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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쟁이의 참회
거짓말쟁이의 참회
Penulis: 봄은어디

제1화

Penulis: 봄은어디
악성 뇌종양 판정을 받은 뒤 나는 두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하나는 나와 송여준이 사실은 법적 부부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6년을 키운 내 친아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내 아들은 내가 아닌 다른 여자를 엄마로 삼고 싶어 했다.

나는 그제야 비로소 가족들을 버리고 정체를 숨기며 7년 동안 두 사람을 위해 헌신했던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는지를 깨달았다.

나는 매정한 두 사람의 인생에서 완전히 사라지기 위해 세 가지 일을 했다.

첫 번째는 결혼 7주년을 기념해 한 달 전 예약해 두었던 레스토랑 예약을 취소하고, 아들이 다니는 유치원 학부모 단톡방에서 나가고, 남편과 아이의 건강을 생각해 가입했던 수십 개의 건강 관리 단톡방에서도 나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몸이 오랜 비행을 견딜 수 있도록 의사 선생님에게 연락해 검사를 진행한 뒤 특효약을 처방받는 것이었다.

마지막 세 번째는 7년간 연락을 끊고 살다시피 했던 오빠에게 연락해 가족을 떠나 먼 곳에서 결혼생활을 한 것이 너무도 괴로웠다고, 이제 잘못을 깨달았으니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전하는 것이었다.

...

“환자분의 뇌종양은 현재 주변 뇌신경을 압박하고 있는 상태라 최대한 빨리 결정을 내리셔야 해요.”

소독수 냄새로 가득 찬 병원 복도, 의사 선생님이 한 말이 유하늘의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유하늘은 온몸을 덜덜 떨면서 이미 구겨질 대로 구겨진 검사지를 힘주어 꽉 쥐었다.

최근 들어 유하늘은 자주 머리가 아프고 속이 울렁거렸으며 이따금 코피를 흘리기도 했다.

처음엔 자주 밤을 새워 몸이 허약해져서 생긴 문제인 줄 알았는데 병원을 찾아 정밀 검진을 받아보니 악성 뇌종양이라는 악몽과도 같은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두 가지 치료 방법을 제시했다.

한 가지는 수술을 받는 것인데 50%의 확률로 수술에 성공하여 살아남을 수 있다고 했다.

다른 한 가지는 약을 먹으면서 항암 치료를 진행하는 것이었다. 후자를 선택할 경우 머리카락이 전부 빠지게 되지만 수명을 몇 년 연장할 수 있다고 했다.

유하늘은 성공 확률이 50%밖에 되지 않는 수술을 선택하기 두려웠다.

어렸을 때부터 주사 맞는 것조차 무서워했었던 유하늘이었기에 차가운 수술대 위에 누워 생사의 기로에 놓이는 건 더욱더 두려웠다.

그러나 수술을 받지 않는다면 끊임없이 커지는 뇌종양 때문에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다가 죽게 되는 잔혹한 현실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유하늘은 눈을 감고 자신의 남편을 떠올렸다.

송여준과 결혼한 지는 어언 7년이다. 유하늘은 송여준을 사랑했고 그와 오랜 시간 함께했다.

게다가 둘 사이에서 사랑의 결실인 아들 송우주가 태어났고 송우주는 떡잎부터 남달라 어렸을 때부터 잘생기고 똑똑했다.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두 사람을 떠올린 유하늘은 아주 큰 용기를 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의사가 있는 진료실 문을 열었다.

“선생님, 저 결정했어요. 수술받을게요.”

의사는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성공 확률은 50%입니다. 두렵지 않으세요?”

유하늘은 웃었다.

“두렵지 않아요. 저는 제 남편과 아이가 제 곁을 지켜줄 거라고 믿거든요. 두 사람만 있다면 전 세상 그 무엇도 두렵지 않아요.”

의사는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한 달 뒤 수술 받으실 수 있게 예약해 두겠습니다.”

