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3화

Author: 기윤
"그게 무슨 소리냐?"

방지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추연화는 눈을 들어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

"저는 장군부를 떠나고, 장군님과 혼인을 끝내야겠습니다."

별채 안은 순식간에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은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추연화가 방지혁을 얼마나 깊이 사랑하는지는 온 집안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이었기에, 이런 요구를 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방지혁이 벼슬길에 오를 때 추연화는 온 힘을 다해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그의 앞길을 닦아 주었다.

그가 관직에서 밀려나 변방으로 보내졌을 때는 병든 몸을 이끌고 척박한 변방까지 따라가 그의 곁을 지켰다.

그가 전쟁터에 나갔을 때 그녀는 법당에서 일주일 동안 무릎을 꿇고 오직 그가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빌었다.

그동안의 일들은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어려울 정도였다. 그런 그녀가 이제 와 혼인을 끝내려고 하다니, 분명 홧김에 하는 말일 뿐 진심일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제야 사람들은 정신을 차린 듯했고, 이내 여기저기서 비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들의 얼굴에는 경멸이 가득했고 그녀를 향해 비아냥거렸다.

"그동안 배운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시장통 아낙네들처럼 울고불고 행패 부리는 것만 배웠구나. 정말 장군부의 체면을 다 깎아 먹는구나."

"감히 그런 일로 지혁이를 협박하다니, 내 생각엔 차라리 허락해 버리는 게 나을 것 같구나. 가식적인 모습을 더는 보기 싫어 구역질이 날 지경이다."

"미천한 출신 주제에 지혁이에게 시집온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이거늘, 어찌 이리 뻔뻔하게 굴 수 있단 말이냐."

방지혁은 미간을 찌푸리고 이를 악물며 온몸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

"연화야, 적당히 하거라. 투정도 한두 번이지 자꾸 부리면 정이 떨어지는 법이다."

"너는 장군부의 정실부인이다. 나와 혼인을 끝내면 대체 어디로 가겠다는 말이냐?"

방지혁은 추연화가 고아 출신이라 갈 곳이 없을 것이라 여겼다.

일곱 살에 그의 손에 이끌려 장군부에 들어온 지 어느덧 이십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혼인 후 추연화는 집안일을 도맡아 하며 가게들을 번창시켰고 인맥을 쌓았으니, 이미 스스로 살아갈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그녀는 강남(江南)으로 내려가 가진 재산으로 작은 가게를 하나 차려 장사를 하며 지낼 생각이었고, 다시는 이들과 엮이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방지혁은 마치 철없는 아이를 대하듯 한숨을 쉬었다.

"연화야, 더 이상 억지 부리지 말거라."

추연화는 온몸에 힘이 빠지는 것 같았다. 해명하려 입을 열려던 찰나, 평양공주가 말을 가로챘다.

"네가 떠나려는 이유가 내가 집안 살림의 권한을 가져가서 그런 것이냐? 정말 그것 때문이라면 다시 돌려주면 그만일 텐데, 굳이 이렇게까지 소란을 피울 필요가 있느냐."

김정순은 이를 지켜보다가 추연화와 평양공주를 번갈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연화야, 내가 잘못했다. 평양공주가 장군부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정실부인이 혼인을 끝내겠다고 나서면 평양공주와 지혁이, 그리고 가문의 명예에 큰 흠집이 난다."

"살림 권한에 대한 이야기는 다시는 꺼내지 않으마."

그녀는 공주와 방지혁, 그리고 가문의 명예만을 걱정할 뿐, 추연화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었다.

추연화는 자신이 자라온 곳을 바라보며 문득 예전의 일이 떠올랐다.

과거에 김정순은 추연화를 몹시 아꼈다. 바로 이 별채에서 글도 가르쳐주고 수 놓는 방법과 그림을 가르쳐주었다.

추연화가 처음으로 수놓은 향주머니는 삐뚤삐뚤하고 엉망이라 방지혁마저 비웃었으나, 김정순은 보물처럼 매일 차고 다니며 만나는 사람에게마다 자랑하곤 했다.

그러나 지금 그녀의 허리춤에 걸린 향주머니는 이미 다른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고급스러운 비단에 촘촘한 바느질 솜씨가 한눈에 봐도 궁에서 나온 물건이었다.

김정순은 말을 하다가 연신 기침을 해댔다.

추연화가 다가가 살피려 하자 평양공주가 앞을 가로막았다.

"또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이냐? 재물에 눈이 멀어 어머님을 이 지경으로 만들고도 모자란 것이냐?"

