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551화

Author: 재인
강하리는 짧게 대답하며 나지막이 몇 마디를 덧붙인 뒤 전화를 끊었다.

구승훈은 끊어진 전화를 바라보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문을 두드리며 들어온 구승재의 표정이 다소 어둡자 구승훈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

“비행기표 예약했어?”

구승재가 짧게 대답한 뒤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다시 말을 꺼냈다.

“형, 이거 송유라가 보낸 거야.”

구승훈의 눈썹이 사납게 찡그려졌다.

“뭔데?”

구승재가 물건을 건넸고 그걸 받은 구승재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분홍색 크리스털 목걸이였다.

뒷면에 자신의 이니셜이 새겨진 분홍색 리시안셔스.

구승재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렇게 매정하게 굴 거면 다시는 자기 죽든 말든 신경 쓰지 말래. 방금 그쪽 간병인한테서 연락이 왔는데 손목을 또 그었다고 하더라.”

그 말을 듣는 구승훈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고 구승재도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

“형, 어차피 강하리 씨랑 결혼할 거면 송유라 쪽은 빨리 처리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안 그러면 일 터지는 건 시간 문제야. 송유라가 툭하면 난동을 부리는데 강하리 씨가 아무리 신경 안 쓴다고 해도 기분 안 좋을 거야.”

구승훈은 미간을 꾹 누르며 한참을 고민하다가 말했다.

“이제 처리할 때도 됐지. 일단 Y국으로 가자.”

번뜩 꿈에서 깨어난 강하리가 눈을 떴을 땐 눈가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가정부는 서둘러 그녀를 품에 안고 살며시 토닥였다.

“하리 씨, 악몽 꿨어요? 꿈꾸면서 계속 울고 있었어요.”

강하리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뒤 멍한 표정으로 가정부를 바라보다가 방금 꾼 꿈에서 조금 벗어났다.

절벽에서 떨어지는 꿈을 꾼 건 꽤 오랜만인데 오늘 그 꿈이 다시 찾아왔다.

절망과 질식이 그녀를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물 마시고 숨 좀 돌려요.”

가정부가 물 한 잔을 건넸고 강하리는 물을 받아 한 모금 마셨다.

“지금 몇 시죠?”

“벌써 9시 넘었어요. 뭐 먹고 싶은 거 있어요? 내가 만들어 줄게요.”

강하리는 무의식적으로 구승훈이 이미 비행기에서 내렸을 거라고 생각하며 휴대폰을 꺼내 구승훈에게 전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Related chapters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552화

    노진우가 사람들을 데리고 서둘러 달려갔지만 병실 상황을 본 그의 심장이 철렁했다.그는 부하들에게 사람들을 모두 제압하라고 명령하고 자신은 강하리를 부축하러 갔다.“강하리 씨.”강하리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며 얼굴과 입술이 하얗게 질린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얼른 의사 불러요, 의사!”노진우는 서둘러 의사를 불렀고 수술실의 불은 한 시간 넘게 켜져 있었다.노진우는 내내 강하리의 곁을 지켰고 노민우도 이곳의 상황을 들었는지 서둘러 달려왔다.“강하리 씨, 걱정하지 마요. 병원에 있는 의사들 다 불러놨으니까.” 강하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지막이 말했다.“고마워요.”노민우는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승훈이한테 전화했어요?”강하리는 시선을 내렸다. 방금 전화를 걸었는데 여전히 꺼진 상태였다.혹시 비행기가 연착된 건 아닐까.“대표님 아직 비행기 안에 계세요.”노진우가 강하리를 대신해 대답했고 노민우는 미간을 찌푸린 채 그를 돌아보았다.“그 사람들은 어떻게 된 겁니까?”노진우는 잠시 강하리를 바라보다가 낮게 말했다.“저 사람들, 예전에 어르신 쪽 사람들과 접촉한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강하리는 멈칫했다.“뭐라고요?”노진우는 서둘러 설명했다.“대표님이 저쪽 어르신의 움직임을 주시하라고 하셨는데 앞장섰던 사람이 어제 어르신 측 경호원들과 접촉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이쪽으로 올 줄은 몰랐어요.”입술을 앙다문 강하리의 가슴에 찌릿한 통증이 밀려왔다.구씨 가문 사람들 짓이었어?순식간에 강하리의 마음은 죄책감으로 가득 차 쌓여가는 것 같았다.‘나 때문에? 나 때문에 엄마가 이렇게 된 거야? 내가 이기적이고 무모하게 구승훈 곁에 있어서 그런 거야?’강하리는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아팠다.노진우는 위로하고 싶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강하리 씨, 괜한 생각 마세요. 단순히 제 의심일 수도 있어요, 조금 더 알아보고...”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강하리의 휴대폰으로 한 통의 메시지가 도착했고 고개를 숙인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553화