병원에서 나온 유하늘은 당장 집으로 돌아가 남편과 아들에게서 응원을 받고 싶었다.

집에 도착해 보니 가정부는 송여준이 집에 없다고, 회사에 갔다고 했다.

그래서 유하늘은 서둘러 리헬 그룹으로 달려갔고 회사에 도착한 뒤에는 곧장 대표 사무실로 향했다.

그런데 유하늘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기 전 한 남자의 목소리가 안에서 들려왔다.

“여준아, 형수님 말이야. 아람 씨가 네 비서로 일한다는 걸 알면 화를 내지 않을까?”

유하늘은 당황했다. 문틈 사이로 송여준의 친구 홍이수의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아람 씨?’

권아람.

유하늘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이름이었다. 송여준이 10년 동안 마음에 품고 있던 여자의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책상 앞에 앉은 남자는 시선을 내려뜨리고 있었다. 검은색 셔츠 옷깃은 살짝 벌어졌고, 소매는 위로 걷어 올려 금욕적이면서도 냉담한 유부남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송여준은 짜증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회사 일에 관심 두지 마.”

홍이수는 목을 살짝 움츠리면서 입을 비죽였다.

“그래도 나는 네 체면을 봐서 하늘 씨를 형수님이라고 부르잖아. 너랑 하늘 씨 사실 혼인신고 안 돼 있다는 거 네 지인들 중에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냐? 게다가 그때 서류 위조해서 보내준 사람이 바로 나잖아. 하하!”

그 말에 유하늘의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유하늘은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내가... 뭘 들은 거지? 나랑 여준 씨 혼인신고가 안 돼 있다고?’

송여준은 사무실 문 맞은편에 옆으로 몸을 틀고 앉아 있었기에 밖에 누군가 서 있다는 걸 꿈에도 몰랐다.

홍이수는 궁금해했다.

“여준아, 왜 말이 없어? 이제 아람 씨 돌아왔으니까 하늘 씨랑 헤어져야 하는 거 아니야? 솔직히 말해서 그때 하늘 씨가 너한테 매달리지만 않았어도, 네가 술에 취한 틈을 타 널 꼬셔서 잠자리를 가진 뒤 임신하지만 않았어도, 아이 출생신고를 위해서 네가 하늘 씨랑 혼인신고 하는 척했을 리는 없었을 거잖아. 그리고 그 일 때문에 아람 씨는 상처를 받아서 이제야 돌아왔지.”

유하늘은 잠시 숨을 쉬지 못했다.

두개 내압이 상승하자 유하늘은 토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날 밤, 두 사람은 바에서 술을 마시다가 취했고 홍이수도 그 자리에 있었다.

홍이수는 유하늘이 송여준에게 술을 건넨 적이 없다는 걸 분명 알고 있었다. 당시 리헬 그룹의 라이벌 회사 직원이 술에 약을 탔고 유하늘은 송여준을 도와주려고 송여준과 함께 호텔에 간 것이다.

그런데 왜 모든 책임을 그녀에게 전가하는 것일까?

홍이수는 피식 웃었다.

“그래서 언제 아람 씨랑 결혼할 건데? 아람 씨가 심장질환 때문에 네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면서 떠나지만 않았어도 하늘 씨가 빈틈을 노려 네 옆자리를 꿰찼을 리는 없지. 네 옆자리는 원래 아람 씨 거여야 했어.”

송여준은 언짢은 표정으로 시선을 들었다.

그의 서늘한 눈빛에 경고의 의미가 다분했다.

“나랑 유하늘 사이에는 우주가 있어...”

유하늘은 온몸을 떨면서 비틀거렸다.

그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몸을 돌려 화장실로 향했다. 그래서 그 뒤의 얘기는 미처 듣지 못했다.

유하늘은 화장실에 도착한 뒤 미친 듯이 속을 게워 냈다.

