เข้าสู่ระบบ그토록 기다렸던 임신 소식이었지만, 지수와 도진에게 허락된 기쁨은 야속할 정도록 짧았다.
다음날 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는 확신을 유보한 채 일주일 후에 다시 검사하자는 말만을 나겼다. 그 일주닝은 도진과 지수에게 평생보다 긴 지옥이었다. 손끝하나 대면 깨질 것 같은 불안 속에서 부부는 서로를 위로하며 버텼으나, 운명은 그들에게 자비롭지 않았다.일주일 후 다시 마주한 초음파 화면에는 생명의 고동 대신 기괴한 그림자만이 가득했다.
" 포상기태 입니다." 의사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 임신유지 호르몬의 과다 분비로 태아를 제외한 부속기관만 비정상적으로 증식하는 질환입니다. 안타깝지만 태아는 자라지 않기때문에 소파술만이 유일한 치료방법 입니다." 순간, 지수의 세상이 암전되었다. 충격으로 정신을 잃어가는 지수를 붙잡으며 도진이 비명 섞인 질문을 던졌다. "검사가 잘 못 되었을 가능성은 없나요?오진일 수도 있잖아요!" 하지만 의사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지수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를 맞이한 것은 하얀 병실 천장과 소독약 냄새였다. 도진은 지수의 손을 붙잡고 어린아이처럼 울고 있었다. "지수야, 다른 병원 가보자. 여긴 돌팔이가 분명해. 우리아이가 자라지 않다니, 그게 말이 돼?" 도진의 절규 섞인 슬픔 앞에 지수는 그저 멍하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후 찾아간 세 군데의 병원에서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마지막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후 지수는 비로소 입을 뗏다. "소파술 받겠습니다." 도진은 경악한 표정으로 지수를 바라보았다. "지수야, 어떻게 그렇게 쉽게 말해? 조금만 더 기다려 보면 혹시라도....!" 지수의 눈빛은 단호했고,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다. "나 간호학 전공이야 거기다 부인과에 관심이 많아서 제일 열심히 공부했었어. 더 이상 임신을 유지하면 아이도 힘들고 나도 위험해져. 며칠 안 되었지만,난 우리 아이가 아픈 것 싫어." 지수의 결정은 냉철한 이성이 아니라, 엄마로서 아이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배려였다. 그러나 도진에게 지수의 단호함은 '비정함'으로 잃혔다. 아이를 쉽게 포기하는 듯한 그녀의 태도에 도진은 당황스러움을 넘어선 깊은 실망감을 느꼈다. "우리 아이야! 어떻게 이렇게 쉽게 포기할 수가 있어! " 도진의 외침이도 지수는 그저 쓸쓸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그날 이후, 지수는 몸을 추스를 새도 없이 다섯 번의 난임 시술을 감내했다. 도진은 그 힘든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면서도 손을 내밀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아이를 포기한 지수가 당연히 감당해야 할 고통'이라며 그녀를 방치했다. 지수가 홀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동안 도진의 마음은 서서히 지수라는 성역에서 빠져나와 낯선 곳을 향하고 있었다.도진은 조용히 지수에게 다가가 깨지기 쉬운 도자기를 만지듯 지수의 눈물을 닦아주고 방을 나나오던 도진의 휴대폰이 반짝였다. 화면에 뜬 이름은 수진이었다. 도진은 조용히 지수와의 상념에서 깨어나 욕망의 현실로 발을 들였다.
다음날 지수는 난임치료로 얇아진 자궁 내막과 저하된 난소 기능을 확인하려 병원으로 향했다.
의사는 최소 1년은 시술을 중단해야 한다고 선고했다. 지수는 남아있던 6개의 난자는 냉동 보관 하고 가능성이 희박한 3개의 배아는 폐기하기로 결정했다. 자신의 마지막 희망을 쓰레기통에 전져버리는 폐기 동의서에 서명하고 돌아서는 순간, 진료실 너머에서 환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벌써 3개월이래. 첫 임신도 아닌데 도진씨 아이라 그런지 더 사랑스러워"
수진의 목소리가 지수의 귀에 들렸다. 도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수진이 말하는 '3개월 전'은 도진이 술에 취해 그녀와 처음 밤을 보냈던 시기였다. 피임을 철저히 챙겼다고 믿었지만, 그날의 기억은 안개처럼 불명확했다. 결국 도진은 자신의 비겁함을 '운명'이라는 이름으로 덮어버리기로 했다."이제 쇼핑하러 가자. 하지만 많이 걸으면 안 되니까 vip서비스를 이용하자. 백화점에 미리 연락해 뒀어."
