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2화

작가: 손이영
그때도 지금과 같은 매미가 울어대는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소녀의 수줍은 눈빛과 땀에 젖은 옆머리가 그날 오후와 겹쳐졌다.

그 모습이 지난 3년 동안 매일 밤 꿈속으로 들어와 밤마다 유강후를 뒤흔들었다.

유강후는 방금 온다연의 손길이 닿은 곳이 화끈거려 손끝을 만지작거렸다. 이 순간 공기마저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유강후는 재빨리 시선을 거두며 여전히 차갑고 고상한 표정으로 말했다.

“들어가.”

온다연은 즉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마치 사면받은 사람처럼 도망치듯 떠났다. 물론 온다연은 차에 탄 유강후의 맹수 같은 약탈적인 눈빛을 보지 못했다.

온다연은 유씨 가문 저택에 들어선 후에야 유씨 가문 식구들뿐만 아니라 유강후의 옛 친구들도 모두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도련님들은 모두 높은 신분을 가지고 있었고 유강후는 그중에서도 최고였다.

온다연은 전에 그들의 말도 안 되는 행동을 여러 번 목격했었기 때문에 그들을 피하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하지만 안주인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심미진은 온다연을 놓아주지 않았다.

“나 시간 없으니까 네가 이 술을 네 작은 삼촌에게 갖다줘.”

온다연은 거절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은 화려했고 술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하늘색 원피스를 입은 온다연은 가시 장미에 섞인 새하얀 장미처럼 눈길을 사로잡으며 문 앞에 서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를 향했다.

어두운 조명 속에서도 온다연의 검은 머리와 붉은 입술, 매력적인 골격,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이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특히 하늘색 치마 밑의 하얀 피부는 사람을 유혹할 정도로 하얗게 빛났다.

잠시 동안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는데 갑자기 누군가 웃음을 터뜨렸다.

“도련님, 유씨 가문의 양딸을 몇 년 동안 보지 못했었는데 그새 잘 자랐네요.”

유강후 역시 온다연이 들어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손에 든 와인잔을 흔들었다.

“몇 년 동안 유씨 집안에서 먹여준 건 맞지만 양딸이라고 할 순 없죠.”

유강후의 목소리는 마치 중요하지 않은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차가웠고 온다연과의 관계에 대해 선을 긋는 듯 이야기했다.

동시에 온다연을 유씨 가문의 인맥에서조차 제외했다.

그 말에 온다연은 가슴이 살짝 내려앉고 두 손은 쟁반을 꽉 움켜쥐었다.

유강후는 전과 마찬가지로 어떤 말을 해야 가장 고통스럽게 사람의 마음을 찌를 수 있는지 알고 있었다.

온다연은 유강후를 쳐다보지 않았다.

비록 이 순간 유강후는 앉아 있고 자신이 서 있어도 그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고 느끼면서 자존감이 바닥 쳤다.

온다연은 사람들의 심문하는 듯한 경멸적인 시선을 마주하며 와인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삼촌, 와인이요.”

유강후은 시선을 온다연의 매끈한 종아리에 잠시 멈췄다가 눈을 살짝 감더니 냉기가 감도는 목소리로 말했다.

“누가 너더러 들어오랬어? 나가!”

모두 좋은 구경거리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온다연을 쳐다보았다.

순간 온다연은 마치 환한 대낮에 옷이 발가벗겨진 것처럼 부끄러움을 느꼈고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깨물고 쟁반을 내려놓은 후 재빨리 문밖으로 물러났다.

뒤에서 소란스러운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도련님, 왜 이렇게 차갑게 대하세요. 그래도 저 애는 미녀인데 좀 봐주시지!”

“도련님, 어차피 우리랑 같이 술 마실 여자가 없으니 조카더러 내려와서 술 한잔하게 해주세요.”

온다연의 손끝이 살짝 떨렸다. 유강후와 그의 친구들의 눈에는 그녀가 술집 아가씨와 같은 존재였다.

온다연은 그들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아 재빨리 자리를 떠났다.

실내에서 와인 잔을 들고 있던 유강후의 손이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여자를 원하면 여기서 그러지 말고 나중에 술집에 가. 거기에는 다양한 여자가 많으니까.”

하지만 그 사람은 겁도 없이 계속해서 말했다.

