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화. 당신이 나를 보내버린 이유“검사 결과가 뭐였는데?”수진은 태현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봤다.태현은 한참 동안 대답하지 않았다.카페 안에는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누군가는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누군가는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었다.그 평범한 소음 속에서 수진은 태현의 대답만 기다렸다.“정확한 결과가 바로 나온 건 아니었어.”태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추가 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고.”“그래서?”“…의사가 좋지 않은 가능성도 있다고 했어.”수진의 표정이 굳었다.“좋지 않은 가능성?”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응.”“그게 뭔데?”그는 입술을 다물었다.수진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이태현. 뭔데?”태현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그리고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종양 가능성이 있다고 했어.”수진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뭐?”“그때는 확정이 아니었어. 정밀검사도 더 필요했고.”태현이 급하게 덧붙였다.“의사가 가능성을 이야기한 거였어.”수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종양.그 단어가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어디에?”태현은 시선을 내렸다.“정확한 건 검사로 확인해야 한다고 했어. 위치도 좀 애매하다고 했고.”수진은 테이블 아래에서 주먹을 꽉 쥐었다.이혼하기 일주일 전, 태현은 회사에서 쓰러졌다.그리고 자신이 이혼을 말하던 날, 병원에서 그런 이야기를 듣고 돌아왔다는 뜻이었다.그런데도 태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래서.”수진의 목소리가 떨렸다.“그래서 나 안 붙잡았어?”태현이 고개를 들었다.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긴 침묵 끝에 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응.”수진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웃었다.“미친놈.”태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진짜 미쳤어?”수진의 눈가가 뜨거워졌다.“그게 이유였어? 아플 수도 있으니까?”“그때는 내가 어떻게 될지 몰랐어.”태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검사 결과를 듣고 나니까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무것도 모르겠더라.”“그래서?”“네가 이미 나 때문에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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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화 . 1년 만에 다시 만난 사람심장이 크게 뛰었다.“…만날래?”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태현의 목소리.수진은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1년 만이었다.영상도 아니고, 전화도 아닌.직접 만나자는 말.“수진아.”태현이 다시 불렀다.“나, 직접 말하고 싶어.”수진은 계단 창문 너머를 바라봤다.평범한 오후였다.사람들은 바쁘게 걸어가고, 가로수는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세상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흘러가는데, 자신의 일상만 다시 뒤집히고 있었다.“오늘.”수진이 입을 열었다.“…응?”“오늘 저녁에 만나.”태현의 숨소리가 멈췄다.“한 시간만이야.”“알겠어. 갈게.”“내가 장소 보내줄게.”전화를 끊으려는 순간, 태현이 조용히 말했다.“수진아.”“왜.”“…고마워.”수진은 입술을 깨물었다.“고마워하지 마. 나 아직 엄청 화났으니까.”“알아.”“그리고 오늘 다 말해.”“…응.”“숨기는 거 없이.”잠깐의 침묵 끝에 태현이 대답했다.“알겠어.”통화가 끝났다.수진은 한참 동안 휴대폰을 내려다봤다.자신이 무슨 선택을 한 건지 알 수 없었다.다만 오늘만큼은, 더 이상 영상 속 목소리로 그의 진심을 듣고 싶지 않았다.약속 시간은 저녁 7시.수진은 6시 52분에 카페에 도착했다.평소에도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하는 편이었다.그러니 특별한 의미는 없었다.그렇게 스스로에게 말하며 문을 열었다.하지만 창가 안쪽에 앉아 있는 남자를 발견한 순간, 발걸음이 멈췄다.이태현.검은 셔츠에 회색 재킷.테이블 위에는 커피 두 잔이 놓여 있었다.1년 만에 직접 보는 얼굴이었다.영상에서는 잘 몰랐는데, 태현은 생각보다 많이 말라 있었다.예전보다 날카로워진 턱선.