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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Auteur: 낙화
전화가 끊기자 정루아의 입가에 조소가 번졌다.

어쩌면 하나같이 카드를 정지시키겠다는 소리뿐일까.

돈줄을 쥐고 자유를 박탈해서 기어이 고개를 숙이게 하겠다는 속셈이 뻔히 보였다.

하지만 그녀가 뭘 그리 잘못했지?

남들이 제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아 기만하고 있는데, 실실 웃으며 잘한다고 박수라도 쳐줘야 한단 말인가?

정루아는 휴대폰을 꽉 움켜쥐었다.

무릎이 끊어질 듯 아파 더는 걸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길가 벤치에 주저앉았다.

고개를 들어 바라본 하늘은 지금의 심정만큼이나 우중충했다.

눈시울이 시리고 아려왔지만, 고집스럽게 눈물을 참아냈다.

우는 것조차 아까웠다.

부모는 이미 빼앗겼고, 구태윤도 더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자체가 시간 낭비였다.

그렇게 한참을 앉아 있는데 차 한 대가 그녀의 앞에 천천히 멈춰 섰다.

차 문이 열리고 익숙한 실루엣이 내렸다.

다가오는 남자를 확인한 정루아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그녀는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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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318화

    송문애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말이 맞단다. 남들이 뭐라 하든 우리는 자기 일만 충실히 해내면 그만이야.”정루아 역시 맞장구를 쳤다.잠시 후, 허도준이 도착했다.그는 양손 가득 선물을 들고서 싱글벙글 웃으며 송문애를 향해 인사를 건넸다.정루아는 곁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시선은 허도준에게서 떠나지 않았고, 곧이어 머릿속을 맴돌던 의심을 지웠다.다 부질없는 생각이었다.지금 허도준의 도움을 받는 건 사실이니까.만약 근거 없는 억측으로 인해 그의 진심에 상처를 입힌다면 소탐대실일 터였다. 그야말로 은혜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짓이었다.오랜 대화에 지친 것인지 송문애의 얼굴에 금세 피곤한 기색이 서렸다.“할머니, 눈 좀 붙이세요. 저랑 루아는 바깥바람 좀 쐬고 올게요.”눈치를 살피던 허도준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그래, 다녀오렴.”...병원 뒤편에는 아담한 인공호수가 있어서 날씨가 좋은 날이면 환자들이 산책을 나오곤 했다. 하지만 이 시간대에는 사람의 발길이 뜸해 한적했다. 둘은 나란히 호숫가를 거닐었다.수면에 비친 가로등 불빛이 잔물결을 따라 부서진 금가루처럼 흩어졌다.“요즘 들어 많이 바뀐 것 같네.”허도준이 곁눈질로 그녀를 살피며 웃음기를 머금고 말했다.“그래?” 정루아가 뺨에 손을 갖다 대며 가볍게 받아쳤다.“더 예뻐지기라도 했나?”“너는 원래부터 예뻤지. 다만 예전이랑 풍기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어. 훨씬 도도하고 단단해졌달까.” 허도준은 뜸을 들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주기언이라는 사람이 네 뒤를 봐주고 있는 덕분인가?”정루아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손에 쥐어지는 게 생기니까 배짱도 두둑해지더라고. 왜 돈과 권력을 가진 이들이 그렇게 여유로웠는지 이제는 조금은 알겠어. 지금 난 무서울 게 하나도 없거든.”허도준이 눈썹을 치켜올렸다.“어지간히 큰 걸 거머쥐었나 보네? 혹시 나한테 살짝 귀띔해 줄 수 있어?”정루아가 그를 바라보며 넌지시 말했다.“언젠가 알게 될 거야.”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317화

    장옥경은 머뭇거리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태윤아, 혹시 아직도 네가 입원해 있을 때 엄마가 멋대로 이혼 서류에 서명해 버린 걸로 앙금이 남아 있니?”구태윤의 목소리는 무미건조했다.“이미 지난 일이에요.”“난 그저 너무 두려웠을 뿐이야.”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한숨을 내쉬었다.“승태가 그렇게 가고 나니, 너마저 잃을까 봐 제정신이 아니었어. 근데 이제야 정신이 번쩍 드네. 네가 스스로를 지킬 수만 있다면 무엇을 하든 엄마는 무조건 지지할 거야.”구태윤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어졌다.“그럼 루아의 마음을 돌리는 것부터 도와주세요.”“알았어.”장옥경이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네 형 제삿날에 루아를 본가로 초대해서 같이 밥 먹도록 할게. 승태가 살아생전 루아한테 제법 잘해줬었잖니. 그 정도 명분이면 거절 못 하겠지.”그 말을 듣는 순간, 구태윤의 눈동자에 뼛속까지 시린 살기가 스쳤다.어느새 목소리도 한층 더 가라앉았다.“알겠어요. 이만 끊을게요.”“그래.”구태윤은 휴대폰을 옆에 내려놓았다.조금 전 장옥경이 내뱉었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구승태가 정루아에게 잘해줬다라...물론 사실이었다.다정하고 자상하게 잘 챙겨주는, 언제나 감정동요 없는 든든한 큰오빠의 모습 그 자체였다.그렇다면 정루아는? 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품고 있었던 걸까?만약 그녀가 모든 진실을 알게 된다면...구태윤은 눈을 질끈 감고 잡념을 털어냈다.다시 눈을 떴을 때, 칠흑 같은 눈동자는 빛 한 점 없이 어두웠다.애초에 만약이란 존재하지 않았다.정루아와 함께한 세월만 벌써 8년이었다.아무도 그들을 갈라놓을 순 없을 테니까....휴일을 맞아 정루아는 송문애와 마주 앉아 바둑알을 놓고 있었다.이때,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 뜬 발신자는 허도준이었다.“여보세요?”수화기 너머로 무거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요즘 누가 나를 캐고 다니는 것 같아.”정루아가 흠칫 놀랐다.“갑자기 무슨 소리야?”허도준이 대답했다.“해외에 있는 친구한테 연락이 왔는데 말이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316화