“저 애는 어차피 유씨 가문의 일원도 아닌데 우리와 함께 술을 마실 수 있다는 것은 저 애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잖아요.”

“다리가 예쁘네요. 하얗고 가늘어서 허리를 감싸면 죽여주겠는데요.”

유강후는 미소를 지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얼음처럼 차가운 눈빛에서 약간의 살기가 새어 나왔다.

곧이어 유강후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테이블 위에 있던 와인병을 집어 들고 그 사람의 머리를 바로 내리쳤다.

병이 깨지면서 남자의 머리가 찔리고 검붉은 술이 피와 섞여 사방으로 흘러내렸다.

모든 사람들이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한참 지나서야 누군가가 자리에서 일어나 겁에 질린 표정으로 지켜보며 말했다.

“도련님, 저...”

유강후는 옷을 정돈하면서 담담하게 말했다.

“이렇게 좋은 와인으로도 저놈 입을 막을 수 없다니, 기분이 잡치는군.”

유강후의 말투는 너무 차분해서 전혀 폭력적인 행동을 한 사람 같지 않았다.

“하지만 도련님, 저분은 도련님을 환영하려고 온 건데 어떻게...”

유강후는 휴지 한 장을 뽑아 손가락을 하나 하나 닦았다. 표정은 차분했지만 눈빛이 냉기를 뿜어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몸을 떨 정도였다.

“유씨 가문의 것들을 함부로 대할 생각하지 마. 그게 개라도 말이야.”

유강후는 칼처럼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 사람을 훑었다.

“꺼져!”

머리를 맞은 사람은 비참한 모습으로 피를 뚝뚝 흘리며 고개를 들지도 못했다.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다들 자기 가문에서 도련님이지만 그들 중 최고는 유강후였다. 그 사람이 건드릴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 사람은 심지어 감히 눈앞을 막는 피를 닦지도 못하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도련님,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

유강후는 휴지를 던지고 돌아서서 방을 나섰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몸에서 풍기는 차가운 기운은 조금 전의 행동보다 더 섬뜩했다.

누군가가 그 사람을 일으켜 세우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얼른 가. 도련님 기분 나쁘게 하지 말고 뒷문으로 나가.”

온다연은 자신의 방에서 잠시 누워 있다가 떠나기로 했다.

그런데 방에서 나오자마자 유강후가 2층 계단 앞에서 천천히 내려가고 있는 모습을 볼 줄은 몰랐다.

온다연은 멈칫하다가 다시 방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유강후는 이미 그녀를 봤다.

온다연은 한 손으로 문의 손잡이를 잡고 다른 손으로 가방을 꽉 쥐었다. 순간 방으로 들어가야 할 지 그냥 나가야 할 지 결정하지 못해서 그냥 문에 기대어 저도 모르게 유강후를 불렀다.

“삼촌.”

유강후는 자신의 이마 위에 삐져나온 머리카락을 바라보며 한 걸음 한 걸음 그녀에게 다가갔다.

유강후의 눈빛을 마주하자 온다연은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그 두 눈동자는 더없이 차가웠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느낌에 온다연은 바닥으로 가라앉는 것 같았다.

갑자기 시간이 10년 전으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

그때도 지금처럼 더운 여름날이었고 이모 따라 유씨 가문 저택의 로비에 끌려갔다.

유자성의 아들과 딸은 온다연을 가리키며 여우라고 욕하고 그녀의 트렁크를 문밖으로 던졌다.

귓가에서 이모의 울음소리가 들렸지만 어쩔 줄 몰라 자신의 치맛자락을 만지작거리기만 했다. 온 세상에 버림받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때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민준, 유하령, 선생님이 너희에게 손님을 이런 식으로 접대하라고 가르쳤어?”

순간 로비는 쥐 죽을 듯 조용해졌다.

온다연은 그때 고개를 들고 봤던 그 순간을 영원히 잊을 수가 없다.

화려한 전통식 별장 안 소용돌이 모양의 계단 끝에 한 소년이 서 있었다. 흰옷에 검은색 바지를 입은 그 소년의 모습은 고상해 보였고 얼굴은 말도 안 되게 잘생겼다.

그 소년은 긴 다리를 옮겨 계단에서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그 소년은 불빛 아래에서 갓 완성된 유화처럼 아름다웠고 온다연 어린 시절의 큰 충격으로 남았다.

