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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검과 함께 부서진 애정치

본명검과 함께 부서진 애정치

By:  고독한 여우Completed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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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군인 서연주는 내 시스템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시스템이 말했다. "호감도가 가득 찼습니다. 감정을 회수하고 현세로 돌아가시겠습니까?" 그 말을 들은 서연주의 낯빛은 서리 내린 듯 차갑게 식어 버렸다. 하지만 그는, 그때 내가 목이 메어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답한 것은 듣지 못했다. "싫어... 난 그 사람을 선택할 거야." 그래서 그는 혼례를 올리던 날 나를 버리고 떠났고, 만년설련을 살갗이 조금 벗겨진 소사매에게 먹였다. 그는 호감도만 떨어뜨려 내 임무를 실패하게 만들면 내가 영영 그의 곁을 떠날 수 없으리라 믿었다. 나를 붙잡아 두기 위해 그는 소사매가 내 영근을 망가뜨리는 것마저 묵인했다. 심지어 그녀가 천겁을 넘는 날에는 내 본명검마저 산산이 부서지도록 방치했다. 그녀는 부러진 내 검을 밟은 채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말했다. "사저, 사형께선 제가 아파하는 걸 차마 못 보십니다. 허니 사저 목숨으로 대신 막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서연주는 그녀를 달래기 위해 끝내 곤선쇄(捆仙鎖)로 내 몸을 인뢰주(引雷柱)에 단단히 묶어 버렸다. 하늘을 뒤덮은 검은 번개가 쉼 없이 내리꽂혔고, 나는 온몸이 피로 물든 채 주선대(誅仙台) 위에 쓰러졌다. 그때 시스템의 음성이 다시 울려 퍼졌다. "애정치가 곧 0이 됩니다. 이탈 통로를 다시 여시겠습니까?" 이번에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나는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나지막이 대답했다.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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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제1화

나는 피 웅덩이 속에 엎드려 있었다.

살갗이 쇠사슬에 달라붙어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심장을 파고드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서연주는 멀지 않은 곳에 서 있었다.

그의 눈매는 여전히 예전처럼 서늘했으나, 한때 고개를 숙여 내 미간에 입 맞추던 그 두 눈은 이제 나를 지나쳐 먼저 윤선화를 향했다.

윤선화는 그의 도포를 걸친 채 창백하고도 가엾은 표정으로 그의 뒤에 숨어 말했다.

"사형, 사저께서 아직도 저를 원망하시는 겁니까?"

그녀가 살며시 서연주의 소맷자락을 움켜쥐었다.

"저는 정말 그 검이 사저의 본명검인 줄 몰랐습니다. 천겁 번개를 맞을 때 너무 무서워서, 그저 한 번 막았을 뿐입니다."

서연주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 몸이 낫지 않았으니 말하지 말거라."

그는 무척이나 다정한 손길로 그녀의 도포를 여며 주었다.

지나간 수많은 추운 밤에도 그는 그렇게 내 옷깃을 여며 주곤 했었다.

나는 그를 바라보다 목구멍으로 치미는 피를 삼켰다.

"부군, 검이 부서졌습니다."

그의 미간이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살짝 찌푸려졌다.

"안다. 하지만 검은 부서지면 다시 벼리면 된다."

나는 문득 웃음을 터뜨렸다.

알고 보니 그에게 목숨이란 망가지면 다시 고칠 수 있는 기물에 불과했던 모양이다.

"알고 있었습니까?"

나는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손끝에는 본명검이 부서진 여파로 인해 토해 낸 피가 묻어 있었다.

"그렇다면 검이 부서지는 것은 목숨이 끊어지는 것과 같다는 것도 알겠군요. 저더러 저 아이 대신 벼락을 막으라 했을 때, 제가 아플 거란 생각은 해 본 적 있으십니까?"

윤선화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사저, 저는 사저께 저 대신 벼락을 막아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서연주의 낯빛이 한층 어두워졌다.

"이은령, 선화는 하마터면 번개 아래서 죽을 뻔했다. 고의가 아니었다."

또 그 말이었다.

그러니 내 검은 부서져도 되고, 내 피는 흘러도 되는 것이며, 내 목숨조차 그녀의 발밑에 깔아도 되는 것이었다.

머릿속에서 시스템의 음성이 울렸다.

"생명력이 20% 미만입니다."

