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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쟁이의 참회
거짓말쟁이의 참회
Author: 봄은어디

제1화

Author: 봄은어디
악성 뇌종양 판정을 받은 뒤 나는 두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하나는 나와 송여준이 사실은 법적 부부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6년을 키운 내 친아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내 아들은 내가 아닌 다른 여자를 엄마로 삼고 싶어 했다.

나는 그제야 비로소 가족들을 버리고 정체를 숨기며 7년 동안 두 사람을 위해 헌신했던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는지를 깨달았다.

나는 매정한 두 사람의 인생에서 완전히 사라지기 위해 세 가지 일을 했다.

첫 번째는 결혼 7주년을 기념해 한 달 전 예약해 두었던 레스토랑 예약을 취소하고, 아들이 다니는 유치원 학부모 단톡방에서 나가고, 남편과 아이의 건강을 생각해 가입했던 수십 개의 건강 관리 단톡방에서도 나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몸이 오랜 비행을 견딜 수 있도록 의사 선생님에게 연락해 검사를 진행한 뒤 특효약을 처방받는 것이었다.

마지막 세 번째는 7년간 연락을 끊고 살다시피 했던 오빠에게 연락해 가족을 떠나 먼 곳에서 결혼생활을 한 것이 너무도 괴로웠다고, 이제 잘못을 깨달았으니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전하는 것이었다.

...

“환자분의 뇌종양은 현재 주변 뇌신경을 압박하고 있는 상태라 최대한 빨리 결정을 내리셔야 해요.”

소독수 냄새로 가득 찬 병원 복도, 의사 선생님이 한 말이 유하늘의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유하늘은 온몸을 덜덜 떨면서 이미 구겨질 대로 구겨진 검사지를 힘주어 꽉 쥐었다.

최근 들어 유하늘은 자주 머리가 아프고 속이 울렁거렸으며 이따금 코피를 흘리기도 했다.

처음엔 자주 밤을 새워 몸이 허약해져서 생긴 문제인 줄 알았는데 병원을 찾아 정밀 검진을 받아보니 악성 뇌종양이라는 악몽과도 같은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두 가지 치료 방법을 제시했다.

한 가지는 수술을 받는 것인데 50%의 확률로 수술에 성공하여 살아남을 수 있다고 했다.

다른 한 가지는 약을 먹으면서 항암 치료를 진행하는 것이었다. 후자를 선택할 경우 머리카락이 전부 빠지게 되지만 수명을 몇 년 연장할 수 있다고 했다.

유하늘은 성공 확률이 50%밖에 되지 않는 수술을 선택하기 두려웠다.

어렸을 때부터 주사 맞는 것조차 무서워했었던 유하늘이었기에 차가운 수술대 위에 누워 생사의 기로에 놓이는 건 더욱더 두려웠다.

그러나 수술을 받지 않는다면 끊임없이 커지는 뇌종양 때문에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다가 죽게 되는 잔혹한 현실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유하늘은 눈을 감고 자신의 남편을 떠올렸다.

송여준과 결혼한 지는 어언 7년이다. 유하늘은 송여준을 사랑했고 그와 오랜 시간 함께했다.

게다가 둘 사이에서 사랑의 결실인 아들 송우주가 태어났고 송우주는 떡잎부터 남달라 어렸을 때부터 잘생기고 똑똑했다.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두 사람을 떠올린 유하늘은 아주 큰 용기를 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의사가 있는 진료실 문을 열었다.

“선생님, 저 결정했어요. 수술받을게요.”

의사는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성공 확률은 50%입니다. 두렵지 않으세요?”

유하늘은 웃었다.

“두렵지 않아요. 저는 제 남편과 아이가 제 곁을 지켜줄 거라고 믿거든요. 두 사람만 있다면 전 세상 그 무엇도 두렵지 않아요.”

의사는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한 달 뒤 수술 받으실 수 있게 예약해 두겠습니다.”

병원에서 나온 유하늘은 당장 집으로 돌아가 남편과 아들에게서 응원을 받고 싶었다.

집에 도착해 보니 가정부는 송여준이 집에 없다고, 회사에 갔다고 했다.

그래서 유하늘은 서둘러 리헬 그룹으로 달려갔고 회사에 도착한 뒤에는 곧장 대표 사무실로 향했다.

그런데 유하늘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기 전 한 남자의 목소리가 안에서 들려왔다.