"그런 것이 아닙니다…"

평양공주가 계속해서 이간질을 해대자, 추연화는 그녀를 밀쳐내려다 실수로 바닥에 넘어뜨리고 말았다.

"평양공주!"

그 순간, 방지혁이 무서운 기세로 달려와 추연화를 세차게 밀쳐내고 평양공주를 감싸 안았다. 그의 눈빛에는 오직 평양공주에 대한 걱정만이 가득했다.

떨리는 손길과 다급한 표정, 추연화는 방지혁이 이토록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장군님, 배가 너무 아픕니다. 우리 아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은 아니겠지요…"

‘아이라고?’

그 말에 추연화는 가슴이 철렁 내려앚았다. 최근 그녀는 장군부 밖의 장부 정리로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전혀 모르고 있었다.

평양공주가 애처롭게 말을 이어갔다.

"며칠 전부터 속이 좋지 않았으나 확실치 않았는데, 어제 장군님께서 염려하시어 의원을 부른 뒤에야 알게 되었다."

"장군님께서 워낙 나를 아껴주셔서, 내가 조금만 불편해도 금방 알아차리시더구나."

평양공주는 미간을 찌푸리며 배를 어루만졌으나, 추연화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숨길 수 없는 우월감과 과시가 어려 있었다.

추연화는 가슴이 얼어붙는 듯 시리고 아팠다.

"어서 의원을 불러오거라! 지혁아, 어서 공주를 데리고 들어가 쉬게 하거라."

"방금 넘어지기까지 했으니 큰일 날 뻔했구나! 조상님께서 보살펴주셔야 할 텐데."

모두 안절부절못했고, 김정순은 긴장한 나머지 평소 손에서 놓지 않던 염주마저 굴리지 못했고 손을 가늘게 떨었다.

방지혁은 평양공주를 안아 들고 방을 나서기 전, 추연화를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우선 마음부터 가라앉히거라."

"방씨 가문 소유의 절이 외곽에 있으니, 그리로 가서 마음을 다스리며 평양공주와 곧 태어날 아이를 위해 기도나 올리거라."

그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덧붙였다.

"연화야, 정말 실망스럽구나."

추연화는 순간 눈앞이 흐려졌고, 그녀는 손톱이 살을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꽉 쥐며 고통으로 가슴을 후벼파는 쓰라림을 억누르려 애썼다.

사람들의 눈빛에는 그녀를 향한 비난이 가득했다. 마치 그녀가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나쁜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바라보았다.

"본인이 아이를 갖지 못한다고 감히 공주의 아이를 해치려 하다니, 참으로 악독하군요."

"더 이상 이곳에 두어서는 안 됩니다. 또 무슨 음흉한 수작으로 해를 끼칠지 모르는 일입니다."

추연화는 그들을 바라보며 다급히 해명했다.

"고의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정말 몰랐습니다…"

김정순 역시 차가운 눈빛으로 원망 섞인 말을 내뱉었다.

"내 너를 거두어 길러주었거늘, 어찌 은혜를 원수로 갚는단 말이냐. 내가 저런 은혜도 모르는 짐승을 거두었다니 참으로 후회스럽구나."

방지혁은 발걸음을 멈칫했으나 이내 뒤도 돌아보지 않고 평양공주를 안은 채 문밖으로 사라졌다.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atest chapter

