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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Author: 끝없는 한빛
정다름은 멈칫하더니 이내 몸을 돌려 면봉에 특수 구강 소독제를 묻히며 말했다.

“입 벌리세요.”

그녀의 말에 유준서는 독사처럼 음흉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차갑게 웃었다.

“명령하는 거야?”

아래로 내리뜨린 정다름의 눈초리가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더욱 차가워진 목소리로 다시 한번 말했다.

“대표님, 입 벌려주세요.”

그러자 유준서는 불쾌한 얼굴을 드러냈다.

“지금 한마디 했다고 그러는 거야? 짜증 난 얼굴로?”

정다름은 천천히 손을 내려놓더니 마침내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봤다. 눈에는 난감함과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대표님, 제가 치료해 드리는 게 싫다면 비서실장님이 문 앞에 계시니 비서실장님에게 부탁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그녀는 몸을 돌려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을 본 유준서는 무의식으로 손을 뻗었다. 찰랑거리는 긴 머리가 그의 손에 잡혔다.

“아!”

낮은 신음이 들려왔다. 그녀는 고개를 기울인 채 몸을 돌렸다. 방금까지 차가웠던 눈동자에는 이슬이 맺혀 있었다.

너무 세게 잡아당겼나?

하지만 자업자득이야!

유준서는 그녀의 긴 머리를 잡아당기며 거만하게 말했다.

“네게 그런 결정을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그의 말에 정다름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더니 돌아와 면봉을 상처 난 그의 입술에 갖다 댔다.

그녀가 눈앞에 있다. 그가 애원하지 않아도 제 발로 얌전히 돌아왔다.

유준서는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부지 하나 갖고 뭘 그렇게 오래 꾸물댄 거야? 김태진이 갔으면 7일 만에 깔끔하게 끝냈을 일인데 정 비서는 보름이나 걸려? 정 비서, 능력이 그거밖에 안 돼?”

정다름의 손이 살짝 떨렸다.

“스읍!”

갑작스러운 고통에 유준서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그는 거의 품에 안긴 정다름을 보며 사납게 말했다.

“정다름, 일부러 그랬지?”

정다름은 신체 접촉을 피하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노력했다. 그러나 결국 두 손이 그의 가슴에 닿았다.

“흠.”

낮은 신음과 함께 유준서의 숨소리가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매서운 눈빛은 그녀의 얼굴을 지나 천천히 본인의 가슴에 멈췄다. 감전이라도 된 것마냥 재빠르게 손을 거두는 그녀의 모습에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세게 혀를 굴렸다.

그는 가운을 입는 것을 깜빡했었다. 차가운 손길이 살결에 닿는 순간 고열로 뜨거웠던 그의 몸은 더 많은 것을 갈망하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차가운 손이 그의 온몸을...

순간 그녀는 한 걸음 물러서며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일이 조금 복잡했습니다. 그 부지에 얽힌 것들이 많아서...”

그녀의 말을 듣던 유준서는 귀찮은 듯 그녀의 말을 끊었다.

“H시 본가에서 옛 친구라도 만난 거야?”

정다름은 홱 고개를 들어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유준서를 쳐다봤다. 그 눈빛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했지만, 정다름은 이미 눈을 내리깔고 힘껏 본인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그녀의 거친 행동에 유준서는 황급히 손을 놓았지만, 끊어진 머리카락 몇 개가 그의 손바닥 위로 떨어졌다.

“이게 뭐 하는 짓이야?”

그는 낮게 소리쳤다. 떨어진 머리카락들이 본인의 머리카락마냥 유준서는 그녀보다 더욱 화가 났다.

정다름은 면봉을 쓰레기통에 버리고는 밖으로 걸어 나갔다.

“거기 서!”

“네 능력이 부족해서 중요한 업무를 며칠이나 지체했는데 대표인 내가 한 마디도 못해? 감히 나한테 화를 내는 거야?”

고열로 머리가 어지러웠던 그는 아무 말도 없이 밖으로 나가는 그녀의 태도에 화가 나서 가슴이 답답했다. 두 발로 서 있을 수 없었던 그는 어두운 낯빛으로 세면대를 부여잡고 그녀를 쏘아봤다.

정다름이 정말 이렇게 화가 난 얼굴로 가버린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다름은 침대 발치의 의자 쪽으로 가서 가운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에게로 돌아와서 가운을 입혀줬다.

유준서의 어두운 낯빛은 그녀의 발걸음에 차츰차츰 누그러들었다.

그는 옷을 입혀주고 끈까지 매어주는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의 향기가 주위를 둘러싸는 것 같은 느낌에 차가운 말 같은 건 내뱉을 수가 없었다.

정다름은 다시 새 면봉을 꺼내 약을 묻히더니 그를 쳐다봤다.

