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에 잠겨 있던 와중, 최지습이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들어가서 얘기하지.”소한은 대답 없이 길을 비켜주었다.최지습은 김단을 데리고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소한의 옆을 지나며, 그의 시선은 최지습이 꽉 잡고 있는 김단의 손에 꽂혔다. 그의 눈빛은 순식간에 핏빛으로 물들었다. 최지습과 김단이 그의 군막 안으로 들어간 뒤에야 그는 끝내 시선을 거두었다.그 순간 그가 최지습의 손을 얼마나 자르고 싶어 했는지는 하늘만이 알 것이다.어렵게 몇 차례 깊은 숨을 들이쉬며 마음속의 분노를 억누른 뒤, 소한은 그들을 따라 군막 안으로 들어갔다.군막 안에는 여만서와 두 종사관이 있었다.최지습은 이번에 소한의 충동적인 행동과 제멋대로 내린 명령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해 온 것이었다. 이에 그는 그들과 담소를 나누지도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말해보시오, 어떻게 된 일인지.”여만서는 소한을 흘끗 보았다. 소한이 입을 열 생각이 없는 듯하자, 그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예를 갖추고 말했다. “대군 자가께 아뢰옵니다. 한 달 전, 당국이 갑자기 화성에 공격을 시작했고, 소 장군님께서 저희를 이끌고 성을 지키셨습니다. 대승을 거두긴 했으나, 갑자기 성문을 열고 적군을 추격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두 종사관도 말했다. “궁지에 몰린 적은 쫓을 필요가 없다는 병법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었다면 그리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희가 극구 만류했으나, 소 장군님께서는 고집을 꺾지 않으셨습니다.”그로 인해 천팔백 명이 넘는 병사들이 처참하게 죽었고, 소한 역시 그로 인해 중상을 입었다.두 사람의 설명을 들으며 소한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심지어 그 두 사람을 쳐다보지도 않고, 책상의 귀퉁이만을 응시했다.표정은 싸늘했고, 눈빛에는 냉담함과 경멸이 서려 있었다.그가 이런 모습을 보이자 여만서의 불만은 더욱 커졌다. “사실 출정 전부터 소 장군님의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술에 취한 것은 물론이고, 출정 전에는 밤새 모습을 감추시어 싸움을 피해
틀림없이, 그 보물이라는 것 때문일 것이다.김단은 이미 짐작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다시 목설원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이번에 오라버니께서 일부러 마차를 내주시고, 길 안내를 해주시며 저희가 화성에 빨리 갈 수 있도록 도와주신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조선과 당국이 지금 전쟁 중이고, 저희가 화성에 가는 이유를 오라버니께서도 잘 아실 터, 왜 굳이 도와주시는 겁니까?”목설원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야 당연히 단이 낭자가 목씨 가문의 호의를 기억해 주길 바라기 때문이오. 그래야 우리 가문이 어려워질 때 도와줄 수 있을 테니 말이오.”사실 이유는 그럴듯했다.하지만 김단은 어쩐지 목설원이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있다 생각했다.다행히 그의 길 안내는 진실되었다.외부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샛길은 마차가 지나가기에 딱 알맞았고, 덕분에 소요 시간도 예상보다 닷새 정도 단축되었다.화성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이었다.마차가 군영 밖에 멈춰 서자, 소식을 들은 소한이 다급히 달려 나왔다.그는 최지습이 김단을 부축하며 마차에서 내리는 것을 보았다.마차가 다른 마차들보다 훨씬 크고 높아서인지, 소한의 시점에서는 최지습이 김단을 안고 내리는 것처럼 보였다.하지만 안았든 안지 않았든, 두 사람은 무척이나 친밀했다.순간 소한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마음속에서는 분노가 폭발하기 직전이었지만, 그는 감히 내색하지 못했다.김단에게 미움을 받을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이에 그는 애써 웃음을 지으며 앞으로 나아갔다.김단은 자신을 향해 웃으며 걸어오는 남자를 보며, 마치 다른 세상에 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그녀와 소한은 한때 지독하게 얽혀 있었다.철도 들기 전부터 함께 먹고 자는 것이 일상이었다.그녀는 그가 소씨 부부에게 벌을 받는 모습도 보았고, 더할 나위 없이 기세등등하던 모습도 보았다.그들의 지난날은 마치 밧줄처럼 단단히 꼬여 있었다.하지만 이제는, 그리고 앞으로는 절대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이에 김단은 무표정으로 대응했다.무의식적으로
