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봤는데 고작 야식은 조금 억울한 것 같아.”“이 손 놓고 말해!”“대화는 여기까지. 말로는 내가 너한테 상대도 되지 못하잖아.”“오빠 정말... 읍!”부승희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소파 뒤의 사람들은 두 사람의 움직임에 집중하느라 모두 조용해졌다.양혁수는 고개를 돌려 고양이처럼 두 눈을 반짝이는 변여름을 바라봤다.그리고 몰래 혀를 쯧쯧 하며 말했다.“여름아?”변여름은 빠르게 고개를 돌렸고 양혁수는 변여름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 의미를 알아차린 변여름은 빠르게 고개를 숙이고 두 손으로 헤드셋을 움켜쥐었다.‘아무것도 안 들린다... 아무것도 안 들려...”“...”이어서 또 찰싹 손을 내리치는 소리가 들려왔다.‘세상에 너무 아프겠다.’부승원은 미간을 꾹꾹 누르다가 말했다.“이승우.”소파에서 입을 맞추던 두 사람은 드디어 행동을 멈췄다. 부승희는 이승우의 품에 안겨 꼼짝도 하지 못했고 두 손도 잡혀 아예 움직이지 못했다.부승원의 경고에 이승우는 하던 행동을 멈추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두 사람의 거친 호흡 소리가 들려오고 부승희는 시선으로 사람을 잡아먹을 것처럼 이승우를 노려보았다.이승우는 침을 꿀꺽 삼키면서 입술을 매만졌다.지금 쿵쿵 뛰는 심장 소리만 들려왔고 입술 끝엔 옅은 알코올 향이 남아 있었다. 이승우는 평소에 위스키도 단맛만 골라 마셨고 부승희는 그 단 향이 사라지지 않아 여러 번 침을 삼켜도 여운이 남았다.‘젠장! 감히 어떻게 나한테!’부승희가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버둥거리자 이승우는 아예 부승희를 소파에 눕혀 버렸다.부승희는 깜짝 놀라 손을 빼내 이승우의 가슴을 밀쳤다.‘정말 미친 거 아니야?’이승우는 양손으로 지탱한 채로 부승희를 내려다보았고 턱을 살짝 세우더니 부승희더러 제 입술을 보라고 시늉했다.“네가 물어뜯었나 봐 너무 아파.”부승희는 두 눈을 꼭 감고 속으로 욕을 읊조렸다.“오빠가 자초한 거잖아.”이승우는 술기운이 확 올라왔고 방금 상황을 떠올리며 점점 더 용기가 생겼다.
큰 공간에는 소파에 몸을 숨긴 두 사람이 내는 소리를 제외하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그러나 한참이 지나도록 두 사람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부승희와 이승우는 몰라도 다른 사람들은 점점 민망해졌다.양시연은 귓불을 붉힌 채로 연정훈의 품에 꼭 안겨 있었다.그러다가 참다못한 연정훈이 양시연을 끌어당기며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우린 아이 보러 가봐야 하니까 먼저 가볼 게.”그리고 빠르게 자리에서 벗어났다.남은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눈치를 챘다.아이 보러 가는 게 아니라 아이 만들러 가는 것임을.그리고 그 뒤를 따라나선 건 한우빈과 한우빈의 파트너였다. 그 여자는 다정하게 한우빈에게 물었다.“우빈 씨 아까 먹던 감자칩 아직도 매워요?”‘당연히 맵지. 매워 죽겠어.’한우빈을 술을 입에 털어 넣더니 여자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섰다.“머리가 아파서 먼저 올라가서 쉴게.”“...”그리고 양혁수는 그 상황에 관심이 없었기에 어린 친구나 책임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변여름의 헤드셋을 똑똑 두드리며 이만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했다.그러자 변여름은 얌전히 그 뒤를 따랐다.그다음으로는 변백호였다. 변백호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노지혜는 꼬리처럼 그 뒤를 졸졸 따랐다.부승원은 마지막까지 자리에 남았으며 친오빠로서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잔을 세게 테이블에 쾅 하고 내려놓았다.그 소리에 소파의 움직임이 조금 멈췄다.“승희야.”“오빠, 난 괜찮으니까 먼저 가봐!”부승희는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정말 어이가 없네.’부승원은 숨을 길게 내쉬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반우희를 잡아당겼다.“이만 가자.”반우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뒤를 따라갔다.불과 1분 안으로 방은 비워졌다.부승희는 제 위를 올라탄 이승우를 보며 너무 화가 나 머리를 세게 내리칠까 했다.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먼저 예상 한 이승우는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섰다.부승희도 소파를 잡고 몸을 일으켰다.이승우는 빠르게 도망갔고 부승희는 놓치지 않고 뒤를 쫓았다.
