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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Author: 윤보라
오후가 되자 여수아는 조용히 방으로 돌아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침상 위의 베개가 어수선하게 흐트러져 있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그녀가 베개를 들추자 그 아래에서는 놀랍게도 한 점 옥패가 드러났다.

희고 윤기 나는 옥패였다. 손에 들어 올려 보니 제법 질이 좋은 것 같았다. 상서로운 새와 구름 문양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다. 옥패를 뒤집어 보자 뒷면에는 ‘청악’ 두 글자가 선명히 새겨져 있었다.

청악군주의 옥패? 그게 왜 자신의 베개 밑에?

여수아는 옥패를 들고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한참을 들여다 보더니 별다른 표정 없이 손을 스르르 풀었다. 옥패는 그녀 손끝에서 미끄러지더니 바닥에 툭하고 떨어졌고 그녀는 천천히 발을 들어올려 그 위를 밟았다.

사뿐히, 그러나 확실히. 잠시 후 곧 옥이 산산이 갈라지는 맑고 또렷한 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깥에서 분주하고 급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허 유모가 낯선 유모 두 명을 대동하고 그녀의 방으로 들이닥쳤다. 그들 셋은 마치 죄인을 추궁하러 온 포졸과도 같았다. 허 유모는 씩씩대며 여수아를 몰아세웠다.

“군주님의 옥패가 사라졌사옵니다. 오늘 그분이 들른 곳은 여기가 유일한데 낭자가 훔친 게 아니고 뭐란 말이옵니까?”

다른 두 유모 역시 싸늘한 표정으로 거들었다.

“그 옥패는 궁에서 하사된 군주의 신분을 증명하는 귀한 물건이옵니다. 훔칠 게 따로 있지, 하필 그런 물건을 손을 대다니요.”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오늘 군주님께서 이곳에 다녀가신 건 맞지만 나는 그 분 곁에 가까이 간 적이 없다. 도둑질이라니. 지나친 억측 아니냐?”

허 유모는 코웃음을 쳤다.

“말은 잘하시옵니다. 어디 직접 뒤져보면 되겠지요.”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다른 유모들과 함께 방안을 마구 뒤적이기 시작했다. 짐짓 수색하는 척하면서도 중얼거리는 말에는 독기가 가득했다.

“시골 무지렁이가 어디에 올라서려고. 더럽고 천한 것이...”

허 유모는 결국 여수아의 침상 곁으로 다가가 베개를 휙 젖혔다. 그리고 손에 옥패를 움켜쥐고는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도둑이 아니라고 하였사옵니까? 그럼 이건 뭐란 말입니까?”

그녀는 그 옥패를 여수아의 얼굴 앞에서 흔들며 외쳤다.

“이제 증거도 나왔으니 무슨 변명이든 해보십시오.”

그들은 여수아에게 변명할 틈도 주지 않고 거의 끌다시피 그녀를 바깥으로 몰아냈다.

“군주님이랑 재상 나리께서 지금 대청에서 기다리시니 할 말이 있다면 그분들 앞에서나 해보십시오.”

여수아는 그들을 보며 생각했다. 이 재상부 뒷마당은 예상대로 뱀과 독기가 도사린 늪 같았다. 그녀는 가볍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렇다면 함께 가지.”

여수아가 대청으로 끌려왔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정좌한 소휘였다.

오늘은 어두운 흑청색 장의를 입고 있었는데 전반적인 인상이 평소보다 한결 느긋하고 소탈해 보였다. 그의 손에는 청화백자 찻잔이 들려 있었다. 고개를 살짝 숙인 그의 얼굴은 부드러운 조명 아래에서 도리어 요사스럽도록 매혹적이었다.

여수아는 그의 몸에서 풍기는 은근한 향을 다시금 느꼈다. 문턱을 넘자마자 그 향에 발이 땅에 박히듯 멈춰섰다. 도무지 앞으로 더 나아갈 수가 없었다.

처음 이 문을 들어섰을 때도 느꼈다. 그와 자신은 아마 궁합이 극히 안 맞을 것이다.

향 하나만 봐도 취향이 극과 극이었다.

청악군주는 상황을 부드럽게 감싸듯 말했다.

“오라버니, 옥패가 꼭 형수님께서 가져갔다고 단정할 순 없겠지만… 그게 하사품이라서 말입니다. 사라졌단 소식이 황궁에도 전해질까 두려워서…”

소휘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급할 건 없다. 내 집에서 사라진 거니 차근차근 찾으면 그만이거든.”

그때 허 유모가 바삐 들어서며 고했다.

“재상 나리, 군주님! 방금 그 여수아 계집의 베개 아래서 군주님의 옥패를 발견하였사옵니다!”

소휘는 찻잔을 비껴 두며 천천히 시선을 들어 여수아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허 유모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서둘러 두 손으로 옥패를 올려드렸다. 이번까지 포함한다면 여수아와 소휘의 만남은 총 두 번이었다. 그 역시 모두 옥패로 인연이 닿아 겨우 만나게 된 것이니 그리 특별할 것은 없었다.

소휘는 옥패를 받아들어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딱딱하게 되물었다.

“이게 청악의 옥패인가?”

허 유모는 맹랑하게 대답했다.

“예, 틀림없사옵니다.”

청악군주는 곧바로 웃으며 말했다.

“이미 찾았으니 됐습니다. 오라버니, 너무 형수님을 나무라지 마십시오. 그저 잠깐 실수였을 뿐입니다.”

여수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휘 역시 당장은 판단을 유보한 듯했다.

그는 손에 든 옥패를 청악군주에게 건넸다.

“잘 보거라. 이게 정말 네 것이 맞느냐?”

청악군주는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어 받았다. 그러나 막상 옥패를 들자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빛깔은 비슷했지만 걸려 있는 끈의 색이 다소 연했고 문양도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 무엇보다 옥패 뒷면에는 자신의 이름이 새겨져 있지 않았다. 이건 그녀가 허 유모에게 건넸던 그 옥패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귀한 옥패를 시골 여자가 어디서 얻겠는가? 분명 뒷구멍으로 들어온 물건이라 생각하고 청악군주는 다른 변명을 찾기 시작했다.

“아… 맞는 것 같사옵니다. 제가 착각했던 모양이군요. 오늘 하사품을 차고 나간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차고 나간 듯 하옵니다.”

소휘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청악군주를 옆눈으로 살짝 바라보며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정혼의 증표로 주고받았던 것도 이 봉황옥패였던 걸로 아는데 내가 잘못 기억한 건가?”

청악군주는 그 말에 속이 철렁 내려앉았다. 순간 그녀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따뜻해 보였지만 이상하게도 칼날처럼 살을 베어내는 느낌이었다. 그녀의 뺨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소휘는 다시 한 번, 부드럽게 물었다.

“정말, 내가 틀린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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