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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화 바르칸의 서랍

Autor: STARGIL
last update Fecha de publicación: 2026-10-23 19:54:21

길드에는 바르칸 혼자였다. 해 질 녘이었다. 탁자를 닦던 손이 케이가 들어오자 멈췄다.

케이는 접수대 앞에 섰다. 동전을 꺼내 올려놓았다. 지평선 위의 별.

바르칸은 동전을 보았다. 오래 보지 않았다. 한 번 보고, 눈을 감았다.

"마르타가 말했냐."

"반만요. 나머지는 할아버지한테 물어보래요."

바르칸이 탁자를 닦던 행주를 내려놓았다.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접수대 너머가 아니라, 손님 쪽 탁자에. 케이 맞은편에. 오늘 두 번째였다. 로웰 어른이 케이 맞은편 손님 자리에 앉는 것이.

"앉아."

케이가 앉았다.

바르칸은 셔츠 안에서 별패를 꺼냈다. 금빛, 반쯤 깨진. 동전 옆에 나란히 놓았다. 깨진 돌의 단면이 검게 그을려 있었다. 등잔불에 그 그을음이 무지갯빛으로 번들거렸다. 검은 물처럼.

"열한 해 전 가을이었다."

바르칸의 목소리에는 높낮이가 없었다. 열한 해 동안 혼자 외운 사람처럼.

"우린 다섯이었다. 다 5성. 대륙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파티였지. 이름은 에이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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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HE LEGEND OF DARKNESS(어둠의 전설)   제42화 규정과 손바닥

    아버지가 쓰러진 건 그날 오후였다.쓰러졌다기보다 일어나지 못했다. 헛간 앞 의자에서 일어나려다 무릎이 펴지지 않아 그대로 주저앉았다. 지팡이가 마당에 굴렀다. 염소가 놀라 울타리 쪽으로 달아났다.케이가 부축하자 아버지가 이를 악물었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무릎이 반쯤 굽은 채 굳어 있었다. 세리아가 붙잡아 두었던 열흘이 지나고 사흘째였다. 굳는 속도가 빨랐다. 붙잡아 둔 만큼을 한꺼번에 되찾으려는 것처럼.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앞치마를 벗어 걸고, 수레를 끌어왔다. 형 로안이 대장간에서 뛰어왔다. 셋이서 아버지를 수레에 태웠다."교회로."엄마가 말했다."돈이 없잖아요. 166골드밖에……""알아."엄마가 수레 손잡이를 잡았다."그래도 가서 무릎이라도 꿇어 볼 거야. 신부님 앞에서. 안 되면 안 되는 거고."교회 앞에 사람들이 모였다. 로웰은 작았다. 감자밭 셋째 줄 집 아버지가 수레에 실려 간다는 소문은 마을 반 바퀴를 돌기도 전에 교회에 먼저 닿았다.오르반 신부가 교회 문간에 나와 있었다. 수레 위의 아버지를 보고, 무릎을 보고, 엄마를 보았다.엄마가 정말로 무릎을 꿇으려 했다. 신부가 그 팔을 잡았다."그러지 마시오.""신부님, 첫눈까지 닷새래요. 그 안에 꼭 갚을게요. 아들이 벌고 있어요. 땅을 팔아서라도……""압니다."신부가 고개를 저었다. 괴로운 얼굴이었다."하지만 의식은 헌금이 먼저입니다. 교단의 규정이오. 내가 한 집을 봐주면, 내일 다른 집도 봐줘야 하고, 그러면 세린 수도원은 교단에 갚을 것이 없어지오. 그러면 다음엔 사제를 보낼 수도 없게 되고."신부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케이는 그걸 알았다. 틀리지 않은 말이 사람을 더 아프게 할 때가 있다는 것도.교회 창문이 열렸다.세리아였다. 근신 중이라 문밖에 나오지 못하는. 창틀을 붙잡고 수레 위의 아버지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소매를 걷었다. 두 번."세리아."신부가 낮게 불렀다. 경고였다.세리아는 창틀을 넘었다.사제복 자락이 창틀에 걸렸다.

