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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Author: 잿빛은하수
“해외 연수... 제가 합격했다고요?”

은하는 자신이 방금 들은 말을 믿을 수 없어서 다시 한번 확인하듯 되물었다.

[네, 남은하 씨. 제출하신 디자인 포트폴리오가 매우 우수해서요. 여러 차례 심사를 거쳐 최종 연수 대상자로 선정되었습니다.]

[지금부터 3일 내로 관련 서류들을 준비하셔서, 안내해 드릴 메일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행정 절차가 끝나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유정후가 어떻게든 막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쉽게 합격할 줄 몰랐어!’

혹시라도 준비 과정에서 실수가 있을까 싶어, 은하는 상대방에게 자료 목록을 정리해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확인 메일과 첨부 파일이 도착한 후에야, 은하는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성예그룹이... 날 밀어줬다고?’

‘설마 유정후가 막지 못했나? 아니면 일부러 가만히 두는 건가?’

들뜬 마음을 눌러가며, 은하는 프린트된 체크리스트를 들고 집 안 서류들을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여권이 없었다.

잠시 기억을 더듬던 은하는, 작년 이맘때 정후와 해외 휴양지를 예약해 뒀다가 결국 함께 가지 못했던 일을 떠올렸다.

‘그때 두 사람 여권을 따로 챙겨둔다고 했었지.’

‘그래서 내가 안방 서랍에 넣어놨었는데...’

은하는 결국 여권을 찾기 위해 정후의 별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녀가 현관문을 통과한 직후, 그 소식은 곧장 집사에 의해 정후에게 전달됐다.

정후는 전화를 끊고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정리한 뒤, 비서에게 말했다.

“차 준비해. 석진이 데리러 간다.”

...

은하는 그런 상황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평소처럼 익숙한 발걸음으로 안방으로 향한 그녀는, 서랍을 열어 여권을 꺼냈다.

그러나 방에서 나와 거실로 향하던 순간, 집사가 경호원 두 명을 데리고 그녀 앞을 막아섰다.

“사모님, 잠시만요. 이 집의 모든 물품은 대표님의 소유입니다. 대표님의 허락 없이 무단으로 방에 들어가 물건을 뒤지신 건, 저희로서는 그냥 넘어갈 수 없습니다.”

은하는 발걸음을 멈추고 반발적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녀는 눈앞의 사람들을 위아래로 스캔하며 생각했다.

‘저 집사... 낯선 얼굴이네.’

‘전생엔 내가 집안일을 다 챙겼으니, 굳이 사람 붙일 필요도 없었지.’

‘아, 이번에 내가 사라지자마자 새로운 인원을 들였단 거네.’

‘이 집을 지키는 건 더 이상 내가 아니라는 뜻이지.’

은하는 비웃듯 웃으며 입을 열었다.

“사모님이라고 부르는 걸 보니, 내가 아직 유정후 대표의 아내인 건 아는 모양이죠? 그럼 이 집도, 여기 있는 물건들도 우리 부부의 공동 소유인 셈입니다. 난, 당연히 뭐든 찾아서 가져갈 권리도 있는 거고요.”

그러나 집사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그 태도는 명백했다. 즉 정후가 아니면, 누구의 말도 듣지 않겠다는 것.

‘하, 결국 이렇게 나오는구나.’

‘결혼은 했지만 권리는 없고, 이혼은 못 해도 남의 집이라는 거네.’

은하는 여권을 손에 쥔 채, 냉정하게 집사와 경호원들을 바라봤다.

‘좋아, 당신들이 뭘 지키려는지 지켜보자.’

‘이 싸움,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야.’

은하는 더는 말싸움할 생각도 없이, 현관 옆 소파에 느긋하게 앉아버렸다.

“이미 유정후 씨한테 연락했겠죠? 그럼, 기다릴게요.”

‘어차피 곧 나타나겠지. 그 사람은 이런 상황 절대 놓치는 성격이 아니니까.’

