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CIAR SESIÓN강의실 앞에서 아이 하나가 길을 잃었다. 민서는 그냥 잠깐 도와줬을 뿐이었다. 그런데 아이는 민서의 손을 놓지 않았다. 울지도 않고, 떼쓰지도 않고, 민서만 보면 웃었다. 잠시 후 아이를 찾으러 온 남자를 본 순간, 민서는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이태건. 고등학교 시절, 이름만 들어도 뒷골목 냄새가 나던 남자. 그는 여전히 위험해 보였고, 여전히 무례했다. “우리 애가 사람 가리는 편인데.” “그래서요?” “너 마음에 들었나 봐.” 그 말이 시작이었다. 태건은 아이 핑계로 민서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부터 아이보다 그가 더 위험해졌다.
Ver más# 1화. 우리 애가 너를 골랐다
나는 대학교에 오면 인생이 조금은 달라질 줄 알았다.
고등학교 때처럼 등교할 때마다 복도 분위기를 살필 필요도 없고, 누가 누구랑 싸웠는지, 오늘은 또 어느 반 앞이 시끄러운지, 그런 쓸데없는 일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곳.
딱 그 정도의 평화를 바랐다.
거창한 꿈은 없었다.
새내기답게 동아리도 들어가고, 공강 시간엔 카페에서 과제도 하고, 마음 맞는 친구 한둘쯤 사귀고.
누가 봐도 평범해서 기억에도 잘 안 남는 대학생.
그게 내가 바라던 전부였다.
“유민서?”
출석을 부르는 조교의 목소리에 나는 손을 들었다.
“네.”
낮고 조용하게 대답하자, 조교는 별다른 관심 없이 명단에 체크했다.
다행이었다.
눈에 띄지 않았다.
첫 강의실은 생각보다 넓었다.
낯선 얼굴들, 아직 어색한 웃음, 새내기 특유의 들뜬 공기가 얇게 깔려 있었다. 누군가는 벌써 옆자리 사람과 인스타를 교환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교재 사진을 찍어 단톡방에 올리고 있었다.
나는 맨 뒷자리에서 한 칸 앞, 창가 쪽 자리를 골랐다.
너무 앞도 아니고, 너무 뒤도 아닌 자리.
눈에 잘 띄지 않으면서도, 교수님이 갑자기 질문을 던졌을 때 의심받지 않을 정도의 자리.
중간.
나는 늘 중간이 좋았다.
“너 혹시 신입생이야?”
옆에서 누군가 불쑥 말을 걸었다.
고개를 돌리자, 동글동글한 인상의 여학생이 생글거리며 나를 보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벌써 형광펜 세 개와 귀여운 캐릭터 필통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응. 너도?”
“응! 나 윤하린. 같은 과 맞지? 아까 단톡에서 이름 본 것 같아서.”
“유민서야.”
“아, 맞다. 유민서. 이름 예쁘다.”
말투가 참 쉽게 사람을 편하게 만드는 애였다.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고마워.”
“너 혹시 동아리 정했어? 오늘 점심시간에 부스 구경 갈 건데 같이 갈래?”
“아직은…… 잘 모르겠어.”
“그럼 같이 가자. 나 혼자 가면 이상한 데 가입할 것 같아.”
하린은 처음 만난 사람답지 않게 말을 잘했다.
정확히는 혼자 말하고 혼자 웃고, 내가 고개만 끄덕여도 대화가 굴러가는 타입이었다.
그 덕분에 첫 강의는 생각보다 빠르게 지나갔다.
문제는 두 번째 강의가 끝난 뒤였다.
“민서야, 우리 바로 밥 먹으러 갈까? 학식 맛없다는데 그래도 새내기니까 한 번은 먹어봐야 하지 않겠냐.”
하린이 가방을 챙기며 말했다.
나는 휴대폰 시간을 확인했다.
다음 강의까지는 두 시간 반.
점심을 먹고 도서관 위치만 확인하면 딱 좋을 시간이었다.
“응, 가자.”
그렇게 대답하고 강의실을 나서려던 순간이었다.
복도 끝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처음엔 착각인 줄 알았다.
대학 건물 복도에서 어린아이 울음소리가 날 리 없으니까.
하지만 그 소리는 분명했다.