  • THE LEGEND OF DARKNESS(어둠의 전설)   제41화 다락의 문

    식당 2층 다락으로 가는 계단은 열세 칸이었다. 케이는 그걸 세며 올라갔다. 일곱 번째 칸에 그릇이 놓여 있었다. 마르타 아줌마가 올려 보낸 아침 수프. 반쯤 비어 있었다. 열 번째 칸에 또 하나. 어제 저녁 것. 그건 손도 대지 않았다.다락 문은 닫혀 있었다. 문틈으로 종이 냄새와 잉크 냄새, 그리고 무언가 탄 냄새가 새어 나왔다.케이는 문을 두드렸다."……밥이면 계단에 두고 가.""밥 아니에요."문 너머가 조용해졌다. 그러다 의자가 끌리는 소리가 났다."사과하러 왔으면 내려가.""사과 아니에요.""그럼 뭔데."케이는 문 앞에 섰다. 할 말을 생각해 왔다. 계단 열세 칸 동안 세 번 바꿨다. 결국 처음 생각한 걸로 했다."부탁하러요."한참 뒤에 문이 열렸다. 손바닥 한 뼘만큼.레아의 얼굴이 그 틈에 있었다. 눈 밑이 검었다. 붉은 머리가 아무렇게나 묶여 있었다. 모자는 쓰지 않았다. 손가락 끝마다 잉크가 묻어 있었다."……부탁?""양 우리가 습격당했어요. 어젯밤에. 숲 가장자리까지 거미줄이 쳐졌고요. 여왕이 다시 낳기 시작했대요."레아의 눈이 조금 커졌다. 문이 한 뼘 더 열렸다.다락 안은 종이 바다였다. 바닥에도 침대 위에도 창틀에도 종이가 깔려 있었다. 대부분 숫자와 그림이었다. 웅덩이, 화살표, 그리고 땅 밑으로 뻗은 선들. 탁자 위에는 그레타의 노트가 펼쳐져 있었고, 그 옆에 시료병 하나. 카일 편에 보내고 남은 마지막 하나였다."모레 정오에 숲 바위에서 모이기로 했어요. 니엘이랑. 다섯이.""다섯?""레아 씨, 세리아 씨, 카일 씨, 니엘, 저.""카일은 왕도 가는 길이잖아.""……네.""세리아는 근신이고.""네.""니엘은 따라오지 말라고 했다며. 바위에 그렇게 썼다며."케이는 놀랐다. 레아가 그걸 어떻게 아는지."베른 아저씨가 마르타 아줌마한테 말했고, 아줌마가 밥 올려 보내면서 말했어. 로웰은 작아."레아가 문틀에 기댔다."그러니까 확실한 건 너 하나잖아. 그런데 왜 다섯이라고 썼어."케이는

  • THE LEGEND OF DARKNESS(어둠의 전설)   제40화 다시 모이는 이유

    종이 울린 건 자정이 지나서였다.수확제 날과 같은 박자였다. 이번엔 끝없이.케이는 헛간 이층에서 굴러 내려왔다. 칼을 들고 마당으로 뛰쳐나갔다. 엄마가 부엌 창문을 열었다. 형이 문간에 망치를 들고 나와 있었다."어디야!""서쪽! 토비네 언덕!"형이 외쳤다. 대장간 쪽에서 들었다고.서쪽 언덕으로 뛰었다. 달이 밝았다. 언덕 위 양 우리에서 비명이 들렸다. 양들의 비명. 그리고 토비의 비명.언덕을 넘자 보였다. 하얀 것들이 양 우리 울타리를 넘고 있었다. 거미였다. 개만 한 것들. 열, 스물. 굴에서 불을 피해 살아남은 새끼들이 그새 자라 있었다. 등에 빨간 무늬가 생기기 시작한 것들.토비가 양 우리 문 앞에서 쇠스랑을 휘두르고 있었다. 울면서. 그 뒤에 양들이 한쪽 구석에 몰려 떨고 있었다. 맨 앞에 하얀 양 한 마리. 뭉치였다."토비 씨!"케이가 뛰어들었다. 거미 하나가 토비의 다리를 노리고 있었다. 케이는 칼을 짧게 쥐었다. 바투도, 윈드블레이드도 쓰지 않았다. 기초 검술. 하르카의 왼손이 가르쳐 준 대로, 상대의 다리를 보고, 먼저 갈 자리를 읽고.찔렀다. 다리 관절. 거미가 기우뚱했다. 한 번 더. 쓰러졌다."케, 케이……""뒤로요! 양들 뒤로!"거미들이 케이에게 몰려왔다. 다섯, 여섯. 케이는 하나씩 상대했다. MP를 아꼈다. 기술은 돈이랑 같아. 칼만 썼다. 맞았다. 물렸다. 찔렀다.일곱 번째 거미가 케이의 등 뒤로 돌았다. 케이가 돌아섰을 때 늦었다.바람이 지나갔다.거미가 반으로 갈라졌다. 등 뒤에서 날아온 반달. 윈드블레이드였다. 케이 것이 아니었다.하르카였다. 언덕 아래에서. 왼손에 바람 무늬 칼을 들고. 오른팔은 목에 매단 채로."……왼손으로 돼요?""오늘 처음 됐어."하르카가 언덕을 올라오며 칼을 휘둘렀다. 반달 하나가 또 날아갔다. 빗나갔다. 울타리 기둥을 쳤다."아직 반은 안 돼."바르칸이 반대편 언덕에서 나타났다. 칼도 없이, 맨손으로. 거미 하나를 집어 들어 다른 거미에게 던졌다. 둘이 같이

