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서 당신이 뛴다

내 안에서 당신이 뛴다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28
Por:  루니Actualizado ah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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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이 끝난 날, 내 몸 안에서 죽은 남자가 다시 뛰기 시작했다. 윤서하는 자신을 가장 잔인하게 버린 첫사랑을 증오한 채 살아왔다. 그리고 몇 년 뒤, 죽음 직전 기적처럼 심장을 이식받는다. 그런데 수술 후 도착한 한 통의 편지. “네가 미워해야 내가 떠날 수 있었어.” 그제야 알았다. 자신을 버린 남자는 이미 죽었고, 그의 죽음에는 아무도 말하지 않은 비밀이 있다는 것을. 그가 왜 떠났는지, 누구의 심장이 자신을 살렸는지 추적할수록 사랑은 더 잔인한 얼굴을 드러낸다. 죽어서야 그녀에게 돌아온 남자. 이제 그의 마지막 박동이 그녀의 안에서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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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pítulo 1

1화

세 해 동안 오지 않던 전화가, 하필 죽을 것 같은 새벽에 왔다.

윤서하는 침대 머리맡에서 진동하는 휴대폰을 한참 바라봤다. 화면에 뜬 이름은 지워 둔 적도, 다시 저장한 적도 없는데 그대로 남아 있었다.

강이준.

가슴이 먼저 반응했다. 약해진 심장이 몇 번 엇박자로 뛰더니 숨이 얕아졌고, 서하는 손바닥으로 흉골 아래를 눌렀다.

전화는 끊겼다가 다시 왔다.

세 번.

마지막 진동이 멎을 때까지 서하는 손을 뻗지 않았다.

“이제 와서 뭘.”

목소리가 입술 안쪽에서 부서졌다.

삼 년 전에도 그는 설명하지 않았다. 호텔 로비에서 정하린의 어깨를 감싼 사진을 테이블 위에 밀어 놓았고, 곧 약혼할 거라 말했다.

“거짓말이지?”

그때의 서하는 웃으면서 물었다. 웃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무너질 것 같아서였다.

이준은 사진을 거두지도 않았다.

“네가 믿고 싶은 대로 믿어.”

“나 보면서 다시 말해.”

잠깐 마주친 그의 눈이 먼저 비껴갔다.

“끝났어, 서하야.”

그 한마디 뒤로 이준은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다.

서하는 휴대폰을 엎어 놓은 채 약통을 열었다. 새벽 여섯 시 알람이 울리기 전이었으나 잠은 이미 달아나 있었다. 물 한 모금을 삼키는 동안 숨이 턱 막혔고, 욕실까지 몇 걸음 걷지 않았는데도 발목 위로 붓기가 팽팽했다.

거울 속 입술에는 핏기가 없었다.

병원에 가야 한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오늘 복원실에 들어올 자료가 있었다. 화재에 그을린 조선 후기 문집이라 서하가 아니면 손대기 어려운 상태였다.

어차피 죽을 몸처럼 굴지 말자.

그 말은 오래전부터 자기 자신에게 가장 자주 하는 거짓말이었다.

오전 아홉 시가 조금 넘었을 때 서하는 문헌복원실 작업대 앞에 앉아 있었다. 핀셋 끝으로 눌어붙은 종이 섬유를 떼어내는데 손끝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윤 선생님, 오늘 얼굴 왜 그래요?”

맞은편 서재훈이 장갑을 벗으며 다가왔다.

“잠을 못 자서 그래.”

“입술이 파래.”

“조명 때문이야.”

재훈이 대꾸하려는 순간 서하의 시야가 한쪽부터 어두워졌다. 작업대 가장자리를 짚었으나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종이 위로 떨어질 뻔한 몸을 뒤로 빼는 순간 의자가 넘어졌다.

숨을 들이마셨는데 공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재훈이 이름을 불렀다. 두 번째 부름은 멀리서 들렸고, 세 번째는 아예 닿지 않았다.

눈을 떴을 때 천장이 움직이고 있었다.

형광등이 일정한 간격으로 머리 위를 지나갔고, 누군가 산소마스크를 씌우는 동안 서하는 들것 난간을 움켜쥐었다.