"혼백이 손상되었습니다."

"이탈 통로 재가동을 준비합니다."

서연주도 들은 듯했다.

나는 소매 아래로 늘어뜨린 그의 손가락이 순간 굳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그는 금세 동요를 억누르고 아까보다 더욱 싸늘한 눈빛을 했다.

"또 이 소리군."

그는 내 앞으로 다가와 나를 내려다보았다.

"이은령, 너는 매번 이걸로 나를 겁박하는 것이냐?"

나는 얼어붙었다.

그는 내가 자신을 겁박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서연주는 허리를 굽혀 손을 뻗어 내 턱을 들어 올렸다.

그는 내 입가의 피를 가볍게 닦아 주었다. 그 손길에는 놀랍게도 지난날의 다정함이 조금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정녕 떠날 수 있었다면 진작 떠났겠지."

그를 바라보는 내 가슴은 무언가에 잔혹하게 도려내지는 듯했다.

"전 이걸로 당신을 겁박한 적 없습니다."

"그럼 어쩌길 바라는 것이냐?"

그의 목소리가 한없이 낮아졌다.

"내가 모든 이가 보는 앞에서 선화를 내버려두고 너부터 구하길 바라는 것이냐?"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의 물음이 가혹해서가 아니라, 예전의 서연주라면 당연히 나부터 구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찻잔 하나를 깨뜨렸을 뿐이어도 그는 내 손을 붙잡고 한참이나 살펴보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었는데도 그는 내가 총애를 다툰다고 여겼다.

서연주는 내 턱을 놓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표정을 가다듬었다.

"선화에게 사과하거라."

나는 눈을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천천히, 내 눈동자 속에 남아 있던 빛이 조금씩 차갑게 식어 갔다.

"제가 왜 사과해야 합니까?"

그러자 윤선화가 다급히 말했다.

"사형, 그럴 필요 없습니다. 사저께서 저렇게 다치셨는데..."

"저렇게 다쳤으니 더욱 분수를 알아야 한다."

서연주가 그녀의 말을 잘랐다.

그는 나를 바라보았다.

눈에는 실망과 지친 기색이 함께 어려 있었다.

"이은령, 예전의 너는 이렇지 않았다."

나는 문득 웃었다.

"예전의 전 어땠습니까?"

그는 대답 대신 손을 들었다.

그러자 집법당(執法堂) 제자가 앞으로 나와 내 손목뼈 곁에 영력 봉인 못 하나를 박아 넣었다.

내 얼굴은 삽시간에 새하얗게 질렸다.

저것이 몸에 박히면 영력이 봉해지고 상처도 스스로 아물지 못한다.

하지만 서연주는 그저 나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선화의 처소 밖에서 무릎을 꿇어라. 사과하는 즉시 풀어 주겠다."

나는 손으로 바닥을 짚고 일어나 앉으려 했다.

하지만 본명검이 부러진 여파가 아직 가시지 않은 탓에 오른손이 바닥에 닿는 순간, 영력 봉인 못이 뼈마디 사이를 사납게 파고들었다.

나는 고통에 몸을 떨었고, 힘을 잃은 손가락은 그대로 꺾여버렸다.

‘뚝’하는 소리와 함께 뼈가 갈라지자 서연주의 눈동자에 찰나의 동요가 스쳤다.

그가 손을 뻗어 나를 부축하려는 순간, 윤선화가 가볍게 기침하자 그의 손은 허공에서 멈추더니 다시 거두어졌다.

그제야 깨달았다.

그는 내가 아픈 것을 모르는 게 아니라, 그저 내가 아직 견딜 수 있다고 여길 뿐이었다.

시스템의 음성이 다시 울렸다.

"애정치가 하락합니다."

"현재 애정치 12."

그 말을 들은 서연주의 얼굴은 더욱 차가워졌다.

그는 마치 그 알림음에 자존심이라도 찔린 사람처럼 몸을 돌려 윤선화의 손을 잡았다.

"끌고 가라."

몇 걸음 옮긴 뒤 그가 다시 멈춰 섰다.

"목숨은 붙여 두어라."

