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3화 . 1년 만에 온 연락

Author: 새벽윤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26 15:37:19

[영상 봤어?]

휴대폰 화면에 떠 있는 다섯 글자.

윤수진은 한참 동안 그 문자를 바라봤다.

답장을 보내거나 번호를 차단할 수도 있었다. 아무것도 보지 않은 척 휴대폰을 뒤집어 놓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것도 하지 못했다.

이혼한 지 1년하고도 17일.

그동안 이태현에게 연락이 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생일에도, 명절에도, 술에 취해 문득 서로가 생각났을 법한 밤에도.

그들은 철저하게 남남으로 살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수백만 명이 보는 영상에서 자신의 이름을 불러 놓고, 태현은 아무렇지도 않게 물었다.

영상 봤어?

수진은 답장 창을 열었다.

[봤어.]

잠시 바라보다 지웠다.

[왜 그랬어?]

그것도 지웠다.

[내 이름을 왜 말했는데.]

끝내 전송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대리님.”

옆에서 박지현이 조심스럽게 불렀다.

“아까 그 영상에 나온 수진이라는 사람….”

지현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수진도 대답하지 않았다.

잠깐의 침묵.

그것만으로 충분했던 모양이었다.

“진짜였구나.”

수진은 휴대폰을 뒤집었다.

“지현 씨.”

“네.”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 줘요.”

“당연하죠. 절대 말 안 해요.”

지현은 망설이다 다시 물었다.

“근데 대리님, 괜찮아요?”

수진은 습관처럼 웃으려 했다.

하지만 입꼬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괜찮았던 것 같았다.

적어도 그 영상을 보기 전까지는.

“모르겠어요.”

수진이 작게 대답했다.


점심시간.

수진은 구내식당 대신 회사 건물 아래 카페로 향했다.

창가 구석에 앉아 커피를 주문했다. 사람이 없는 곳에서 혼자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다.

하지만 머릿속에는 온통 태현의 목소리뿐이었다.

결국 다시 유튜브를 열었다.

[T의 기록]

[전 아직도 제 전부인을 사랑합니다]

조회수 132만 회.

업로드된 지 몇 시간도 지나지 않은 영상이었다.

댓글은 이미 수천 개를 넘어섰다.

[남자 아직 진짜 사랑하네.]

[저렇게 후회하는데 왜 이혼했을까.]

[전부인도 영상 봤으면 좋겠다.]

처음에는 그저 낯선 사람들의 감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스크롤을 내릴수록 수진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내가 먼저 이혼하자고 했다며.]

[남편만 불쌍한 거 같은데.]

[저 정도로 사랑하는 사람을 왜 떠났을까.]

수진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영상 속 태현은 자신의 잘못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느새 수진을 판단하고 있었다.

결혼 생활 내내 어떤 일이 있었는지, 수진이 얼마나 외로웠는지 아무도 모르면서.

'당신들이 뭘 안다고.'

수진은 차갑게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미안해.]

태현이었다.

곧이어 문자가 하나 더 도착했다.

[이름 말하면 안 됐어.]

[영상 내릴게.]

수진은 화면을 노려봤다.

이름을 공개하기 전에 한 번만 생각했더라면.

그 수많은 댓글을 자신이 읽게 될 거라고 조금이라도 상상했더라면.

수진은 처음으로 답장을 보냈다.

[왜 이제 와서?]

읽음 표시가 곧바로 나타났다.

[뭐가.]

[왜 이제 와서 이런 걸 하냐고.]

이번에는 답장이 늦었다.

30초.

1분.

2분.

마침내 메시지가 도착했다.

[말 못 했으니까.]

[뭘.]

[그때 못 했던 말들.]

수진은 손끝에 힘을 주었다.

[그래서 수백만 명한테 했어?]

[네가 들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 대답에 화가 치밀었다.

[내가 듣고 싶어 할 거라고 생각했어?]

잠시 후 답장이 왔다.

[아니.]

[그래도 언젠가는 네가 알아줬으면 했어.]

수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여전히 자기 생각뿐이었다.

[나한테 직접 하면 되잖아.]

전송하고 나서야 손가락이 굳었다.

그 말은 마치 지금이라도 직접 이야기하라는 뜻처럼 들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읽음 표시가 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휴대폰 화면이 바뀌었다.

이태현.

전화가 걸려오고 있었다.

수진은 숨을 멈췄다.

1년 만에 처음으로.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atest chapter

  • 이혼했는데, 전남편이 우리 결혼을 폭로했다   10화. 그 우산을 빌려준 사람이 당신이었어?

