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MELDEN사실 성이남은 이미 화한리조트에 도착해서 안으로 들어가던 중이었다. 그러다 로비에서 익숙한 뒷모습을 발견했다.걸음을 멈춘 성이남은 하려던 말을 곧바로 바꿨다.“아버지,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요. 조금 늦게 갈 것 같습니다. 지도교수님께 죄송하다고 전해주세요.”성준환이 이유를 묻기도 전에 성이남은 전화를 끊었다.그 사이 발걸음은 이미 노아리 앞에 와 있었다.“아리 선배.”노아리는 뜻밖이라는 듯 물었다. “너도 여기서 밥 먹어?”“응. 선배는?”“나도.”성이남은 잠깐 뜸을 들인 뒤 물었다. “누구 만나기로 했어?”“응.” 노아리는 따로 할 일이 있어서 성이남과 오래 이야기하지 않았다.성이남은 조금이라도 더 말을 나누고 싶었지만, 노아리에게 방해가 될까 봐 참았다.“그럼 볼일 봐. 다음에 같이 밥 먹자.”“그래.” 노아리는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성이남은 그 자리에 선 채 노아리의 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바라봤다.열흘 뒤면 노아리는 민도하와 약혼한다.그날이 지나면 성이남은 노아리의 세계에서 완전히 물러나야 했다.성이남은 여러 차례 묻고 싶었다. 민도하와 함께 있어서 정말 행복하냐고.하지만 그 질문은 번번이 목구멍에서 탁 막혔다.‘아마 행복하겠지.’민도하가 노아리를 얼마나 아끼는지는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을 만큼 분명했다.자기 명의로 된 회사 중 가장 수익이 큰 곳까지 아무 대가 없이 노아리에게 넘겼다.솔직히 성이남 자신은 그렇게까지 할 수 없었다.민도하에게 졌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기분이 가라앉은 성이남은 흡연실에서 담배를 피우며 마음을 추슬렀다....별실 안에서 강서이가 자신을 서한승의 친구라고만 소개했기에, 성준환도 더 묻지 않았다. 대신 고상만과 지난해 주식 퀀트 투자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생각할수록 고상만 교수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예전에 저희 그룹이 작은 회사에 불과했을 때 심각한 자금난이 왔었잖습니까.”“그때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교수님을 찾았는데, 교수님이 전략
성이남은 조금 전 양정원의 거절을 떠올렸다.너무도 단호했다. 마치 강서이가 아니면 누구와도 손잡지 않겠다는 태도처럼 느껴졌다.성이남이 최대한 좋은 조건을 내밀었는데도 양정원의 마음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성이남은 결국 직접적으로 물었다.“양 사장님은 강서이 대표님 때문에 저희와 협업하지 않으시는 겁니까?”양정원의 대답도 분명했다. “네, 그렇습니다.”“저는 양 사장님이 일과 사적인 감정을 분명히 구분하시는 분인 줄 알았습니다.”“맞습니다.” 양정원은 담담하게 인정했다. “다만 함께할 사람은 따져 봐야죠. 강 대표님은 저와 프로젝트를 이야기할 때, 처음부터 끝까지 사업을 직접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했습니다.”“반면 성 대표님과 노아리 본부장님은 계속 투자자 입장에서만 판단하고 계시고요.”“그게 두 분과 강 대표님의 차이입니다.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건 돈만이 아닙니다.”양정원의 태도는 확고했다. 성이남이 선택해야 한다는 의미였다.하지만 성이남은 노아리를 협업에서 빼고 싶지 않았다.호텔로 돌아간 성이남이 다음 방안을 생각하고 있을 때, 성준환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다.성준환은 내일 오후 B시에 도착해서 고상만 교수를 찾아뵐 예정이라며, 성이남도 함께 가자고 했다.성이남은 알겠다고 답했다....그날 저녁 강서이는 윤성미의 전화를 받았다. 사업계획서를 모두 읽어 봤는데 상당히 만족스럽다는 이야기였다.윤성미는 원래 지루하기 마련인 사업계획서를 어떻게 이렇게 재미있고 설득력 있게 썼는지도 물었다.강서이는 잠깐 생각한 뒤 답했다. “누군가 사업계획서는 ‘연애편지’라고 생각하면서 쓰라고 알려 줬거든요.”윤성미는 처음 듣는 비유라며 꽤 신선해했고 곧 그 말에 공감했다.사업계획서의 목적은 결국 투자자의 마음을 움직여 프로젝트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마음을 얻고 싶은 사람에게 편지를 쓸 때도 상대가 관심을 가질 부분을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마음을 끌고 선택을 받을 가능성도 생기