    “강하리 어딨어? 왜 내 전화를 안 받아?”노진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대표님, 강하리 씨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어요.”“뭐?” 구승훈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언제 돌아가셨는데?”“조금 전에요. 아마 어르신 쪽에서 한 짓인 것 같아요.”휴대폰을 움켜쥔 구승훈의 손 마디가 하얗게 질려가고 있었다.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알았어.”정서원은 수술실에서 영안실로 옮겨졌다.강하리는 정서원의 몸을 닦아준 후 새 옷으로 갈아입혔다.전에 정서원이 깨어났을 때 강하리는 그녀를 위해 새 옷을 여러 벌 사다 주었고 정서원이 그 옷을 입고 함께 연성의 거리를 누빌 수 있을 줄 알았다.그런데 이런 식으로 옷을 입게 될 줄이야.손연지는 옆에서 눈시울을 붉히며 울었고 강하리는 오히려 덤덤했다.하고 싶은 말이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은 표정이면서도 정서원을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영안실에서 나온 강하리는 급히 달려온 구승훈을 발견했다.구승훈은 다가와 그녀를 품에 끌어안았고 강하리는 가만히 안겨 있기만 했다.“무서워하지 마, 내가 있잖아.”강하리가 그를 밀어내자 구승훈은 살짝 인상을 찌푸렸지만 강하리는 이미 뒤돌아 장례식장에 도착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러 간 뒤였다.뒤돌아 따라간 구승훈은 강하리가 해야 할 일을 자신이 도맡았고 강하리는 구승훈이 대신 대답하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잠자코 있었다.구승훈은 모든 것을 제대로 준비했다.장례식부터 묘지까지.마치 그럴듯한 사위처럼....한편 B시, 심씨 가문에서 백아영은 심준호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갑자기 가슴 어딘가에서 급격한 통증이 밀려오며 곧바로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심준호는 깜짝 놀라 앞으로 달려가 눈물을 닦아주었다.“왜 그러세요?”백아영은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다가 한참이 지난 후에야 그녀는 말을 꺼냈다.“중요한 것을 잃은 것 같아, 마음이 너무 아파.” 심준호는 살짝 얼굴을 찌푸리며 물었다.“그럼 지금 병원으로 갈까요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554화

    구승훈은 그녀가 반지를 빼내는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강하리의 말이 떨어지자 남자의 표정이 순식간에 싸늘해졌다.“다시 말해 봐!”강하리는 가만히 눈앞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너무 사랑하는 사람인데, 돌아오면 혼인신고 하러 가기로 약속까지 했는데...모든 걸 잊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 있었다.과거를 내려놓고, 송유라의 존재를 무시하고, 아이까지 잊기로 했다.하지만 결국 이렇게 됐다.그의 가족들은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고 그래서 그녀의 어머니를 죽였다.그는 다시는 송유라를 만나지 않겠다고 분명히 약속하고도 결국엔 그녀를 만나러 갔다.이 거대한 도박판에서 그녀는 철저히 패배자가 된 것이다.완전한 패배자로 전락했다.“헤어지자고요. 구승훈 씨, 당신 가족들은 나 싫어해요. 우리 더는 억지로 엮이지 말아요. 나 정말... 더는 견딜 수가 없어요. 앞으로는 송유라를 내버려두라고 묻지도 않을 거고, 당신이 정말 송유라를 놓아줄 거라고 기대하지도 않을 테니까 우리 여기서 끝내요.”강하리의 눈물이 예고 없이 쏟아졌다.구승훈이 돌아온 후 처음 보는 그녀의 눈물이었다.정서원의 장례식 때도 울지 않던 그녀가 지금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강하리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발 밑으로 떨어진 다이아몬드 반지가 맑은 소리를 내며 바닥을 뒹굴었다.그녀는 생각했다.이미 깨진 거울은 결코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릴 수 없다.깨진 건 깨진 거다.다시 이어 붙여도 그어진 틈새는 여전하다.구승훈은 패닉에 빠졌다.자신이 송유라를 만나러 간 사실을 강하리가 모를 거라 생각했다.“하리야, 내가 송유라를 만나러 간 건...”그는 강하리를 끌어당기며 설명하려 했다.강하리가 그를 떨쳐내려고 애썼지만 구승훈이 죽기 살기로 붙잡았다.“하리야, 내가 송유라를 만나러 간 건 송유라랑 제대로 얘기하려고 그랬어. 내가...”강하리는 눈물을 흘리며 돌아섰다.“제대로 얘기할 수 있기는 해요? 구승훈 씨, 송유라가 당신에게 어떤 존재인지, 당신이 과거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555화

    흠뻑 젖은 채 들어오는 그녀를 본 손연지의 얼굴이 확 변했다.“왜 이렇게 흠뻑 젖었어?”강하리는 대답하지 않고 지친 듯 다가와 손연지의 어깨에 기댔다.손연지는 가슴이 너무 아파서 강하리를 욕실로 끌고 들어갔다.“일단 따뜻한 물로 목욕해. 내가 핫초코 한 잔 만들어 줄게.”강하리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고마워.”손연지가 잠시 외출했다가 돌아와 보니 강하리는 피곤한 듯 눈을 감고 욕조에 기대어 이미 잠든 듯 보였지만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날카로운 통증이 손연지의 심장을 관통하며 눈가가 붉게 물들어갔다.이미 눈을 뜬 강하리가 그녀의 손에서 핫초코를 건네받으며 말했다.“잘 먹을게.”손연지는 당황했다. 그녀의 손에 끼고 있던 반지가 사라졌다.“하리야, 너랑 구승훈...”“헤어졌어.” 그녀는 가슴이 아프지도 않다는 듯 놀라울 정도로 담담하게 말했다.하지만 살짝 떨리는 입꼬리는 여전히 그녀의 심정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눈 주위가 다시 빨갛게 물들었고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감추려 고개를 숙였다.“구승훈은 동의했어?”강하리는 고개를 저었다.“이틀 진정하고 나서 다시 얘기하자더라.”“그럼 이틀 동안 쉬어. 마음 정리하고 다시 얘기해.”강하리는 손연지를 바라보았다.손연지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는 뜻이라는 걸 알았지만 그녀는 둘 사이에 구씨 가문 말고도 걸림돌이 있다는 걸 몰랐다.그럼에도 강하리는 이틀 동안 집에서 기다렸다.무슨 일이 있어도 그 사람들이 구씨 가문에서 보낸 사람들인지 아닌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이틀 동안 구승훈은 오지 않았고 단 한 통의 문자도 받지 못했다.강하리는 끔찍하게 조용한 휴대폰을 바라보며 한숨을 살짝 내쉬고는 구승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구승훈 씨, 내일이 어머니 오일장이니까 나랑 같이 묘지로 가요. 물어볼 게 있어요.]메시지를 보냈지만 바다에 던진 돌멩이처럼 감감무소식이었다.정서원의 오일장 날 그녀는 검은 드레스를 입고 특별히 꽃집에 가서 리시안셔스 꽃다발을 사서 묘지로 갔다.그렇게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556화