“으아앙……!”
하린도 걸음을 멈췄다.
“어? 애기 울음소리 아니야?”
복도에 있던 학생들이 하나둘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모인 곳은 계단 근처였다.
작은 아이 하나가 벽에 기대선 채 울고 있었다.
세 살쯤 됐을까.
연한 베이지색 멜빵바지를 입고, 한쪽 운동화 끈이 풀린 채였다. 작은 손에는 자동차 장난감 하나를 꼭 쥐고 있었다.
주변 학생들은 당황해서 서로 눈치만 봤다.
“뭐야, 누구 애야?”
“교수님 애 아니야?”
“미아 아니야? 신고해야 되는 거 아냐?”
“아, 어떡해. 근데 나 애기 달랠 줄 모르는데.”
말은 많았지만 아무도 가까이 가지 않았다.
아이는 점점 더 크게 울었다.
목이 다 쉬어가는 소리였다.
나도 처음엔 그냥 서 있었다.
괜히 끼어들었다가 더 복잡해질까 봐.
누군가 보호자를 찾겠지.
누군가 조교를 부르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가 울면서 손등으로 눈을 비비는 순간, 발이 먼저 움직였다.
“민서야?”
하린이 내 이름을 불렀지만, 나는 이미 아이 앞에 쪼그려 앉고 있었다.
“안녕.”
아이가 울음을 멈추지 않은 채 나를 봤다.
눈가가 빨갰고, 코끝도 빨갰다. 얼마나 울었는지 작은 어깨가 계속 들썩였다.
나는 최대한 천천히 말했다.
“누구랑 왔어?”
“…….”
“아빠? 엄마? 선생님?”
아이는 대답 대신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러다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아빠아…….”
작게 새어 나온 말에 주변이 술렁였다.
나는 아이 눈높이에 맞춰 조금 더 몸을 낮췄다.
“아빠 찾고 있어?”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 이름 알아?”
아이는 훌쩍이며 장난감을 더 꼭 쥐었다.
“아빠…… 태…….”
말끝이 울음에 묻혔다.
나는 아이를 재촉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울 때 어른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빨리 대답하라고 몰아붙이는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딱히 육아 경험이 있어서가 아니라, 어릴 때의 내가 그랬다.
울고 있는데 자꾸 왜 우냐고 물으면, 더 울고 싶어졌다.
“괜찮아. 천천히 말해도 돼.”
나는 가방 옆 주머니에서 휴지를 꺼냈다.
“코 닦을래?”
아이는 잠깐 망설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휴지를 작게 접어 아이 코끝에 대 주었다. 아이가 어설프게 흥, 하고 숨을 내뱉었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잘했어.”
그 말 한마디에 아이가 울음을 멈췄다.
정말로, 뚝.
주변에 있던 학생들까지 조용해졌다.
마치 다 같이 숨을 참은 것처럼.
아이는 젖은 속눈썹을 깜빡이며 나를 올려다봤다. 그러더니 아주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내 손가락 하나를 꼭 잡았다.
작고 따뜻한 손이었다.
순간 심장이 이상하게 간질거렸다.
“어…….”
나는 당황해서 손을 빼지도 못하고 아이를 바라봤다.
아이는 내 손을 잡은 채 더 이상 울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전까지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울던 애가 맞나 싶을 만큼 얌전해졌다.
하린이 내 옆으로 다가와 입을 벌렸다.
“헐. 민서야, 너 뭐야? 애기 마스터야?”
“아니야. 나도 처음이야.”
“근데 왜 너한테만 진정해?”
내가 그걸 어떻게 알겠냐고 묻고 싶었다.
그때 아이가 내 손을 더 세게 잡았다.
“누나.”
작은 목소리였다.
나는 잠깐 멈칫했다.
“응?”
“가지 마.”
딱 세 글자였는데, 이상하게 가슴 한쪽이 약해졌다.
주변에서 몇몇 여학생들이 작게 탄성을 냈다.
“아…… 어떡해.”
“너무 귀엽다.”
“보호자 빨리 찾아야 하는 거 아냐?”
맞다.
귀여운 건 귀여운 거고, 보호자를 찾아야 했다.
나는 아이 손을 잡은 채 천천히 일어섰다.
“일단 경비실이나 학과 사무실에—”
그때였다.
