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log in지수는 마지막 순간까지 오픈 준비에 모든 신경을 곤두세웠다.
“온라인 중계는 차질 없죠? 그리고 오늘은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RV와의 관계도 정식으로 오픈할 겁니다. 당신들 또한 저의 소중한 가족들이니까요.”
지수의 다정한 말에, 그저 진우의 오랜 팀원일 뿐이라 생각했던 이들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우리가…… 가족인가요?”
사라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
“물론이죠, 사라. 해커인 당신이 외국 국적이라는 이유로 그동안 강도진과 가장 많이 대면하게 해서 미안해요. 좋아하지도 않는 음지 일을 나를 위해 맡아주어서…….”
“아, 무슨 소릴 해요!”사라는 급하게 손사래를 쳤다.
“물론 강도진 그 인간 비위를 맞추는 게 끔찍했던 건
박진우에게 500억 대물변제 압박을 받고 나온 강도진의 행보는 조급해질 대로 조급해져 있었다. 당장 현금을 확보해 광산 사업의 자금줄을 대고 자신의 주식 지분을 지켜내야 했던 도진은, 그동안 시장에 내놓고 있던 수백억 원대의 개인 부동산 매물들의 가격을 대폭 낮추어 급매물로 연달아 전환했다. 제값은커녕 막대한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당장 현금을 손에 쥐어야 할 만큼 피가 말라붙는 긴박함 때문이었다.같은 시각, 제이아우라 이지수 대표의 집무실.지수의 비서 민철은 이전부터 지수가 유심히 눈여겨보고 있던 도진의 개인 부동산 매물 서류를 새로 정돈하여 지수의 책상 위에 올렸다."대표님, 강도진 대표가 급해지긴 한 모양입니다. 부동산 가격을 조절했다고 연락이 왔어요. 이건 조절된 내역입니다."지수는 서류를 받아 들고 붉은 펜을 들어 하나하나 유심히 체크하기 시작했다. 한남동의 빌라, 청담동의 부지, 그리고 과거에 사두었던 대지들까지. 지수의 펜 끝이 몇몇 매물 위에서 주저 없이 깔끔하게 동그라미를 그렸다.곁에서 그 과정을 한참 동안 가만히 지켜보던 민철은, 지수가 리스트의 가장 상단에 적힌 한 장소를 유유히 지나쳐 그대로 서류를 넘기자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물었다."대표님, 포스트 빌리지는 구매 안 하시나요?"포스트 빌리지. 두 사람이 결혼 생활을 시작했던, 그리고 8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신혼집으로 사용했던 고급 빌라였다.
며칠 뒤, 박진우의 호출을 받은 강도진은 약간의 희망을 안고 다시 그의 집무실로 향했다. 지난 미팅에서 진우가 "도전정신은 마음에 든다"며 남겼던 여지가, 남미 광산 투자의 물꼬를 틀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그러나 집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도진을 맞이한 것은 서늘한 정적과 진우의 차가운 눈빛이었다.진우는 도진이 내밀었던 사업계획서 옆에, 두꺼운 조사 보고서 두 묶음을 툭 던져놓았다. 하나는 과거 아스테리아에서 실시했던 남미 광산 현장 실사 보고서였고, 다른 하나는 앤더슨이 직접 현지를 방문해 작성한 따끈따끈한 현장 보고서였다."강 대표님. 이 두 보고서를 읽어보셨습니까?"진우의 무덤덤한 질문에 도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진우는 두 보고서의 특정 페이지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단조로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강 대표님이 내민 계획서의 화려한 전망과, 외부 전문가들이 작성한 이 현장 조사 결과가 왜 이렇게 판이하게 다른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특히 이번 CB의 현장 조사 때 앤더슨 씨가 직접 동행했던 것으로 아는데, 어째서 CB의 최종 보고서에는 그가 제시한 치명적인 지질학적 위험 요소와 붕괴 가능성이 쏙 빠져 있는지 의문이군요."진우가 CB 현장 보고서의 신뢰성 자체를 정면으로 건드리자, 도진의 얼굴이 일순간 굳어졌다. 도진은 침을 삼키며 급히 변명을 내놓았다."앤더슨 씨가 이야기한 위험성에 대해서는 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십수 년 동안 잔뼈가 굵은 실무자들과 개발 브로커들