도진의 다정한 호위는 지수가 잊고 있던 다정한 온기였다. 수진은 도진의 다정한 호위를 받으며 원무과 앞에 앉아 있는 지수를 향해 승자의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수진의 화려한 옷차림과 도진의 헌신적인 태도는 피폐해진 지수의 모습과 극명하게 대비되었다. 지수의 손에 쥐어져 있던 진료비 영수증은 형편없이 구겨졌다. 그 종이 조각에는 지수가 포기해야 했던 생명의 가치과, 도진이 버린 신뢰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지수는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박힌 자신의 그림자를 내려다보았다. 도진은 수진에게 모든 신경은 쏟은 탓에 곁에 있던 지수를 알아보지 못하고 병원 문을 나섰다. 지수에게 포상기태는 아이를 잃은 슬픔이었지만, 도진에게 그것은 지수를 버리고 수진을 선택할 완벽한 핑계가 되어 있었다. 가장 잔인한 축복이 수진의 배에서 자라나고 있었다.CB 그룹 본사 대회의실. 홀리데이 컬렉션 intermediate(중간) 기획 발표회가 열리는 회의실 내부에는 차가운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상석에 앉은 강도진 대표는 최근 RV의 박진우 대표에게 핵심 물류센터 3곳을 빼앗긴 상처와 300억 원 상환 유예라는 압박감 때문에 눈밑이 거무튀튀하게 패여 있었다. 남미 에메랄드 광산이라는 마지막 카드를 쥐었지만, 당장 눈앞에서 이사진과 투자자들에게 보여줄 확실한 신제품 실적이 절실했다."그럼, 이번 홀리데이 컬렉션 전체 라인을 총괄 지휘한 찰스 총괄 디자이너의 발표가 있겠습니다."사회자의 말이 끝나자, 화려한 스카프를 두른 찰스가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단상 앞으로 걸어 나갔다. 찰스는 자타가 공인하는 CB 그룹 디자인실의 수장이자 최고 실세였다. 비록 아랫사람의 아이디어를 은근슬쩍 탐내고 감각 있는 신입들을 견제하는 시기심 많은 성격이었지만, 수년간 업계 최정상에서 구르며 얻은 시장 감각과 트렌드를 읽는 눈썰미, 그리고 조직을 주무르는 수완만큼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화면에 찰스가 준비한 홀리데이 컬렉션의 메인 및 서브 라인업이 하나씩 떠올랐다. 이사진의 탄성이 흘러나왔고, 도진의 굳어 있던 표정도 조금씩 풀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객석 뒤편에 앉아 있던 유현의 눈동자가 순간 크게 흔들렸다.'……어?'찰스가 컬렉션의 서브 라인업으로 소개한 드레스 슈즈 때문이었다. 클래식한 가죽 바탕 위에 과감하면서도 정교하게 흘러가는 서브 스티치 디테일. 그것은 유현이 며칠 전 디자인을 고민하다가 '라인이 너무 튄다'는 이유로 폐기하고 노트 구석에 치워두었던 미완성 스티치 도안이었다.그러나 찰스는 그것을 그대로 베끼지 않았다. 유현의 서브 스티치 라인을 기초로 삼되, 디자인 총괄로서의 짬밥과 자신의 장기인 화려한 징 장식, 강렬한 색감 배치를 더해 완전히 '찰스 스타일'의 화려한
CB 그룹 회장실 옆에 마련된 화상 회의실. 암막 커튼이 드리워진 어두운 실내 속에서 대형 프로젝터 화면이 환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화면 너머로는 각기 다른 장소에서 접속한 세 명의 외국인 얼굴이 분할되어 떠올라 있었다.맞춤 수트를 매끄럽게 차려입고 입가에 자본주의적 미소를 띤 남미 현지 로비스트 로드리게스, 미간을 깊게 찌푸린 채 어두운 표정으로 두꺼운 지질 보고서를 뒤적이고 있는 A국의 세계적 지질학 전문가 앤더슨 박사, 그리고 거친 가죽 자켓을 걸치고 햇빛에 그을린 얼굴로 담배 피울 궁리만 하고 있는 현지 채굴 현장 총괄 감독 고메즈.회의가 시작되자마자 정적을 깨고 판을 주도한 것은 단연 로비스트 로드리게스였다. 그는 특유의 과장된 손짓과 흥분된 어조로 화면 중앙에 남미 안데스 산맥 일대의 광산 지도를 펼쳐 보였다."강 대표님! 이건 두 번 생각할 필요조차 없는 상위 0.1%의 노다지 프로젝트입니다. 