  • THE LEGEND OF DARKNESS(어둠의 전설)   제39화 왼손

    케이는 하르카 옆 기둥 앞에 섰다. 마당에는 기둥이 둘 있었다. 하나는 하르카가 왼손으로 치고 있었고, 하나는 비어 있었다.케이는 아무 말 없이 빈 기둥을 쳤다.하르카가 케이를 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시 자기 기둥을 쳤다. 왼손으로. 퍽.둘은 그렇게 쳤다. 해가 지고, 마당에 등불이 켜지고, 닭들이 닭장으로 들어갈 때까지. 케이는 천 번을 쳤다. 하르카는 몇 번을 쳤는지 몰랐다. 하르카의 왼손 목검은 처음보다 덜 빗나갔다. 그래도 짚을 가르지는 못했다. 퍽, 퍽. 둔한 소리.다음 날도 왔다. 그다음 날도.사흘째 저녁, 하르카가 목검을 내렸다."너 사과 안 하네.""하지 말라면서요.""그래서 대신 기둥 치는 거냐.""아버지가 그러래요."하르카가 코로 웃었다. 그리고 목검으로 마당 한가운데를 가리켰다."나와. 대련.""교관님 왼손으로요?""싫어?"케이는 목검을 들고 마당 한가운데로 나갔다. 하르카가 맞은편에 섰다. 왼손에 목검. 오른팔은 천으로 감아 목에 매단 채."규칙. 너는 바투는 쓰지 마. 크래셔는 당연히 안 되고. 윈드블레이드도 안 돼. 기초 검술만.""그럼 저 그냥 칼 휘두르는 거잖아요.""그래. 그게 전사야."하르카가 움직였다.느렸다. 오른손 때와 비교하면 반도 안 됐다. 케이의 눈이 다 따라갔다. 왼발이 먼저 나왔다. 왼손잡이의 반대 패턴. 케이가 비켜서 반격했다. 하르카가 막았다. 어색하게. 목검이 손에서 미끄러질 뻔했다.케이는 그 틈을 보았다. 찌르면 닿는다.찌르지 않았다.하르카의 눈이 가늘어졌다."……봐주냐.""아니요.""봐주잖아.""교관님 팔이……"퍽.목검이 케이의 옆구리를 때렸다. 왼손으로. 느렸는데, 피할 수 없는 자리였다. 케이가 봐주느라 멈춘 그 순간에."내 팔 보지 마. 내 칼 봐."케이는 숨을 골랐다. 다시 자세를 잡았다.이번엔 봐주지 않았다. 하르카도 봐주지 않았다. 느린 칼과 느린 칼이 부딪혔다. 하르카는 왼손이 서툴렀지만, 칼이 어디로 올지 읽는 눈은 그대로였

