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쨰는 이겁니다.”강하리가 문서 한 뭉터기를 내밀었다.“이건?”받아들고 슥 훑어본 정양철의 눈매가 가늘어졌다.“여기 쓰여진 수익을 보증한다고요? 하리 양, 급전 필요하면 나나 우리 아들내미나 무이자 무기한으로 빌려줄 수 있는데, 이 정도 수익 보증은 리스크가 너무 큰 거 아닌가요?”“시도해보지도 않고 자신을 부정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강하리가 자신만만한 웃음을 지었다.“좋습니다! 그 자신감! 역시 사람 제대로 본 것 같네요. 빠른 시일 내로 송금해줄 테니 에비뉴 쪽과도 가급적 빨리 마무리해주길 바랍니다.”두 사람의 악수로 대화가 성공적으로 끝났다.강하리가 나가고 혼자 남게 된 정양철. 복잡한 눈길로 [수익보증협약서]라고 씌어진 문서를 바라보았다.에비뉴 대표이사실.구승훈의 핸드폰 너머로 송유라의 울음소리가 울려퍼졌다.구승훈이 미간을 찌푸리며 핸드폰을 귓가에서 멀찍이 떼었다.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온 송유라가 가장 먼저 찾았다는 점이 감동은커녕 짜증이 되어 밀려왔다.“오빠, 저 보러 좀 와 주면 안돼요? 저 너무 무서워요 지금.””죽는 것도 안 무서워하는 애가 뭐가 무서워?”구승훈의 냉담한 반응에 송유라는 말문이 꺽 막혔다.“아니, 그런 게 아니라 진짜 너무 무서-.”뚜-.구승훈이 통화종료를 눌러버렸다.막장드라마 악녀도 아니고, 이렇게 저급적인 수단으로 나를 붙들어매려 해?어릴 적 유라가 지금처럼 자랐단 게 믿어지지가 않는다.하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건 없으니까.서늘한 얼굴을 한 채 구승훈이 대표이사실을 나섰다.명인병원 고급병실.울부짖음 소리와 함께 물건 깨지는 소리가 간간히 새어나왔다.구승훈이 문을 여는 순간, 물컵 한 개가 그의 귓가를 스치며 날아 지나갔다.그 너머로 창백한 얼굴의 송유라가 멍해진 채 얼어붙었고.“오, 오빠? 고의로 그런 건 아니…에요.”“쌩쌩하네. 조사받는 것도 문제 없겠어.”구승훈이 문에서 비켜서자, 제복 차림의 사내 둘이 들어섰다.웅-!송유라의 머릿속에서 사이렌 비슷
”오……오빠, 이 사람들은 뭐, 뭐예요?”송유라가 공포에 질린 얼굴로 말까지 더듬었다.“구 대표님, 아무리 구 대표님이시라지만, 아직 채 낫지도 않은 애를 이렇게 놀래키시면 어떡해요! “곁에 있던 장진영이 다급히 외쳤다.“전에도 했던 말이지만, 잘못을 저질렀으면 책임을 져야 하는 거야.”눈빛 하나로 장진영이 입을 다물게 만든 구승훈이 송유라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자살 시도하면 그 죄가 다 용서될 줄 알았어? 그러면 뭐, 매번 죄 지을 때마다 자살시도로 때우게?”송유라의 눈빛이 당혹과 경악으로 물들었다.당신 때문에 죽을 작정까지 했는데 저런 말이 나온다고?강하리가 없었어도 저런 소리가 나왔을까?강하리, 죽어!“오빠, 정말 나한테 이럴 거예요? 강하리만 있으면 나 같은 건 죽어도 괜찮다는 거예요?”송유라의 눈에 어느새 눈물이 그득 차올랐다.하지만 구승훈은 변함 없는 담담한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유라야, 다른 사람 목숨도 목숨이야.”그 한 마디를 남긴 채, 다시 울고불고 난리를 치는 송유라의 병실에서 나와버렸다.“형, 형!”승재가 급급히 들어왔다.“꼭 내가 그렇게 해야 해?”구승훈은 대답 없이 흡연실로 걸어갔다. 승재가 그 뒤를 바짝 따랐다.