복도 끝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아까와는 다른 침묵이었다.
아이 울음이 멈춰서 생긴 조용함이 아니라, 누군가의 등장 때문에 공기가 눌리는 느낌.
나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계단 아래쪽에서 한 남자가 올라오고 있었다.
검은 후드 집업.
짧게 정리된 검은 머리.
무심하게 내려앉은 눈매.
손에는 작은 파란색 아이 가방을 들고 있었다.
걸음은 급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가 한 걸음씩 올라올 때마다 복도에 있던 사람들이 조금씩 비켜섰다.
마치 몸이 먼저 알아보는 것처럼.
나는 그 얼굴을 본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잊을 리 없었다.
이태건.
고등학교 3년 내내, 이름만으로도 교실 분위기를 바꿔놓던 남자.
정학을 몇 번 당했다더라.
교문 밖에서 다른 학교 애들이랑 싸웠다더라.
선생님이 부모님을 불러도 아무도 안 왔다더라.
밤에는 더 위험한 사람들과 어울린다더라.
그에 관한 소문은 늘 흉흉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몰랐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어도 충분히 무서웠다.
키가 크고, 눈빛이 차갑고, 말수가 적은 애.
한 번 화나면 아무도 못 말린다는 애.
그래서 나는 고등학교 내내 그와 눈 한 번 제대로 마주친 적이 없었다.
정확히는, 마주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피해 다녔다.
그런데 왜.
왜 하필.
이 대학에서, 이 복도에서, 이 아이 손을 잡은 채로.
“도윤아.”
남자의 목소리가 낮게 떨어졌다.
내 손을 잡고 있던 아이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아빠!”
아빠.
그 말에 내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이태건이 아빠라고?
복도에 있던 학생들도 동시에 술렁였다.
“뭐야, 아빠래.”
“저 선배 애 있어?”
“이태건 아니야?”
“미친, 이태건 애 아빠였어?”
귓가로 속삭임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태건은 주변 시선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는 곧장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가까워질수록 기억 속의 이태건과 지금의 이태건이 겹쳐졌다.
고등학교 때보다 어깨가 넓어졌고, 얼굴선은 더 날카로워졌다.
눈빛은 여전히 차가웠다.
다만 달라진 게 있다면, 그 시선이 아이에게 닿는 순간 아주 짧게 흔들렸다는 것.
“어디 갔었어.”
그는 아이 앞에 한쪽 무릎을 굽혔다.
말투는 무뚝뚝했지만, 아이 어깨를 살피는 손은 조심스러웠다.
“아빠 없어져써…….”
“네가 없어진 거야.”
“아빠가 없어져써.”
“그래. 내가 없어졌다 치자.”
태건이 짧게 한숨을 쉬었다.
그 대화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더 이상했다.
소문 속 이태건은 누구에게도 져주는 법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지금 그는 세 살짜리 아이에게 지고 있었다.
아이는 내 손을 놓지 않았다.
태건의 시선이 그제야 내 손으로 내려왔다.
아이의 작은 손이 내 검지를 꼭 붙잡고 있는 걸 본 그의 눈썹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그 시선이 천천히 내 얼굴로 올라왔다.
나는 숨을 멈췄다.
알아볼까.
아니, 못 알아보겠지.
고등학교 때 나는 그의 눈에 들어갈 만큼 존재감 있는 애가 아니었다. 늘 뒷문으로 다녔고, 복도에서 그가 보이면 화장실로 숨었다. 같은 학교였다는 사실조차 모를 가능성이 컸다.
그런데 태건은 나를 똑바로 보더니 말했다.
“유민서.”
심장이 한 박자 늦게 뛰었다.
“……나 알아?”
묻고 나서 바로 후회했다.
태건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웃는다고 하기엔 차갑고, 비웃는다고 하기엔 묘하게 느슨한 표정이었다.
“같은 학교였잖아.”
“…….”
“3년 내내 나만 보면 도망가던 애.”
나는 얼굴이 홧홧해졌다.
기억하고 있었다.
왜.
왜 그런 걸 기억하는데.
하린이 옆에서 내 팔을 살짝 잡았다.
눈으로 묻고 있었다.
아는 사이야? 대체 무슨 사이야?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나도 알고 싶었다.
