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MELDEN윤소영은 애써 태연한 척했다.“우민 오라버니께서 잘못 보신 것 아닐까요? 이곳의 여인들은 모두 체격이 건장한 이들로 골랐거든요. 겉모습만 보면 사내처럼 보일 수도 있답니다.”송우민은 여전히 의심스러운 표정이었다.하지만 윤소영이 하는 말이라면 송우민은 언제나 아무 의심 없이 믿었다.윤소영은 자신이 직접 나를 안으로 데려다주겠다며, 남자 주인공들에게는 먼저 문밖에서 기다리라고 했다.암자 안으로 들어온 뒤, 윤소영은 종들을 모두 물렸다.그리고 내 턱을 거칠게 움켜쥐었다.두 사람의 얼굴이 거의 맞닿을 정도로 가까워졌다.“살려 달라고 하려는 거지? 그런 생각은 버려.” “너는 저 사람들이 네가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고 생각해? 다 알고 있어. 그런데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잖아!”나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그리고 손을 뻗어 윤소영의 입술을 건드렸다.순간 윤소영의 입술이 자줏빛으로 변하더니 검게 물들었다.나는 처음부터 남자 주인공들에게 살려 달라고 호소한 것이 아니었다.윤소영을 자극하려고 했던 것이다.내 손에는 미리 독충의 즙을 발라 두었고, 조금 전 윤소영의 소매에 묻어 있던 협죽도 꽃가루를 손에 묻혔다.두 가지 독이 합쳐지면 닿는 즉시 목숨을 앗아갈 수 있었다.게다가 내 몸속에 남아 있던 안혼단의 약효가 그 독성을 중화해 주었다.잘못됐다는 걸 비로소 알아차린 윤소영은, 윤진우에게 구원을 청하려고 밖으로 도망치려고 했다.그러나 나는 뒤에서 윤소영의 다리를 필사적으로 붙잡았다.방 안에서 큰 소리가 났지만, 문밖의 종들은 윤소영이 또 예전처럼 나를 훈계하는 줄로만 알고 감히 안을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았다.윤소영은 결국 내 눈앞에서 숨을 거두었다.나는 손에 묻은 독충의 즙과 꽃가루를 핥아서 삼켰다.그로 인해 잠시 동안 조금이나마 기력을 되찾을 수 있었다.밖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은 너무 오랫동안 소식이 없자, 뭔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했다.나는 육성민이 암자 안으로 뛰어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다.육성민이 한 사내를 붙잡
나는 마치 죽은 물고기처럼 윤소영 앞에 내팽개쳐졌다.나는 정말 묻고 싶었다.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나를 해치려 드는 것이냐고.그러나 윤소영이 나보다 먼저 입을 열었다.“잘 보렴. 이것이야말로 너 같은 조연에게 어울리는 최후야. 놀라지 마. 나도 공략자야. 게다가 이 세계의 주인공이지.” “그런데 네가 감히 조연 주제에 내 남자 주인공들을 빼앗으려고 들어? 대체 무슨 자격으로?”이제야 모든 것이 이해가 되었다.그렇다면 차라리 윤소영이 나를 미워하다 못해 죽여주기를 바랐다.나는 더는 이 게임을 하지 않을 것이다.임무도 더는 수행하지 않을 것이다.나는 그저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윤소영은 내 속마음을 알아챈 듯 비웃었다.“죽고 싶어? 그 소원은 이루지 못할 거야. 공략에 실패한 뒤에도 1년 동안 이 세계에 계속 머무르면, 원래 세계의 네 몸은 다시는 깨어나지 못해.” “그리고 나는 네 공략 수치를 가져가서 무사히 임무를 완수할 수 있지. 나를 탓하지 마. 이 임무 세계의 남자 주인공들은 너무 공략하기 어려우니까.” “겉으로는 모두 나를 죽도록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어째서인지 끝내 절대적인 호감도에는 도달하지 않더라고.” “전부 네가 있기 때문이야. 네 데이터를 빼앗기만 하면, 나는 반드시 성공할 수 있어.”나는 암자에서 날마다 온갖 모욕과 학대를 당했다.옷으로 가린 곳마다 어디 하나 멀쩡한 곳이 없었다.하지만 나는 폐인이나 다름없는 몸이라서, 스스로 목숨을 끊을 힘조차 없었다.나는 속으로 끊임없이 시스템에게 도와 달라고 애원했다. 하지만 시스템은 규칙상 오직 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만 이 세계를 떠날 수 있으며, 자신도 어쩔 수 없다고 했다.나는 시스템에게 물었다.“윤소영 역시 공략자잖아요. 같은 공략자인 나를 해친다면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는 거예요?”시스템은 한참 침묵하다가 모호하게 대답했다.“공략자들이 임무 세계에 머무는 동안에는, 공략 대상만 해치지 않는다면 서로 죽이는 것도 허용됩니다.” “만약 임무 실패