  • 공주와 혼인한 장군을 버렸다   제21화

    홍수가 지나간 자리는 엉망진창이었고 집들이 무너져 수많은 백성들이 잘 곳을 잃었다.추연화의 가게는 지대가 높아 다행히 피해가 적었다.이에 그추연화는 가게에 있는 곡식을 털어 문앞에 임시 천막을 치고 죽을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맹연우는 군말 없이 더 많은 곡식을 가져와 그녀의 곁에서 일손을 도왔다.매일 날이 밝기도 전에 천막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섰다.추연화는 앞치마를 두르고 죽을 나누어 주었고, 맹연우는 곁에서 질서를 유지하며 힘든 일을 도맡아 처리했으며 두 사람의 호흡은 척척 맞았다.죽을 나누어 주는 천막은 가게 바로 앞에 있어 가게 안에서도 훤히 들여다보였다.방지혁은 상처가 아물어 침상에서 일어나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자, 그는 더 이상 방 안에만 갇혀 있고 싶지 않았다.가끔 가게에 서서 맞은편 천막의 활기찬 모습을 바라보았고, 어떨 때는 뒷마당으로 가 그들이 새로 들어온 곡식을 정리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그는 똑똑히 보았다. 두 사람 사이의 묵묵한 신뢰는 말로 표현할 필요가 없었다. 눈빛 하나, 몸짓 하나로 서로의 뜻을 완벽히 이해했다.어느 날 오후, 추연화는 평소처럼 약을 가져왔고, 방지혁은 약을 마신 뒤 약사발을 돌려주었다."조정의 명령을 받았다. 닷새 뒤 북쪽 변방으로 떠나야 한다."그가 갑자기 말을 꺼냈고, 추연화는 고개를 끄덕였다."변방을 지키는 일은 무엇보다도 중요하지요. 장군님께서는 가는 길 몸조심하십시오."방지혁은 잠시 침묵하다가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천막 아래에서 맹연우는 허리를 숙인 채 어르신의 말을 경청한 뒤, 품에서 엽전 몇 푼을 꺼내 어르신의 손에 쥐여 주었다."사실 예전에는 널 다시 만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데려가겠다고 다짐했었다."방지혁은 창밖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허나 지금 네가 이토록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니, 비로소 내가 틀렸음을 깨달았다."그는 고개를 돌려 추연화를 바라보았고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저 사람이 나보다 너를 더 잘 챙겨 주는구나.""과거에 부부였

  • 공주와 혼인한 장군을 버렸다   제20화

    올해 강남의 장마철에는 폭우가 잦았고, 최근 며칠 동안 계속해서 비가 쏟아졌다.그날 저녁, 비가 매우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추연화는 마침 새로 들어온 말린 식품들이 떠올랐다. 혹시라도 비 때문에 눅눅하게 젖어 상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된 그녀는 창고로 가 물건들을 확인해 보기로 했다.맹연우가 함께 가려 했으나 마침 단골손님이 찾아와 물건에 대해 상의하는 바람에 발이 묶이고 말았다."괜찮습니다. 금방 다녀오겠습니다."추연화는 미소를 지으며 우산을 쓰고 창고로 향했다.그녀가 물건을 확인하던 중, 갑자기 발밑에서 쿵 하는 진동과 함께 천장에서 삐걱거리는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불길한 예감에 휩싸인 그녀는 즉시 장부를 내려놓고 문밖으로 나가려 했다.그때 갑자기 밖에서 굉음이 울려 퍼졌다. 강물이 넘치지 않게 막아 두었던 둑이 그만 무너져 내린 것이다. 흙탕물이 문과 창문 틈새로 무섭게 밀려들어 오더니 순식간에 무릎까지 차올랐다.물살이 워낙 세서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고, 수위는 순식간에 허리춤까지 차올랐다.그때 갑자기 누군가 창문을 부수고 안으로 뛰어들었다."연화야!"방지혁의 갈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는 온몸이 흠뻑 젖은 채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희미한 빛에 의지해 다급하게 창고 안을 두리번거렸고, 추연화를 발견하자 안도하면서도 다급하게 소리쳤다."다친 데는 없느냐? 이곳은 위험하니 어서 나가자꾸나."추연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가가려던 찰나, 천장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지며 거대한 기둥 하나가 그녀를 향해 떨어졌다."조심하거라!"방지혁은 눈빛이 크게 흔들리며 온 힘을 다해 그녀를 밀쳐냈다.추연화는 쌓여 있던 물건 위로 쓰러져 다치지 않았으나, 방지혁은 기둥에 등을 정면으로 맞아 물속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장군님!"추연화는 서둘러 그를 부축하러 갔다.그는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이내 한 움큼의 피를 토해 내며 정신을 잃었고, 거의 동시에 창고 문이 거칠게 부서지며 열렸다.맹연우가 안으로 뛰어 들어왔고, 현장을 보자마자

