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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화

Author: 낙화
정루아의 눈이 더 붉어졌다.

“이거 놔!”

구태윤이 이미 몸을 일으킨 상태였다. 검은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은 채 정루아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만 좀 해. 네가 진정하면 놓아줄 거야.”

“하...”

정루아가 허탈하게 웃었다. 그녀의 눈은 더 붉게 충혈돼 있었다.

그녀는 힘을 줘 그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구태윤, 내가 사람을 잘못 봤어. 내가 어떻게 너 같은 인간을 사랑했지?”

구태윤의 얼굴도 굳어 있었다.

정루아는 들어오자마자 설명도 없이 몰아붙였고 그의 눈앞에서 정시연을 때리려 들었다. 그러더니 이제는 사랑을 후회한다는 말까지 내뱉고 있었다.

그 말들이 그의 신경을 긁었다.

“할 말 있으면 나한테 해. 왜 자꾸 애먼 사람한테 손부터 올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정루아는 망설임 없이 손을 들어 그의 뺨을 쳤다.

‘찰싹!’하고 날카로운 소리가 병실 안에 울렸다.

“태윤 씨!”

정시연이 놀라 외치며 다가왔다. 그리고 믿기지 않는 눈으로 정루아를 바라봤다.

“루아야, 왜 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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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308화

    송문애는 손녀의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느릿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난 진작에 마음의 준비를 했지. 혜숙이가 날 돌보겠다고 나섰을 때부터 뭔가 꿍꿍이가 있을 거로 눈치챘어.”정루아의 눈동자에 의문이 스쳐 지나갔다.“그럼 왜 곁에서 간호하게 내버려 둔 거예요?”송문애가 한숨을 내쉬었다.“황당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걔한테 아주 눈곱만큼의 진심이라도 남았을지 궁금했나 봐.”하지만 결과는 뻔하게도 실망뿐이었다.정루아는 외할머니의 곁에 엎드렸다. 가슴이 먹먹하게 죄어왔다.무려 자기 딸이지 않은가. 열 달 동안 뱃속에 품고 갖은 기대를 걸어 낳은 자식이었다.그런데 지금 이런 대접을 받으니 속상하기 마련일 것이다.정루아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며 말했다.“어떻게든 엄마 끌고 와서 할머니한테 사과하게 할게요.”송문애는 쓴웃음을 지을 뿐, 아무 말도 안 했다....다음 날.정루아는 점심시간이 다 되도록 바쁘게 움직이다가 정석주에게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우리 지금 네 외할머니 병문안 왔는데, 안으로 들여보내 주질 않네.”정루아는 싸늘한 목소리로 대답했다.“금방 갈 테니까 기다려요.”통화를 마치고는 정호에게 양해를 구하고 곧장 병원으로 차를 몰았다.병실 문 앞에 도착하자, 정석주 부부가 서성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그녀의 시선이 곧바로 임혜숙에게 향했다.불과 며칠 만에 살이 쏙 빠져 초췌할 정도였다. 예전의 귀부인 같은 화려함과 여유는 찾아볼 수도 없었다.정루아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다가가 정석주에게 물었다.“외할머니한테 사과하러 온 거예요?”임혜숙이 흔들리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루아야...”정석주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네 엄마가 자기 잘못을 뉘우쳤어. 그래서 일부러 사과하러 찾아온 거야.”“들어가시죠.”정루아는 임혜숙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곧바로 병실 문을 열었다.간병인이 송문애와 함께 TV를 보고 있었다.안으로 들어선 정루아는 간병인들에게 나가보라고 눈짓했다.병실 문이 닫히고, 그녀는 옆에 서서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307화

