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수의 시점“내가 반드시 그 자식 대가 치르게 할 거야!”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신호철의 고함이 나를 맞이했다. 병실 713호가 어디인지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그 사람 이미 체포됐어, 아빠!”다솔은 천사처럼 웃으며 말했다.“솔직히 그 여자 건물에서 뛰어내릴 때부터 알아봤다니까! 역시 피는 못 속이지!”순간 정적이 흘렀다.“여보, 검사 결과 나왔을 거야.”신호철이 갑자기 말을 꺼냈고, 나는 당황한 채 바로 옆 병실로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도청하려던 건 아니지만… 지금 나는 죄책감에 휩싸였다.잠시 뒤 그녀가 내 병실 앞을 지나갔고, 나는 문을 닫고 713호와 맞닿은 벽에 귀를 댔다. 신호철이 일부러 엄마를 내보낸 건 분명했다. 대체 아내도 못 듣게 할 얘기가 뭐길래?“그 여자 관련된 SNS 다 정리해.”신호철은 거의 속삭이듯 낮은 목소리였지만, 나는 벽 너머에서 간신히 들을 수 있었다. 그의 이상한 지시가 궁금해져 나는 휴대폰을 꺼내 다솔의 페이스북을 찾아 들어갔다. 귀는 여전히 벽에 대고, 손가락은 그녀의 수많은 게시글을 작년까지 거슬러 내려갔다.“아빠? 무슨 말이야?”다솔은 어리둥절한 듯 웃었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 자연스러워서 진심으로 놀란 것처럼 들렸다.그리고 마침내 나는 다솔의 게시글을 찾았다.[밝은 미래가 있었을지도 모를 소녀가 세상을 떠났다니 안타깝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간단하고 무난한 문장이었다.그런데 댓글에는 훨씬 더 잔인한 문장이 있었다.그리고 다솔의 친구 여러 명이 ‘좋아요’를 누른 그것은…[그 미친년이 MD 결혼식에 먹칠하고 죽었다고? 저런 썩은 알을 낳은 미친 부모는 또 뭔데? 지옥에서 썩어라!!!]문지용은 어린 시절부터 활동을 시작해, 정장 입은 사진으로 ‘보스 베이비’라 불리기도 했었다. 다솔이 오랜 팬이라는 게 이제야 이해가 됐다. 함안명이 문지용의 이름을 언급하자마자 다솔이 ‘함소지’를 떠올린 이유도.댓글을 단 계정은 “블랙 달리아”.다솔의 비밀 계정이다. 나는 가족용 컴퓨
신지후의 시점정기준은 차에 함께 타고 주차장을 빠져나갈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내가 너무 많은 이야기를 털어놨던 걸까?누군가가 나에게 조금이라도 호의를 보이면, 그 사람에게 온갖 아픔을 쏟아붓고 싶은 마음이 드는 법이다. 다솔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됐다.하지만 그는 내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설아의 사람이었고, 나는 지금 내 진짜 가족을 찾으러 가는 중이었다. 마음 편히 울 수 있는 가족을.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나는 다솔이 부러웠다. 정말 많이.그녀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아무런 걱정 없이 변덕스러울 수 있었는데, 나는 최선을 다해도 그녀와 같은 가족과 친구들에게 따뜻한 시선조차 받지 못했다.내 부모도, 다솔을 사랑하는 신 씨 가족처럼 나를 사랑해줄까?끔찍한 병을 안고 태어났더라도, 내 진짜 부모 곁에서 태어났다면… 나를 안전하게 지켜주기 위해 노예를 집으로 사들이는 극단적인 선택까지 했을까?그들이 그렇게까지 잔혹하길 바라지는 않지만, 다솔이 받은 모든 것을 나도 갖고 싶었다.나도 내가 행복한지 슬픈지 신경 써주는 가족을 원했다. 그저, 다음번에 자기 딸이 피가 필요할 때 내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고급 차를 사주는 그런 아빠가 아니라.“나…” 정기준이 무언가 말하려다, 주차장을 올라 지상으로 향하는 굽은 길에서 말을 잇지 못했다.“네 기분이 어떤지 이해해. 아니, 정확히는 얼마나 끔찍했을지 상상조차 안 돼. 그러니까… 넌 네가 원한다면 이 도시를 떠나도 돼. 내가 도와줄게. 나도 함께 가고 싶긴 한데…쳇.”그는 혀를 차며 머리를 쓸어올렸다. 불안과 분노가 뒤섞인 얼굴이었다.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정기준과 한설아! 정말 서로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알아? 설아도 사실을 알았을 때 똑같이 말했었어요!”나는 윙크하며 장난스럽게 그를 놀렸다.“당신들 둘, 정말 닮았네. 아… 정말 내가 대신 설아한테 고백해주고 싶을 정도야!”하지만 정기준은 내 농담에 웃지 못한 채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그들은 정