“여준아, 형수님 말이야. 아람 씨가 네 비서로 일한다는 걸 알면 화를 내지 않을까?”

유하늘은 당황했다. 문틈 사이로 송여준의 친구 홍이수의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아람 씨?’

권아람.

유하늘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이름이었다. 송여준이 10년 동안 마음에 품고 있던 여자의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책상 앞에 앉은 남자는 시선을 내려뜨리고 있었다. 검은색 셔츠 옷깃은 살짝 벌어졌고, 소매는 위로 걷어 올려 금욕적이면서도 냉담한 유부남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송여준은 짜증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회사 일에 관심 두지 마.”

홍이수는 목을 살짝 움츠리면서 입을 비죽였다.

“그래도 나는 네 체면을 봐서 하늘 씨를 형수님이라고 부르잖아. 너랑 하늘 씨 사실 혼인신고 안 돼 있다는 거 네 지인들 중에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냐? 게다가 그때 서류 위조해서 보내준 사람이 바로 나잖아. 하하!”

그 말에 유하늘의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유하늘은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내가... 뭘 들은 거지? 나랑 여준 씨 혼인신고가 안 돼 있다고?’

송여준은 사무실 문 맞은편에 옆으로 몸을 틀고 앉아 있었기에 밖에 누군가 서 있다는 걸 꿈에도 몰랐다.

홍이수는 궁금해했다.

“여준아, 왜 말이 없어? 이제 아람 씨 돌아왔으니까 하늘 씨랑 헤어져야 하는 거 아니야? 솔직히 말해서 그때 하늘 씨가 너한테 매달리지만 않았어도, 네가 술에 취한 틈을 타 널 꼬셔서 잠자리를 가진 뒤 임신하지만 않았어도, 아이 출생신고를 위해서 네가 하늘 씨랑 혼인신고 하는 척했을 리는 없었을 거잖아. 그리고 그 일 때문에 아람 씨는 상처를 받아서 이제야 돌아왔지.”

유하늘은 잠시 숨을 쉬지 못했다.

두개 내압이 상승하자 유하늘은 토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날 밤, 두 사람은 바에서 술을 마시다가 취했고 홍이수도 그 자리에 있었다.

홍이수는 유하늘이 송여준에게 술을 건넨 적이 없다는 걸 분명 알고 있었다. 당시 리헬 그룹의 라이벌 회사 직원이 술에 약을 탔고 유하늘은 송여준을 도와주려고 송여준과 함께 호텔에 간 것이다.

그런데 왜 모든 책임을 그녀에게 전가하는 것일까?

홍이수는 피식 웃었다.

“그래서 언제 아람 씨랑 결혼할 건데? 아람 씨가 심장질환 때문에 네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면서 떠나지만 않았어도 하늘 씨가 빈틈을 노려 네 옆자리를 꿰찼을 리는 없지. 네 옆자리는 원래 아람 씨 거여야 했어.”

송여준은 언짢은 표정으로 시선을 들었다.

그의 서늘한 눈빛에 경고의 의미가 다분했다.

“나랑 유하늘 사이에는 우주가 있어...”

유하늘은 온몸을 떨면서 비틀거렸다.

그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몸을 돌려 화장실로 향했다. 그래서 그 뒤의 얘기는 미처 듣지 못했다.

유하늘은 화장실에 도착한 뒤 미친 듯이 속을 게워 냈다.

역겨운 진실을 알게 됐기 때문일까? 아니면 뇌종양으로 인한 생리적인 반응일까?

안으로 들어온 직원은 유하늘의 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라더니 이내 그녀에게 티슈를 건넸다.

유하늘은 눈시울이 빨개진 채 직원이 건넨 티슈를 건네받으며 서글픈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고마워요. 여준 씨한테 저 왔단 말은 하지 말아주세요.”

유하늘은 휘청거리며 건물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거리를 거닐며 송여준과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7년 전, 해외의 유명 디자이너였던 유하늘은 오빠가 운영하는 주얼리 회사의 기둥 같은 존재였고 송여준과는 아무런 접점이 없었다.

그러다 한 번은 출장을 가게 되었는데 호텔에서 나오자마자 치마가 찢어졌다.

난감한 상황이었는데 송여준이 마이바흐에서 내리며 구김 하나 없는 정장 재킷을 그녀에게 건넸다.

“허리에 두르세요.”

송여준은 낯선 환경에서 당황함과 난처함을 느끼고 있던 유하늘을 구했다.