힘겹게 2주를 기다린 끝에, 강도진은 드디어 박진우와의 미팅 자리에 들어설 수 있었다.도진은 그동안 밤을 지새우며 사력을 다해 완성했던 남미 에메랄드 광산 사업계획서를 테이블 위에 당당하게 내밀었다. 이 거대한 광산 사업의 가치와 비전을 확인한다면 박진우 역시 흔들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 확신했다.그러나 서류를 넘겨보는 진우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못해 냉담했다."……에메랄드 광산이라."진우는 계획서를 대충 몇 장 훑어보더니, 더 이상 읽을 가치도 없다는 듯 서류를 내려놓았다. 진우의 얼굴에는 흥미나 호기심 따위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었다. 자신을 완전히 아랫사람 취급하듯 무심한 진우의 태도에 도진의 자존심이 바닥까지 짓밟히며 파르르 떨렸다."박 대표, 사업 규모나 수익성 면에서 이만한 건이 없다는 건 잘 알 텐데?""강 대표님. CB의 현 자금 사정과 리스크를 감안했을 때, 이 정도 덩치의 해외 광산 투자는 사업이 아니라 무모한 도박에 가깝습니다. 저희는 안전성이 담보되지 않은 건에는 투자하지 않습니다."원론적이고 단호한 거절에 도진은 수치심으로 얼굴이 허얗게 질려갔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는 진우가 당장이라도 과거 지원했던 200억 투자금마저 당겨서 상환하라고 회수 독촉을 날릴까 봐 사시나무 떨리듯 불안감이 밀려왔다.그런 도진의 파르르 떨리는 턱관절을 무덤덤하게 바라보던 진우는, 서류를 천천히 덮으며 묘한 여운이 담긴 나지막한 한마디를 덧붙였다."하지만 강 대표님과의 인연을 생각해서…… 검토는 해 보지요. 그래도 전혀 새로운 분야로 사업을 넓혀보겠다는 그 도전정신만큼은 아주 마음에 드는군요."말은 검토해 보겠다지만 사실상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으니 나가라는 말없는 축객령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도진의 발목을 잡는 은밀한 희망의 밧줄이기도 했다. 마치 불쌍한
유현의 용기 있는 SNS 글 한 줄이 쏘아 올린 작은 공은, 오랫동안 찰스의 폭정과 착취 아래 숨죽이고 있던 피해자들의 가슴에 거대한 불꽃을 피워 올렸다.유현은 박성재 변호사의 조력 아래, 개인 SNS DM과 댓글로 조심스럽게 연락을 건네온 찰스의 전·현직 피해 디자이너들과 비밀리에 연쇄 미팅을 갖기 시작했다. 수많은 연락과 미팅을 이어갔지만, 거대한 공룡 기업 CB와 업계의 거물 찰스에게 직접 맞서야 한다는 중압감 때문이었을까, 선뜻 법정이나 재판에 직접 나서 주겠다는 사람들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유현도 그들의 망설이는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소중한 디자인을 빼앗겨서 처음엔 화나고 분통이 터지는 마음도 시간이 지나 현실의 벽에 부딪히면 점차 시들해지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아무리 용기를 내어 이 부조리한 사실을 밝힌다고 해도 결국 자신들이 할 줄 아는 건 디자인뿐이었다. 찰스가 자신의 막강한 업계 인맥과 권력을 동원해 뒤에서 어떤 매장 공작을 펼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니, 다들 신중하고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듭되는 거절과 난색에, 유현의 가슴 한구석에 서운함과 무력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감정이었다.그렇게 발품을 팔며 힘겹게 모은 10명 내외의 디자이너 중, 유현과 끝까지 뜻을 함께하여 법정 싸움을 해보겠다는 확신을 보여준 사람들은 이미 패션 디자인 업계를 떠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머지 몇몇은 재판의 진행 상황을 관망하면서 최종 참여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철저한 익명을 요구한 현직 디자이너들이었다.비록 당
