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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Author: 손발 땀쟁이
진후의 말투는 부드러웠다. 마치 어디까지나 주예를 배려하는 사람처럼 들렸다.

하지만 주예는 진후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 말들은 결국 진후 자신이 품고 있는 보잘것없는 죄책감을 덜어 내기 위한 것이었다.

진후는 주예가 늘 그랬듯 알아서 사양할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래.”

주예가 받아들였다.

“응? 뭐라고 했어?”

진후가 멈칫했다. 뜻밖이라는 기색이 스쳤다.

“좋다고. 이제 몸도 거의 다 나았고, 당신 친구들 만나는 것도 나쁘지 않지.”

주예는 가볍게 웃었다.

‘어차피 앞으로는 만날 일도 없을 테니까.’

...

다음 날 밤, 프라이빗 멤버십 라운지.

넓고 세련되게 꾸며진 메인 홀은 전 회원에게 열려 있었다.

조도는 낮았고, 벽에 줄지어 놓인 술병들이 금빛을 받아 잔잔하게 빛나고 있었다.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VVIP 전용 룸이 이어졌다.

주예는 진후의 옆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아주 단정한 베이지색 니트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화장도 옅었다.

룸 문이 열리자 안은 떠들썩한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한 대표 왔네? 어, 오늘은 웬일로 여자까지 데리고 왔어?”

주예를 알아본 사람이 있었다.

“이분이 사모님이세요?”

주예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녕하세요.”

“실물이 사진보다 훨씬 예쁘시네요.”

누군가 주예를 훑어보듯 바라봤다.

“근데 진짜 좀 닮긴 했네요.”

그 말이 끝나자 공기가 잠깐 가라앉았다.

진후가 미간을 가볍게 찌푸리면서 그 말을 한 사람을 바라봤다.

술이 조금 들어간 탓인지 뒤늦게 분위기를 알아차린 그 사람이 멋쩍게 웃었다.

“형수님 칭찬한 거예요. 진후 형, 보는 눈은 진짜 좋으시네요.”

다른 사람이 능청스럽게 말을 받았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규나가 떠나자마자 형이 갑자기 결혼했잖아. 그 뒤로 3년 내내 형수님을 얼마나 꽁꽁 숨겨 뒀는지, 다들 형이...”

말끝이 거기서 한번 끊기더니 의미심장한 웃음이 따라붙었다.

“됐어요, 여기까지만 할게.”

다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번에는 은근한 호기심과 구경거리를 만난 듯한 들뜸이 배어 있었다.

주예는 그 말들을 한 마디도 빠뜨리지 않고 다 들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잔을 집어 들었고, 주예는 직접 레몬 탄산수를 따라 부었다.

진후는 반박하지 않았지만, 그저 미간을 조금 찌푸린 채 한마디만 했다.

“술 좀 작작 마셔.”

“사모님은 무슨 일 하세요?”

한 여자 동석자가 턱을 살짝 치켜들었다.

“미술 전공하셨다고 들었는데요?”

“예전엔 그랬어요.”

주예는 무난하고 단정하게 대답했다.

“지금은 집에 있어요.”

“집에 있는 것도 힘들죠.”

누군가 중간에서 분위기를 눙쳤다.

“한 대표 같은 일 중독자 챙기려면 보통 피곤한 게 아니잖아요. 한 대표가 원래 곁에 있는 사람한테 기준이 높잖아요.”

“그건 맞죠.”

또 다른 사람이 웃었다.

“진후 형 예전부터 그랬잖아. 회사 아니면 규나였는데...”

“그러니까. 진짜 예상도 못 했어. 규나는 외국으로 가버리고, 진후 형은 갑자기 결혼하고.”

사람들은 농담처럼 말하면서도 일부러 주예 쪽을 바라봤다.

주예가 얼마나 불편해할지 보고 싶다는 듯한 시선이었다.

주예는 피하지 않고 그 시선들을 마주 봤다.

오히려 더 궁금하다는 듯, 더 듣고 싶다는 듯 자연스럽게 눈을 맞췄다.

옷소매로 가린 채 손끝으로 핸드폰의 녹음 기능을 조용히 켰다.

‘말할 거면 많이들 말해. 빠짐없이 다 남겨 줄 테니까.’

진후는 그런 주예의 반응을 보고 주예가 억지로 태연한 척한다고 여긴 듯했다.

뭔가 설명하려는 듯 입술이 움직였지만, 룸 문 쪽에서 들려온 소리에 막혔다.

“왔다, 왔어.”

누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주인공 왔네.”

규나가 문 앞에 서 있었다.

단색 팬츠 차림 위에 캐시미어 숄을 걸쳤고, 가볍게 웨이브가 들어간 머리는 느슨하게 틀어 올려져 있었다.

