ログイン문자를 본 강하리는 가슴이 답답해지고 응어리가 질 것 같았다.여초연을 의심하는 것과 상대가 여초연임을 확인하고 그와 동시에 협박까지 받고 있다는 건 아예 별개의 문제였다.그녀는 깊은숨을 들이쉬고 구승훈을 올려다보았다.눈앞의 남자는 침울한 감정을 꾹 억누른 채 잔혹함과 폭력성이 뒤섞여 당장이라도 이성을 잃을 듯했다.강하리는 사실 그가 지금 어떤 심정일지 이해하고 있었다.과거 여초연이 도망쳤을 때, 그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런 짧은 문자 하나에 거의 이성을 잃을 지경이 되었다. 여초연은 분명 또다시 강하리에게 몹쓸 생각을 품고 있을 것이다.직접적으로 그녀를 해치지는 않아도 이용하려는 의도가 다분했기에 구승훈은 이토록 격분하고 심지어 자제하기 어려운 상태에 도달했다.강하리는 침묵하며 한숨을 쉬었다. 구승훈이 자신을 이토록 소중히 여기고 아껴주니 기뻐해야 마땅하겠지만 지금 그녀는 오롯이 이 남자가 안쓰러웠다.그녀는 손을 들어 구승훈의 얼굴을 감쌌다.“그러니까 여초연이 살아있다는 거지?”구승훈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지만 그녀는 대답을 기다리기도 전에 스스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럴 줄 알았어. 화근은 천 년을 간다더니 여초연 정말 보통 화근이 아니네.”말을 이어가던 그녀는 웃으며 구승훈의 손가락을 잡았다.“됐어. 속상해할 필요 없어. 하늘이 무너질 것도 아니잖아.”강하리는 그렇게 말하며 구승훈을 끌고 병실로 들어섰다.메시지를 본 순간, 강하리는 잠시 망설였으나 구승훈의 죄책감과 고뇌를 본 후에는 마음의 저울이 완전히 기울어졌다.“조금만 더 기다리자.”그녀가 들어가 한순자에게 무슨 말을 하려는지 예측이라도 한 듯 구승훈은 그녀가 문 앞에 서 있는 순간, 허리를 잡고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이 일은 서두를 필요 없어. 노민우 쪽에서 곧 소식이 올 거야.”그는 강하리의 눈썹을 만지작거리며 눈가에 드리운 감정이 더욱 깊어졌다.“설령 노민우 쪽에서 늦어진다 해도 내가 최대한 빨리 어르신께 해독제를 찾아드리도록 할게. 꼭
강하리의 질문은 맥락 없이 뜬금포였지만 한순자의 얼굴에 순간의 당황함이 스쳐 지나갔다.비록 찰나였지만 강하리와 구승훈은 똑똑히 보았다.한순자는 강하리를 노려보며 말했다.“무슨 소리야? 도통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 여기 병원이야. 할아버지를 살리지도 못할지언정 감히 난동을 부려?”한순자가 크게 외쳤지만 은근히 가슴 찔린 기색이 역력했다.강하리는 원래 짐작만 하고 있다가 한순자의 태도가 너무 갑작스럽고 납득이 가지 않더라니 누군가가 분명 그녀 앞에서 또 험담했으리라 여겼을 뿐이다.하지만 뜻밖에도 추측이 맞아떨어졌다.그녀는 차가운 시선으로 한순자를 바라보며 다시 한번 물었다.“누가 찾아왔냐고요?”한순자는 여전히 같은 말만 반복하며 대답은커녕 오히려 그들을 쫓아내기 시작했다.강하리는 구승훈을 힐끗 보았다.“이틀간의 외부 CCTV 영상을 전부 가져와. 끝까지 입 안 열면 우리가 직접 조사할 수밖에.”한순자는 그 말을 듣자마자 다급해졌다.“강하리, 너 너무 심한 거 아니야? 네 할아버지를 살리지도 못하면서 내 방법대로 해결하려는 것까지 막는 거야?”이 말을 들은 강하리와 구승훈은 모두 그녀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강하리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물었다.“그 사람이 할아버지 살릴 수 있대요? 무슨 방법인데요? 골수 이식? 아니면 무슨 약이라도 줬나요?”한순자의 눈빛이 더 세게 흔들렸고 심지어 두리번거리며 말을 돌리기 시작했다.강하리는 더 이상 그녀와 실랑이할 시간이 없었다. 곧바로 구승훈에게 CCTV 영상을 요구하고는 진강석 주치의의 사무실로 향했다.“강 대표님.”의사는 그녀를 보자마자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섰다.강하리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냥 할아버지 병세가 궁금해서요. 이전에는 괜찮다고 하지 않았었나요? 갑자기 왜 위독해지신 거죠?”의사는 그녀의 말을 듣고 눈빛이 살짝 흔들리더니 사무실 문을 닫고 나서야 다소 답답한 듯 입을 열었다.“이건 정말 저희 잘못이 아니에요. 다 한순자 씨 때문입니다. 환자분께 대체 무슨 약을