...

10분쯤 지난 후, 아래층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리고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정후의 키 크고 반듯한 실루엣이 침실 문 앞에 나타났다.

“대표님.”

집사와 다른 두 경호원이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정후는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짧게 명령했다.

“내려가 있어.”

집사와 경호원 두 명이 자리를 뜨자, 정후는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은하의 차림새를 확인하는 순간, 발걸음이 아주 잠깐 느려졌다.

‘역시... 이렇게 꾸미고 온 건, 기세 죽이고 들어오겠다는 뜻이겠지.’

은하는 그런 정후를 흘긋 바라보고는, 핸드폰을 스르륵 내려두고 다리를 꼰 채로 여유롭게 말을 꺼냈다.

“당신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내가 허락 없이 들어와서 당신 물건을 훔친 거 아니냐고요.”

“근데 난 내 개인 물건만 챙겼고, 나머지는 건드린 적 없어요.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요?”

정후는 앉지도 않고, 은하 정면에 놓인 캐비닛에 기대섰다.

표정은 담담했고, 눈빛은 느슨했다.

“집사 말이 틀린 건 아니지. 여기 대부분은 내 개인 물건이니까. 의심받을 만한 이유는 충분하지 않아?”

‘그럴 줄 알았어. 결국 당신은 언제나 자기편만 드는 사람이지.’

은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잔잔한 목소리로 되받았다.

“그 말을 들으니까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네요. 그럼 난 ‘절도 혐의’가 있어 ‘10분간 불법 감금’당한 피해자로서 이 상황을 인터넷에 올려도 되는 거죠? 난 양심의 가책 따윈 느끼지 않을 거 같은데요.”

정후의 눈빛이 순간 딱 멈췄다. 기댔던 상체가 본능적으로 반듯하게 펴졌다.

“뭐라고?”

은하는 조금 전 영상 업로드를 마친 핸드폰을 살짝 흔들었다.

“이미 업로드 완료. 과연 누가 먼저 나서서 신고해 줄까요? 궁금하네요?”

정후의 얼굴에서 핏기가 서서히 가시기 시작했다. 더는 말싸움할 여유조차 없이, 곧장 핸드폰을 들어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당장 모든 플랫폼에 연락해. 유씨 가문 관련 영상이든 뉴스든 전부 내리라고 해.”

명령을 마친 정후는 ‘이 정도로 쉽게 무너질 줄 알았냐’는 식으로 비웃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은하가 작게 웃으며, 정후의 마지막 여지를 짓밟았다.

“진짜 멍청하네요. 방금 그건 업로드가 아니라, 파일 어시스턴트에 백업한 거였어요. 그것도 모르고 호들갑 떠는 거 보니까, UM그룹 대표 자리는 어떻게 유지하고 있는지 신기하네요.”

‘유정후, 항상 당신이 한 수 위라고 생각했을 거야. 하지만 그 착각, 이제 슬슬 깨질 때도 됐어.’

정후의 얼굴이 순식간에 시커멓게 굳어졌다.

말 그대로, 솥뚜껑처럼.

그는 단숨에 은하 앞까지 다가와, 상체를 기울여 그녀를 눌렀다.

짙은 눈동자엔 검은 파도가 일렁이고 있었다.

“남은하, 지금 나 갖고 노는 거야?”

‘이 거리, 너무 가까워.’

은하는 몸이 본능적으로 경직됐고, 망설임 없이 무릎을 들어 정후의 복부를 세게 찼다.

“큭!”

정후는 예상치 못한 공격에 숨을 몰아쉬며 소파에 휘청 쓰러졌다.

그 사이 은하는 재빨리 일어나, 침착하게 몇 걸음 물러섰다.

그제야 입을 열었다.

