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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Author: 끝없는 한빛
“윽, 정다름!”

유준서의 괴이한 말투에 정다름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녀의 손가락은 어느샌가 그의 입속에 들어가 있었다.

의료용 장갑을 끼고 있었지만 정다름은 깜짝 놀랐다.

급히 몸을 바로 세워 자신의 손을 빼던 정다름은 의자 위에서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의자에서 떨어지려던 순간 강한 힘이 느껴지는 팔이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 유준서는 그녀를 한 손으로 안아 내려놓았다.

정다름은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시더니 이내 그를 세게 밀어내며 물러섰다. 그리고 목구멍까지 올라온 비명이 새어나가지 않게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에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왜 그렇게 놀라서 피하는 거야?”

낯빛이 완전히 어두워진 유준서가 이를 악물며 물었다.

황급히 피하는 그녀의 모습에 유준서는 본인이 더러운 물건이라도 된 것 같았다!

정다름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긴장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유준서가 화를 낼까 봐 더 두려웠다. 그에게 마음이 있어 일부러 그에게 안겼을 거라고 생각할까 봐 두려웠고, 그녀를 역겨워할까 봐 그녀를 내쫓을까 봐 두려웠다.

정다름은 애써 마음을 가다듬으며 더욱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방금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했습니다. 약은 다 발랐으니 다른 시키실 일 더 없으시면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녀는 허둥지둥 돌아서다 하마터면 벽에 부딪힐 뻔했다.

돌아가겠다는 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유준서는 급히 심하게 기침하며 허약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 배고파. 죽 끓여줘.”

그의 말에 정다름은 발걸음을 멈췄다.

“가사도우미 업체에 전화해서 바로 사람 보내라고 하겠습니다.”

“네가 해.”

유준서의 거친 목소리에 정다름은 멈칫하더니 몸을 돌려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그러자 유준서는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정 비서, 설마 보름 출장 갔다 왔다고 본업을 잊은 건 아니지?”

“아닙니다. 대표님의 개인 비서로 대표님의 일상생활을 돌보는 것이 제 업무입니다. 지금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말하며 밖으로 걸어 나간 정다름은 장갑과 외투를 벗어 한쪽 의자에 던져 놓고 긴 머리를 묶어 올렸다.

이곳에 남아 그를 위해 죽을 준비하는 그녀의 모습에 유준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고열로 인해 온몸이 시큰거리고 기운이 없었다.

그는 의자 위에 주저앉았다. 호흡은 느리고도 무거웠다.

그때 김태진이 조심스럽게 문 뒤에서 나오며 말했다.

“대표님, 제가 침대까지 부축해 드릴까요?”

유준서는 고개를 약간 들어 올리며 어두운 눈빛으로 김태진을 쳐다봤다. 흐트러진 머리카락 사이의 눈빛은 그 의미를 알 수가 없었다.

“저 여자가 어떻게 온 거야?”

김태진은 고열로 제정신이 아닌 대표가 이런 것까지 생각할 줄은 몰랐다.

“정 비서가 오늘 돌아온다고 저랑 업무 문자를 주고받다가 대표님이 감기로 열이 난다고 말씀드렸...”

“그러니까 너한테만 오늘 돌아온다고 얘기했다는 거야?”

유준서가 그의 말을 끊었다.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하.”

피식 웃는 것 같던 유준서가 고개를 들어 나른하게 의자 등받이에 기대며 상처투성이인 입꼬리를 차갑게 올려 보였다.

“둘이 사이가 그렇게 좋았어?”

대표의 말뜻을 정확히 알 수 없었던 김태진은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그냥 정상적인 업무 보고였습니다.”

그러나 유준서는 집요했다.

“직속 상사는 나야. 그런데 업무 보고를 내가 아니라 너한테 해? 비서실장이 대표인 나보다 더 대단한가?”

대표의 말에 김태진은 식은땀이 흘러내릴 것 같았다.

“제가 어떻게 감히...”

“내가 아픈 걸 알고 저 여자가 스스로 온 거야 아니면 네가 시킨 거야?”

유준서는 다시 아랑곳하지 않고 화제를 바꿨다.

“...”

김태진은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순간 무언가를 깨달은 유준서는 고집스럽게 답을 요구했다.

“솔직하게 말해.”

그러자 김태진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제가 정 비서에게 무슨 일이 있든 한 번 와달라고 부탁했습니다.”

“...”

