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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Author: 잿빛은하수
은하는 문자를 보고 순간 정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번호 끝자리 6666.

‘전 시어머니?’

그제야 그녀는 알아챘다. 문자 보낸 사람은 진양숙이었다.

은하는 반사적으로 거절하려다, 문득 생각이 바뀌었다.

‘늘 나를 ‘우리 정후한테 안 어울리는 여자’라며 무시하던 사람인데...’

‘설마 이제 와서 날 ‘구제’라도 하겠다는 건가?’

거절 문자를 지운 은하는, 곧장 한 글자를 보내고는 핸드폰을 내려놨다.

[네.]

10분 뒤.

은하는 블랙 롱드레스를 입고, 머리를 우아하게 틀어 올렸다.

차분한 발걸음으로 UM그룹 본사 1층 카페에 들어섰다.

예전 은하의 이미지는 ‘늘 정후와 석진 뒤에 서 있는 사람’이었다.

늘 양보하고, 말 없고, 어딘가 수수했던 모습 때문에...

유씨 가문의 사람들조차 그녀를 ‘평범하고 칙칙한 며느리’로 여겼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뽐내며 카페로 들어선 은하를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

주변 사람들은 그녀를 보며 속삭였다.

“어디서 저런 사람이 나타났지?”

진양숙도 마찬가지였다. 은하의 생기가 도는 얼굴을 보고는, 손에 든 커피잔이 잠시 멈췄다.

은하가 미소 지으며 건너편에 앉았다.

“또 뵙네요.”

진양숙은 눈빛만으로 은하를 관찰하듯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왜 보자고 했는지 알겠지?”

은하는 입꼬리만 살짝 올리며 말끝을 비꼬듯 말했다.

“혹시 저랑 정후 씨 이혼 문제 때문인가요?”

진양숙은 커피잔을 조용히 내려놓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목소리는 차분하고 점잖았다.

“네가 우리 정후한테 시집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수를 썼는지... 나는 다 알아. 석진이도 어느덧 컸고, 정후도 외국에서 돌아와 우리나라에 자리를 잡았고...”

“이제야 좋은 날 시작되려는 참인데, 왜 지금 이혼하겠다고 나서는지... 나는 도무지 이해가 안 돼.”

‘여전히 날 그렇게 본다 이거지? 내가 계획적으로 유씨 가문에 들어온 여자라고?’

‘내 노력은 전부 계산이라 믿고, 진심은 애초에 없었다고 보는 거네.’

은하는 그 말속에 배어 있는 냉소와 멸시를 놓치지 않았다.

“딱히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그냥 이제, 지쳤어요. 처음의 자리로 돌아가는 게 좋겠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진양숙은 순간 멈칫하더니, 깊은 눈빛으로 물었다.

“남채원 때문은 아니고?”

어젯밤 석진이 폭탄을 터뜨린 뒤, 진양숙은 정후의 동향을 따로 조사했다.

결과적으로, 정후와 채원이 계속 연락하고 있었다.

은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들고 진양숙을 바라봤다.

그 눈빛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진양숙은 오히려 조금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조언하듯 말했다.

“사실 그런 일에 너무 예민할 필요는 없어. 내가 너를 며느리로 아주 만족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 집안에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정후는 아직 젊고, 능력도 뛰어나. 그런 사람 곁에 여자들 좀 있는 건 당연한 일이잖아. 하지만 그 애가 책임 없이 행동할 사람은 아니거든.”

“네가 정후와 석진이만 잘 챙기면, 우린 너에게 손해 보는 일은 없게 할 거야.”

‘결국... 이혼은 안 된다는 거구나.’

‘아들 잘 잡고, 손자 잘 키우면 대접해 주겠다...’

‘나는 여전히 ‘관리 대상’이고, 이 가문의 ‘소유물’일 뿐이야.’

은하는 잔잔한 목소리로, 그러나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사람마다 인생에서 바라는 게 다르잖아요. 목표도 방향도 다른 사람들끼리 억지로 묶여 있으면, 결국 다 잃게 돼요. 사람도, 체면도, 가정도요.”

