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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끝, 후회는 사절입니다
결혼 끝, 후회는 사절입니다
Author: 손발 땀쟁이

제1화

Author: 손발 땀쟁이
장례식장은 온기가 완전히 걷힌 듯 차가웠다.

빈소에는 정적만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고, 영정 사진 앞에는 하얀 국화들만 가득 놓여 있었다.

임주예는 아버지의 영정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무릎은 이미 감각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손끝은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손바닥 안을 파고들 정도로 손가락을 세게 쥐고 있었다.

'지금 손을 놓아 버리면, 나까지 그대로 무너질 것 같아.'

옆에서는 누군가가 작은 목소리로 수군거렸다.

"한 대표는 어디 갔대? 아직도 안 왔어?"

"아직도 몰라? 공항에 마중 나갔다더라. 기사도 떴잖아."

"공항? 누구 마중이 그렇게 중요해? 오늘이 한 대표 장인어른 장례식인데."

"오래전에 헤어진 첫사랑이라던데. 어릴 때 사랑은 원래 오래 남는 법이잖아."

"에이, 남자들 사생활 좀 있는 거야. 이해해야지."

"..."

한마디 한마디가 주예의 귓속을 짓밟았다.

지잉—

핸드폰이 한 번 떨렸고 화면이 켜졌다.

알림으로 뜬 헤드라인이 주예의 눈을 정통으로 찔렀다.

[해신그룹 후계자 한진후 대표, 심야 공항 포착... 백합 꽃다발 안고 의문의 여인과 밀착]

주예는 그 문구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손끝에 힘을 주며 화면을 눌렀다.

고화질 사진 속 한진후는 재단이 완벽한 검은색 트렌치코트를 입고 있었다.

한 손에는 커다란 백합 꽃다발을 들고 있었고, 다른 손은 옆에 선 여자의 어깨를 감싸고 있었다.

카메라 각도까지 교묘해서 얼핏 보면 키스하는 것처럼 보였다.

여자의 옆모습은 맑고 차분했다.

화장도 옅고 단정했다.

다만 눈가에 걸린 만족감만큼은 쉽게 지나칠 수 없었다.

주예는 눈을 한 번 감았다가 다시 떴다.

눈앞은 오히려 더 또렷해졌다.

강규나.

주예는 규나를 알고 있었다.

규나는 어릴 때부터 온갖 사람에게 떠받들리며 자랐고, 성격은 제멋대로에 사치스럽고 버릇없었다.

진후는 그런 규나에게 기꺼이 맞춰 주었고, 무슨 일이든 받아 주며 끝도 없이 감쌌다.

예전에 규나가 클럽 직원에게 음료를 조금 뒤집어쓴 적이 있었다.

규나는 그 자리에서 술잔을 깨 버렸고, 직원에게 깨진 유리 조각 위에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 가운데 감히 한마디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때도 진후만 나서서 수습했다.

주예는 그런 소문을 들었을 때만 해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주예와 진후가 혼인신고를 하던 날, 주예의 손을 잡고 직접 구청까지 데려간 건 진후였다.

그런데 지금 이 사진을 보고 있으니 우스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장례식장 입구 쪽이 갑자기 술렁였다.

검은색 마이바흐 한 대가 장례식장 앞에 미끄러지듯 멈춰 섰다.

차 문이 안에서 밀리듯 열렸고, 계단을 밟는 발소리가 이어졌다.

곧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규나가 앞에 서 있었다.

새하얀 원피스에 옅은 색 숄을 걸친 차림이었다.

안색은 창백했고, 눈가까지 붉게 젖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연약해 보였다.

진후는 바로 뒤를 따라 들어왔다.

검은색 정장은 흐트러짐이 없었고, 넥타이도 빈틈 하나 없이 정리돼 있었다.

키 큰 몸은 꼿꼿했고, 서 있기만 해도 서늘한 기운이 번졌다.

진후는 장례식장 안쪽으로 걸어왔다.

시선은 사람들 사이를 훑고 지나가다 주예의 아버지 임필수의 흑백 영정 사진 앞에서 잠깐 멈췄다.

남자가 입술을 천천히 다물었다.

"어르신, 편히 가세요."

진후가 허리를 숙이며 앞으로 나섰다.

목소리는 끝까지 흔들림이 없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늦게 왔습니다."

흠잡을 데 없는 태도였다.

그런데 주예는 그 한마디가 우스웠다.

아내의 아버지인데도 장인어른이나 아버님이 아니라 '어르신'이라고 불렀다.

주예는 굳이 진후의 말을 바로잡지 않았다.

입가에는 비웃음만 가볍게 걸렸다.

'이제 와서 남처럼 구는 거야?'

규나는 진후보다 반걸음 뒤에 선 채 입을 열었다.

"언니, 진후 오빠 탓하지 마세요. 다 제 잘못이에요... 제 비행기가 갑자기 지연돼서 한밤중에야 도착했거든요."

"오빠는 제가 혼자 오면 위험할까 봐 마중 나갔어요. 언니 아버님 일은 너무 갑작스럽게 들었고, 여기까지 달려오는 것도 그게 한계였어요..."

장례식장 안쪽의 수군거림이 더 짙어졌다.

"저분이 강규나 씨야? 기사에 나온..."