그의 대답에도 유준서가 아무 말이 없자 김태진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사람을 잡아먹을 것 같은 대표의 눈빛에 그는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하, 씻을 거니까 문 닫아.”

김태진은 급히 화장실의 문을 닫고는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정다름을 찾아갔다.

알 수 없는 분노를 억누르며 샤워하던 유준서는 손을 들어 김이 서린 유리에 정다름의 이름을 썼다.

“독하고 성격도 더러워. 누가 널 내게 보냈는지만 알아내면 제대로 처리해 주지.”

그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죽이 보글보글 끓고 있던 냄비에서는 향긋한 냄새가 났다.

김태진은 주방 한쪽에 서서 밑반찬을 써는 정다름을 보며 감탄했다.

“역시 정 비서예요. 정 비서가 오늘 돌아오지 않았다면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을 거예요.”

“정 비서는 특별한 존재니까요. 대표님이 대표직을 맡은 6년 동안 처음으로 곁에 둔 여비서잖아요. 그전까지는 여비서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어요.”

그의 칭찬과 특별한 영광에도 정다름이 의기양양해하지 않자, 김태진은 진심으로 그녀의 심성에 탄복했다.

그는 그녀의 귓가에 다가가 조용히 경고했다.

“요즘 대표님 기분이 오락가락하시니까 정 비서도 조심해요.”

그의 말에 정다름은 살짝 웃어 보였다.

그녀는 가장 빛나는 유준서의 모습을 봤었다. 때문에 그가 어떤 모습으로 변한다고 해도 최선을 다해 지켜줄 그녀였기에 비서실장의 경고에 그저 웃음이 날 뿐이었다.

정말 조심해야 할 것은 그녀의 마음을 들키지 않고 잘 숨기는 것이었다.

“뭐 하는 거야?”

차갑고 쉰 목소리가 천둥처럼 울려 퍼졌다.

김태진은 무의식적으로 정다름과 거리를 두며 대답했다.

“대표님, 정 비서와 잠깐 일 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감기가 심해지지 않게 가운을 잘 챙겨 입은 유준서의 모습을 본 정다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계속 밑반찬을 썰었다.

유준서는 소매를 걷어 올려 드러난 정다름의 매끈한 팔에서 시선을 거둔 뒤 차갑게 김태진을 쳐다봤다.

“일 얘기를 그렇게 가까이할 필요가 있을까? 정 비서 지금 식칼 들고 있는데?”

방금 두 사람의 사이가 너무 가까웠다. 그의 시선으로 봤을 때 김태진의 얼굴이 정다름의 얼굴에 거의 닿을 지경이었는 데다 정다름은 그런 김태진을 밀어내지 않았다.

난 그저 의자에서 안아 내렸을 뿐인데 벌레 취급하며 밀어내더니!

차별 대우가 이렇게 심한데 어떻게 모른 척할 수가 있겠어?

“정 비서가 내 곁에서 일한 지 반년밖에 안 됐는데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이렇게 좋아진 거야? 들어나 보게 얘기해 봐.”

김태진은 어리둥절했다. 오늘따라 대표의 행동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표님, 저와 정 비서는...”

“돌아가.”

변명을 듣고 싶지 않았던 유준서는 귀찮은 듯 그를 내쫓았다.

대표의 말에 김태진은 멈칫하다 아무 말도 없이 바로 물러났다.

유준서는 천천히 정다름 곁으로 걸어갔다. 그러나 그의 걸음이 멈추기도 전에 정다름은 접시를 가져오기 위해 찬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윽!”

유준서는 얇은 입술을 오므리다 아픈 듯 신음을 냈다.

“왜 그러세요?”

정다름은 급히 몸을 돌려 그를 쳐다봤다.

그녀가 본인을 걱정하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유준서는 며칠 동안 쌓여있던 초조함이 조금은 줄어드는 것 같았다.

“김태진이랑 무슨 사이야?”

정다름은 밑반찬을 담고 싶었지만, 유준서가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그녀의 어떠한 행동으로 유준서가 또다시 본인을 의도적으로 유혹한다고 생각할까 봐 두려워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었던 정다름은 싱크대에서 깨끗한 접시를 다시 한번 씻기 시작했다.

“그냥 평범한 동료 사이일 뿐입니다.”

유준서는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하얗고 부드러운 목덜미가 눈에 들어온 그는 저도 모르게 목이 말라 아랫입술을 핥았다.

“평범한 동료 사이라고? 출장 갔다 와서 가장 먼저 김태진에게 알려줬잖아. 그게 평범한 동료 사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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