"내일 혼례식이 열리기 전까지는 죽게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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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나는 피 웅덩이 속에 엎드려 있었다. 살갗이 쇠사슬에 달라붙어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심장을 파고드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서연주는 멀지 않은 곳에 서 있었다.그의 눈매는 여전히 예전처럼 서늘했으나, 한때 고개를 숙여 내 미간에 입 맞추던 그 두 눈은 이제 나를 지나쳐 먼저 윤선화를 향했다.윤선화는 그의 도포를 걸친 채 창백하고도 가엾은 표정으로 그의 뒤에 숨어 말했다."사형, 사저께서 아직도 저를 원망하시는 겁니까?"그녀가 살며시 서연주의 소맷자락을 움켜쥐었다."저는 정말 그 검이 사저의 본명검인 줄 몰랐습니다. 천겁 번개를 맞을 때 너무 무서워서, 그저 한 번 막았을 뿐입니다."서연주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 몸이 낫지 않았으니 말하지 말거라."그는 무척이나 다정한 손길로 그녀의 도포를 여며 주었다.지나간 수많은 추운 밤에도 그는 그렇게 내 옷깃을 여며 주곤 했었다.나는 그를 바라보다 목구멍으로 치미는 피를 삼켰다."부군, 검이 부서졌습니다."그의 미간이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살짝 찌푸려졌다."안다. 하지만 검은 부서지면 다시 벼리면 된다."나는 문득 웃음을 터뜨렸다.알고 보니 그에게 목숨이란 망가지면 다시 고칠 수 있는 기물에 불과했던 모양이다."알고 있었습니까?"나는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손끝에는 본명검이 부서진 여파로 인해 토해 낸 피가 묻어 있었다."그렇다면 검이 부서지는 것은 목숨이 끊어지는 것과 같다는 것도 알겠군요. 저더러 저 아이 대신 벼락을 막으라 했을 때, 제가 아플 거란 생각은 해 본 적 있으십니까?"윤선화의 눈시울이 붉어졌다."사저, 저는 사저께 저 대신 벼락을 막아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서연주의 낯빛이 한층 어두워졌다."이은령, 선화는 하마터면 번개 아래서 죽을 뻔했다. 고의가 아니었다."또 그 말이었다.그러니 내 검은 부서져도 되고, 내 피는 흘러도 되는 것이며, 내 목숨조차 그녀의 발밑에 깔아도 되는 것이었다.머릿속에서 시스템의 음성이 울렸다."생명력이 20%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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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윤선화의 처소 밖으로 끌려갔을 때, 하늘은 막 밝아오고 있었다.산속에는 가랑눈이 내리고 있었고, 돌계단 위에 내려앉은 눈은 얼마 지나지 않아 내 피에 물들어 옅은 붉은빛으로 변했다.문을 지키던 제자는 내가 제대로 무릎을 꿇지 못하는 것을 보고 검집으로 내 어깨를 밀었다."이 사저, 종주께서 똑바로 무릎 꿇으라 하셨습니다."나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예전이라면 그들은 나를 보고 공손히 "부인"이라 불렀다.하지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호칭은 이미 바뀌어 있었다.곧 처소의 문이 열리고, 윤선화가 새빨간 혼례복을 입은 채 걸어 나왔다.나는 그 소매 끝을 보고 잠시 멍하니 굳었다.연리지 연꽃의 꽃술 안에는 아주 작은 "서" 자가 수놓아져 있었는데 그것은 내가 직접 새긴 글자였다.혼례식을 앞두고 나는 일흘 밤을 꼬박 지새웠다.그때 서연주는 등불 아래 앉아 시큰거리는 내 손목을 주물러 주며 말했다. "은령아, 서두르지 마라. 앞으로 함께할 날은 아직 길다."그때 나는 그 말을 믿었다.하지만 훗날 알게 되었다.함께할 날이 길고 짧은 것은 천명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다는 것을.윤선화는 혼례복을 내려다보더니, 이제야 떠올랐다는 듯 다급히 소매로 가렸다."사저, 오해하지 마십시오."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사형께서 이 옷은 혼례식을 위해 준비한 것이라고 하시더군요. 그냥 두기엔 아까워서 한번 입어 본 것뿐이지, 사저의 것을 빼앗으려던 게 아닙니다."그녀는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하지만 손가락은 가볍게 소매의 연꽃무늬를 쓰다듬고 있었다.