    오후 3시.태현은 편집실에서 다음 영상 구성을 확인하고 있었다.옆에 앉아 있던 서진우가 노트북 화면을 넘기며 말했다.“형, 이번 영상 반응 좋아요.”“그래?”“네. 사람들이 형이랑 형수님 처음 만났던 이야기 엄청 궁금했나 봐요.”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오늘 올린 영상은 평소보다 짧았다.수진과 처음 만났던 날.그날 자신이 얼마나 긴장했는지, 그녀가 얼마나 밝게 웃었는지.기억나는 대로 이야기했을 뿐이었다.사실 영상을 올리기 전 조금 망설였다.수진이 먼저 보여 달라고 했던 말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그런데 그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게 괜히 쑥스러웠다.결국 영상을 먼저 공개해 버렸다.또 혼나겠네.태현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그때 진우가 웃음을 터뜨렸다.“형, 근데 이 댓글 뭐예요?”“뭔데?”진우가 노트북을 돌려 보여줬다.[첫 만남은 그날 아닐 텐데요.][남자분이 기억 못 하는 것 같은데.]태현의 손이 멈췄다.“……뭐야.”“아는 사람인가 봐요. 형수님 친구 아니에요?”태현은 대답하지 않았다.그저 댓글을 오래 바라봤다.이상하게 익숙한 말투였다.특히 한 단어.남자분.태현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설마.”“뭐가요?”“아니야.”태현은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그리고 수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수진아.]답장은 없었다.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입력했다.[우리 처음 만난 날 언제였지?]그 시각 수진은 회의 중이었다.휴대폰이 짧게 진동했다.슬쩍 화면을 확인한 수진의 심장이 내려앉았다.[우리 처음 만난 날 언제였지?]설마.댓글을 본 걸까?아니겠지.그 영상에 댓글이 얼마나 많은데.수진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휴대폰을 내려놓았다.하지만 회의 내용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20분쯤 지나 다시 메시지가 도착했다.[친구 생일 모임 아니었어?]수진은 입술을 깨물었다.그냥 그렇다고 대답하면 끝날 일이었다.하지만 억울했다.태현이 정말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이.결국 손가락이 먼저 움직였다.[아니야.

  • 이혼했는데, 전남편이 우리 결혼을 폭로했다   9화. 전남편이 기억하는 우리의 첫 만남

    수진은 다음 날 아침부터 휴대폰을 몇 번이나 확인했다.특별한 이유는 없었다.정확히는, 없다고 생각하고 싶었다.이태현이 또 연락했는지.새로운 영상이 올라왔는지.그런 걸 기다리는 건 아니었다.적어도 수진은 그렇게 믿고 싶었다.출근 준비를 하면서도,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도, 회사 앞 횡단보도에 서 있으면서도 자꾸 휴대폰으로 손이 갔다.그리고 오전 9시 12분.익숙한 알림이 화면에 나타났다.[T의 기록님이 새 동영상을 업로드했습니다.]수진의 발걸음이 멈췄다.영상 제목은 짧았다.[전부인을 처음 만난 날]“……진짜 올렸네.”어제 카페 앞에서 자신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병원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자신의 이야기도 허락 없이 공개하지 말라고.그러면서 무심코 덧붙였다.처음 만났을 때 이야기나 해 보라고.그랬더니 정말 그 이야기를 영상으로 만들었다.“말 참 잘 듣네.”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리면서도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다만 곧바로 마음이 걸렸다.어제 분명 올리기 전에 보여 달라고 했는데.태현은 이번에도 영상을 먼저 공개했다.수진은 메시지를 보내려다 휴대폰을 내려놓았다.일단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부터 확인할 생각이었다.하지만 출근하자마자 영상을 볼 수는 없었다.회의가 있었고, 처리해야 할 업무도 쌓여 있었다.한 시간.두 시간.수진은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이어폰을 꺼냈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박지현이 슬쩍 물었다.“뭐 봐요?”“아무것도.”“그 유튜브요?”수진이 고개를 들었다.지현은 이미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 웃고 있었다.“표정에 다 써 있어요.”“밥이나 먹어요.”“먼저 보세요. 궁금해서 아침부터 계속 휴대폰 확인하셨잖아요.”“안 봤거든요.”“지금 재생 버튼 누르고 계시면서?”수진은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조용히 좀 해 봐요.”영상이 시작됐다.이번에는 태현이 카페처럼 보이는 공간에 앉아 있었다.화면 아래 자막이 나타났다.[그 사람을 처음 만난 날]태현은 카메라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 이혼했는데, 전남편이 우리 결혼을 폭로했다   8화. 우리의 처음을 다시 이야기한다면