흡연실에는 둘 밖에 없었다.“시킨 건 어떻게 됐어?”“둘째 형이 진술 바꿨어. 자기 혼자 주도한 거라고. 심 변호사도 알게 됐는데, 형에게후회하지 말라고 전해달라 그러더라.”구승훈이 묵묵히 담배에 불을 붙였다.“형, 정말 그럴 거야? 강 부장 버릴 거야? 이제라도 늦지 않으니까 다시 생각해 보는 건 어때?”숨 막히는 정적에 참지 못한 승재가 입을 열었다.“안 그러면 달라질 게 뭔데. 남친까지 생겼다는데.”“아닛, 이혼도 막 하는 세상에, 결혼한 것도 아니고 고작 남친이잖아. 그게 뭐 어때서.”구승훈이 대답 없이 담배를 한 모금 빨았다.쌉싸름한 담배 연기가 기도를 통해 페를 휘감고 나왔지만, 답답한 가슴은 풀리지 않았다.어젯밤 왜 그렇게 물었는지 강하리는 너무나도
”승재 너, 사는 게 재미없어졌지?”냉기가 뿜어질 듯 차가운 음성이 구승훈의 입에서 흘러나왔다.승재가 아차 싶어 입을 꾹 다물었다.하지만 얼마 못 가 다시 주절이기 시작했다.“강 부장이 아깝지. 재난을 막아주는 영험한 구슬이 있단 소릴 듣고 형 생일선물로 주려고 사찰에 하룻밤을 꼬박 꿇어앉아 기다렸는데. 송유라는 형한테 해 준게 뭔데.”담배를 입가에 가져가던 구승훈의 손이 멈칫했다.“뭐라고?”움찔한 승재. 하지만 꿋꿋하게 할 말을 이어갔다.“맞잖아. 송유라한테 그걸 시키면 5분도 못 버티고 힘들다고 징징거릴걸 아마.”“그거 말고. 무슨 구슬?”“형 생일선물로 준 그 구슬 말야.”구승훈의 목울대가 요동쳤다.지난번 강하리가 짐을 쌀 때 언뜻 보이던, 염주 모양으로 꿴 영롱한 빛의 구슬이 생각났다.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그냥 액세서리려니 하고 넘겼다.“그게 나 주려고 꼬박 하룻밤을 꿇어 받은 거라고?”혼잣말로 중얼거리는 구승훈을 승재가 의아한 눈길로 바라봤다.“당연하지. 나도 받았어. 다만 내 건 구슬이 아니고 부적.”구승훈의 입술이 실룩였다. 한참동안 말이 없다가, 담배를 끄고 밖으로 걸어나갔다.성큼성큼 걷다가, 어느 순간부터인가 막 달리기 시작했다.막 병실을 나서는 송유라의 앞을 쌩 지나쳤다. 구승훈을 부르려던 송유라의 입술이 그대로 굳었다.그 뒤로 나타난 승재가 픽 웃었다.“봤어요? 우리 형 강 부장 만나러 막 뛰어가는 거.”“그 입 다물어욧!”빼액 소리지른 송유라가 아차 싶었던 건, 승재의 눈에서 번득이는 살기를 본 순간이었다.스팟!날카로운 빛이 송유라의 팔을 그어 지났고, 동시에 피가 뿜어져 나왔다.“끼아악!!”짜악!비명을 지르는 송유라의 뺨이 삽시에 벌겋게 부어올랐다.“팔은 강 부장 몫, 싸대기는 태어나기도 전에 네년 때문에 죽어버린 내 조카 몫.”서늘한 승재의 음성이 울렸다.“그리고 이건 강 부장을 납치한 죗값.”승재가 송유라의 멱살을 잡아 벽에 밀어붙였다.“끄으윽
급속도로 어두워지는 구승훈의 얼굴에 안예서의 눈물이 쏙 들어갔다.“대, 대표님이 들어오시기 몇 분 전에요.”구승훈의 미간이 꿈틀했다.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다.마케팅부를 나서자마자 업무용 번호로 강하리에게 전화했다.같은 시각, 강하리는 송유라 소송 건으로 그녀를 찾아온 심준호의 차에 타 있었다.핸드폰에 구승훈의 업무용 번호가 뜨자 강하리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구승훈이에요?”운전하던 심준호가 웃었다.강하리는 고개를 끄덕였다.“받아 봐요. 소송 건으로 찾는 걸지도 모르니까.”강하리가 끊임없이 울려대는 핸드폰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전화를 받고 스피커를 눌렀다.