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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Author: 봄은어디
유하늘의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바로 송여준의 고모 송정희였다.

송여준의 친구 홍이수는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었다. 그는 유하늘의 앞에서는 그녀를 형수님이라고 살갑게 부르지만 뒤에서는 그녀를 무시했다. 그러나 홍이수와 반대로 눈앞의 송정희는 예전부터 쭉 대놓고 유하늘을 싫어하면서 그녀를 괴롭혔다.

유하늘이 송여준과 결혼한 순간부터 송정희는 단 한 번도 그녀에게 잘해준 적이 없었다.

송정희는 수차례 송여준이 없는 자리에서 유하늘에게 그녀는 다른 사람 사이에 끼어든 파렴치한 여자고, 비열한 수단으로 아이를 가져서 송여준이 책임을 질 수밖에 없게 유도했다고 비난했다.

당시 유하늘은 매우 화가 나고 억울했다. 그러나 그녀가 아무리 해명해도 송정희는 한결같이 그녀의 말을 무시했다.

그런데 송정희가 하필 현재 살아있는 송여준의 유일한 혈육이었기에 유하늘은 그녀를 존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예전에 유하늘은 송정희가 왜 자꾸 듣기 거북한 말들만 내뱉는지 이해할 수 없었으나 이제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송정희가 한 말은 전부 사실이었다.

송여준과 결혼해서 법적 부부가 된 사람은 유하늘이 아니라 권아람이었고, 송정희의 말대로 유하늘은 송여준과 권아람 사이에 끼어든 사람이었다. 다만 송여준이 그 사실을 무려 7년간 숨겼을 뿐이다.

“왜 날 보자마자 꼬리를 말면서 도망치는 거야?”

송정희는 팔짱을 끼며 언짢은 표정으로 말했다.

유하늘은 송정희와 싸울 기운이 없어서 차분히 말했다.

“아뇨. 아까는 못 봤어요.”

송정희는 입을 비죽였다.

“흥, 거짓말하지 마! 안색이 많이 안 좋네. 요즘 기분 안 좋니?”

유하늘은 송정희가 갑자기 자신을 걱정하자 깜짝 놀랐다. 그런데 바로 다음 순간 송정희가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하긴. 여준이 진짜 아내가 돌아왔으니 이제 네 자리는 없겠지. 이젠 막 똥줄이 타지?”

유하늘은 잠시 흠칫하며 고개를 들어 송정희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송정희가 그 일을 알고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결국 유하늘은 참지 못하고 송정희에게 물었다.

“다 알고 계셨으면서 왜 저한테 얘기해주지 않으셨어요?”

송정희는 살짝 당황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우습다는 듯이 말했다.

“여준이는 네가 진실을 알고 떠날까 봐 걱정됐을 거야. 사랑하는 사람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데 애 엄마까지 도망가 버리면 안 되니까 그동안 비밀로 했던 거지. 그것만 아니었으면 너한테 네가 내연녀라는 걸 일찌감치 얘기했을 거야.”

송정희의 목소리가 너무 컸던 탓에 길 가던 사람들 모두 이상한 눈빛으로 그들 쪽을 바라보았다.

유하늘은 주먹을 움켜쥐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전 내연녀가 아니에요. 두 사람이 결혼한 걸 알았더라면 전 절대 여준 씨랑 만나지 않았을 거예요.”

“다른 사람 남편을 빼앗고 송씨 가문 사모님으로서 무려 7년이나 살았으면서 어디서 고고한 척이야? 위선 떨지 마. 역겨우니까.”

송정희는 계속해 우기면서 날 선 말들을 했다.

유하늘은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아 돌아섰는데 송정희가 그녀의 팔을 잡았다.

송정희는 유하늘을 억센 힘으로 잡아당기면서 단단히 을러멨다.

“이제 다 알게 됐으니 빨리 떠나. 여준이한테 들러붙지 마. 여준이도 아이가 엄마 없이 사는 게 싫어서 너랑 결혼한 거지. 그게 아니었다면 너랑 절대 결혼하지 않았을 거야.”

유하늘의 안색이 점점 더 창백해졌다.

송정희가 한 말들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유하늘의 마음을 난도질했다.

유하늘은 송정희의 팔을 뿌리친 뒤 가까스로 평정심을 유지하며 또박또박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곧 떠날 거니까요. 저는 그 사람 인생에서 완전히 사라질 거예요.”

송정희는 그 말을 듣더니 같잖다는 듯이 말했다.

“내 앞이라서 그런 말을 하는 거겠지. 네가 어떻게 여준이를 떠날 수 있겠어? 두고 봐. 여준이가 곧 너한테 사실을 털어놓으면서 너한테 떠나라고 할 테니까.”

유하늘은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다들 그녀가 송여준을 떠나지 못할 거라고, 죽어도 그와 헤어지지 않을 거라고 여겼다.

유하늘 본인은 알고 있었다. 자신이 한 번 마음 먹으면 얼마나 단호해지는지를 말이다.

