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CIAR SESIÓN그 말을 내뱉는 순간, 이상하게도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왜 태하가 싫었는지. 왜 서윤이 이혼을 이야기할 때마다 화가 났는지. 왜 그녀가 자신 없이도 괜찮다고 말했을 때 견딜 수 없었는지. 왜 그녀가 자신에게 더는 기대하지 않겠다고 했을 때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는지. 왜 오늘 밤, 그녀가 다른 남자의 손을 잡는 모습을 보고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는지.전부 하나의 이유였다. 그는 한서윤을 좋아했다. 생각보다 훨씬 오래전부터.그녀가 자신의 아내였기 때문에가 아니었다. 계약으로 묶여 있었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저 한서윤이었기 때문에.그녀가 자신을 바라보며 웃는 것이 좋았고, 자신의 옆에 있는 것이 익숙했고, 그녀가 자신을 챙겨 주는 일이 당연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그 모든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기 때문이었다.도윤은 천천히 의자에 등을 기댔다.웃음이 나왔다. 어이가 없었다.자신은 그렇게 똑똑한 척을 해 왔다. 사람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언제나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의 감정 하나 제대로 알지 못했다.“…하.”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강도윤, 너 진짜….”말이 끝나지 않았다.한심했다. 너무 늦었다.그녀는 이미 자신에게 여러 번 기회를 주었다. 자신이 조금만 솔직했더라면. 조금만 더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더라면. 그녀가 떠나겠다고 했을 때, 자존심을 내려놓고 붙잡았더라면. 지금쯤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한서윤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선택했다.도윤은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서윤의 대화창을 열었다. 메시지를 입력했다.[서윤아.]그는 한참 동안 그 두 글자를 바라봤다. 결혼한 뒤로 단 한 번도 문자로 그렇게 부른 적이 없었다. 늘 한서윤 씨라고 불렀다. 거리감을 유지하는 게 편했으니까.그런데 지금은 그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그는 다음 문장을 입력했다.[나 할 말이 있어.]그리고 멈췄다.무슨 말을 할 건데? 좋아한다고? 이혼하
오후 8시 23분.강도윤은 식당 앞에 서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서 있을 이유가 전혀 없는 곳이었다.이 근처에 거래처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중요한 미팅이 예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애초에 이 식당은 오늘 처음 와 보는 곳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차에서 내렸다.왜냐고? ...글쎄.그는 잠시 식당 간판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휴대전화를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8시 23분. 한서윤이 윤태하와 저녁을 먹기로 했다는 시간은 오후 7시였다.식사가 끝났을 수도 있었다. 두 사람이 이미 자리를 떠났을 가능성도 있었다.그렇다면 돌아가면 됐다. 아무것도 확인하지 않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도윤은 몸을 돌렸다.그때였다.유리창 너머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한서윤이었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는 윤태하가 앉아 있었다.도윤의 걸음이 멈췄다.두 사람은 식사를 마친 듯했다. 테이블 위에는 디저트 접시와 빈 잔이 놓여 있었다.태하가 무언가를 말하자 서윤이 웃었다.도윤은 그 웃음을 알고 있었다. 아니,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자신과 식사할 때도 서윤은 종종 웃었다. 그런데 그 웃음은 대체로 조심스러웠다. 자신의 반응을 살피는 듯했고,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내려는 듯했다.반면 지금 서윤의 웃음에는 그런 망설임이 없었다. 태하가 농담을 하면 편하게 웃었고, 태하가 무언가를 물으면 자연스럽게 대답했다.굳이 상대의 눈치를 살피지 않아도 되는 사람의 얼굴이었다.도윤은 유리창 너머의 두 사람을 바라봤다.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한서윤이 저런 얼굴도 할 줄 알았구나.그 사실이 이상하게 낯설었다. 그리고 마음에 들지 않았다.“…하.”도윤은 짧게 숨을 내쉬었다.'고작 저런 걸 보려고 여기까지 온 건가?'자신이 지금 얼마나 한심한 짓을 하고 있는지 깨달은 순간이었다.그는 돌아가려고 했다. 정말로 그럴 생각이었다.그런데 안쪽에서 태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윤도 따라 일어났다. 두 사람은 식당 밖으로 나왔다.도윤은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건물 기둥 뒤에
