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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Author: 기윤
며칠동안 몸을 돌본 후에야 추연화는 간신히 침상에서 일어날 수 있었고, 떠날 준비를 하기 위해 장신구함을 열었다.

자신의 짐을 정리하던 중, 장신구함 비밀 칸에 숨겨둔 서신들을 발견했다.

"연화야, 변방에서의 삶이 비록 힘들기는 하지만 나름의 매력이 있단다. 끝없이 펼쳐진 들판 위로 하늘이 거대한 천막처럼 드리워져 있는데, 네가 본다면 분명 마음에 들어 할 것이다."

"연화야, 어젯밤 꿈에 너와 함께 술을 마시며 달을 구경했다. 마당의 버드나무 아래 묻어둔 술이 생각나더구나. 내가 없다고 몰래 마시면 안 된다. 취하면 내가 숙취 해소용 탕을 끓여줄 수 없으니 말이다."

"연화야, 내 생각이 나지는 않느냐? 이번 전쟁이 거의 끝나가고 있다. 동료들이 내가 너에게 서신을 쓰는 것을 보고 놀려대더구나. 그 자도 아내가 있으면서 자기 아내에게 쓰면 될 것을 말이다."

"연화야, 내일이면 부대를 철수해 돌아간다. 네가 너무나도 보고 싶구나."

이것들은 젊은 시절 방지혁이 전쟁터에 나갔을 때 보내온 편지들로, 추연화가 소중히 보관해 온 것들이었다.

글자마다 진심이 담겨 있었고, 깊은 애정이 느껴졌다.

지금의 방지혁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한때는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신을 보내 그리움을 전하던 그였는데, 지금은 바로 눈앞에 있으면서도 병든 추연화에게는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녀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이내 화로를 가져오게 했다.

손을 뻗자 서신들이 흩날리며 붉은 불꽃 속으로 빨려 들어가 흔적도 없이 타들어 갔다.

추연화는 이틀 동안 기운이 조금 회복되자, 장군부의 모든 살림살이를 하인들에게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이것이 그녀가 해야 할 마지막 책임이라 여겼다.

추연화가 시녀를 데리고 장부를 정리하러 별채로 향했을 때, 그들이 단란하게 모여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지혁아, 평양공주는 참으로 고운 아이란다. 절대 공주를 서운하게 해서는 안 된다."

"어머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방지혁은 평양공주를 품에 안은 채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무척 친근한 모습을 보였다.

그 말은 한때 방지혁이 추연화에게도 했던 말이었다.

누군가 추연화가 온 것을 발견하고 헛기침을 하자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방지혁은 그녀를 보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연화야, 몸은 좀 어떻느냐?"

추연화는 방지혁의 시선을 피하며 덤덤하게 대답했다.

"의원의 의술이 뛰어나고 며칠 푹 쉬었더니 많이 좋아졌습니다."

방지혁이 추연화의 손을 잡으려 했으나 그녀가 슬며시 피하자, 그는 순간 굳어버렸다.

김정순이 이를 보고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걱정스러운 듯 말을 건넸다.

"연화야, 몸도 좋지 않은데 더 쉬어야지."

"그동안 네가 너무 고생이 많았다. 우리가 미처 살피지 못해 미안하구나."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장부냐? 마침 평양공주가 안살림을 배우고 있으니, 그것들은 공주에게 넘겨주고 너는 이제 좀 편히 쉬거라."

집안 살림을 맡아 관리하는 것은 원래 안주인의 권한이었다. 게다가 이 집안의 모든 재산은 추연화와 방지혁이 조금씩 일구어낸 것이었는데, 이제 와서 그 권한을 빼앗으려 하니, 그 속뜻이 무엇인지는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추연화는 재물에는 욕심이 없었으나, 이 장부는 안살림뿐만 아니라 성 밖의 백여 개가 넘는 가게들과도 얽혀 있는 중요한 것이었다. 그곳의 상인들은 그녀와 오랫동안 신뢰를 쌓아온 이들이었다.

평양공주는 이런 일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기에, 추연화는 상인들에 대한 책임을 저버릴 수 없었다.

"어머님, 이 장부들은 중요한 일들과 얽혀 있어서 그리하시면…"

추연화가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김정순이 말을 가로막았다.

"연화야, 나는 그저 네 수고를 덜어주려는 것뿐이다. 허나 아무리 그래도 그것은 장군부의 장부가 아니냐."

평양공주가 이를 보고 생긋 웃으며 입을 열었으나, 뱉어내는 말에는 가시가 돋쳐 있었다.

"궁에 있을 때 맡은 일을 빌미로 재물을 빼돌리는 사람들을 많이 봐 왔다. 네가 이렇게까지 예민하게 구는 걸 보니, 혹여 하지 말아야 할 짓이라도 한 것이냐?"

"듣자 하니 가게들이 몇 년간 꽤 번창했다는데, 재작년부터 들어오는 돈이 줄어들었다더구나."

주변 사람들은 평양공주의 말을 듣고 경계하는 눈빛을 보냈다.

추연화는 방지혁과 혼인한 후 집안일을 도맡아 하며 늘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성실하게 일해왔다.

재물에 손을 대기는커녕, 몇 년 전 가뭄으로 가게들이 적자를 낼 때도 자신의 개인 재산을 털어 겨우 메워왔다.

주변 사람들이 곱지 않은 시선으로 추연화를 바라보자 그녀의 눈앞이 흐려졌다. 모든 것이 아른거리는 가운데, 방지혁의 모습만이 유독 또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그의 표정에도 미세한 의심이 서려 있었다.

추연화는 마음이 싸늘해졌다. 그녀가 방지혁의 손에 이끌려 장군부로 들어온 것은 일곱 살 무렵이었다. 그때부터 줄곧 이곳에서 지냈고 다른 사람들 역시 추연화가 자라는 모습을 거의 다 지켜봐 온 셈인데, 정작 그들은 그녀를 믿지 않았다.

목구멍으로 다시 피가 울컥 치밀어 올랐으나 그녀는 억지로 삼켜냈다.

최소한 마지막 체면은 지키고 싶었다.

그녀는 장부를 탁자 위에 내려놓고 나지막이 말했다.

"장부는 여기 있습니다. 이 시녀도 살림을 조금 배웠으니, 공주님께서 모르는 것이 있다면 하인들에게 물어보십시오."

"그리고 재물을 빼돌리는 짓 따위는 결코 하지 않았습니다."

이때 방지혁이 입을 열었다.

"연화가 이제 막 몸을 추스른 참이니, 너무 몰아붙이지 말거라."

방지혁은 천천히 추연화 앞으로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으며 다독였다.

"평양공주가 다른 뜻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워낙 솔직하고 성격이 급해서 그러는 것이니 네가 이해해 주거라."

"너희 둘 다 장군부에 있으니, 장부 보는 일은 네가 평양공주에게 다시 잘 가르쳐 주거라."

다정한 태도와 얼굴에는 지극한 사랑이 가득 차 있었다.

추연화는 천천히 손을 빼내며 덤덤하게 말했다.

"아무래도 그리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저는… 더 이상 이곳에 머물지 않을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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