    장옥경은 한숨을 쉬곤 정루아의 손을 잡았다.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에 대견함이 가득했다.정루아가 곧바로 손을 빼내며 건조한 목소리를 말했다.“사모님, 더 하실 말씀 있으신가요?”거리를 두는 며느리의 태도에 어색한지, 장옥경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지만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그럼 난 이만 가볼 테니, 너는 들어가서 외할머니나 잘 보살펴 드리렴.”정루아는 쌩하니 자리를 떴다.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는 장옥경의 얼굴에 언짢은 기색이 역력했다.하지만 머지않아 이 재수탱이가 구씨 가문 문턱을 두 번 다시 밟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미치자,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듯 홀가분했다....그 시각, 구태윤은 번호를 수시로 바꿔가며 끊임없이 문자 폭탄을 날렸다.스팸처럼 끈질기게 울려대는 바람에 정루아의 인내심은 이미 바닥을 드러냈다.하지만 장옥경에게 약속한 이상, 그의 장단에 맞춰 연기라도 해주는 게 득이 될 터였다.구태윤과 정시연을 확실하게 엮어놓으려면, 일단 경계심부터 풀게 만들어야 하니까.이때, 또 다른 문자가 도착했다.그녀는 눈을 살짝 내리깔았다. 길게 드리운 속눈썹이 복잡한 감정이 일렁이는 눈빛을 가렸다.[루아야, 나 상처가 다시 아픈데 와서 얼굴 한 번만 비춰주라.]정루아는 휴대폰을 집어 들더니 책상에 엎어버렸다. 그러고는 하던 일을 묵묵히 이어갔다....한편, 다른 병원.구태윤의 상처는 꽤 빠르게 아물어 어깨에 앉은 딱지도 곧 떨어져 나갈 참이었다.며칠이 지나도록 아무 답장이 없는 메시지창을 노려보던 그의 잘생긴 눈썹이 한껏 구겨졌다.똑똑.이때, 한민혁이 병실 문을 두드리고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구태윤이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일이야?”한민혁의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그는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건네며 입을 열었다.“대표님, 해외 용병 조직의 거래 내역을 파악하다가 의뢰인 명단에서 그 두 사람의 흔적을 찾아냈습니다. 타깃 제거를 의뢰한 측은 익명을 썼지만, 정보가 발신된 출처를 추적해 보니 ‘노턴 바이오테크’라는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315화

    하지만 모든 것을 털어내고 나니, 오히려 한결 홀가분했다.정석주 부부의 편애에 상처받고 억장이 무너질 일도, 구태윤의 애매모호한 태도에 흔들리며 전전긍긍할 일도 이제는 없었다.앞으로 오롯이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며 살아가기로 했다.정루아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병원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보름만 더 지나면 외할머니도 퇴원해 집에서 편히 요양할 수 있을 터였다.그 무렵이면 업무도 전부 마무리될 테니 외할머니를 간호하는 일에만 전념할 생각이었다.다만 향후 커리어에 대해서는 아직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습격 사건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고, 이혼 절차 역시 매듭지어지지 않은 상태였다.기껏 다시 일에 뛰어들었다가 또다시 이런 사고에 발목이 잡히긴 싫었다.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주변의 모든 골칫거리를 말끔히 해결한 뒤에 새로운 시작을 도모하는 것이다.병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병상 맡에 자리 잡고 앉아 있는 장옥경이 보였다.얼굴을 마주한 순간, 정루아의 매끄러운 눈썹이 대뜸 일그러졌다.“사모님께서 여긴 웬일이세요?”그녀가 입을 열었다. 호칭마저 낯설게 바뀌었다.장옥경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이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안 그래도 네 외할머니가 이렇게 오래 누워 계시는 동안 얼굴 한 번 못 비춰서 계속 마음에 걸렸지 뭐니. 이젠 몸도 많이 추스르셨을 것 같아서 문병 겸 들러봤단다. 요즘 일하느라 많이 바쁘니?”“네, 그럭저럭.”정루아의 눈동자에 경계심이 가득했다.지금 시점에서 자신이나 외할머니 주변을 의도적으로 접근하는 인간들은 전부 시꺼먼 속내를 감춘 독사로 보였다.장옥경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마침 잘 왔어, 너한테 할 말이 있단다.”그리고 시선을 돌려 송문애를 바라보았다.“사돈어른, 저는 이만 방해하지 않을게요. 루아랑 단둘이 잠깐 얘기 좀 하고 갈게요.”송문애가 다녀오라고 손짓했다.“그래요.”병실을 나와 향한 곳은 비상계단이었다.정루아가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하실 말씀이 뭐죠?”장옥경의 눈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314화