태건은 아이 가방을 어깨에 걸치고 다시 아이를 봤다.
“손 놔. 가야지.”
도윤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더니 내 다리 쪽으로 몸을 살짝 붙였다.
“누나도.”
“누나는 안 가.”
“가.”
“도윤아.”
태건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아이를 혼내는 건 아닌데, 어쨌든 엄한 목소리였다.
보통 아이들은 그 정도면 겁을 먹거나 울었을 텐데, 도윤은 오히려 내 손을 더 꼭 잡았다.
“누나도 가.”
복도에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또 한 번 웃음 섞인 탄성이 퍼졌다.
나는 당황해서 몸을 낮췄다.
“도윤아, 누나는 수업 들으러 가야 해. 아빠랑 같이 가야지.”
“싫어.”
“아빠가 찾으러 왔잖아.”
“누나.”
그 작은 목소리가 또 나를 붙잡았다.
난처했다.
정말 난처했다.
태건과 더 엮이고 싶지 않았고, 복도 한복판에서 사람들 구경거리가 되는 것도 싫었다. 무엇보다 ‘이태건의 아이가 내 손을 놓지 않는다’는 이 상황 자체가 너무 비현실적이었다.
태건은 한동안 아이와 나를 번갈아 보았다.
그 눈빛이 묘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아이를 잃어버린 보호자의 초조함이 있었는데, 지금은 다른 무언가가 섞여 있었다.
관찰하듯이.
계산하듯이.
아니, 어쩌면 흥미를 느끼듯이.
“너 애 잘 보네.”
“아니야. 그냥 잠깐—”
“도윤이 낯가림 심해.”
“…….”
“나 말고 손 잡은 사람 처음이야.”
그 말에 주변이 다시 술렁였다.
나는 괜히 목이 말라졌다.
“그건 그냥 애가 놀라서…….”
“놀라면 더 안 잡아.”
태건이 내 말을 잘랐다.
짧고 단호했다.
마치 아이에 관한 일만큼은 누구보다 잘 안다는 듯이.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도윤은 여전히 내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이 작은 손 하나 때문에, 나는 몇 년 동안 피해 다닌 남자와 복도 한복판에서 마주 보고 서 있었다.
평범한 대학 생활.
조용한 새 출발.
눈에 띄지 않는 중간 자리.
전부 첫날부터 망한 것 같았다.
“저기, 이태건 씨.”
나는 일부러 그의 이름을 또박또박 불렀다.
괜히 기가 눌리고 싶지 않았다.
“아이 찾았으니까 이제 가도 되죠?”
태건의 시선이 내 입술 근처에 잠깐 머물렀다가 다시 눈으로 올라왔다.
“씨?”
“……그럼 뭐라고 불러요.”
“예전엔 이름도 못 불렀잖아.”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느리게 웃었다.
이번엔 확실히 웃었다.
아주 짧고 낮게.
그런데 그 웃음이 이상하게 위험했다.
고등학교 때 그를 피해 다니던 이유가 한순간에 되살아났다. 저 남자는 가까이 가면 안 되는 사람이다. 웃어도 무섭고, 가만히 있어도 불안하고, 눈을 마주치면 괜히 내가 먼저 잘못한 것 같은 남자.
그런 남자가 지금 내 앞에서 아이 가방을 들고 서 있었다.
이 상황이 말이 되나.
“도윤아.”
태건이 아이를 불렀다.
도윤은 고개를 저었다.
“누나.”
태건은 잠시 침묵했다.
그러다 아주 자연스럽게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유민서.”
“왜요.”
“점심 먹었냐?”
“……네?”
“안 먹었으면 같이 가.”
순간 복도 공기가 통째로 얼어붙었다.
하린이 내 옆에서 숨을 들이켰다.
나는 정말로 귀를 의심했다.
“제가 왜요?”
“우리 애가 너 안 놓잖아.”
“그건 그쪽이 해결해야죠. 보호자잖아요.”
“해결 중이잖아.”
“그게 이거예요?”
“응.”
뻔뻔했다.
고등학교 때도 저랬나?
아니, 나는 그와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으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지금 이태건은 전혀 미안한 얼굴이 아니었다.
“싫어요.”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저는 모르는 사람 따라가서 밥 먹는 취미 없어요.”
