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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화. 처음으로 건넨 한 걸음

Auteur: 안나
last update Date de publication: 2026-10-08 07:01:36

이경환 사장과의 만남 이후, 지혜의 마음속에는 복잡한 파문이 일렁였다.

그동안 지혜가 알고 있던 민성은 부족한 것이 없는 남자였다.

그저 부유한 집안에서 아쉬울 것 없이 자라 제멋대로 구는 부잣집 자제쯤으로 여겼었다.

하지만 이경환이 보여준 냉혹하고 계산적인 태도, 자식을 향한 그 비뚤어진 부성애를 직접 마주한 뒤로는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저토록 서늘하고 메마른 아버지 밑에서, 민성은 과연 어떤 시간들을 버텨내며 살아왔을까.

‘우리 민성이는 어릴 때부터 제 엄마 없이 자랐고, 나 역시 아버지로서 제대로 된 정을 준 적이 없습니다.’

이경환의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자신은 비록 보육원에서 자랐지만, 묵묵히 손을 잡아주던 원장님과 같이 울고 웃던 친구들이 있었다.

그리고 언제나 곁을 지켜주는 주연이도 있었다.

하지만 민성에게는 그 흔한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줄 진정한 울타리조차 없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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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년의 계약, 당신을 모른채 사랑에 빠지다.   195화. 네사람의 저녁, 그리고

    퇴근시간이 가까워지자 민성은 평소보다 일찍 지혜의 복지센터 앞에 도착했다.차를 몰고 가는 그의 발걸음부터가 평소와는 다르게 붕 뜬 것처럼 가벼웠다.차에서 내린 그는 건물 입구가 잘 보이는 곳에 기대어 서서 몇 번이나 시계를 확인했다.잠시 후, 복지센터 유리문이 열리고 걸어 나오는 지혜의 모습이 보였다.언제나 뾰족한 가시를 세우거나 마지못해 차에 오르던 평소와는 달리, 오늘따라 지혜의 입가에는 은은하고 부드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많이 기다렸어요?”민성이 피식 웃었다.“지금 나 보고 웃은 거 맞죠?” 그 환한 미소를 본 순간, 민성의 가슴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조수석 문을 열어주며 민성이 툭 던지듯 물었다."오늘 얼굴 보니까 아주 기분이 좋아 보이네요?” 차에 올라탄 지혜가 안전벨트를 매자 민성이 말했다.“오늘은 우리 둘이 먹는 거 아니에요.”지혜가 그를 바라봤다.“그럼요?”“재혁이하고 주연 씨도 같이 먹기로 했어요.”순간 지혜의 얼굴이 밝아졌다.서울 중심의 고급 호텔 레스토랑.재혁과 주연은 먼저 도착해 있었다.“지혜야.”주연은 지혜를 발견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났다.지혜의 얼굴도 환해졌다.“주연아.”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서로를 끌어안았다.“며칠밖에 안 됐는데 왜 이렇게 오래된 것 같지?”“그러게.”“혼자 괜찮아?”주연의 첫 질문에 지혜가 웃었다.“괜찮아. 걱정하지 마.”그러더니 옆에 선 민성을 한번 바라봤다.“요즘 밥 굶을 틈도 없고.”주연의 시선이 민성에게 향했다.민성이 당당하게 말했다.“제가 열심히 먹이고 있습니다.”재혁이 피식 웃었다.“사람은 변하는 거야.”

