 멈췄던 팔이 다시 등을 감쌌다. 이번에는 조금 덜 세게. 이재가 웃었다. “말 잘 듣네.” “그래야 될 것 같아서.” “이제 와서요?” “늦었습니까?” 이재는 대답 대신 고개를 들었다. 시선이 마주쳤다. 가까웠다. 태혁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재가 먼저 발끝을 들어 입을 맞췄다. 짧게 닿았다 떨어졌다. 태혁은 한동안 이재를 바라보기만 했다. “왜요.” “…….” “뭐 할 말 있어요?” 태혁의 시선이 천천히 내려갔다. 방금 닿았던 입술에 머물렀다. “아닙니다.” 이번에는 이재가 웃었다. “아까부터 자꾸 아니래.”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태혁이 고개를 숙였다. 입술이 다시 맞닿았다. 이번에는 짧지 않았다. 반년 동안 참았던 시간을 한꺼번에 되찾으려는 것처럼 몇 번이고 입술이 겹쳤다. 이재의 손이 그의 어깨를 감싸자 허리를 끌어당기는 팔에도 힘이 들어갔다. 숨이 흐트러졌다. 입술이 떨어졌다가 다시 닿았다. 그 사이 이재는 몇 번이나 웃었다. 태혁도 그때마다 따라 웃었다. 겨우 입술이 떨어졌을 때 이재가 그의 턱을 만졌다. 까슬했다. “따가워.” “아까 깎고 온다고 했잖아요.” “그러게요.” “지금이라도 깎고 올까요?” 이재가 피식 웃었다. “지금은 됐어요.” “마음대로네.” “원래 그랬잖아요.” 태혁도 작게 웃었다. 그 얼굴을 보자 이재는 괜히 한 번 더 입을 맞췄
Terakhir Diperbarui: 2026-09-28
Chapter: 75화
태혁은 잠시 이재를 바라보다 한 걸음 옆으로 비켜섰다. “네.” 이재가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고, 익숙한 현관에 둘만 남았다. 구두를 벗던 이재가 발밑을 봤다. 없었다. 예전에 자신의 슬리퍼가 놓여 있던 자리에는 태혁의 것만 남아 있었다. 반년이나 지났으니 당연했다. 이재가 맨발로 올라서려는데 태혁이 신발장을 열었다. “잠깐.” 안쪽에서 슬리퍼 한 켤레를 꺼냈다. 분홍색. 이재의 슬리퍼였다. 태혁은 아무렇지 않게 바닥에 내려놓았다. “신어요.” 이재가 슬리퍼를 내려다봤다. “안 버렸네요.” “네.” “왜요?” 태혁이 신발장 문을 닫았다. “버릴 이유가 없어서.” 이재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 슬리퍼에 발을 넣었다. 반년 만이었다. *** 집은 기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소파도, 식탁도 그대로였다. “뭐 마실래요?” “물.” 태혁이 주방으로 향하다 돌아봤다. “얼마나 마셨어요?” “쪼금.” “……쪼금?” “네.” 태혁이 이재를 가만히 봤다. “그 쪼금 때문에 반년 만에 남의 집까지 온 겁니까?” 이재의 눈이 가늘어졌다. “남의 집?” 태혁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 이재가 발끝을 내려다봤다. “슬리퍼까지 꺼내주고?” “…….” “남의 집이었구나.” 태혁은 더 대꾸하지 않고 주방으로 향했다. “물이나 마셔요.” 이재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여전했다. 태혁이 물을 가져왔다. 이재는 잔을 받아 들고 소파에 앉았다. 태혁도 조금 떨어진 옆자리에 앉았다. 한동안 말이 없었다. 반년 만인데 막상 얼굴을 보고 있으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이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잘 지냈어요?” “네.” “태혁 씨는요?” “저도요.” 이재는 물을 한 모금 마시며 그의 얼굴을 살폈다. “살 빠졌어요?” “조금.” “바빴나 보네.” “네.” 시선이 턱에 멈췄다. “수염도 기르고.” 태혁이 턱을 한번 쓸었다. “기른 거 아니에요. 오늘 안 깎은 겁니다.” “다행이다
Terakhir Diperbarui: 2026-09-26
Chapter: 74화
첫눈이 온 지도 며칠이 지났다. 잠깐 내려앉았던 겨울은 거짓말처럼 물러갔다. 기온은 다시 올랐고, 길가에 남았던 눈도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전부 녹았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 즈음이었다. “대리님.” 다은이 파티션 너머로 얼굴을 내밀었다. 표정부터 수상했다. “왜요.” “제가 저번에 추천한 영화 있잖아요.” “왜요. 환불해주게요?” “그거 평점 난리 났대요. 그래서 영화관에서도 거의 다 내렸잖아요.” “잘됐네요.” “그래서 약간 사죄의 의미로.” 다은이 두 손을 모았다. “오늘 저녁 제가 살게요.” 