    강하리가 멈칫하며 곧 그녀의 얼굴에 있던 미소도 함께 사라졌다.그녀는 베개 위에 놓인 휴대전화를 만졌지만 여전히 아무 소식이 없었다.구승훈은 나타나지도 않았고 그녀가 보낸 메시지에 답장하지도 않았다.어쩌면 송유라 측에 또 무슨 일이 생긴 거겠지.강하리는 고개를 저었다.“그럴 필요 없어.”손연지는 얼굴을 찡그렸다.“하리야, 혼자서 애 키우는 건 너무 힘들어.”애한테도 안 좋고.이 아이는 그때의 그 아이와는 다르다.그 아이는 구승훈이 하리에 대한 애정이 조금도 없던 시절에 나타났지만 이 아이는... 적어도 하리에 대한 구승훈의 마음이 있을 때 찾아왔으니까.분명히 두 사람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는데.강하리의 코끝이 시큰해졌다.“연지야, 나 이제 용기가 안 나.”강하리의 말에 손연지는 멈칫했다.“무서워, 이 아이도 그때 아이처럼 될까 봐. 구씨 집안에서 날 싫어하고 문연진이 날 호시탐탐 노리고 있어. 그 사람들이 나와 아이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 이 아이가 지난번 그 아이처럼 될까 봐, 우리 엄마처럼 될까 봐 무서워...”손연지는 문득 가슴이 아팠다.“그래, 그럼 말하지 말자. 우리 여길 떠나자. 마침 내가 연수 가니까 너도 같이 갔다가 아이가 태어나고 어른이 됐을 때 다시 오자.”강하리는 눈물을 참으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 “나 해외 파견 가려고. 구승훈 때문에 거절하려고 했는데...”손연지는 입을 벙긋하다가 그녀의 손을 잡고 안아주었다.“그 개자식은 무시하고 아이 낳으면 우리 둘이 같이 키워.”강하리가 웃었다.“그래.”...송유라는 결국 목숨을 건졌지만 송씨 가문 사람들은 그 일로 난리가 났다.간병인은 송유라가 짜증 나서 밀었을 뿐 의도한 건 아니라고 했으나 송씨 가문에서는 송유라가 누군가에게 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며 강하리를 지목했다.구승훈은 미간을 찌푸린 채 의식불명 상태로 침대에 누워있는 송유라를 복잡한 눈빛으로 봤다.어쨌든 자신이 그녀에게 빚을 진 건 맞으니까.“구 대표.” 장진영의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557화