양시연이 신음을 흘리자 연정훈이 손으로 입을 막았고 거친 호흡을 내쉬며 양시연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조용히 해. 우리 잠자리 가진다고 광고할래?”‘쳇, 방음이 뭐 그렇게 나쁘겠어?’‘지레 겁을 먹고... 음...’익숙한 기분이 찾아오고 양시연은 발가락 끝까지 짜릿한 기분이 들었다.겨우 연정훈의 품에 안겨 숨을 돌리는데 연정훈이 또 키스를 해왔다.그러자 마치 드넓은 바다에 홀로 떠 있는 작은 쪽배가 파도에 치여 이리저리 휘청이는 기분이 들었다.얼굴이 창백해진 양시연이 참지 못하고 칭얼거리며 연정훈더러 조금만 더 천천히 해달라고 말했다.연정훈은 알겠다고 대답했으나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그러다가 연정훈이 양시연의 귓가에 대고 이런 말을 했다.“시연아, 너 전보다 더 음탕해진 것 같아.”양시연은 머리가 펑 터지는 기분이 들었고 연정훈의 어깨를 꽉 깨물었다.‘변태!’11시가 넘어서고 저택은 평화를 되찾았다.양시연은 땀을 흠뻑 흘렸고 연정훈의 품에 기대 작게 숨을 헐떡였다.연정훈은 입으로 양시연에게 물을 먹이고 또 짧게 키스했다.다시 호흡을 빼앗긴 양시연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쳐들었다.연정훈은 또 스멀스멀 침대 안으로 손을 움직였고 양시연은 얼굴이 시뻘게진 채로 무기력해진 팔을 들어 살짝 밀었다.“그만해요. 조금만 쉬어요.”연정훈은 양시연의 볼에 얼굴을 비비고 허리를 꾹꾹 눌러 마사지하며 말했다.“겨우 한 번만 했잖아.”양시연이 입술을 꽉 깨물고 목에 팔을 걸었다.“이제 아기 보러 가야죠. 걱정도 안 돼요?”“아기 봐주는 사람 있잖아.”“그래도 우리가 데리고 와야죠...”“오늘은 괜찮아. 어머니가 자기 방에 따로 아기 침대도 마련했으니 오늘 밤만 봐달라고 부탁하자.”연정훈은 말을 하는 내내 손놀림을 멈추지 않았다.양시연은 머릿속이 엉망진창이 되었고 더 이상 말로 설득이 되지 않자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그럼 보고만 올래? 아기가 무사한 걸 확인하고 그다음엔 네 마음대로 해도 좋아.”연정훈은 그 말을 하고도 한참 양
태양이 분유를 모두 비웠으나 양시연은 다시 표세연에게 넘겨주기 아쉬웠다. 비록 하룻밤뿐이었으나 태어난 뒤로 한 번도 떨어져서 지내지 않았기에 마음이 불안했다.“잠이 들었으니 아기 침대로 눕혀요.”양시연이 연정훈을 향해 말했다.연정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행동에 옮겼다.그리고 얼마 뒤, 두 사람은 다시 아까 끝내지 못한 거사를 이어가려는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침대에 누운 두 사람은 그대로 얼음이 되었다가 두 눈을 꼭 감았다.양시연은 두 볼이 붉어진 채로 말했다.“정, 정훈 씨 빨리 아기부터 데리고 와요. 내가 달래줄게요.”“우리 태양이 낮과 밤이 바뀌어서 한번 달래면 계속 달래줘야 해.”“그래도 어떻게 모르는 척 내버려둬요...”양시연이 연정훈의 볼에 뽀뽀를 하며 말했다.‘저 어린 녀석이 눈치도 없이.’‘낮엔 쿨쿨 잘 자던 녀석이 밤만 되면 자꾸 좋은 일을 망치네.’연정훈은 이를 악물고 침대에서 내려갔다.불만이 가득한 연정훈을 보며 양시연이 잠옷 끝을 살짝 잡아당겼다.연정훈이 고개를 돌리자 양시연이 말을 이었다.“이번만 달래주고 어머님께 아이 보내요.”양시연이 미소를 지은 채로 말하자 연정훈은 불만이 눈 녹듯 사라졌고 다시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연정훈은 빠르게 양시연의 이마에 키스를 하며 말했다.“금방 올게.”‘뭐지?’양시연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연정훈은 외투를 챙겨 입고 태양을 품에 안은 채로 밖으로 향했다.태양은 울먹이다가 왜 달래주지 않는지 의아해했다.양시연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외쳤다.“내가 달래주기로 했잖아요.”연정훈은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아이 할머니가 잘 달래줄 거야.”“...”‘정말. 무슨 아빠가 이래?’하지만 양시연은 슬며시 미소를 지었고 양손으로 무릎을 꼭 껴안은 채로 연정훈을 기다렸다.새벽이 되고 마지막 손님들도 파티를 끝냈다. 그 사람들은 연정훈 무리와 술을 마시다가 또 다른 사람들과 2차를 했고 새벽까지 끝내주는 파티를 즐겼다.이승우는 부승희에게 쫓겨 도망