이재가 눈을 가늘게 떴다. “밥을요?” “네.” “영화표보다 비싼데?” “대신 술은 대리님이 사주셔야 돼요.” “그럼 사죄가 아니잖아요.” 다은이 웃었다. “싫으세요?” 이재는 잠시 생각했다. “좋아요.” “진짜요?” 다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 바로 예약해요.” “업무 보고 보내는 거 잊지 말고.” “아.” 다은이 다시 얌전히 앉았다. “네.” 이재가 웃으며 다시 모니터를 보려는데 휴대전화가 짧게 울렸다. 비서실이었다. [회장님께서 잠시 뵙고 싶다고 하십니다.] 이재는 메시지를 확인했다. “다은 씨.” “네?” “먼저 내려가 있어요. 금방 갈게요.” “넵.” *** 회장실 문을 열자 윤정호가 서류에서 눈을 들었다. “왔니.” “네.” 이재가 맞은편에 앉자 윤정호가 서류 하나를 앞으로 밀었다. “다음 달 싱가포르 건이다.” 이재는 서류를 펼쳤다. 신규 호텔 운영사와의 협의 일정이었다. 자신이 몇 달 전부터 맡아온 프로젝트였다. “일정이 길어질 것 같더구나.” “네. 현지에서 최종 협의까지 하면 일주일 정도 예상하고 있어요.” 윤정호가 이재를 바라봤다. “네가 직접 갈 생각이니?” 이재의 손이 서류 위에서 멈췄다. 예전 같았으면 이미 결정되고도 남았을 일이었다. 네가 갈 필요 없다. 다른 사람을 보내겠다. 그렇게 통보하고 끝났을 것이다. 요즘은 달랐다.
Terakhir Diperbarui: 2026-09-23
Chapter: 73화
“대리님.” 다은의 목소리에 이재가 모니터에서 눈을 뗐다. 다은은 대답 대신 창밖을 가리켰다. “우와!” 사무실 여기저기에서 비슷한 탄성이 터졌다. 이재도 창밖을 봤다. 통유리 너머로 하얀 눈이 하나둘 떨어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유리에 닿자마자 녹아 없어지던 것이 어느새 제법 눈에 보일 만큼 많아졌다. 다은은 벌써 휴대전화를 들고 창가로 달려갔다. “첫눈이에요.” “아.” “반응이 왜 그래요?” 이재는 창밖을 한 번 더 봤다. “오늘 운전 어떻게 하지.” “…….” “길 막히겠네.” 다은이 혀를 찼다. “진짜 낭만 없다.” “눈이잖아요.” “첫! 눈이잖아요.” 이재는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메일 한 통을 마저 쓰고 전송 버튼을 눌렀다. 회의가 하나 있었고, 수정해야 할 보고서가 두 개 생겼다. 첫눈이라고 별일이 생기는 건 아니었다. 오후가 저물수록 눈발은 조금씩 굵어졌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 즈음에는 맞은편 건물의 불빛 사이로 흰 눈이 선명하게 보였다. 이재가 노트북을 덮고 코트를 입자 다은이 물었다. “대리님 오늘 바로 집 가세요?” “그래야죠.” “첫눈이 온 날인데요?” 이재가 가방을 들었다. “그러니까 더 빨리 가야죠.” “와.” 다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진짜 심하다.” 이재는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 봐요.” “네. 운전 조심하세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며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특별한 연락은 없었다. 주차장으로 내려가 차에 탔다. 시동을 켜자 내비게이션에 집까지 40여 분이 찍혔다. 평소보다 10분 정도 더 걸리는 수준이었다. 이재는 잠시 화면을 보다가 기어를 넣었다. 집으로 향하던 차는 두 번째 교차로에서 방향을 바꿨다. 딱히 이유는 없었다. 왠지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은 밤이었다. *** 큰맘 먹고 본 영화치고 내용은 그저 그랬다. 단지 슬픈 영화라서는 아니었다. 러닝타임 내내 사람을 그렇게 고생시켜놓고 마지막까지 불행한 건 좀
Terakhir Diperbarui: 2026-09-21
Chapter: 72화
이재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기다리라고 하기에는 미안했고, 기다리지 말라고 하기에는 마음에 남은 게 너무 많았다. 좋아하지 않아서 떠나는 게 아니었다. 그 반대라서 어려웠다. “기다리지 마요.” 태혁의 눈이 아주 조금 흔들렸다. 이재는 그걸 보고도 말을 바꾸지 않았다. 한참 뒤 태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날 밤은 이상하리만큼 평범하게 지나갔다. 태혁은 거실에서 잤고, 이재는 침대에 누웠다. 처음 이 집에서 잤던 밤처럼 문을 열어두지도 않았다. 불을 끄고 눈을 감았다. 잠이 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금방 잠들었다. *** 다음 날 아침. 