나는 그녀를 바라보다 문득 지쳐 버린 기분이 들었다."그냥 입거라."윤선화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내 목소리는 아주 낮았다."어차피 넌 빼앗은 물건도 당당히 입을 수 있는 아이이지 않느냐."그 말에 그녀는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곧 눈물이 굴러떨어졌다."사저께서는 왜 저를 그리 말씀하시는 겁니까?"회랑을 따라 걸어오던 배강풍은 곧장 얼굴을 굳혔다."이은령, 지금까지도 반성할 줄 모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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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별채에는 침수향이 은은히 피어오르고 있었는데, 그건 한때 내가 가장 좋아하던 향이었다.서연주는 사람을 시켜 나를 그곳에 가두면서 시녀에게 숯불까지 더 피워 두라고 일렀다."밤이면 추위를 많이 탄다."시녀는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나는 침상에 기대어 그 말을 듣다가 문득 웃음이 새어 나왔다.그는 아직도 내가 추위를 탄다는 것도, 침수향을 좋아한다는 것도 기억하고 있었다.하지만 내 영근이 이미 한 토막 사라져 더는 참회 절벽의 찬 바람을 막아 내지 못한다는 사실도, 내 본명검이 산산조각 나 혼백이 매 순간 가느다란 바늘에 찔리는 듯한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도 기억하지 못했다.시스템에서는 이따금 목소리가 흘러나왔다."혼백 안정도가 하락하고 있습니다.""이탈 통로 준비 중."문가에 서 있던 서연주의 몸이 그 말을 듣고 미세하게 굳었다.나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들으신 겁니까."그는 부정하지 않았다.그저 내 앞까지 걸어와 내려다볼 뿐이었다."이은령, 대체 나한테 얼마나 더 숨긴 거지?"나는 잠시 멍해졌다.이 순간에 와서도 그가 가장 먼저 묻는 것은 결국 그것이었다.나는 조용히 말했다."제가 뭘 숨겼다는 말입니까?"그는 차가운 기운이 깔린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넌 이 세상 사람이 아니지 않느냐."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서연주가 희미하게 웃었다.가벼운 웃음이었지만 싸늘하기 그지없었다."그럼 내게 접근한 것도, 나와 혼인한 것도, 무망종(無妄宗)에 남은 것도 애초에 무슨 임무 때문인 건가?"나는 말없이 그를 바라봤다.한참이 지나서야 나는 깨달았다.그는 시스템의 목소리를 들었지만,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던 절반만 들었던 것이다.내 사랑도 임무라고 믿었고, 내가 언제든 떠날 사람이라고 믿었으며, 한 번도 진심으로 그의 곁에 머문 적이 없다고 믿고 있었다.목구멍에 차가운 눈덩이가 걸린 듯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었다."아니라고 하면... 믿어 주실 건가요?"그는 대답하지 않았다.하지만 그 침묵은 믿지 않는다는 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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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참회 절벽에는 매서운 바람이 몰아쳤다.호위들은 나를 절벽가에 내던진 뒤 서연주의 두루마기를 내 어깨에 덮어 주었다.두루마기에는 아직도 그의 옅은 향기가 배어 있었다.예전에는 그 향을 참 좋아했다.그가 폐관 수련을 마치고 돌아오면 나는 늘 그의 소매를 끌어안고 그 향기를 맡곤 했다.서연주는 내가 주인만 따르는 어린 신수 같다고 말했었고, 그 말에 나는 토라진 적도 있었다.하지만 이제 와 돌이켜 보면 그 모든 기억은 안개 너머에 있는 것처럼 다시는 손에 닿지 않았다.멀리 무망종은 불빛으로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붉은 비단이 긴 계단을 따라 대전까지 이어졌고, 혼례를 알리는 종소리가 거듭 울려 퍼졌다.나는 끊어진 다리 곁에 앉아 품속에서 옥 장신구 하나를 꺼냈다.그것은 서연주가 내게 건네준 정표로 뒷면에는 '은령'이라는 두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그해 복사꽃이 가장 아름답게 피던 날, 그는 내 손목에 그 옥 장신구를 매어 주며 고고한 얼굴로 진지하게 말했다."언젠가 내가 널 저버리면, 이걸로 날 응징해도 좋다."그때 나는 웃으며 되물었다."