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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Author: 밥벌이요정
송서윤은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조차 역겨워 눈을 감고 자는 척했다.

‘이제 28일만 더 버티면 돼. 정말 얼마 안 남았어.’

고영훈은 송서윤이 잠든 줄 알고 아무 말 없이 침대 곁에 앉았다. 그리고 차가운 그녀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깊은 밤처럼 어두운 눈동자에는 차오르는 감정이 금방이라도 넘칠 듯 고여 있었다.

정지욱이 했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형수님이 정말 알았다면 조용히 있을 분이 아니잖아요. 진작 이혼 얘기 꺼내고 형님 곁을 떠났을 거예요.’

송서윤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고요하게 누워 있었다.

‘내가 너무 예민한 걸까, 괜한 걱정을 하는 걸까...’

고영훈은 부드럽게 속삭였다.

“여보, 넌 절대 내 곁을 떠날 수 없어. 내가 지켜줄 거야. 절대로 널 아프게 두지 않을 거야.”

그의 다른 손이 조심스레 송서윤의 아랫배 위에 올랐다.

따스한 온기가 퍼지자, 송서윤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그녀는 오래전부터 심한 생리통에 시달렸고 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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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고영훈의 순애보가 마냥 가짜인 것은 아니었다.그는 송서윤을 찾기 위해 온갖 고초를 겪었고 타지에서 객사할 뻔한 위기까지 넘겼다. 그 후 그 어떤 여자도 고영훈의 마음속에 들어오지 못했다. 송서윤이 그의 마음속에 단단히 자리잡고 있어 조금의 틈도 생기지 않았으니 말이다.방탕한 생활을 청산하고 돌아온 고영훈은 일편단심 한 여자만 바라보는 멋진 남자가 되어 있었다. 심여진은 그런 그가 이전보다 훨씬 더 나은 사람으로 변했다고 생각했다.이 남자는 매력적인 외모와 성격은 물론이고 사랑을 위해서라면 자존심도 생명도 그 무엇이든 버리는 순애보까지 갖고 있었다.사랑 앞에 무릎 꿇고 진흙탕 속까지 뒹굴 정도로 비굴해질 줄 아는 남자.심여진의 마음속에서 고영훈의 엇나간 행동들은 그저 송서윤을 향한 지극한 사랑일 뿐이었다.그런데 그 뒤에 이런 진실이 숨겨져 있을 줄이야.심여진은 이제 고영훈이 어떤 희생을 치르든, 얼마나 큰 벌을 받든 전부 자업자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속에서 곱게 그려 놓았던 고영훈의 형상은 허망하게 무너져 내렸다.송서윤이 카페를 나섰을 때 밖에는 보슬보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문득 그녀의 머릿속에 심건모가 떠올랐다.“비 맞지 마.”송서윤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담담한 눈매의 심건모가 서 있었다.검은색 비옷을 입은 그는 손에 검은 우산을 쥐고 있었다.송서윤은 망설임 없이 그의 품으로 뛰어들었다.“어떻게 나왔어요? 중독된 척 연기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그녀는 심건모를 꽉 껴안으며 얼굴을 비볐다. 목소리에는 여전히 울먹거림이 남아 있었다.심건모는 한 손으로 송서윤을 받쳐 안으며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리안이는 내 딸이야.”“누구도 뺏어갈 수 없어.”심건모의 시선이 멀리서 휴대폰을 흔들고 있는 구혁진과 마주쳤다.구혁진은 계속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입 모양으로 외치고 있었다.“선비인 척할 필요 없어! 빈틈을 타서 몰아붙이라고!”심건모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송서윤을 번쩍 들어 올렸다. 우산이 바닥으로 툭

