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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9화

Author: 낙화
근처에 편의점이 보이자, 이연희는 군것질을 좀 사 오겠다며 차에서 내렸다.

그사이 정루아는 장옥경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루아야.”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말투는 무척이나 다정했다.

정루아는 조금 쉰 목소리로 간신히 입을 열었다.

“어머님, 지난번 계획은 무산됐어요. 구태윤이 제 속내를 다 꿰뚫어 보고 있더라고요. 자기가 정말 다른 여자와 만나더라도 이혼만큼은 절대 안 해준다고 대놓고 못 박았어요.”

장옥경은 깜짝 놀란 눈치였다.

“그 녀석이 정말 그렇게까지 얘기했다고?”

정루아는 씁쓸함이 가득한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네.”

“이 고약한 녀석 같으니라고.”

장옥경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수화기 너머로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루아야, 당장은 나도 딱히 좋은 수가 떠오르지 않는구나.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보는 건 어떻겠니? 네가 태윤이랑 함께한 세월이 자그마치 8년이야. 이렇게 이혼해 버리기엔 너무 아깝잖아.”

정루아는 휴대폰을 힘주어 꽉 쥐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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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312화

    정루아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어지더니, 피식 웃으며 받아쳤다.“왠지 나보다 네가 더 안달이 난 것 같다?”휴대폰 너머로 침묵이 이어지더니 한참이 지나서야 능글맞은 목소리가 들려왔다.“네가 억울하게 당하는 꼴을 차마 눈 뜨고 못 보겠었어서 그러지, 뭐. 게다가 나중에 이혼하면 내가 냉큼 낚아채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중이기도 하고.”정루아의 눈썹이 씰룩였다.“농담도 꽤 그럴싸하게 하네.”허도준이 웃음을 터뜨렸다.“당연히 농담이지. 설마 나 진심으로 한 소리라 생각했냐? 근데 네가 속 썩이는 거 못 보겠다는 말은 진심이야. 지금이야 뾰족한 수가 없으니 기다린다지만, 구태윤이 보통 악랄한 놈이 아니잖아. 재판 날짜까지 가만히 있을 것 같아? 이번엔 우연히 사고가 터졌다 쳐도, 다음번엔 또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른다니까.”“그래, 알았어.”정루아는 건성으로 대답하며 그의 말을 흘려들었다.이번 사건은 온전히 자신을 타깃으로 했기에 구태윤이 모든 걸 예측해 가며 판을 짰을 리 없었다.전화를 끊고 병실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김철웅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목소리는 사뭇 진지했다.“루아 씨, 지금 시간 좀 되십니까? 얼굴 좀 보죠.”정루아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설마, 첫 번째 일에 대해 뭐가 좀 나왔나요?”“네.”정루아가 짧게 숨을 고르며 입을 열었다.“좋아요. 조용한 데로 장소 잡아서 연락할 테니까, 그쪽으로 오세요.”“알겠습니다.”...다실 안은 은은한 찻내음으로 그득했다.방과 방 사이의 간격이 널찍한 데다 창밖으로 탁 트인 풍경까지 내다보이는 구조라, 엿듣는 이는 걱정할 필요 없었다.김철웅이 문을 열고 들어오며 나지막이 말했다.“루아 씨, 이런 데는 어떻게 찾아낸 겁니까? 아주 고풍스럽고 좋네요.”정루아가 옅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예전에 남 따라 한 번 와본 적 있어요.”이내 맞은편 자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일단 앉아요. 차 한 잔 마시면서 천천히 얘기하죠.”하지만 김철웅은 손을 내저으며 사양했다.“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311화