    구승훈은 미간을 찌푸리며 휴대폰을 꺼내 무의식적으로 강하리를 찾으려다 손가락이 멈칫했다.그는 카톡을 한 번 살펴본 후 급하게 강하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 쪽 전화기가 꺼져 있었다.구승훈의 심장이 세차게 내려앉았다.“지금 당장 국내로 돌아가!”구승훈은 귀국해 곧장 손연지의 집으로 향했고 반나절 동안 문을 두드렸지만 집 안에는 아무런 인기척도 없자 그는 돌아서서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손연지는 자신을 찾아온 사람이 구승훈이라는 소식을 듣고 그를 만나지 않았고 구승훈은 손연지가 퇴근할 때까지 병원 앞에서 기다렸다가 그녀를 만나러 왔다.“강하리 어딨어요?”손연지는 분노에 찬 눈빛으로 구승훈을 바라보았다.“구승훈 씨 전에는 뭐하고 이제와요? 하리가 그날 공동묘지에서 하루 종일 당신만 기다린 거 알아요?”구승훈의 얼굴에 고통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하리 어딨어요?”손연지가 말을 돌렸다.“나도 모르니까 나한테 와서 물어보지 마요. 알아도 말 안 해요. 구승훈 씨, 누구도 제자리에서 가만히 당신 기다려주지 않아요.”손연지는 말을 끝내고 그냥 그렇게 자리를 떠났다.구승훈의 가슴은 순식간에 바닥으로 가라앉았고 그는 어두운 눈빛으로 노진우에게 연락했다.“강하리 어디 갔어?”노진우는 잠시 침묵하다가 답했다.“강하리 씨는 지난 며칠 동안 저를 못 따라다니게 했어요. 그날 묘지에서 쓰러져서 병원에 하루 입원한 뒤로 손 선생님이 저를 떼어냈고요.”구승훈은 미간을 찌푸렸다.“그 여자가 비키라고 해서 안 따라다닌 거야?”“대표님 죄송했다.”구승훈은 여전히 미간을 찌푸리다가 살짝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지난 이틀 동안의 동선을 확인해서 연성을 떠난 건 아닌지 확인해 봐.”노진우는 서둘러 대답했고 그 후 구승훈은 심준호에게 전화를 걸었다.“강하리 지난 며칠 동안 B시에 갔었어?”백아영은 그날부터 아팠고 심준호는 지난 며칠 동안 그녀를 돌보느라 바빴기에 강하리에 대해선 전혀 몰랐다.“둘이 싸웠어?”구승훈은 한숨을 내쉬었다.“나한테 헤어지재.”심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558화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잊게 하기 위해 의사는 전기 충격 요법까지 사용했다.나중에 그 기억은 정말 잊혀졌지만 그는 삶에 대한 희망도 잊은 것 같았다.그러던 어느 날 심준호는 그를 다시 찾아갔고 그의 이러한 말을 들었다.“하양이 데리러 가야 해.”그가 기억하는 건 이름뿐이다, 하양이.심준호는 기억을 더듬으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승훈아, 내가 지나치게 의심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송유라가 정말 네 어릴 적 그 사람이 맞아? 나는 왜 네 말대로 송유라가 그렇게 따뜻한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사악한 기운만 풍겨대는 것 같을까.”구승훈은 자조 섞인 웃음을 지었다. 심준호가 말하지 않아도 가끔 그녀가 어떻게 이렇게 됐는지 의아했다.“하지만 걘 강주에서의 내 어린 시절에 대해 모든 걸 알고 있어.”심준호가 멈칫했다.“뭘 아는데?”구승훈은 가라앉은 눈빛으로 멀리 내다보았다.“내가 언제 가고 언제 돌아왔는지, 거기서 어떤 모습이었는지, 내가 살던 곳과 걔가 살던 곳, 그리고 내가 거기 있을 때 돌봐준 가정부 이름과 얼굴까지도. 심지어 내가 아플 때 팥죽을 먹으면 낫는다고 말해준 것까지.”심준호는 미간을 찌푸렸다.“그래? 내가 괜히 의심하는 건가. 근데 그건 마음먹고 알아보면 다 알 수 있는 거잖아.”구승훈이 웃었다.“내가 어린 시절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걸 미리 알았던 게 아니고서야 어떻게 감히?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은 너랑 나, 우리 할아버지 말고 구승재조차 몰라.”심준호는 얼굴을 찡그렸다. “승훈아, 그때 그 정신과 의사는 믿을 만한 사람이었어?” 구승훈의 눈매가 가늘어졌다.“할아버지가 찾은 사람이니까 믿을 만하겠지.”심준호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그냥 하는 말인데 송씨 가문도 의약 사업을 하고 있으니 그 정신과 의사와 접촉하기만 하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잖아.”구승훈은 당황했다.송유라를 의심한 적이 없었던 것은 송유라가 많이 닮아서가 아니라 어린 시절의 사건들은 대외적으로 잘 감춰왔기 때문에 감히 구씨 집안을 상대로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559화

    B시, 강하리는 탑승 전 마지막 준비를 마쳤지만 날씨 때문에 비행기가 연착되었다.그녀는 터미널에 서서 밖에서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죄책감에 사로잡혔다.무의식적으로 그녀의 손이 작은 배를 쓰다듬다가 나지막이 속삭였다.“미안해, 엄마는 너에게 행복한 가족을 만들어주지 못할지도 몰라.”그녀는 웃으며 말했다.“하지만 엄마는 널 정말 사랑하고 아껴서 아빠의 사랑까지 대신 채워줄 거야, 알았지?”주해찬은 옆에서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그녀가 멍하니 배를 만지는 모습을 지켜보며 가슴이 먹먹해졌다.구승훈이 또다시 그녀를 아프게 하면 자신이 꼭 데려가겠다고 다짐했었다.하지만 지금처럼 이렇게 상처받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그는 따뜻한 우유 한 잔을 가져와 강하리에게 건넸다.“비가 한동안 그치지 않을 것 같으니 휴게실 가서 좀 쉬어.”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또다시 천둥 번개가 하늘을 강타했다.그런데 이렇듯 궂은 날씨에도 공항 반대편에는 전용기가 착륙을 준비하고 있었다.구승훈은 비행기에 앉아 무심한 표정으로 밖에서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있었다.바람 때문에 동체가 심하게 흔들려 승무원들은 모두 긴장한 표정이었지만 구승훈은 전혀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대표님, 착륙이 잘 안될지도 몰라요. 날씨가 안 좋아요.”구승훈은 시선을 들어 깊고 차가운 눈빛을 보였다.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대원들은 식은땀을 흘렸다.“즉시 착륙 준비를 하겠습니다.”승무원들은 말을 마친 후 심호흡을 하고 착륙 준비를 하러 갔다.밖에서는 비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강하리는 얼굴이 살짝 하얗게 질린 채 터미널에 앉아있었다.웬일인지 자꾸만 마음이 불안했다.“왜? 몸이 안 좋아?”주해찬이 옆에서 묻자 강하리는 고개를 살며시 흔들었다.“아니요...”그녀가 말하자마자 옆에서 비명이 들렸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밖에 비행기 한 대가 활주로에서 미끄러졌대.”“세상에, 이런 날씨에 착륙하다니 기장 미친 거야?”“다친 사람은 없는지 궁금하네.”“없길