11월의 겨울 새벽은 원래 쌀쌀하기 마련인데 이미 푹 젖은 이승우는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부승희가 속 시원하게 복수를 하도록 내버려둔 이승우는 여전히 얼굴의 미소를 잃지 않았다.그러자 부승희를 혀를 차며 재미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그래서 아래층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다음에 또 그럴 거야?”이승우는 고개를 숙여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다음에도 또 그럴 거라고 말한다면 부승희는 화가 나서 펄쩍 뛸 것이다.그래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아니. 안 그럴게.”부승희는 이승우가 진심이 아니라는 걸 눈치챘고 또 입을 삐죽였다.그래서 또 어떻게 제대로 한 방 먹일지 생각하고 있는데 이승우가 갑자기 이런 질문을 했다.“그 호스 들고 있는 손 안 시려?”“...”‘그게 뭐람. 본인은 이미 온몸이 젖었는데 무슨 생뚱 같은 소리를.’‘멍청하긴.’부승희는 호스를 바닥에 던지고 달빛 아래에서 스트레칭을 했다.이어 이승우가 물었다.“술은 깼어?”“왜?”“안 깼으면 우리 야식 먹으러 가지 않을래? 먹고 푹 자는 거야.”“정말 왜 그렇게 멍청해? 이젠 잠을 잘 시간이잖아. 벌써 몇 신데.”부승희는 이승우를 노려보며 말했다.“무슨 잠을 잔다고 그래. 우린 아직 젊으니까 밤새 놀 수 있어.”“놀긴 뭘 놀아! 오빠도 벌써 서른이야. 급사하고 싶지 않으면 몸 사려.”“절대 네 탓 하지 않을 게. 죽으면 내 재산 너 줄게.”“...”‘누가 재산 달라고 했나? 웃겨.’부승희는 이승우를 무시한 채로 방으로 돌아가려 등을 돌려 섰다.이승우는 부승희가 앞문을 지나쳐야 한다는 생각에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그런데 갑자기 외마디 비명이 들려왔다.부승희는 다시 등을 돌려 아래층을 살폈다.‘뭐야? 어디 간 거야?’‘귀신이 잡아가기라도 한 건가? 그렇게 고마운 귀신이 다 있어?’부승희는 베란다 끝에서 서서 아래층을 향해 외쳤다.“오빠! 이승우!”그러나 대답이 없었다.이어 휘파람을 불며 또 외쳤다.“멍청이?”그러나 주변은 온통 조용했고 바람에 나
부승희는 이승우를 잡아당기는 척하다가 또 슬쩍 손을 놓는 장난을 하려 했었다.그런데 진지하게 손을 닦는 이승우를 보며 그 마음을 버렸다.‘이승우 뒤로 꽃이 얼마나 많은데. 또 넘어지면 그 꽃들까지 상할 거야.’‘그러니까 꽃을 봐서 이번만 봐줄게.’이승우는 부승희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섰고 그 반동을 이용해 부승희와의 거리를 좁혔다.푹 젖어버린 이승우를 보며 부승희는 질겁하며 뒷걸음질했다.“정말 똥강아지 같아.”그리고 이승우 몸에 묻은 진흙을 가리키며 말했다.“아니? 정말 똥강아지 맞잖아.”이승우는 화도 내지 않았다.“네 방으로 데려다줘. 옷만 갈아입을게.”“내 방엔 강아지 옷 없는데?”“네 옷이라도 좋아.”“말이 되는 소리를 해!”부승희는 몸을 돌렸다.“혼자 정훈이 오빠 찾아가서 새 옷 달라고 해.”“지금 이 시간에 정훈이 문을 두드리면 퍽이나 열어주겠어.”‘하긴.’부승희는 고민하다가 말을 바꿨다.“그럼 도우미나 경호원 찾아가. 아무나 도와줄 사람 한 명쯤은 있지 않겠어?”“내가 싫어.”다른 사람이 입었던 옷은 입기 싫었다.“네 방에서 조금만 기다리면 사람 시켜서 가지고 오라고 할게.”부승희는 입을 삐죽였다.‘까다롭긴.’“그럼 오빠나 방으로 돌아가. 방문 안 잠갔고 난 이만 가볼게.”부승희는 나른하게 기지개를 켜며 대문으로 향했다.그러자 이승우가 따라왔고 부승희는 불만이라는 듯 몸을 휙 돌렸다.“왜 따라와!”“술 그렇게 많이 마셨는데 운전하지 마. 사람 찾아줄게.”“오빠만 기사 있는 줄 알아? 웃기시네.”“...”부승희가 정말 떠나려고 하자 이승우는 미소를 지은 채로 다시 손목을 잡았다.“왜 자꾸 가시처럼 톡톡 쏴? 조금만 기다려줘. 옷만 갈아입으면 우리 야식도 먹고 새로 나온 게임도 밤새 하자.”“싫어. 오빠네 가서 야식 먹는 건 내가 아예 사람이길 포기한 거라고.”이승우는 혀를 차며 말했다.“그건 말이 너무 심하다.”“내가 아무리 한심한 녀석이라고 해도 너한테 무슨 짓 하겠어? 너한테 무
