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하지만 송서윤은 고영훈도 사랑했었다.훗날, 고영훈이 전 세계에 생중계되는 라이브 방송으로 송서윤에게 청혼했을 때 그녀는 기쁨에 젖어 하루라도 빨리 고영훈에게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돌아가 그와 결혼했다.하지만 다행히도 그때 이혜정의 말을 듣고 심건모를 따라 2년 동안 떠나있었던 덕분에 심건모가 나중에 송서윤을 다시 데리러 올 수 있었다.송서윤은 심건모를 바라보았다. “국장님도 우리 엄마가 데려다준 사람이나 다름없네요.”“만약 그때 엄마가 국장님을 따라가라고 고집부리지 않으셨다면 난 아마 지금까지도 고영훈이 만든 감옥에 갇혀 있었을지 몰라요.”“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여보.”송서윤은 심건모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녀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가장 걱정하던 일이 결국 일어나고야 말았다. 그녀는 점점 심건모를 떠나보내기 싫어졌다. 하지만 심건모의 빛나는 인생이 그녀 때문에 일그러져서는 안 된다. 심건모는 자신의 아이도 아닌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도 되는 사람이 아니다.송서윤은 심건모를 밀어내고 떠나야만 했다.심건모는 송서윤을 꽉 끌어안았다. 가슴속에 일어난 파동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모두가 잠든 깊은 밤, 심건모는 컴퓨터 부서의 CCTV 화면을 지켜보곤 했다. 노트북 앞에서 밤을 꼬박 새우며 때로는 흥분하여 벌떡 일어나 나직이 소리를 지르고 때로는 미간을 찌푸리며 깊은 생각에 빠져 있던 송서윤. 그때 그녀는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은 아이였다.심건모는 송서윤을 지켜보며 그녀에게 빠져들었고 미치도록 탐냈으나 감히 움직이지는 못했다.첫 만남 당시, 심건모는 이혜정이 곧 세상을 떠날 줄도, 그녀를 열여덟에 시집보내려 한다는 사실도 몰랐다. 그는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이혜정은 죽기 직전, 하나 밖에 없는 딸아이를 단 한 번 본 적 있는 심건모에게 직접 맡겼던 것이다. 그 자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심건모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이제 송서윤은 심건모의 품에 안겨 고맙다고 말하고 있다. 10년
하지만 심건모는 알지 못했다.만약 그때, 이혜정이 심건모 때문에 고영훈과의 혼사를 반대했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그가 어찌 송서윤을 보내주었겠는가.심건모는 송서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당혹감을 억눌렀다. 그의 목소리는 안개처럼 공허하게 흩어졌다. 머릿속에서는 당시의 기억들이 거세게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무언가 단서를 잡으려 애썼지만 아무것도 없었다.이혜정은 심건모에게 아무런 말도 남기지 않았으니까.“당시 두 분이 특별히 나누신 말씀이라도 있었나요?” 송서윤은 심건모를 바라보며 물었다.심건모가 기억을 더듬었다. “어머니께서 네가 아주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니 나를 실망시키지 않을 거라고 하셨어. 그러니 반드시 돌아와서 너를 데려가 달라고 하셨지.”“아, 그런 거였구나. 난 또...”송서윤이 말을 멈췄다.“또 뭐?” 심건모가 되물었다.“아무것도 아니에요.”송서윤은 심건모의 품에 살며시 기대었다.그녀는 심건모 역시 이혜정이 선택한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혜정은 그저 송서윤이 강해지길 바라셨던 것이다. 심건모라면 그녀를 강하게 만들어줄 수 있으니까.심건모를 사위로서 마음에 두신 건 아니었나 보다.이혜정은 심건모를 딱 한 번 봤을 뿐이다. 반면 고영훈은 아주 오랫동안 지켜보았다.그렇다면 심건모는...심건모가 당시 송서윤을 좋아했을 리가 있을까?그때 송서윤은 고작 열여섯 살이었고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였다. 심건모는 나이가 많지 않았음에도 이미 모두의 존경을 받고 수많은 수행원을 거느린 국장님이었다. 그 시절 두 사람은 고작 세 번 만났을 뿐이다.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누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마저도 무척이나 서둘렀던 만남이었다. 심건모는 차 안에 앉아 있었고 송서윤은 차창 밖에 서 있었다. 그는 그녀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때 송서윤은 이혜정이 거절하는 바람에 심건모가 화가 난 줄로만 알았다. 그 일로 송서윤은 이혜정과 꽤 오랫동안 냉전을 벌였다.그 후 이혜정의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었다. 송서윤은 그제야 이혜정과 함께