서윤의 걸음이 멈췄다.천천히 돌아본 그녀의 얼굴에는 놀라움보다 피로감이 먼저 떠올랐다.“…뭐라고요?”도윤은 이미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 없었다.“그 사람과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 보라는 뜻입니다.”“왜요?”“그 사람을 아직 충분히 알지 못하지 않습니까.”“오래 알고 지냈어요.”“친구로 알고 지낸 것과 연인으로 지내는 건 다릅니다.”“그건 제가 알아서 판단할 일이에요.”“한서윤 씨.”“왜요? 태하가 싫어요?”도윤은 입을 다물었다. 서윤은 한 걸음 다가왔다.“태하가 싫은 이유가 뭐예요?”“…….”“내가 태하를 좋아하는 게 싫어요?”도윤의 턱이 단단하게 굳었다.서윤은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아니면 태하가 나를 좋아하는 게 싫어요?”“…그만하십시오.”“왜요? 대답하기 곤란해요?”“한서윤 씨.”“그럼 내가 대신 대답해 줄까요?”서윤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당신은 내가 누구를 좋아하는지에는 관심 없어요. 다만 내가 당신 말고 다른 사람을 선택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싫은 거겠죠.”도윤은 반박하려 했다.그러나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당신은 내가 당신을 좋아할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서윤의 눈가가 붉어졌다.“내가 당신을 기다릴 때도, 당신이 조금만 다정하게 굴면 혼자 기대할 때도, 당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그런데 이제 와서 내가 다른 사람을 선택하니까 왜 이러세요?”도윤은 그녀를 바라봤다. 서윤은 눈물을 삼켰다.“나 당신 좋아했어요.”그 말에 도윤의 얼굴이 굳었다.“당신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거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 때문에 계속 기다렸어요.”서윤은 잠시 숨을 골랐다.“그런데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아요.”그녀는 도윤을 향해 희미하게 웃었다.“태하는 내가 왜 웃는지 궁금해해요. 내가 힘든 날이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고, 내가 말하기 싫으면 기다려 줘요. 그리고 자기가 나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아요.”도윤의 손이 굳게 말렸다.“나는 그런 사람이랑
오전 9시 12분.한서윤은 법률 대리인에게서 도착한 메시지를 확인했다.[오늘 오전 중으로 양측 서명이 완료되면 후속 절차를 바로 진행할 수 있습니다.]서윤은 짧게 답장을 보냈다.[네. 예정대로 진행해 주세요.]그리고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이제 정말 끝이었다. 강도윤과의 결혼도, 그와 관련된 감정도. 더는 그의 표정을 살피며 혼자 의미를 해석할 필요가 없었다. 무심한 말 한마디에 하루 종일 마음이 흔들릴 일도 없었다.어쩌면 처음부터 이렇게 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좋아하는 마음을 인정받고 싶어서 자꾸만 이유를 찾았던 시간들.그가 자신을 붙잡아 주기를 바라면서도, 막상 붙잡히면 그 이유를 물어볼 용기가 없었던 순간들.이제는 전부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서윤은 가방을 챙겼다. 그때였다.똑똑.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비서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이사님, 손님이 오셨습니다.”“누구신데요?”“강도윤 대표님입니다.”서윤의 손이 멈췄다.'…또? 어제 식당에서 난리를 친 것으로도 모자라서 오늘은 회사까지 찾아왔다고?'서윤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돌려보내세요.”“그게….”비서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대표님께서 직접 만나고 가셔야겠다고 하셔서요.”“그럼 만나고 가시라고 하세요. 저는 바빠서요.”“이미 그렇게 말씀드렸는데….”비서가 말을 흐렸다. 서윤은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그런데요?”“대표님께서 이혼 서류를 가지고 오셨다고 합니다.”서윤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뭐라고요?”“직접 서명하시겠다고 하십니다.”잠시 침묵.서윤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터뜨렸다.“아, 정말.”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제가 가서 서류 받고 바로 끝낼게요.”“네, 이사님.”서윤은 집무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복도 끝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강도윤을 발견했다.검은 정장. 단정하게 정리된 머리.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얼굴.다만 손에 들린 서류철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도윤은 서윤을 발견하자마자 곧장 다가왔다.“한서윤 씨