이른 새벽, 두 사람은 연씨 저택을 빠져나왔다.이승우는 자꾸 부승희를 졸랐고 부승희는 이승우의 차량이 더 넓고 편한 걸 이유 삼아 그 차에 올랐다.목적지로 향하는 내내 부승희는 꾸벅꾸벅 졸았고 눈을 뜨니 어느새 이승우의 집 앞에 도착했다.그래서 고개를 돌려 차가운 시선으로 이승우를 바라봤다.이승우는 헤헤 웃어 보였고 부승희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멍청한 이승우는 그런 일을 벌일 용기도 없었다.그래서 길게 기지개를 켜며 턱을 세운 채로 말했다.“먹을 것 좀 내와. 단 걸로.”“왜 단 걸 찾아? 살찔까 봐 걱정도 안 돼?”부승희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그러게. 왜 갑자기 단 게 당기지?’“내오라면 내오라고. 잔소리하지 말고.”이승우는 말괄량이 같은 부승희에 적응이 되었기에 고분고분 행동에 옮겼다.“네네. 바로 내오겠습니다.”부승희는 그 뒤를 따르며 말했다.“배달시킬 생각은 버려. 오빠가 만든 게 아니면 안 먹을 거니까.”“아 너 진짜 너무해. 몰래 시키고 내가 만든 것처럼 연기하려고 했는데 네가 벌써 그러면 나더러 어떡하라고!”“...”이 별장은 평소 이승우 홀로 지내는 별장이었다. 이씨 가문은 가족이 많았고 부모님 또한 잔소리가 많은 편이었기에 자식들은 성인이 되면 빠르게 집을 구해 본가를 떠났다. 그리고 주말마다 본가에서 모이기로 했다.부승희는 예전에는 자주 이 집을 찾았지만 해외로 나간 뒤로는 처음이었다.사실 집은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부승희는 익숙하게 게임기 앞에 자리를 잡고 좋아하는 게임을 작동했으며, 이승우는 그 옆에 앉아 패드로 음식을 주문했다.그리고 배달 음식이 도착하기 전에 간단하게 게임을 시작했다.다른 건 몰라도 이승우와 부승희는 게임 메이트로 죽이 잘 맞았다. 두 사람의 게임 취향은 거의 일치했다.“2층에 몬스터 있어. 네가 해치워.”“나 총알 부족해.”“쯧. 쓸모없긴. 내 뒤로 숨어. 내가 해치울게!”펑!부승희가 마지막 보스까지 처리하고 게임은 끝났다.어느새 잠이 깬 부승희는 나른
밤하늘이 갑자기 눈에 들어오자 부승희는 깜짝 놀라다가 감탄을 이었다.“정말 오빠도 인생 원 없이 사는 것 같아.”“글쎄. 누가 와서 이걸 봐주길 내내 기다렸는걸.”부승희는 웃음을 터뜨렸다.사랑 감정을 제외하고도 두 사람은 오랜 시절 함께 한 우정이 있었다.부승희는 두 팔을 크게 벌려 소파에 기대며 별밤을 바라봤다.그리고 고개를 휙 돌려 이승우에게 물었다.“초지현 나랑 동갑이지 않아?”“그렇지 않을까?”“그런데 결혼이라니.”“너 아직도 어리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지?”“젠장, 나 아직 28살밖에 안 됐다고.”“말 좀 이쁘게 해.”“젠장, 오빠나 닥쳐!”“...”이승우는 에그타르트를 집어 부승희의 입에 넣었다.부승희는 이승우를 힐끔 노려보다가 우걱우걱 씹었다.‘젠장. 젠장. 젠장.’단 음식만 먹었더니 속이 조금 부대낀 부승희는 와인 셀러에서 예쁘게 생긴 과일 와인을 골라 따랐다. 그리고 익숙하게 담배에 불을 붙였다.그러자 이승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담배를 휙 뺏어갔다.“뭐 하는 거야?”부승희는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담배 피우려면 당장 집으로 돌아가서 너희 부모님 앞에서 피워.”“오빠 정말 싸우려고 작정했어?”그러나 이승우는 담배를 빠르게 주머니에 숨기고 다시 소파에 누웠다.“차라리 나 때려.”“...”부승희는 담배가 많이 당겼지만 어쩔 수 없어 입을 삐죽였다.이승우는 한참 생각하다가 먼저 말을 시작했다.