  • THE LEGEND OF DARKNESS(어둠의 전설)   제38화 바르칸의 서랍

    길드에는 바르칸 혼자였다. 해 질 녘이었다. 탁자를 닦던 손이 케이가 들어오자 멈췄다.케이는 접수대 앞에 섰다. 동전을 꺼내 올려놓았다. 지평선 위의 별.바르칸은 동전을 보았다. 오래 보지 않았다. 한 번 보고, 눈을 감았다."마르타가 말했냐.""반만요. 나머지는 할아버지한테 물어보래요."바르칸이 탁자를 닦던 행주를 내려놓았다.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접수대 너머가 아니라, 손님 쪽 탁자에. 케이 맞은편에. 오늘 두 번째였다. 로웰 어른이 케이 맞은편 손님 자리에 앉는 것이."앉아."케이가 앉았다.바르칸은 셔츠 안에서 별패를 꺼냈다. 금빛, 반쯤 깨진. 동전 옆에 나란히 놓았다. 깨진 돌의 단면이 검게 그을려 있었다. 등잔불에 그 그을음이 무지갯빛으로 번들거렸다. 검은 물처럼."열한 해 전 가을이었다."바르칸의 목소리에는 높낮이가 없었다. 열한 해 동안 혼자 외운 사람처럼."우린 다섯이었다. 다 5성. 대륙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파티였지. 이름은 에이든이 지었다. 황혼의 별. 해 질 녘에 제일 먼저 뜨는 별처럼, 어두워지기 전에 먼저 가서 길을 비추자고."바르칸이 동전을 손끝으로 밀었다."그해 여름에 왕궁에서 의뢰가 왔다. 그늘숲 깊은 데서 검은 물이 솟는다고. 짐승들이 미친다고. 우리는 그게 뭔지 몰랐다. 그냥 독이 솟는 샘이겠거니 했지. 막으면 될 줄 알았다.""막았어요?""막았다."바르칸이 별패를 쥐었다. 깨진 돌이 손바닥에 박혔다."샘이 아니었다. 문이었다. 땅 밑으로 난 문. 검은 물은 그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거였어. 우리는 그 문을 닫았다. 닫긴 닫았다."바르칸이 말을 멈췄다. 등잔불이 흔들렸다."토렌은 문 앞에서 죽었다. 문 안에서 나온 것한테. 오웬하고 미라는 살아서 나왔다가, 이듬해 겨울에 각자 다른 데서 죽었다. 검은 물을 너무 많이 뒤집어써서. 별패가 다 까매졌지.""그럼 에이든은요."바르칸이 케이를 보았다. 오래 걸려서 대답했다."돌아오지 않았다.""……어떻게요.""그건 다음에 말하마."

  • THE LEGEND OF DARKNESS(어둠의 전설)   제37화 국자의 무게

    새벽에 케이는 그늘숲 가장자리에 감자 보따리를 두고 왔다.베른이 말한 그 자리였다. 다리를 끄는 그림자가 보였다는. 낙엽 위에 맨발 자국이 있었다. 한쪽은 깊게, 한쪽은 얕게. 숲 안쪽으로 이어졌다가 바위 앞에서 끊겼다.케이는 그 바위 위에 보따리를 올려놓았다. 엄마의 찐 감자 여섯 알. 그리고 숯 조각으로 바위에 적었다. 니엘이 굴 벽에 남긴 글씨를 흉내 내서.[감자. 먹어. 특히 너.]숲은 조용했다. 케이는 한참 그 앞에 서 있다가 돌아섰다. 따라 들어가지 않았다. 따라 들어가면 니엘은 더 깊이 숨을 것이다. 고양이처럼.식당 문을 열었을 때 국자는 날아오지 않았다.마르타 아줌마가 부엌에서 감자를 깎고 있었다. 케이를 보더니 칼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앞치마에 손을 닦고 나와서 케이를 위아래로 훑었다. 이 빠진 칼, 반쪽 눈썹, 퀭한 눈."앉아."케이가 앉았다. 아줌마가 국을 한 그릇 떠 왔다. 감자가 들어간."다락의 아가씨는요.""어제부터 안 내려와. 밥은 올려 보내면 반은 먹어. 반은 남기고. 편지만 쓴대."아줌마가 맞은편에 앉았다. 손님 자리에. 아줌마가 손님 자리에 앉는 걸 케이는 처음 보았다."하르카 팔, 들었어."케이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내가 그 애 열두 살 때부터 알아. 전사 길드 문 앞에서 목검 들고 기다리던 애야. 아무도 안 받아 줘서. 계집애가 무슨 칼이냐고. 근데 사흘을 버텼어. 그래서 받아 줬지. 그때 교관이 누구였는지 알아?""……누군데요.""우리 그이."아줌마가 웃었다."토렌. 그 손잡이띠 주인."케이는 칼을 내려다보았다. 손잡이에 감긴 반질반질한 가죽 띠. 구리 고리 안쪽에 반쯤 닳은 글자. 토……"그이는 도적 출신이었어. 그런데 전사 길드 교관까지 했지. 칼은 짧은 걸 좋아했어. 단검 두 자루. 남들은 칼이 짧으면 겁쟁이라고 했는데, 그이는 짧게 쥐어야 잘 맞는다고 했어."케이의 손이 저절로 칼자루로 갔다. 짧게 쥐는 손."그 띠는 그이 단검 손잡이에 감던 거야. 그날 아침 새 띠로 갈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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