  • 공주와 혼인한 장군을 버렸다   제19화

    방지혁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추연화는 그가 떠난 줄 알았으나, 서서히 이상한 낌새를 채기 시작했다.가장 먼저 늘 가게 주변을 서성거리며 사소한 트집을 잡던 건달들이 보이지 않았다.주변 가게 점주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자들은 얼마 전에 어떤 고귀한 신분을 가진 인물의 눈 밖에 나서 성 밖으로 쫓겨나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고 했다.이어서 옆 가게를 인수하는 일 역시 순조롭게 해결되었다. 장사가 번창하자 기존 가게 크기가 좁다고 느낀 그녀는 마침 옆 가게가 매물로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주인과 협상을 벌이던 중이었다.그러나 옆 가게 주인은 워낙 까다로운 사람이라 터무니없는 가격을 요구했고 계약서 작성도 미루기 일쑤였다.그런데 이틀 만에 주인의 태도가 갑자기 변하여 가격을 합리적으로 깎아 주었고, 관아에 서류를 접수한 지 사흘 만에 모든 절차가 끝났다.어느 날 문을 닫은 뒤, 가게 점원이 물건을 옮기다가 의아한 소리를 냈다."사장님, 참 이상한 일도 다 있네요. 구석에 놓인 과일 바구니 두개와 술 항아리는 저희 물건이 아닙니다."추연화가 다가가 보니 과일 바구니에 묻은 흙이 아직 축축한 것으로 보아 가져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했다.점원이 머리를 탁 치며 말했다."아, 맞다. 오후에 낯선 중년 남자가 두고 간 겁니다. 처음에는 손님인 줄 알았는데 이걸 툭 던져 놓고는, 추 사장님의 가게 확장을 축하한다는 말을 남기고 가 버렸습니다."추연화는 잠시 멈칫하다가 뒷골목으로 나가 어둠 속에 몸을 숨긴 남자를 향해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방 장군님,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한참이 지난 후에야 어둠 속에서 방지혁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내가 원해서 하는 것이다."추연화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가게로 돌아와 점원들에게 일렀다."그 물건들은 너희들이 나누어 가지거라."그녀는 여전히 대놓고 주는 것이든 몰래 주는 것이든 방지혁의 물건을 받지 않았다.방지혁 역시 그녀가 받아주기를 기대하지 않는 듯, 오직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

  • 공주와 혼인한 장군을 버렸다   제18화

    강남의 날씨는 늘 이랬다. 보슬보슬 내리는 비가 어느샌가 소리 없이 땅을 적시곤 했다.추연화는 가게에서 장부를 정리하고 있었고, 맹연우는 곁에서 요 며칠간의 거래 내역을 정리했다."이 자수 손수건들이 꽤 잘 팔리는군요." 맹연우가 내역을 가리키며 말했고, 추연화는 꼼꼼히 살핀 뒤 고개를 끄덕였다.문 틈새로 불어온 바람에 장부가 펄럭이자, 맹연우는 겉옷을 벗어 추연화의 어깨에 살포시 덮어 주었다."날이 쌀쌀합니다."추연화는 글을 쓰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으나, 그의 표정이 평온한 것을 보고 그냥 내버려 두었다.문밖으로 들려오는 빗소리가 주변을 더욱 고요하고 아늑하게 만들어 주었다.바로 그때, 문이 쾅 열리며 온몸이 흠뻑 젖은 초라한 몰골의 방지혁이 들어와 시선을 그녀에게 고정했다.추연화는 의아해하며 고개를 들었다가, 손이 떨려 종이에 먹물이 번지고 말았다.그는 몰라보게 수척해져 있었고 눈 밑은 거무스름했으며, 수염도 거칠게 자라 무척이나 초췌해 보였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그녀의 어깨에 걸쳐진 겉옷에 꽂혀 있었다.이를 본 맹연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추연화의 앞을 막아서며 경계하는 목소리로 물었다."누구신데 이리 무례하게 구십니까?"방지혁은 맹연우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오직 추연화만을 바라보며 갈라진 목소리로 애원했다."연화야… 한참을 찾았다. 나와 함께 집으로 가자꾸나."추연화는 붓을 내려놓고 차분하게 말했다."방 장군님, 무례하십니다. 우리는 이미 혼인을 끝냈습니다."방지혁은 안색이 하얗게 질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알고 있다, 연화야. 내가 다 잘못했으니, 나와 함께 돌아가 다시 시작하자꾸나."추연화는 방지혁을 바라보았으나 마음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처음 마주쳤을 때 잠시 놀랐지만, 그뿐이었다.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차가운 태도로 말했다. "방 장군님, 저는 이곳에서 아주 잘 지내고 있습니다. 가게도 있고 친구도 있지요. 이곳이 제 집이니 경성으로 돌아갈 일은 없습니다.""더구나 저와 장