조금 창백한 얼굴.한때 어깨에 꼭 맞았던 셔츠도 이제는 약간 헐렁해 보였다.수진은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그때 태현이 고개를 들었다.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몇 초 동안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건 태현이었다.“왔네.”그 한마디가 이상하게 낯설었다.예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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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화 . 그날 나를 붙잡지 않은 이유휴대폰이 계속 울렸다.이태현.화면에 떠 있는 이름이 낯설었다.1년 동안 한 번도 울리지 않았던 번호였다.수진은 받지 않았다.벨이 멈추자 겨우 숨을 내쉬었다.그런데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이번에도 받지 않았다.잠시 후 문자가 도착했다.[미안.][너 말대로 직접 하려고 했어.]수진은 입술을 깨물었다.왜 하필 지금일까.왜 1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이제 와서 자신을 흔드는 걸까.한참을 망설이던 수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회사 건물 뒤편 비상계단.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 휴대폰을 꺼냈다.그리고 직접 전화를 걸었다.신호음이 한 번 울리기도 전에 태현이 받았다.“…여보세요.”1년 만에 듣는 진짜 목소리였다.영상에서 들었을 때와는 달랐다.너무 가까웠다.수진은 잠시 말을 잃었다.태현도 아무 말이 없었다.먼저 침묵을 깬 건 태현이었다.“…수진아.”“내 이름.”“…응.”“영상에서 왜 말했어?”태현이 숨을 들이마셨다.“실수였어. 편집할 생각이었는데….”“그럼 편집했어야지.”“…미안해.”“사과하면 끝이야?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하고 있어.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면서.”전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영상은 내릴게.”“그게 전부가 아니잖아.”수진의 목소리가 떨렸다.“처음부터 왜 그런 영상을 만들었는데?”태현은 한참 뒤 대답했다.“말하고 싶었어.”“누구한테?”“…너한테.”수진은 허탈하게 웃었다.“그럼 나한테 연락했어야지.”“….”“1년 동안 전화 한 번이라도 했어야지.”태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 침묵이 수진을 더 화나게 했다.“넌 항상 그랬어. 중요한 순간에는 아무 말도 안 했잖아.”수진의 눈앞에 이혼하던 날이 떠올랐다.자신이 그만하자고 말했을 때.태현은 붙잡지 않았다.“난 네가 하나도 안 힘든 줄 알았어.”“…수진아.”“내가 이혼하자고 했을 때도 너무 아무렇지 않아 보였으니까.”목이 잠겼다.“한 번도 안 붙잡았잖아.”긴 침묵 끝에 태현이 대답했다.“…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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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화 . 1년 만에 온 연락[영상 봤어?]휴대폰 화면에 떠 있는 다섯 글자.윤수진은 한참 동안 그 문자를 바라봤다.답장을 보내거나 번호를 차단할 수도 있었다. 아무것도 보지 않은 척 휴대폰을 뒤집어 놓을 수도 있었다.하지만 어느 것도 하지 못했다.이혼한 지 1년하고도 17일.그동안 이태현에게 연락이 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생일에도, 명절에도, 술에 취해 문득 서로가 생각났을 법한 밤에도.그들은 철저하게 남남으로 살았다.그런데 이제 와서.수백만 명이 보는 영상에서 자신의 이름을 불러 놓고, 태현은 아무렇지도 않게 물었다.영상 봤어?수진은 답장 창을 열었다.[봤어.]잠시 바라보다 지웠다.[왜 그랬어?]그것도 지웠다.[내 이름을 왜 말했는데.]끝내 전송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대리님.”옆에서 박지현이 조심스럽게 불렀다.“아까 그 영상에 나온 수진이라는 사람….”지현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수진도 대답하지 않았다.잠깐의 침묵.그것만으로 충분했던 모양이었다.“진짜였구나.”수진은 휴대폰을 뒤집었다.“지현 씨.”“네.”“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 줘요.”“당연하죠. 절대 말 안 해요.”지현은 망설이다 다시 물었다.“근데 대리님, 괜찮아요?”수진은 습관처럼 웃으려 했다.하지만 입꼬리가 움직이지 않았다.괜찮았던 것 같았다.적어도 그 영상을 보기 전까지는.“모르겠어요.”수진이 작게 대답했다.점심시간.수진은 구내식당 대신 회사 건물 아래 카페로 향했다.창가 구석에 앉아 커피를 주문했다. 사람이 없는 곳에서 혼자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다.하지만 머릿속에는 온통 태현의 목소리뿐이었다.결국 다시 유튜브를 열었다.[T의 기록][전 아직도 제 전부인을 사랑합니다]조회수 132만 회.업로드된 지 몇 시간도 지나지 않은 영상이었다.댓글은 이미 수천 개를 넘어섰다.