    다만 정루아는 임혜숙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이미 눈도, 마음도 어머니라는 존재가 없었기 때문이다.문득 임혜숙의 가슴 속에 묘한 불안감이 스쳐 지나갔다.그토록 굳게 믿었던 확신이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정루아는 딸이니까, 제 몸에서 태어난 혈육이기에 언제든지 같은 편에 서 있을 거로 생각했다.하지만 이제는 장담할 수 없었다....정시연은 여전히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어느새 눈물은 멈추었고, 흩어진 머리카락 뒤로 표정을 감추었다.정루아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심드렁하게 말했다.“몇 년 동안 생쇼를 해대려니 너도 참 힘들지?”정시연이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그리고 무릎을 펴고 똑바로 서 있었다.볼 위에 벌겋게 부어오른 손자국 때문에 전보다 훨씬 더 비참하게 보였다.그녀는 정루아를 바라보았다. 목소리는 시종일관 나긋나긋했다.“루아야, 정말 회사 망하게 할 작정이야? 거긴 부모님의 피와 땀이 서린 곳이잖아.”정루아는 눈살을 찌푸렸다.뭔가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눈앞의 여자는 어딘가 느낌이 쎄했다.이 지경까지 되었는데도 연기를 하다니?결국 말없이 서늘한 눈빛으로 상대를 쏘아보기만 했다.정시연은 부어오른 뺨을 손으로 감싸 쥐며 눈을 깜박였다.“왜 아무 말도 안 해?”“너 도대체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 거야?”기묘한 이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고, 정루아의 마음 한구석에 불안감이 스쳐 지나갔다.정시연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난 뭐 한 게 없는데...”말을 마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 나갔다.정루아는 고운 미간을 찌푸린 채,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그리고 의문을 감추지 못했다. 대체 무슨 속셈이지?하지만 당최 짐작이 안 갔고, 짚이는 것도 없었다.정시연이 굳이 병원까지 찾아온 건, 철저히 부모 앞에서 쇼하기 위해서였던 것처럼 굴었다.이제 관객이 퇴장했으니 연기할 의욕도 사라진 건가?설마 아직도 옛날 버릇을 못 고쳤나?자신을 피해자로 포장한 뒤, 일부러 꼬리를 내려 부모의 죄책감을 유도하고 모든 탓을 그녀에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310화

    “싫어요, 엄마. 그냥 저 내버려 두세요. 이 모든 게 다 제 탓이잖아요. 루아한테 사과하고 빌 테니까 나를 용서해줄 수만 있다면 뭐든지 다 할게요...”정시연은 임혜숙의 손을 뿌리치며 울먹였다.자신을 바닥 끝까지 깎아내리며 무릎을 꿇은 채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그야말로 억울하고 무력한 피해자 그 자체였다.“저 여자 끌어내세요.”정루아가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옆에 대기하던 경호원이 즉시 다가와 임혜숙을 떼어놓았다.임혜숙은 정루아를 돌아보며 사색이 된 채 외쳤다.“너 지금 무슨 짓이야!”정석주의 눈빛에도 경계심이 가득했다.“루아야, 진정해.”정루아는 그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아빠는 참견 안 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정석주의 안색이 순식간에 흙빛이 되었다.정루아는 한 걸음씩 앞으로 다가가더니 허리를 살짝 숙여 정시연의 턱을 움켜쥐었다.그리고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내려다보았다.“언제까지 그렇게 불쌍한 척 징징거릴래? 엄마 아빠가 너 감싸고돌면 내가 억울해서 발작이라도 할 줄 알았어? 네가 짜놓은 판에 놀아나게?”이내 콧방귀를 뀌고 다시 말을 이었다.“예전 같았으면 이런 얄팍한 수작에 순순히 당했겠지. 너는 눈물 한 방울로 청순한 피해자 코스프레 하고, 나는 부모님께 천하의 나쁜 년 소리 들으며 억지로 죄를 덤터기 썼을 거야.”정루아가 쯧쯧 혀를 찼다.“그땐 내가 너무 멍청했거든. 부모라는 인간들한테 사랑 따위 받아보겠다고 발버둥 쳤으니까. 하지만 이제 저 사람들의 생각 따위 관심 없어. 그러니...”짝!순간, 병실 안에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정시연은 짧은 비명과 함께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뺨이 터질 것처럼 화끈거렸다.“사과하고 싶어 안달인 그 정성, 받아줘야지 않겠어?”정루아는 그녀의 머리채를 움켜쥐고는 또다시 뺨을 내리쳤다.“당장 멈춰! 이 짐승만도 못한 년아, 그 손 안 떼?”두 경호원에게 양팔이 꽉 붙잡힌 임혜숙은 눈앞의 광경에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악을 쓰며 울부짖었다.정루아가 문득 고개를 돌리자,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309화