길고 흰 목선이 드러났다.

규나는 익숙한 몸짓으로 룸 안 사람들에게 하나하나 인사를 건넸다.

곧 누군가 규나의 팔을 잡아 끌면서 진후의 오른편에 앉게 했다.

주예는 진후의 왼편에 앉아 있었다.

누군가 한 바퀴 돌리자며 술을 권했다.

규나는 조금 난처한 듯 입을 열었다. 목소리에는 가볍게 당황한 기색이 배어 있었다.

“나 술 안 마셔.”

“규나야, 왜 이래. 예전엔 술 꽤 잘 마셨잖아?”

“외국 나간 뒤로는 안 마셨어. 이제는 진짜 못 마셔.”

상대가 한 번 더 권하려는 기색을 보이자, 진후가 곧장 규나 손에 들린 잔을 받아 갔다.

말투에는 여지를 두지 않는 단호함이 묻어 있었다.

“규나는 안 마셔. 내가 대신 마실게.”

“와, 한 대표 멋있네. 대신 막아 주는 거면 두 배로 마셔야지.”

누군가 장난스럽게 분위기를 띄웠다.

다른 사람이 힐끗 주예를 봤다.

“형수님도 한잔하시죠? 오늘 형수님 보기 쉽지 않았는데.”

주예는 대답하지 않았다.

진후가 아무렇지 않게 말을 붙였다.

“여보, 친구들하고 조금 마셔. 처음 보는 자리인데 분위기 깨면 안 되잖아.”

“형수님, 한잔!”

여기저기서 맞장구가 이어졌다.

주예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웃음은 예의 바르고 매끄러웠다.

“미안해요. 요즘 감기 기운이 있어서 집에서 나오기 전에 감기약 먹고 왔어요.”

주예는 잔을 가볍게 밀어 놓았다.

“먼저들 드세요.”

이어서 주예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움직임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저 먼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주예는 몸을 돌려 룸을 나왔다.

문이 닫히자 안쪽의 소란과 음악은 문 반대편으로 깔끔하게 밀려났다. 복도는 놀랄 만큼 조용했다.

주예는 세면대 앞에 섰다.

거울 속 주예의 얼굴에서는 웃음기가 사라져 있었다. 낯설 정도로 조용한 표정만 남아 있었다.

핸드폰이 한 번 울렸다.

장연에서 온 메시지였다.

[서류 정리는 거의 끝났습니다. 소송 절차는 언제든 시작할 수 있습니다.]

주예는 화면 위 문장을 한참 바라봤다. 손끝이 천천히 액정을 두드렸다.

‘그래. 이제 정말 끝낼 수 있어.’

다시 룸 앞에 도착했을 때, 안에서는 누군가 크게 외치고 있었다.

“뽀뽀해! 뽀뽀해!”

“한 대표, 뽀뽀 한 번 하지!”

주예는 문밖에 선 채 장연에게 답장을 보냈다.

[좋아요. 저도 준비됐어요.]

진후는 규나 대신 꽤 많은 술을 받아 마신 상태였다.

그 바람에 술기운이 올라와 있었고, 진후는 이마를 짚은 채 소파에 기대 있었다.

주예는 이미 챙길 건 다 챙겼다.

이제는 나갈 핑계만 만들면 됐다.

‘딱 좋아. 여기서 정리하면 돼.’

주예는 진후의 곁으로 다가갔다.

주예는 다정한 척 진후의 허리를 감아 안고, 걱정하는 말투를 흉내 냈다.

“여보, 이렇게 많이 마셔서 괜찮아? 우리 이따가 할머니 댁에도 가야 하잖아.”

주예는 곧 고개를 들어 룸 안 사람들에게 공손하게 웃어 보였다.

“저희는 먼저 일어날게요. 다들 편하게 즐기세요.”

곁에 있던 사람들은 그런 모습을 보자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굳이 붙잡고 늘어지는 사람은 없었다.

그 한마디로 진후에게 더 다가오려던 규나의 걸음도 자연스럽게 멈췄다.

진후는 흐릿한 정신 속에서 주예가 자신을 남편처럼 챙기는 말을 들었다.

결혼 초반을 빼면, 주예가 그렇게 불러 준 적은 오래전 일이었다.

진후는 잠깐 현실감이 흐려졌다.

주예가 이끄는 힘을 별 의심 없이 따라 일어섰고, 그렇게 주예에게 거의 반쯤 끌리다시피 룸 밖으로 나왔다.

주예는 진후를 차에 태우자마자 뒷좌석에 툭 밀어 넣었다.

운전기사가 앞에서 차를 몰았고, 주예와 진후는 뒷좌석 양끝에 따로 앉았다.