    “멀쩡하게 살아 숨 쉬던 사람이 흔적도 없이 세상에서 사라졌을 리가.”정루아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아예 해외에 숨어 있었거나, 아니면 누군가 의도적으로 그 발자취를 지워버렸거나 둘 중 하나겠죠.”도대체 왜 정시연 부모의 흔적을 철저히 은폐해야만 했던 걸까?그들은 원래 뭘 하던 사람이었지?어쩌다 죽음까지 맞이하게 되었을까?정석주 부부와는 무슨 연결고리가 있는 걸까?게다가 친딸인 자신을 외면한 채 정시연에게만 애정을 쏟아부었던 이유는 뭐지?정루아는 호기심에 휩싸였다.이내 김철웅을 응시하며 말했다.“최대한 정시연 부모에 대한 단서를 캐내 줘요. 그분들이 우리 부모님과 무슨 인연이 있었는지 알고 싶어요.”김철웅이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그는 남은 물을 마저 비우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섰다.하지만 정루아는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다실에 홀로 남아 김이 식은 차를 전부 비워냈지만, 머릿속은 뒤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했다.정시연 부모의 미스터리와 김철웅이 언급했던 허도준의 존재까지.그녀는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꾹꾹 눌렀다.자신을 향한 끔찍한 습격이 설마 허도준과 관련이 있다는 말인가?하지만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았다.허도준은 지금도 그녀를 돕고 있었다.그가 아니었다면, 구태윤은 여전히 외할머니의 수술 건을 빌미로 이혼을 못 하게 협박했을 것이다.그런 사람이 대체 왜 자신을 암살하려 들겠는가?따라서 애초부터 성립 불가능한 가설이었다.어쩌면 전부 우연의 일치일지도 모른다.하물며 해외의 용병 조직이라니?정작 그녀조차 자신의 정체가 언제부터 그런 위험한 인물의 주목을 받게 되었는지 알 길이 없었다.이쯤 되니 진짜 신분마저 궁금할 지경이었다.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정루아는 찻집을 빠져나왔다.그동안 겪었던 끔찍한 일들 덕분에 차에 타기 전, 습관처럼 차량 주변을 한 바퀴 빙 둘러보며 꼼꼼히 살피는 습관이 생겼다.조금이라도 수상한 기미가 없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올라탔다.운전석에 앉자, 휴대폰이 진동했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313화

    김철웅 역시 영문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정루아를 빤히 응시하며 물었다.“혹시 본인도 모르는 특별한 신분을 가지고 계신 거 아니에요? 평범한 민간인 상대로 해외 용병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이유가 없잖아요.”정루아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그럴 리가. 난 정석주랑 임혜숙 딸이 맞아요. 유전자 검사까지 직접 해봤는걸요.”김철웅의 험상궂은 얼굴에도 의문이 스쳤다.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낮게 중얼거렸다.“참 희한한 일이네.”...한편, 또 다른 병원 VIP 병실.한민혁이 새로 캐낸 조사 결과를 구태윤에게 보고했다.“허도준?”구태윤이 나지막이 읊조렸다.문득 지난번 정루아가 허도준의 힘을 빌려 윌리엄 박사를 압박했던 일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허도준의 이력과 배경 자체는 단순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해외에서 굴러먹은 세월이 있었다.구태윤은 한민혁을 돌아보며 서늘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지시했다.“허도준이 해외에 머물던 시절의 족적을 낱낱이 파헤쳐.”“알겠습니다.”한민혁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미심쩍은 듯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대표님, 혹시 과도한 억측 아닐까요? 제가 따로 확인해 봤는데, 허도준의 가족이 하필 그 요양원에 입원 중이더군요.”하지만 구태윤은 단칼에 잘라 말했다.“이 세상에 과연 우연이 있을 것 같아?”애초에 의심이 갈만한 점은 허투루 넘길 생각이 없었다.정체 모를 자들이 노리는 건 다름 아닌 정루아의 목숨이었으니까.어찌 제 울타리 안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도록 방치하겠는가.한민혁이 금세 납득했다.“네.”그가 몸을 돌려 병실을 나가자, 구태윤은 곧바로 휴대폰을 집어 들어 정루아에게 연락했다.“연결이 닿지 않아...”귓가를 파고드는 차가운 안내음에 이마의 핏줄이 불끈 튀어 올랐다.자신을 차단하다니?그는 휴대폰을 꽉 움켜쥐었다.얼굴에 먹구름이 드리웠지만, 이내 억지로 숨을 골랐다.바로 그때,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화면조차 확인하지 않은 채 구태윤이 급히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루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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