    “훗.”결국 정루아는 참지 못하고 실소를 터뜨렸다.이내 임혜숙을 경멸 어린 눈으로 쳐다보며 비꼬았다.“만약 아빠 주변을 얼쩡거리면서 ‘난 피해 끼칠 생각 없어, 그냥 행복만 빌어줄 거야’라고 유난 떠는 옛 연인이 있다고 해봐요. 엄마는 과연 어떤 기분이 들었겠어요?”임혜숙이 미간을 찌푸렸다.“비교할 걸 비교해야지. 너희 아빠랑 난 서로가 첫사랑이었어.”정루아는 콧방귀를 뀌더니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송문애는 담담한 눈빛으로 임혜숙을 응시했다.“넌 아직도 본인이 뭘 잘못했는지 감도 안 잡히지? 내가 남의 프러포즈용 귀걸이나 가로챈 도둑놈이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잖아.”임혜숙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어머니. 그런 뜻이 아니라...”하지만 곧바로 말을 바꾸었다.“이제 어머니도 그게 자기 물건이 아니라는 걸 아셨으니까, 그냥 저한테 넘기면 안 되나요?”정루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쏘아붙였다.“지금 뇌절 왔어요?”임혜숙은 말문이 막혔다.송문애는 시선을 돌리며 차갑게 내뱉었다.“반성할 기미도 안 보이는데 그만 가라. 애초에 정붙이고 살던 사이도 아니니, 앞으로 다신 얼굴 볼 일 없었으면 좋겠구나.”임혜숙이 다급하게 앞으로 나서려 했다.“어머니...”정루아가 곧바로 앞을 가로막으며 살벌한 눈빛으로 경고했다.“할머니 말씀 안 들려요? 당장 나가세요!”“루아야, 네 외할머니는 우리 어머니이기도 하시거든?”임혜숙이 다급하게 끼어들었다.정루아는 고개를 돌려 정석주를 쳐다보며 비꼬듯 물었다.“이게 사과하겠다는 사람의 태도예요?”정석주가 임혜숙의 팔을 낚아채며 윽박질렀다.“그만 좀 해! 회사 망하는 꼴이라도 보고 싶은 거야?”임혜숙은 남편의 한마디에 더 이상 반발조차 하지 못했다. 그리고 끌려 나가는 순간에도 억울해하는 티가 역력했다.이때, 병실 문이 열리며 낯익은 실루엣 하나가 나타났다.“아빠, 엄마... 집안일은 다 전해 들었어요. 전부 제 잘못이에요. 나 때문에 두 분까지 이 사달이 난 거니까 제가 직접 루아한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308화