가운데에는 선 하나라도 그어 놓은 듯 거리가 벌어져 있었다.

운전기사가 창문을 조금 내렸다.

찬 바람이 안으로 스며들자 진후의 정신이 한결 또렷해졌다.

“오늘 좀 시끄러웠지.”

진후가 문득 입을 열었다.

“마음에 담아 두지 마.”

“뭘?”

주예가 옆으로 고개를 돌려 진후를 봤다.

“다들 술이 들어가서 말 조심을 못 했어.”

진후는 미간을 살짝 좁혔다.

“당신도 알잖아. 다들 어릴 때부터 같이 봐 온 사이라, 우리 일을 가지고 쉽게 농담해.”

“응.”

주예는 대충 맞장구를 쳤다.

“당신과 강규나 씨가 어릴 때부터 같이 컸고, 다들 두 사람이 걸어온 시간을 처음부터 봐 왔겠지.”

진후는 잠시 말이 없다가 조용히 말했다.

“근데 여보, 요즘 예전보다 더 말이 없어졌어.”

“원래 조용했어.”

주예는 담담하게 입가를 휘었다.

“당신이 제일 좋아했던 점이 그거 아니었어?”

진후는 말문이 막혔다.

한참 뒤, 진후가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 나랑 친한 지인들 말하는 방식이 원래 저래. 내가 예전에 당신을 저 사람들한테 안 데려갔던 것도, 당신이 불편해할까 봐 그랬어. 다음부턴 안 가도 돼.”

“괜찮아.”

주예가 말했다.

“어차피 앞으로는 그럴 필요도 없을 테니까.”

진후가 고개를 돌려 주예를 봤다.

“그게 무슨 뜻이야?”

주예는 웃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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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가 손을 뻗어 성아의 손목을 잡으려 했다.주예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으면서 곧장 남자를 밀어냈다.“내 친구 건드리지 마.”그 남자는 주예를 보더니 되레 더 눈을 빛냈다.“오, 자세히 보니까 이쪽이 더 끝내주네?”주예는 오늘 밤 와인빛 벨벳 롱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군더더기 없는 재단이 허리선을 매끈하게 살려줬다. 액세서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긴 머리만 느슨하게 올려 묶어 목선과 또렷한 쇄골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옆에 있던 다른 두 사람도 곧장 다가와 주예와 성아 주변을 에워쌌다. 두 사람의 뒤쪽 길을 막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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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해산은 눈을 들어 회의실을 한 바퀴 훑어봤다.“그 작품들, 아무거나 하나만 해도 값이 장난 아니야. 하나라도 망가뜨리면 너희는 물론이고 작업실까지 통째로 물어내도 감당 못 해.”말이 떨어지자 회의실 안은 곧바로 잠잠해졌다.“심씨 가문이라고요?”누군가 참지 못하고 숨을 삼키듯 조그맣게 말했다.“어느 심씨 가문인데요?” 종수가 물었다. “심명그룹 그 심씨 가문인가요?”“그럼 또 누가 있겠냐?” 도해산이 종수를 노려봤다. “진짜 큰손이야. 다들 행동 조심해.”주예는 고개를 숙인 채 자료를 넘겨봤다. 그 말이 아주 크

  • 결혼 끝, 후회는 사절입니다   제10화

    주예는 고개를 저었다.“아니.”목소리는 아주 낮았다. 마치 그 시절의 기억을 조용히 잘라 내기라도 하듯.성아는 주예를 흘끗 보더니, 불쑥 손을 들어 주예의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됐다. 옛날 얘긴 그만하고, 이제 새 얘기나 하자.”“새 얘기?”“내가 결심했어.” 성아는 핸들을 탁탁 두드리며 선언했다. “너한테 소개할 후보 스무 명은 내가 직접 골라 줄게.”“장난치지 마.”“걱정 마. 내가 붙여 줄 사람들은 다 엄선된 애들이야. 빵빵한 복근에 넓은 어깨, 다리도 길고 말도 잘 통하면서 정서적으로도 기대도 되는 그런

  • 결혼 끝, 후회는 사절입니다   제9화

    “어제 벌써 그 쓰레기한테 이혼하자고 했어? 한진후는 뭐래?”“내가 괜히 또 심술 부리는 줄 알더라.” 주예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느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생일 선물 때문에 이러는 거냐고도 물었어.”“와, 진짜 어이없다!”성아는 열이 뻗쳐서 액셀을 끝까지 밟아 버릴 뻔했다.“아내랑 상간녀도 구분 못 해? 결혼한 남자한테 첫사랑이 아무리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아도 그건 결국, 상.간.녀라고!”주예는 조용히 숨을 골랐다. 입술만 살짝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성아는 생각할수록 더 화가 치밀었다. 목소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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