진양숙의 표정이 서서히 차가워졌다.

“넌 아직 어려서 잘 모를 거야. 지금 네가 누리고 있는 이 삶,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줄 알아? 이걸 스스로 버리겠다면... 아무것도 못 챙긴 채 나가는 수밖에 없을 거야.”

은하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담담하게 미소 지었다.

“충분히 생각했어요. 어머님께서 정후 씨 설득 좀 해주셨으면 해요.”

그 말에 진양숙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입을 꾹 다물고, 싸늘한 얼굴로 먼저 자리를 떴다.

은하도 자리를 정리하려는 순간, 채원이 어느새 다가와 있었다.

“언니, 진짜 언니 맞아요?”

회색 정장을 말끔히 차려입고, 단정하게 묶은 머리까지.

표정엔 놀란 듯한 기색을 담고 있었다.

은하는 고개를 천천히 돌리더니, 냉랭한 눈빛으로 채원을 올려다봤다.

“눈이 안 좋은 건가? 아니면 머리가 안 따라오는 건가?”

단 한 마디에 채원의 얼굴이 울긋불긋 달아올랐다.

‘이게, 예전의 그 ‘남은하’가 맞아?’

채원은 진양숙이 카페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회사 위층에서 급하게 내려왔다.

그런데 정작 사모님은 보이지 않고, 은하가... 그것도 예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설마 했는데... 진짜 남은하라고?’

고개를 돌린 은하의 얼굴을 확인하자, 채원은 속으로 욕이 튀어나올 뻔했다.

그녀는 손을 꽉 쥐었다. 관리받은 네일이 손바닥에 박힐 정도였다.

“어젯밤에 석진이한테 전화 왔어요. 형부랑 언니가...”

주변의 시선을 의식한 채원은 ‘이혼’이라는 단어를 꺼내지 못하고, 에둘러 말했다.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아서 걱정됐어요. 오늘 따로 찾아뵐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우연히 만나네요.”

은하는 느긋하게 미소를 지으며 채원을 바라봤다.

“그래? 생각보다 나한테 관심이 많았네?”

‘이건... 비꼬는 건가? 그냥 말하는 건가?’

채원은 잠시 그 말의 뉘앙스를 가늠하다가, 억지 미소를 지으며 은하 옆에 앉았다.

“언니, 어젯밤에 석진이가 얘기 다 해줬어요. 내가 석진이를 혼냈고요. 아이도 잘못했다고 했고, 오늘 언니한테 사과하겠다고 약속했어요.”

“언니도 알잖아요. 석진 아직 어려서 그런 말은... 진심이 아니라 그냥 실수였을 거예요.”

‘감정 자극해서 흔들리게 만들려고? 그 정도로는 이제 안 먹혀.’

은하는 가볍게 웃더니, 오히려 역으로 말했다.

“아니야. 굳이 사과 안 해도 돼. 나는 석진이 말이 맞다고 생각하거든.”

채원의 미간이 찡그려졌다.

그 눈빛에서 ‘계획에 없는 반응’에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

은하는 계속해서 부드럽게, 그러나 확실히 말했다.

“생각해 봐. 석진이 아플 때 내가 병원에 안 간 건 사실이고, 그때 넌 밤낮없이 아이 곁에 있었어. 그러니 당연히 석진 눈엔, 이모인 네가 ‘진짜 엄마’로 보일 수도 있어.”

“그리고 유정후 씨, 너도 그 사람 잘 알잖아. 그 사람은 석진이 생각 정말 많이 해. 그래서 네게 잘해주는 거겠지. 그게 고맙기도 하고... 어쩌면, 이제는 너한테 넘기고 싶은 마음도 생겨.”

‘이쯤이면 네가 뭘 노리고 있는지, 다 알겠지?’

채원은 살짝 눈썹을 치켜올렸다.