    카페 밖으로 나오자 차가운 밤공기가 얼굴에 닿았다.수진은 코트 깃을 여몄다.태현은 그녀의 옆에서 걸었다.두 사람 사이에는 한 사람이 더 들어갈 만큼의 거리가 있었다.예전에는 이런 거리가 어색하지 않았다.길을 걸으면 자연스럽게 손을 잡았고, 추운 날이면 태현이 수진의 손을 자기 주머니에 넣었다.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태현도 그 사실을 아는 듯 먼저 손을 내밀지 않았다.“데려다줄까?”수진은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알겠어.”그는 더 묻지 않았다.예전의 태현이었다면 늦은 시간이라며 한 번쯤 더 권했을 것이다.수진은 그 변화가 조금 낯설었다.한편으로는 다행이었다.자신의 선택을 존중해 주는 것 같아서.“그럼 갈게.”“응. 조심히 가.”수진은 몇 걸음 걸었다.그러다 문득 멈췄다.뒤를 돌아보니 태현은 아직 그 자리에 서 있었다.그냥 그녀가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1년 전에도 저렇게 서 있었을까.이혼 서류를 제출하고 돌아서던 날.그는 정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때 수진은 뒤돌아보지 않았다.돌아보면 울 것 같아서.그리고 그가 자신을 붙잡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게 두려워서.“태현아.”그가 고개를 들었다.“응?”“다음 영상 말이야.”태현의 표정이 굳었다.“응.”수진은 잠시 망설였다.그의 유튜브 채널을 떠올리면 여전히 마음이 복잡했다.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두 사람의 결혼을 이야기했다.누군가는 태현을 불쌍하게 여겼고, 누군가는 얼굴도 모르는 수진을 비난했다.그런데 정작 두 사람만이 알고 있는 이야기는 따로 있었다.행복했던 날들.아무 이유 없이 웃었던 저녁.그리고 사랑이 시작되었던 순간.“병원 얘기는 하지 마.”“알겠어.”“내 얘기도 허락 없이 꺼내지 말고.”“응.”수진은 입술을 깨물었다.그러다 자신도 모르게 말했다.“차라리…… 처음 만났을 때 얘기나 해.”태현의 눈이 커졌다.“우리 처음 만났을 때?”“그냥 예를 든 거야.”“수진아.”“왜.”태현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

  • 이혼했는데, 전남편이 우리 결혼을 폭로했다   7화. 이번에는 혼자 보내지 않을게

    7화. 이번에는 혼자 보내지 않을게“지금도 나한테 숨기는 거 있어?”수진의 질문에 태현의 손이 멈췄다.그 짧은 침묵만으로도 충분했다.수진은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조금 전까지 자신을 향해 미안하다고 말하던 남자가 또다시 무언가를 감추고 있었다.“있네.”“수진아.”“오늘은 다 말한다며.”태현은 입술을 달싹이다가 고개를 숙였다.“말할게.”“그럼 지금 말해.”카페 안에는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옆 테이블에서는 누군가 웃고 있었지만, 수진에게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태현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그때 정밀검사 결과가 나왔을 때…….”수진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움켜쥐었다.“처음 의심했던 종양은 아니라고 했어.”그제야 굳어 있던 어깨가 조금 내려갔다.“그럼 괜찮았던 거야?”“완전히는.”안도하려던 마음이 다시 내려앉았다.“무슨 뜻이야?”“당장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는데, 경과를 계속 지켜봐야 한다고 했어.”“계속?”“응.”“그럼 지금도?”태현은 대답하지 않았다.수진은 그 침묵이 싫었다.1년 전에도 그랬다. 태현은 자신에게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고, 수진은 그의 침묵을 사랑이 식었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그 오해가 두 사람을 이혼까지 데려갔다.“지금도 병원 다녀?”“정기적으로.”“마지막 검사는?”“두 달 전.”“다음 검사는?”태현이 시선을 피했다.수진의 가슴이 철렁했다.“이태현. 언제냐고.”“……다음 주.”“다음 주?”“응. 추적검사야.”수진은 그를 멍하니 바라봤다.고작 다음 주였다.그런데 태현은 오늘 자신을 만나고도, 묻지 않았다면 끝내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혼자 갈 생각이었어?”“응.”너무도 당연한 대답이었다.수진은 헛웃음을 흘렸다.“정말 하나도 안 변했네.”“이번에는 진짜 별거 아니야.”“그 말을 내가 어떻게 믿어?”태현의 입이 다물어졌다.“1년 전에도 너는 내가 걱정할까 봐 말 안 했다고 했잖아.”“…….”“그런데 지금도 똑같이 행동하고 있잖아.”태현은