심미진은 온다연의 옷을 잡아당기며 속삭였다.

“이 사람은 네 삼촌 유강후야. 유자성의 동생이지. 빨리 삼촌이라고 불러.”

온다연은 고개를 숙인 채 감히 유강후를 바라보지 못했다. 가슴이 너무 떨려 한참 지나서야 고양이처럼 약한 목소리로 낮게 불렀다.

“삼촌.”

유강후는 간단히 대답하고 온다연을 지나쳐 바깥쪽으로 걸어갔다.

“앞으로는 이곳을 자기 집처럼 생각하고 필요한 게 있으면 주 집사에게 말해.”

유강후의 목소리는 맑고 차가워서 너무 듣기 좋았다. 온다연은 한참 동안 자리에 서서 넋을 놓은 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문밖에서 오토바이의 엔진 소리가 들리자 온다연은 유강후가 이미 나간 것을 발견하고 놀랐다.

그 후 오랫동안 온다연은 유강후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날 온다연은 유강후 앞에 무릎을 꿇고 미친 듯이 애원했지만 그는 무관심하고 냉정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제야 온다연은 유강후가 자신을 가엾게 여긴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유강후 같은 사람은 착할 리가 없다. 그는 피바람에 부는 세상에서 태어난 악의 꽃이다. 무자비하고 잔인한 행위를 많이 봤기 때문에 유강후는 그런 일에 능숙했다.

그렇기에 유강후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유강후는 곧 온다연 앞에 도착하여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어두운 눈빛으로 말했다.

“너 유씨 가문에서 나갔어?”

이 책을 계속 무료로 읽어보세요.
QR 코드를 스캔하여 앱을 다운로드하세요

최신 챕터

  • 도련님과의 위험한 사랑   제1885화 선의의 거짓말

    오후 방과 후 온다연은 한참이 지나서야 집에 돌아왔다.집 안으로 들어서자 유강후는 그녀의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찢어진 교복 치마를 단번에 보았다.얼굴에도 옅은 긁힌 자국이 있었다. 귀 옆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에 가려져 있었지만 그의 눈은 놓치지 않았다.그는 아무렇지 않은 듯 다가가 그녀의 손에서 책가방을 받아 들었다.“체육 시간에 넘어졌어?”온다연은 시선을 피하며 그를 똑바로 보지 못했다.“네... 달리기하다가 넘어졌어요.”그녀는 말하면서 두 손을 등 뒤로 돌려 꽉 움켜쥐었다.‘거짓말이네.’그녀는 거짓말을 할 때마다 손을 뒤로 숨기는 버릇이 있었다.지금 모습만 보면 다툼이 있었던 것처럼 보였지만 온다연은 원래 얌전한 성격이라 먼저 문제를 일으킬 리가 없었다.유강후는 마음속으로 판단했다. 만약 그녀가 누군가와 싸웠다면 반드시 상대방의 잘못일 것이다.게다가 이 학교는 그가 직접 투자해 세운 곳이었다.학생들 역시 집안이 좋고 품행이 단정한 아이들뿐이었기에 그녀를 괴롭히는 일이 생길 수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는 온다연의 얼굴에 남은 잔잔한 상처를 바라보며 자신이 정체를 숨긴 것을 후회했다.학교 측에 그녀와의 관계를 미리 알리지 않은 것도 후회가 되었다.오늘 또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한 건 아닐지 의심이 마음을 스쳤다.유강후는 마음속 분노를 억누르며 겉으로는 여전히 담담한 표정을 유지했다.그는 다연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말했다.“가서 씻고 옷 갈아입어. 오늘 장 집사가 네가 좋아하는 탕수육이랑 소고기볶음을 준비했어.”온다연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가방을 내려놓고 방으로 들어갔다.그 사이 유강후는 창가로 가 휴대전화를 들어 이권에게 전화를 걸었다.“다연이가 오늘 학교에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알아봐. 내일 아침까지 결과를 보고해.”잠시 후 다연은 하얀 원피스로 갈아입고 나왔다.잘록한 허리선은 부드럽게 곡선을 드러냈고 치맛자락은 무릎까지 내려왔다.밝은 조명 아래 드러난 하얀 종아리는 눈부시게 빛났지만 무릎 위에는 작은