역겨운 진실을 알게 됐기 때문일까? 아니면 뇌종양으로 인한 생리적인 반응일까?

안으로 들어온 직원은 유하늘의 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라더니 이내 그녀에게 티슈를 건넸다.

유하늘은 눈시울이 빨개진 채 직원이 건넨 티슈를 건네받으며 서글픈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고마워요. 여준 씨한테 저 왔단 말은 하지 말아주세요.”

유하늘은 휘청거리며 건물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거리를 거닐며 송여준과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7년 전, 해외의 유명 디자이너였던 유하늘은 오빠가 운영하는 주얼리 회사의 기둥 같은 존재였고 송여준과는 아무런 접점이 없었다.

그러다 한 번은 출장을 가게 되었는데 호텔에서 나오자마자 치마가 찢어졌다.

난감한 상황이었는데 송여준이 마이바흐에서 내리며 구김 하나 없는 정장 재킷을 그녀에게 건넸다.

“허리에 두르세요.”

송여준은 낯선 환경에서 당황함과 난처함을 느끼고 있던 유하늘을 구했다.

고개를 들어 하느님이 정성 들여 빚은 듯한 송여준의 완벽한 얼굴을 보는 순간 유하늘은 사랑에 빠졌다.

그 뒤로 유하늘은 송여준을 잊지 못했고 오빠에게 부탁해 여러 인맥을 이용하여 송여준과 일로 엮이며 구애하기 시작했다.

유하늘은 송여준에게 오래전 인사조차 하지 않고 떠난, 그가 오랫동안 잊지 못한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다 술에 취해 그와 관계를 가지고 임신까지 한 뒤엔 순조롭게 그와 결혼하게 되었다.

유하늘은 결혼 후 첫날밤에 송여준에게 물었다. 책임지라고 하지 않았는데 왜 자신과 결혼했냐고 말이다.

늘 그녀에게 냉담하던 송여준은 처음으로 유하늘을 바라보며 천천히 정중하게 말했다.

“너와 아이에게 집이 되어주고 싶었어.”

그 말 한마디 때문에 유하늘은 결혼 생활에 모든 걸 쏟아부었다. 그녀는 오빠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하고 국내에 남아서 남편과 아이의 뒷바라지를 했다.

그런데 그들의 결혼이 가짜였다니.

송여준은 단 한 번도 그녀를 자신의 아내로 여긴 적이 없었고 7년 동안 다른 여자만 그리워하며 그 여자와 부부가 되기를 바랐다.

유하늘은 피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녀는 자신의 지난 삶이 얼마나 허무했는지를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래서 유하늘은 결정을 내렸다.

한 달 뒤 수술에 성공하면 송우주를 데리고 떠나겠다고 말이다.

송여준은 앞으로 유하늘과 송우주를 고려할 필요 없이 자기가 원하는 사람과 결혼하면 되었다.

아이를 떠올린 유하늘은 다시금 기운을 차렸다.

집으로 달려간 그녀는 위층으로 올라가자마자 송우주와 집사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엄마가 사실은 아빠랑 가짜 결혼을 했다는 걸 알게 된다면 슬퍼할까요?”

집사는 자애롭게 웃으며 말했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도련님도 아시다시피 대표님께서는 사모님을 사랑하지 않으니까요.”

송우주가 앳된 목소리로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사실 저도 엄마가 싫어요. 저는 아람 이모가 더 좋아요. 아람 이모는 진짜 다정해요. 엄마가 저를 회사에 데려다줄 때마다 아람 이모가 맛있는 것도 많이 사주고 같이 놀아주기도 하거든요. 엄마는 간식 많이 먹으면 몸에 안 좋다고 못 먹게 하고,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고 놀지도 못하게 하는데 말이에요. 진짜 짜증 나요! 저는 아람 이모가 아빠랑 결혼하면 좋겠어요.”