  • 3년의 계약, 당신을 모른채 사랑에 빠지다.   194화. 처음으로 건넨 한 걸음

    이경환 사장과의 만남 이후, 지혜의 마음속에는 복잡한 파문이 일렁였다.그동안 지혜가 알고 있던 민성은 부족한 것이 없는 남자였다.그저 부유한 집안에서 아쉬울 것 없이 자라 제멋대로 구는 부잣집 자제쯤으로 여겼었다. 하지만 이경환이 보여준 냉혹하고 계산적인 태도, 자식을 향한 그 비뚤어진 부성애를 직접 마주한 뒤로는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저토록 서늘하고 메마른 아버지 밑에서, 민성은 과연 어떤 시간들을 버텨내며 살아왔을까.‘우리 민성이는 어릴 때부터 제 엄마 없이 자랐고, 나 역시 아버지로서 제대로 된 정을 준 적이 없습니다.’이경환의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자신은 비록 보육원에서 자랐지만, 묵묵히 손을 잡아주던 원장님과 같이 울고 웃던 친구들이 있었다.그리고 언제나 곁을 지켜주는 주연이도 있었다. 하지만 민성에게는 그 흔한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줄 진정한 울타리조차 없었을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동안 보였던 민성의 거칠고 오만한 태도들마저 뾰족한 가시 아래 숨겨진 거대한 외로움처럼 느껴져 깊은 안타까움이 밀려왔다.어쩌면…… 나보다 더 외로웠을거야.그 생각이 들자 마음 한구석이 아렸다.그날 오후.지혜의 휴대전화가 짧게 울렸다.화면에는 익숙한 이름이 떠 있었다.이민성지혜는 메시지를 열었다.‘오늘도 퇴근할 때 갈게요.’그리고 잠시 후 또 하나가 도착했다.‘저녁 같이 먹어요.’지혜의 손가락이 천천히 움직였다.‘네. 저녁에 봐요.’잠시 화면을 바라보다—전송 버튼을 눌렀다.그 시각.회사에 있던 민성은 휴대전화가 울리자 습관처럼 화면을 확인했다.지혜였다.민성의 손이 그대로 멈췄다.‘네. 저녁에 봐요.’“…….”민성은 한동안 아무

  • 3년의 계약, 당신을 모른채 사랑에 빠지다.   193화. 사랑받지 못했다고 사랑할 줄 모르는 건 아니에요

    처음에는 민성이 안타까웠다. 그런데 이경환을 바라보고 있자니— 눈앞의 이 남자 역시 안타까웠다. 자신이 아들에게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그 잘못을 바로잡는 방법조차 또다시 돈에서 찾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알 것 같았다. 민성이 왜 사람의 마음을 돈으로 해결하려 했는지. 누구에게 배웠는지가 너무나 분명했다. 지혜는 이경환의 눈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 보았다. “이경환 사장님.” 뜻밖에도 단단한 목소리에 이경환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말씀하시는 걸 들어보니…….” 지혜는 잠시 숨을 골랐다. “민성 씨가 왜 사람을 진심으로 믿지 못했는지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네요.” 이경환의 얼굴이 굳었다. “뭐라고요?” “사장님은 그 사람에게 단 한 번도 진심 어린 사랑이나 온기를 제대로 표현해본 적이 없으신 거군요.”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목소리가 서늘해졌다. 하지만 지혜는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돈은 필요 없습니다.” 이경환의 눈썹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얼마를 생각하고 계시는지는 모르겠지만 필요 없어요.” “…….” “그리고 한 가지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혜는 이제 그의

  • 3년의 계약, 당신을 모른채 사랑에 빠지다.   192화.당신은 내 아들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듣자 하니 요즘 그 녀석이 아가씨 주위를 맴돌며 성가시게 하는 모양인데…….” 이경환이 지혜를 똑바로 바라봤다. “두 사람은 정확히 어떤 관계입니까?” 지혜는 잠시 숨을 골랐다. “……민성 씨와는 깊은 관계가 아닙니다.” 지혜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냥 조금 아는 사이일 뿐이에요.” 이경환은 잠시 지혜를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의자에 기대었다. “그럼 다행이네.” 지혜의 눈빛이 미세하게 변했다. “무슨 뜻이신가요?” “아무 사이도 아니라니까 서로 복잡해질 일은 없겠다는 뜻입니다.” 그 순간— 처음부터 이 자리를 만든 이유가 분명해졌다. 이경환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가볍게 두드리며 준비해 둔 말을 꺼냈다. “김지혜 씨에 대해서 조금 알아봤습니다.” 지혜의 표정이 굳었다. “저를…… 조사하셨다고요?” “보육원 출신에, 임대아파트 거주.” 이경환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복지센터 직원.” 지혜의 손이 무릎 위에서 살짝 움켜쥐어졌다. 불쾌했다. 처음 만난 사람이 자신이 말하지 않은 인생을 아무렇지도 않게 늘어놓고 있었다. 그러나 지혜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 3년의 계약, 당신을 모른채 사랑에 빠지다.   191화. 손님