만약 임신했을 때 송여준이 그녀에게 다른 여자와 이미 결혼했다고 사실대로 얘기했더라면 그녀는 아이를 낳아서 혼자 키우든 아이를 지우든 했을 것이다. 송여준에게 책임을 지라고 할 일은 절대 없었다.

유하늘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은 사람은 사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유부남의 아이를 낳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유하늘은 시선을 들어 송정희를 바라보았다.

“네, 고모님이 바라시는 대로 꼭 떠날게요.”

송정희는 잠깐 흠칫했다. 그녀는 유하늘의 이토록 결연한 눈빛을 본 적이 없었다.

송정희는 뒤늦게 입꼬리를 올리며 냉소했다.

“오늘 아침 여준이가 나한테 연락해서 유명한 웨딩드레스 디자이너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했어. 그게 뭘 의미하는지 아니?”

유하늘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여준이는 이제 곧 너랑 헤어지고 아람이랑 결혼할 거야. 그리고 아람이를 위해 성대한 결혼식을 준비할 거야. 그런데도 뻔뻔하게 떠나지 않는다면 결국 창피해지는 사람은 네가 될 거야.”

송정희는 팔짱을 끼면서 속 시원하다는 표정으로 유하늘을 바라보았다.

유하늘은 입술을 너무 힘주어 깨물어서 피가 날 뻔했다.

유하늘이 임신했을 때 송여준은 자신이 다 책임지겠다면서 급하게 결혼식을 준비하여 중심가에 있는 호텔에서 그녀와 심플하게 결혼식을 치렀다.

심지어 따로 웨딩드레스를 주문할 시간도 없어서 흰색의 드레스를 사서 웨딩드레스를 대신했었다.

그것은 유하늘에게 유일한 아쉬움이었고 그래서 유하늘은 늘 자신만의 예쁜 웨딩드레스를 갖는 것이 꿈이었다.

유하늘은 단 한 번도 그 사실을 송여준에게 얘기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송여준은 그녀 몰래 권아람과의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유명한 디자이너에게 연락해 직접 웨딩드레스를 준비하려고 했다.

그 점을 통해 송여준이 누구를 더 사랑하고 아끼는지 알 수 있었다.

아니, 어쩌면 송여준은 단 한 번도 유하늘을 사랑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유하늘은 웃음이 날 것만 같았다. 그녀가 입을 떼려는데 갑자기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모, 둘이 왜 같이 있어요?”

송여준은 빠르게 다가오며 유하늘의 안색을 살폈다.

십 분 전쯤, 송여준은 백화점 매니저를 통해 유하늘이 그곳에 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송여준은 곧바로 하던 일을 내려놓고 그녀를 만나러 왔다. 그는 유하늘이 혹시라도 어제저녁 일로 여전히 화가 나 있을까 봐, 혹시라도 이상한 생각을 할까 봐, 그래서 그와의 소통을 거부할까 봐 걱정됐다.

송정희가 유하늘과 함께 있자 송여준은 매우 긴장했다.

평소 송정희와 유하늘은 사이가 좋지 않았고 매번 만나면 꼭 싸웠기 때문이다.

송여준은 유하늘을 자신의 등 뒤로 숨기며 은근히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고모, 하늘이랑 무슨 얘기했어요? 또 뭐 상처 주는 말한 거 아니에요?”

송정희는 조금 켕기는 표정을 했다.

그녀는 유하늘이 고자질이라도 할까 봐 서둘러 말했다.

“그, 그럴 리가. 어떻게 날 그런 사람으로 생각할 수 있니? 난 그냥 걔랑 우연히 만나서 말 몇 마디 나눈 것뿐이야.”

“그래요?”

송여준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송정희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유하늘을 통해 그 말의 진위를 파악하려고 했다.

그러나 유하늘은 바닥만 내려다볼 뿐 그의 눈을 마주 보지 않았다.

그녀는 송여준과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어제저녁, 송여준은 호텔에 찾아온 뒤 집으로 돌아가서 쉬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서재에 남긴 그 편지를 보지 못한 것일까?

유하늘은 송여준이 어서 그 편지를 발견하기를, 그래서 그와 완전히 인연을 끊을 수 있기를 바랐다.

둘 다 성인이기에 어떤 것들은 굳이 말로 표현할 필요가 없었다.

유하늘이 떠나려고 하자 송여준이 그녀를 따라잡았다.

“잠깐, 너 어제저녁에 인사도 안 하고 갔잖아. 우리 얘기 좀 나누자.”

유하늘은 냉담하게 대꾸했다.

“난 할 얘기 없어.”

송여준이 다시금 유하늘을 가로막았다. 그런데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주머니 속 휴대전화가 갑자기 울렸다.

송여준은 휴대전화를 꺼내더니 시선을 내려뜨려 발신자를 확인했다.

유하늘도 본능적으로 그의 휴대전화 화면을 보았고 그 순간 눈에 띄는 글자를 보았다.

[웨딩드레스 디자이너 캐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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