“맞아, 갖고 논 거야. 어때? 기분 더럽지? 그렇지만 너희 유씨 가문이 그동안 날 어떻게 대해왔는지 생각해 봐. 날 장난감처럼 돌려써도 넌 한마디 안 했잖아? 이제 와서 왜 발끈해?”

정후의 턱선이 단단하게 굳어졌다.

“이젠 하나밖에 없는 남편한테 반말까지 해? 남은하!”

은하도 지지 않았다.

“그래. 연애할 때부터 지금까지 당신이 나한테 존댓말 한 적이나 있었어? 내가 왜 곧 이혼할 사람한테 존댓말까지 해야 하는데?”

“당신... 진짜...!”

정후의 목소리가 떨렸다. 분노가 끝까지 차오른 얼굴이었지만, 순간 은하의 손에 들린 무언가를 본 정후의 눈동자가 멈칫했다.

“그게 뭐야?”

은하는 일부러 고개를 갸웃하며, 손에 든 걸 들춰 보였다.

“글도 못 읽어? 유 대표님, 여권이니까 안심하세요. 내 개인 물건만 챙겼고, 남의 거엔 손도 안 댔습니다.”

정후의 눈이 커졌다.

“당신 출국하려는 거야?”

‘눈치가 빠른 건지, 느린 건지...’

‘그래도 이젠 굳이 숨길 필요도 없어.’

은하는 슬쩍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회사 밑에까지 우리 어머님 모셔 와서 일부러 날 자극한 거, 당신이잖아?”

“이젠 봤으니까 됐지? 나한테도 숨 돌릴 시간 좀 줘.”

정후는 한껏 흐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 좀 하지 마. 그건 당신 어머니가 먼저 연락해 온 거였어.”

“그리고 당신 어머니, 우리 이혼에 아주 찬성하시던데? 당신이 피해자인 척하는 건 좀 역겹지 않아?”

이 말을 뱉은 은하는 실망스럽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래, 내가 또 착각했지. 이 사람, 나한테 미련 없지.’

‘오직 유씨 가문 이미지만 중요하지.’

정후의 얼굴엔 이젠 형용할 수 없는 차가움이 흘렀다.

“난 당신이랑 이혼 안 해.”

그가 유씨 가문의 이미지를 관리하려고 얼마나 공들여 세팅했는지를 은하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시점에서 ‘이혼’이라는 단어는 곧 리스크였고, 치명타였다.

하지만 은하는 흔들리지 않았다.

“당신은 할 수 있는 게 없어. 숙려 기간만 채운 후에 내가 소송 걸면 끝이야.”

정후는 마침내 깨달았다.

이번엔 진심이라는 걸.

은하가 정말, 이혼할 생각이라는 걸.

“지금까지는 당신이 충격받은 상태니까 봐준 거야. 계속 이러면, 진짜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날 거야.”

그는 다시 협박하듯 말을 꺼냈다.

은하는 비웃듯 대답했다.

“봐준 거라고? 당신 참 대단하다. 그 잘난 당신한테 내가 감사라도 해야 해?”

“잘난 척은 그만하고, 본인의 눈에 맞는 ‘좋은 여자’나 찾아. 한 입으로는 사랑 찾는다면서, 한 입으로는 체면만 따지는... 그게 바로 당신이잖아. 그릇도 안 닦고 다음 반찬 담으려는 남자... 짧게만 말할게. 당신, 별로야. 완전 비호감.”

정후는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해도 결국 은하의 화살은 ‘이혼’으로 돌아왔다.

‘이러다간 진짜... 내가 매달리는 것처럼 보이잖아.’

바로 그때, 정후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는 강박처럼 짧게 숨을 몰아쉬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당신... 먼저 나가 있어. 나중에 다시 얘기하지.”

‘그래, 잠깐 물러나. 어차피 당신 도망 못 가. 이 판, 아직 끝난 거 아니니까.’

은하는 속으로 조용히 눈을 굴렸다.

‘하, 정말 유정후는 뭐든 예상대로네.’

