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log in"운영 자료 먼저 보자는 뜻이었대요. 저희 셋이 가서 다 확인하고 왔어요. 내일은 이 상자보다 상품이 더 중요하니까 그거부터 부탁드려요.""알았어. 윤 대리는 왜 이렇게 급해?""지금부터 급해야 내일 안 급하죠. 어서요, 어서."해나는 직원을 포장실 쪽으로 보내고 문 앞에서 짧게 숨을 내쉬었다.도현은 웃음을 감춘 채 자기 자리로 향했다. 소율은 그 뒷모습을 보다가 시계를 확인했다."차 과장님. 수정 협상안은 오늘 안에 제출해 주세요. 수수료별 손익, 반품 비용 부담, 독점 조항을 제외했을 때의 공급안까지요.""네. 준비하겠습니다."도현은 곧바로 노트북을 열었다. 소율도 더 말을 보태지 않고 자기 업무로 돌아갔다.질투가 난다고 해서 불필요한 일을 시킬 생각은 없었다. 내일 협상에서 사용할 자료였고, 오늘 두 사람이 함께 확인한 빈칸이었다.그걸 아는 도현도 손을 늦추지 않았다.오후 5시 32분.회의실 스크린에 수정안이 올라갔다. 도현은 수수료와 판매량이 달라질 때 손익이 어떻게 바뀌는지 보여 준 뒤, 협상에서 지켜야 할 기준을 짚었다.소율이 한 항목에 표시했다."이 비용은 온담이 부담한다고 확정된 게 아니죠?""네. 그래서 별도 협의로 표시했습니다. 이 항목이 저희 부담으로 바뀌면 허용 가능한 수수료도 내려갑니다.""그럼 이걸 우선 확인하죠. 내일 답을 받아야 숫자를 확정할 수 있겠네요."해나는 두 사람의 설명을 듣고 준비 목록 옆에 물음표를 붙였다. 현장 직원들도 각자 담당할 항목을 확인했다. 회의는 필요한 이야기만 마친 뒤 끝났다."내일 출발 시간은 단체방에 다시 올릴게요! 샘플은 포장실 냉장 구역에 따로 모아 주세요. 개인 물건이랑 섞이면 제가 못 찾아요!"해나가 직원들과 함께 나가며 마지막까지 당부했다.복도에서 멀어지는 발소리가 잦아들자 도현이 노트북을 닫았다. 소율은 수정안을 파일에 넣으며 그를 봤다."수고하셨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것보다 빨리 끝내셨네요.""내일 쓰실 자료니까요.""네. 이대로 준비할게요."소율
도현이 아내를 봤다. 소율은 계속 메모만 읽고 있었다.일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는 표정을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됐다. 세라의 저녁 제안이 신경 쓰였다는 말을 입 밖에 내는 것보다, 확인할 항목을 하나씩 묻는 편이 쉬웠다.도현은 그녀가 펼친 메모 끝을 가볍게 짚었다."업무 확인은 지사에 도착해서 계속하셔도 됩니다.""이동 중에 정리하면 시간이 절약되잖아요.""그렇군요."순순히 물러나는 대답이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은 전혀 다른 쪽으로 갔다."백 이사님은 제 자료를 높게 평가하신 것 같습니다. 직접 만나고 싶다는 말씀도 하시고요."운전석에서 해나의 손가락이 운전대를 톡 눌렀다.'그 말을 왜 지금 해요!'소율이 메모에서 눈을 들었다."자료만 평가하신 건 아닌 것 같던데요.""그러면 어떤 부분일까요?"도현은 정말 궁금하다는 듯 고개까지 기울였다. 소율은 남편의 눈에 걸린 장난기를 보고 입술을 눌렀다.뻔히 알아 놓고 자기 입으로 말하게 할 생각이었다.차를 세워 둘만 이야기할 수도 없고, 해나가 운전 중인 차 안에서 남편 팔을 붙잡고 따질 수도 없었다.소율은 대신 가운데 좌석 앞쪽으로 발을 조금 옮겼다. 도현이 그쪽으로 뻗어 둔 구두 앞코 위에 자기 구두를 얹은 뒤 천천히 힘을 줬다.꾹.도현의 말이 끊겼다. 아플 만큼 세게 밟지는 않았지만, 여기서 그만 놀리라는 뜻은 충분히 전해졌다.해나는 룸미러로 두 사람의 얼굴을 한 번 확인하고 오디오 음량을 올렸다.조용하던 차 안에 경쾌한 노래가 퍼졌다.'나한테는 안 들린다. 나는 도로만 본다. 도로가 이렇게 재밌을 줄이야! 아하하하!'도현은 구두를 빼지 않은 채 소율을 봤다."한 차장님. 제 구두는 왜 혼나는 겁니까?""주인이 자꾸 쓸데없는 말씀을 하시니까요.""말을 멈추면 풀어 주십니까?""일단 멈춰 보세요."소율은 결국 웃을 뻔한 입가를 메모로 가렸다. 도현이 그 틈을 보고 목소리를 조금 낮췄다."저녁 제안은 거절했습니다. 배우자가 있다고 말씀드렸고요.""알아요. 들었어요.
