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열여덟 번째 이혼 요구마저 실패로 돌아간 뒤, 배강수는 더 이상 이혼 이야기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전까지만 해도 이혼 이야기만 나오면 서로 못 볼 꼴까지 보일 만큼 처절하게 싸우곤 했다. 나는 손목을 긋고 건물에서 뛰어내리기도 했고, 배강수와 여자 비서가 함께 침대에 있는 사진을 회사 로비에 도배하기도 했었다. 게다가 기자회견에서는 사람들 앞에서 송지아의 옷까지 벗겨 버렸다. 결국 송지아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까지 앓게 됐다. 배강수는 나를 미워해야 했다. 그런데 배강수는 다시는 이혼이라는 두 글자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집으로 돌아오고 휴대폰도 내게 맡겼다. 한 시간마다 한 번씩 행선지를 보고했고, 출장 중에도 24시간 내내 나와 영상통화를 연결해 두었다. 그런데도 내 마음은 줄곧 놓이지 않았다. 내가 매일 배강수에게 이혼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끈질기게 묻자, 진절머리가 났는지 남자가 되물었다. [내가 이 정도로 하는데도 부족해?] 사실은 너무 좋았다. 너무 좋아서 오히려 현실 같지 않았다. 그러다 내가 또 한 번 배강수를 미행하다 들키고 나서야, 남자는 지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사실을 털어놓았다. “10년 후의 내가 전화를 걸어왔어. 이혼하면 후회하게 될 거라고 하더라.”
Lihat lebih banyak나는 눈앞의 배강수를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예전에 재계에서 이름을 떨치며 거침없이 결단을 내리던 모습은 지금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지금의 배강수는 술이 이성을 집어삼켜 버린 술주정뱅이 같았다.나는 한 걸음 물러나면서 배강수와 거리를 벌렸다.“배 대표님,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가요?”“남아 줘, 응? 내 곁으로 돌아와! 내가 잘못했어. 정말 내가 잘못했어! 회사를 줄게. 뭐든 다 줄게. 그러니까 남아줘!”주변 사람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며 수군거렸다.그도 그럴 것이 그 사람들은 모두 배강수가 나중에 새로 채용한 사람들이었기에, 내가 예전에 대표의 사모님이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나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얼굴에 약간의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배 대표님, 비켜 주시죠. 지금 우리는 그저 협력 관계일 뿐이에요. 업무 이야기라면 몰라도 다른 이야기는 그만해 주세요.”“싫어! 안 비켜!”배강수는 고집스럽게 내 앞을 가로막았다.“청아야, 아직도 나한테 화가 난 거야? 나를 때려도 되고 욕해도 돼. 뭐든 다 괜찮으니까 다시는 나를 떠나지 마!”바로 그때 송지아도 달려왔다.배강수가 이렇게까지 비굴하게 굴고 있는데 나는 차갑기만 한 모습을 보자, 송지아는 곧바로 질투심에 휩싸였다.앞으로 달려온 송지아는 배강수의 팔짱을 끼고, 도발적인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너무한 거 아니에요? 대표님은 지금도 충분히 힘들어하시잖아요. 그런데도 어떻게 계속 그러는 거예요?”“그때는 본인이 먼저 떠났잖아요. 그런데 이제 와서 다시 돌아와서 대표님의 회사를 인수하겠다고요? 대체 무슨 속셈이에요?”나는 송지아를 쳐다보지도 않고 짜증스럽게 고개를 돌렸다.“다시 말할게요. 지금 나는 B그룹과 협력 관계일 뿐이에요. 두 사람의 집안일은 알아서 집에 가서 해결해요. 나까지 끌어들이지 말고요.”그런데 배강수는 송지아를 보자 구세주라도 만난 듯하면서도, 동시에 원수라도 만난 듯했다.배강수는 송지아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고 사납게 노려봤
캘리포니아를 떠난 뒤, 배강수는 줄곧 10년 후에서 걸려 온 그 전화를 떠올렸고 한 번 더 전화를 걸어보고 싶었다.그 전화가 진짜라면 10년 후의 자신에게 묻고 싶었다.대체 송지아가 고청아에게 불에 타 죽은 것이 후회할 만큼 괴로운 일인지, 아니면 고청아를 잃은 것이 자신을 죽을 만큼 괴롭게 만든 것인지 말이다.하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다.집으로 돌아왔을 때 고청아가 사라진 집이 눈에 들어왔다. 텅 빈 집은 차갑기만 했다.예전 고청아가 이곳에서 배강수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주던 모습을 떠올리기만 해도 그랬다.매일 아침이면 아침 식사를 준비해 주고, 늦은 밤까지 일하는 날이면 커피 한 잔을 타주었다.중요한 프로젝트를 따냈을 때는 함께 술을 마시며 축하했다.분명 이곳에는 두 사람의 추억이 가득했는데, 고청아가 곁에 있을 때는 늘 귀찮다고 생각했다.그리고 이제 고청아가 사라지고 나니, 가슴 한구석이 또 텅 비어 버렸다.배강수는 미친 듯이 일하면서 바쁜 일로 자신을 마비시키려고 했다.하지만 바쁘게 지낼수록 고청아의 모습은 오히려 머릿속에 더욱 선명하게 떠올랐다.그래서 술에 의존하기 시작했고 자주 만취할 때까지 술을 마셨다.텅 빈 방을 향해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고청아의 이름을 불렀다.송지아는 처음에는 배강수가 특별히 자신을 위해 꾸며준 요양원의 방에서 계속 남자를 기다렸다.그러다 나중에는 아예 배강수의 집으로 들어갔다.처음에는 고청아가 떠난 일 때문에 배강수가 송지아에게 화풀이하며 차갑게 대했다.하지만 술에 취하면 가끔 송지아를 고청아로 착각했다.송지아를 품에 안고 눈물을 쏟으며 후회하는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았다.여자는 속으로 이를 갈 정도로 분했지만, 어쨌든 배강수는 자신에게 인색하지 않았다.자신을 고청아로 착각할 때마다 또다시 미친 듯이 보상해 주었다.어느 순간, 송지아는 문득 예전의 고청아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누군가에게 하찮은 취급을 받는 게 이렇게 괴로운 일이라는 것을 몸소 느꼈으니까.하지만 배강수가