“두 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심건모는 고하준을 바라보며 물었다. “하준아, 내 사무실 구경하러 갈래?”고하준이 송서윤의 눈치를 살폈다. “엄마, 저 정부 청사 한 번도 안 가봤어요. 반차 냈으니까 시간도 좀 남고요.”심건모가 송서윤을 빤히 쳐다보며 거들었다. “아이랑 시간을 좀 더 보내라면서?”이리안은 고하준의 다리에 매달려 훼방을 놓았다. “재미없어요! 오빠, 아빠 사무실엔 아무것도 없단 말이에요! 난 유치원 갈래요!”이리안의 작은 입은 제훈이 건넨 막대사탕으로 막혔고 그대로 제훈의 품에 안겨 멀어졌다.“엄마?” 고하준이 나지막이 불렀다.송서윤은 고개를 끄덕였다.“아빠한테 말씀드리고 금방 올게요.” 고하준이 뒤를 돌아 복도를 따라 걸어갔다.고하준이 병실 안으로 들어선 찰나, 고영훈이 고하준의 뺨을 세차게 내리쳤다.“너는 내 아들이야! 네 성은 고 씨라고!”고하준은 얼얼한 뺨을 감싸 쥔 채 눈물을 쏟았다. 고하준은 단 한 번도 고영훈에게 반항할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고영훈은 결코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산이었고 무엇보다 유능하고 모두가 두려워하는 존재였기에 어릴 적부터 그를 숭배해 왔다.하지만 이제 고하준은 오직 송서윤을 지키고 싶을 뿐이었다.고하준은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진지하게 말했다.“아빠, 부탁이에요. 제발 엄마를 더는 아프게 하지 마세요.”“왜 엄마 기억을 잃게 만든 거예요? 엄마가 얼마나 슬퍼했는지 아세요? 엄마는 소영 이모를 붙잡고 두 시간이나 울었어요. 눈물이 다 말라버릴 정도로요.”“엄마는 아빠랑 연수 이모 일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아빠 곁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아요. 엄마는 아빠를 사랑하지 않아요. 이제 아빠가 필요 없대요.”“엄마가 소영 이모한테 아빠에 대한 기억을 없애달라고 했어요. 아빠를 잊어버리겠대요.”“아빠, 제발 더는 잘못된 길로 가지 마세요. 만약 아빠가 또 엄마를 다치게 한다면 저도 아빠로 인정하지 않을 거예요.”고하준은 고영훈의 마음이 흔들리기를, 자신을 소중히 여겨주기를
“고영훈 씨, 정말 송서윤 씨를 사랑한다면 붙잡을 게 아니라 보내줘야죠. 송서윤 씨가 심 국장님과 있을 때 얼마나 행복해하는지 정말 느껴지지 않는 겁니까?”고영훈의 시선은 송서윤의 가녀린 뒷모습과 이따금 심건모를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에 고정되었다. 송서윤은 긴장하고 있었지만 웃고 있었다. 심건모를 바라볼 때 미세하게 떨리는 그녀의 눈동자, 그것은 그녀가 설렐 때만 짓는 표정이었다.고영훈은 송서윤을 너무나 잘 알았다. 송서윤은 정말 심건모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자 고영훈의 심장은 갈기갈기 찢기는 듯 아팠다.‘아니야, 서윤이는 곧 심건모를 잊을 거야. 내 곁으로 돌아와야만 안전하고 평온해질 수 있어.’제훈은 한숨을 내쉬었다. “심 국장님이 지금까지 고영훈 씨를 제대로 상대하지 않은 건 순전히 송서윤 씨의 마음을 배려해서였어요. 하지만 언젠가 국장님께 마음의 변화가 생기는 날이 오면...”고영훈은 지금 자신이 무엇을 마주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제훈을 비롯한 이들은 심건모를 위해 일하는 동시에 그의 철저한 보호를 받는다. 심건모는 결코 자기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하게 내버려두는 인물이 아니었다. 부하 직원들에게도 이런데 송서윤은 오죽할까.고영훈이 송서윤에게 준 상처가 깊기에 심건모가 그를 그냥 내버려둘 리 없었다. 제훈은 심건모가 고영훈 따위에게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제훈이 발걸음을 옮겼을 때 고영훈은 그 자리에 완전히 굳어버린 채 서 있었다. 사실 이미 알고 있었다. 그저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심건모는 송서윤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 마음은 고영훈이 눈치채기도 전부터 이미 시작되어 있었다.고영훈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다 돌연 그의 어두운 눈동자에서 생기가 빠져나갔다. 그는 버티지 못하고 벽에 몸을 기댔다.해맑게 웃는 아이의 얼굴이 보였다. 고하준이 이리안을 안아 심건모에게 건네주고 있었다. 조금 전 자신이 했던 말들이 부메랑이 되어 뺨을 거세게 내리치는 기분이었다.아내와 자식들을 대신 보살펴