  • 가장 가까운 배신   제552화

    “리안이한테도 불공평해요!” “어젯밤에 제가 영훈 오빠 데리고 빌라로 아이들 보러 갔었거든요. 그런데 리안이가 자기 아빠를 때리더라고요. 세숫대야를 머리에 씌우고 두드리는 것도 모자라 물총으로 영훈 오빠 눈을 쐈어요.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아세요?”송서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 동의도 없이 고영훈을 우리 집에 데려갔단 말이에요?”“아가씨 정말 너무하네요.”심여진은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이 잘못했다는 건 알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아빠와 딸을 못 만나게 하는 언니가 더 너무하죠.”“고영훈은 리안이 아빠가 아니에요.” 송서윤은 잠시 말을 멈췄다.“언니, 제발 자기 합리화 좀 그만하세요!” 심여진은 목소리를 높였다.“저 이미 부모님께 확인했어요. 리안이는 우리 오빠 아이가 아니라 영훈 오빠 아이라는 거요.”“고영훈도 그렇게 확신한대요?”“네.”“고영훈이 내 딸한테 무슨 말을 했어요?” 송서윤의 머릿속에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쉴 새 없이 밀려왔다. 그녀는 억지로 감정을 누르며 치맛자락을 움켜쥐었다.“영훈 오빠는 그저 리안이랑 하준이를 보고 싶어 했을 뿐이에요.”“오빠는 아무 잘못도 안 했다고요.”“그런데 오빠랑 하준이한테 쫓겨나다시피 빌라에서 나왔어요.”“리안이는 아예 알아보지도 못하고요.”“오빠가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아세요?”“빌라에서 나와서 길가에 쓰러지기까지 했다고요.” 심여진은 고영훈의 고통을 대변했다.송서윤은 그 누구에게도 이 상처를 드러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가해자는 피해자로 둔갑해 동정을 받고 있었다. 그렇다면 진짜 피해자는 누구란 말인가?송서윤의 눈에서 차가운 눈물이 굴러떨어졌다.심여진은 멍해졌다.“고통스러운 기억을 다 잊었다고 생각했어요. 오늘 아침 이산 그룹에서 고영훈을 만났을 때, 심지어 아무런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상처라는 건 결코 쉽게 잊히는 게 아니었네요.”“아가씨, 고영훈은 살인자예요.”“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예요!”“내가 리안이를 가졌을 때, 내

  • 가장 가까운 배신   제551화

    송서윤이 떠난 뒤 심건모는 사람을 시켜 CCTV를 확인했었다. 그녀가 문 앞에 서 있을 때 그는 노정안과 통화 중이었다. 그녀는 무엇을 들었을까?“바빠 보여서 방해될까 봐요.”송서윤은 심건모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그의 힘찬 심장 박동 소리를 들었다. 심건모는 송서윤의 머리카락을 넘겨주며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 “너라면 난 언제든 시간 있어.”다행히 심장 실험실에 관한 이야기는 듣지 못한 모양이다. 송서윤은 마음에 담아둔 것을 잘 숨기지 못하는 성격이다. 심건모는 송서윤이 그 사실을 알길 원치 않았다. 3D 프린팅 심장은 아직 성과가 없었기에 섣부른 희망을 주었다가 실망만 안겨줄까 두려웠다. 그는 그저 그녀가 아무 걱정 없이 지내길 바랐다.“며칠 병원에 입원해야 해.”“그동안 혁진이가 아이들의 안전을 책임질 거야.”“내 전우니까 나를 믿는 것처럼 믿어도 돼.”심건모는 송서윤의 얼굴을 들어 올렸다. 그녀의 어두운 표정을 본 그는 달래듯 말했다. “걱정하지 마. 곧 끝날 일이니까.”송서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심건모를 껴안았다. “오늘 고영훈과 만난 건 협력 프로젝트 때문이었어요.”심건모의 마음 한구석에 따스한 온기가 퍼졌다. “응.”송서윤이 병실을 나오자 제훈과 조민이 서류 더미를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구혁진은 무슨 말을 하는지 심여진을 크게 웃게 만들었다. 심여진에겐 조금 전 서글펐던 기색이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송서윤을 발견하자 심여진은 웃느라 맺힌 눈물을 닦아내며 말했다.“언니, 카페 가서 좀 앉을까요?”송서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심여진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전과 확실히 달라졌음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병원 1층 카페.두 사람이 마주 보고 앉았을 때, 갑자기 검은 그림자가 송서윤 곁에 드리워졌다. 커다란 손이 송서윤 앞의 커피잔을 만져보더니 사진까지 한 장 찍었다. 두 사람이 옆을 쳐다보자 구혁진은 그들의 시선 따위 상관없다는 듯 휴대폰에 대고 말했다.[네 와이프 커피 취향이 너랑 똑같네.][시럽 안 넣은 블랙커피.]