    송문애는 손녀의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느릿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난 진작에 마음의 준비를 했지. 혜숙이가 날 돌보겠다고 나섰을 때부터 뭔가 꿍꿍이가 있을 거로 눈치챘어.”정루아의 눈동자에 의문이 스쳐 지나갔다.“그럼 왜 곁에서 간호하게 내버려 둔 거예요?”송문애가 한숨을 내쉬었다.“황당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걔한테 아주 눈곱만큼의 진심이라도 남았을지 궁금했나 봐.”하지만 결과는 뻔하게도 실망뿐이었다.정루아는 외할머니의 곁에 엎드렸다. 가슴이 먹먹하게 죄어왔다.무려 자기 딸이지 않은가. 열 달 동안 뱃속에 품고 갖은 기대를 걸어 낳은 자식이었다.그런데 지금 이런 대접을 받으니 속상하기 마련일 것이다.정루아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며 말했다.“어떻게든 엄마 끌고 와서 할머니한테 사과하게 할게요.”송문애는 쓴웃음을 지을 뿐, 아무 말도 안 했다....다음 날.정루아는 점심시간이 다 되도록 바쁘게 움직이다가 정석주에게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우리 지금 네 외할머니 병문안 왔는데, 안으로 들여보내 주질 않네.”정루아는 싸늘한 목소리로 대답했다.“금방 갈 테니까 기다려요.”통화를 마치고는 정호에게 양해를 구하고 곧장 병원으로 차를 몰았다.병실 문 앞에 도착하자, 정석주 부부가 서성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그녀의 시선이 곧바로 임혜숙에게 향했다.불과 며칠 만에 살이 쏙 빠져 초췌할 정도였다. 예전의 귀부인 같은 화려함과 여유는 찾아볼 수도 없었다.정루아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다가가 정석주에게 물었다.“외할머니한테 사과하러 온 거예요?”임혜숙이 흔들리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루아야...”정석주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네 엄마가 자기 잘못을 뉘우쳤어. 그래서 일부러 사과하러 찾아온 거야.”“들어가시죠.”정루아는 임혜숙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곧바로 병실 문을 열었다.간병인이 송문애와 함께 TV를 보고 있었다.안으로 들어선 정루아는 간병인들에게 나가보라고 눈짓했다.병실 문이 닫히고, 그녀는 옆에 서서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307화

    배진욱은 가볍게 턱짓하더니, 넌지시 물었다.“누가 다쳤는데? 설마 연희 씨?”“아니야.”정루아가 고개를 저었다.“별 볼 일 없는 사람이야.”그 말에 안경테 너머로 배진욱의 눈매가 미세하게 가늘어졌지만, 더는 캐묻지 않았다.이내 조수석 문을 열고 올라탔다.정루아 역시 차에 타서 안전벨트를 매고는 시동을 걸어 출발했다.배진욱이 휴대폰으로 업무 메시지를 몇 개 처리하더니, 문득 고개를 돌려 물었다.“내 기억이 맞다면 루아 씨 이혼 소송이 며칠 안 남았을 텐데. 어때, 결과는 나왔어?”핸들을 쥔 정루아의 손에 힘이 불끈 들어갔다.“아니, 좀 예기치 못한 일이 생겨서 재판이 연기됐어.”배진욱이 의아하다는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어쩌다 그런 일이?”“그 사람이 다쳤거든.”정루아가 입술을 질끈 깨물며 대답했다.말을 아끼는 그녀를 보며 배진욱은 무언가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병원에 있던 사람도 구 대표였겠네.”정루아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응, 맞아.”배진욱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왜 다쳤대?”잠시 뜸을 들이던 그의 어조에 묘한 여운이 묻어났다.“내가 알기로 구 대표는 끝까지 이혼 안 하려고 버텼을 텐데, 아니야?”정루아의 고운 미간이 찌푸려졌다. 머릿속으로는 오만가지 생각이 밀려들었다.구태윤이 이혼하기 싫어하는 건 사실이었다.심지어 재판조차 열지 못하게 할 방법은 수십 가지라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었다.그렇다면 이번 일도 설마...‘아니야.’그녀는 애먼 생각을 얼른 지워버렸다.무려 진짜 총이지 않았는가.아무리 이혼을 미루고 싶어도 목숨을 담보로 하는 짓을 계획할 리가 없었다.게다가 임혜숙이 외할머니를 빼돌릴 걸 어찌 알았겠는가.‘됐어, 괜한 추측하지 마.’정루아는 마음을 가다듬고 담담하게 대답했다.“맞아. 하지만 우리 결혼 생활은 이미 끝났어. 이혼은 시간문제지.”배진욱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했다.“내가 한국에 있는 동안 이런저런 소문도 꽤 들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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