  • 이혼했는데, 전남편이 우리 결혼을 폭로했다   6화. 당신이 나를 보내버린 이유

    “검사 결과가 뭐였는데?”수진은 태현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봤다.태현은 한참 동안 대답하지 않았다.카페 안에는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누군가는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누군가는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었다.그 평범한 소음 속에서 수진은 태현의 대답만 기다렸다.“정확한 결과가 바로 나온 건 아니었어.”태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추가 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고.”“그래서?”“…의사가 좋지 않은 가능성도 있다고 했어.”수진의 표정이 굳었다.“좋지 않은 가능성?”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응.”“그게 뭔데?”그는 입술을 다물었다.수진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이태현. 뭔데?”태현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그리고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종양 가능성이 있다고 했어.”수진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뭐?”“그때는 확정이 아니었어. 정밀검사도 더 필요했고.”태현이 급하게 덧붙였다.“의사가 가능성을 이야기한 거였어.”수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종양.그 단어가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어디에?”태현은 시선을 내렸다.“정확한 건 검사로 확인해야 한다고 했어. 위치도 좀 애매하다고 했고.”수진은 테이블 아래에서 주먹을 꽉 쥐었다.이혼하기 일주일 전, 태현은 회사에서 쓰러졌다.그리고 자신이 이혼을 말하던 날, 병원에서 그런 이야기를 듣고 돌아왔다는 뜻이었다.그런데도 태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래서.”수진의 목소리가 떨렸다.“그래서 나 안 붙잡았어?”태현이 고개를 들었다.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긴 침묵 끝에 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응.”수진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웃었다.“미친놈.”태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진짜 미쳤어?”수진의 눈가가 뜨거워졌다.“그게 이유였어? 아플 수도 있으니까?”“그때는 내가 어떻게 될지 몰랐어.”태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검사 결과를 듣고 나니까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무것도 모르겠더라.”“그래서?”“네가 이미 나 때문에 많이

  • 이혼했는데, 전남편이 우리 결혼을 폭로했다   5화 . 1년 만에 다시 만난 사람

    심장이 크게 뛰었다.“…만날래?”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태현의 목소리.수진은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1년 만이었다.영상도 아니고, 전화도 아닌.직접 만나자는 말.“수진아.”태현이 다시 불렀다.“나, 직접 말하고 싶어.”수진은 계단 창문 너머를 바라봤다.평범한 오후였다.사람들은 바쁘게 걸어가고, 가로수는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세상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흘러가는데, 자신의 일상만 다시 뒤집히고 있었다.“오늘.”수진이 입을 열었다.“…응?”“오늘 저녁에 만나.”태현의 숨소리가 멈췄다.“한 시간만이야.”“알겠어. 갈게.”“내가 장소 보내줄게.”전화를 끊으려는 순간, 태현이 조용히 말했다.“수진아.”“왜.”“…고마워.”수진은 입술을 깨물었다.“고마워하지 마. 나 아직 엄청 화났으니까.”“알아.”“그리고 오늘 다 말해.”“…응.”“숨기는 거 없이.”잠깐의 침묵 끝에 태현이 대답했다.“알겠어.”통화가 끝났다.수진은 한참 동안 휴대폰을 내려다봤다.자신이 무슨 선택을 한 건지 알 수 없었다.다만 오늘만큼은, 더 이상 영상 속 목소리로 그의 진심을 듣고 싶지 않았다.약속 시간은 저녁 7시.수진은 6시 52분에 카페에 도착했다.평소에도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하는 편이었다.그러니 특별한 의미는 없었다.그렇게 스스로에게 말하며 문을 열었다.하지만 창가 안쪽에 앉아 있는 남자를 발견한 순간, 발걸음이 멈췄다.이태현.검은 셔츠에 회색 재킷.테이블 위에는 커피 두 잔이 놓여 있었다.1년 만에 직접 보는 얼굴이었다.영상에서는 잘 몰랐는데, 태현은 생각보다 많이 말라 있었다.예전보다 날카로워진 턱선.조금 창백한 얼굴.한때 어깨에 꼭 맞았던 셔츠도 이제는 약간 헐렁해 보였다.수진은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그때 태현이 고개를 들었다.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몇 초 동안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건 태현이었다.“왔네.”그 한마디가 이상하게 낯설었다.예전에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