심건모가 보안 센터에 나타났을 때 그곳 사람들은 모두 송서윤이 심거모의 아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함께 학교에 갔고 심건모는 송서윤의 회사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지금 그는 그녀에게 요구하고 있었다. 그의 아내로서 대중 앞에 서달라고.심건모는 한 걸음씩 송서윤의 삶으로 파고들어 오는 것만 같았다. 송서윤의 결심이 심건모에 의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심건모가 그녀를 무너뜨리는 걸까? 아니, 이혼 합의서는 이미 제훈에 의해 찢겨 나갔다. 심건모는 송서윤이 선거 기간이 끝나면 떠나려 한다는 사실을 알 리가 없다. 그는 그녀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연스럽게 그녀와 함께 살아가고 싶을 뿐이었다.정말 마음 편히 심건모의 곁에 서 있어도 되는 걸까. 송서윤은 이정희와 했던 약속을 잊지 않았다. 그녀는 결국 심건모를 떠나야만 한다. 14일 뒤에는...송서윤이 심건모 쪽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기대로 가득 찬 고하준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제훈이 송서윤의 시선을 따라가며 넌지시 말했다.“하준이랑 사진 찍은 지 얼마나 됐죠? 하준이가 벌써 사모님 키만큼 컸네요.”그러고 보니 예전 핸드폰은 차 바퀴에 깔려 박살이 났었다. 지금 그녀의 핸드폰에는 고하준의 사진은 없고 이리안의 사진뿐이었다.“엄마?” 고하준이 송서윤을 불렀다.송서윤은 문득 고하준이 처음 엄마라고 불렀던 순간을 떠올렸다. 고하준은 순수하고 여렸으며 그녀를 필요로 했다. 송서윤이 고영훈과 결혼했을 때 그녀는 혼자였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이 오직 가슴속 가득한 사랑 하나로 용감하게 결혼이라는 세계에 발을 들였었다. 그런 그녀에게 고하준의 탄생은 유일한 위안이었다. 이혜정이 그녀를 사랑했던 것처럼 그녀 역시 고하준을 그토록 사랑했었다.송서윤은 고하준에게 다가가 고영훈의 손을 내리눌렀다.“놔. 하준이 괴롭히지 말고.”송서윤은 고하준을 보호해야 했다. 그를 버려두어서는 안 됐다.고영훈은 놀란 눈으로 송서윤을 바라보았다. 송서윤의 눈엔 사랑도 증오도 그 무엇도 남아 있지 않았다. 주
기자들과 수행원들은 복도 끝에서 제훈에게 가로막혀 있었다. 하지만 꼭 말 안 듣는 기자들이 있기 마련이었다. 그들은 복도 반대편을 향해 연신 카메라를 눌러댔다.송서윤은 두 손으로 심건모의 가슴팍을 밀어내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어쩐 일이에요?”“너는?”심건모는 송서윤의 흐트러진 긴 머리를 다정하게 쓸어 넘겼다. 송서윤은 급히 그의 손을 붙잡았다가 긴장한 듯 이내 다시 놓았다. 하지만 그녀의 손은 곧바로 심건모의 손아귀에 꽉 붙잡혔다. 저편에서 기자들이 계속 사진을 찍어대고 있었다. 그야말로 대중의 눈길이 일제히 쏠린 장소였다.“하준이가 아빠 보러 오겠다고 해서 같이 따라온 거예요.”심건모는 송서윤을 깊게 응시했다. 그녀에게선 티끌만큼의 죄책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심건모에게 말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송서윤은 손을 빼내어 등 뒤로 감췄다. “나중에 보안 센터에 가야 해요. 거기 있는 방대한 슈퍼컴퓨터를 빌려서 내 지뢰 찾기 시스템을 복구해야 하거든요.”말이 끝나기도 전에 심건모는 송서윤을 껴안으며 등 뒤로 숨긴 그녀의 손을 단단히 잡았다. 송서윤은 기자들 쪽을 바라보다가 쏟아지는 플래시 세례에 당황했다. 도저히 벗어날 수 없음을 직감한 그녀는 아예 얼굴을 심건모의 품에 묻어버렸다.“난 환자들을 위문하러 온 거야.” 심건모는 송서윤의 샴푸 향기를 맡으며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일 봐요. 난 금방 갈 거니까.”심건모가 미동도 하지 않자 송서윤은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몸을 굽혀 얼굴을 바짝 들이밀었다. 송서윤은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안 돼요! 국장님, 안 된다고요.”“이미지 관리해야죠!”화가 난 송서윤의 얼굴은 생기가 넘치다 못해 매혹적이었다. 심건모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더니 그제야 그녀를 놓아주었다.그때 제훈이 다가왔다. “기자 여러분, 심 국장님과 사모님 기념사진 한 장 찍어주시죠.”심건모는 한 걸음 물러나 제훈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그는 고영훈의 곁으로 다가가 멈춰 섰다. 그리고 고영훈의 도발적인 눈빛을 정면으로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