'동료 맞지. 출근도 같이 하고, 퇴근하면 옆방도 건너다니고. 아주 오래된 동료지.'세라는 더 묻지 않고 제안서에 표시했다."좋습니다. 28퍼센트를 그대로 받겠다고 하면 오늘 이야기가 끝나겠네요. 대신 낮출 근거는 더 필요해요. 상품 상태를 직접 확인하죠. 내일 공개 품평회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까?""평가 기준과 준비 수량부터 알려 주세요. 확인하고 답드리겠습니다.""바로 하겠다는 말은 안 하시네요.""준비할 수 있는 범위인지 봐야 약속도 지키죠."소율이 태연하게 답하자 세라가 이번에는 소리를 내어 웃었다."하하. 한 차장님, 꽤 까다로우시네요.""서로 비슷한 것 같아요."웃음이 오갔지만 제안서의 독점 조항에는 여전히 소율이 그은 선이 남아 있었다.회의를 잠시 쉬는 동안 해나는 온담 실무 직원과 샘플 반입 장소를 확인하러 나갔다. 소율도 평가 기준표를 받기 위해 회의실 밖 복사기 쪽으로 이동했다.도현은 회의실 안쪽 테이블에 자료를 정리하고 있었다.세라가 종이컵 두 개를 들고 들어왔다. 하나는 자기 앞에 놓고, 다른 하나는 도현 쪽으로 밀었다."차 과장님은 커피 드세요?""물로 충분합니다. 감사합니다.""어쩜, 거절도 정중하게 하시네요."세라는 권했던 컵을 자기 쪽으로 당겼다. 그러고는 의자를 빼 앉는 대신 테이블 옆에 가볍게 기대 섰다."그럼 오늘 저녁은 시간 어떠세요? 지금은 한 차장님이 협상을 너무 잘하셔서 차 과장님 얘기를 들을 틈이 없네요. 일 말고 다른 이야기도 궁금하고요."마침 문 앞으로 돌아오던 소율이 걸음을 멈췄다. 세라의 옆얼굴과 자료를 넣던 도현이 열린 문 너머로 보였다."업무 논의라면 한 차장님, 윤 대리님과 일정을 맞춰 주십시오. 개인적인 식사라면 어렵습니다."도현의 대답에는 망설임이 없었다.세라가 그를 똑바로 봤다."혹시 만나시는 분이 있으세요?""결혼했습니다. 배우자가 있습니다."서류를 쥔 소율의 손에서 힘이 조금 풀렸다. 남편이 어떻게 대답할지 걱정했던 것은 없었다. 그래도 실제로 저 말을
도현을 향해 웃는 얼굴에 사적인 호기심이 조금 섞여 있었다. 소율은 그 웃음을 보고 가방에서 제안서를 꺼냈다."오늘은 그 질문에 답을 받으러 왔습니다. 수수료 28퍼센트에 독점 공급까지 요구하신 이유부터 듣고 싶어요."세라의 시선이 곧장 소율에게 돌아왔다."판매망과 노출을 보장하는 조건입니다. 해담상품은 아직 전국 단위의 판매 실적이 부족하잖아요. 저희도 비용을 먼저 써야 하니까요.""판매 실적이 부족한 것과 다른 판로를 전부 막는 건 별개죠. 온담이 확보하지 않은 주문까지 저희가 포기해야 할 이유는 없어요.""같은 상품을 다른 곳에서 더 싸게 팔면 저희 광고비로 다른 채널을 키워 주는 셈이 되는데요.""가격 기준과 공급 물량을 협의하면 됩니다. 전체 독점은 어렵습니다."세라가 펜을 들었다. 조금 전까지 도현의 경력을 묻던 얼굴에서 웃음이 옅어졌다."그럼 한 차장님은 어떤 조건을 생각하고 오셨어요?"소율은 준비한 비교 자료를 테이블 가운데 놓았다. 검토 중인 다른 플랫폼의 수수료와 정산 주기, 최소 물량이 한 장에 정리돼 있었다."이 두 곳은 독점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온담의 고객층이 저희 상품과 더 잘 맞을 수 있다고 판단해서 먼저 찾아온 거예요. 다른 선택지가 없어서 온 건 아닙니다."해나가 물컵을 내려놓다가 소리를 죽였다.'오. 처음부터 세게 가시네.'세라는 비교표를 가까이 당겨 읽었다. 펜 끝이 한 플랫폼 이름 아래에서 멈췄다."여기는 배송 사고 처리 비용이 별도예요. 표면 수수료만 비교하면 저희가 비싸 보이죠."도현이 말없이 파일에서 한 장을 뽑아 소율의 오른쪽에 놓았다. 소율은 내용을 확인하고 곧바로 세라에게 넘겼다."그래서 실제 비용으로 다시 계산했습니다. 온담 쪽도 추가 포장비와 반품 회수비가 따로 붙더군요. 모두 넣어도 차이가 납니다."세라의 입가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같은 질문을 두 번 하게 두는 분들이 아니네요.""서로 시간은 아껴야죠."소율이 웃으며 답했다. 해나는 두 사람 사이에 놓인 물컵을 조용히