고개를 들어 하느님이 정성 들여 빚은 듯한 송여준의 완벽한 얼굴을 보는 순간 유하늘은 사랑에 빠졌다.

그 뒤로 유하늘은 송여준을 잊지 못했고 오빠에게 부탁해 여러 인맥을 이용하여 송여준과 일로 엮이며 구애하기 시작했다.

유하늘은 송여준에게 오래전 인사조차 하지 않고 떠난, 그가 오랫동안 잊지 못한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다 술에 취해 그와 관계를 가지고 임신까지 한 뒤엔 순조롭게 그와 결혼하게 되었다.

유하늘은 결혼 후 첫날밤에 송여준에게 물었다. 책임지라고 하지 않았는데 왜 자신과 결혼했냐고 말이다.

늘 그녀에게 냉담하던 송여준은 처음으로 유하늘을 바라보며 천천히 정중하게 말했다.

“너와 아이에게 집이 되어주고 싶었어.”

그 말 한마디 때문에 유하늘은 결혼 생활에 모든 걸 쏟아부었다. 그녀는 오빠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하고 국내에 남아서 남편과 아이의 뒷바라지를 했다.

그런데 그들의 결혼이 가짜였다니.

송여준은 단 한 번도 그녀를 자신의 아내로 여긴 적이 없었고 7년 동안 다른 여자만 그리워하며 그 여자와 부부가 되기를 바랐다.

유하늘은 피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녀는 자신의 지난 삶이 얼마나 허무했는지를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래서 유하늘은 결정을 내렸다.

한 달 뒤 수술에 성공하면 송우주를 데리고 떠나겠다고 말이다.

송여준은 앞으로 유하늘과 송우주를 고려할 필요 없이 자기가 원하는 사람과 결혼하면 되었다.

아이를 떠올린 유하늘은 다시금 기운을 차렸다.

집으로 달려간 그녀는 위층으로 올라가자마자 송우주와 집사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엄마가 사실은 아빠랑 가짜 결혼을 했다는 걸 알게 된다면 슬퍼할까요?”

집사는 자애롭게 웃으며 말했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도련님도 아시다시피 대표님께서는 사모님을 사랑하지 않으니까요.”

송우주가 앳된 목소리로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사실 저도 엄마가 싫어요. 저는 아람 이모가 더 좋아요. 아람 이모는 진짜 다정해요. 엄마가 저를 회사에 데려다줄 때마다 아람 이모가 맛있는 것도 많이 사주고 같이 놀아주기도 하거든요. 엄마는 간식 많이 먹으면 몸에 안 좋다고 못 먹게 하고,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고 놀지도 못하게 하는데 말이에요. 진짜 짜증 나요! 저는 아람 이모가 아빠랑 결혼하면 좋겠어요.”

유하늘은 주먹을 힘껏 움켜쥐었다. 마음이 너무 아려서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그녀가 배 아파 낳고 최선을 다해 키운 송우주는 송여준처럼 매정했다.

한때 화목한 사이였던 그들의 예쁜 추억들이 이제는 머나먼 꿈만 같았다.

겉으로는 행복해 보이지만 사실은 악몽인 그런 꿈 말이다.

과거 유하늘의 오빠는 유하늘이 고향을 떠나 먼 곳으로 시집가면 힘든 일이 생겼을 때 친정에서 바로 도와주기가 힘들다면서 그녀가 먼 타향에서 결혼해서 사는 걸 강력히 반대했었다. 그때 그 말을 들어야 했다.

만약 오빠가 송여준이 한 짓을, 그리고 송우주의 속마음을 알게 된다면 아마 칼을 들고 찾아와 두 사람을 죽이려고 할지도 몰랐다.

유하늘은 시큰거리는 눈을 깜빡이면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남편과 아들을 위해 용기 내어 수술을 받으려고 했으나 그녀의 희망은 이미 산산이 부서졌다.