박성재 변호사 및 법무팀과 함께 CB와 찰스를 향한 본격적인 법적 소장을 준비해 나가던 유현은, 밤늦게 자신의 SNS 계정을 열었다.유현은 이전에 찰스에게 디자인을 빼앗기고 억울해할 때, 강도진 대표로부터 "디자인을 지키는 것도 디자이너의 능력이자 힘이다"라는 찬바람 부는 핀잔을 들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유현은 이번 홀리데이 시즌 CB의 세컨드 라인으로 출시되어 큰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스티치 커플구두의 최초 원본 스케치 및 3D 도면 초안을 SNS에 무덤덤하게 업로드했다.그리고 그 사진 아래에 한 줄의 짧고 단단한 제목과 함께 장문의 글을 적어 내려갔다.['지키는 것도 힘'이라고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유현이 적어 내려간 글은, 무기력하게 아이디어를 빼앗기고 눈물 흘렸던 과거의 자신에 대한 깊은 연민이자 다시는 그런 부조리를 겪지 않겠다는 단단한 다짐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거대한 권력에 눌려 자신의 소중한 작품을 빼앗기고 숨죽이고 있을 수많은 주니어 디자이너들을 향한 따뜻한 위로와 응원이기도 했다.유현의 글은 올라오자마자 패션계 안팎과 CB 그룹 사내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다음 날 아침, CB 사옥 디자인실 옆 휴게실. 직원 몇몇이 커피를 들고 모여 앉아 유현의 SNS 화면을 띄워놓고 소곤거리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와, 그 순하고 입 무겁던 유현 씨가 이렇게 당당하게 자기 생각을 올리다니 진짜 대단하다.""그러게. 그런데 이거…… 그냥 자기 다짐글은 아닌 것 같지 않아?""당연하지! 딱 봐도 찰스 저격글이잖아. 그리고 유현 씨가 올린 스케치, 이번 시즌 찰스가 자기 작품이라고 발표해서 대박 친 세컨드 라인 구두랑 소름 돋을 정도로 유사한 부분이 많았잖아.""아, 나 그 이야기 들은 적 있어! 강도진 사장이 유현 씨한테 슈즈 라인 기획해 보라고 해서 유현 씨가 몇 달 동안
남미 에메랄드 광산 사업.박진우를 향해 내밀었던 투자 제안과는 별개로, 강도진은 남미 광산 지분 독점 확보를 위해 사력을 다해 총력전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나 현지 브로커들과 개발팀이 끊임없이 요구해 오는 말도 안 되는 액수의 로비 자금과 현장 개발 비용은 이미 CB 그룹의 가용 자산 한계를 훨씬 뛰어넘어 있었다.회사 공금에 손을 대는 것은 리스크가 너무 컸기에, 도진은 결국 자신이 보유한 개인 실물 자산들을 하나씩 조용히 처분하기 시작했다. 급매 수준으로 내던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부동산과 자산의 덩치가 너무 크다 보니 선뜻 사겠다고 나서는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믿었던 부동산 중개업소에서조차 "시간이 제법 걸릴 것 같다"는 절망적인 답변만 돌아왔다.문제는 아무리 입속의 혀처럼 조용히 자산을 정리하려 해도, 패션 및 재계에 소문은 새어나가기 마련이라는 점이었다.며칠 동안 핏발 선 눈으로 뛰어다니던 도진이 머리를 식힐 겸 자신이 즐겨찾던 강남의 고급 프라이빗 바(Bar)에 들어서자, 순간 웅성거리던 내부 소리가 뚝 끊기며 이상한 정적이 흘렀다.도진이 구석 바 테이블에 무거운 몸을 묻자, 바 주인이자 오랜 친구인 지철이 다가와 그가 즐겨 마시는 싱글몰트 위스키 한 잔을 슬그머니 내밀며 입을 열었다."야…… 너 요즘 힘드냐?"뜬금없는 질문에 도진이 미간을 찌푸리며 위스키 잔을 잡아챘다."무슨 헛소리야.""아니, 요즘 너 고급 빌라랑 실물 자산들 급하게 정리하고 있다고 업계에 소문이 파다하길래."도진은 참았던 깊은 한숨을 길게 내쉬며 잔을 들이켰다."아니야. 그냥 필요 없는 것들 깔끔하게 정리하던 중이야.""포스트 빌리지도 내놨다며?""거긴…… 지수랑 신혼집이었잖아. 그리고 수진이하고도 관련이 있고 해서 정리하는 것뿐이야.