“초지현이 누구랑 결혼하는지 알아?”“이름은 익숙한데 얼굴이 기억나지 않아.”“진여울, 축구팀 주장.”“뭐라고?”부승희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그 오빠가 얼마나 잘생겼는데! 왜 하필이면 초지현이랑 결혼하는 거야?”이승우는 부승희가 이렇게 말할 거라 예상했다.“진여울 그때도 초지현 좋아했어. 네가 둔해서 몰랐던 거지.”“그럴 리가 없어.”부승희가 고개를 저었다.앙숙이 그렇게 잘생긴 사람과 결혼한다는 건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잘생긴 선배가 눈이 삐었네.”“그걸 우린 사랑의 콩깍지라고 하
침대 시트를 교체하지 않아 방안에는 아직도 그 향이 가시지 않았다. 양혁수는 단팥죽이 끓는 동안 서둘러 시트를 교체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단팥죽의 단 향이 코를 자극했다.양혁수는 한 그릇 따라 변여름에게 건넸고 변여름은 소파에 나른하게 누워 양혁수가 한입씩 떠먹여 주는 걸 삼켰다.그렇게 천천히 기운을 되찾은 변여름은 또다시 장난기가 발동했다.양혁수의 품에 안겨 양혁수의 핸드폰을 뒤적이던 변여름이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마주했다.양혁수는 변여름의 두 볼을 쭉 잡아당기며 이 순간의 행복을 즐겼다.그런데 변여름이 꽤 진지한 얼굴로 이런 질문을 하는 게 아니겠는가?“오빠, 정말 무슨 약이라도 먹은 거 아니에요?”양혁수는 인상을 팍 찌푸리다가 시간을 확인하고는 바로 무슨 의미인지 알아차렸다.싸늘해진 양혁수의 시선에 변여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약을 따로 챙겨 먹지 않은 거면 너무 오랫동안 금욕해서 그런 거 아니에요?”“...”양혁수는 변여름이 이어서 어떤 질문을 할지 눈에 뻔했고 미리 준비해 둔 떡을 집어 냉큼 변여름의 입에 넣었다.변여름은 입안 가득 우물거렸고 반쯤 남긴 떡은 양혁수가 처리했다.“계속 까불면 너 이거 다 먹일 거야.”변여름이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이 떡 전부요?”“...”역시 못 말리는 변여름이라 생각하며 양혁수는 입안 가득 떡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술 도장을 꾹 찍었다.어느새 해가 뜰 시간이 되었지만 두 사람은 하나도 졸리지 않았다.한참 꼭 붙어 있다 보니 또 어느새 애매모호한 분위기가 흘러나왔다.양혁수는 변여름을 위해서라도 관심사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변여름이 핸드폰을 뒤적이며 말했다.“시연 언니가 아직 새해 인사를 보내지 않았네요?”질투하는 듯한 변여름의 말투가 오늘따라 더 귀엽게 느껴졌다.하지만 지금 말을 잘못하면 변여름이 삐질 게 뻔했으니 양혁수는 말을 가려서 하기로 했다. 그래서 한참 말을 골라 입을 열었다.“시연이는 새해 당일에 인사를 보내는 편이야. 우리 가족들도 대부분 그렇게 하거든. 너
거사를 치르기 전에 변여름도 나름 많은 조사를 걸쳐 충분히 준비를 마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겪어보니 실전과 이론은 큰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된다.변여름은 자신이 주동권을 잡으려 노력했지만 모두 가볍게 양혁수에게 들통이 나 물거품이 되었다.양혁수는 변여름의 두 손을 잡아 머리 위로 고정시켰고 변여름이 점차 반항할 생각도 하지 못할 때까지 꼭 붙잡아줬다.변여름의 머릿속에는 양혁수가 거친 숨을 내쉬며 귓가에 뱉은 말뿐이었다.“긴장하지 말고 힘 풀어.”긴장을 풀자 바로 쾌감이 이어졌다.처음 사과를 베어 문 에덴에 이런 기분이었을까, 변여름은 눈앞이 흐릿해지고 이 세상과는 단절된 쾌감만 느껴졌다.변여름은 나른하게 침대에 누웠고 잠시 의식을 되찾고 양혁수와 시선을 마주했다.양혁수는 변여름 이마의 땀을 닦아주고 또 달래듯 입술에 키스했다.금방 지나갈 소나기같았지만 또 벼락이 치고 폭우가 쏟아졌다.양혁수도 쾌감에 절여 절로 미소가 나갔지만 자꾸 변여름을 놀렸다.