    배진욱은 가볍게 턱짓하더니, 넌지시 물었다.“누가 다쳤는데? 설마 연희 씨?”“아니야.”정루아가 고개를 저었다.“별 볼 일 없는 사람이야.”그 말에 안경테 너머로 배진욱의 눈매가 미세하게 가늘어졌지만, 더는 캐묻지 않았다.이내 조수석 문을 열고 올라탔다.정루아 역시 차에 타서 안전벨트를 매고는 시동을 걸어 출발했다.배진욱이 휴대폰으로 업무 메시지를 몇 개 처리하더니, 문득 고개를 돌려 물었다.“내 기억이 맞다면 루아 씨 이혼 소송이 며칠 안 남았을 텐데. 어때, 결과는 나왔어?”핸들을 쥔 정루아의 손에 힘이 불끈 들어갔다.“아니, 좀 예기치 못한 일이 생겨서 재판이 연기됐어.”배진욱이 의아하다는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어쩌다 그런 일이?”“그 사람이 다쳤거든.”정루아가 입술을 질끈 깨물며 대답했다.말을 아끼는 그녀를 보며 배진욱은 무언가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병원에 있던 사람도 구 대표였겠네.”정루아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응, 맞아.”배진욱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왜 다쳤대?”잠시 뜸을 들이던 그의 어조에 묘한 여운이 묻어났다.“내가 알기로 구 대표는 끝까지 이혼 안 하려고 버텼을 텐데, 아니야?”정루아의 고운 미간이 찌푸려졌다. 머릿속으로는 오만가지 생각이 밀려들었다.구태윤이 이혼하기 싫어하는 건 사실이었다.심지어 재판조차 열지 못하게 할 방법은 수십 가지라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었다.그렇다면 이번 일도 설마...‘아니야.’그녀는 애먼 생각을 얼른 지워버렸다.무려 진짜 총이지 않았는가.아무리 이혼을 미루고 싶어도 목숨을 담보로 하는 짓을 계획할 리가 없었다.게다가 임혜숙이 외할머니를 빼돌릴 걸 어찌 알았겠는가.‘됐어, 괜한 추측하지 마.’정루아는 마음을 가다듬고 담담하게 대답했다.“맞아. 하지만 우리 결혼 생활은 이미 끝났어. 이혼은 시간문제지.”배진욱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했다.“내가 한국에 있는 동안 이런저런 소문도 꽤 들었거든.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306화

    정루아는 할 말을 잃었다.진짜 답이 없는 남자였다.말로만 사랑한다고 했지, 정작 자신이 원하는 걸 부탁하면 핑계만 대기 바빴다.더 이상 이 인간과 입씨름하고 싶지도 않았다.좋은 소리든 쓴소리든 할 말은 다 했다.기어코 고집을 부리며 귀를 막는데 무슨 수가 있겠는가.정루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매몰차게 돌아섰다.“윽...”그때, 침대에 누워 있던 남자가 낮게 신음을 흘렸다.발걸음이 우뚝 멈췄다.그녀는 뒤돌아보며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왜 그래?”구태윤은 묵묵부답했다. 눈을 감고 인상을 찌푸린 모습은 고통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정루아는 저도 모르게 다가가서 손을 뻗어 그의 이마를 짚었다. 열이라도 나는지 확인하려고 했다.그 순간, 남자의 커다란 손이 그녀의 손목을 덥석 움켜쥐었다.곧이어 확 끌어당기는 바람에 속절없이 넓은 품 안으로 고꾸라졌다.무쇠처럼 단단한 팔뚝이 허리를 감싸 안았다.정루아는 버럭 화를 내며 발버둥 쳤다.“또 날 속인 거야?”“루아야, 나 아직 등에 상처 채 아물지도 않았어. 그렇게 버둥대면 다 터져서 피범벅 된다?”구태윤은 그녀를 꼭 끌어안으며 나지막이 속삭였다.머릿속으로 문득 피로 흥건하게 젖은 그의 등이 스쳐 지나갔다.자신을 대신해 총을 맞아서 다치게 되었지...거칠게 반항하던 손길이 거짓말처럼 멈추었다.그녀는 딱딱한 말투로 경고했다.“이거 놔.”“루아야...”구태윤은 눈을 감은 채 그녀의 체향을 깊게 들이마셨다.탁한 목소리가 나지막이 울려 퍼졌다.“널 이렇게 안아본 게 얼마 만이야. 너무 그리웠어.”그러나 정루아의 몸은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남 속여서 얻은 포옹이 그렇게 좋아?”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허리를 감싼 팔뚝에 더 강한 힘이 실리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졌다.뭐, 굳이 그녀가 발버둥 치지 않아도 스스로 상처를 터뜨리고도 남을 인간이었다.“그래도 내심 걱정은 하잖아, 아니야?”구태윤이 물었다. 대체 누구를 향한 질문인지 알 수 없었다.정루아는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마침내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305화