이번 입찰에서 낙찰만 받아낸다면 CB 그룹의 자원 및 보석 사업 부문은 단숨에 남미를 넘어 세계 시장의 주도권을 쥐게 될 겁니다. 수치만 보십시오! 매장량의 무려 80% 이상이 최상급 에메랄드에, 일부 구간에서는 최고 등급의 다이아몬드와 루비까지 대량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전설적인 보석 광산입니다. 남미 전체를 털어도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신이 내린 노다지입니다. 정부 핵심 관계자들과의 밑작업은 이미 제가 완벽하게 마쳐놓았으니, 강 대표님께서는 낙찰 도장만 찍으시면 됩니다. 그 뒤는 그야말로 주워담기만 하면 되는 돈방석입니다!"로드리게스의 눈부신 호언장담에 강도진은 턱을 괴고 앉아 차분
CB 그룹 패션 디자인실의 중간 검토 회의를 앞두고, 디자인실 전체는 전에 없던 기묘한 열기와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총괄 디렉터인 찰스가 이번 크리스마스 홀리데이 컬렉션에서 서브 디자인 자리를 하급 및 신입 디자이너들에게 대거 개방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평소라면 찰스의 그늘에 가려 이름조차 올리지 못했을 연차 낮은 디자이너들에게는 그야말로 가뭄의 단비 같은 기회였다."수석님, 이번에 제가 제출한 서브 스케치입니다. 연인 간의 클래식한 감성을 살려봤습니다.""수석님! 저는 '나를 위한 선물' 라인에 맞춰 특수 자수 장식을 접목해 봤는데 한번 봐주십시오!"신입들과 2~3년 차 디자이너들은 며칠 밤을 새우며 짠 참신한 아이디어 스케치들을 들고 찰스의 디자이너실로 향했다. 찰스는 상석에 느긋하게 기대앉아, 아이들이 가져온 스케치들을 쓱쓱 훑어보며 가끔 짐짓 감탄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호오…… 3팀 김 디자이너, 이 소매 부분의 비대칭 주름 디테일, 꽤 신선한데?""이 디자이너, 버클 장치에 앤티크한 금속 레이스를 덮는 방식은 제법 감각이 있어."찰스는 친절한 선배의 얼굴을 하고 신입들의 스케치 구석구석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리고는 칭찬 몇 마디를 건네며 스케치북을 거둬 갔다.신입들은 마침내 자신들에게도 빛이 비추는가 싶어 가슴을 졸이며 결과를 기다렸다.하지만 며칠 뒤, 1차 기획 회의 판넬이 디자인실 중앙에 공개된 순간, 신입 디자이너들의 기대는 산산조각이 났다."……어?"스케치 판넬을 확인하던 신입 김 디자이너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메인 컨셉 판넬 중심에 걸려 있는 찰스의 메인 라인 착장 스케치 때문이었다. 소매 끝에 잡아놓은 비대칭 주름 패턴과 독특한 드레이핑…… 그것은 분명 며칠 전 자신이 찰스에게 검토받으러 가져
남미 광산 개발권을 집어삼키기 위한 도진의 움직임은 갈수록 집요하고 과감해졌다.현지 고위 공무원이 세팅해 준 로비스트 라인을 가동하기는 했지만, 뼛속까지 의심이 많은 도진은 현지인들로만 팀을 구성하기에는 아무래도 불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최근 며칠 동안 비밀리에 자원 개발, 지질학, 현지 투자가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을 직접 만나며 남미 광산에 대한 비공식 정보와 자문을 끌어모으고 다녔다.그러나 도진이 나름대로 은밀하게 움직인다고 한 행적들은, 정재계 및 자원 개발 쪽에 촘촘한 인맥을 가진 아스테리아의 지현을 거쳐 지수의 귀에까지 그대로 흘러들어갔다."오빠, 아스테리아에서 예전에 그 남미 광산 현장 평가한 보고서 있지? 그것 좀 볼 수 있을까?"지수의 연락을 받은 지현은 흔쾌히 아스테리아 내부 보안 문서로 분류되어 있던 현장 평가서를 전달해 주었다.지수는 모니터에 떠오른 문서의 내용을 주의 깊게 읽어 내려갔다. 평가서에는 광산의 매장량과 원석의 품질에 대해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광산 구역의 80% 이상은 하이엔드급 에메랄드가 매장되어 있으며, 일부 다이아몬드 및 루비 매장 추정. 매장량 규모는 중형 광산 수준.’표면적인 조건만 놓고 본다면 패션 및 주얼리 대기업인 CB 그룹으로서는 눈이 뒤집힐 만한 노다지였다. 원석의 질이 하이엔드급이라는 대목만으로도 도진이 왜 사재와 사운을 쏟아부으려 하는지 충분히 이해가 갔다.하지만 의문이 남았다. 이렇게 매력적인 조건의 광산이라면 왜 자본력과 정보력이 뛰어난 아스테리아가 진작에 손을 떼고 철수했는가 하는 점이었다.지수는 지현에게 전화를 걸어 직구로 물었다."오빠, 평가서 봤어. 원석 질도 하이엔드급이고 매장량도 중형 광산 정도면 대박인데…… 아스테리아는 왜 이걸 중간에 포기한 거야?"수화기 너머로 지현의