잠입 3주 차 월요일 오전, 해담지사 사무실.–차 과장님 한 분만 오시면 될 것 같은데요.스피커폰에서 흘러나온 말에 윤해나의 손이 멈췄다. 방문자 명단에 세 사람 이름을 적어 보내려던 참이었다.해나는 뻣뻣해져 삐걱거리는 고개를 들어 한소율을 봤다. 소율은 전화기 옆에 놓인 플랫폼 제안서를 읽다가 펜 뚜껑을 닫았다.소율은 회식 자리에서 남편의 휴대전화에 떴던 메시지를 떠올렸다. 온담 백세라 이사. 구체적인 조건을 차 과장과 단둘이 논의하고 싶다던 사람이었다.그날 도현은 현장 책임자인 한 차장도 함께 참석한다고 답장까지 보냈다. 그런데 방문 인원을 확인하는 전화에서 다시 한 사람만 오라는 말을 듣고 있었다.딸깍."백 이사님, 사업기획 책임자 한 차장입니다. 앞서 차 과장님이 답장드린 대로 저도 동행하겠습니다. 공급 범위와 판매 조건은 제가 결정해야 해서요."–아, 한 차장님. 반갑습니다. 차 과장님이 보내 주신 운송비 검토 의견이 흥미로워서 운영 조건부터 맞춰 보고 싶었어요.대답은 매끄러웠다. 다만 처음보다 한 박자 늦게 돌아왔다.–알겠습니다. 세 분 자리 준비해 둘게요. 그럼 오전 11시에 뵙죠.통화가 끝나자 해나가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회식 때 차 과장님께 단둘이 보자고 연락하셨던 그 이사님이시죠? 이번에도 한 분만 오시라고 하시네요."차도현이 테이블 건너편에서 자료를 넘겼다."추가로 보내 드린 자료를 보고 연락하신 것 같습니다.""자료는 차장님도 같이 준비하셨는데, 왜 자꾸 과장님만 찾으실까요."해나가 무심코 덧붙였다가 입을 다물었다. 소율이 제안서를 반듯하게 모으고 있었다. 평소와 같은 얼굴인데 종이 모서리를 맞추는 손이 유난히 꼼꼼했다.'괜한 말을 했나? 먼저 둘이 보자고 한 건 저쪽인데, 내가 왜 눈치를 보고 있지?! 아으!'문서실 단말기 위치가 확인된 뒤 4일이 흘렀다. 두 사람은 해당 컴퓨터의 기록을 보존하고 자료 접근 범위를 점검했다. 문서실은 여러 직원이 쓰는 공용 공간이었다. 지사장실과 이어져 있다는 사실만
마지막 배송 확인과 주문 정산까지 끝내고 나니 창밖이 다시 어두워져 있었다.수요일 오후 9시 20분.소율과 도현은 직원들을 먼저 돌려보낸 뒤 각자의 현관으로 관사에 들어왔다. 복도 불이 꺼진 것을 확인한 도현이 세탁실을 건너 201호 관리 문을 두드렸다.똑. 똑.대답이 없었다.문이 잠겨 있지 않아 조심스럽게 열자 거실 불이 켜져 있었다. 소율은 소파 한쪽에 기대 잠들어 있었다. 외투만 벗어 놓았을 뿐, 구두도 제대로 벗지 못한 채였다.도현이 소리를 죽여 다가갔다. 그녀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구두를 벗기자 발끝이 힘없이 내려왔다."이렇게 졸리면 들어와서 바로 침대에 눕지 그랬어."대답은 없었다. 눈 밑에 옅은 그늘이 내려앉은 얼굴을 보니 깨울 마음도 들지 않았다.그는 소파 아래에 구두를 가지런히 놓고 담요를 펼쳤다. 어깨까지 덮어 준 뒤 몸을 일으키려는데, 넥타이 끝이 아래로 당겨졌다.소율이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손가락으로 넥타이를 붙잡고 있었다."우웅... 어디... 가요...""202호. 당신 자는 것만 보고 가려고 했어.""으응... 가지 마요..."잠에 젖은 목소리였지만 잡은 손에는 힘이 들어갔다. 도현이 다시 소파 가장자리에 앉자 소율은 그제야 눈을 조금 떴다."오늘은 차 과장님보다... 남편이 더 필요해요."낮 동안 수십 번 불렀던 직급을 내려놓고, 지금은 곁에 있어 달라는 말이었다.도현이 그녀의 손에서 넥타이를 풀어 내는 대신 손등을 감쌌다."처음부터 남편으로 온 건데. 당신이 잠들어서 말도 못 걸었어.""그럼 지금 걸어요.""한소율 씨, 302상자 완판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