신지수의 시점이 세상에 이보다 더 다정한 사람이 있을까? 나는 정기준을 보며 이런 좋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설아가 은근히 부러웠다.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기준 씨, 나는 당신의 친구가 되고 싶어요.” 나는 머리를 저으며 가슴 한 켠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래서 당신에게 큰 짐이 되고 싶지 않아요. 이해하죠?”정기준이 나를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가 이해한다는 걸 나는 안다. 그와의 대화는 참 편안했다.“너 하나 지키는 데 내가 그렇게 힘들다고 말하는 건 내겐 모욕이야.” 정기준이 반쯤 농담처럼 말했다. “네가 멀리 떠나면 제대로 지킬 수 없지만, 여기선 네가 원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네 피 한 방울도 얻지 못할 거라고 약속할 수 있어.”정말 다정하고 관대한 말이었지만, 나는 정기준에게 그런 무거운 짐을 지울 수 없었다. 이미 그의 도움을 너무 많이 받는 것만으로도 미안한데, 오해까지 끼얹는 건 옳지 않았다.“이제 나는 나 스스로 돌볼 수 있어요.” 정기준이 엘리베이터 문을 막으려 손을 내밀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분명히 일부러 그랬다! 나는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내 문도 스스로 열 수 있다는 뜻이지!”“맞아.” 정기준도 나와 함께 웃으며 말했다. “넌 할 수 있다는 걸 알지만, 그게 내가 여자에게 해줄 수 없다는 뜻은 아니잖아?”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는 신 씨 가족을 충분히 잘 모른다. 나는 그를 이 진흙탕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우리는 그의 차로 걸어갔고, 그는 결의에 찬 눈빛으로 문을 열어주었다.“지난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줄게. 그 후엔 네가 더 좋은 결정을 할 수 있을 거야.” 나는 문을 잡고 들어가지 않았다. 그가 좋은 해결책을 내주길 바랐다. 나는 분명 그런 해답이 없었으니까. “다솔이 병원에 간 마지막 이유는 초대받지 않고 내 생일 파티에 왔기 때문이야.”“그건 지후와 결혼한 지 3년째 되는 해였죠. 작은 파티였고, 지후, 설아, 몇몇 친구들만 있었어요. 나는 다솔에게 가라고 했고,
신지수의 시점“북해?” 정기준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주차장으로 걸어가면서 물었다. “거기 진짜 부모님이 계신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 여기서 꽤 먼데.”의사는 정기준의 지인이었고, 그의 약속 덕분에 우리는 내 비밀에 대해 안심하며 진료실을 나왔다. 지후에게 숨기는 건 미안하지만, 내가 아기를 그들로부터 확실히 지킬 수 있을 때까지는 내 ‘가족’ 누구에게도 아기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정기준은 내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는 단 세 명 중, 세 번째 사람이었다.내 상황과 신호철이 내가 ‘집’에서 도망치려던 이전 시도들을 어떻게 늘 찾아냈는지 간단히 설명했다.처음은 지후가 숲에서 나를 찾았을 때였다. 그때 나는 내 첫 ‘친구’를 만들었고, 그 친구는 “집이 그렇게 싫으면 도망칠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나를 숲 속으로 안내했고, 몇 번 방향을 틀더니 날 혼자 두고 떠났다. 나는 어떻게 나가야 할지, 어떻게 집으로 돌아가야 할지도 몰랐다.나중에 알게 된 건, 내 ‘첫 친구’는 다솔의 ‘첫 동료’였던 괴롭힘 가해자 김이선이었다. 그들은 내가 ‘친구를 사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게 얼마나 바보 같은지 함께 웃어 보였다.그 후 여러 번 도망치려 했지만, 돈도 권력도 없이는 도망은 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내 계획은 고등학교 졸업까지 기다리는 것이었다. 법적으로 신 씨 가족이 내 양부모이고, 시스템이 그들 편이기 때문이었다. 졸업 후에는 신호철이 나를 찾는 데 도움을 주지 않을 테고, 그때는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공부를 열심히 했고, 그건 괴짜라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부양할 준비를 하기 위해서였다.내 계획은 지후의 청혼과 함께 무너졌다.“어쨌든 요점은, 그들이 나를 부르면 가야 한다는 거예요.” 나는 휴대폰을 잠시 흔들며 정기준에게 말했다. “특히 도망치려면 그들에게 내 계획을 의심받을 여지를 줘선 안 돼요.”신호철은 나를 잡으려고 훈련된 군대를 가지고 있었고, 강력한 사위 지후도 있었다. 하지만 정기준이