“보호자 연락됐습니다. 말하지 마세요.”

간호사의 손이 팔을 고정했다.

서하는 고개만 돌렸다.

“휴대폰….”

“가방에 있어요.”

“전화가 왔는데.”

“지금은 숨부터 쉬세요.”

응급실 문이 열리며 밝은 빛이 쏟아졌다. 가슴 안쪽이 젖은 천으로 묶인 것처럼 무거웠고, 심장이 한 번 뛸 때마다 목구멍까지 맥박이 밀려왔다.

검사와 처치가 이어지는 동안 시간은 잘게 끊겼다.

팔에 꽂힌 주삿바늘, 혈압 커프가 조여 오는 감각, 발치에서 울리는 알림음. 그 사이 어머니 윤미경이 도착했고, 침대 옆에 선 채 서하의 손을 붙잡았다.

“그러니까 내가 어제부터 병원 가자고 했잖아.”

“엄마.”

“말하지 마. 제발.”

미경의 손등이 축축했다.

잠시 뒤 오민재 교수가 커튼을 젖히고 들어왔다. 평소 외래에서 보던 얼굴보다 굳어 있었다.

“윤서하 씨, 심장 기능이 더 떨어졌습니다. 약으로 버티는 단계가 거의 끝났어요.”

서하는 천장을 바라봤다. 놀랍지도 않았다. 이미 몇 년 동안 들어온 말이었으니까.

“얼마나 남았어요?”

미경의 손이 움찔했다.

민재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지금은 시간을 계산할 때가 아닙니다.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어요. 이식 대기 우선순위도 다시 조정해야 합니다.”

서하는 마스크 안에서 숨을 고르며 눈을 감았다.

삼 년 전 이준이 했던 말이 느닷없이 떠올랐다.

네가 나를 미워해도 살아.

그때는 비겁한 변명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살라는 말을 해놓고 정작 자신은 가장 먼저 떠난 사람.

서하는 침대 옆 가방을 찾았다. 미경이 말렸으나 손으로 더듬어 휴대폰을 꺼냈고, 화면을 켜자 새벽의 부재중 전화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강이준.

세 통.

미경의 시선이 화면에 닿았다. 손을 잡고 있던 힘이 순간 풀렸지만, 서하가 올려다보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이불 끝만 끌어올렸다.

“받을 걸 그랬나.”

서하가 혼잣말처럼 내뱉자 미경의 손이 멈췄다.

“서하야.”

“왜.”

대답은 없었다.

서하는 통화 버튼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누르기만 하면 됐다. 왜 전화했는지, 이제 와서 무슨 말을 하려는지 확인하면 그뿐이었다.

그런데 끝내 누르지 못했다.

화면을 끄려는 순간 커튼 밖에서 빠른 발걸음이 멈췄고, 민재가 다시 들어왔다. 이번에는 손에 서류철을 들고 있었다.

“윤서하 씨.”

그가 침대 곁으로 다가와 서류를 펼쳤다.

“결정할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첫 장에는 이식 수술 동의서가 놓여 있었다.

서하는 펜을 받아 들었으나 이름 첫 글자조차 쓰지 못했다. 누군가 죽어야 자신이 산다는 생각이 손목을 붙잡은 듯했다.

“기증자는….”

말끝이 막혔다.

살아 있는 누군가에게 누구냐고 묻는 것도 이상했다.

그때 민재의 호출기가 울렸다.

짧게 내용을 확인한 그의 표정이 달라졌다.

“방금 연락 왔습니다.”

서하의 손끝에서 펜이 미끄러졌다.

민재가 그녀를 똑바로 바라봤다.