    “여보세요?”정루아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예전과 달리 한결 누그러진 말투였다.“루아야.”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가 살짝 갈라졌다.“지금 어디야?”정루아가 대답했다.“운전 중이야. 무슨 일인데?”구태윤은 잠시 침묵하다가, 묘하게 억울한 말투로 투덜거렸다.“나 보러 안 올 거야?”정루아는 묵묵부답했다.핸들을 쥔 손에 힘이 불끈 들어갔다.앞을 주시하던 그녀는 뜸을 들이다가 대답했다.“지금 갈게.”남자의 어조가 한층 들떴다.“그래, 기다릴게.”통화를 마치고, 정루아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이내 차들 돌려 구태윤이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VIP 병실은 호텔 객실 부럽지 않게 안락했다. 널찍한 킹사이즈 침대와 푹신한 소파까지.게다가 화병에 꽂힌 생화에서 풍겨 나오는 은은한 향기가 코를 찌르는 소독약 냄새를 말끔히 가려주었다.안으로 들어서자 침대 헤드에 기대어 앉은 구태윤의 모습이 보였다.보조 테이블 위에는 노트북이 놓여 있었고, 그는 자판을 두드리며 일에 열중했다.옆에는 한민혁이 꼿꼿이 서서 지시를 기다리듯 대기 중이었다.똑똑.정루아는 손가락을 구부려 병실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환자가 됐으면 곱게 누워서 쉴 것이지.”구태윤이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칠흑 같은 눈동자가 반짝거리더니,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루아야, 지금 나 걱정해 주는 거야?”병실로 들어선 정루아는 침대 옆에 놓인 의자를 끌어다 걸터앉았다.“그래도 내 목숨 살려준 사람인데, 인간적으로 그 정도 도리는 해야지. 당신한테 고맙기도 하고.”구태윤의 입꼬리가 한층 더 올라갔다.“부부 사이에 뭘 새삼스럽게. 널 위해서라면 뭐든지 기꺼이 할 수 있으니까 걱정 마.”“그렇단 말이지?”정루아가 묘하게 말꼬리를 늘어뜨렸다.“그럼 정시연을 본가에서 쫓아내 달라고 하면? 가능하겠어?”구태윤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이유는? 내 조카 엄마를 상식적으로 쫓아낼 명분이 없잖아.”정루아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304화