  • 가장 가까운 배신   제550화

    “소중한 줄 모를 거면 차라리 일찌감치 양보하든가.”“보아하니 전남편도 인물이 훤칠하던데.” 혁진은 휴대폰 뉴스를 힐끗 보며 덧붙였다.“꽤 대단한 놈 같아 보이네. 사모님이랑 아주 잘 어울려 보이기도 하고.”심건모는 혁진을 서늘하게 훑어보고는 송서윤을 품에 꼭 끌어안았다. 목소리에는 억눌린 분노가 서려 있었다. “나가.”자기가 제 발로 화근을 불러들인 꼴이었다.“이제 막 실력 발휘 시작했는데.”“아까워서 그래?” 혁진은 능청스럽게 대꾸했다. “됐다. 무서워서 원. 내가 져준다.”혁진은 그제야 병실 밖으로 나가며 문까지 친절히 닫아주었다.송서윤은 환자복을 입은 심건모의 안색이 창백한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그의 가슴팍부터 얼굴까지 더듬어 올라갔고 눈물이 끊어진 진주 목걸이처럼 뚝뚝 떨어졌다.“혁진이가 헛소리한 거야.” 심건모는 송서윤의 젖은 눈동자를 마주하자 마음 한구석이 부드럽게 녹아내렸다.“정말 아무 일 없어.”‘그렇게나 나를 걱정한 건가?’심건모는 송서윤에게 그만큼 중요한 존재인 걸까.“피 토했어요?”송서윤의 목소리에 짙은 울음 섞인 걱정이 배어 나왔다. 숨이 차오를 정도로 서럽게 우는 그녀였다.심건모는 송서윤의 얼굴을 감싸 쥐고 눈가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자꾸 울면 못나져.”“아침에 미리 말을 맞춰두려 했어.”“어젯밤에 누군가가 나를 중독시키려 했거든.”그런데 송서윤은 인사도 없이 도망치듯 가버린 것이었다.송서윤은 갑자기 심건모의 어깨를 밀쳐 그를 떼어놓았다.심건모는 웃으며 그녀를 다시 끌어당겼다. “실패했어. 이미 구속됐고.”“사건을 하나 맡고 있는데 사람들 눈을 속여야 했어.”“다 가짜야.”송서윤은 심건모의 품에 얼굴을 묻고 요동치는 심장을 억눌렀다. 모든 게 가짜라지만 그녀가 느낀 심장의 통증만큼은 너무나 생생한 진짜였다.그때 송서윤의 얼굴이 다시 들어 올려졌다.심건모는 목소리를 낮추고 그녀의 얼굴을 찬찬히 살피며 은근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정말 없는 거야?”“네?”