  • 도련님과의 위험한 사랑   제1884화 불필요한 의심

    만약 유강후가 단순히 온다연을 돈으로 사려는 사람이었다면 며칠 동안 병원 한 층 전체를 통째로 쓰는 막대한 비용만으로도 이미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게다가 그가 가져다준 옷과 생활용품은 모두 명품이었고 주한은 그중 일부를 직접 본 적이 있었다.옷에 붙어 있는 여섯 자리 숫자는 선명했고 그 사실만으로도 이제 온다연이 앞으로는 분명 더 나은 삶을 살게 되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며칠이 흐른 뒤 온다연의 눈은 마침내 사물을 분간할 수 있을 만큼 회복되었다.여전히 유강후가 조금은 두려웠지만 적어도 곁에 있는 것을 허락했고 가끔은 품에 안기는 것도 받아들였다.그 무렵 유강후는 사람을 시켜 가짜 입양증을 준비했다.온다연은 자신이 이제 그의 보호 아래 있게 되었다고 믿게 되었고 그 뒤로는 한층 더 마음을 열었다.여전히 말수가 적고 지나치게 얌전해서 안쓰럽게 보였지만 가끔은 먼저 다가와 두어 마디 말을 건네기도 했다.퇴원 후 온다연은 어머니를 보러 가고 싶다고 했다.무덤 앞에서 오열하다 거의 기절할 뻔했고 결국 유강후가 그녀를 안아 돌아왔다.그는 온다연을 전통 한옥으로 데려갔고 장화연에게 단 한 마디만 남겼다.“지금부터 연서와 다연에게 똑같은 태도로 대해야 해. 앞으로 다연이가 유씨 가문의 여주인이야.”장화연은 큰 충격을 받았지만 더 묻지 않고 공손히 “네.”라고 대답했다.그러나 전통 한옥으로 돌아온 온다연은 다시 큰 병을 앓았다.그 기간 내내 유강후는 업무를 전부 전통 한옥으로 옮겨 밤낮으로 곁을 지켰다.이권 또한 거의 상주하다시피 하며 바람만 불어도 곧 달려와 대기했다.그렇게 몇 달을 정성껏 돌본 끝에 여름이 저물고 가을이 다가올 무렵 온다연의 몸은 조금씩 회복세를 보였다.개학 전날 온다연은 마당의 큰 나무 아래 얌전히 앉아 있었고 유강후는 그녀의 앞머리를 다정하게 다듬어 주고 있었다.온다연은 거울을 보더니 불만스러운 얼굴로 입술을 내밀었다.“아저씨, 머리 너무 짧아요. 예쁘지 않아요.”가위를 멈춘 유강후는 그녀의 작은 얼굴을 들어

  • 도련님과의 위험한 사랑   제1883화 잃어버렸던 세계

    유강후는 온다연을 품에 꼭 안고 마치 세상 전부를 품은 듯 손에서 놓지 않았다.그녀의 몸은 깃털처럼 가벼워 무게조차 느껴지지 않았고 너무 야위어 품고 있는 팔이 아릴 정도였다.그는 눈가가 붉어지도록 마음 아파하며 떨리는 등을 토닥이며 다독였다.“다연아, 얌전히 있어. 이제 무서울 필요가 없어. 아저씨가 있으니까... 다시는 이런 슬픈 일 없을 거야.”곧 경찰이 도착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전서후였다.유강후를 발견한 전서후는 놀란 얼굴로 다가왔다.“유 도련님? 여기서 뵐 줄이야... 대체 무슨 일입니까?”그는 유강후 품에 안긴 온다연을 보더니 무언가를 깨달은 듯 물었다.“이 아이... 도련님이 아는 사람인가요?”유강후는 피와 살이 뒤엉킨 바닥을 잠시 바라본 뒤 온다연을 더욱 단단히 끌어안은 채 돌아섰다.“전 경찰관님, 이 일은 당신께 맡기겠습니다.”그가 발길을 옮기자 전서후가 급히 제지했다.“잠시만요. 경찰서로 가셔서 진술하셔야 합니다.”유강후는 차갑게 잘라 말했다.“안 됩니다. 다연이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제 변호사가 곧 도착할 겁니다. 모든 건 그 사람과 상의하세요.”군중을 빠져나오던 순간 저쪽에서 단정한 소년 하나가 숨 가쁘게 달려왔다.그 뒤에는 더 어린 남자아이까지 따라오고 있었다.두 아이는 유강후 옆을 스치듯 달려 지나갔다.불빛과 소란 속에서 유강후는 순간적으로 몸을 멈추며 고개를 돌렸다.“주한?”주한은 잠시 멈춰 유강후를 바라보았다.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의 품에 안긴 온다연을 본 순간 얼굴이 굳어지더니 그대로 달려가 손을 뻗었다.“당신 누구예요? 왜 다연이를 안고 있어요? 어서 내려놔요.”작은 몸집 키는 1미터50도 채 되지 않았지만 거의 1미터90에 가까운 유강후 앞에서 용감히 맞섰다. 마치 작은 어선이 거대한 항공모함을 향해 돌진하는 듯한 모습이었다.“뭐 하려는 거예요. 다연이 안 놓으면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그는 용감하게 뛰어올라 다연이를 끌어내리려 했지만 유강후는 한 손으로 온다연을 단단히