며칠 간의 짧은 병가를 마치고 돌아온 CB 그룹 디자인실의 아침은 여전히 차갑고 분주했다.하지만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디자인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유현의 눈빛은 이전과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늘 어깨를 짓누르던 특유의 무기력함과 불안감은 온데간데없었고, 그 자리에는 조용하지만 단단한 평정심이 자리 잡고 있었다.유현은 자신의 책상으로 걸어가 가방을 내려놓고 정돈된 서랍을 열었다. 병가 동안 유진이 건네준 조언들과 현실적인 가이드라인이 머릿속을 맑게 비워준 덕분이었다. 감정에 휘둘리며 스스로를 자학하던 유현은 이제 없었다.그러나 유현의 달라진 분위기를 감지하지 못한 찰스는, 평소와 다름없이 오만한 걸음걸이로 유현의 책상에 다가와 쾅 소리가 나게 서류 더미를 내던졌다."이야, 우리 귀하신 톱디자이너께서 드디어 출근을 하셨네? 몸 관리를 어떻게 하길래 홀리데이 시즌 앞두고 병가나 내고 말이야. 프로 의식이 없어, 프로 의식이."찰스의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디자인실 전체에 울려 퍼졌다. 팀원들은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시선을 피했다. 이전 같았으면 찰스의 공격적인 태도에 얼굴이 하얗게 질려 고개를 숙이거나 죄송하다며 안절부절못했을 유현이었다.하지만 유현은 그저 담담한 눈빛으로 찰스를 바라보며, 차분하고 건조하게 목소리를 냈다."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석님. 업무에 차질 없도록 하겠습니다."말끝에는 약간의 체념마저 묻어났다. 더 이상 찰스의 가스라이팅과 비난에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는, 지극히 거리를 둔 태도였다.찰스는 순간 흠칫했다. 예상했던 눈물이나 당황하는 기색 대신, 마치 벽에 대고 이야기하는 듯한 무덤덤한 반응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찰스는 혀를 쯧 차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하, 드디어 제 뼘을 알고 기가 완전히 꺾였군. 조만간 제 발로 사표 내고 나가겠어.’유현의 '체념한 듯한
같은 시각, CB 그룹의 치열한 암투와는 전혀 다른 정적과 그윽한 원두 향이 감도는 공간.더 문(The Moon) 건물 내에 위치한 사라의 개인 사무실이었다.CB 투자 건을 진우에게 완벽히 넘긴 후, 사라는 오랜만에 오션블루가 아닌 더 문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로 출근해 오랜만에 본업에 집중하고 있었다. 창가 너머로 따스한 햇살이 비쳐 드는 조용한 공간 안에서, 사라는 여느 때처럼 능숙하고 깔끔한 손길로 진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내렸다.김이 모락모락 나는 머그컵을 들고 익숙한 가죽 의자에 앉은 사라의 모니터에는, 일반인이라면 눈이 돌아갈 법한 복잡한 금융 수치들과 수십 개의 주식 그래프, 자금 흐름 노드가 빼곡하게 떠 있었다.사라는 커피를 한 모금 머금으며, 습관처럼 CB 그룹 및 도진의 개인 계좌 자금 추적 모니터링 창을 띄웠다. 베테랑 재무 에이스로서 몸에 밴 루틴이었다.