유하늘은 주먹을 힘껏 움켜쥐었다. 마음이 너무 아려서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그녀가 배 아파 낳고 최선을 다해 키운 송우주는 송여준처럼 매정했다.

한때 화목한 사이였던 그들의 예쁜 추억들이 이제는 머나먼 꿈만 같았다.

겉으로는 행복해 보이지만 사실은 악몽인 그런 꿈 말이다.

과거 유하늘의 오빠는 유하늘이 고향을 떠나 먼 곳으로 시집가면 힘든 일이 생겼을 때 친정에서 바로 도와주기가 힘들다면서 그녀가 먼 타향에서 결혼해서 사는 걸 강력히 반대했었다. 그때 그 말을 들어야 했다.

만약 오빠가 송여준이 한 짓을, 그리고 송우주의 속마음을 알게 된다면 아마 칼을 들고 찾아와 두 사람을 죽이려고 할지도 몰랐다.

유하늘은 시큰거리는 눈을 깜빡이면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남편과 아들을 위해 용기 내어 수술을 받으려고 했으나 그녀의 희망은 이미 산산이 부서졌다.

거실에 선 유하늘은 휴대전화를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오빠, 나 이혼하려고. 나 이제 집에 돌아가고 싶은데 마중 나와주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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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짓말쟁이의 참회   제319화

    저녁 8시, 유하늘은 정각에 리헬 그룹 사옥 아래에 나타났다.지난번 이 시간에 찾아왔을 때는 송여준이 채도현이 처한 상황을 빌미로 그녀를 협박했었다.당시만 해도 송여준 때문에 이렇게까지 벼랑 끝으로 내몰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유하늘은 마음을 가다듬고 곧장 위층으로 올라갔고, 여느 때처럼 프런트 데스크를 지나갔다.직원이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대표 전용 엘리베이터 카드를 찍어주며 미소를 지었다.“어서 올라가 보세요. 대표님께서 이미 기다리고 계십니다.”유하늘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장 엘리베이터를 탔다.프런트 직원은 뒤늦게 알아차렸다.그제야 하율이 들어올 때 가면을 쓰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하지만 미처 주의 깊게 보지 못한 탓에 유하늘의 진짜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확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허망하게 날려버렸다.그녀는 아쉬움에 발을 동동 구르며 자신의 휴대폰을 내려다보았다.꼭대기 층으로 올라간 유하늘은 대표실 문 앞에 멈춰 섰다.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문을 두드렸다.안에서 송여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들어와요.”낮게 깔린 목소리에 은근한 기대감이 섞여 있었다.이를 듣자 유하늘은 실소가 터져 나왔다.그리고 망설임 없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송여준이 고개를 들었다. 기대에 차 있던 눈빛은 그녀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 경악으로 바뀌었다.그는 당최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아니, 어쩌다가...”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하늘이 그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내가 가면을 벗고 나타나니까 신기해? 드디어 얼굴을 보게 돼서 속이 후련해? 하율이 아니라 유하늘이라는 사실을 인정한 것 같아서?”송여준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흔들리는 눈동자는 마치 잃어버렸던 보물을 다시 찾은 듯 경이로움이 서려 있었고, 시선은 유하늘에게서 한시도 떨어질 줄 몰랐다.그는 한 걸음 한 걸음 유하늘의 앞으로 다가왔다.그러고는 손을 들어 그녀의 뺨을 어루만지며 나지막이 속삭였다.“드디어 널 다