“조건이 맞는 심장이 들어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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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세 해 동안 오지 않던 전화가, 하필 죽을 것 같은 새벽에 왔다.윤서하는 침대 머리맡에서 진동하는 휴대폰을 한참 바라봤다. 화면에 뜬 이름은 지워 둔 적도, 다시 저장한 적도 없는데 그대로 남아 있었다.강이준.가슴이 먼저 반응했다. 약해진 심장이 몇 번 엇박자로 뛰더니 숨이 얕아졌고, 서하는 손바닥으로 흉골 아래를 눌렀다.전화는 끊겼다가 다시 왔다.세 번.마지막 진동이 멎을 때까지 서하는 손을 뻗지 않았다.“이제 와서 뭘.”목소리가 입술 안쪽에서 부서졌다.삼 년 전에도 그는 설명하지 않았다. 호텔 로비에서 정하린의 어깨를 감싼 사진을 테이블 위에 밀어 놓았고, 곧 약혼할 거라 말했다.“거짓말이지?”그때의 서하는 웃으면서 물었다. 웃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무너질 것 같아서였다.이준은 사진을 거두지도 않았다.“네가 믿고 싶은 대로 믿어.”“나 보면서 다시 말해.”잠깐 마주친 그의 눈이 먼저 비껴갔다.“끝났어, 서하야.”그 한마디 뒤로 이준은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다.서하는 휴대폰을 엎어 놓은 채 약통을 열었다. 새벽 여섯 시 알람이 울리기 전이었으나 잠은 이미 달아나 있었다. 물 한 모금을 삼키는 동안 숨이 턱 막혔고, 욕실까지 몇 걸음 걷지 않았는데도 발목 위로 붓기가 팽팽했다.거울 속 입술에는 핏기가 없었다.병원에 가야 한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오늘 복원실에 들어올 자료가 있었다. 화재에 그을린 조선 후기 문집이라 서하가 아니면 손대기 어려운 상태였다.어차피 죽을 몸처럼 굴지 말자.그 말은 오래전부터 자기 자신에게 가장 자주 하는 거짓말이었다.오전 아홉 시가 조금 넘었을 때 서하는 문헌복원실 작업대 앞에 앉아 있었다. 핀셋 끝으로 눌어붙은 종이 섬유를 떼어내는데 손끝이 미세하게 흔들렸다.“윤 선생님, 오늘 얼굴 왜 그래요?”맞은편 서재훈이 장갑을 벗으며 다가왔다.“잠을 못 자서 그래.”“입술이 파래.”“조명 때문이야.”재훈이 대꾸하려는 순간 서하의 시야가 한쪽부터 어두워졌다. 작업대 가장자리를 짚었으나 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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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조건이 맞는 심장이 들어왔어요.”오민재의 말이 떨어진 뒤에도 윤서하는 펜을 들고 있었다. 이름 첫 획을 쓰려던 손끝이 종이 위에서 멈췄고, 잉크가 한 점으로 번졌다.윤미경이 먼저 숨을 삼켰다.“그럼 바로 수술하는 거예요?”“아직 몇 단계가 남아 있습니다. 최종 확인이 끝나면 바로 들어가야 합니다.”민재가 서류를 넘기는 동안 서하는 첫 장만 바라봤다. 심장이식 수술 동의서. 몇 년을 피해 다녔던 문장이 눈앞에 놓이자 가슴보다 손끝이 먼저 식었다.“기증자는요.”“지금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살아 있는 사람이에요?”민재의 시선이 잠깐 멈췄다.“기증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그 대답이면 충분했다. 누군가는 오늘 죽고, 자신은 그 사람의 심장으로 내일을 얻는다.서하는 펜을 내려놓았다.“조금만 생각할게요.”“시간이 많지는 않습니다.”“알아요.”미경이 뭐라 말하려 했으나 서하는 산소마스크를 다시 끌어올렸다. 더 듣고 싶지 않았다.얼마 뒤 검사실로 옮겨지는 동안 휴대폰이 다시 켜졌다. 배터리는 거의 남지 않았고, 새벽에 찍힌 부재중 전화 세 통이 가장 위에 떠 있었다.강이준.세 해 동안 죽은 사람처럼 사라졌던 이름이 오늘따라 자꾸 나타났다.서하는 결국 통화 버튼을 눌렀다.