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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Auteur: 웃음광란
“역시 아직도 이 일 때문에 화가 풀리지 않았구나.”

유봉진은 추월녀에게 크게 실망했다.

“별것도 아닌 일로 이렇게까지 꽁해 있어야겠느냐?”

“대군 나리께서는 제 오라버니의 인생이 망가진 일이 그저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가 추월녀에게 실망한 만큼 추월녀 역시 그에게 극도로 실망했다.

과거 공정하고 사사로운 욕심이라곤 없던 유봉진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정말로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하신다면 다음에 선우원영더러 대군 나리를 칼로 찔러보라고 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그 장면을 상상하던 유봉진은 순간 아래쪽에 고통이 밀려오는 듯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깊은 무력감이 엄습했다.

“됐다. 너도 원영이를 칼로 찌르지 않았느냐. 얼마나 깊게 찔렀는지 모르지? 몸뿐만 아니라 자존심에도 상처를 입었다. 그 한 방 때문에 더는 자신이 완벽한 여인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단 말이다...”

“언제 완벽했던 적이 있었습니까?”

“추월녀!”

유봉진이 언짢은 기색을 드러냈다.

“너와 싸우고 싶지 않다. 지나간 일은 이제 여기까지만 하거라. 그리고 너와 추 장군이 군대를 무단이탈한 일은...”

“제가 폐하께 급히 전령을 보내 오라버니를 데리고 도성으로 돌아가 치료받을 수 있도록 윤허해달라 했더니 폐하께서 윤허하셨습니다. 하여 언제든지 떠날 수 있었습니다.”

추월녀는 유봉진의 잘생긴 얼굴을 보며 무뚝뚝하게 말했다.

“믿지 못하시겠다면 직접 입궐하여 폐하께 여쭤보십시오.”

유봉진은 두 눈을 부릅뜨고 그녀를 노려봤다. 추월녀가 몰래 뒤에서 이렇게 많은 일을 했을 줄은 몰랐다.

화가 났지만 그녀가 안고 있는 나무 상자를 본 순간 답답했던 감정이 조금 가라앉는 듯했다.

선물을 가져왔다는 건 화해할 마음이 있다는 뜻이었다. 유봉진이 그렇게 옹졸한 사람도 아니고 게다가 오늘 온 목적이 따로 있었기에 더 따지진 않았다.

“알겠다. 지나간 일은 다 잊도록 하자. 월녀야, 열흘 후면 우리의 혼례일이지 않느냐. 오늘 너에게 할 말이 있어서 왔다.”

추월녀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듣기만 했다.

유봉진은 말을 꺼내기 쉽지 않은 듯 망설였다. 하지만 혼례가 코앞이라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월녀야, 이 일은 본래 너와 상의할 필요가 없는 일이나 오랫동안 서로를 알고 지낸 정을 생각해서 얘기하는 것이다. 앞으로 모두 함께 평화롭게 지냈으면 좋겠구나...”

“선우원영과 혼인하고 싶다는 말씀입니까?”

추월녀의 긴 손가락이 나무 상자를 스쳤다. 하도 덤덤하고 조용해서 유봉진은 그녀가 무슨 생각인 건지 도무지 짐작할 수 없었다.

그녀의 입가에 비웃는 듯한 미소가 나타났다.

“보름 전 저에게 선우원영을 꼭 잊을 것이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유봉진은 고개를 돌려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추월녀의 미소에 당혹스러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

“월녀야. 너와 알고 지낸 시간 동안 난 늘 너를 존경해왔다. 하지만 예전에는... 남녀 간의 사랑이 무엇인지 몰라 너와 함께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착각했었다. 원영이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는 한숨을 내쉬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미안하구나, 월녀야. 난 원영이를 연모한다. 원영이야말로 내가 평생토록 원하는 유일한 여인이다.”

“대군 나리께서 역적의 여식과 혼인하는 걸 폐하와 서비 마마께서 허락하지 않으실...”

“원영이의 아비와 오라비가 저지른 잘못이지, 원영이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유봉진은 바로 그녀의 말을 가로챘다.

“이미 마음을 정하셨으면 직접 폐하께 간청하여 혼인을 허락받으실 것이지, 저는 왜 찾아오셨습니까?”

추월녀는 그의 어려움을 모를 리 없었다. 역적의 여식인 선우원영과 혼인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유봉진은 주먹을 꽉 쥐고 속으로 한참 동안 뭔가 생각하고 나서야 추월녀를 쳐다보았다.

추월녀는 여유롭게 차를 마셨다. 그녀가 여유로울수록 유봉진의 초라함이 더욱 부각되었다.

마침내 유봉진이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

“월녀야, 나는 본래 원영이하고만 혼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너와 오랫동안 알고 지냈고 또 나와 혼약을 취소한 것 때문에 너의 인생을 망쳐서는 아니 되지.”

추월녀가 눈썹을 치켜세웠다. 그녀의 완벽한 얼굴에 어떤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다.

“그래서요?”

“해서 혼인을 무르지 않고 원래 계획대로 너와 혼인하여 부부인이 되게 해주겠다. 허나 두 가지 조건이 있다.”

유봉진은 난처한 얼굴로 망설이다가 마음을 굳게 먹고 말했다.

“하나는 원영이를 첩으로 들이고 같은 날 혼례를 올리게 해달라고 아바마마께 직접 간청드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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