그저 평소처럼 슥 훑어보며 넘어갈 예정이었던 사라의 뾰족한 눈동자가 특정 자금 노드에서 딱 멈춰 섰다.CB 주얼리 사업부의 일반적인 '희귀 원석 매입 계좌'로 아주 그럴싸하게 위장되어 있는 항목이었다. 웬만한 감사팀이나 보통의 재무 담당자라면 '고가 원석을 사들이는 정기 지출이겠거니' 하고 그냥 넘어가기 딱 좋은 형태였다.하지만 수억 대, 수십억 대의 자금이 페이퍼컴퍼니 세 곳을 단시간에 거치며 쪼개지고 교묘하게 꼬이는 정교한 패턴을 파악한 사라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걸렸다."요것 봐라……? 아주 재미있게 숨겨 놓은 게 있었네?"사라는 커피 잔을 내려놓고, 마치 아이가 아주 흥미진진한 장난감을 발견한 것처럼 눈을 반짝이며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탁, 탁, 타닥—!조용한 사무실 안에 뚝뚝 끊기는 경쾌한 마우스 클릭 소리와 키보드 타격음이 은은하게 퍼졌다. 사라는 자금의 은밀한 뿌리를 향해 맹렬하
3일간 안정을 취한 지수는 외출준비를 서둘렀다.거울 앞에 선 지수의 차림새는 단조로웠다. 연한 하슬색 원피스에 검은색 C사의 핸드백이 전부였다. 초췌해진 얼굴은 화장으로도 가려지지 ㅇ낳았고 푸석해진 머릿결과 여전희 볼록하게 남아있는 복부는 지수를 실제보다 훨씬 지쳐보이게 했다.누가 이모습을 보고 스물여덟의 꽃다운 나이라 할까. K국의 공주님으로 불리던 지수는 이제 A국의 가정부보다 못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지수는 거울 속 낯선 여자를 뒤로 한채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집을 나섰다.그녀의 차는 도진이 3년전 결혼 기념으로 사준
7일간 입원 치료를 마치고 영양제로 간신히 기력을 회복한 지수는 배아 이식을 끝내고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 동안 도진에게서는 단 한통의 연락도 없었다.지숙 역시 먼저 손을 내밀 기운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적막하고 차가운 공기가 감도는 거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 지수의 귓가에 가정부의 은밀한 전화 통화 소리가 드려왔다."네 사모님 진짜라니까요. 그 여자가 일주일이나 집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분명 다른 남자가 생긴거에요.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사장님은 방치할수는 없는 거죠 . 네 ,맞아요 제가 어떻게 사모님께 거짓말을 할
도진과 전화를 마친 지수는 떨리는 숨을 몰아쉬며 휴대폰을 조작했다. 익숙한 번호가 아닌, 철저히 숨겨두었던 가른 번호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실장인 혹시 오늘 CB 그룹과 투자 회의가 잡혀 있나요? "라고 물었다. " 네 사장님. 오늘 오후에 미팅이예정되어 있습니다. 혹시 변동사랑이 있으신가요?지수의 입가에 서늘안 미소가 번졌다. 도진이 그토록 화를 내며 중요하도고 외쳤던 미팅은 역시나 지수의 RV인벤스먼트와의 미팅이었다. " 네 변동 사항이 있습니다. 미팅은 그대로 진행해 주세요. 대신 계약서에 싸인은 하지말고
도진은 아침 6시가 넘어서야 옷을 갈아입기 우해 집에 들어왔다.주방에서는 가정부가 무미건조한 소리를 내면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지수가 현관까지 뛰어나와 "여보 왔어?"라며 겉옷을 받아 들었을 시간이었다. 밤새 고생했다며 미리 따뜻한 물을 받아둔 욕조로 그를 안내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아침은 달랐다. 거실은 적막했고 욕조는 차갑게 비어 있었다." 이 사람, 어디 갔어요?" 도진의 물음에 가정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사장님 오셨어요? 사모님은 주무시는지 방에서 안 나오시네요."그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