  • 거짓말쟁이의 참회   제318화

    말을 마치기도 전에 이루 형언할 수 없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유하늘을 발견했다.유시훈이 흠칫 놀라더니 서둘러 물었다.“하늘아, 왜 그래?”그제야 유하늘이 송여준에게서 벗어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을 쓰겠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유하늘은 그를 빤히 쳐다보더니 마침내 입을 열었다.“짐 좀 챙기러 왔어. 곧 여기 떠날 거야.”그 말을 듣자 유시훈의 표정이 착잡하게 변했다.“이렇게 갑자기?”유하늘이 피식 웃었다.“더 이상 다른 사람을 끌어들일 수 없다는 걸 깨달았거든. 오빠도 못 느꼈어? 누구든 나랑 엮이면 송여준이 절대 가만두지 않는다는 거.”유시훈은 한참을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알았어. 지금 바로 떠날 수 있게 준비할게. 그나저나 분명 한 달 뒤에 출발하기로 했었잖아. 대회도 기분 좋게 마무리하고 싶댔는데 이렇게 가버리는 건 좀 아쉽지 않아?”“나도 아쉬워. 하지만 더는 못 참겠어. 다음에 또 무슨 식으로 상처 줄지, 내 주변 사람들을 어떻게 괴롭힐지 누가 알겠어? 다들 나 때문에 휘말리는 거 싫어. 그리고...”유하늘은 입가에 쓴웃음을 지으며 무의식적으로 얼굴의 가면을 벗어 던졌다. 그러자 맑고 깨끗한 얼굴이 드러났다.그녀는 유시훈을 똑바로 응시했다.“나랑 무려 7년을 같이 살았어. 내가 아무리 작정하고 얼굴을 가렸다고 해도 정말 완벽하게 숨겨질 리가 없잖아. 그 남자는 오빠가 생각만큼 바보가 아니야.”그녀의 말에 유시훈은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졌다.이내 주먹을 움켜쥐었다.“네가 영원히 내 곁에 남아있길 바랐는데... 우리 남매가 다시는 헤어지지 않을 줄 알았어. 하긴, 이 지경이 된 이상 널 보내줄 수밖에 없겠네. 언제 떠날 생각이야?”“대회 주최 측에 상황을 잘 설명해서 기권 의사를 밝힐 거야. 그리고 떠나기 전에 송여준에게도 다시 한번 나를 잃는 게 어떤 기분인지, 그저 눈을 뜬 채 내가 떠나는 걸 바라볼 수밖에 없는 그 비참함이 어떤 건지 뼈저리게 느끼게 해줄 거야.”유하늘의 눈동자 속에는 증오의 빛이 서려 있었다.

  • 거짓말쟁이의 참회   제317화

    딱히 거절할 명분이 떠오르지 않은 송여준은 못내 아쉬워했다.그녀와 단둘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 꽤 실망스러웠다.하지만 티는 내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체념한 듯 말했다.“알겠어요. 지금 갈게요. 내가 한 일들 때문에 너무 화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질투가 나서, 하율 씨를 너무 좋아해서 그랬던 거니까. 아니면 나도 하율 씨 주변 사람들까지 건드리진 않았을 텐데.”지금의 유하늘에게 이런 말은 그저 역겹게만 들릴 뿐이었다.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며 현관문을 가리켰다.“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져요. 다신 보고 싶지 않으니까.”송여준은 흠칫 놀라더니 결국 아무 말 없이 묵묵히 뒤돌아섰다.그가 떠나고 나서야 유하늘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이내 소파에 앉아 한동안 침묵한 뒤, 휴대폰을 꺼내 유시훈에게 전화를 걸었다.“오빠, 지금 집에 갈게. 이제 마지막 방법을 써야 할 때가 된 것 같아.”그 말을 듣자 유시훈은 숨이 턱 막혔다. 2초가 지나서야 체념한 듯 대답했다.“그래, 기다릴게.”통화를 마치고 유하늘은 즉시 집으로 향했다.하지만 도착해서 문을 열기도 전에 밖에 나와 있던 서영준에게 끌려갔다.유하늘은 어리둥절하며 물었다.“왜 밖에 계세요? 설마...”“쉿!”서영준은 다급하게 목소리를 낮추라는 신호를 보냈다.“방금 누가 왔는지 알아요?”유하늘은 굳게 닫힌 문을 바라보았다.그제야 안에 자신이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와 있어서 서영준이 일부러 밖에서 기다렸다는 걸 깨달았다.“누군데요?”“송우주요.”서영준이 난처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그 이름을 듣는 순간, 유하늘의 얼굴이 순식간에 차갑게 굳어버렸다.이내 입술을 깨물고 한참이 지나서야 콧방귀를 뀌었다.“하필이면 송우주라니, 그럼 전 뒷문으로 들어갈게요.”유하늘은 집사와 함께 뒷문을 통해 주방으로 들어갔다. 마침 등을 돌린 채 유시훈과 대화 중인 송우주가 보였다.유시훈은 싸늘한 눈빛으로 아이를 내려다보았다.갓 태어났을 때 그토록 예뻐하며 거액