목설원은 김단이 자신의 입으로 그 일을 언급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그는 김단이 모른 척 그 일을 언급하지 않고 마치 그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여길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렇기에 그는 김단이 그 얘기를 꺼내자 순간 당황하였다.그러나 김단은 오히려 미소 지으며 말했다. “오라버니께서 특별히 마차를 보내신 것도 보물 때문이 아닙니까?”목설원은 김단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이더니, 다소 어이없다는 듯 살짝 웃음을 터뜨렸다.이윽고 손에 든 부채를 '촤악' 하고 펼쳤다.목설원은 부채를 두어 번 흔들고 나서 입을 열었다. “나도 알고 있소. 단이 낭자가 그 일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을…”“진실을 알아야겠습니다.”김단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표정에는 웃음기가 서려 있었지만, 눈빛은 더없이 확고했다.목설원은 그제야 자신이 김단을 잘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김단에 관한 대부분의 사실은 이미 다 알아내긴 했지만, 그는 줄곧 그녀의 성격이 유순하다고 생각했다.진산군 댁에서 그렇게 박한 대우받았음에도 한 번도 반격하지 않았으니 말이다.줄곧 수동적인 사람인 듯했다.그렇게나 당하고 살았으니 말이다…하지만 지금, 그녀의 눈빛을 마주한 그는 자신이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늘 자신의 주관이 있었고, 아무렇게나 휘둘리는 사람이 아니었다.이내 그는 길게 한숨을 쉬고는 부채를 접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실 보물에 대해서는 나도 아는 것이 많지 않소. 하지만 조부님의 서재에 그림 한 점이 걸려 있는 것은 확실하오. 그 그림 속 여인을 나도 본 적 있는데, 정말 단이 낭자와 닮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낭자를 만난 후 곧바로 가주님께 서신을 보낸 것이오.”즉, 이전에 가주가 고모 할머니의 자손을 보고 싶어 일부러 찾아왔다고 한 것은.사실 그저 그림 때문이었다는 것이었다. “그럼 제 조모님은 어찌 된 것입니까?”김단이 다시 물었다.이전 목씨 가문이 해주었던 조모에 대한 얘기는 너무나 허술했다.목설원은 미간을 찌푸리며 다
“하지만 도련님께서는 생전 이런 고생을 해보신 적이 없으시지 않습니까? 오늘 또 언제 쉬게 될지도 모르는데, 소인은 도련님께서 버티시지 못하실까 봐 걱정됩니다.”목설원은 언짢은 듯 불만 섞인 표정으로 말했다. “저 자들도 다 버티고 있거늘, 네 도련님은 못 버틴다는 것이냐?”그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최지습과 호랑이군들을 흘끗 쳐다봤다.하인은 애써 그를 설득하려 했다. “도련님께서 어찌 저들과 같으시겠습니까? 저 자들은 전장에서도 잔뼈가 굵은 거친 사내들이지만, 도련님께서는 비단옷에 맛난 음식만 드시며 자라온 귀한 도련님이시지 않습니까! 혹사하시어 병이라도 나면 어찌 하시겠습니까?”목설원은 심란한 듯 말했다. “그럼 어찌하면 좋겠단 말이냐? 너희가 나를 위해 마차를 한 대 더 구해올 수 있겠느냐?”“그것은…”하인은 난처해했다.목씨 가문이 조선 쪽에 상점이 많긴 해도, 모든 곳에 있는 것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상점이 있다 해도, 모든 상점에 이렇게 크고 호화로운 마차가 있을 리 만무했다. 정말 구하기 어려웠다.그가 고민하던 중, 옆 마차의 창문이 열렸다. 김단은 목설원을 향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오라버니께서 괜찮으시다면, 들어오셔도 좋습니다.”그 말을 듣자 하인은 기뻐하며 목설원을 바라봤다.목설원도 역시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을 보였지만, 이내 부적절하다고 생각했는지 표정을 고치고 말했다. “아니오, 그대는 여인이고, 내가 들어가면 보기에도 좋지 않을 것이오. 괜찮소, 난 아직 버틸 만하오.”“버티지 못합니다, 못 버텨요!”하인은 황급히 손을 저으며 말했다. “도련님은 이대로 가시다가는 몸이 망가지실 겁니다. 아씨,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씨의 심성이 정말 아름다우십니다!”그와 동시에 그는 목설원을 끌어당겨 말에서 내리게 했다.김단은 자연스럽게 마차의 창을 닫았다.사실 그녀는 목설원과 그의 하인이 방금 나눈 대화가 자신의 귀에 들어가도록 일부러 꾸며낸 것임을 알고 있었다.그들은 그녀가 마음이 약해져 목설원을