신호가 두 번 가기도 전에 낯선 남자가 받았다.“여보세요.”서하의 손이 굳었다.“강이준 씨 휴대폰 아닌가요?”잠깐의 침묵 뒤 종이 넘기는 소리가 이어졌다.“윤서하 씨 맞으십니까?”심장이 한 번 크게 내려앉았다.“누구세요.”“해온서 경찰서입니다.”서하는 대답하지 못했다.검사실 앞에서 휠체어가 멈췄고, 간호사가 잠시 기다려주겠다는 손짓을 보냈다. 서하는 휴대폰을 귀에 더 붙였다.“이 번호로 오늘 새벽 연락드린 사람이 경찰이었어요?”“네. 강이준 씨 휴대전화를 통해 연락드렸습니다.”“왜요.”상대는 곧바로 답하지 않았다.“사고 관련 확인이 필요했습니다.”서하의 손가락이 휴대폰 모서리를 세게 눌렀다.“무슨 사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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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펜은 바닥에 떨어진 뒤 한동안 아무도 줍지 않았다.윤서하는 휴대폰을 손에 쥔 채 수술 동의서만 내려다봤다. 사고 현장에서 자신의 이름이 적힌 봉투가 나왔다는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그 와중에도 오민재가 건넨 서류 첫 장에는 자신의 이름을 적을 칸이 비어 있었다.누군가는 이미 죽어가고 있었다.자신은 그 사람의 심장을 받아 살아야 했다.“안 할게요.”윤미경이 고개를 들었다.“뭐?”“수술 안 해.”민재의 손이 서류 위에서 멈췄다.“윤서하 씨, 지금 상태에서는 이식을 미루기 어렵습니다.”“알아요.”“아는 사람 반응이 아닙니다.”서하는 산소마스크를 조금 내렸다. 말 몇 마디만 했는데도 가슴이 조여 왔고, 숨이 짧아졌다.“그 사람 죽는 거잖아요.”“기증 여부와 윤서하 씨의 선택은 별개입니다.”“별개가 아니죠. 누가 죽어서 내 심장이 생기는 건데.”민재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서하는 그 침묵이 더 싫었다.평생 누군가의 죽음을 빚처럼 품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병보다 그게 더 무서웠다. 모르는 사람의 가족이 울고 있을 때 자신은 살아났다고 안도해야 하고,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누군가의 마지막과 자신의 오늘을 함께 세야 한다.“난 그렇게 못 살아요.”미경이 입술을 깨물었다.“살아보고 그런 말 해.”“엄마.”“죽는 건 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줄 알아?”서하가 고개를 돌리자 미경은 침대 옆에 놓인 펜을 집어 들었다.“엄마, 놔.”“네가 못 쓰겠으면 내가 쓸 거야.”“내 동의서야.”“그러니까 네가 써.”서하는 손을 내밀었지만 미경이 펜을 가슴 쪽으로 끌어안았다. 몇 초 버티던 손이 결국 떨렸고, 미경은 그제야 참았던 숨을 터뜨렸다.“엄마는 네가 죽는 걸 보고 있어야 하니?”서하는 아무 말도 못 했다.“그 사람 가족이 슬픈 건 알아. 미안한 것도 알아. 그런데 너까지 죽으면 나는 누구한테 미안하다고 해야 해.”말끝이 흐트러진 채 미경이 펜을 내려놓았다. 손등으로 얼굴을 훔쳐도 눈물이 계속 떨어졌고,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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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그 사람 장례식은 누가 치르죠?”윤서하의 질문이 떨어진 뒤 오민재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서류를 한 장 넘긴 그는 침대 끝에 놓인 모니터를 확인했고, 수치가 안정된 것을 본 뒤에야 다시 서하를 바라봤다.“기증자의 가족이 합니다.”“수술 때문에 늦어지진 않아요?”“기증 절차와 장례 절차는 따로 진행됩니다. 윤서하 씨가 책임질 일은 없습니다.”책임질 일이 아니라는 말이 더 무거웠다. 누군가는 가족을 보내고, 자신은 그 사람이 남긴 장기로 내일을 얻는다.