나는 아주 오랫동안 잠든 듯했다. 꿈속에서는 부모님이 눈물을 글썽이며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시연아, 무서워하지 마. 네 병은 반드시 나을 거야. 우리가 집을 팔아서라도 꼭 치료할게.”그래서 시스템이 나를 찾아왔을 때, 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임무 세계로 들어가기로 했다.시스템은 원래 세계에 있는 나의 시간을 멈춰 두었다.내가 떠나던 때도 마침 추석이라서, 어머니는 내가 좋아하는 송편을 사서 돌아오겠다고 했다.꿈속에서 나는 임무를 완수했지만, 집에 돌아가 보니 부모님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나는 집안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졌지만, 끝내 부모님을 찾을 수 없었다.“아빠! 엄마!”나는 울부짖으며 잠에서 깨어났다.눈앞에는 나와 많이 닮은 윤진우의 얼굴이 있었다.윤진우는 내가 깨어난 것을 보고도 드물게 비웃거나 빈정대지 않고,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아버지와 어머니를 꿈에서 본 것이냐? 부모님의 유언을 잊었느냐? 우리한테 잘 살아가라고 하셨다.” “네가 죽으려 든다면, 부모님께서 어찌 편히 눈을 감으시겠느냐? 내 말을 듣거라. 이제부터 얌전히 있거라.”나는 분노에 차 소리쳤다.“당신은 제 오라버니가 아닙니다! 저는 외동딸입니다. 오라버니 따위는 없습니다!”“여러분이 사는 이곳은 그저 하나의 임무 세계일 뿐입니다. 저는 이곳을 떠날 것입니다. 내 세계로 돌아갈 거라고요!”윤진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윤진우는 씁쓸하게 웃었다.“과연 소영이 말한 것이 옳았구나. 네가 정말로 미쳐버렸구나.”나는 이곳의 모든 것이 지긋지긋했다.상체를 일으킨 나는 그대로 머리를 침상에 부딪쳤다.“죽고 싶어! 여기서 떠나고 싶다고!”윤진우는 억지로 내 입에 환약 하나를 밀어 넣었다.순간 온몸에 힘이 빠졌다.온몸이 완전히 마비되면서 더는 입조차 열지 못하게 되었다.“몸과 머리카락과 살갗은 모두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네가 이토록 미쳐 날뛰는 것을 더는 지켜볼 수가 없구나.”윤진우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이 안혼단을 먹으면 오감은 그대로
모두가 순간 멈칫했다.윤소영의 몸이 한순간 휘청거렸다.그러나 아무도 그 이상을 눈치채지 못하자, 윤소영은 곧 태연한 얼굴로 돌아와서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저는 그런 적 없어요.”이주현은 가슴 아픈 얼굴로 윤소영을 품에 끌어안고, 윤소영의 뺨에 맺힌 희미한 눈물을 닦아주었다.“그만 울어라. 우리는 네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다.”윤진우 역시 윤소영의 곁을 지키며, 윤소영을 웃게 하려고 애썼다.“울지 마라. 이따가 오라버니가 함께 달구경을 해 주마. 우리 동생은 선녀보다도 훨씬 아름답단다.”윤소영은 사람들의 다정한 위로 속에서 마침내 눈물을 거두고 웃음을 되찾았다.그리고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그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득의와 도발이 어려 있었다.나는 헛웃음을 흘렸다.“보셨습니까? 제가 아무리 많은 말을 해도 여주인공의 눈물 몇 방울만 못합니다.”“그런데도 제가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까? 말씀을 드려 봤자 아무도 믿어 주지 않으실 텐데요.”그때 육성민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안의 뜻만큼은 단호했다.“나는 너를 믿는다. 내가 너를 데려가겠다. 이제부터는 나와 함께 살자.”모두가 놀라 눈을 크게 떴다.그러나 나는 육성민의 말에서 한 단어만을 붙잡았다.“데려간다고요? 중매도 없고 혼서도 없이 저를 데려간다니, 그게 대체 무슨 뜻이죠? 저를 정실로 맞겠다는 것입니까?”육성민의 말투에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육성민은 윤소영을 힐끗 바라보며, 마치 뭔가를 필사적으로 해명하려는 듯 말했다.“나는 평생 장가가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게다가 너는 이미 폐비의 몸이라 정실이 될 수도 없다.” “설마 지금까지도 그런 명분과 허울을 신경 쓰는 것이냐? 네가 의지할 곳만 생긴다면, 다시는 소영이의 행복을 방해하지 않을 것 아니냐?”나는 그 말을 듣고 어안이 벙벙했다.육성민이 나를 받아들이겠다는 말조차 윤소영을 위한 것이었다.그토록 지극한 사랑과 보호는, 내게 구역질만을 느끼게 할 뿐이었다.내가 거절의 말