그제야 강서이는 민도하가 자기 뒤를 따라 별실 안으로 들어왔다는 걸 알아차렸다.“네.”“아니요.”두 사람의 대답은 정반대였다.심진호가 웃었다. “두 분, 미리 말을 맞추신 건 아닌가 봅니다.”강서이는 민도하가 왜 저러는지 알 수 없었고, 굳이 이유를 짐작하고 싶지도 않았다.“강 대표님, 한잔 받으시죠. B시 여성 자산가 1위에 오르신 거 축하를 해야죠.”손규원은 기분 좋게 웃으며 강서이에게 잔을 들었다.“손 대표님은 소식이 조금 늦으셨네요. 순위가 벌써 바뀌었습니다. 지금 1위는 민 대표님 약혼자인 노아리 본부장이에요.”심진호가 옆에서 알려 줬다.손규원은 정말 모르고 있었다. 순위가 바뀐 게 오늘 아침이었으니 그럴 만했다.“아이고, 제가 소식이 늦었습니다. 그래도 이 잔은 강 대표님께 꼭 드려야죠.”손규원은 웃으면서 사과했다.강서이는 차를 몰고 왔으니 술은 어렵다고 말하고 차로 대신 건배하려고 했다.그런데 누군가 먼저 손을 뻗어서 강서이 앞의 술잔을 가져갔다.강서이는 그 손에 아직 압박용 장갑을 끼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민도하가 말했다. “강 대표는 차를 가지고 왔을 겁니다. 이 술은 제가 대신 마시겠습니다.”강서이는 잠깐 멈칫한 뒤 민도하를 제대로 바라봤다.‘대체 무슨 생각이야?’‘내 술을 대신 마시겠다고?’‘지금 사람 잘못 본 거 아니야?’강서이가 거절할 틈도 없이 민도하는 잔을 들어 단숨에 마셨다.하지만 강서이는 전혀 고맙지도 않았다. 오히려 쓸데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했다.누가 자기 대신 술을 마셔 줄 필요도 없었다.“도하야, 여기 웬일이야?”강서이가 입을 열기도 전에 노아리의 목소리가 먼저 들렸다.지나가다가 민도하를 본 모양인지 노아리도 별실 안으로 들어와서 인사했다.‘둘이 같이 온 것도 아니었네.’“마침 노아리 본부장님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직접 오셨네요. 그러면 민 대표님도 노아리 본부장님과 같이 오신 겁니까?”심진호는 노아리에게 앉을 자리까지 내줬다.노아리는 웃으며 설명했다. “아니에
“양 사장님.”성이남은 들어오자마자 노아리에게 양정원을 소개했다.“아리 선배, 전에 말했던 양 사장님이야.”노아리도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잠시 어색해했다.하지만 곧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양 사장님과는 이미 아는 사이예요.”노아리는 먼저 손까지 내밀었다. “오랜만입니다, 양 사장님.”성이남은 오히려 반가워했다. “서로 아는 사이면 더 잘됐네.”양정원은 예의를 지켜 노아리와 악수했지만, 표정에는 별다른 반가움이 없었다.성이남은 온 신경이 노아리에게 쏠려 있어 양정원의 냉담한 태도를 알아차리지 못했다.“양 사장님, 전에 전화로 말씀드렸던 사람이 노아리 본부장님입니다. 해외에서 금융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대형 항만 인수 건도 직접 이끈 경험이 있어요.”“경력도 충분하고 실무 경험도 많습니다. 그래서 세 사람이 함께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양 사장님이 기술을 맡고, 제가 자금을 대고, 아리 선배가 사업 운영을 맡는 겁니다. 그러면 이 프로젝트는 반드시 잘될 겁니다.”성이남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하지만 양정원은 듣고 나서 가볍게 웃기만 했다.“성 대표님이 전화에서 말씀하신 좋은 방안이 이거였군요.”그 말에 깔린 차가움을 알아차리지 못한 성이남은 노아리를 더 적극적으로 추천했다.“아리 선배는 성공시킨 사업이 많습니다. 최근 출시된 모바일게임 ‘꿈결’도 아리 선배가 처음부터 운영을 맡았어요.” “사업을 운영하는 능력은 확실합니다. 인맥이나 자원 쪽도...”성이남은 말을 잠깐 멈췄다.민도하를 꺼내는 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개인 감정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결국 성이남은 말을 이었다.“인맥이나 자금 네트워크도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아리 선배 뒤에는 프라임로드투자의 민 대표가 있으니까요.”노아리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부분도 바로 그것이었다.양정원과 예전에 마찰이 있었다고 해도 사업하는 사람은 결국 이익을 따지게 마련이었다.성이남이 강하게 추천하고 민도하까지 뒷받침해 주는 상황이라면, 합리적인