“네, 승훈 씨.”생소한 호칭에 구승훈의 미간이 찌푸려졌다.“강하리, 누가 내 허락도 없이 맘대로 이직해도 된댔어?”스피커폰으로 가라앉은 구승훈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인수인계도 끝났고 위약금도 물었는데 안될 게 뭐가 있죠? 의문점 있으시면 법무팀에 심 변호사님 찾으라고 하세요.”냉담한 강하리의 대답에 구승훈이 미간을 꾹 눌렀다.강하리와 다툴 생각은 없었다. 막을 수 없는 이직이란 것도 잘 알고 있었다.무슨 수를 써도 안 통하는 강하리란 걸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돈은? 어디서 났어?”“훔치거나 뺏은 건 아니니까 승훈 씨는 신경쓰실 필요 없고요. 이직도 다 끝난 마당에 가급적 연락은 안 해주셨으면 좋겠네요.”말을 마친 강하리가 전화를 끊으려는 찰나.“어디야? 지금 당장 만나.”“별로 그러고싶지 않아서요.”그렇게 통화는 끝이 났고, 구승훈의 얼굴빛은 말이 아니었다.다시 강하리에게 전화하려는 찰나, 낯선 번호가 들어왔다.통화 거절을 눌렀지만, 다시 전화가 들어왔다.귀찮은 얼굴로 구승훈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송유라의 울부짖는 소리와 함께 다급한 의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구 대표님, 빨리 좀 와 주셔야 할 것 같아요. 송유라 씨가 대표님이 없으면 안 하겠다고 자꾸 치료를 거부해서요.”구승훈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졌다.“그럼 치료하지 말고 냅두세요.”“그건 좀
”왜 구애를 막으시는 겁니까?”정주현이 도통 알수 없다는 표정으로 정양철을 바라보았다.“헛짓거리야. 그럴 시간에 네 엄마가 잡아둔 맞선이나 보는 게 훨 나아.”“이봐요 영감탱이. 나 연성에 보냈을 때랑은 말이 틀리잖아요.”정주현이 잠시 멈췄다가 짓궂은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혹시 아버지가 찜해놓은 건 아니죠? 왠지 저보다 더 하리 씨를 팍팍 밀어준다는 느낌이-.”“이노무 시키가 못 하는 말이 없어!”정양철이 번쩍 쳐든 주먹에 정주현이 줄행량을 놓았다.……대양에서 나온 강하리는 그 길로 엄마가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병원 앞 좁은 골목길에 들어서는 찰나.날카로운 뭔가가 강하리의 허리춤에 들이밀어졌다.따끔한 촉감과 함께, 고약한 알코올 냄새가 확 풍겨왔다.“입 뻥긋하면 찔러버린다.”강찬수의 서늘한 음성이 들려왔다.“뭐 하는 겁니까.”전신이 굳은 채, 강하리가 냉랭하게 입을 열었다.입가에 잔인한 미소를 띤 채, 강찬수가 강하리를 끌고 옆 막다른 골목에 들어섰다.“용건을 말해요.”순간, 날카로운 칼이 강하리의 허리춤으로부터 목덜미에 옮겨졌다.약간의 따끔함 뒤에 이어지는 서늘함. 그리고 목덜미를 타고 뜨뜻한 액체가 흐르는 느낌.순간 강하리는 이 미친 인간이 여차하면 서슴없이 자신을 죽일 거란 확신이 들었다. “용거어언? 네년 때문에 내 일이 틀어졌으니 네년이 대신 갚아줘야 할 거 아니야!”강찬수가 낮은 소리로 으르렁거렸다.원래는 장진형을 찾아가 협박할 생각이었다.하지만 씨알도 안 먹혔다. 장진영은 자신이 대놓고 불지 못할 걸 확신이라도 하듯 만나 주지도 않았다.사실이었다. 장진영을 불었다간 그 칼잡이가 된 자신도 밝혀질 거니까.그래서 부득이하게 찾아온 게 강하리였다.“또 돈 얘긴가요? 얼마 필요한데요?”“진작 그럴 것이지. 많이도 필요 없고, 전에 말했던 10억만.”강찬수가 능글맞기 웃었다.“꼭 무슨 맡겨놓은 돈이라도 있는 것처럼 말하시네요. 내가 은행도 아니고 어디서 그리 많은 돈을 구해요.”“건 내 알 바 아