그 시각, 화성.소한은 침상에 기대앉아 부장군 여만서가 건넨 몇 권의 군무 문서를 보며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왜 이렇게 적은 것이냐?”여만서는 공손히 답했다. “장군님께서는 중상이 아직 낫지 않으셨으니, 쉬셔야 합니다. 다른 군무는 두 종사관들과 모두 처리했습니다.”그 말을 듣자 소한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난 아직 죽지 않았다.”그의 말에는 불만이 가득했다.여만서는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고 말했다. “주상 전하께서 저와 두 대감에게 소 장군님을 따라 화성으로 출정하라 명하시기 전, 분명하게 일러 두셨습니다. 만약 장군님의 몸이 좋지 않으면, 장군님을 대신하여 일을 처리해도 된다고 말입니다.”소한은 그 말의 숨은 뜻을 알고 있었다.그의 표정이 전보다 더욱 싸늘해졌다. 그는 여만서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그게 무슨 뜻이냐, 나의 권한을 빼앗고 싶다는 것이냐?”여만서는 비굴하지도, 거만하지도 않은 눈빛으로 소한의 싸늘한 얼굴을 마주했다. “장군님께서는 십 일 전 전투에서 우리 군이 얼마나 많은 병력을 잃었는지 아십니까? 만약 장군님께서 고집대로 적군 패잔병을 쫓지 않으셨다면, 천 명이 넘는 병사들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죽지 않았을 것이다?”소한의 말에는 멸시가 담겨 있었다. 그는 비웃음을 터뜨렸다.여만서는 그의 비웃음에 곧장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마음속 분노를 억누르며 침착하게 말했다. “어찌 되었든, 장군님께서는 중상을 입으셨으니 푹 쉬셔야 합니다. 며칠 더 지나면 평양원군께서 오셔서 화성 관련 업무를 인계받으실 겁니다.”그 말을 들은 소한의 두 눈이 커졌다. “뭐라? 평양원군이 온다고?”“예. 대군 자가께서 이미 출발하셨습니다.”여만서는 다소 의기양양한 듯한 태도로 말했다.그는 최지습이 오면 분명 소한의 모든 병권을 빼앗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소한은 완전히 몰락할 것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이는 소한의 관심 밖이었다. 그는 이어서 물었다. “그럼, 그 애는 어찌됐단 말이냐?”그 애?여만서는
그 말을 들은 목설원은 곧장 한 걸음 뒤로 물러섰고, 손에 부채를 접으며 방어 태세를 취했다.“아니, 이보시오, 선한 마음을 곡해하려하지 마시오! 우리 목씨 가문은 사업 영역이 워낙 넓어 정보망이 닿지 않는 곳이 없소. 소식 하나 전하는 게 뭐가 어렵다고 그러시오? 당신들 소 장군이 변방에서 미쳐 날뛰고 있으니, 주상 전하께서 사람을 보내신 것 아니겠소? 이것저것 따져봐도, 평양원군 말고 나설 만한 자가 어디 있겠소?”소하?소하는 소한의 친형이니, 사이가 너무 친밀한 나머지 그를 제어하지 못할 것이다.그러니 최지습이 갈 수밖에 없었다.별생각 없는 간단한 추측일 뿐인데, 이들이 이렇게까지 심각하게 받아들이니 무서울 지경이었다.최지습은 개의치 않고 목설원 뒤에 놓인 마차를 보며 말했다. “안전한 것이오?”목설원은 당당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물론이오! 우리 목씨 가문의 마차는 천하제일 장인을 불러 만든 것이니, 하루에 천 리를 가더라도 평지를 달리듯 안정적이오!”“고맙게 되었소.”최지습은 감사를 표하고는 목설원을 지나쳐 마차를 끌어왔다. 말 세 마리가 마차를 끌었다. 모두 최상급의 말이었다.호랑이군들은 한눈에 이를 알아봤다. 전투용 말로도 쓸 수 있는 것을 목씨 가문은 마차를 끄는 데 쓰고 있으니, 정말 사치스러웠다.최지습은 마차를 김단의 앞에 끌어다 놓고는 손을 내밀며 말했다. “타 보시오.”김단도 사양하지 않았다.이전까지 타던 마차가 너무 불편했기에, 계속 타다가는 걸음이 지체될까 봐 걱정되었다.이에 김단은 최지습의 부축을 받아 마차에 올랐다. 목씨 가문의 마차가 편안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하지만 이 마차는 이전 것보다 훨씬 더 호화스러웠다.거대한 마차 안은 작은 방처럼 꾸며져 있었고, 필요한 것이 다 있었다.마차 밖에서 목설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에 있는 물건들은 모두 새로 들여놓은 것이니, 편히 사용해도 좋소.”정말 세심한 배려였다.김단은 마차 창을 열어 목설원을 보며 살짝 웃었다. “오라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