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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Author: 손발 땀쟁이
빈소에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아 있었다.

진후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지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조용히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흘렀다.

규나는 목이 막힌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눈가에 눈물만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억울함이 가득 밴 모습이었다.

결국 국화 한 송이를 집어 든 진후는 앞으로 나가 임필수의 영정 앞에 내려놓았다.

영정 앞에 선 진후의 등은 곧게 펴져 있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데도 가슴 한쪽이 묘하게 조여 들었다.

주예는 처음부터 끝까지 진후를 다시 쳐다보지 않았다.

헌화를 마친 진후는 몸을 돌렸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주예의 야윈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망설이듯 입을 열었다.

“나 남을게.”

“오빠...”

규나가 갑자기 이마를 짚으며 비틀거리더니 아주 작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나 머리가 너무 어지러워. 좀... 몸이 안 좋은 것 같아...”

진후의 소매를 붙든 손끝이 가늘게 떨렸다. 당장이라도 서 있지 못하고 주저앉을 것 같은 기색이었다.

진후의 손가락이 허공에서 멈췄다.

잠시 후, 진후는 결국 규나를 부축했다.

“일단 규나부터 호텔에 데려다 주고 올게. 빈소는...”

“안 그래도 돼.”

주예가 담담하게 말을 끊었다.

“우리 아빠 장례는 내가 알아서 하면 돼.”

주예는 눈을 내리깔고 영정을 향해 조용히 말했다.

“아빠, 이제 기다리지 않아도 돼.”

진후는 주예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규나를 부축하고는 빈소를 빠져나갔다.

사람들 사이에서 죽어 있던 수군거림이 다시 살아났다.

목소리들은 낮았지만, 구경거리를 만난 흥분이 선명하게 배어 있었다.

“한 대표도 너무 대놓고 저러네.”

“강규나 씨는 진짜 대단하네. 남의 남편 뺏는 것도 모자라서 여기까지 와? 사모님이 참 안됐다.”

“가만 보니까 강규나 씨랑 한 대표... 눈매가 좀 닮지 않았어...”

주예는 그 말들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전부 들었다.

그래도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손을 뻗어 아버지 영정 속 자애로운 얼굴을 몇 번이고 쓸어내렸다.

‘아빠, 이제 그 사람 안 믿어.’

누군가 다가와 잠깐이라도 쉬라고 권했지만, 주예는 고개를 저었다. 조문객이 하나둘 발길을 돌려 모두 흩어질 때까지, 주예는 마지막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빈소의 불은 절반쯤 꺼졌고, 드리운 그늘이 주예의 어깨 위로 무겁게 내려앉았다.

주예가 몸을 일으켰지만 다리는 제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주예는 핸드폰을 꺼내 절친 이성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성아야, 전에 네가 알던 이혼 전문 변호사 있지. 연락처 좀 줘.]

[진짜 생각 끝낸 거야?]

[응!]

‘이혼할 거야.’

...

장례가 다 끝났을 때는 밤 10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주예가 집에 돌아왔을 때, 커다란 저택에는 불빛 하나 켜져 있지 않았다.

텅 빈 껍데기처럼 고요했다.

주예는 현관 낮은 수납장 위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막 거실로 들어가려던 참에 핸드폰이 한 번 울렸다.

화면이 켜졌다.

[집에 도착했어? 며칠 동안 고생 많았어. 일찍 쉬어.]

주예는 화면을 한 번 내려다봤다.

곧바로 핸드폰을 무음으로 바꾸고, 화면을 아래로 뒤집어 둔 채 잠자리에 들었다.

이제 주예는 진후의 연락을 늘 기다릴 필요도 없었고, 남편이 돌아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릴 이유도 없었다.

다음 날 아침, 하늘은 잔뜩 흐려 있었다. 낮게 내려앉은 구름이 금방이라도 더 짙어질 듯했다.

주예는 화장대 앞에 서서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봤다.

핏기가 조금 빠진 낯이었다.

주예는 천천히 손을 들어 왼손 약지에 끼워져 있던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빼냈다.

그녀는 액세서리 상자를 꺼내 반지를 넣고 뚜껑을 닫았다. 서랍을 열고 가장 안쪽에 반지를 밀어 넣었다.

이 결혼에 더는 붙들고 있을 만한 미련이 없었다.

가장 평범한 회색 후드티와 청바지로 갈아입은 주예는, 머리를 낮게 묶은 뒤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다.

...

남구, 오래된 사무용 빌딩.

엘리베이터는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위아래로 움직였고, 버튼 위의 페인트는 숱하게 눌린 손끝에 거의 다 벗겨져 있었다.

복도 벽에는 온갖 전단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고, 공기에는 뭐라 딱 집어 말하기 어려운 오래된 냄새가 배어 있었다.

복도 끝에 걸린 ‘법무법인 JK’ 간판은 눈에 띄게 화려하진 않았지만, 묘하게 단정하고 깔끔했다.

직원은 주예를 작은 회의실로 안내했다.

테이블 위에는 막 우려 낸 차 한 주전자가 놓여 있었고, 옅은 수증기가 가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잠시 뒤 문이 열리며 서른 중반쯤 되어 보이는 여자가 들어왔다.

셔츠에 슬랙스 차림, 짧은 머리는 뒤로 단정하게 넘겨져 있었고 눈매는 시원시원했다.

