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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Author: 손발 땀쟁이
밤, 7시 반.

주방 안에는 뜨거운 김이 가득 차 있었다.

도미찜은 찜기 위에서 김을 올리고 있었고, 갈비찜은 자작하게 졸아들고 있었으며, 두부는 반듯한 모양으로 가지런히 썰려 있었다.

냄비에 담긴 육수는 불 위에서 천천히 끓고 있었다.

진후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짙은 색 코트 안에는 날렵하게 재단한 수트를 받쳐 입고 있었고, 넥타이는 느슨하게 조금 풀어져 있었다.

주예가 저녁을 준비하고 있는 모습을 보자, 진후의 매서운 눈매가 조금 누그러졌다.

주예는 주방에서 분주히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기척이 들렸는데도 주예는 돌아보지 않았다. 하고 있던 일을 멈추지도 않았다.

예전의 주예라면 가장 먼저 현관으로 나가, 진후가 제시간에 돌아와 함께 저녁을 먹는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쁘게 웃었을 터였다.

이제 주예는 곁눈질조차 주지 않았다.

진후의 시선이 문가에 놓인 가방을 한 번 훑고 지나갔다. 진후가 먼저 말을 붙였다.

“오늘... 밖에 나갔다 왔어?”

“응.”

주예는 국 그릇을 식탁으로 옮겨 놓으며 담담하게 답했다.

“친구 좀 만나고 왔어. 겸사겸사 스승님께도 연락드렸고.”

“스승님?”

진후는 코트를 벗고 소맷단 단추를 풀었다.

“예전에 그림 하시던 그 스승님?”

“응.”

주예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 다시 스승님 곁에서 일하려고.”

진후의 손길이 멈췄다. 진후가 눈을 들어 주예를 봤다.

“갑자기 왜?”

“집에만 있으려니까 답답해서.”

주예는 가볍게 웃었다. 말투는 아주 담백했다.

진후는 듣고 있으면서도 어딘가 이상하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뭐가 걸리는지 정확히 짚을 수는 없었다.

“집에서 편하게 지내는 게 더 낫지 않아?”

진후가 미간을 조금 좁혔다.

“나는 와이프가 밖에 나가서 일하면 난 마음이 안 놓여. 누가 당신 함부로 대하면 어떡해?”

말은 다정했다. 주예를 세심하게 생각해 주는 사람처럼 들릴 만큼 부드러웠다.

하지만 주예는 그 말을 듣는 것만으로 속이 메스꺼워졌다.

겉으로는 걱정하는 척하는 저 말을 주예는 거의 매번 들어야 했다.

예전의 주예는 늘 진후 말을 따랐다. 하지만 끝에 가서 이득을 보는 쪽은 언제나 진후였다.

진후가 진짜 걱정했던 건 주예가 상처받을까 하는 게 아니었다.

그가 두려워한 건, 주예가 자기 손아귀를 벗어나는 일이었다.

‘또 저 말이네.’

“집에 있는 것도 좋지.”

주예는 굳이 그 말의 속셈을 들춰내지 않았다. 가볍게 웃기만 한 뒤 천천히 말을 이었다.

“강규나 씨... 강규나 씨 맞지? 당신 어젯밤 내내 돌봤잖아. 좀 괜찮아졌어?”

식탁 위로 짧은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제야 진후가 입을 열었다.

“당신이 그렇게 심심하면, 일단 스승님 계신 데 가서 며칠 지내다 와도 돼. 너무 무리하지는 마.”

진후는 젓가락을 들었다.

“밥 먹자.”

주예는 속으로 비웃었다.

‘역시.’

주예는 일부러 규나 이야기를 꺼냈다. 규나를 입에 올리면 진후는 빈소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 기억이 진후 마음 한쪽을 조금이라도 찌르면, 그 희미한 미안함을 발판 삼아 주예는 밖으로 나갈 허락을 받아 낼 수 있었다.

주예는 눈을 내리깐 채 국을 한 숟갈 떠먹었다. 진후는 더 쳐다보지 않았다.

진후도 뒤따라 국물을 한 입 머금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맛이 달라졌어?”

“레시피를 좀 바꿨어.”

주예는 아주 얌전하게 웃었다.

“별로 안 익숙한데.”

진후가 국 그릇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난 예전 맛이 더 좋았어.”

주예는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예전 국물은 주예가 몇 시간씩 직접 우려 냈다.

닭뼈며 돼지뼈며 사골까지 핏물을 빼고, 위로 뜨는 거품을 걷어 내고, 주예가 직접 배합한 향신료와 재료를 넣고 약한 불에서 오래 끓였다.