‘저렇게 솔직하게 말하는 날이 오네?’

은하는 잔잔한 얼굴로 몇 가지 사실을 더 던졌다. 석진의 병원 입원, 생일파티... 하나하나 들을수록 채원의 표정엔 미묘한 동요가 일어났다.

그 변화를 읽은 은하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본심을 툭 내던졌다.

“근데 말이지, 네가 아무리 석진이한테 잘해도, 석진이 엄마는 나야. 그리고 유정후 씨의 아내도 나고.”

“참 안됐다 싶더라. 1년 내내 옆에서 들러리 서느라 바빴을 텐데, 결국 손에 쥔 건 아무것도 없잖아?”

“그러니까, 지금부터라도 정신 차리고 두 사람 마음 확실히 붙잡아. 그래야 네가 유정후 씨 아내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거 아냐?”

‘결국 내가 말해줘야 깨닫는구나.’

‘너, 그 헛된 희망 붙들고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채원의 얼굴이 굳어졌다. 석진한테 잘해준 것도, 정후 곁을 맴돈 것도 다 그 자리를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걸 은하 입에서 들으니,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유정후 아내 자리를 두고 내가 물러설 것 같아? 절대 아니야. 끝까지 간다.’

채원은 입을 열어 뭔가 더 날카로운 말로 받아치려 했지만, 눈을 돌렸을 때 이미 은하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놀란 채로 출입구를 바라보니, 은하는 카페 문을 밀고 우아하게 걸어 나가고 있었다.

채원은 입꼬리를 비틀며 냉소했다.

‘잘난 척은... 곧 네가 어떤 꼴 당하게 될지 보라고.’

“손님, 계산은 카운터에서 부탁드립니다.”

막 나가려던 채원이 카페 직원에게 붙잡혔다.

“전 아무것도 주문 안 했는데요?”

“방금 앉으셨던 자리에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있었고요, 방금 나가신 분이 오렌지 라테 한 잔 더 주문하셨어요. 손님이 가족이라면 같이 계산한다고 하셨습니다.”

채원은 이를 악물며 핸드폰을 꺼내 결제했다.

‘진짜 마지막까지 사람 열받게 하네.’

숨을 깊게 들이쉬고 마음을 진정시킨 채원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추가로 포장 주문한 뒤, 정후가 있는 사무실로 향했다.

...

채원은 정후의 책상에 음료를 내려놓으며 은근히 말을 흘렸다.

“형부, 아까 로비에서 은하 언니를 봤어요. 형부 어머님이랑 카페에서 만난 것 같더라고요.”

채원은 걱정하는 척하면서도, 속으론 정후와 이혼하겠다는 결심을 굳힌 은하가 시어머님쯤은 안중에도 없는 사람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다.

이걸 들은 정후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드디어 본심을 드러냈군. 이혼한다고 해도, 결국 나한테 관심 있다는 거잖아.’

은하는 평소엔 화장도 잘 안 하고, 늘 수수했는데, 오늘은 머리를 곱게 올리고, 옷차림도 달라졌다.

‘시어머니까지 이 카페로 부른 건... 내가 알게 하려는 거지?’

‘자기가 달라졌다는 거. 나 없이 못 살 거라는 거.’

정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래, 넌 절대 날 떠날 수 없어.’

그날 이후로, 정후는 채원을 그림자처럼 데리고 다녔다.

사무실 복도는 물론, 회의실도, 식당도.

급기야 점심시간에는 전 직원이 보는 앞에서 2층 프라이빗 룸에서 채원과 단둘이 식사까지 했다.

“둘이... 요즘 뭐야?”

“우리 대표님, 원래 저런 분 아니었는데...”

“...”

사내 분위기는 수군거림으로 가득 찼다.

...

그 시각, 은하는 집에 앉아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며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슬슬 판이 깔렸네. 이제 시작이야.’

그런데 그때, 또다시 울린 전화 한 통.

‘성예그룹?’

은하의 눈빛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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