    “그리고 여기에 들어 있는 서류는 엄마 명의의 주식이야. 전부 네 앞으로 돌려놨으니까, 사인만 하면 너도 정원 그룹 주주가 될 수 있어. 그럼 앞으로 회사 모든 일에 의사 결정권이 생길 거야.”정루아의 맑은 눈동자에 당혹스러움이 가득했다.임혜숙을 정신병원에 보냈다니?진단서를 내려다보던 그녀는 당최 믿기지 않아 헛웃음만 나왔다.결국 모든 책임을 임혜숙 혼자에게 떠넘기겠다는 소리였다.정작 본인은 주식을 미끼로 화해를 청하려는 속셈이었다.정루아는 기분이 착잡했다.하지만 분명한 건 전혀 기쁘지 않다는 점이었다.정석주가 이렇게까지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수십 년을 함께 산 부부였건만, 결국 임혜숙은 버려진 패에 불과했다.정루아는 서류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싸늘한 눈빛으로 물었다.“그럼 정시연은?”정석주의 눈동자가 흔들렸다.“우리 집에서 같이 부대낀 세월이 얼만데, 아빠도 시연이한테까지 너무 모질게 굴고 싶진 않다. 앞으로는 구씨 본가에서 숨죽이고 살게 할 테니까, 그냥 없는 사람 셈 치고 넘어가 주면 안 되겠니?”정시연이 벌인 짓은 전부 묻어두겠다는 뜻인가?“만약 제가 끝까지 정시연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하면요?”정루아의 얼굴에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고작 양딸 하나 때문에, 그 애 하나 살리겠다고 희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시네요.”그녀가 가소롭다는 듯 비웃음을 흘렸다. 문득 자조적인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만약 자신에게 정말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부모라는 인간들이 과연 어디까지 했을까?아마 축배라도 들었겠지. 마침내 귀찮게 굴던 애물단지가 사라졌으니, 이제 마음껏 정시연을 예뻐할 수 있게 되었다고.정석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루아야, 시연이 요즘 정말 조용히 지내고 있어. 널 거슬리게 할 만한 짓은 하지도 않았는데, 이번 한 번만 딱 눈감아줄 순 없는 거냐?”“네, 안 돼요.”정루아의 안색이 싸늘하게 식었다.“그년이 싸지른 똥이 얼만데, 나보고 입 다물고 있으라니? 그동안 내가 겪은 상처는 어떡하고요? 난 뭐 맞고 살아도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303화

    장옥경은 콧방귀를 뀌며 곧장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한민혁은 그제야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무려 자신이 모시는 상사의 어머니에게 맞설 때 느꼈던 압박감이란 가히 상상을 초월했다.그는 곁에 서 있는 정루아를 바라보며 미안한 기색을 내비쳤다.“사모님, 죄송합니다...”“실장님 말이 맞아요.”정루아는 어느새 마음을 가다듬었다.“얼굴이라도 한번 보는 게 인지상정이긴 한데, 아까 실장님 입으로 그러셨잖아요. 그 사람이 깨어나기 전엔 누구든 접근 금지라고. 그럼 난 이만 가볼게요.”한민혁은 할 말을 잃었다.이거야 원, 제 무덤을 스스로 판 꼴이었다.쌩하니 떠나는 정루아의 뒷모습을 보며, 한민혁은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다음 날, 주기언은 정원 그룹을 겨냥한 계획서를 보내왔다.정루아는 내용을 훑어본 뒤 그의 뛰어난 능력에 감탄하며 안심하고 전권을 맡겼다.효과는 즉각적이었다. 정원 그룹 내부가 다시 한번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해 질 녘, 정루아는 퇴근길에 병원으로 향해 외할머니와 저녁 식사를 함께했다.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밖에서 소란스러운 기척이 들려왔다.“당장 비켜, 내가 정루아 아버지야!”귀에 익은 목소리에 그녀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어졌다.하지만 이는 충분히 예상했던 바였다.정원 그룹에 탈이 났고, 딱히 흔적을 숨긴 것도 아니니 정석주가 알아채는 건 시간문제였다.정루아는 송문애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할머니, 잠깐 나갔다 올게요.”“그래.”송문애가 대답하며 한마디 덧붙였다.“몸조심하고.”“네, 걱정 마세요.”정루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나 병실 밖으로 걸어 나갔다.병원 복도에는 경호원들에게 가로막힌 정석주가 굳은 얼굴로 서 있었다.그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 회사가 공들여 성사시키려던 몇몇 계약이 또다시 수포가 되었기 때문이다.조사를 해본 결과, 프로젝트를 가로챈 주범은 다름 아닌 정루아였다.송문애의 재산을 상속받았을 뿐만 아니라, 회사까지 몇 개 더 물려받은 상황이었다.정원 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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