서하는 수술 동의서 사본을 받아 들었다. 맨 아래 자기 이름이 선명했다.윤서하.몇 분 전까지도 쓰지 않으려 했던 세 글자였다.“취소할 수도 있어요?”미경의 얼굴이 굳었다.민재는 서하가 아니라 서류를 보며 답했다.“의료적으로 중단해야 할 이유가 생기면 절차가 바뀔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환자분이 단순히 마음을 바꿔 시간을 미루는 건 위험합니다.”“몇 시간 전까진 제가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요.”“지금은요?”서하는 대답 대신 동의서를 접었다. 접힌 선이 자신의 서명을 정확히 반으로 갈랐다.살고 싶다고 말하기엔 아직 겁이 났고, 죽어도 괜찮다고 말하기엔 어머니의 손이 너무 가까이 있었다.간호사가 들어와 수술 전 준비를 시작했다. 귀걸이와 목걸이를 빼고, 손톱에 남은 투명한 코팅까지 지워야 했다. 서하는 손가락을 내밀면서도 자꾸 휴대폰 쪽을 봤다.경찰의 번호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사고 현장에서 발견됐다는 봉투.강이준의 필체.자신의 이름.“전화 한 통만 더 하면 안 돼요?”간호사가 시간을 확인했다.“짧게 하세요. 곧 이동합니다.”서하는 경찰 번호를 눌렀다. 이번에는 처음 받았던 남자가 전화를 받았다.“윤서하 씨?”“그 봉투요. 제가 받을 수 있어요?”“지금 바로는 어렵습니다. 사고 관련 물품 확인이 끝나야 합니다.”“안에 뭐가 들었는지는요?”“개봉 여부부터 확인 중입니다.”“강이준 씨 상태는요?”상대가 잠시 말을 멈췄다.서하는 침대 시트를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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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처음 돌아온 감각은 소리가 아니었다.가슴 한가운데에서 무언가가 밀어 올리는 듯한 충격이 먼저 왔다. 한 번, 두 번. 윤서하는 눈을 뜨지 못한 채 그 움직임만 세었다.자기 심장은 아니었다.그 생각이 떠오른 순간 숨이 가빠졌다. 입안은 바싹 말라 있었고 목에는 뭔가 걸린 듯 답답했다. 손을 움직이려 했으나 손등에 꽂힌 줄과 손가락을 감싼 장치가 먼저 닿았다.누군가 가까이 왔다.“윤서하 씨, 들리세요?”서하는 눈꺼풀을 겨우 들어 올렸다. 천장이 흐릿했고, 얼굴을 가린 의료진이 시야 안으로 들어왔다.“수술 끝났습니다. 중환자실이에요.”끝났다는 말보다 수술이라는 단어가 늦게 들어왔다.서하는 본능처럼 가슴으로 손을 가져가려 했지만 팔이 제대로 올라가지 않았다. 간호사가 손목을 잡아 제자리에 내려놓았다.“지금은 움직이지 마세요.”가슴 안에서 다시 박동이 밀려왔다.쿵.잠시 뒤 또 한 번.이전처럼 힘없이 흩어지지 않았다. 너무 또렷해서 오히려 낯설었고, 서하는 그 박동이 자기 의지와 아무 상관없이 이어진다는 사실을 견디기 어려웠다.“이게….”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간호사가 몸을 숙였다.“말 많이 하지 마세요.”서하는 마른 입술을 겨우 움직였다.“심장… 뛰어요.”“네. 잘 뛰고 있어요.”그 대답에 안도해야 했다.그런데 눈물이 먼저 흘렀다.누군가 죽었다.자신이 살아난 순간, 얼굴도 모르는 사람은 돌아오지 못했다. 그 사실이 새 심장의 움직임을 따라 반복됐다.한 번 뛸 때마다 한 사람의 죽음이 떠올랐고, 두 번 뛸 때마다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이 더 선명해졌다.서하는 눈을 감았다.살아남았다는 기쁨은 없었다.잠깐 잠이 들었다 깨어났을 때는 유리문 너머로 미경이 서 있었다. 모자를 눌러쓴 채 두 손을 모으고 있었고, 서하와 눈이 마주치자 입술이 움직였다.살았네.소리는 들리지 않았는데도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었다.서하는 대답 대신 눈을 감았다. 어머니에게는 기적이었고, 자신에게는 아직 이름 붙일 수 없는 일이었다. 