Latest chapter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1085화

    구승훈이 의미를 알 수 없는 웃음을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 쪽을 바라보았다.물 흐르는 소리가 막 멈춘 참이었다.그는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향했다. 살균 티슈로 손을 닦는 강하리의 모습이 차가운 벽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싫어하는 이유가.. 조시욱 때문이야?”구승훈은 무릎을 꿇고 강하리 앞에 앉아 그녀의 턱을 잡아올렸다.“대답해 봐, 조시욱을 위해 몸을 지키겠다는 거냐고?”강하리는 고개를 쳐들며 비웃었다.“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묻는 건데요?”구승훈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휠체어를 돌려 화장실을 나서는 그녀의 등 뒤에서 구승훈은 한참이나 멍을 때렸다. 구승훈이 다시 정신을 차린 건 병실 문이 열리고 심준호와 백아영, 조시욱이 들어와서였다.구승훈을 본 심준호와 백아영의 눈빛이 칼날처럼 날카로웠다.예전에는 무슨 일이 있든 심준호가 먼저 구승훈에게 상황을 묻고 강하리와 화해할 수 있도록 조율하려 했다.하지만 이번 일 이후 심준호는 단 한 번도 구승훈을 찾지 않았다.그건 구승훈에 대한 더 말할 나위 없는 실망을 의미했다.백아영은 당장이라도 구승훈의 뺨을 때리고 싶었지만 수십 년간 유지해 온 품격과 매너로 화를 억눌렀다.세 사람이 강하리와 함께 연정이 주위에 둘러앉자, 병실 한구석에 있던 구승훈은 마치 외부인 같이 느껴져 굳은 표정으로 병실을 나와 유리 창가에 서서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뒤늦게 찾아온 심준호가 말을 꺼냈다.“일은 다 정리됐어?”구승훈은 낮게 대답했다. “거의.”비록 여초연의 주변이 완전히 정리되진 않았지만 그녀를 손아귀에 넣고 있는 이상 큰문제는 없었다.“하리랑 조시욱 일은 너도 알고 있겠지. 승훈아, 너한테 양심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이제 그만 하리 인생에서 나가줘.”구승훈은 멈칫하다 이내 비웃듯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강하리 인생을 방해한다고? 준호야, 세상 사람들은 몰라도 넌 알잖아, 어떻게 된 일인지.”“알면 뭐 하냐? 구승훈, 우리 하리가 몇 번이나 목숨을 잃을 뻔했는데 그걸로도 부족해?”심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1084화

    강하리의 몸이 순간 굳어졌다.무의식적으로 구승훈을 밀쳐내려 했지만 연정이의 웃음소리에 잠시 망설였다.아직 열이 가시지 않은 구연정은 강하리와 구승훈을 보고 흥분했던 것도 잠시, 곧 다시 기운이 빠졌다.구연정은 힘없이 구승훈 어깨에 기댄 채 한 손은 구승훈의 옷자락을, 다른 한 손은 강하리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구승훈은 눈썹을 치켜들며 강하리를 바라봤지만 강하리는 그의 시선을 외면했다.그가 한숨을 내쉬며 무언가 말하려는 찰나 의사가 검사 결과를 들고 들어왔다.“강 대표님, 아가씨는 현재 바이러스 감염으로 보입니다. 며칠 입원이 필요할 것 같아 이미 병실은 준비해두었습니다. 곧 간호사가 안내해 드릴 겁니다.”강하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수고 많으셨습니다.”병실에 도착하자마자 연정이는 곧 깊은 잠에 빠졌다.강하리는 침대 곁에 앉아 연정의 손을 꼭 잡고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보았다.구승훈은 다른 한쪽에서 의사와 연정이의 상태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있었다.의사가 떠난 뒤에야 그는 강하리 옆으로 돌아왔다.“의사 말로는 보기보다 심각하진 않대. 너무 걱정하지 마.”하지만 강하리는 여전히 연정이의 손을 놓지 않은 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구승훈이 그녀 곁에 앉아 손을 잡으려 하자 강하리는 황급히 그 손을 빼냈다.“이제 돌아가요. 나랑 아주머니가 있으면 돼요.”구승훈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조시욱이 오기 편하게 나더러 가라는 거야?”강하리는 분노에 찬 눈빛으로 구승훈을 노려보다가 이내 비웃듯 말했다.“여기 남아 있으면 임 선생님이 화내지 않을까?”구승훈은 끝내는 강하리의 손을 잡고서 말했다.“내가 말했잖아. 임 선생이랑은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너 정말 나 못 믿는 거야?”그의 목소리엔 억눌린 분노가 담겨 있었다.강하리가 이를 악물고 손을 빼내려 하자 구승훈이 낮게 말했다.“움직이지 마. 연정이 깼어.”강하리는 움직임을 멈추고 급히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연정이는 여전히 곤히 자고 있었다.분노에 찬 강하리를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1083화