피로 얼룩진 강하리의 옷과 그녀의 목에 난 상처가 구승훈의 눈에 들어왔다.구승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살기로 가득찬 눈길로 뒤를 쫓는 강찬수를 응시했다.구승훈을 본 강찬수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하지만 곧 두 사람이 헤어졌단 걸 기억해내곤 낮은 소리로 을러멨다.“구 대표님, 이미 헤어진 남 일에 끼어들려는 건 아니시죠?”구승훈이 대답이 없자 강찬수는 더 기고만장해졌다.“강하리, 좋은 말로 할 때 이리 와.”강하리의 미간이 꿈틀했다.설마 저 미친 인간이 구승훈 앞에서 자신을…….퍼억!순간 강찬수가 골목 안쪽으로 날아들어가더니 벽에 부딪쳐 찍소리 못 하고 쓰러졌다.그제야 강하리는 창백해진 얼굴로 숨을 몰아쉬었다.잠시 숨을 고른 뒤, 구승훈을 돌아보았다.“고맙습니다.”구승훈의 눈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웠다.“또 말 뿐이지.”“그러면 안 고마운 걸로 하죠.”구승훈의 눈가에 경련이 일었다.“고맙단 말 말고, 다른 할 말은 없고?”“무슨 말이 듣고 싶으신데요?”강하리가 미간을 찌푸렸다.“강하리. 그 구슬은 어떻게 된 거야.”강하리가 멈칫했다가 잠시 뒤에야 물었다.“무슨 구슬요?”“시치미 뗄래? 나 생일선물로 주려고 하룻밤을 꿇어 받아왔다던 그 구슬.”“아, 그거요.”강하리가 속눈썹을 내리 깔았다.“승재 씨가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 그거 사실 아기한테 선물하려고 받아온 거였어요.”구승훈의 몸이 흠칫 떨렸다. 가슴속에 뭔가가 꾸역꾸역 밀려들어 마구 헤집는 느낌이 들었다.마음속 한쪽 구석에 잊고 있었던 아기.그게 살짝만 건드려도 아픈 상처로 곪아있었단 걸 알게 되었다.“강하리, 일부러 이러는 거지?”강하리는 어떤 얘기로 이 남자의 질척거림을 멈출 수 있는지를 너무나도 잘 알고있었다.강하리가 돌아서는 찰나, 구승훈이 갑자기 그녀를 들어 안았다.“왜, 왜 이래요? 이거 놔요!”주해찬의 여자친구라는 신분을 잊지 않은 지라, 강하리가 몸부림치기 시작했다.하지만 구승훈은 도통 놔줄 생각이 없어보였다.강하리가 버둥거리는
강하리의 뒷모습이 구승훈의 눈망울에 오롯이 맺혔다.먹물 한 방울이 물에 퍼지듯, 구승훈의 가슴 속에 아픔이 퍼지기 시작했다.강하리를 붙잡고 묻고 싶었다.나한테 없는 그 감정, 주해찬에게는 있냐고.하지만 입가에 맴돌던 말을 다시 삼켜버렸다.입을 꾹 다문 구승훈은 강하리 앞으로 성큼성큼 나아가 뒤돌아 꿇어앉았다.“업히는 건 괜찮겠지? 그 속도로 언제 병원까지 걸어가.”강하리가 미간을 찌푸렸다.사실 살짝 어지럽던 차였다. 깊은 상처는 아니었지만 길게 난 터라 피가 멈추질 않았다.구승훈이 강하리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다짜고짜 그녀를 들쳐업었다.“언제까지 밍기적거릴 거야. 과다출혈로 쓰러질 판에.”강하리가 업힌 자세로 얼어붙었다.내려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럴 힘도 나지 않았다.겨우 입을 열어 한 마디 부탁했다.“강찬수 붙잡아 줘요.”“이 시점에 그 인간이 대수야?”퉁명스런 구승훈의 음성에 강하리는 겨우 힘을 짜내 대답했다.“물어볼 게 있어서요.”