  • 공주와 혼인한 장군을 버렸다   제17화

    한편, 방지혁은 단 한 순간도 추연화를 찾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경성에서 북쪽 변방까지, 서쪽 교외에서 변방 끝까지 그는 혹시나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작은 희망 하나만을 품은 채 여기저기 다른 곳으로 가서 일하라는 수많은 명령을 받아들였다.살아 있다면 집으로 데려올 것이고, 죽었다면… 차마 생각조차 하기 싫었다.그동안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고, 장군부의 사람들도 이 모든 일들을 겪으며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과거 평양공주에게 아첨하고 추연화에게 냉정하게 굴었던 기억들이, 이제는 하나하나 비수가 되어 그들의 심장을 찔렀고 오직 깊은 후회만이 남았다.예전의 기품 있고 화려했던 김정순은 몰라보게 늙어 있었고, 떠나는 방지혁의 손을 꼭 잡고 목메인 소리로 말했다."지혁아, 네가 연화를 찾으러 떠나는 길을 막지 않으마. 혹시라도 연화를 만나게 되면, 이 어미와 방씨 가문을 대신해 정말 미안하다고 전해주거라.""우리가 눈이 멀어 연화에게 큰 죄를 지었으니, 용서해 주지 않는다 해도 마땅한 일이다. 허나 이 말만큼은 꼭 전해야 한다."방지혁은 눈시울이 붉어진 채 김정순의 손을 꼭 쥐었고, 가슴 깊이 후회와 그리움이 밀려왔다.길을 떠난 이후로 그는 매 순간 추연화를 그리워했고, 새로운 곳에 도착할 때마다 사람을 보내 수소문했다.한번은 변방의 저잣거리를 걷다가 추연화와 매우 닮은 뒷모습의 여인이 스치듯 지나가는 것을 보고, 그는 단숨에 달려갔다.그는 상대의 옷소매를 붙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연화야!"놀란 여인이 뒤를 돌아보며 눈살을 찌푸리고 욕을 퍼부었다."웬 미친놈이냐!"전혀 모르는 얼굴이었다. 그는 멍하니 손을 놓았고, 여인은 투덜거리며 멀어졌다.주변 사람들이 그를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았으나 그는 전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방지혁은 만약 정말 추연화였는데 자신이 놓친 것일까 봐 두려웠다. 설령 그럴 확률이 만분의 일밖에 되지 않는다고 해도, 그는 더 이상 그런 위험한 모험을 걸고 싶지 않았다.매번 찾아오는 기대와 뒤이은 실망은

  • 공주와 혼인한 장군을 버렸다   제16화

    화연 잡화점이 들어선 자리는 원래 음식점이었는데, 사거리에 위치해 있어 유동 인구가 아주 많았다.그러나 기이하게도 좋은 길목에 위치했음에도 이전 가게는 늘 장사가 그저 그랬고, 이전 주인은 3년 동안 본전만 치르다가 결국 가게를 내놓은 것이었다.맹연우는 이 점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추연화가 가게를 인수한 뒤에야 비로소 문제점을 발견했다.가게를 열고 나서 추연화는 급하게 물건을 들여놓지 않고 가만히 관찰했다.그녀는 주변 가게들을 살피며 손님이 얼마나 오가는지, 또 손님들의 취향을 분석했다.그녀는 주변이 온통 식당과 찻집이라 유동 인구는 많으나 다들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러 온 이들이었다. 평범한 잡화 물건으로는 손님들의 눈길을 끌 수 없었기에, 손님들이 당장 필요로 하는 점을 파고들어야 했다.그녀는 그릇 같은 주방용품의 수량을 줄이는 대신, 손쉽게 먹을 수 있는 말린 과일이나 과자 같은 간식거리를 늘렸다. 그리고 강남의 정교한 수공예품인 자수 손수건, 향주머니, 칠을 한 나무 그릇 등을 많이 들여놓아 아기자기하고 흥미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또한 진열대를 새로 단장하여 먹거리와 볼거리를 분리하고, 물건마다 가격표를 정갈하게 붙여두었다.그리하자 장사가 눈에 띄게 번창하기 시작했다.그러나 추연화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찻집에서 나오는 손님들이 구경만 하고 가는 것을 보고 과자와 말린 과일을 한입 크기로 잘라 가게 앞에 시식용으로 내놓았다.그러자 손님들이 맛을 보고 마음에 들어 하며 물건을 사 가기 시작했다.추연화의 영민한 대처 덕분에 잡화점의 매출은 예상보다 훨씬 뛰어났고, 불과 석 달 만에 매출이 두 배로 뛰었다.맹연우는 이 모든 과정을 묵묵히 지켜보았다.그는 가끔 새로운 물건의 견본을 가져오거나 가게의 상황을 살피러 들렀다.그는 추연화가 계산대 뒤에서 날렵한 손놀림으로 주판을 두드리는 모습, 손님들에게 어울리는 물건을 친절하게 추천하는 모습, 그리고 물건의 입고와 출고를 깔끔하고 명확하게 정리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한번은 까다로운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