    구승훈은 강하리의 턱을 쥔 채 엄지로 그녀의 분홍빛 입술을 거칠게 문질렀다.입술이 붉게 충혈되자 강하리는 구승훈의 손을 힘껏 뿌리쳤다.“구승훈 씨, 그만해요. 연정이 보러 가는 길에 추태 부리고 싶지 않아요.”구승훈은 이를 갈며 말했다.“그럼 조시욱은 안아도 되고 난 안 되는 거야? 조시욱은 널 만져도 되고 난 안되는 거냐고!”“그래요!”강하리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앞으로 누구든 가능할 수 있어도 구승훈 씨 당신만은 절대 안 돼요!”그녀는 이 말을 하면 구승훈이 분노하며 문을 박차고 나갈 줄 알았다. 사실 그걸 바라기도 했다.하지만 뜻밖에도 화가 머리끝까지 난 구승훈은 몸을 낮춰 무릎을 꿇었다. 강하리는 아직 걸을 수 없는 상태였고, 발목에는 여전히 붕대가 감겨 있었다. 그래서 요즘엔 털실 슬리퍼 하나만 신은 채 다녔다.아까 구승훈이 강하리를 안고 차에 태울 때 슬리퍼 한 짝이 옆으로 벗겨졌었다. 구승훈은 몸을 낮춰 그 슬리퍼를 주워 조심스럽게 그녀의 발에 신겨 주었다.그의 큰 손이 그녀의 발목을 감싸며 아주 조심스럽고 부드럽게 움직였다. 마치 조금만 세게 다뤄도 그녀가 아플까 봐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강하리는 순간 그 손끝에서 묘한 애틋함을 느꼈다. 하지만 곧 그런 감정을 느낀 스스로가 우스워 웃음이 난 강하리 발을 움츠렸다.그럼에도 구승훈은 손을 놓지 않고 슬리퍼를 신긴 뒤 다시 강하리를 안아 휠체어에 앉혔다.“말도 안 되는 부탁인거 아는데...”구승훈이 그녀를 휠체어에 앉히고 나서 속삭였다.“제발 나한테 너무 차갑게 하지 말아 줘, 부탁이야.”강하리는 입술을 꾹 다문 채 전혀 마음을 열 기색이 없었다.“그럼 적어도 다시 쟁취할 기회라도 줘, 응? 강 대표?”“구승훈 씨, 대체 왜 이러는 건데요? 이렇게 헤어졌다 만났다, 당신은 안 질려도 나는 질렸어요. 그만 좀 해요. 내가 부탁할게요.”말을 마친 강하리는 스스로 휠체어를 밀어 응급실 쪽으로 향했다.구승훈은 한숨을 내쉬며 그녀 옆으로 다가가 휠체어를 대신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1082화

    구승훈의 동작이 너무 빨라 강하리는 미처 반응할 새도 없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차 안에 앉아 있었다.“구승훈 씨!”강하리가 소리쳤다. “나 혼자 갈 수 있어요.”구승훈이 비웃으며 말했다.“어떻게 가? 조시욱이 데려다준대? 다른 남자랑 내 딸 보러 가겠다는 거야?”강하리는 말문이 막혔다. 문이 쾅 닫히는 소리와 함께 구승훈은 그녀의 휠체어를 접어 트렁크에 싣고 있었다.조시욱은 막무가내인 구승훈을 막으려다 아까 전화 받던 강하리의 불안한 표정이 떠올라 막지 않았다.“연정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야? 나도 같이 갈게.”구승훈이 동작을 멈추고는 싸늘하게 웃었다.“조 도련님은 매일 이렇게 한가한가 보지?”말을 마친 구승훈은 휠체어를 트렁크에 던져 넣고는 차에 올라 그대로 출발했다.달리는 차 안에서 강하리는 창밖만 응시한 채 구승훈 쪽으로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구승훈은 조용히 운전하면서 가끔 백미러로 강하리를 살펴보았다.“아까... 아프지 않았어?”강하리는 마치 듣지 못한 것처럼 창밖만 보며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물음은 공허하게 차 안을 맴돌 뿐이었다.구승훈은 계속하여 말을 이어갔다.“의사 말로는 이제 재활 치료 들어가야 한다던데, 치료사는 예약했어?”“했어요.”강하리는 낮은 소리로 대답했다.딸을 보러 가는 길에 더 이상 구승훈과의 그 어떠한 불필요한 갈등도 피하고 싶었다. 잠시나마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것도 그녀에겐 너무 힘들었다.“이 차에 임 선생은 태운 적 없어.”구승훈의 뜬금없는 한마디에 강하리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설명할 필요 없어요. 신경 안 써요.”그 한마디에 구승훈의 하려던 말들이 전부 목에 걸려버렸다.그는 깊게 숨을 쉬며 말했다.“임 선생과는 아무 사이도 아니야. 단지 여초연의 시선을 흐리려고 잠깐 곁에 뒀을 뿐이야.”강하리의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렸다.한때 그녀는 구승훈이 이런 한 마디라도 해주기를 바랐다. 설령 지금처럼 단순하고 허술한 변명이라도 좋았다. 그랬더라면 그녀는 혼자서 괴로워하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1081화