“왜 그래?” 강서이가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김설이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오늘 아침에 자산 순위가 갱신됐는데, 여성 자산가 1위가 바뀌었어요!”강서이는 손가락 두 개를 굽혀 김설의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근무 시간에 또 딴짓했어? 비공식 순위니까 신경 쓰지 말라고 했잖아.”“원래는 안 보려고 했는데 새로 1위 된 사람이 너무 싫어요!”“노아리지?”김설이 멈칫했다. “어떻게 아셨어요?”아직 이름도 말하지 않았는데.강서이는 전혀 놀라지 않은 표정으로 오히려 농담까지 했다. “벌써 지분 이전 절차를 다 끝낸 걸 보면, 화상도 그렇게 심한 건 아니었나 보네.”‘다친 와중에도 영승반도체 지분을 넘기는 일부터 처리했다니...’‘민도하의 사랑은 참 대단하네.’강서이는 나가기 전에 김설의 머리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일이나 제대로 해. 나 나갔다가 오늘은 회사에 다시 안 들어와.”“술 드실 거면 저도 데려가세요.”“안 마셔.”김설이 안도하며 말했다. “그럼 다행이고요. 아, 대표님 며칠 안에 생리 시작하실 것 같으니까 찬 음식 너무 드시지 마세요. 생리대는 가방 안쪽 주머니에 넣어 뒀어요.”“확인.”강서이는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하는 습관이 있어서 이번에도 가장 먼저 자리에 도착했다.차를 몇 가지 주문한 뒤 느긋하게 사람들을 기다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미닫이문이 밖에서 열렸다.양정원인 줄 알고 미소를 지었던 강서이는 들어온 사람이 성이남인 걸 보고 표정을 거뒀다.별실 안의 강서이를 발견한 성이남의 반듯한 눈매에 차가운 불쾌감이 스쳤다.안으로 들이려던 발을 다시 문밖으로 빼더니, 위를 올려다보며 별실 이름부터 확인했다.방을 잘못 찾은 게 아니라는 걸 확인한 뒤, 강서이를 다시 볼 때는 눈빛이 더욱 냉랭해져 있었다.강서이는 그 반응만으로도 대강 누군지 짐작했다. 예의를 지키며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양 사장님은 조금 늦으신다고 했습니다. 성 대표님, 들어오세요.”성이남은 강서이를 무심하게 바라봤다. 강서이가
하지만 강서이는 이미 홀에 없었다.다시 별실로 돌아간 뒤였다....저녁이 돼서야 남유환은 강서이에게 메시지를 보내 민도하의 상태를 짤막하게 전했다.[왼손 화상이 꽤 심하대요. 그래도 초기에 처치를 잘해서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알겠습니다.]강서이는 짧게 대답했다.남유환은 한동안 핸드폰 화면을 바라봤지만 두 번째 메시지는 오지 않았다.‘정말 도하한테 아무 관심도 없는 건가?’전날 술자리에서 꽤 많이 마신 서태우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곯아떨어져서, 민도하가 다쳤다는 사실을 몰랐다.다음 날 소식을 듣자마자 곧장 병원으로 달려갔다.병실에는 노아리만 있었다. 밤새 자리를 지킨 모양이었다.“아리야, 집에 가서 좀 쉬어. 나 오늘 할 일 없으니까 도하는 내가 보고 있을게.”노아리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민도하도 말했다. “가서 좀 쉬어.”“알았어.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전화해.” 노아리는 나가면서도 민도하에게 주의할 점을 몇 번이나 당부하고, 서태우에게도 잘 돌봐 달라고 말했다.노아리가 떠나자 서태우는 소파에 몸을 던지며 혀를 찼다. “이야, 아리가 너 진짜 많이 좋아하네.”민도하는 대꾸하지 않고 침대에 비스듬히 기댄 채 눈을 감고 쉬었다.하지만 호기심을 못 참는 서태우가 결국 물었다. “어제 사람 잘못 구했다며? 원래 아리 잡으려다가 엉뚱하게 강서이를 구했다던데?”“시끄러워.” 민도하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싸늘했다.서태우는 눈치도 없이 계속 떠들었다. “강서이는 반응이 어땠어? 엄청 감동했겠지? 네가 아직 자기한테 마음 있는 줄 알았을 것 같은데.”“오늘 분명 핑계를 만들어서 병문안 올걸? 하루 종일 붙어 있으면서 간호하려고 할 거야.”민도하는 여전히 무심한 말투였다. “너 혼자 상상하지 마.”서태우는 자신만만했다. “안 믿기면 두고 봐. 무조건 와. 이런 기회를 강서이가 놓칠 리가 없지.”그에게는 나름 근거가 있었다. 예전의 강서이는 실제로 늘 그런 식이었으니까.하지만 서태우는 하루 종일 기다리고도 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