  • 거짓말쟁이의 참회   제316화

    유하늘은 힘없이 일어나 걸어가서 문을 열었다.하지만 돌아간 줄 알았던 남자가 다시 나타난 것을 보고 멈칫했다.그녀가 미간을 찌푸리며 뭐라 하기도 전에 송여준이 먼저 선수 쳤다.“내가 장기혁 곤란하게 하는 거, 이미 알고 있죠?”유하늘의 몸이 움찔했다.“그럼 그 자식이랑 더는 엮이지 마요.”강압적인 말투는 건방지기 짝이 없었다.유하늘은 눈을 가늘게 뜨고 싸늘하게 말했다.“만약 내 주변 사람들 모두 해치면서까지 당신 곁으로 돌아가게 할 작정이라면, 그건 아주 큰 오산이에요. 난 절대 타협 안 해요. 오히려 당신만 점점 더 혐오하게 될 뿐.”인정사정없는 독설에도 송여준은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절 미워해도 괜찮아요. 하지만 하율 씨 곁에 누군가 머무는 꼴은 도저히 못 보겠어요. 사실 저도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거든요.”비록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에 지울 수 없는 슬픔이 어려 있었다. 마치 절망의 늪에 빠져버린 사람처럼.그리고 또박또박 덧붙였다.“나도 하율 씨랑 천천히 시작해보고 싶었어요. 언젠가는 마음을 열고 내 곁으로 돌아와 주길, 아니면 그 가면을 벗고 나를 제대로 마주해 주길 기다려 보려고 했죠. 하지만... 욕심이 너무 과했나 봐요.”“저의 자제력을 너무 믿었나 봐요. 하율 씨를 향한 내 소유욕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거든요. 누구든 하율 씨 곁에 나타나서 친하게 구는 꼴을 보면 당장이라도 죽여버리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으니까.”송여준의 눈에 광기가 일렁거렸다.그는 앞으로 다가와 유하늘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약속해 줘요. 다른 남자한테 따로 연주해 주지 않겠다고. 그냥 내 곁에만 있어요. 나를 미워해도, 당신의 진짜 얼굴을 안 보여줘도 좋으니까.”유하늘은 그 자리에 선 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단지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평온한 눈빛으로 송여준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오랜 침묵이 이어지자 송여준은 점점 초조해졌다.“왜 그래요? 아무 말 없이 나를 보고만 있으면 어떡해요?”유하늘은 눈을 가늘게 뜨더니