  • 도련님과의 위험한 사랑   제1882화 잃어버린 시간, 그녀를 찾아서

    이권은 깜짝 놀라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도련님, 혹시 열이 나신 건가요?”유강후는 차갑게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바로 처리해. 돈이 얼마 들든 상관없어. 반드시 해결해야 해.”이권은 어쩔 수 없이 대답했다.“네, 네.”유강후는 곧 온다연의 집 앞에 도착했다.그때 이곳은 아직 비교적 깨끗했고 허름하지 않았다. 분명 누군가 살고 있는 집이었다.그는 문 앞에서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잠시 후 뒤에서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꿈에서도 그리던 소녀가 있었다.봄날의 쌀쌀한 날씨였지만 소녀는 얇은 교복 한 벌만 입고 있었고 세탁으로 이미 색이 바래 있었다.귀에 닿는 단발머리 얇은 앞머리 왜소하고 겁먹은 모습이었다.그 정교한 작은 얼굴에는 피 한 점 없었고 이마에는 새 상처가 있었다.낯선 시선을 똑바로 마주한 소녀는 겁에 질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누구 찾으세요?”유강후는 온다연이 망가진 모습을 보며 마음이 찢어지는 듯 아팠다.그는 그녀를 안고 싶은 충동을 꾹 참으며 최대한 부드러운 표정을 지었다.“저는 새로 이사 온 이웃이에요.”온다연의 눈빛은 그가 입은 고급스러운 옷을 훑었고 명백히 믿지 못하는 표정이었다.유강후의 몸은 약간 떨렸다.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 온다연을 눈앞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이 순간부터 그의 소녀는 더 이상 고통받지 않아도 되었다.그는 온 세상을 그녀 앞에 바칠 각오였다.유강후는 어쩔 수 없이 조심스레 다가가며 물었다.“혹시 이름이 뭐예요?”온다연은 분명 그를 무서워했다.그가 단지 두 걸음 앞으로 나아갔을 뿐인데 겁에 질린 그녀는 몸을 돌려 달아났다.유강후는 그녀의 작은 등 뒤를 바라보며 당장이라도 달려가 안아주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그의 충동이 소녀를 놀라게 할지 두려웠고 동시에 이 모든 것이 거짓일까 봐 곧 깨어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까 두려웠다.그는 그렇게 한참 동안 제자리에 서 있었다. 그러다 이권이 다가왔다.이권은 일을 신속하게 처리했고 그날 오후 시