“임주예 씨시죠? 저는 장연입니다.”

“안녕하세요, 변호사님.”

주예는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앉으세요.”

장연은 주예 맞은편 의자를 당겨 앉으며 말했다.

“우선 상황부터 간단히 파악해 볼게요.”

장연은 바로 노트를 펼쳤다.

주예는 깊게 숨을 들이켠 뒤 지난 삼 년을 대강 설명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이야기에 이르렀을 때는 목소리가 한 차례 거칠어지며 잠겼다.

주예는 잠시 동안 말을 멈춘 채 숨을 가다듬었고, 호흡이 조금 안정되자 다시 이어서 말했다.

장연은 급하게 끼어들지 않았다. 그저 빠르게 메모만 하고 있었다.

주예의 이야기가 끝난 뒤, 회의실 안에는 잠깐 정적이 흘렀다.

“이번 결혼에서 임주예 씨가 얻고 싶은 게 뭔가요?”

장연이 시선을 들었다.

주예는 속눈썹을 내리깔았다.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가 천천히 풀렸다.

“자유요.”

주예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한마디를 더 보탰다.

“한진후 씨 아내로서 제가 받아야 할 몫도 전부요.”

“집도, 현금도, 지분도 다 받아야겠어요.”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나서 주예는 스스로도 조금 놀랐다.

‘내가 원하는 걸 이렇게 담담하게 말할 수 있었구나.’

그런 주예를 바라보는 장연의 눈빛에 만족한 기색이 스쳤다.

“좋네요.”

장연은 노트를 몇 장 넘기며 말을 이었다.

“임주예 씨 상황이라면 방금 말씀하신 건 다 정당한 요구예요. 다만 문제가 두 가지 있습니다.”

장연은 말을 한 박자 끊었다.

“첫째, 두 분은 혼전계약서를 작성하셨죠. 그 계약서대로 가면 임주예 씨가 가져갈 수 있는 돈은 아주 적습니다.”

“둘째, 한진후 씨 자산이 얼마나 되는지 임주예 씨가 모릅니다.”

“해신그룹의 지분 구조는 굉장히 복잡해요. 한씨 가문이라고 해서 한진후 씨 한 사람만 있는 것도 아니고요. 저희는 한진후 씨 개인 명의 자산을 최대한 정확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게다가 한씨 가문은 매년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자기들 변호인단을 유지합니다.”

장연의 말은 직설적이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임주예 씨가 지금 아무 준비 없이 이혼을 꺼내면 마지막에는 아무것도 못 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주예는 손톱이 손바닥 안으로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래도 반박하지 않았다.

주예는 알고 있었다. 그게 현실이었다.

“그래서 제 조언은 우선 버티는 겁니다.”

장연은 펜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저희가 남편분 명의 재산을 어느 정도 파악하기 전까지는, 임주예 씨 진짜 의중을 드러내면 안 됩니다.”

“남편분에게 혼인 파탄의 책임이 있다면 저희에게 더 유리하고요.”

주예의 속눈썹이 가늘게 떨렸다.

장연은 그 미세한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그렇다면, 한진후 씨 쪽에 잘못이 있습니까?”

주예는 목이 바짝 조여 드는 걸 느꼈다.

“네.”

“겪으신 일을 들으니 마음이 무겁네요.”

장연은 명함 한 장을 밀어주었다.

“여기 저희 계좌입니다. 1차 선임료가 입금되면 바로 절차를 시작하겠습니다.”

“저희 쪽에서 한진후 씨 명의의 자산 조사 절차를 밟을 거고, 법원 절차에도 맞춰 진행할 겁니다.”

장연이 덧붙였다.

“시간이 짧게 끝나진 않을 거예요. 그 부분은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합니다.”

“그동안 한진후 씨 잘못을 입증할 자료를 확보하게 되면 바로 저한테 보내 주세요.”

주예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주예는 자리에서 일어나 장연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법무법인 밖으로 나왔을 때, 바깥에는 어느새 가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남구의 비는 늘 축축하고 오래된 냄새를 품고 있었다.

주예는 처마 아래 멈춰 서서 핸드폰을 꺼냈다. 오래전부터 한 번도 열어 보지 않았던 대화창을 눌렀다.

[스승님, 다시 스승님께 돌아가고 싶습니다.]

메시지를 보내고 나자 심장이 괜히 더 빠르게 뛰었다.

주예는 어린 시절부터 도해산에게 거의 20년을 배웠다.

도해산이 가장 아끼는 마지막 제자였다. 고서화를 보존 처리하는 솜씨는 이미 경지에 올라 있었고, 그림 실력 역시 누구나 놀랄 만큼 뛰어났다.

하지만 결혼한 뒤로는 진후를 챙기고 가정을 지키느라 바빴다.

스승인 도해산은 물론 동문들과도 점점 멀어졌다.

명절마다 안부를 묻는 연락만 남았을 뿐, 그 외에는 오가는 일이 없었다.

주예는 이번 메시지에도 답이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10분도 지나지 않아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

[아무 때나 와. 예전 주소 그대로다.]

아주 평범한 답이었다.

그런데도 주예는 처마 밑에 선 채 눈가가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주예는 잿빛 하늘을 올려다본 뒤, 습기를 머금은 공기를 천천히 들이마셨다.

[주예: 네, 내일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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