가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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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강이준.꺼진 줄 알았던 이름이 화면 위에 다시 떠 있었다.서하는 휴대폰을 쥔 손에 힘을 줬다. 수술 직전까지 남아 있던 부재중 전화와는 시간이 달랐다. 새 기록은 수술실에 들어간 뒤 찍혀 있었다.오전 11시 42분.그 시간에 자신은 가슴이 열려 있었고, 오래 버티던 심장은 몸 밖으로 떠나고 있었다.“휴대폰 오래 보시면 안 돼요.”간호사가 다가오자 서하는 화면을 끄지 않은 채 물었다.“이 시간에 전화 온 거 맞죠?”“통화 기록이면 그렇겠죠. 지금은 쉬셔야 해요.”“제가 수술 중이었는데요.”간호사는 대답 대신 휴대폰을 침대 옆 테이블에 내려놓았다.서하는 화면이 어두워진 뒤에도 그 자리를 바라봤다.가슴 안에서는 새 심장이 일정하게 뛰었다.하나, 둘, 셋.박동을 세기 시작하면 다른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었다.열둘.열셋.열넷.그런데 스무 번도 넘기기 전에 이준의 이름이 다시 끼어들었다.사고.경찰.봉투.그리고 같은 날 자신에게 들어온 심장.서하는 눈을 감았다.우연이라고 생각하면 됐다. 사고로 뇌사한 성인은 이준 하나가 아니었고, 그중 누군가의 심장이 자신에게 배정됐을 뿐이었다.이준 역시 사고를 당했다는 말밖에는 듣지 못했다.죽었다는 말도 없었다.장기기증을 했다는 말은 더더욱.그런데 생각은 자꾸 빈칸을 제멋대로 채우려 했다.“윤서하 씨.”오민재가 회진표를 들고 들어왔다.서하는 바로 물었다.“기증자 사고가 언제였어요?”민재의 손이 멈췄다.“말씀드릴 수 있는 범위가 정해져 있습니다.”“날짜도 안 돼요?”“신원을 추정할 수 있는 정보는 제한됩니다.”“그럼 제가 알아낸 건요?”“알아낸 것과 병원이 확인해드리는 건 다릅니다.”서하는 입술을 깨물었다.“사고로 뇌사한 성인이라는 것밖에 모르는 거죠?”“네.”“남자인지도 모르고.”민재가 고개를 끄덕였다.“그 이상은 지금 확인하려 하지 마세요.”“왜요?”“확인되지 않은 사람에게 의미를 붙이기 시작하면 회복하는 동안 더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서하는 가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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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재생 버튼을 누르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윤서하는 휴대폰을 귀에 붙였다. 새 심장은 조금 전보다 빨리 뛰었고, 가슴 중앙의 상처가 그 박동을 따라 당겼다.음성메시지는 두 초도 되지 않았다.숨소리처럼 들리는 잡음 하나.그리고 끝.서하는 화면을 내려다봤다. 다시 재생했으나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누가 남긴 건지조차 확인할 수 없는 짧은 공백뿐이었다.그런데도 손끝이 식었다.“왜 아무 말도 안 해.”입 밖으로 나온 말이 누구에게 향한 건지는 자신도 알 수 없었다.간호사가 들어와 휴대폰을 내려놓으라고 했지만 서하는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손짓했다. 통화 기록을 다시 열어 이준의 번호를 눌렀다.한 번.연결음은 가지 않았다.현재 사용하지 않는 번호입니다.서하는 귀에서 휴대폰을 떼지 못했다.다시 걸었다.같은 안내.세 번째에도 달라지지 않았다.삼 년 동안 연락 한 번 없던 번호가 자신이 수술대 위에 있던 시간에 걸려왔고, 막상 돌아가 보니 이미 사라져 있었다.“말도 안 돼.”그제야 간호사가 휴대폰을 가져갔다.“지금 심박수가 올라가고 있어요. 쉬셔야 해요.”“한 번만 더.”“내일 하세요.”“내일이면 뭐가 달라져요?”간호사는 대꾸하지 않고 모니터를 확인했다. 서하는 더 버티지 못하고 눈을 감았으나 귓가에서는 계속 같은 안내가 반복됐다.현재 사용하지 않는 번호입니다.사람도 번호처럼 사라질 수 있을까.