“하리야.”“하리 씨!”거의 동시에 두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노민우는 손연지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지만, 손연지는 그의 목소리를 또렷이 들었다.수천 리 떨어진 곳에서 손연지는 노민우의 목소리를 이런 방식으로 다시 듣게 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휴대폰을 잡은 손에 무심코 힘이 더 들어가고 끼익 소리까지 났다.아무런 동요도 없을 줄 알았는데 갑자기 광풍이 다시 휘몰아쳤다.캄캄한 어둠 속에서 그녀의 유일한 생각은 도망치는 것이었다.전화를 끊으려던 움직임은 강하리의 한마디에 멈추고 말았다.“왜 피투성이가 됐어요?”노민우는 응급실 방향을 보며 대답했다.“지현미 씨가, 사모님이 위층에서 떨어졌어요.”강하리는 구승훈을 돌아보았다. 한편 그는 응급실 방향을 힐끗 보고는 시선을 거두었다.병원 로비는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였지만 방금 두 사람에게 집중되었던 시선은 이미 거의 흩어진 후였다.구승훈은 마치 친구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듯 거리낌 없이 물었다.“여재천 씨가 개발한 약물이 너희 계명 제약에 진출할 거라고 얘기했어?”노민우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능구렁이 영감님은 다른 속셈이 있을 테지만 그렇게 쉽게는 안 될걸.”구승훈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그가 여재천의 치명적인 약점을 잡고 있기는 하지만 여재천이 순순히 말을 잘 들어주면 구승훈도 모질게 나오진 않을 것이다.하지만 여재천이 말을 잘 듣든 안 듣든 구승훈에게 원하는 정보만 제공해주면 된다.그가 원하는 것은 도구였기에 여재천이 양쪽에서 이득을 취하려는 것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곧 진행될 테니 준비 잘하고 있어. 여재천 씨가 허락하는 대로 최대한 빨리 그 기술들을 받아들여.”노민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하려던 찰나, 여명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민우 오빠.”그녀가 다가와 노민우의 팔짱을 끼더니 강하리를 향해 대놓고 불만과 경멸의 시선을 보냈다.강하리는 그런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다정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그 시선을 무시하고 휴대폰을 내려다보았다.
여씨 가문 사람들이 지현미를 병원으로 보내는 동안, 강하리와 구승훈 역시 병원으로 향하고 있었다.진강석의 상태가 갑자기 급격히 악화되어 응급실로 실려 갔고 이미 위독하다는 통보가 내려온 상태였다.사실 강하리는 진강석의 상태에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지만 진태형 때문에라도 병문안을 가야만 했다.둘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 한순자가 초조한 표정으로 응급실 문 앞에 서 있었다.언제나 거만하고 무례하며 막무가내였던 그 얼굴에 지금은 의외로 진심 어린 공포와 슬픔이 묻어나 있었다.그토록 활기차게 서산 퍼스트 빌리지까지 찾아와 자신을 욕하던 노인네는 이 기간에 살이 엄청 빠지고 혈색 좋던 얼굴도 어느덧 창백하고 야위었다.강하리는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이에 구승훈이 고개를 숙여 물었다.“왜 그래?”그는 질문을 마치고는 다시 한번 웃었다.“우리 하리 또 마음 약해졌어?”강하리는 사실 마음이 약해진 게 아니라 한순자의 모습을 보고 문득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진씨 가문의 노부부는 그녀에게 그다지 잘해준 편은 아니지만 부정할 수 없는 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노부부의 관계가 매우 돈독하다는 것이었다.구승훈이 한순자를 찾아가 더 이상 강하리를 괴롭히지 못하게 협박한 방법은 바로 진강석을 납치하는 것이었다.한순자 또한 진강석을 구하기 위해 오랫동안 강하리를 귀찮게 굴지 않았다.마치 지금처럼 진강석이 병상에 누워있자 한순자는 넋이 나간 것만 같았다.한 사람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이때만큼은 참 명확하게 드러나는 법이었다.강하리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마음이 약해진 건 아니야. 그냥 문득 든 생각이 저들이 그렇게 싫지만은 않네?”구승훈은 눈썹을 치키다가 곧장 표정이 굳어졌다.“무슨 뜻이야?”강하리가 미소를 짓자 맑은 눈동자에 부드러운 웃음기가 어렸다. 구승훈은 아마도 그녀가 진강석에게 골수 기증을 하려고 마음을 먹을까 봐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강하리는 문득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누구에게나 가장 소중한 것이 있는 법. 구승훈에게 가장 소