“모르는 사람은 아니지.”
“거의 모르는 사람이죠.”
“같은 학교 3년.”
“말 한마디 안 해봤잖아요.”
“지금 하고 있네.”
말문이 막혔다.
하린이 뒤에서 작게 중얼거렸다.
“와…… 세다.”
누가 센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이태건 쪽이겠지.
나는 도윤의 손을 조심스럽게 풀려고 했다.
“도윤아, 누나는 진짜 가야 해.”
도윤의 눈가가 다시 붉어졌다.
큰일이다.
울려고 한다.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멈췄다.
태건이 그걸 봤다.
아주 정확히.
“봐.”
“뭘 봐요.”
“너도 못 가잖아.”
“…….”
“우리 애가 너를 골랐어.”
그 말이 이상하게 복도에 선명하게 박혔다.
우리 애가 너를 골랐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아이 하나가 손을 잡았다고 해서 내 인생이 달라지는 건 아니었다.
고등학교 때 피해 다니던 남자와 다시 엮일 이유도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누군가에게 선택받고 싶어서 대학에 온 게 아니었다.
나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
그런데 그때, 도윤이 내 손을 두 손으로 감싸 잡고 작게 말했다.
“누나, 가지 마.”
아.
나는 정말 약해졌다.
태건은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그 눈빛이 조금 전보다 더 깊어졌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그는 내 반응을 보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내가 아이를 밀어낼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니면 끝내 못 밀어내는 사람인지.
그리고 불행히도, 나는 후자였다.
“……밥만 먹는 거예요.”
결국 내가 말했다.
하린이 “미쳤다” 하고 입모양으로 외쳤다.
태건은 아이를 안아 들었다. 도윤은 한 손으로 태건의 목을 감고, 다른 손으로는 여전히 내 손을 잡고 있었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 자연스러워서 더 불편했다.
태건이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래.”
“밥만.”
“밥만.”
그가 순순히 대답했다.
그런데 왜인지, 그 말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
그는 나를 지나쳐 앞서 걷다가, 몇 걸음 뒤 멈췄다.
그리고 고개만 살짝 돌렸다.
“도망가지 마라, 유민서.”
내 발끝이 굳었다.
고등학교 때의 내가 다시 몸 안에서 숨을 죽였다.
복도 끝에서 그를 보면 반대쪽 계단으로 도망치던 나.
이름도 불러본 적 없는 남자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3년 내내 조용히 살던 나.
그런 나를, 이태건은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이번엔.”
그가 낮게 덧붙였다.
“애가 울잖아.”
도윤은 그의 품에서 내 쪽으로 손을 뻗고 있었다.
작고 따뜻한 손.
놓으면 울 것 같은 얼굴.
나는 그 손을 다시 잡았다.
그리고 그 순간, 캠퍼스 어딘가에서 누군가 우리 셋을 사진으로 찍는 소리가 들렸다.
찰칵.
나는 고개를 돌렸다.
사람들 사이에서 휴대폰 하나가 황급히 내려갔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내 조용한 대학 생활은, 입학 첫날 점심도 먹기 전에 끝났다.