그러자 변여름이 바로 양혁수의 입술을 깨물었다.양혁수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두 사람의 자세를 바꿔 또 새로운 쾌감을 찾았다.변여름은 촉촉해진 눈가로 양혁수를 바라봤고 마치 처음 치즈를 선물 받은 고양이가 어디서부터 손을 대면 좋을지 몰라 망설이는 것 같았다.“네가 자세 바꾸고 싶다며?”양혁수는 손을 뻗어 변여름의 머리를 쓸어내리며 나른한 시선으로 유혹했다.“자, 네가 원하는 대로 해봐.”변여름은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아까도 변여름에게 기회를 줄 것처럼 굴다가 또 선수를 빼앗아 본인이 흐름을 주도했었다. 그렇게 반복되는 농락에 변여름은 이제 그럴 마음도 사라졌다.하지만 양혁수가 얌전히 누워주니 변여름은 또 덮칠 마음이 스멀스멀 생겼다.‘내가 잡아먹어야지!’서로를 탐닉하고 뜨거운 숨을 몰아 내쉬기를 반복했고 어느샌가 이불도 바닥 위로 떨어져 있었다.변여름은 저도 모르게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고 입술을 막아도 걷잡을 수 없었다.결국 변여름은 이불에 얼굴을 묻어버렸고 지금 본인
변여름은 낮에 물건을 뒤적이다가 양혁수가 서랍에 새로 준비해 둔 걸 발견했었다.양혁수가 참 보수적이라 생각했지만 변여름은 그런 점도 귀엽게 느껴져 눈치껏 본인이 준비한 물건은 서랍에 넣어두지 않았다. 뭐든지 차근차근 순서를 밟는 게 좋을 것 같았다.그러나 갑자기 자신을 안아 들고 위층으로 향하는 양혁수를 보며 변여름은 의아해졌다.‘오늘 밤엔 순정남이 아닌 건가? 아, 벌써 기대돼.’그러나 위층으로 올라가서 키스도 한참 했지만 시작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변여름이 양혁수의 품 안에서 기어 나오며 말했다.“오빠, 먼저 샤워나 할래요?”“...”‘이 흐름이 아닌데.’양혁수는 쯧 하고 혀를 차다가 변여름을 잡고 다시 아래에 깔았다.또 쉴 틈 없는 키스가 이어지고 변여름은 온몸이 나른해졌으며 입가가 얼얼해질 무렵, 양혁수가 마지막으로 입가에 뽀뽀하고 욕실로 향했다.변여름은 몰래 한숨을 푹 내쉬었다.‘그래. 내가 기다리지 뭐.’얌전히 침대에 누운 변여름은 다리를 달달 떨며 시간을 보냈다.그때, 양혁수가 준비해 둔 옷으로 갈아입고 걸어왔다.바로 변여름에게 다가간 양혁수는 순식간에 변여름을 이불 안에서 꺼내 안아 들었다.‘뭐야 샤워하러 간 거 아니었어? 또 준비한 게 있나 보네?’의아해하는 변여름의 생각을 읽고 양혁수는 입술에 도장을 꾹 찍고 욕실로 향했다.“같이 씻자.”변여름은 깜짝 놀라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욕실 안에는 뜨거운 김이 가득해 시야가 흐릿했다.양혁수는 어제 무슨 이유인지 안방에 새로 가구를 배송받았었다. 목재로 된 흔들의자였는데 하나는 안방에 두었고 특수 코팅을 거친 의자는 욕실에 두었다. 변여름은 안방에 둔 흔들의자에 누워 햇살을 느껴봤는데 그 기분이 아주 좋았다. 그러나 욕실에 둔 의자에 누우면 마치 발가벗겨진 생쥐 꼴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변여름은 욕실로 향하는 내내 별 별 난 생각이 다 들었지만 양혁수를 상대로 그런 음흉한 상상을 하면 안 된다고 자신을 채찍질했다.그러나, 변여름은 곧 자신의 상상이 틀리지 않았
누가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고양이 하나 때문에 그렇게 혼을 내던 오빠 친구가 오늘엔 제 옆에 앉아 평범한 여느 연인들처럼 자신을 잘 부탁한다고 인사하는 것을.변여름은 다른 사람에겐 흥미를 잃었고 오직 양혁수만 눈에 보였다. 그리고 너무 기분이 좋은 나머지 술이 술술 넘어갔다.회식을 끝내고 근처를 걸으니 거리에서 새해 느낌이 물씬 났다. 변여름은 양혁수의 손을 잡고 길을 걸으며 노래를 흥얼거렸다.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털썩 누워서도 양혁수의 이름을 불러댔다.“양혁수... 혁수 오빠...”대체 뭘 어떻게 더 해야 이렇게 커진 제 마음을 다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른다. 