구승훈이 뭐라 더 하려는 찰나, 목에 뜨뜻한 액체 한 방울이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고개를 돌려 보니, 강하리의 상처에서 스며나온 피가 옷깃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저도 모르게 구승훈의 발걸음이 빨라졌다.“야 강하리! 잠들지 마. 나랑 얘기 좀 해!”의식이 점차 희미해지기 시작한 강하리가 잠꼬대하듯 대답했다.“무슨 얘기……요?”“아무거나. 요즘 일상, 일 얘기, 뭐든.”“여기는……어떻게 알고 온 거예요?”구승훈의 낯빛이 순간 흐려졌다.사실 하루종일 송유라를 달래느라 병원에 짱박혀 있다가 막 나오던 중이었다.저만치 강하리와 그녀에게 슬금슬금 접근하는 강찬수를 발견하고 따라왔던 거였다.“그냥, 지나가던 길에 우연히.”“거짓말. 송유라 이 병원에 있는 거 다 아는데.”강하리가 희미하게 웃음을 터트렸다.“…….”두 사람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고.“나랑 유라 사이,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이 아니야.”그냥 여동생 같은 사이라고. 이성으로서의 감정이
”사라졌다고?”승재의 전화를 받은 구승훈의 얼굴이 어두워졌다.“지금 바로 사람 풀어서 주위를 뒤져. 멀리는 못 갔을 거야.”바로 지시를 내린 뒤, 한 마디 덧붙였다.“찾으면 일단 적당한 곳에 가둬두고, 강하리한테는 도망갔다고 알려주면 돼.”“왜?”핸드폰 저편 승재가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었다.“시키는 대로만 해.”느긋하게 대답하는 구승훈. 더 해석 없이 통화를 마쳤다.힘들게 잡은 사람을 공짜로 강하리에게 넘길 수는 없지.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예를 들면, 자신의 전화번호 차단을 해제한다든가.속으로 계산기 팍팍 두드리며 응급실로 돌아와 보니 강하리의 핸드폰이 울려대고 있었다.[봄날같은선배]액정에 뜬 수신인에 구승훈이 미간을 팍 구기며 가차없이 전화를 끊어버렸다.하지만 얼마 못 가 또 걸려오는 전화.이번에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하양아, 퇴근했어?”따뜻한 주해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봄날이 따로 없는 음성이었다.물론 구승훈의 귀에는 너무나도 거슬리는 목소리였지만.“강하리 피곤해서 잡니다. 용건 말해주면 이따가 전해줄게요.”핸드폰 저편이 잠시 고요해졌다.뜬금없는 구승훈의 목소리에 적잖이 놀란 모양이었다.“구 대표님? 하양이 바꿔주시죠.”봄날은 오간데 없이 사라진 서늘한 음성으로 바뀌었다.“자고있다고 했잖습니까.”심드렁한 구승훈의 대답. 주해찬이 바로 전화를 끊었다.……강하리의 눈가가 움찔거리더니 서서히 눈을 떴다.그녀의 눈에 들어온 건 병상 머리맡에 앉아있는 주해찬이었다.그리고, 조각 같은 얼굴에 난 상처.“선배? 언제 오셨어요? 얼굴에 그 상처는 뭐고요?”상처와는 별개로 주해찬의 얼굴이 왠지 어두워 보였다.“어디 불편한 데는 없고?”목소리는 여전히 따스했다.강하리 앞에서는 모든 감정이 부드러워지는 주해찬이었다.고개를 휙휙 저어본 강하리가 목에 감긴 붕대를 매만졌다.“괜찮아요. 그보다 선배, 혹시 누구랑 싸웠어요?”“아니야.”주해찬이 얼버무리듯 대답하며 이불을 여며준다.강하리의 미간이 살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