그 생각이 들자 가슴 안쪽이 답답해졌다.미워하려면 살아 있어야 했다.언젠가 우연히라도 마주쳐서 왜 그랬냐고 물을 수 있어야 했고,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돌아설 수도 있어야 했다.죽은 사람에게는 그럴 수 없다.서하는 눈을 떴다.“엄마 어디 있어요?”“보호자 대기실에 계세요.”“불러주세요.”미경이 병실에 들어온 것은 십여 분 뒤였다. 서하는 기다렸다는 듯 물었다.“이준 씨 번호 왜 없어졌어?”미경이 발걸음을 멈췄다.“번호?”“결번이야.”“내가 어떻게 알아.”“경찰이 그 휴대폰 가지고 있었다며.”“사고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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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검은 리본 아래 적힌 두 글자가 자꾸 눈에 남았다.'잘 가.'윤서하는 화면을 확대했다가 다시 줄였다. 게시물은 사진도 설명도 없이 그 문장 하나뿐이었고, 날짜는 자신이 수술받기 하루 전이었다.강이준이라고 적힌 곳은 없었다.그 사실이 오히려 더 불길했다.“우연이야.”입으로 말해놓고도 손가락은 하린의 이전 게시물을 훑고 있었다. 촬영장 사진, 공연 포스터, 지인들과 찍은 식사 자리. 이준과 함께 찍힌 사진은 삼 년 전 약혼 기사가 퍼졌던 시기 이후 거의 없었다.서하는 검색창에 ‘정하린 강이준’을 입력했다가 지웠다.확인하려는 순간마다 가슴 안쪽이 빨라졌다.한 번, 두 번.“또 세고 계시죠?”간호사가 약을 들고 들어오자 서하는 휴대폰을 뒤집었다.“뭘요?”“박동요.”들킨 사람처럼 손을 가슴에서 내렸다.간호사가 침대 높이를 조절한 뒤 약을 건넸다. 서하는 물과 함께 삼키고 잠시 눈을 감았다. 아침부터 몇 걸음 걷는 연습을 했고, 침대에서 일어나 앉는 것만으로도 등줄기에 땀이 났다. 몸은 어제보다 나아지고 있는데 생각은 같은 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했다.“오늘은 복도 조금 더 걸어볼 거예요.”“몇 미터요?”“거리보다 안 쉬고 걷는 게 먼저예요.”서하는 고개를 끄덕였다.살아남은 몸에는 해야 할 일이 많았다.약을 먹고,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몇 걸음 더 걷고, 체온을 재고, 손을 씻었다. 그런데 그 모든 일을 끝낼 때마다 휴대폰 화면으로 돌아왔다.강이준은 살아 있는가.그 질문만 답이 없었다.오후가 되자 서하는 미경에게 하린의 게시물을 보여줬다.“이거 봤어?”미경은 화면을 한 번 보고 바로 시선을 돌렸다.“누구 계정인데?”“정하린.”이름을 듣는 순간 미경의 손이 멈췄다.“왜 그 여자 걸 보고 있어.”“게시 날짜가 내 수술 전날이야.”“그래서?”“‘잘 가’래.”미경이 물병 뚜껑을 닫았다.“사람 하나 죽으면 세상 모든 검은 리본이 그 사람 거야?”“엄마는 아니라고 확신해?”“나는 네가 지금 이런 걸 붙잡고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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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사진작가 강이준 씨 정말 사망한 거 맞나요?윤서하는 그 문장을 세 번 읽었다.처음에는 잘못 본 줄 알았고, 두 번째에는 누군가 악의적으로 퍼뜨린 소문이길 바랐다. 세 번째쯤 되자 손끝에서 힘이 빠졌다.게시물 날짜는 다시 봐도 같았다.자신이 심장이식을 받기 하루 전.서하는 댓글 작성자의 계정을 눌렀지만 이미 사라진 계정이라는 안내만 떴다. 답글도, 대화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확인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정하린.삼 년 전 이준의 옆에 서 있던 여자. 약혼 기사 속에서 그의 팔을 잡고 웃던 여자.서하는 하린의 프로필 화면을 열었다. 메시지 버튼을 누르고도 한동안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강이준 씨한테 무슨 일 있었어요?]