변여름은 정말 하늘만큼, 땅만큼 양혁수가 좋았다.올해는 양혁수가 근 10년 동안 가장 기대되는 새해라고 할 수 있다.새해에 맞춰 양홍두도 세운시로 향해 양지원과 함께 새해를 보내기로 했다.그리고 양혁수는 양지원에게 곧 변여름과 함께 세운시를 찾아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겠다고 말했다.새해 전날, 집사는 양혁수의 기분이 퍽 좋은 걸 발견하고 다 같이 만두도 빚고 송편도 빚을 것을 제안했다.변여름도 아침 일찍 양씨 가문을 찾아 일을 거들었다.양혁수는 집 안팎을 돌아다니며 새해 분위기가 물씬 나는 조명이나 인테리어를 세팅했다.“조명을 켜기엔 아직 일러요. 조명은 오후부터 켜야 한다고 했어요.”변여름은 어디에서 들은 정보를 한 손에 만두를 쥔 채로 양혁수에게 말했다.양혁수는 사다리 위에 서서 말했다.“누가 그래? 우린 우리만의 법을 따르는 거야.”양혁수는 변여름을 달래듯 말했다.“꼬맹이는 얼른 가서 만두 빚고 있어. 예쁘게 빚으면 내가 새해 용돈도 챙겨줄게.”집사는 괜히 큰소리하는 양혁수를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양씨 가문 남자들, 누구 하나 큰소리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을 텐데.’그러나 변여름은 고개를 끄덕였고 또 양혁수를 향해 손을 휘휘 저었다.사다리 아래까지 내려온 양혁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왜?”변여름은 바로 이때다 싶어 양혁수의 두 볼에
양지원은 바로 세운시로 돌아갔다.양씨 가문에는 오직 변여름과 양혁수만 남겨졌고 그날 밤부터 변여름은 아주 자연스레 양혁수의 방을 드나들었다.며칠 뒤면 새해인지라 연구실도 곧 휴가가 시작될 것이다. 변여름은 하루 시간을 내어 선물을 들고 연구실을 찾았다.선배들은 변여름이 영영 돌아오지 않을 줄만 알았는데 돌아온 변여름을 보며 아주 기뻐했고 선물을 받으며 어디에 다녀왔는지, 무엇을 했는지 물었다.“연애하고 왔어요.”솔직한 변여름의 대답에 사람들은 조금 당황했고 과거에 변여름에게 고백했었던 선배는 마음이 부서졌다.교수님은 변여름의 교제 상대가 누구인지 궁금해했다.“저희 오빠 친구예요.”‘그래. 오래 붙어있을수록 정분이 나는 법이지.’사람들은 변여름의 옆자리를 차지한 그 상대가 궁금했고 교수님도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말했다.변여름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고 점심시간이 되자 도시락을 들고 양혁수를 찾아갔다.“회식?”양혁수는 변여름이 연구실 사람들한테 인기가 많은 게 의외라는 생각을 했다.하지만 좀 더 생각을 해보니 고작 며칠 사이에 얼굴도 보지 못한 제 비서와 사이좋게 지내는 걸 보며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변여름이 말했다.“남자 친구 생겼다고 말했거든요.”그러자 양혁수는 변여름이 자랑하고 싶어 하는 걸 바로 눈치챘다.그리고 불현듯 과거에 변여름이 연구실 선배한테 고백을 받았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변여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한두 사람이 아니었는걸요.”어깨를 으쓱거리는 변여름을 보며 양혁수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한두 사람이 아니었다?”“네!”“어떤 사람이었는데? 다들 똑똑할 거고, 뭐 잘생겼어?”“똑똑하기도 하고 잘생기기도 했죠.”옆에서 문서를 정리하던 비서가 그 말을 듣고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대표님, 예쁘고 요리도 잘하시는 여름 씨가 얼마나 인기가 많겠어요. 대표님이 조심하셔야겠네요.”변여름이 양혁수를 힐끔 훔쳐보자 양혁수가 바로 연기를 이어갔다.“그러게. 갑자기 짜증이 나서 입맛이 하나도