    주연이 떠난 뒤, 지혜의 집은 다시 고요를 찾았다.전에는 늘 혼자였기에 그것이 당연하다고 여겼지만, 주연과 함께 살며 온기를 나눴던 몇 달간의 시간 탓인지 요즘은 해가 진 뒤 텅 빈 집으로 돌아올 때면 묘한 공허함이 밀려왔다.현관문을 열어도—“왔어?”하고 반겨주는 사람이 없었다.거실의 불도 꺼져 있었고, 함께 늦은 저녁을 먹으며 하루 있었던 일을 나눌 사람도 없었다.예전에는 몰랐다.혼자 사는 것이 이렇게 조용한 일인지.그래서일까.요즘은 퇴근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복지센터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민성의 그 뻔뻔할 정도로 다정한 얼굴이 은근히 반갑고 고마웠다.퇴근시간이 가까워지면 자신도 모르게 창밖을 한번 바라보게 되었다.오늘도 왔을까.그의 차가 보이면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다.하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수요일 오전.지혜는 평소처럼 복지센터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다.아이의 상담기록을 정리하고 있는데 동료가 다가왔다.“지혜 씨.”“네?”“밖에 어떤 분이 찾아오셨어요.”“저를요?”“네.”지혜는 고개를 갸웃했다.약속된 상담이 있었나 생각했지만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밖으로 나가자 처음 보는 젊은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깔끔한 정장 차림이었다.“김지혜 씨 맞으십니까?”“네. 그런데요?”남자는 정중하게 명함을 내밀었다.“이경환 사장님 비서입니다.”지혜의 표정이 굳었다.이경환.“이민성 씨 아버님이십니다.”지혜의 손끝이 미세하게 굳었다.“저를 왜…….”“사장님께서 잠시 뵙고 싶어 하십니다.”지혜는 잠시 남자를 바라봤다.좋은 느낌은 아니었다.민성의 아버지가 자신을 왜

  • 3년의 계약, 당신을 모른채 사랑에 빠지다.   190화. 나한테만 좋은 아버지가 아니었다

    “그분이…… 아빠였어요?”주연의 놀란 목소리에 이창수는 조용히 딸을 바라봤다.재혁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주연은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아버지를 바라봤다.재혁이 어린 시절 자신을 도와준 사람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하지만 그 사람이 자신의 아버지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재혁은 다시 이창수를 바라봤다.“오래전 어린 저를 알아봐 주시고 손을 내밀어주셨던 그 순간부터…… 제 마음에 아버지는 늘 특별한 분이셨습니다.”식탁이 조용해졌다.“그 뒤로도 학교 다닐 수 있게 도와주시고, 제가 성적 잘 받으면 누구보다 먼저 잘했다고 해주셨잖아요.”이창수는 아무 말 없이 사위를 바라봤다.“그때는 제가 아버지를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될 거라고 상상도 못 했습니다.”재혁이 잔잔하게 웃었다.“그런데 지금은 정말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됐습니다.”그의 목소리가 조금 더 진지해졌다.“비록 돌고 돌았지만 이렇게 진짜 가족이 될 수 있어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이창수의 눈빛이 흔들렸다.잠시 후 그가 입을 열었다.“재혁아.”이창수가 처음으로 식탁에서 그의 이름을 편하게 불렀다.“나는 말이다.”잠시 주연을 바라본 그가 다시 재혁에게 시선을 돌렸다.“주연이에게 2년 전 그 일이 없었어도…… 언젠가는 너를 이 아이에게 소개해주고 싶었다.”이번에는 재혁도 놀랐다.“저를요?”“그래.”이창수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내 딸을 맡겨도 되는 사람이라고 오래전부터 생각했다.”주연이 아버지를 바라봤다.처음 듣는 이야기였다.“아빠…….”이창수는 딸의 시선을 마주했다.“다만 내가 방법을 잘못 선택했지.”주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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