아침에 일어난 지수는 싸늘하게 식어있는 옆자리를 보았다. 몇일 집에 잘 들어오던 도진은 어젯밤 들어오지 않았다.생리가 시작하기 전에 느껴지는 익숙한 배의 묵직한 불편감에 불안감이 든 지수는 자신의 아랫배를 살살 만지며 제발 이번에는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과 편하게 강도진을 떠나기 위해 이번에도 실패하기를 바라는 자신의 양가적인 생각에 웃음이 났다. 잠시 후 오랫만에 슬비를 만나기 위해 외출 준비를 하고 나가던 중 가정부의 통화소리가 들렸다."사모님 이번에는 사장님께서 가출하신 것 같아요. 집에 안들어 오시네요. 아마 작은
진우가 근무하는 HN은행 근처의 조용한 카페. 진우는 초조한 표정으로 맞은편에 앉은 슬비를 바라보았다. 슬비는 지현의 비서답게 흐트러짐 없는 모습으로 서류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갑작스러운 연락에 놀라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박진우씨"진우는 서류를 열어보려다가 멈칫하며 슬비를 응시했다."저를 어떻게 아시는지, 그리고 이지현태표님의 비서께서 왜 저를 찾으시는지 궁금합니다. 저희 은행은 GS와 관련이 없는 것으로 아는데요?" 슬비는 차갑지만 예의바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으며 서류봉투를 눈짓했다. 거기에는 슬비가 미리 준비한
지수는 사무실 문 앞에서도 도진과 수진의 적나라한 대화를 듣고 있었다.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수진은 기다렸다는 듯 도진의 목에 팔을 감으며 지수를 반히 쳐다봤다. 도진은 그런 수진을 보며 한 번 씩 웃고는, 손으로 수진의 허리를 쓸며 차갑게 지수를 쳐다봤다" 왜 왔어? 여기가 니가 오고 싶으면 오는 놀이터야?"지수는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수진이 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자신을 불렀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었다.지수는 도진의 물음에 대답대신 들고 온 서류봉투를 책상 위에 툭 던져두고 차갑게 돌아서려했다. 그런 지수
A국에 도착한 슬비는 K국과 다른 차갑고 축축한 공기를 마시며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박진우씨 맞으신가요? 저는 GS그룹의 박슬비라고 합니다. 제안드리고 싶은 일이 있어서 그런데 만날수 있을까요?"갑작스러운 전화에 진우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그 GS? 내가 아는 그 GS 맞아? 그 큰 회사에서 나를 왜?'라는 생각을 하며 대답했다."피싱 아닌가요? 요즘도 이런 사기에 걸리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하며 거칠게 전화를 끊어 버렸다.슬비는 황당한 표정으로 끊어진 전화를 한참 보다가 진우에게 메세지와 자신의 명함을 전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