이재가 캐리어를 끌고 나오자 태혁은 이미 현관 앞에 서 있었다. 칫솔도, 화장품도, 옷도 전부 캐리어 안에 들어 있었다. 이재가 신발을 신는 동안 태혁이 손잡이를 가져갔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이재는 말리지 못했다. 복도로 나오자 캐리어 바퀴가 낮게 굴렀다.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한 태혁이 버튼을 눌렀다. 둘 사이에 캐리어 하나가 놓였다. 이재는 내려오는 숫자를 바라보다 괜히 옷소매 끝을 만지작거렸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문이 열리자 태혁이 캐리어를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재가 뒤따라 들어서려는데 태혁은 손잡이를 놓지 않았다. “정말 안 데려다줘도 돼요?” “네. 경호팀이 밑에서 기다린대요.” 태혁은 잠시 그대로 서 있었다. 그러다 천천히 손을 놓았다. “알았어요.” 이재가 안으로 들어섰다. 태혁은 문밖으로 물러났다. 닫힘 버튼을 누르지 않았는데도 문은 알아서 움직였다. “도착하면…….” 태혁이 말을 멈췄다. 이재가 고개를 들었다. 몇 초쯤 그렇게 서로를 보고 있었다. 무슨 말을 삼킨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연락해요.” 이재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태혁의 표정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더 읽기 어려웠다.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네.” 문이 천천히 닫히기 시작했다. 좁아지는 틈 사이로 태혁이 보였
Terakhir Diperbarui: 2026-09-21
Chapter: 71화
태혁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잠깐의 침묵이 이상하게 길었다. “십 년 전부터 의심했습니다.” 이재의 눈이 조금 커졌다. “십 년 전부터요?” “네.” “그때부터 아빠가 표적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네.” 대답은 짧았다. 이재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걸 확신하게 된 건 언제예요?” 이번에는 대답이 늦었다. “……며칠 전입니다.” 며칠 전. 이재는 가만히 태혁을 바라봤다. “그럼 내가 세림호텔 얘기 물어봤을 때는요?” 태혁의 시선이 멈췄다. “그때도 이미 확인한 뒤였어요?” 잠시 후 대답이 돌아왔다. “……네.” 차 안에서 자신이 물었다. 왜 하필 우리 호텔일까요. 그때 태혁은 확인할 게 있다고 했다. 확인되면 말해주겠다고. 그보다 전에는 서진우의 아버지가 세림호텔에서 일했다는 사실을 자신이 먼저 알아냈다. 그때도 물었다. 지금도 아무 연결이 없느냐고. 태혁은 다시 확인하고 있다고 했다. 이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럼 그때 다시 확인하고 있다고 한 건…….” “김현석하고 현재 사건이 어디까지 연결돼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는 뜻이었어요.” “아빠가 서진우의 표적이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고요.” “……네.” 이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화가 날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머릿속은 차분했다. “왜 말 안 했어요?” 태혁의 입술이 굳었다. “김현석 쪽도 더 확인해야 했고, 지금 사건과 어디까지 연결되는지 확실하지 않았어요.” “그게 다예요?” 대답이 없었다. 이재가 그를 바라봤다. “내가 알면 힘들까 봐요?” 태혁은 끝내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네.” 이재는 그 대답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낯설지 않은 말이었다. 오늘 아침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아빠도 그렇게 말했어요.” “…….” “내가 알아서 좋을 게 없다고.” 태혁의 표정이 굳었다. “아빠는 오늘 나한테 거짓말했어요.” 서진우가 자신을 찾아오겠다고 직접 연락했다는 걸 숨긴 채, 몰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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