거실에 선 유하늘은 휴대전화를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오빠, 나 이혼하려고. 나 이제 집에 돌아가고 싶은데 마중 나와주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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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경호원은 멈칫하더니 눈살을 찌푸린 채 그를 바라보았다.“안 가고 여기 있어봤자 할 일 없을 텐데.”“유하늘 기다려야죠. 안락사를 선택한다 해도 끝까지 있을 거예요. 장례식도 참석해야 하고.”송여준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우린 부부예요. 설령 죽었다 해도 하늘은 송씨 가문 사람이에요. 유골은 내가 가져가서 모실 거예요.”두 경호원은 너나 할 것 없이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싸늘한 시선에는 조롱이 묻어났다.“아직도 미련 못 버렸어요? 아가씨를 그렇게 괴롭혀서 결국 한 줌의 재로 만들어 놓고도 놓아줄 생각이 없다니. 맞아 죽기 싫으면 당장 꺼져요!”말을 마치고는 송여준의 등을 떠밀어 송우주의 퇴원 절차를 밟으러 갔다.송여준은 반항하려 했지만 경호원에게 주먹을 맞고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두 경호원은 서둘러 부자를 차에 태워 공항으로 향했다.송여준과 송우주를 완전히 보내기 위해 유시훈은 전용기까지 동원했다.홍이수가 집을 계약하고 병원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송여준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는 사람이 없었다.이내 고개를 돌리는 순간, 두 경호원의 차갑고 무심한 시선이 그를 마주했다.“헛수고하지 마세요. 송여준은 여기 없어요. 저희가 헬기로 돌려보냈으니까 당신도 얼른 돌아가요.”“지금 뭐 하는 겁니까? 하늘 씨랑 떨어지거나 곁에서 치료받는 걸 지켜보지 못하면 송여준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억지로 데려간다고 뭐가 달라져요? 어차피 다시 돌아올 텐데!”홍이수가 초조한 얼굴로 한발 다가섰다.“그리고 아이가 그렇게 위중한데 어찌 그냥 돌려보낼 수 있죠?”그 말을 들은 경호원들은 마치 세상에서 가장 터무니없는 얘기를 들은 듯 비웃음을 지었다.“이제 평생 우리 아가씨 얼굴 못 볼 거예요. 병세가 더 악화해서 뇌종양이 너무 빨리 커져 신경을 압박하고 있대요. 의사 말로는 사흘 안에 식물인간이 되어 세상을 떠날 것이라고 했어요.”홍이수는 흠칫 놀랐다.“아가씨는 마지막을 그렇게 비참하게 맞고 싶지 않다고 했어요. 결국

  • 거짓말쟁이의 참회   제205화

    유하늘은 휴대폰을 꺼버리고 앞만 바라보았다.송여준이 계속해서 문자를 보냈지만 무시했다.몇 개만 봤을 뿐인데 벌써 속이 울렁거릴 정도였다.차가 한 요양기관 앞에 멈추자 유하늘이 내렸다.이때, 간호사 두 명이 다가와 짐을 들어주었다.그녀는 몸을 돌려 차에서 내리는 유시훈을 바라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걱정하지 말고 먼저 가.”유시훈은 우두커니 서서 꿈쩍도 안 했다.이내 주먹을 쥐고 말을 꺼내려다 멈칫하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몸 잘 챙겨.”유하늘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윽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본 뒤 곧장 센터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유시훈은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다가 시선을 거두었다.잠시 후, 길게 한숨을 내쉬고 차에 올랐다.집에 막 돌아오자 두 명의 경호원이 다가와 보고하기 시작했다.“저희가 알아보니까 송여준 친구, 홍이수라는 사람이 별장 단지 안에 집을 하나 임대했더라고요. 아마도 송여준이 애 데리고 오래 살 곳을 찾는 것 같아요.”유시훈의 표정은 차갑게 굳었고, 짜증이 그대로 드러났다.“하늘도 없는데 집을 빌려서 뭐 하겠다는 건데? 오늘 밤 송여준 부자 다 쫓아내. 제 발로 안 나가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내보내.”경호원들이 서로 눈을 맞췄다.“하지만... 아이는 위독한 상황이라 병원을 떠나기 어려워요.”“내 알 바 아니야. 하늘이가 다시는 보기 싫다는데 여기 머물게 놔둘 수는 없잖아. 애가 버티지 못하고 죽으면 시체라도 끌어내!”유시훈은 주먹을 쥐고 싸늘한 목소리로 지시했다.그의 말에 겁을 먹은 경호원들은 서로 눈치를 보다 즉시 병원으로 향했다.곧장 송여준을 찾아가 인정사정없이 내쫓기 시작했다.“저희 아가씨는 이미 세상을 떠났어요. 여기 남아 있어도 다시는 못 볼 테고, 당신은 장례식에 참여할 권리도 없죠!”송여준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오늘 자정까지 이 도시를 떠나요. 안 그러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쫓아낼 거니까 알아서 해요.”두 경호원의 말이 끝나자 송여준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시종일관 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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