  • 가장 가까운 배신   제549화

    보안 요원은 송서윤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길을 비켜줄 기색 없이 차갑게 말했다. “심 국장님 아내라는 걸 어떻게 증명하죠?”“제가요!” 송서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쳤다. “제훈 씨 어디 있어요?”“제 비서는 바빠요.”송서윤을 쏘아보는 남자의 시선은 마치 사냥감을 노리는 듯 번득였다. 각 잡힌 얼굴에 짧게 깎은 머리, 이마에 새겨진 위협적인 흉터까지. 보안 요원 유니폼이 터져나갈 듯한 근육질 몸매가 정말이지 위압적이었다.“사진이 있어요.” 송서윤은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함께 찍은 사진을 찾으려 했다.화면을 넘기는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하지만 온통 이리안의 사진이나 아이와 찍은 사진뿐, 심건모와 찍은 사진은 단 한 장도 없었다.송서윤은 다급한 마음에 덥석 남자의 손을 붙잡았다. “저 정말 와이프 맞아요!”남자는 소스라치게 놀라 한 걸음 물러나더니 송서윤이 붙잡았던 소매를 털어내며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너도 봤지? 여자가 먼저 나 잡은 거다.”표정이 다소 과장되고 익살스러웠다. 그 험악한 근육질 몸매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혁진아.”남자의 어깨에 달린 무전기에서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심건모의 목소리였다.“알았어. 알았어. 네 보물 그만 괴롭힐게.” 혁진이라 불린 남자가 너스레를 떨자 무전기 너머에서 갑자기 사레들린 듯 쿨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송서윤은 심건모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지 몰라 길이 열리자마자 안으로 돌진했다.병실 문 앞에 멈춰 선 송서윤은 숨을 죽였다. 가슴은 격렬하게 요동쳤고 눈물범벅이 된 심여진의 모습이 보이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공포가 그녀의 심장을 옥죄어 왔다.송서윤은 심여진을 밀치고 병상으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평온한 눈매로 병상에 앉아 있는 심건모가 있었다.“여보? 울지 마.” 심건모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하지만 송서윤은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심건모를 끌어안으며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사람 놀라게... 죽는 줄 알았잖아요.”송서윤은 온몸을 바들

  • 가장 가까운 배신   제548화

    고영훈은 수없이 송서윤을 안으려 할 때마다 그녀가 발버둥 치며 혐오스러워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까 두려워진 그는 서둘러 그녀를 등 뒤로 끌어당긴 뒤 손을 놓아주었다.“사모님! 심 국장님이 중독으로 입원했다는 게 사실입니까?” 마이크들이 앞다투어 송서윤을 향해 쏟아졌고 고영훈은 몸으로 그 공세를 막아냈다. 송서윤은 소스라치게 놀라 몸을 돌리더니 종업원의 손을 붙잡았다.“뒷문이 어디죠? 당장 나가게 해줘요!”송서윤은 여전히 휴대폰을 손에 쥔 채 극도로 초조해하며 외쳤다. “제훈 씨, 국장님은 좀 어떠세요?”“어느 병원이죠?”“지금 바로 갈게요!”“아버님 어머님께는 연락드렸나요?”기자들을 가로막고 선 고영훈은 복도 쪽을 바라보며 종업원을 따라 황급히 사라지는 송서윤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그제야 기자들이 상황을 곱씹기 시작했다.“남편이 중독됐는데 전남편이랑 느긋하게 밥을 먹고 있었다고?”“보아하니 이혼 합의서, 사모님이 원해서가 아니라 심 국장님이 안 놔주는 걸지도 모르겠네.”“심 국장님이 그렇게 좋은 분인데 어쩌면 전남편이랑 자꾸 얽히는 걸 못 견디신 거 아니야?”“안팎으로 전남편이랑 얽히는 게 찍힌 게 벌써 몇 번째야!”“닥쳐!” 고영훈은 군중 속으로 커다란 손을 뻗어 입을 놀리던 기자의 마이크를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마이크와 기자를 통째로 제 앞까지 끌어당겼다.“송 대표의 쉴드 체인 테크와 나의 운항 과학기술 회사는 프로젝트를 위해 곧 협력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고영훈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 기자를 싸늘하게 노려보았다. “입조심해요.”고영훈이 뿜어내는 차가운 기운에 기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꾹 다물었고 붙잡힌 기자는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겁에 질렸다. 고영훈의 시선은 짙은 안갯속을 꿰뚫듯 식당 밖을 향했다. 그곳에서 차 한 대가 급히 빠져나가는 것이 보였다.송서윤의 모습은 보안 카메라에 남지 않았고 지난 두 번의 실시간 검색어에서도 흐릿한 옆모습만 노출되었을 뿐이다. 일반인들은 그녀가 심건모의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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