# 특별외전 2화. 나를 선택한 사람- 태건시점 - 결혼 다음 날, 나는 민서가 도윤에게 차이는 모습을 보며 눈을 떴다.도윤의 발이 민서의 뺨 가까이에 놓여 있었다.민서는 아이의 발목을 잡아 이불 안으로 밀어 넣었고, 도윤은 잠든 채 다시 다리를 뻗었다.“도윤아.”민서가 낮게 불렀다.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나는 아이를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미안.”“네가 왜 사과해.”“내 아들이라며.”잠이 덜 깬 채 대답했지만 민서가 웃는 소리는 분명히 들렸다.이상한 아침이었다.도윤은 내 옆에서 자고 있었고, 민서는 같은 반지를 낀 채 내 침대에 누워 있었다.정확히 말하면 우리 침대였다.나는 아직도 그 단어가 낯설었다.우리 집.우리 방.우리 침대.민서를 처음 만났을 때는 절대로 가질 수 없다고 생각했던 말들이었다.처음 본 유민서는 지나치게 태연했다.길을 잃은 도윤을 붙잡고 있으면서도 울리지 않았고, 내가 나타났을 때 겁먹은 얼굴로 물러나지도 않았다.오히려 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도윤이 아빠 맞아요?”확신하지 못하는 목소리였다.도윤이 나를 아빠라고 불렀는데도 의심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맞는데.”내가 대답하자 민서는 도윤을 바로 넘겨주지 않았다.“그럼 아이가 왜 혼자 있었어요?”첫 만남부터 따졌다.나는 그게 싫었다.도윤을 잃어버린 사람은 나였고, 아이를 찾을 때까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는데, 처음 보는 여자가 내가 부족한 아빠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 같았다.“잠깐 놓친 거야.”“잠깐이어도 아이는 무서웠을 수 있잖아요.”민서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그래서 더 싫었다.나는 틀린 말을 하는 사람에게는 화를 낼 수 있었다.맞는 말을 하는 사람 앞에서는 내가 잘못했다는 사실부터 마주해야 했다.그런데 도윤은 민서의 손을 놓지 않았다.“누나도 가.”도윤이 말했다.나는 그 말이 불편했다.아이는 원래 낯선 사람을 쉽게 따르지 않았다.어린이집 선생님에게도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고, 처음 보는 사람이 가까이 오면
# 특별외전 1화. 내가 먼저 고른 사람-민서 시점 - 결혼 다음 날 아침, 내가 가장 먼저 본 것은 태건의 얼굴이 아니었다.도윤의 발바닥이었다.정확히는 내 뺨 옆에 놓인 작은 발이었다.나는 눈을 뜬 채 한동안 그 발을 바라봤다.어젯밤 분명 도윤을 가운데 눕혔다. 그런데 자는 동안 세로로 돌아간 모양이었다. 아이의 머리는 태건의 옆구리에 붙어 있었고, 두 다리는 내 쪽으로 길게 뻗어 있었다.“도윤아.”작게 불렀지만 대답은 없었다.발을 살짝 밀자 아이가 인상을 찌푸리며 다시 내 얼굴 쪽으로 가져왔다.결혼 첫날밤의 다음 장면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현실적이었다.나는 결국 도윤의 발을 붙잡아 이불 안으로 넣었다.그때 태건이 눈을 떴다.“왜.”“네 아들이 나 걷어찼어.”태건은 눈도 제대로 뜨지 않은 채 도윤을 자기 쪽으로 끌었다.“미안.”“네가 왜 사과해.”“내 아들이라며.”잠긴 목소리로 대답하는 얼굴을 보자 웃음이 나왔다.이런 아침을 내가 선택했다는 사실이 이상했다.이태건을 처음 봤을 때의 나는 절대로 상상하지 못했을 장면이었다.그날의 태건은 무서운 사람이었다.검은 옷.굳은 표정.사람을 믿지 않는 눈.그리고 처음 보는 아이가 그를 보자마자 달려가 안겼다.“아빠.”도윤이 그 한마디를 내뱉었을 때, 나는 내가 알던 세상의 규칙 하나가 무너지는 기분을 느꼈다.저런 사람이 아빠라고?그것도 저렇게 작은 아이의?나는 처음부터 태건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그가 도윤의 아빠라는 이유만으로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오히려 더 의심했다.아이는 왜 혼자 있었는지.태건은 왜 그렇게 늦게 나타났는지.아이를 제대로 돌보고 있는 것은 맞는지.지금 생각하면 태건 역시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봤을 것이다.자기 아이 옆에 붙어 있으면서 계속 따지는 여자.그런데도 나는 떠나지 않았다.도윤이 내 손가락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때는 아이를 두고 갈 수 없다는 생각뿐이었다.