집에 돌아오자, 아빠는 배강수가 나를 찾아왔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아빠는 미간을 찌푸렸고 온화하던 눈에는 지금 분노가 가득 차 있었다.“그놈이 감히 너한테 손을 댔다고?”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까지 과장할 일은 아니에요. 그냥 이혼합의서의 사인 때문에 찾아온 것뿐이에요. 게다가 경호원이 다 알아서 쫓아냈잖아요.”“됐어요, 됐어요. 화내지 마요!”배강수가 나타난 건 내게 그저 작은 해프닝에 불과했다.다시는 배강수가 나를 찾지 못하게 하려고, 나는 아빠와 함께 아예 집도 다시 옮겼다.나는 여전히 햇살과 바닷가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마음속에 드리웠던 어둠을 조금씩 걷어냈다.시간이 흐르면서 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도 점차 회복됐다.엄마 이야기를 다시 꺼내도 이제는 담담하게 마주할 수 있었다.아빠의 몸 상태도 점점 좋아졌다. 몇 차례 재검사를 받은 뒤에도 암세포는 더 이상 재발하지 않았다.그런데 아빠는 더는 회사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 억지로 내게 자신의 모든 사업체를 넘겨받게 했다.처음에는 나도 겁이 조금 났지만, 아빠의 인내심 있는 가르침을 받으면서 나 역시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갔다.3년이 지나자 나는 더 이상 배강수만 바라보며 전전긍긍하던 여자가 아니었다.뛰어난 사업 감각과 과감한 결단력을 바탕으로 재계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먼저 아빠가 해외에서 운영하던 사업 일부를 넘겨받아서 빈틈없이 관리했고, 그다음에는 직접 투자회사를 설립했다.남다른 투자 감각 덕분에 투자한 여러 프로젝트가 모두 큰 성공을 거두었다.불과 몇 년 만에 고청아라는 이름은 국제 재계에서 주목받는 인물이 됐다.아빠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나를 이야기할 때마다 자랑스러워했다.“내 딸이에요! 내 뛰어난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받았거든요! 사업 감각 하나는 정말 타고났죠!”아빠는 나를 칭찬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내 의사 따위는 아랑곳하지도 않은 채 괜찮은 청년들을 한 명씩 소개해 주려고 했다.내가 지금은 오로지 사업에만 집중하
나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서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배강수가 단번에 내 팔을 붙잡더니 나를 품에 끌어안으려고 했다.나는 필사적으로 몸부림친 끝에 겨우 배강수에게서 벗어났다.“배강수! 우리 이미 이혼했잖아. 대체 왜 이러는 거야?”그러자 배강수는 이혼합의서를 꺼내 들더니 다시 내 눈앞에서 갈기갈기 찢어버렸다.“아직 공식적으로 절차가 끝나지 않았잖아. 그러니 이혼한 게 아니야.”미간을 찌푸린 채 배강수를 바라보는 내 얼굴에는 거부감이 역력했다.“그래 봤자 소용없어. 이제 3개월 안에 이혼 신고만 하면 끝이야. 네가 안 해도 돼. 내가 할 거니까.”“대체 왜 이러는 거야?”배강수가 한 걸음 다가와 다시 내 손을 잡으려 했지만, 나는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배강수의 손은 허공에 멈춰 있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힘없이 아래로 떨어졌다.“내가 온 건 너한테 묻고 싶어서야. 그 전화 정말 네가 건 거야?”나는 가볍게 웃었다.“내가 건 전화인지 아닌지가 그렇게 중요해?”“중요해!”배강수의 눈에는 초조함과 짜증이 가득했다.“난 반드시 알아야겠어!”나는 고개를 저었다.“내가 건 건 아니야. 그래도 걱정하지 마. 내가 송지아를 불태워 죽이는 일은 없을 테니까.”“왜?”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배강수를 바라봤다.“뭐가 왜야? 내가 송지아를 불태워 죽이길 바라는 거야?”배강수는 곧바로 눈길을 내리깔았다.눈동자에는 내가 보는 걸 원하지 않는 뭔가가 일렁이는 듯했다.“왜 거짓말을 했냐는 말이야.”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너희 둘을 위해서야.”배강수의 온몸이 크게 떨렸다.그것은 분명 배강수가 줄곧 바라던 일이었다.그런데 지금 내 입으로 직접 그 말을 하고 나니 가슴이 또다시 은근히 아파왔다.“원하는 대답은 이미 해줬어. 더 할 말이 없으면 나는 먼저 갈게.”“잠깐!”배강수가 다시 나를 불러 세웠다.“청아야.”목소리는 쉰 데다 알아채기 힘들 정도로 떨림까지 섞여 있었다.“정말 조금도 미련이 없어? 우리가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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