    구승훈과 헤어진 후로 그녀는 두번 다시 그곳에 가지 않았다.“왜 갑자기 거기에 가고 싶어진 거야?”조시욱이 무심한 듯 물었다.강하리는 창밖을 바라보다가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시욱 선배, 해찬 선배가 뭐라고 말했어요?”조시욱은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사실은 별말 없었어. 그냥 국내에 며칠밖에 머물지 못하니까 내게 틈틈이 널 돌봐 달라고 했지.”강하리의 눈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선배는 항상 걱정이 많아.”“하리야, 사실 나는...”“시욱 선배.”강하리가 말을 끊었다.“그만해요.”조시욱은 하려던 말을 다시 삼켰다. 그는 길가에 차를 세우고 강하리를 돌아보며 말했다.“왜? 구승훈 때문이야? 정말 구승훈에게 다시 기회를 주려는 거야?”강하리는 창밖에서 시선을 거두며 말했다.“그 사람과는 상관없어요.”조시욱은 쓴웃음을 지었다.“그럼 왜 자신에게 새롭게 시작할 기회를 주지 않는 건데?”강하리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시욱 선배, 나도 새로운 삶을 시작할 거예요. 하지만 진심으로 누군갈 다시 좋아하거나 새 감정을 쌓을 마음의 여유가 없어요. 미안해요, 일찍 말했어야 했는데... 장 회장님께도 희망을 품게 하지 말았어야 했어요.”조시욱은 말하고 싶었다. 괜찮다고, 기다릴 수 있다고. 하지만 그 말도 결국 삼켜야 했다. 어떤 말은, 그냥 그녀에게 부담만 줄 뿐이었다.그는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알겠어. 할아버진 걱정 마, 내가 설명할게. 그럼 다른 감정은 일단 치워두고 우리 친구는 될 수 있잖아?”강하리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고마워요.”조시욱은 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은 씁쓸했다.주해찬이 부탁했다는 건 모두 거짓이었다.처음 임무를 함께 할 때부터 그의 마음은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협상장에서 여유롭고 능숙하게 대처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시선을 뗄 수 없었다.하지만 그녀에게 이미 남자친구가 있다는 걸 알고는 마음을 접어야 했다.강하리가 어르신 생신 파티에 모습을 드러내고 아주머니의 생신 파티에 나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1080화

    구승훈은 순간 말이 막혔다.“하리야, 제발... 나한테 한 번만 더 기회를 줄 수 없어?”그의 목소리엔 분명한 간절함이 실려 있었다.하지만 강하리의 눈빛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가요.”그녀는 다시 한번 담담하게 말했고 구승훈은 쓴웃음을 지으며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마지막으로 조용히 한마디를 건넸다.“너무 무리하지 마. 에비뉴 쪽 일은 내가 처리해 둘게.”강하리는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돌렸고 조시욱은 그대로 그녀를 밀고 자리를 떠났다.구승훈은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정신을 차린 듯 몸을 돌려 진료실로 들어갔다.“강하리 씨의 상태를 좀 알고 싶습니다.”의사는 잠시 당황한 듯 멈칫했다.병원 안에선 이미 구승훈과 강하리에 관한 얘기가 돌 만큼 돌았다.사랑스러웠던 커플이 순식간에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됐다는 말들이었다.강하리가 수술할 때 구승훈은 오지도 않았고 입원하는 내내 찾아온 건 한 번뿐이었으며 오늘 깁스 푸는 날에도 옆에 있어 준 사람은 다른 남자였다.그래서 의사는 솔직히 말해 구승훈이 강하리를 완전히 내쳐버린 줄 알았다.‘이런 여자를 놓친 건 눈이 먼 건가... 양심이 없는 건가...’의사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구승훈이 직접 찾아와 그녀의 상태를 묻는다는 게 당황스러웠다.“상처 회복은 꽤 잘 되고 있어요. 다만 완전 회복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재활 치료가 오래 걸릴 수도 있고요...”반쯤은 형식적인 설명이 끝난 뒤 구승훈은 반 시간쯤 지나서야 진료실에서 나왔다.그는 2층 복도 끝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1층 로비에서 강하리는 조시욱과 함께 웃으며 조 회장과 이야기를 나누며 병원을 나서고 있었다.그 모습을 바라보는 그의 마음 한구석은 시리도록 쓰렸다.그때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고 바로 그 순간 강하리는 숨이 턱 막히는 듯 살짝 멈춰 섰다.고개를 돌려 위층을 올려다보았지만 보이는 건 남자의 뒷모습뿐이었다.그 시선을 따라 조시욱도 뒤를 돌아보았지만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1079화

    그가 말을 마치자마자 진료실 문이 안에서 열렸고 강하리가 휠체어를 밀며 천천히 나왔다.구승훈과 마주친 것이 놀랍지도 않은 듯한 그녀의 표정엔 그 어떤 변화도 없었다.그저 조시욱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가요. 오늘 조 회장님께서 건강검진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같이 가봐요.” 그러자 조시욱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 말을 아직 기억하고 있었어? 우리 할아버지가 아시게 되면 분명 오늘 밤 내내 그 얘기만 하실걸.”강하리는 여전히 미소를 머금고 있었지만 아무도 보지 못하는 그늘진 표정 속 그 웃음은 희미하기 짝이 없었다.“하리야.”구승훈이 낮은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그러자 조시욱은 발걸음을 멈추고 아래를 내려다보며 물었다.“둘이 잠깐 이야기할래?”하지만 구승훈은 이미 그녀에게 다가와 무릎을 꿇고 앉았다.그러고는 방금 깁스를 푼 그녀의 팔을 조심스레 감싸 쥐었다.“아직도 아파?”단 한 마디였지만 거기에 담긴 감정은 지독할 정도로 절절했다.그러나 강하리의 마음속엔 이 말이 오히려 조롱처럼 다가왔고 그동안 꾹 눌러왔던 분노와 상처가 그 순간 와르르 무너져버렸다.그녀는 눈가가 시큰해지며 치밀어 오르는 감정에 숨이 턱 막혔다.‘아프냐고? 정말 이젠 웃기지도 않네. 사고가 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는데 이 자식은 이제 와서 상처가 다 아물어갈 무렵에야 묻네. 아프냐고?’구승훈의 긴 손가락은 그녀의 손목을 조심스럽게 감싸고 있었지만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그는 망설이다가 감싸진 붕대를 살짝 만지려 했으나 강하리는 재빨리 팔을 빼냈다.“손대지 마요.”강하리의 붉어졌던 눈가는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고 마음은 이미 굳어진 상태였다.“역겨워요.”구승훈의 손은 허공에 멈춰 선 채 얼어붙었고 그는 마치 부서질 듯한 표정으로 강하리를 바라보았다.“그때 내가 몇 초 망설였다는 이유로 그래? 하리야, 설마 진심으로 내가 임희주를 선택할 거라고 생각해?”강하리는 눈을 내리깔며 감정을 숨겼고 가슴 깊숙이 파고든 통증도 억눌렀다.그러고는 쓴웃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1078화