그녀가 1층으로 내려오자, 아직 유치원 원복을 입은 석진이 옆 복도에서 쏜살같이 달려 나왔다.

은하를 본 순간, 석진의 동그란 눈에 놀람이 스쳤지만, 그 표정은 곧 자신감과 오만으로 바뀌었다.

“흥! 엄마가 예쁘게 꾸미면, 내가 다시 받아줄 줄 알아? 지금은 예쁘고 착한 이모가 있으니까, 엄마가 아무리 울고불고 매달려도 안 쳐다볼 거야! 내가 아플 때 병원에 안 온 거, 이제 와서 후회해? 늦었어!”

‘이게 겨우 다섯 살짜리 입에서 나올 말인가.’

은하는 쓴웃음을 삼켰다.

‘애가 귀엽긴커녕, 어딘가 병든 자존심에 사로잡혀서 벌써 세상을 자기중심으로 돌리고 있네.’

‘다행이야. 이 아이한테 이제 정붙일 필요 없다는 걸... 스스로 확인시켜 주잖아.’

은하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차갑게 말했다.

“누가 후회한대? 예의도 없고 고마움도 모르는 애의 엄마 안 해도 된다는 게... 솔직히 너무 후련하던걸?”

“뭐?”

석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응에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더니 이내 얼굴이 새빨개지며,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엄마가 날 안 본다니까, 나도 엄마 같은 거 싫어! 나도 쓸모없는 엄마 필요 없어! 할머니 말이 맞았어!”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고, 아빠한테 피해만 주고, 나도 엄마 닮아서 쓰레기 될까 봐 무서워! 엄마는 엄마 자격도 없어! 여긴 우리 집이야! 엄마는 여기 들어오지 마! 나가!!”

은하는 방심한 틈을 타 석진에게 밀렸다.

균형을 잃고 휘청거리던 은하는 간신히 옆 테이블 모서리를 붙잡고 넘어지지 않았다.

“유석진, 당장 그만둬!”

은하의 호통이 날아들었지만, 화가 머리끝까지 난 석진은 듣지도 않았다.

밀어도 밀어도 안 넘어가는 은하에게 더욱 화가 난 석진은 울먹이면서도 온 힘을 다해 그녀를 밀어냈다.

“나가!! 엄마 나가라고 했잖아!!”

은하의 허리에 묵직한 충격이 몰려왔다.

‘진짜... 얘 때문에 골병들겠다.’

숨을 깊게 들이쉰 은하는 더는 참을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

‘이건 훈육이야. 누군가는 멈춰야 해.’

그 순간, 은하는 단호히 석진의 팔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단단히 마음먹고, 석진의 엉덩이에 강하게 한 대를 내려쳤다.

찰싹!

맑은소리가 거실에 울려 퍼졌다.

‘이건 분노가 아니라 경고야.’