도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게 아니라면.”태하가 서윤의 손을 조금 더 단단히 잡았다.“이제 서윤이가 자기 인생을 살도록 보내 주세요.”그 말에 도윤의 이성이 끊어질 뻔했다.보내 달라고? 누가 누구를 보내 줘?한서윤은 물건이 아니었다. 자신이 허락하고 말고 할 대상도 아니었다.그런데 왜.왜 저 남자가 저렇게 쉽게 그녀를 이해하는 척하는 거지? 왜 서윤은 저 남자의 옆에서 조금도 불안해 보이지 않는 거지?도윤은 입술을 꾹 눌렀다. 그리고 마침내 말했다.“…웃기지 마십시오.”태하의 눈빛이 서늘해졌다.“무엇이 말입니까?”“마치 당신이 한서윤 씨를 가장 잘 아는 사람처럼 말하는 게 우습다는 겁니다.”“제가 가장 잘 안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그런데도 기다리겠다고요?”“네.”“한서윤 씨가 당신을 선택하지 않아도?”“그렇습니다.”도윤이 비웃었다.“그런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겁니까?”태하는 잠시 도윤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대답했다.“적어도 저는 제가 서윤이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니까요.”정적.도윤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태하는 마지막으로 덧붙였다.“그리고 서윤이에게 그 마음을 숨긴 적도 없습니다.”도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 말은 칼처럼 정확했다. 자신이 한서윤에게 한 번도 하지 못한 말. 자신이 끝까지 하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는 말. 자신이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모든 것이 달라질 것 같아서, 필사적으로 외면해 온 말.그것을 윤태하는 너무도 쉽게 말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도윤은 손을 꽉 쥐었다.“…좋습니다.”그는 서윤을 바라봤다.“한서윤 씨. 나와 이야기합시다.”서윤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싫어요.”“잠깐이면 됩니다.”“싫다고 했어요.”“한서윤 씨.”“강도윤 씨.”서윤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당신이 지금 여기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아요?”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당신은 나한테 이혼하자고 했어요. 어젯밤 일은 없던 일로 하자고 했고, 내가 다른
한서윤은 거울 앞에서 귀걸이를 고쳐 걸었다.오늘은 윤태하의 부모님을 만나는 날이었다. 정식으로 사귀기로 한 뒤, 태하가 먼저 제안했다.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말라고. 당장 결혼을 이야기하려는 것도 아니고, 그저 자신이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서윤에게 보여 주고 싶다고.서윤은 그 말이 좋았다.무언가를 재촉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을 자기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려는 태도. 강도윤에게서는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종류의 다정함이었다.물론 두 사람은 아직 법적으로 부부였다.그래서 서윤은 태하에게 이혼 절차를 마무리할 때까지는 서로의 관계를 조심스럽게 이어 가자고 말했다.태하는 흔쾌히 동의했다.그리고 오늘. 그 첫걸음을 내딛기로 했다.“준비됐어?”문밖에서 태하가 물었다.“응. 지금 나가.”서윤은 마지막으로 거울을 확인했다. 오늘 입은 옷은 평소보다 조금 부드러운 분위기였다. 단정한 아이보리색 블라우스에 무릎 아래로 떨어지는 스커트. 태하가 좋아한다고 했던 색이었다.문을 열자 태하가 환하게 웃었다.“예쁘다.”“고마워.”“긴장돼?”“조금.”“괜찮아. 우리 부모님 좋은 분들이야.”태하는 잠시 망설이다가 손을 내밀었다.“그리고 불편하면 언제든 말해. 내가 바로 데리고 나올게.”서윤은 웃으며 그 손을 잡았다.“알았어.”그 순간 태하의 표정이 조금 달라졌다.“서윤아.”“응?”“오늘 나랑 같이 와 줘서 고마워.”서윤은 그를 바라봤다.“내가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니야?”“왜?”“이렇게 천천히 기다려 줬잖아.”태하는 대답 대신 그녀의 손을 조금 더 단단히 잡았다.“앞으로도 그럴 거야.”그 말에 서윤은 웃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함께 차에 올랐다.그때까지만 해도 서윤은 몰랐다. 오늘 저녁 식사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황당한 사건으로 기록될 거라는 사실을. 특히 그 원인이 될 남자가 지금 자기 사무실에서 넥타이를 고쳐 매고 있다는 사실은 더더욱.***오후 6시 17분.강도윤은 회의실에서 보고서를 읽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읽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