돌이켜 보면 내 인생의 방향을 바꾼 것은 대단한
# 외전 5화. 우리 애가 다시 골랐다 [외전완결]결혼을 정한 다음 날.태건과 민서는 하연을 먼저 만났다.장소는 도윤이 자주 가는 어린이도서관 근처 카페였다. 도윤과 하연의 정기 만남이 없는 날이라 세 사람만 마주 앉았다.하연은 민서의 왼손에 끼워진 반지를 발견했지만 먼저 묻지 않았다.태건이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우리 결혼하기로 했어.”짧은 말이었다.하연의 시선이 태건에게서 민서에게로 옮겨 갔다.놀란 표정은 오래가지 않았다.“축하해.”“고마워.”민서가 대답했다.하연은 물잔을 만지며 잠시 생각했다.“도윤이한테는 말했어?”“아직.”태건이 말했다.“너한테 먼저 알리기로 했어.”하연의 눈빛이 조금 흔들렸다.허락을 구하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도 도윤보다 먼저 자신의 귀에 들어왔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크게 다가왔다.“결혼하면 바로 달라지는 게 있어?”하연이 물었다.“생활은 지금이랑 비슷해.”민서가 대답했다.“이미 같이 살고 있으니까.”“도윤이 돌봄은?”“지금처럼 태건이가 주로 맡고요.”민서는 준비해 온 말을 천천히 꺼냈다.“저도 같은 집에서 생활하는 만큼 제가 선택한 범위에서는 함께할 거예요. 하지만 중요한 결정이나 하연 씨와의 일정은 두 분이 계속 직접 조율해 주세요.”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민서 씨한테 엄마 역할을 부탁할 생각은 없어요.”“알아요.”“도윤이가 결혼을 다르게 받아들일 수도 있으니까.”하연은 잠시 망설이다 덧붙였다.“엄마가 바뀐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그 부분부터 설명하려고.”태건의 목소리가 단단해졌다.“엄마는 그대로 너라고.”하연은 그 말을 듣고 시선을 내렸다.도윤의 엄마라는 자리를 확인받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자신이 그 자리를 온전히 지켜 온 사람도 아니었다.그런데 태건은 하연의 과거를 없던 일로 만들지 않으면서도 현재의 역할을 분명하게 인정하고 있었다.“가족식은 작게 하려고 해.”태건이 말했다.“가까운 사람들만 불러서 밥 먹는 정도로.
# 외전 4화. 이번에는 내가 고르는 약속토요일 오후.도윤은 준우네 집에서 열리는 생일 파티에 갔다.태건은 아침부터 몇 번이나 시간을 확인했다.“네 시에 데리러 가는 거 맞지?”민서가 물었다.“응.”“그럼 세 시간밖에 없네.”“결혼 이야기하는 데 세 시간이 부족해?”태건은 소파에 앉아 민서를 바라봤다.민서는 식탁 위에 서류 몇 장을 펼쳐 두고 있었다.태건이 눈을 가늘게 떴다.“그게 뭐야.”“내가 준비한 말.”“결혼 이야기하는데 서류가 필요해?”“필요해.”민서는 종이를 태건 쪽으로 밀었다.가장 위에는 두 사람의 현재 생활이 적혀 있었다.태건의 센터 근무와 소득.민서의 학업과 프로젝트 일정.공동생활비 분담.도윤의 양육비와 돌봄 체계.하연과의 정기 만남.태건은 문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이거 우리 집 구할 때 다 이야기한 거잖아.”“결혼하면 달라지는 게 있으니까 다시 보는 거야.”“뭐가 달라져.”“법적으로 가족이 되는 거.”민서는 옆에 놓인 자료를 펼쳤다.혼인신고 이후 달라지는 법적 관계와 재산 관리, 의료 상황에서의 보호자 지위, 주거 계약과 세금에 관한 기본적인 내용이었다.태건은 예상하지 못한 얼굴로 민서를 바라봤다.“이걸 다 알아봤어?”“응.”“언제.”“네가 계속 결혼 이야기할 때부터.”태건은 서류를 다시 내려다봤다.결혼이라는 말을 꺼낸 사람은 자신이었다.그런데 정작 결혼이 두 사람의 생활을 어떻게 바꾸는지는 깊이 알아보지 않았다.좋아하고, 함께 살고, 오래 곁에 있고 싶다는 마음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민서는 마음이 부족해서 자료를 준비한 것이 아니었다.오래 함께하기 위해 알아야 할 것을 외면하지 않은 것이었다.“결혼하면 내 빚도 네가 책임져야 해?”민서가 물었다.태건의 표정이 굳었다.“빚 있어?”“없어.”“그럼 왜 물어.”“서로 모르는 게 있는지 확인하려고.”민서는 질문 목록을 꺼냈다.학자금 대출.개인 채무.보험.저축.가족에게 정기적으로 보내는 돈.태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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