  • 도련님과의 위험한 사랑   제1881화 번외편 유강후의 꿈

    유강후는 꿈속에 있었다.아침의 첫 햇살이 방 안으로 스며들자 그는 천천히 눈을 떴다.습관처럼 옆자리에 손을 뻗었으나 그곳은 텅 비어 있었다.‘온다연이 벌써 일어난 건가?’이상한 불안감이 스멀스멀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는 급히 몸을 일으켰다.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낯익으면서도 낯설었다. 전통 가구 검은색 침대 시트 벽에는 유강후의 전통 무기 컬렉션이 가지런히 걸러져 있었다.이곳은 다름 아닌 소년 시절 그가 살던 유씨 가문의 방이었다.온다연과 함께한 뒤로 단 한 번도 돌아온 적이 없는데, 왜 하필 오늘 아침 이곳에서 눈을 뜬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설마 또 술에 취해 이곳으로 돌아온 건가?’그는 고개를 저었고 그것은 절대로 아니라고 생각했다.온다연을 찾아내 북미로 돌아간 일 그녀가 자신의 아이를 가진 상태였다는 사실까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그러나 가슴이 서늘하게 식어 내렸다.‘혹시... 온다연을 찾은 건 그저 꿈이었던 걸까? 사실은 그녀가 차가운 바다 속에서 이미 생을 마감했다는 걸까?’목구멍 깊숙한 곳에서 비릿한 맛이 치밀더니 입술 가장자리에 피가 번졌다.유강후는 침대 위에 주저앉듯 무너져 내렸다.‘다연아...’온다연이 세상을 떠난 지 3년, 이제는 더는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그는 무의식적으로 휴대전화를 집어 들어 그녀의 사진을 확인하려 했다.그러나 순간 이상한 점을 눈치챘다.손에 쥔 것은 이미 오래전에 쓰던 구형 휴대전화였고 화면에 떠 있는 날짜는 그가 열여섯 살이던 해 4월 20일을 가리키고 있었다.마치 누군가 장난을 치는 것 같았지만, 곧 그런 짓을 감히 자신에게 할 사람은 없다고 확신했다.그는 거의 반사적으로 욕실로 달려갔다.거울 속에는 소년 시절의 앳된 얼굴이 비쳤다. 풋풋한 기운이 남아 있는 믿을 수 없는 자기 모습이었다.그는 떨리는 손끝으로 얼굴을 더듬으며 목소리를 높였다.“장 집사, 장 집사.”잠시 후 장화연이 들어왔다.평소보다 훨씬 젊어진 얼굴에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 도련님과의 위험한 사랑   제1880화

    송하월은 눈앞에서 그가 죽어가는 모습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수 없었다.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마침내 구조대가 도착하자 그녀는 문을 가리키며 간절하게 외쳤다.“유민재, 유민재 씨가 안에 있어요...”그러나 말을 끝내자마자 힘이 빠져 기절하고 말았다.다시 눈을 떴을 때는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침대 곁에는 여동우가 앉아 있었고 그녀는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손과 목 다리 곳곳이 붕대로 감겨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녀는 목소리조차 거칠게 갈라져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여동우가 급히 그녀를 눌러 앉히며 조심스럽게 말했다.“말하지 마세요. 연기를 많이 들이마셔 폐에 손상이 갔습니다. 지금은 푹 쉬어야 해요.”그러나 송하월의 마음은 오직 유민재에게만 가 있었다. 쉰 목소리로 겨우 세 글자를 뱉어냈다.“유민재...”여동우의 표정은 무겁게 드리워 있었다.“유민재 씨는 아직 응급 치료 중입니다. 호흡기와 폐에 심각한 화상을 입었고 이미 감염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아마도...”그 말을 다 듣기도 전에 송하월은 침대에서 뛰어내리며 절규하듯 외쳤다.“유민재 씨를 보게 해줘요!”응급실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그중에는 그녀가 잘 아는 노인 백진구의 모습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눈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송하월은 오로지 응급실 문만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그녀의 마음속에는 단 하나의 간절한 바람만이 남아 있었다.어떤 일이 있더라도 유민재가 살아 있어야 한다는 것. 이번에도 그는 또다시 자신의 목숨을 구해낸 사람이었다.그녀는 또다시 그에게 빚을 지게 된 셈이었다.한 달 뒤 유민재는 중환자실을 나왔고 그 소식을 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병실로 찾아왔다.손님들은 한 차례 또 한 차례 다녀갔지만 정작 그가 가장 기다리는 이는 나타나지 않았다.그제야 세상에 그의 정체가 드러났다.백씨 가문의 상속자이자 한때 백랑특전부대의 최고 대령이었고 젊은 나이에 발휘한 뛰어난 능력과 세운 공적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그

더보기
좋은 소설을 무료로 찾아 읽어보세요
GoodNovel 앱에서 수많은 인기 소설을 무료로 즐기세요! 마음에 드는 책을 다운로드하고, 언제 어디서나 편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앱에서 책을 무료로 읽어보세요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