종주께서도 누군가를 저버리시는 날이 있습니까?"그는 내 손을 감싸 쥔 채 나지막이 말했다."다른 사람은 모르겠다. 하지만 너만큼은 절대 아니다."세상에서 가장 믿어서는 안 되는 말은, 확신에 차서 내뱉은 약속이다.시스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애정치 0까지 카운트다운을 시작합니다.""10."나는 손바닥 위의 옥 장신구를 바라봤다."9."멀리서 예관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길시가 다가옵니다—""8."나는 서연주가 처음으로 나 대신 검을 막아 주던 날을 떠올렸다.흰옷은 피로 붉게 물들었지만 그는 끝까지 웃으며 말했다."걱정 말거라.""7."혼례식을 앞두고 내 손을 품에 감싸 녹여 주며, 앞으로는 절대 나를 혼자 추위에 떨게 두지 않겠다고 했던 말도 떠올렸다."6."또한 시스템이 내게 떠날 것이냐고 물었던 그날 밤도 떠올렸다.그때 그는 문밖에 서서 앞부분만 들었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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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서연주의 혼백 한구석이 문득 텅 비어 버렸다.마치 삼백 년 동안 꺼지지 않고 타오르던 등불 하나를 누군가 그의 의식 속에서 통째로 가져가 버린 듯, 온기조차 남지 않았다.대전을 가득 메운 하객들이 모두 놀라 술렁였다.윤선화는 그의 소매를 붙잡은 채 얼굴을 붉히며 떨어진 술잔을 주우려 했다."사형?"하지만 서연주는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았다.가슴을 움켜쥔 그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그곳에는 원래 아주 옅은 인연의 끈 하나가 있었다.혼례식을 치르기 전, 내가 비경 중에서 길을 잃을까 봐 그가 직접 내 혼백에 심어 준 한 줄기 기운이었다.나는 그것이 마치 밧줄 같다며 싫어했지만 그는 웃으며 말했다."언젠가 네가 사라져도, 이것만 있으면 난 반드시 널 찾아낼 수 있다."그 기운은 삼백 년 동안 내 곁을 지켰다.내가 다치면 뜨겁게 달아오르고, 내가 울면 불안하게 흔들렸으며, 내가 그의 곁에 다가가면 처마 밑 풍령처럼 조용히 흔들리며 맑은 소리를 냈다.그런데 바로 조금 전.그 기운이 끊어졌다.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서연주는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예관은 아직도 멍하니 서서 다른 술잔을 받쳐 들고 있었다.윤선화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형... 무슨 일이십니까?"서연주는 그녀를 거칠게 밀쳐 냈다.균형을 잃은 윤선화가 탁자 모서리에 부딪히자 봉관에 달린 구슬 장식이 요란하게 흔들렸다.대전 안이 술렁이기 시작하자 배강풍이 급히 앞으로 나섰다."종주님, 식이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서연주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쏘아봤다."비켜라."그 말에 배강풍은 그대로 얼어붙었다.서연주는 비틀거리다시피 대전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붉은 비단이 계단을 가득 덮고 있어, 너무 다급히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비단에 걸려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그 뒤로 윤선화가 눈물을 흘리며 쫓아왔다."사형, 혹시 사저가 또 무슨 짓을 한 겁니까? 사저께서는 매번 이렇게 중요한 때에 일을 저지르시지 않습니까?"서연주는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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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명등각(命燈閣)은 무망종 뒷산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삼백 년 동안 내 명등은 늘 서연주의 명등 곁에 놓여 있었다.그날, 그는 두 등불을 한곳에 나란히 두며 미소를 지었었다."앞으로 누가 등유를 채우든 두 등불 모두 함께 채워야 한다. 어느 한쪽만 아껴서는 안 된다."