[남자 아직 진짜 사랑하네.][저렇게 후회하는데 왜 이혼했을까.][전부인도 영상 봤으면 좋겠다.]처음에는 그저 낯선 사람들의 감상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스크롤을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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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화 . 아직도 사랑한다는 그 남자“끝까지 좋아했습니다.”태현의 목소리가 사무실에 울렸다.수진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좋아했다고?그 말이 그렇게 쉽게 나올 수 있는 말이었나.1년 전,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던 날에도 태현은 끝내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이 부분 진짜 슬프지 않아요?”옆에서 지현이 말했다.수진은 대답하지 못했다.영상 속 태현은 시선을 아래로 내린 채 말을 이어갔다.“저는 제 아내를 많이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좋아하는 사람이 힘들어하는 걸 보면서도 제가 뭘 잘못하고 있는지 몰랐어요.”수진의 눈앞에 오래된 장면이 떠올랐다.밤 11시.불 꺼진 거실에서 혼자 태현을 기다리던 날.“왔어?”“응.”“밥은?”“먹었어.”“오늘도 늦었네.”“미안.”그게 전부였다.함께 사는 부부였지만 하루에 나누는 대화는 점점 짧아졌다.처음에는 기다리는 게 좋았다.그다음에는 서운했고, 나중에는 기다리는 자신이 초라해졌다.“그 사람은 말을 안 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태현이 말했다.“힘들다고, 외롭다고, 우리 왜 이렇게 사느냐고 여러 번 말했어요.”수진은 입술을 깨물었다.“그런데 그때의 저는 그 말을 잔소리라고 생각했습니다.”화면 아래로 댓글이 쏟아졌다.[사랑하는데도 이혼할 수 있구나.][전부인 입장도 궁금하다.][남자 아직 못 잊은 것 같은데.]수진은 댓글을 읽을 수 없었다.태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그리고 어느 날, 아내가 말했습니다.”화면이 검게 바뀌었다.[우리 그만하자.]수진의 심장이 내려앉았다.정확히 자신이 했던 말이었다.그날 수진은 마지막까지 기다렸다.태현이 한 번만 붙잡아 주기를.왜냐고 물어 주기를.가지 말라고 말해 주기를.하지만 태현은 짧게 대답했다.“그래. 네가 원하는 대로 해.”그게 전부였다.그래서 수진은 그가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믿었다.그런데 영상 속 태현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저는 그날 아내를 붙잡고 싶었습니다.”수진의 눈이 커졌다.“정말 미친 사람처럼 붙잡고 싶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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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화. 우리는 그렇게 이혼했습니다이혼한 지 1년이 됐다.정확히는 1년하고도 17일.윤수진은 그 날짜를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잊히지 않았다.결혼기념일은 가끔 헷갈리면서, 이혼한 날짜만큼은 정확하게 기억났다.가장 행복했던 날보다 가장 아팠던 날이 더 오래 남는다는 게 우스웠다.월요일 오전 8시 47분.수진은 출근하자마자 책상 위에 가방을 내려놓았다.회의는 아홉 시 반. 확인해야 할 메일은 열세 통. 수정할 기획안 두 개에 점심 전까지 제출할 보고서까지.평소와 다를 것 없는 하루였다.수진은 그런 일상이 좋았다.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이혼 후 수진이 가장 열심히 만든 건 새로운 사랑이 아니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범한 하루였다.“윤 대리님.”옆자리 박지현이 고개를 내밀었다.“오늘 점심 뭐 먹을까요?”“아무거나요.”“또 아무거나. 윤 대리님이 말하는 아무거나가 제일 어려운 거 알아요?”수진이 피식 웃었다.“그럼 지현 씨 먹고 싶은 거요.”“마라탕!”“그건 빼고요.”“봐요. 아무거나 아니라니까.”별것 아닌 농담에 웃음이 났다.이런 순간이 좋았다. 누군가 과거를 묻지 않고, 왜 이혼했는지 궁금해하지 않는 것.회사에서 수진의 이혼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지현도 이혼했다는 사실만 알 뿐 자세한 사정은 몰랐다.수진은 굳이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결혼했고, 실패했고, 끝났다.그걸로 충분했다.적어도 그날 점심시간 전까지는.“대리님! 이것 좀 봐요.”점심을 먹으러 내려가려던 순간, 지현이 휴대폰을 들고 달려왔다.“뭔데요?”“요즘 엄청 유명한 유튜버요. 이 사람 영상 안 봤어요?”“저 유튜브 잘 안 보잖아요.”“그래도 이건 봐야 돼요. 진짜 영화 같다니까요.”지현이 휴대폰을 수진 앞으로 내밀었다.화면에는 어두운 방에 앉아 있는 남자가 보였다. 얼굴은 선명하지 않았다. 고개를 조금 숙인 옆모습뿐이었다.그 위에 커다란 글자가 적혀 있었다.[우리는 그렇게 이혼했습니다]수진의 시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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