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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Author: 봄은어디
유하늘은 호흡이 가빠지면서 두 손이 덜덜 떨렸다.

그런데 이때 하필 송여준이 그녀에게 발신자를 보여주지 않으려는 듯이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하늘아...”

“전화받아.”

유하늘은 더 이상 그를 보고 싶지 않았다.

송여준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몸을 돌려 전화를 받았고, 곧 전화 너머에서 디자이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표님, 기본적인 스타일은 정해졌어요. 메일로 보내드렸으니까 한 번 확인해 보시고 혹시 수정하면 좋겠다 싶은 부분이 있다면 얘기해주세요.”

송여준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 제가 다음에 연락드릴게요. 앞으로는 아무 때나 연락하지 마세요. 제 아내를 놀라게 해 주고 싶거든요.”

송여준이 전화를 끊은 뒤 고개를 돌렸을 때 그곳에 유하늘은 없었다.

송정희는 송여준을 붙잡고 떠나지 못하게 했다.

“어제 아람이 입원했지? 어서 나랑 같이 몸에 좋은 것들 사서 아람이 병문안 가자. 아람이 걔 네 할머니를 구하지 않았더라면 심장질환을 얻지도 않았을 거야.”

송여준은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끝내 유하늘을 보지 못해 결국 송정희를 따라 떠났다.

유하늘은 옆 매장에서 두 사람을 주시하다가 그들이 떠난 뒤에야 매장 안에서 나왔다.

그녀는 평온한 표정으로 선물을 들고 병원으로 향해 의사에게 선물을 전달했다.

떠날 때 유하늘은 입원 병동을 지나치게 되었는데 하필이면 병실에서 나오는 송정희를 보게 되었다.

그곳이 바로 권아람의 병실일 것이다.

유하늘은 주먹을 움켜쥔 채로 그곳을 지나가다가 자기도 모르게 안쪽을 힐끗 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권아람은 힘없이 송여준의 어깨에 기댄 채 슬픈 듯 가슴께를 움켜쥐고 있었다.

송여준은 문을 등지고 있어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일거수일투족에서 애정이 느껴졌고 유하늘은 또 한 번 마음이 차갑게 식었다.

유하늘은 더 이상 그들을 보고 싶지 않아 빠르게 그곳을 떠났는데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송정희와 마주치게 되었다.

송정희는 팔짱을 끼면서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을 해 보였다.

“쟤네 둘이야말로 진짜 천생연분이야. 알겠니?”

유하늘은 그 말을 무시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둘이 천생연분이든 아니든 그녀와는 아무 상관 없었다.

어차피 10일 뒤면 이 도시를 떠날 테니 말이다.

유하늘은 병원에서 나온 뒤 운전기사에게 회사로 가달라고 했다.

송여준이 자리를 비울 때면 늘 박수담이 송여준 대신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송여준이 직접 처리할 필요 없는 일들을 처리했다.

박수담은 지금 회사에 없으니 인사 조정의 권한을 가진 사람은 이사회 구성원 중 한 명인 양승건 주주였다.

유하늘은 곧장 양승건을 찾아가 일을 그만둔다는 사실을 전했다.

양승건은 그녀의 예상대로 매우 놀라워했고 웃으며 물었다.

“혹시 송 대표님이랑 싸우셨어요? 왜 갑자기 일을 그만둔다는 거예요? 하늘 씨가 우리 회사 직원으로 등록되어 있긴 하지만 사실 그냥 이름만 걸어놓은 거라 출근하는 것도 아니고, 일을 그만두든 말든 다를 바 없잖아요.”

다들 똑같은 반응을 보이며 똑같은 말을 했다.

“회사랑 너무 깊이 얽히고 싶지 않아서요. 요즘 분위기도 별로 좋지 않던데 괜히 오해받을 일은 하고 싶지 않아요. 어차피 이름만 걸어놓은 거라 그냥 사직하고 집에서 내조만 하려고요. 괜한 일에 얽힐 필요는 없잖아요.”

유하늘은 태연자약한 얼굴로 거짓말을 했다. 그녀는 송여준과의 인연을 완벽히 끊고 싶었다.

양승건은 유하늘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기에 곧장 그녀의 사직서에 이사회 인장을 찍어주었다.

“자, 이거 들고 인사팀으로 가세요. 그런데 왜 이렇게 급하세요? 송 대표님한테는 얘기하셨어요?”

유하늘은 그렇다고 했다.

“회사에 도착해서 사직서 보면 알 거예요. 요즘 엄청 바쁘던데 이런 일로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아요. 오늘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유하늘은 말을 마친 뒤 사직서를 들고 인사팀으로 향했다.

유하늘은 송여준 몰래 모든 절차를 밟은 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회사에서 나왔을 때는 이미 날이 어두워진 상태였다.

밖의 화려한 불빛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얼굴을 밝혔다. 그들 모두 이 도시에 돌아갈 곳이 있었다.