신지수의 시점지후와 부딪힌 건 정말 놀라웠다. 특히 이번에는 다솔이 정말 다친 상태라 그가 다솔 곁을 떠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했지만, 결국 그는 쓸모없는 질문을 하기로 마음을 바꾼 것 같았다.나는 어떻게 답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가 진지한 대답을 기대한 것 같지도 않았다.그는 언제 나를 잃었을까? 다솔의 병원을 그의 유일한 집으로 만든 지난 몇 달? 그가 사랑하는 공주와 나눈 진정한 사랑의 키스 때문일까? 수년간의 무관심, 조롱과 차가운 콧방귀 때문일까? 아니면 결혼 첫날 밤, 다솔과 함께 보냈던 그날 때문일까?아니, 어쩌면 그가 나를 구한 그 다음 날, 구했던 작은 용 대신 공주를 선택했을 때 이미 나를 잃은 것일지도 모른다.결국 나는 이 결혼이 훨씬 전부터 이미 죽었다는 걸 알았던 것 같다. 내가 혼자 우리 침대에 앉아 남편이 다른 여자와 함께 있는 걸 상상하며 보냈던 길고 외로운 밤들 중 하나에서 말이다. 나는 그저 조금만 더 버티면 그가 돌아올 거라 생각했다.사랑이 가장 아픈 게 아니다, 희망이 그렇다.‘한 번이라도 나에게 빠졌었던 그는 다시 그러리라’는 희미한 희망이 바로 지난 수년간 가시밭길을 걷게 만든 동력이었다. 아플 때마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이혼 변호사를 찾아볼 때마다 나를 붙잡은 건 희망이었다.희망이 얼마나 치명적인 덫인지.희망을 버리니 아픔도 멈췄다. 나는 더 이상 그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이제 그는 나를 다치게 할 수 없다.“지수?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쉬어야지.” 정기준은 내가 진료실에서 나오는 걸 보고 놀랬다. “나는… 근데, 너 괜찮아? 귀신이라도 본 거야?”끔찍했던 과거의 귀신.“괜찮아, 입원할 필요 없어요.”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저 아기가 괜찮은지 확인하고 싶었어요. 의사가 누구한테 말했대? 할머니? 지후? 아까 그 사람 봤어요.”“진정해, 네 비밀은 안전해.” 정기준이 내 어깨를 잡고 단단한 손길로 나를 달랬다.
윤지후의 시점“지수.” 나는 그녀의 팔을 조심스럽게 잡았지만 그녀가 재빨리 팔을 뿌리쳤다. “나…”그녀는 나를 노려보며 기다렸다.그녀의 차가운 눈빛을 보는 게 너무 아팠다.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지만, 그런 고통 앞에 나는 무력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한때 내게 가장 밝은 미소를 지어주던 그 소녀는 찾을 수 없었다.그녀는 내가 다솔을 병원에 남겨두고 여기 온 걸 알고 있다. 내가 전에 지수를 위해 그렇게 했을 때는 그녀의 얼굴 전체가 환하게 빛났었고, 아름다운 눈이 초승달처럼 굽어지며 내 팔에 살짝 기대어 여우처럼 웃곤 했다.하지만 지금은 나를 전혀 쳐다보지 않는다.“나...” 나는 입을 열었지만, 하고 싶었던 말들이 갑자기 사라졌다. “나...” 아무 말도 찾을 수 없었다.지수는 눈을 굴리고는 떠나려 한다.“원하는 대로 해줄게!” 나는 그녀가 떠나려는 걸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을 내뱉었다. “이혼 서류에 서명할게... 그게 당신이 정말 원하는 거라면.”지수는 멈춰서 돌아봤고, 내 빈 손을 쳐다보다가 다시 나를 봤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모든 행동에서 ‘초조함’이 묻어났다.“나 그냥...” 나는 희망이 사라지면서 억지로 말을 꺼냈다. 만약 다솔에게서 그 짧은 키스를 받지 않았다면 이 모든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까? 내 완벽한 삶이 한 번의 키스 때문에, 아니면 며칠, 어쩌면 몇 달 동안 내가 더 바빴기 때문에 이렇게 뒤집혔다는 걸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질문 하나만 할게.” 내가 말하려던 찰나, 강렬한 기시감이 나를 사로잡았다.똑같은 일이 얼마 전에도 있었다! 단지 그때는 지수가 내 입장이었고, 이혼 서류를 쥔 채 조심스럽게 애원하던 때였다.내가 뭘 했었지? 그녀의 봉투를 빼앗으며 손에 종이 베임을 남기면서도, 다솔을 위로하러 가기 바빠서 그저 또 다른 그녀의 ‘장난’이라 생각했었다.그녀가 여기 온 이유는 정기준을 만나기 위해서일까?그때 지수가 말을 더듬었던 건 시간을 끌려던 게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