지현미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제대로 인지하기도 전에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고통스러운 비명만이 울려 퍼졌다.온몸이 아프고 특히 머리와 사지 관절 부위가 심했다. 얼굴도 얼얼하게 아팠고 귀까지 윙윙거렸다.멍하니 고개를 들고 무표정한 여재천의 얼굴을 보자 그녀는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감히 날 때려?”말을 마친 지현미가 비틀거리며 바닥에서 일어났다.하지만 몸에 받은 충격으로 겨우 일어나다가 다시 바닥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이미 다친 다리가 다시 한번 큰 상처를 입었다.그럼에도 지현미는 비명을 지르며 기어올라 위층으로 향했다.지현미의 손이 여재천의 얼굴을 향해 날아들려는 찰나, 노민우가 불길함을 감지하며 재빨리 두 걸음 뒤로 물러섰다.아니나 다를까 그가 몸을 피하자마자 여재천이 또다시 지현미에게 귀싸대기를 날렸다.다행히 이번에는 그녀도 대비하고 있다가 손으로 계단 난간을 꽉 잡고 있어서 떨어지지는 않았다.하지만 두 번 귀싸대기를 맞으니 그녀는 더욱 광적으로 변했다.두 손으로 여재천의 얼굴을 사정없이 할퀴려 드는 지현미.“감히 나를 때려? 오늘 너 죽고 나 죽고 끝장 본다!”한편 여재천도 전혀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요즘 하는 일마다 순탄치 않았다.딸이 잡혀 들어간 것은 물론이고 임명우조차 구출하지 못했다. 이제 여초연이 풀려나와 그를 개 취급하는 것도 모자라 구승훈에게 치명적인 약점을 잡힌 상황이었다.마음에 쌓였던 울분이 이 순간 마침내 터져 나왔다.그는 지현미를 붙잡고 마치 분풀이라도 하듯 그녀의 뺨을 때렸다.“지금 나한테 덤벼? 나 실종되고 나서 네가 뭐 하고 다녔는지 모를 줄 알아? 감히 외교부까지 찾아가서 소란을 피워? 내 체면을 완전히 짓밟아버릴 셈이야? 그것도 아니면 내가 아직 윗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거니?”지현미는 순간 움찔하며 가슴이 찔렸다.하지만 뺨을 맞은 걸 생각하니 찔리는 마음도 금세 사라졌다.“내가 뭘 어쨌는데? 나야말로 묻고 싶어. 종일 뭐 하고 다녔어?
노민우는 이쪽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지현미를 데리고 떠나려 했다.하지만 지현미는 강하리를 보자마자 억눌렀던 분노가 터져 나왔다.딸이 사고를 당하든, 남편이 실종되든, 이 못된 계집애와 무관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그녀는 노민우를 뿌리치고 이쪽으로 달려들려 했다.이에 노민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재빨리 그녀를 막아섰다.“아줌마, 지금 뭐 하시려고요?”지현미의 얼굴이 시퍼렇게 질렸다.“뭐하긴? 민우야, 강하리 저 계집애가 저기 서 있는 거 안 보여? 명희가 여기에 들어온 것도 쟤 때문이고, 내 남편 실종도 분명 쟤랑 관련이 있을 거야!”노민우가 무심코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눈가에 짜증이 스쳐 지나갔지만 애써 억눌렀다.“아줌마, 명희 씨가 여기 들어온 이유는 저희 모두 잘 알잖아요. 사람을 매수해서 약을 탔고 강간까지 시도하게 했어요. 여재천 아저씨는...”그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코웃음을 치듯 은근히 야유를 날렸다.“아저씨는 장관이신데 아줌마가 강하리 씨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는 것 같아요. 아저씨랑 여초연 씨가 비밀리에 무언가를 상의하러 가셨을 텐데 이렇게 소란을 피우시다가 일이 커져서 아저씨까지 연루될까 두렵지 않으세요?”지현미는 원래 기분이 별로인데 노민우의 말을 듣고 나니 속이 더욱 뒤틀렸다.“민우 넌 대체 누구 편이니? 설마 아직도 강하리 옆에 있는 그 계집애를 못 잊은 거야?”노민우의 얼굴이 굳어졌다.“저는 다만 사실대로 말씀드린 것뿐이니 기어코 여기서 무례하게 구신다면 저 또한 아줌마네 집안일에 관여하지 않을 겁니다.”그는 말을 마치고 돌아서려 했다. 이때 지현미가 다급하게 그를 붙잡았다.“민우야, 어디 가?”노민우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저를 못 믿으시겠다면 다른 믿음직한 사람으로 찾아보세요.”지현미는 황급히 그를 잡아 세웠다. 그녀가 어디 가서 믿을 만한 사람을 찾아내겠는가.여재천이 실종된 후 지현미는 외교부 사람들조차 의지해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최소한 오늘 아침 외교부에 갔을 때, 아무도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