그러나 유하늘에게는 돌아갈 곳이 없었다.

그녀는 마치 이리저리 떠다니는 개구리밥과 같은 신세였고, 그녀의 가족들, 집안에서 운영하는 회사 모두 해외에 있었다.

송여준이 아니었더라면 그녀는 이곳으로 오지 않았을 것이고, 커리어를 포기하기 가정주부가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 결과는 어땠는가?

유하늘은 모든 걸 바쳤으나 결국에는 매정하게 버림받았다.

송여주의 주변인들 모두 그녀를 비웃었을 것이다. 다들 그녀와 송여준이 진짜 결혼한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모두 그녀를 우습게 생각했을 것이다.

유하늘은 아주 조용하게 정처 없이 계속 걸었고 그러다 전화가 울렸다.

홍이수의 이름을 본 순간, 유하늘은 순간 휴대전화를 세게 움켜쥐며 홍이수가 사무실에서 송여준과 나눴던 말들을 떠올렸다.

그녀를 언급할 때 홍이수의 경멸 가득하던 표정이 마치 가시처럼 유하늘의 마음을 쿡쿡 찔렀다.

결국 유하늘은 망설임 없이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이내 다시 전화가 걸려 왔다. 그녀가 전화를 받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듯 집요하게 말이다.

유하늘은 천천히 숨을 내쉬며 마음속 짜증을 억누른 뒤 전화를 받았다.

이내 홍이수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수님, 뭐하세요? 저희 여기 바인데 빨리 오세요. 저 여준이랑 같이 술 마시고 있었는데 여준이 지금 취해서 집에 데려다줄 사람이 없어요.”

유하늘은 예전에 홍이수를 가장 좋은 친구로 여겼었다.

홍이수는 송여준의 친한 친구일 뿐만 아니라 늘 그녀를 살갑게 대하여 가족과 같은 온기를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동안 홍이수를 진심으로 친구로 여겼던 것이 역겹게 느껴졌다.

유하늘은 차가운 어투로 말했다.

“그러면 대리운전 불러요. 전 여준 씨 데리러 갈 여유가 없어요.”

홍이수는 눈에 띄게 당황했다. 그녀가 그렇게 얘기할 줄은 상상도 못 한 듯했다.

홍이수는 웃으며 말했다.

“형수님이 와주셔야 해요. 여기서는 대리운전을 부를 방법이 없거든요. 그러니까 빨리 와주세요. 여준이가 집에 들어오지 않으면 형수님도 우주도 걱정될 거 아니에요?”

홍이수는 유하늘에게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유하늘을 억지로라도 오게 만들겠다는 듯이 말이다.

유하늘은 그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그런데 문득 얼마 전 홍이수가 여자 친구와 크게 다퉈 헤어질 위기에 처했던 게 떠올랐다.

두 사람은 늦은 밤 유하늘을 찾아와서 대체 누가 잘못했는지 판단해 달라고 했었다.

그들이 다툴 때 홍이수 여자 친구가 그들의 집에 목걸이를 흘렸고 유하늘이 그것을 주웠다.

유하늘이 챙긴 캐리어 안에는 옷만 들어 있었고 그 목걸이는 별장에 있었는데, 송여준은 그걸 보더라도 그것을 홍이수의 여자 친구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걸 절대 떠올리지 못할 것이다.

결국 유하늘은 집으로 돌아가 목걸이를 챙겨야 했다. 그녀는 홍이수에게 그 목걸이를 여자 친구에게 돌려주라고 할 생각이었다.

별장 안, 송우주는 유하늘을 보자마자 곧바로 게임기를 내려놓고 빠르게 그녀에게로 달려갔다.

“엄마!”

유하늘은 못 들은 척하고 바람처럼 움직여 빠르게 그의 앞을 스쳐 지나갔다.

송우주는 잠깐 당황했으나 이내 유하늘을 따라 문가로 달려갔다.

송우주는 유하늘이 고개 한 번 돌리지 않자 그녀의 뒷모습에 대고 화를 내며 소리쳤다.

“엄마, 전 엄마가 점점 더 싫어요! 저는 아람 이모가 좋아요!”

유하늘은 잠깐 걸음을 멈추었지만 곧 계속하여 앞으로 걸어갔다.

“아람 이모가 우리 엄마였으면 저는 엄마를 아예 무시했을 거예요! 엄마는 너무 나빠요!”

유하늘은 우뚝 멈춰 선 뒤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몸을 돌렸다.

송우주를 바라보는 그녀의 표정은 매우 냉담했다.

예전에 송우주는 기분이 좋지 않을 때면 엄마가 밉다고, 엄마가 싫다고 했었고, 그때마다 유하늘은 다급하게 달려와 슬픈 얼굴로 송우주를 달래주며 상냥하게 상황을 설명했었다.

그래서 송우주는 이번에도 그럴 거라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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