등불을 관리하는 제자는 지금까지도 그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그래서 서연주가 명등각으로 들이닥쳤을 때, 전각 안의 제자들은 모두 바닥에 엎드려 아무도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가장 높은 등잔대 위, 그의 명등은 여전히 타오르고 있지만 그 옆에 있는 내 명등은 차가운 재만 남았다.가까이서 보니 심지가 끊어져 있었다.등유는 검게 굳어 있는 것이 마치 말라붙은 핏방울 같았다.서연주가 손을 뻗어 다시 불을 붙이려 하자 등불을 관리하는 장로의 얼굴이 새파래졌다."종주님, 안 됩니다! 명등이 꺼졌다는 것은 곧 혼백이 육신을 떠났다는 뜻입니다. 억지로 등불을 이어 붙이려 하면 오히려 종주님께서 다치십니다..."하지만 서연주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손끝에서 영화(靈火)가 타오르기 시작했다.그리고 그는 천천히 꺼진 심지에 영화를 가까이 가져갔다.불빛이 잠시 밝아졌지만, 곧 다시 꺼졌다.그는 다시 불을 붙였다.하지만 또 꺼졌다.세 번째 시도에서 영화가 되받아치며 그의 입가로 피가 흘러내렸다.등불을 관리하는 장로는 무릎걸음으로 반걸음 앞으로 나왔다."종주님, 은령 아씨는... 이제 이 세상에 없습니다."그 말에 서연주는 고개를 홱 돌려 그를 바라봤다."무슨 말이지?"장로는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그저 죽은 것이라면 아직 혼을 찾고 혼백을 부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은령 아씨의 명등은 단순히 꺼진 것이 아닙니다. 등불의 그림자조차 흩어졌습니다.""이 세상 어디에도 혼기가 남아 있지 않습니다."서연주의 옆에 늘어뜨려져 있던 손이 천천히 움켜쥐어졌다.한참 뒤, 그가 낮게 말했다."허튼소리다."그는 몸을 돌려 나갔다.윤선화는 명등각 밖에 서 있었다.아직 혼례복도 갈아입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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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서연주는 밤새도록 모든 일을 조사했다.영근, 본명검, 만년설련, 영력 봉인 못, 곤선쇄...하나하나 드러난 진실은 뒤늦게 날아든 칼날처럼, 그가 대수롭지 않게 덮어 버렸던 과거를 천천히 도려냈다.만년설련은 윤선화가 살갗이 조금 벗겨졌다고 반드시 써야 하는 약이 아니었다.그녀는 그 만년설련이 본래 내 영근을 복구하는 데 쓰일 예정이라는 말을 듣고, 약을 가져오던 날 일부러 넘어진 것이다.본명검도 당황한 나머지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 든 것이 아니었다.그녀는 사흘 전 미리 검함을 몰래 열어 도겁대 아래에 숨겨 두었다.심지어 그 영력 봉인 못조차 그녀가 집법당 제자에게 직접 말해 사용하게 한 것이었다."사저는 수련이 깊으니 영력 봉인 못을 쓰지 않으면 하객을 다치게 할 수도 있다. 그러면 사형께서 곤란해지시겠지."하지만 가장 우스운 것은 따로 있었다.서연주가 이 모든 일을 전혀 몰랐던 것은 아니었다.매번 수상한 점이 있었지만 내 해명에도 그는 늘 나에게 그만하라고 말했다."은령아, 그 아이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다.""은령아, 네가 조금 양보하거라."날이 밝자 윤선화는 정전으로 압송되었다.어제까지만 해도 붉은 비단이 깔려 있던 곳은 이제 빈소처럼 싸늘하고 적막해졌다.그녀는 계단 아래에 무릎을 꿇고 애처롭게 눈물을 흘렸다."사형,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는 그저 사형을 잃을까 봐 너무 두려웠을 뿐입니다."서연주는 상석에 앉아 있었고, 얼굴은 투명해 보일 만큼 창백했다.그는 밤새 옷도 갈아입지 않았고, 소맷자락에는 아직 참회 절벽에서 묻은 피가 남아 있었다.내 피는... 이미 검붉게 말라붙어 있었다.윤선화는 무릎으로 몇 걸음 더 다가갔다."사저가 사형께 잘해 준 것은 압니다. 하지만 사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지 않습니까. 언젠가는 반드시 떠날 사람이었습니다. 사형, 저는 그저 사형을 붙잡고 싶었을 뿐입니다."서연주가 눈을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너도 알고 있었던 것이냐?"순간 윤선화는 몸이 굳어졌고, 서연주는 낮은 목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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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서연주는 사흘째 참회 절벽에 머물렀지만 아무도 감히 그를 말리지 못했다.그는 내가 떠난 자리에 앉아 그 두루마기를 품에 끌어안은 채, 어깨 위로 눈보라가 수북이 쌓여도 털어 내지 않았다.