오늘 식탁에 오른 국은 여주댁이 끓인 것이었다.

양념도 시판 육수팩으로 맞춘 맛이었다.

맛이 같을 리 없었다.

진후는 고분고분한 주예의 태도를 보자 마음이 조금 풀어졌다.

진후의 머릿속에 빈소에서의 장면이 떠올랐다. 치료 기회를 왜 내줬냐고 주예가 몰아붙이던 때, 붉게 충혈된 주예의 눈이 이상할 만큼 선명했다.

진후는 늘 자기 선택이 옳다고 여겼다. 주예 아버지의 치료 기회를 다른 쪽에 내준 일도 잘못이라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때만큼은 진후도 조금 흔들렸다.

오늘처럼 조용하고 부드러운 주예가 진후에게는 가장 편했다.

진후는 입술을 한 번 다문 뒤, 코트 주머니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 주예 쪽으로 밀어 놓았다.

“이거 받아.”

“비서가 추천하더라. 요즘 많이들 한다고.”

주예가 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핑크빛 드롭 귀걸이 한 쌍이 들어 있었다. 모양은 단정하고 부드러웠다.

다만 주예는 귀를 뚫지 않았다.

진후는 그제야 떠올린 듯 말했다.

“당신... 귀 안 뚫었었나?”

“괜찮아.”

주예는 상자를 다시 닫으며 웃었다.

“뒀다가 나중에 귀찌로 바꾸면 되지.”

웃음은 얹혀 있었지만, 주예의 마음까지 닿아 있지는 않았다.

조금만 관심이 있었어도, 주예가 할 수 없는 장신구를 골라 오지는 않았을 터였다.

“마음에 안 들어?”

진후가 눈썹을 약간 모았다.

“예뻐.”

주예가 말했다.

“다만 당신이 나한테 뭘 사다 줄 줄은 몰랐어.”

그 말은 듣기에 따라 투정처럼도, 살갑게 구는 말처럼도 들렸다.

진후의 마음이 그 말 한마디에 느슨하게 풀렸다.

“다음엔...”

진후가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다음엔 더 좋은 걸로 사 줄게.”

저녁을 먹고 난 뒤에도 진후는 드물게 바로 서재로 들어가지 않았다.

“요즘 볼 만한 영화 뭐 있어?”

진후가 주예를 보며 물었다.

“하나 볼래?”

주예가 눈을 들었다. 움직이던 손끝도 잠깐 멈췄다.

진후는 늘 시간을 칼같이 계산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주예와 시간을 보내며 한가롭게 뭔가를 보는 일은 애초에 진후의 계획 안에 잘 들어 있지 않았다.

‘오늘 갑자기 이런 말을 꺼내는 건 죄책감 때문인가?’

‘고마운 척은 됐어. 필요 없어.’

생각은 그렇게 흘렀지만, 주예는 겉으로는 얌전히 받아들였다.

“그래.”

거실 조명이 어둡게 낮춰졌다.

주예가 차를 한 주전자 우려 들고 왔을 때, 진후는 이미 소파 한쪽에 앉아 있었다.

“여기 앉아.”

진후가 제 옆자리를 손으로 툭 쳤다.

“너무 멀면 잘 안 보이잖아.”

주예는 진후 옆에 앉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작은 쿠션 하나가 놓여 있었다.

TV 화면이 켜졌다.

남들이 봤다면 아마 다정한 부부라고 여겼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고개를 숙인 채 틈날 때마다 핸드폰을 꺼내 드는 진후의 손짓은... 진후의 마음이 다른 데 가 있다는 사실을 숨기지 못했다.

끊이지 않고 알림의 진동이 울렸다.

화면이 켜질 때마다 번지는 빛이 진후 옆얼굴을 스쳤다.

주예 역시 영화 화면을 보고 있었지만, 대사는 한 줄도 마음속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주예는 그 모습을 다 보고 있으면서 손끝으로 소파 팔걸이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때 진후의 핸드폰이 두 번 짧게 울렸다.

진후가 고개를 내려 화면을 확인했다. 액정 위에 떠오른 이름은 규나였다.

벨소리가 두어 번 울린 뒤, 진후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상대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진후의 미간이 서서히 일그러지면서 목소리도 나지막하게 가라앉았다.

“지금?”

주예의 시선은 TV에 고정되어 있었다. 화면 속 주인공이 팔을 휘저으며 격하게 외치고 있었지만, 주예의 귀에는 대사는 한 마디도 들어오지 않았다.

“바로 갈게.”

진후는 전화를 끊고 주예 쪽으로 돌아봤다.