이주현의 검은 아주 날카로웠다.비록 이주현이 나중에 힘을 거두긴 했으나, 검날은 이미 내 살을 두 치나 파고들었다.게다가 미리 특별한 단약을 삼킨 탓에, 내 몸이 느끼는 고통은 보통 사람보다 배는 더 극심했다.피가 천천히 흘러내렸고, 나는 온몸의 힘이 빠진 채 피 웅덩이 위로 쓰러졌다.그래도 다행이었다.조금만 더 참으면, 나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동궁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모두가 내 곁으로 몰려들었고, 누군가 자신의 옷자락으로 내 상처를 눌러 지혈하는 것이 느껴졌다.“눈을 감아선 안 된다!”몽롱한 의식 속에서, 나는 어딘가 익숙한 사람의 모습을 본 듯했다.그 사람은 온몸에 풍상을 고스란히 짊어진 얼굴로 내 이름을 목 놓아 부르고 있었다.“육성민.”그 세 글자가 입 밖으로 흘러나오는 순간, 수많은 어린 시절의 기억이 한꺼번에 떠올랐다.육씨 가문은 우리 가문과 대대로 친분이 있는 집안이었다.나와 윤진우가 처음 도성에 와서 자리를 잡았을 때도, 우리는 육씨 가문에서 머물렀다.그 시절의 육성민은 붉은 술이 달린 창을 들고 천하에 무서울 것이 없는 소년이었다.육성민은 나를 보자마자, 창을 휘둘러 내 머리끈을 단숨에 떨어뜨렸다.긴 머리가 풀어져서 어깨 위로 흘러내리자, 제멋대로 굴던 소년 장군은 처음으로 얼굴을 붉혔다.“이 아가씨는... 어쩐지 낯이 익은데.”나는 그 모습이 우스워 웃음이 나왔다.그리고 내 머리끈을 육성민의 붉은 창에 묶었다.“도련님께서는 여인의 머리카락을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된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하셨습니까? 일단 건드렸다면 평생 책임져야 하는 법이지요.”육성민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는 내가 육성민을 부끄럽게 만든 줄 알았다.그런데 잠시 후, 육성민이 아주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내가 책임지면 되지!”그날 이후 소꿉친구였던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했다.그 역시 나의 공략 대상 중 하나였다.내가 육성민과 혼인만 하면, 공략은 성공하는 것이
협죽도 잎에는 맹독이 들어 있었다.하지만 윤소영이 좋아하기만 하면, 윤진우는 기어코 방법을 찾아내어 윤씨 가문에서 사시사철 꽃을 피우게 했다.나는 누군가 실수로 그 독초를 먹을까 두려워 협죽도를 심는 것 자체를 반대했다.그러자 윤소영은 눈물을 글썽이며 밥도 먹지 않았다.“언니는 제가 싫은가 봐요. 그래서 오라버니께서 저를 위해 꽃을 심어 주시는 것도 싫으신 거죠.”윤진우는 윤소영을 자기 등 뒤로 감싸고는, 나를 향해 연신 냉소를 내뱉었다.“네가 소영이를 괴롭히려거든, 좀 더 그럴듯한 구실이라도 찾거라.” “이토록 쓴 걸 누가 잘못 먹는다고 그런단 말이냐? 입에 넣자마자 뱉어낼 수밖에 없을 게 분명한데.”그런데 설마, 지금은 이 독초가 나를 이곳에서 떠나게 해 줄 수단이 될 줄이야.지독한 쓴맛이 입안에서 빠르게 퍼져 나갔다.나는 구역질을 억지로 참으면서 이를 악물고 삼켰다.이번에야말로 정말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윤진우는 손에 쥐고 있던 토끼 등을 내팽개치고, 급히 달려와 내 등을 내리치기 시작했다.거친 손가락으로 내 입을 억지로 벌리고는, 손가락을 입안으로 넣고 사정없이 휘저었다.“당장 뱉어내! 목숨이 아깝지도 않으냐?”나는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몸의 반쪽이 이미 저려왔지만 악문 이를 풀지 않고 버티면서, 윤진우의 손가락을 깨물어서 피를 냈다.윤진우는 숨을 들이마시고는, 손바닥으로 내 뺨을 내리쳤다.“태자에게 버림받았다 해서 죽겠다고 발악을 하다니, 윤씨 가문 사람으로서의 기개는 조금도 남지 않은 것이냐?” “소영이와 태자야말로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다. 냉궁에서 4년이나 지냈으면 이제는 깨달을 때도 되지 않았느냐?”윤진우는 피가 흐르는 손가락 따위는 신경 쓰지도 않고, 종에게 구토를 유발하는 환약을 가져오게 했다.그리고 내 입에 억지로 약을 털어 놓았다.나는 속이 뒤집힐 만큼 토하고 또 토했다.온몸에 힘이 빠져 결국 진흙탕에 쓰러진 사람처럼 바닥에 널브러졌다.그러면서도 나는 참지 못하고 비웃음을 흘렸다.“사실을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