적었다가 지웠다.[죽었어요?]그 문장은 보내지 못했다.마지막으로 남긴 것은 짧았다.[저 윤서하예요. 연락 부탁드려요.]전송 표시가 뜨자 심장이 한 번 세게 밀려왔다.서하는 가슴 위에 손을 얹었다가 바로 내렸다. 이제는 박동이 빨라질 때마다 이유를 따지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기다리는 동안 생각은 더 빨라졌다.하린이 검은 리본을 올렸다.누군가 댓글에 이준의 사망을 물었다.그날은 자신의 수술 전날이었다.세 문장이 한 줄로 이어지려 할 때, 서하는 침대 옆 메모지를 끌어왔다.확인된 사실만 쓰자.그렇게 적고 첫 줄 아래에 다시 정리했다.이준에게 사고가 있었다.하린은 수술 전날 검은 리본을 올렸다.댓글에 이준의 사망 소문이 있었다.네 번째 줄은 비워뒀다.이준이 죽었다.아직은 쓸 수 없었다.“또 뭐 하고 있어?”윤미경이 병실로 들어오며 물었다.서하는 메모지를 뒤집었다.“아무것도.”미경의 시선이 휴대폰에 닿았다.“하린한테 연락했니?”서하가 고개를 들었다.“엄마가 그걸 어떻게 알아?”“네가 계속 그 여자 계정 보고 있었잖아.”“응. 메시지 보냈어.”미경이 가방을 내려놓는 손길이 거칠어졌다.“왜 자꾸 네 몸이랑 상관없는 일에 매달려.”“상관없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지금 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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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강이준 사고.’자동완성어 하나가 화면 아래에 떠 있었다.윤서하는 검색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손가락이 몇 번이나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고, 결국 먼저 화면을 캡처했다.확인된 것과 두려운 것을 섞지 말자.병상 옆 메모지를 끌어당긴 서하는 어젯밤 적어둔 목록 아래에 한 줄을 더 보탰다.검색창에 ‘강이준 사고’ 자동완성어가 뜬다.그 옆에 작게 적었다.사망 확인 아님.글씨를 쓰고 나니 숨이 조금 편해졌다.그제야 검색어를 눌렀다.결과는 이상할 만큼 평범했다. 강이준의 과거 사진전 기사, 몇 년 전 세림의료재단 행사에 참석했던 사진, 독립 취재 활동을 소개한 인터뷰가 전부였다. 사고 기사는 첫 화면에도, 다음 화면에도 없었다.서하는 날짜 범위를 최근 일주일로 바꿨다.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그럼 이건 왜 뜬 건데.”자동완성어는 그대로였다.검색량이 있었든, 한때 관련 문서가 잡혔든 이유는 여러 가지일 수 있었다. 적어도 ‘죽었다’는 증거는 아니었다.서하는 메모지에서 사망이라는 단어를 한 번 더 지웠다.간호사가 아침 약을 들고 들어왔을 때도 휴대폰은 손에 있었다.“밤새 안 주무셨어요?”“조금 잤어요.”“조금이 몇 시간이요?”서하는 대답하지 않았다.간호사는 침대 옆 물컵을 채우고 약을 건넸다. 서하가 삼키는 것을 확인한 뒤 체온을 재고 손목 밴드를 살폈다.“오늘 상태 괜찮으면 조금 더 움직여볼 거예요.”“저 어제도 걸었는데요.”“그래서 오늘도 걷는 거예요.”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어제 했다고 오늘 면제되는 일이 아니었다.살아 있는 몸은 매일 같은 일을 다시 요구했다.서하는 침대에서 내려올 때 가슴을 감싸 쥐었다. 첫발은 여전히 조심스러웠지만 어제처럼 다리가 바로 풀리지는 않았다. 복도 창문까지 걷고 돌아오는 동안 두 번 멈췄고, 병실 문턱을 다시 넘었을 때 이마에 땀이 맺혔다.“어제보다 낫네요.”간호사가 말하자 서하는 숨을 고르며 고개만 끄덕였다.몸은 정말 나아지고 있었다.그 사실이 기쁘면서도 어딘가 불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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