"붙어 있는 꼴 보니까, 보통 사이가 아닌데."

"장례식장까지 같이 들어오는 거면 대놓고 선 넘는 거지."

"..."

그제야 주예가 고개를 들었다.

무겁게 내려앉은 눈꺼풀을 들어 올려 두 사람을 한 번 훑었다.

"누구야?"

목소리는 차갑다 못해 오히려 평온했다.

규나가 잠깐 멈칫했다.

"언니, 저는 강규..."

"난 내 남편한테 물어보고 있어."

주예는 규나의 말을 잘라 내고 진후를 바라봤다.

진후가 미간을 좁혔다.

"여보, 이쪽은 규나야. 규나, 이쪽은 내 와이프고."

"여보?"

주예가 소리 없이 웃었다.

"규나?"

주예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릿해진 다리 때문에 당장이라도 휘청일 것 같았지만 끝내 버텨냈다.

"참 다정하게 부르네?"

주예는 시선을 규나 쪽으로 돌렸다.

"한 가지 더 말해 둘게. 내 아버지 장례식 소식을 강규나 씨한테 전한 적은 없을 것 같은데..."

규나의 낯이 하얗게 질렸다. 눈에는 금세 물기가 찼다.

"언니, 저는... 그냥 진후 오빠가 너무 걱정돼서 같이 오고 싶었어요. 언니 아버님께 조문이라도 드리고 싶었고요. 언니가 불편하시면 정말 바로 나갈게요..."

규나는 정말 나가겠다는 듯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발끝은 힘이 풀린 듯 휘청거렸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사람처럼 보였다.

진후가 반사적으로 규나를 붙잡았다.

"규나야, 조심해."

"나도 묻고 싶은 게 있어."

주예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주예는 진후를 똑바로 바라봤다.

눈빛은 고요했고, 그 고요함이 더 서늘했다.

"신규 항암제 임상시험 대상자 자리는... 마지막에 누구한테 갔어?"

진후의 표정이 굳었다.

규나도 멈췄고, 경직된 기운이 순식간에 몸을 타고 흘렀다.

빈소 구석에서 누군가가 작게 웅얼거렸다.

"신규 항암제? 얼마 전에 나온 그 약 말하는 거야?"

"임상시험 대상자 자리 엄청 빡빡하다던데. 하나 받으려면 진짜 줄을 잘 대야 한다더라."

"우리 사촌언니가 그러던데, 여기 있는 강규나 씨 친척 한 명이 명단에 올랐대. 한 대표 쪽에서 손을 썼다고."

"그래서 그랬구나..."

"..."

시선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주예의 손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당신은 그때 나한테 분명히 말했어.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끝까지 자리 하나라도 잡아 보겠다고. 난 그 말을 믿었어."

"나중에 병원에서 자리가 다 찼다고 연락했을 때도 난 그냥 당신이 할 수 있는 만큼 한 줄 알았어."

주예는 한 글자씩 잘라 말하듯 내뱉었다.

"마지막으로 물을게."

"내 아버지의 그 자리... 정말 강씨 집안 사람한테 준 거야?"

진후의 목젖이 천천히 움직였다.

얇은 입술은 굳게 다물린 채 한참 동안 열리지 않았다.

규나가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언니, 진후 오빠를 그렇게 몰아붙이지 마세요. 다 저 때문이에요. 제가 부탁했어요. 제 형부한테는 그게 마지막 희망이었어요. 그러니까 진후 오빠도..."

"난 강규나 씨한테 묻지 않았어."

주예가 다시 말을 끊었다.

시선이 정면으로 부딪쳤다.

오랜 침묵 끝에 진후가 겨우 한마디를 꺼냈다.

"당신 아버지는 그때 이미 말기였어. 임상을 쓰더라도 생존 가능성은 거의 없었어. 나는..."

"그래서 당신이 우리 아버지 대신 결정했어?"

주예가 진후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이어받았다.

주예는 웃었다.

그 웃음에는 온기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당신 눈에는 우리 아버지 목숨이 그렇게 계산 가능한 숫자였구나."

규나의 눈가가 붉어졌다.

"언니,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면 너무하시잖아요. 그때 진후 오빠도 어쩔 수 없었어요. 오빠도 정말 괴로워했어요. 오빠는 그냥..."

주예는 담담하게 규나를 바라봤다.

"강규나 씨는 여기 들어와서 내 남편 때문에 걱정이 된다는 말을 많이 했어. 우리 아버지 얘기는 한 번도 안 했고."

주예의 목소리는 잔잔했다.

그 잔잔함이 더 깊게 파고들었다.

"오늘 여기 온 이유가 정말 조문이야?"

"아니면 자기 자리 확인하러 온 거야?"

규나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진후가 미간을 더 깊게 찌푸렸다.

"여보, 지금 당신 감정이 너무 올라와 있어. 할 말 있으면 집에 가서 하자."

주예는 숨을 천천히 들이마셨다.

울분도, 분노도, 몸 안에서 뒤집히는 불편함도 전부 눌러 삼켰다.

'아버지 앞에서만큼은 무너지지 말자.'

주예는 다시 무릎을 꿇었다.

아버지의 영정 앞에 몸을 낮춘 채,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왔으면 국화 한 송이 놓고 가."

"그거면 되니까... 한 대표랑 강규나 씨는 돌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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