“대표님, 입안에도 약을 발라야 합니다.”

그러자 유준서는 이번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빤히 그녀를 쳐다보며 입을 벌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유준서는 190cm의 큰 키를 가졌지만 하이힐을 신은 정다름의 키는 겨우 173cm밖에 되지 않았다. 키 차이 때문에 그녀는 유준서 입안의 상처가 보이지 않았다.

유준서가 알아서 허리를 숙여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정다름은 다시 그를 쳐다봤다.

고열로 흐릿한 그의 눈빛에는 허리를 숙여줄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아 그녀는 난감했다.

순전히 그녀를 괴롭히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회사에서는 포스 넘치는 대표님이지만, 이럴 때 보면 악랄한 악당이나 다름없었다.

정다름은 또다시 면봉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유준서는 바로 불쾌한 표정을 드러냈다.

“그만 좀 해! 약 하나 바르는데 계속 그렇게 뚱한 표정 할 거야?”

정다름은 설명했다.

“키 때문에 손이 안 닿습니다. 허리를 숙이는 게 불편하시다면 의자를 가져오겠습니다.”

“의자 위에 서서 발라주려고? 대단하네.”

고열로 제정신이 아니었던 유준서는 의자를 가지고 오려는 그녀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비웃었다.

그러나 정다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의지를 가져와 유준서 뒤에 내려놓았다.

“대표님, 앉으세요.”

순간 유준서 입가의 미소가 굳어졌다. 또다시 뜻대로 되지 않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명령하지 마. 네가 의자 위에 올라가. 키도 작은 주제에 무슨 말이 많아?”

그의 말에 정다름은 바로 하이힐을 벗고 의자 위에 올라섰다.

그녀의 행동에 유준서는 더욱 화가 났다. 그때 순간 검은색 벨벳 의자 위의 하얗고 부드러운 두 발이 눈에 들어왔다. 뜨거웠던 눈동자는 점점 더 벌게지기 시작했다.

유준서는 고개를 저으며 시선을 돌리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고열로 이미 본인의 행동을 컨트롤할 수 없었던 그는 그녀의 발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부름 소리에도 그는 계속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있었다. 그녀는 하는 수 없이 장갑을 낀 손으로 조심스럽게 그의 얼굴을 들어 올렸다.

차가운 촉감이 편안한 듯 유준서는 눈을 감았다. 세상이 조용해지는 기분이었다.

눈을 뜨자 들어오는 그녀의 육감적인 몸매. 거칠었던 그의 숨결은 더욱 거칠어졌다.

그러나 정다름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듯 그의 턱을 잡고 조심스럽게 입안의 상처를 치료했다. 연조직 파괴가 심했기에 곳곳에 상처가 가득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애써 숨겼던 아픔이 배어 나올 것만 같았다.

그의 입에 가까이 다가가서 상처들을 자세히 살펴보던 그녀는 코끝이 시큰한 느낌이 눈물로 번지지 않게 입술을 꽉 오므렸다.

그녀가 막 도착했을 때 봤던 장면을 떠올려 보면 그것은 분명 양치질이 아니라 칫솔로 입안을 망가뜨리는 행동이었다.

화가 나기도 하고, 가슴이 아프기도 하고, 초조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머릿속에 수백 가지의 말이 떠올라도 그녀는 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그 마음을 꼭꼭 숨겨야만 했다.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냉담한 척해야 했다.

유준서에게는 심각한 여성 공포증이 있었다. 여자의 손길, 특히 입맞춤은 그를 미치게 만들고 심각하게는 자신을 괴롭게 만들었다.

약물과 심리 치료로 증상 많이 완화되긴 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 경계를 한 발짝도 넘지 못하고 있었다.

정다름은 7년의 기다림 끝에 겨우 그 사람 곁에 올 수 있었다. 그 사람의 곁에 있기 위해 짝사랑의 마음은 완전히 숨겨둘 것이다.

그녀는 유준서에게 7년을 짝사랑했다는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그때 그 건달들에게서 구해준 소녀가 본인이라는 사실은 더더욱 알리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때 희망을 품고 찾아갔을 때 그는 단호하게 말했었다.

“영원히 내 앞에 나타나지 마!”

정다름에게 있어서 그는 은인이자 구원자였고, 첫눈에 반한 후 영원히 끊을 수 없는 그리움이었다.

그녀는 고집스러운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한 사람을 고집스럽게 사랑했다.

그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 때문에 그녀는 이기적인 선택을 했고 몰래 그의 곁으로 왔으니 절대로 정체를 들켜서는 안 됐다.

하지만 계속 반복되는 악몽 속에 그녀는 울면서 그에게 물었다.

“왜 당신 앞에 나타나면 안 되나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매번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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