‘누가 진짜 어른이고, 누가 아이인지 알아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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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후와 석진은 동시에 굳어졌다.그중에서도 석진은 놀란 얼굴로 정후의 품에 더 깊이 파고들며 속삭였다.“아빠... 나 엄마한테 안 갈래. 엄마 무서워...”정후는 아들을 팔로 감싸 안고, 차가운 시선으로 은하를 노려보았다.“지금 이 상황을 핑계 삼지 마. 오늘 일도 당신이 먼저 석진이를 자극해서 벌어진 거잖아.”은하는 냉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자극했다고? 좋아, 그럼 하나만 묻자. 이혼 얘기 나오기 전까지, 석진이 옆에 있던 사람 누구였지?”“애 열 날 때 밤새 붙잡고 있었던 사람 나고, 유치원 데려다주고 데리고 온 것도 나야. 그 모든 기록, 메시지, CCTV, 다 있어.”“나, 충분히 석진이를 양육할 능력 있어. 그럼 당신은? 당신은 대체 뭘 해봤어?”정후의 얼굴빛이 점점 싸늘하게 굳어졌다. 남자의 턱선이 딱딱하게 굳었고, 목소리엔 분노가 서렸다.“애가 어릴 땐 당연히 엄마 손이 필요하지. 하지만 지금 석진이는 다섯 살이야. 집에 가사도우미, 집사, 다 있고.”“당신 지금 무직 아닌가? 그리고 지금 가진 건 겨우 조그마한 집 하나. 그걸로 양육권을 가져가겠다고? 헛소리도 정도껏 해.”은하는 전혀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잔잔하게 웃었다.“당신, 중요한 걸 잊었네. 당신이 혼인 중에 바람피운 거.”그 말에 정후의 눈빛이 움찔 흔들렸다.“내 핸드폰에 당신이랑 남채원이 석진이랑 같이 다닌 사진 잔뜩 있어. 남의 가정 깨놓고, 아이까지 데리고 다닌 그 사진들...”“몇 장은 아주 친밀하게 붙어 있더라? 그걸 언론에 풀면, 당신 양육권은커녕 UM그룹 이미지도 끝장이야.”정후의 눈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감히... 당신이 그걸 공개하겠다고?”은하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단호하게 말했다.“응, 할 수 있지. 믿기지 않으면 한번 시험해 볼까?”정후는 숨을 내쉬었다.‘이 여자, 예전의 남은하가 아니야.’예전엔 무조건 참고, 무조건 물러섰던 은하였다.하지만 지금 눈앞의 여자는 단단했고, 날카로웠다.정후는 은하가 진심으로 자신을

  • 회귀녀의 복수는 우아하게   제25화

    정후는 은하가 가리킨 눈가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그제야 눈가에 옅게 퍼진 붉은 붓기를 발견하고는 이마를 살짝 찌푸렸다.잠시 침묵한 뒤, 품에 안긴 석진을 내려다보며 물었다.“석진아, 엄마 눈 다친 거... 네가 그런 거야?”석진은 입을 삐죽 내밀고 당장이라도 울음이 터질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대답도 하지 않았는데, 억울한 감정이 먼저 북받쳐 올라왔다.“울지 말고. 아빠한테 솔직히 말해.”정후의 단호한 목소리에 석진은 움찔했다.그제야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내가... 내가 그랬어. 근데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엄마가 자꾸 따라와서, 내가 화나서... 그래서 던졌어...”그러면서 손으로 자기 팔을 감싸 안았다.“흑흑... 근데 엄마가 진짜 날 때렸단 말이야...”“블록으로 여러 번이나! 너무 아팠어... 정말 아팠단 말이야...”정후는 석진의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주며 다시 은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아이 말 들었지? 석진이는 일부러 그런 게 아니래. 그럼 당신은? 당신도 뭔가 해줄 말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은하는 헛웃음을 터뜨렸다.‘이 상황에서도 사과를 요구해? 정말 진심이 궁금하긴 하다.’“나도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어.”은하의 무표정한 반응에, 석진은 분하다는 듯 울음을 터뜨렸다. “아빠, 엄마 무서워... 나 엄마 싫어. 아빠... 엄마랑 이혼하면 안 돼?”“엄마가 나 또 때릴까 봐 무서워... 엄마가 날 죽일지도 몰라...”은하는 그 말을 들은 순간, 무언가가 가슴속에서 뚝 끊어지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조금 전까지 남아 있던 미소의 흔적이 입가에서 굳어졌다.‘죽일지도 모른다고? 내가? 네 엄마가?’정후 역시 충격을 받은 듯했다. 얼굴이 일그러지며 낮게 말했다.“석진아, 그런 말은 함부로 하는 거 아니야. 엄마랑 아빠 일은 어른들이 알아서 할 문제야. 넌 걱정하지 마.”하지만 석진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울부짖었다.“아니야! 아까 엄마가 진짜로 날 데리고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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