그러다 장문 사숙이 찾아와 끊어진 다리 밖에 서서 한숨을 내쉬었다."연주야, 이미 떠난 사람이다. 이제는 마음을 추슬러야 하지 않겠느냐. 무망종에는 종주가 필요하다."하지만 서연주는 뒤돌아보지 않았다."죽지 않았습니다."사숙이 미간을 찌푸렸다."명등이 꺼졌고, 수혼술에도 아무런 흔적이 없었다.""그렇다면 다른 곳으로 간 겁니다."서연주의 목소리는 심하게 잠겨 있었다."그녀는 자신에게 현세가 있다고 했습니다."사숙은 잠시 침묵했다."찾을 수 없을 게다."서연주는 듣지 못한 사람처럼 깨진 옥 조각만 내려다봤다."찾을 수 있습니다."그는 예전에도 그렇게 확신했다.내가 떠나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내가 결국 돌아볼 거라고 확신했다.자신이 조금만 달래 주면 내가 예전처럼 눈시울을 붉힌 채 그의 품으로 뛰어들 거라고 확신했다.하지만 이제 그는 내 혼기의 흔적 하나조차 찾을 수 없었다.나흘째 되는 밤, 절벽의 석벽에서 문득 희미한 빛이 피어올랐다.서연주는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그 빛은 매우 옅어, 꼭 잔설에 비친 달빛과 같았다.천천히, 그 빛은 조금씩 퍼지더니 오래전의 한 장면을 구현하기 시작했다.아주 오래전 내가 막 이 세상에 왔을 때였다.그때의 나는 몸에 맞지도 않는 제자복을 입고 서연주의 뒤를 따라다녔는데, 어검술(御劍術)조차 할 줄 몰랐다.그는 나를 답답해하면서도 걸음을 늦춰 주었다."이은령, 이리 오너라."장면 속의 나는 조심스럽게 그의 검 위에 올라섰지만 감히 손을 대지 못했다.그는 한참 동안 나를 내려다보다가 갑자기 내 손목을 잡아 자기 허리에 두르게 했다."똑바로 서거라."바람이 몹시 거센 그날, 나는 그의 등에 얼굴을 묻고 몰래 웃었다.석벽 앞에 앉아 있던 서연주의 눈시울이 조금씩 붉어졌다.장면이 다시 바뀌었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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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윤선화의 수련이 폐해진 날, 서연주는 끝내 그녀를 찾아가지 않았다.들리는 말로는 그녀가 한담가에서 밤새도록 사형을 부르며, 아프다고 울부짖고 잘못했다며 용서를 빌었다고 했다.하지만 서연주는 그저 은령거에 앉아 내가 남기고 간 물건들을 정리하고 있었다.은령거는 내가 예전에 머물던 처소로, 예전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검걸이는 비어 있고, 화장대 위에는 아직 수를 다 놓지 못한 손수건 반쪽이 놓여 있었으며. 옷장 가장 아래에는 내가 그를 위해 만들다 만 겨울옷이 고이 접혀 있었다.서연주가 그것을 들어 올렸을 때 바느질은 아직 소맷자락에서 멈춰 있었다.그곳에는 소나무 한 그루가 수놓여 있었는데, 그 옆에는 아주 작은 글씨로 '연주'라는 두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그는 한참 동안 그것을 바라보다가 문득 그해 겨울을 떠올렸다.그해 겨울, 나는 등불 아래 앉아 바느질을 하다가 그에게 물었다."제가 끝내 돌아가지 못한다면... 이곳에 남아도 되겠습니까?"그때 그의 마음에는 이미 의심이 싹트고 있었지만, 담담한 목소리로 되물었다."돌아가고 싶은 거냐?"나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아닙니다, 그냥 물어본 것뿐입니다."그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날 이후 나는 '돌아간다'는 말을 거의 꺼내지 않았다.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 아니었다.그가 믿어 주지 않을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서연주는 손마디가 서서히 하얗게 질릴 만큼 겨울옷을 힘주어 품에 끌어안았다.이때 시녀가 밖에서 들어와 조용히 아뢰었다."종주님, 한담에서 전갈이 왔습니다. 윤선화 아씨께서 계속 종주님을 뵙겠다고 하십니다."서연주는 고개도 들지 않았다."종문의 규율대로 감시하라."시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배 사형께서 대전 밖에 무릎을 꿇고 계십니다. 그날 부인께 상처를 드린 죄를 스스로 벌받고 싶다고 하십니다."서연주는 눈을 감았다."수련의 절반을 폐하고 종문에서 쫓아내라.""예."시녀가 물러난 뒤, 마당은 다시 적막해졌다.서연주는 날이 저물 때까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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