    구승훈의 시선은 줄곧 조시욱과 강하리의 뒷모습을 좇고 있었다.두 사람이 병원 진료동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본 뒤에야 그는 마침내 앞에 서 있는 여자를 돌아보았다.“석 여사님,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가요?”석미연은 여전히 온몸을 값비싼 명품으로 휘감은 채 늘 그렇듯 강하리에 대한 반감이 가득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승훈 씨, 나한테 그렇게 차갑게 굴 필요 없잖아. 우리 사이에 무슨 깊은 앙금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예전에 좀 불편했던 일도 다 그 여우 같은 강하리 때문이잖아. 안 그래?”석연란의 비아냥 섞인 말투에 구승훈의 눈빛이 즉시 어두워졌다.“석 여사님, 우리 사이가 그렇게 친했었나요? 감히 승훈 씨라고 부를 정도로요?” 그는 날카롭게 말을 이었다.“그리고 강하리는 분명히 심씨 가문의 당당한 맏딸입니다. 그런 사람을 여우니 뭐니 부르는 석 여사님은 남의 가정 깨고 들어온 입장인데... 여사님 같은 사람이야말로 여우가 아닌가요? 주제 파악은 하셔야죠.”그 말은 단 한 치의 여지도 없이 날카롭고 무례했다.원래 석미연은 구승훈과 적당히 말 섞으며 거리를 좁히고 싶었다.조시욱이 강하리 곁에 있는 건 그냥 잠시 눈먼 남자의 실수라 여겼다.하지만 만약 자신이 심연청을 구승훈에게 시집보낼 수만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강하리가 갖지 못한 남자, 강하리를 버린 남자가 결국은 심연청과 결혼하는 거라면 그보다 통쾌한 복수는 없을 터였다.그런데 뜻밖에도 구승훈은 말을 시작하자마자 그녀를 뼈도 못 추릴 정도로 심한 말을 뱉었다.“구승훈, 감히 나한테 그런 말을 해?”그녀가 이를 악물며 소리치자 구승훈은 더는 감정을 숨기지 않고 냉정한 눈빛을 드러냈다.“제가 사람 보는 눈이 없는 건가요. 아니면 석 여사님이 스스로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는 건가요? 제가 다시 기억나게 해드릴까요? 과거에 당신들과 당신 동생들이 벌인 짓들... 제 손에는 아직도 증거들이 수두룩하죠.”그렇게 말하고 그는 더는 미련 없이 병원 안으로 걸음을 옮겼고 석연란은 그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1077화

    천아름은 강하리의 휠체어를 밀며 복도를 따라나섰다.그런데 하필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하자마자 위층에서 내려오는 구승훈과 준봉을 마주쳤다.이번엔 강하리도 굳이 피하려 들진 않았다.에비뉴 대표실이 이곳에 있는 이상 앞으로 구승훈과는 자주 마주치게 될 터였다.자꾸 피하는 게 오히려 더 부자연스러울 뿐이었다.엘리베이터 안은 고요했고 기계 소리만이 낮게 울릴 뿐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강하리는 내내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조시욱과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었고 구승훈은 묵묵히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를 바라보았다.핸드폰 화면 안, 조시욱과의 채팅창은 대화가 빼곡히 쌓여 있었다.그걸 보는 순간 구승훈은 입안부터 가슴까지 다 쓰려왔다.‘매일 같이 이렇게 대화를 주고받는 걸까?’그는 참다못해 먼저 입을 열었다.“속은 좀 괜찮아졌어?”강하리는 문자를 입력하던 손끝을 멈칫하더니 대꾸하지 않았다.구승훈은 짧게 웃음을 흘렸다.“조시욱이랑 있으면... 토할 일은 없나 보네?”그 말에 강하리는 피식 웃었다.“구승훈 씨, 원하는 대답이 뭔데요? 말해봐요. 제가 맞춰줄게요.”그는 입술을 꾹 다물었고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말해봤자 자존심만 더 상할 뿐이었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천아름이 먼저 휠체어를 밀고 나섰고 밖에서는 이미 조시욱이 기다리고 있었다.그 모습을 바라보던 준봉은 구승훈을 흘끗 보더니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그러자 구승훈이 문득 입을 열었다.“점심 약속 취소해.”그리고는 아무 말 없이 조시욱의 차를 따라나섰다.차 안.조시욱은 조심스럽게 달콤한 디저트를 하나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이거 좀 먹어. 깁스 풀고 나서 맛있는 거 사줄게.”디저트를 바라보던 강하리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시욱 선배, 난... 나 오늘 오후에 F 국으로 출장 가요. 갖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요. 사 올게요.”그는 그녀의 말을 가로막듯 웃으며 말했다.강하리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디저트도 받지 않았다. “제가 지금 무슨 얘기 하려는지 알겠죠.”조시욱은 웃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