“당신 먼저 보고 있어. 나 좀 늦을 것 같아.”

주예는 입가에 가볍게 미소 지으면서 자연스럽게 말을 받았다.

“그래. 운전 조심하고.”

주예는 자연스럽게 진후의 코트와 차 키를 집어 들고 건넸다.

진후는 뜻밖이라는 듯 눈을 들었다.

“왜?”

주예가 되묻듯 고개를 기울였다.

진후는 주예가 애써 웃고 있다고 생각했다.

주예가 아쉬워서 그러는 줄 알고 한마디 덧붙였다.

“규나가 교통사고를 당했대. 거기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 몰라서 내가 가봐야 해. 걱정하지 마. 정리되면 바로 돌아올게.”

“뭐 해, 얼른 가.”

문이 닫히자 TV에서는 마침 고백 장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효과음만 유난히 시끄럽게 거실을 채웠다.

주예는 리모컨을 집어 들고 바로 TV를 껐다.

거실은 단숨에 어둠에 잠겼다.

서재에 들어선 주예는 플로어 스탠드부터 켰다. 불빛이 방 한쪽만 조용히 비췄다.

주예는 책상 앞에 앉아 어렵지 않게 진후의 컴퓨터를 열었다.

결혼한 뒤 주예는 먼저 진후 서재에 들어오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진후는 주예를 조금도 경계하지 않았다. 비밀번호조차 늘 쓰던 그 번호였다.

마우스 커서가 폴더들을 빠르게 훑고 지나갔다.

사진 폴더 하나를 열자, 안에는 규나 사진이 빼곡하게 들어 있었다.

웃고 있는 규나는 눈이 부실 만큼 화사했고, 예전의 진후는 아직 젊은 패기가 가득했는데도 시선만은 줄곧 규나를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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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모님?”여주댁이 문을 살짝 열고 안을 들여다봤다.“아직 안 주무셨어요?”“응...”주예는 대답하려 했지만 목이 잔뜩 잠겨 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겨우 숨 섞인 소리만 흘러나왔다.여주댁은 급히 안으로 들어와 주예의 이마에 손을 대 보더니 화들짝 놀랐다.“어머, 이게 무슨 일이에요? 열이 너무 심하잖아요.”“비를 좀 맞아서 그런가 봐요.”주예는 힘겹게 웃어 보였다.“약은 먹었어요.”“이렇게 있으면 안 되죠.”여주댁 목소리에 다급함이 묻어났다.“이대로 열이 더 오르면 큰일 나요.”여주댁은 곧장 핸드폰을

  • 결혼 끝, 후회는 사절입니다   제4화

    주예는 가슴이 답답하게 막혀 왔다.그리고 숨을 깊게 들이쉰 뒤, 진후의 SNS 계정을 다시 열었다.화면이 넘어가자 진후가 기록해 둔 일정들이 줄줄이 떠올랐다.[규나 건강검진][규나 항공권, 호텔 예약][규나 생일][규나...]주예와 관련된 기록은 맨 아래까지 내려가서야 하나 나왔다. 3년 전, 혼인신고를 한 날이었다.주예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손끝이 조금씩 식어 갔다.‘정말 끝까지 이랬네.’주예는 올라오려는 감정을 꾹 눌러 삼킨 채 다른 폴더를 열고 나서, 진후가 최근에 사들인 부동산, 주식 거래 내역

  • 결혼 끝, 후회는 사절입니다   제2화

    빈소에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아 있었다.진후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지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조용히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흘렀다.규나는 목이 막힌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눈가에 눈물만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억울함이 가득 밴 모습이었다.결국 국화 한 송이를 집어 든 진후는 앞으로 나가 임필수의 영정 앞에 내려놓았다.영정 앞에 선 진후의 등은 곧게 펴져 있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데도 가슴 한쪽이 묘하게 조여 들었다.주예는 처음부터 끝까지 진후를 다

  • 결혼 끝, 후회는 사절입니다   제1화

    장례식장은 온기가 완전히 걷힌 듯 차가웠다.빈소에는 정적만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고, 영정 사진 앞에는 하얀 국화들만 가득 놓여 있었다.임주예는 아버지의 영정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무릎은 이미 감각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손끝은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손바닥 안을 파고들 정도로 손가락을 세게 쥐고 있었다.'지금 손을 놓아 버리면, 나까지 그대로 무너질 것 같아.'옆에서는 누군가가 작은 목소리로 수군거렸다."한 대표는 어디 갔대? 아직도 안 왔어?""아직도 몰라? 공항에 마중 나갔다더라. 기사도 떴잖아.""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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