  • 거짓말쟁이의 참회   제315화

    물론 무슨 꿍꿍이인지 굳이 짐작할 생각은 없었다.그녀는 첼로를 들고 와서 맞은편에 앉아 차분히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두 사람 모두 음악에 몰입한 채 어딘가 허망하면서도 미련이 남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거실 안은 고요했고, 오직 첼로 선율만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그때, 별안간 울리는 노크 소리가 이 평화를 깨뜨렸다.유하늘은 눈살을 찌푸렸다.도중에 연주를 멈추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장기혁에게 들려주기로 약속한 이상 절대 멈출 생각이 없었다.결국 못 들은 척 연주를 이어가기로 했다.한편, 밖에서 문을 두드리던 송여준은 반응이 없자 직접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왔다.거실의 풍경을 마주한 순간 그대로 굳어버렸고, 싸늘한 눈동자는 살기가 일렁거렸다.그는 주먹을 꽉 쥐고 두 사람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참아내려고 이마에는 핏줄이 불끈 튀어나왔다.그런데도 유하늘은 아랑곳하지 않았다.송여준이 코앞까지 다가왔을 때야 비로소 연주를 마쳤다.그리고 못마땅한 얼굴로 눈살을 찌푸렸다.“지금 뭐 하는 거예요? 누가 감히 주인 허락도 없이 함부로 남의 집에 들어오래요?”이 한마디는 송여준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그는 이를 악물고 그녀와 마주 앉은 남자를 가리켰다.“고작 저 사람 위해서 연주하느라 내 노크 소리도 무시했던 거예요?”유하늘은 첼로를 내려놓고 쌀쌀맞게 대꾸했다.“맞아요. 그런데 그게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죠?”“당연히 상관있죠. 나한테는 한 번도 안 해줬으면서 왜 저 남자는 되는 건데요?”송여준의 가슴이 들썩거렸고, 누가 봐도 질투하는 모습이었다.그는 인정해야만 했다. 지금 이 순간, 질투에 눈이 멀어 미쳐버릴 것 같다는 사실을.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형언할 수 없는 답답함과 슬픔이 밀려왔다.결국 인내심이 바닥난 유하늘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당신이 대체 뭔데 끼어들지? 장 대표님은 내 창작 세계를 이해해 주고, 내 음악을 진심으로 아껴주는 팬이에요. 근데 당신은? 그저 사사건건 따라

  • 거짓말쟁이의 참회   제314화

    또한, 리헬 그룹이 수년간 안정적으로 경영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도 전부 송여준의 해킹 능력 덕분이었다.다만 홍이수는 이런 방식이 장기혁에게 통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어쨌거나 이곳은 그가 오랫동안 뿌리내린 터전이니까.홍이수가 생각에 잠긴 찰나, 갑자기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송여준이 전화를 받았다.“장평 쪽 분위기는? 슬슬 나 찾을 때 안 됐어?”“장기혁이 사내 시스템을 복구하려고 해커들을 대거 불러 모으고 있어요. 하지만 본인은...”감시를 맡은 남자가 마른침을 삼켰다.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다.송여준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더니 싸늘하게 물었다.“본인은 뭐?”“지금 하율 씨 만나러 갔어요. 둘이 현재 집에 같이 있어요.”휴대폰 너머로 남자는 거의 죽을상을 쓰며 간신히 말을 내뱉었다.송여준의 얼굴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그는 천천히 주먹을 움켜쥐었고, 눈동자에는 서늘한 살기가 스쳤다.“하,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이내 헛웃음을 치며 낮게 읊조렸다.“계속 감시해.”전화를 끊고 나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뒤에 남겨진 홍이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야! 너 어디 가?”송여준은 대답도 없이 성큼성큼 멀어져 갔다.한편, 유하늘은 차를 한 잔 따라 장기혁 앞에 내려놓았다.“천천히 얘기해봐요. 송여준이 대표님 회사에 무슨 짓을 했다고요?”“해커를 동원해서 우리 회사 시스템을 해킹했어요. 최대한 빨리 복구하라고 지시하긴 했는데, 지금 이 순간에도 엄청난 손실이 나고 있죠.”장기혁의 표정이 제법 진지했다. 예상보다 결과가 더 심각한 듯 보였다.순간, 유하늘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이내 나직이 한숨을 내뱉었다.“죄송해요, 다 저 때문이에요. 역시 대표님 도움은 받지 않는 게 좋겠어요.”유하늘은 남에게 폐를 끼치거나 누군가를 더 이상 이 일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채도현에게 부탁했던 일만으로도 이미 상당한 타격을 준 터였다.장기혁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무덤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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