새벽이 되도록 양혁수의 방에는 열기가 뜨거웠다.딸깍.헤드 등을 켜고 변여름이 이불 안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고 주변을 살폈다.얼마 지나지 않아 양혁수가 화장실에서 돌아와 자연스레 변여름의 몸을 닦아줬다.변여름은 자꾸 양혁수를 훔쳐봤고 양혁수는 손을 뻗어 이런 변여름의 머리를 꾹 눌렀다.그러자 변여름은 양혁수의 베개에 얼굴을 묻고 비비며 입꼬리를 올렸다.이어 욕실에서 샤워 소리가 들려오자 왠지 양혁수가 만족하지 못해 홀로 해결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그런 생각을 하며 침대 옆 서랍을 열어보니 손목시계 따위만 있을 뿐 남은 콘돔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양혁수가 많이 자제한 것 같았다.‘이럴 줄 알았으면 집에 있는 걸 통째로 갖고 오는 건데.’그리고 그때 욕실 문이 열리고 양혁수가 돌아왔다.변여름은 얌전히 누워있다가 양혁수의 품에 꼭 안겼다.양혁수의 체향을 느끼며 변여름은 두 눈을 감고 얼굴을 비볐고 목 언저리에 뽀뽀하려 했다.그러나 양혁수가 변여름을 제지했다.“지금 뭐 해?”“왜요?”양혁수는 제 목에 있는 흔적을 가리켰고 새길 때는 몰랐지만 샤워하고 나니 따끔거리는 게 느껴졌다.변여름이 지난번처럼 또 정도 없이 세게 흔적을 남긴 모양이었다.하지만 이번 모양과 색깔이 너무 마음에 들어 변여름은 미안한 마음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오빠 다음엔 반대편도 해줄게요.”“...”양혁수가 떨떠름한 표정을 하고 있는데 변여름이 취조하듯 방금 잠자리가 만족스러웠냐고 물었다.“오빠, 나 다른 것도 배웠는데 오빠만 좋다면... 읍!”양혁수는 바로 변여름의 입을 막았다.“...”‘풉. 부끄러워하긴.’양혁수는 본인이 오빠로서 리드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이 꼬맹이한테 놀아나고 있는 것 같았다.“잠이나 자!”그래서 고작 이런 일로 무게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흥. 오늘은 이만 물러선다.’변여름은 얌전히 몸을 돌렸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자꾸 치근덕거렸다.“오빠가 많이 보수적이라는 걸 알고 있는데요
변여름은 말재주가 뛰어났고 그대로 두면 분명 더 큰 소동을 일으킬 기세였다.양혁수는 그녀를 다잡아보려 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변여름은 밀고 당기기에 능했고 결국 늘 그가 그녀를 달래는 쪽이었다. 변여름을 제압하려면 그가 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녀를 유혹하는 것뿐이었다.하지만 서로가 진심을 담기 시작하면 결국 누가 누구를 먼저 유혹한 건지조차 흐려진다.어느새 그녀는 그에게 기대어 그를 천천히 침대로 이끌었다.양혁수는 조용히 누워 있었고 변여름은 이불 속에서 조심스레 머리를 내밀었다. 표정은 잔잔했지만 눈동자에는 설렘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그가 움직이기도 전에 그녀는 익숙한 듯 그의 팔을 벌리고 조용히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이내 그의 온기를 안은 채 잠이 들었다.양혁수는 차갑게 굴어보려 했지만 몸은 정직하게 그녀의 이마에 키스했다.키스가 끝나자 그는 스스로의 입을 때리고 싶을 만큼 후회가 밀려왔다.저녁이 되면 변여름은 양혁수 곁에서 말이 많아졌다. 그녀는 그와 감정을 나누고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부터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까지 전부 들려주었다. 작은 머릿속은 놀라울 만큼 명확했고 양혁수가 확신하지 못하던 일들을 종종 먼저 짚어내곤 했다.그러다 보면 두 사람의 입술은 자석처럼 끌려붙었고 전에는 양혁수가 불씨를 조심스럽게 다룰 수 있었지만 지금은 더 이상 그럴 수 없었다.변여름을 집에 데려온 첫날 밤 양지원을 마주친 이후의 느낌은 이전과는 달랐다. 그녀를 몸 아래에 눕히고 얼굴을 감싸안은 채 키스하자 변여름은 그의 몸에 다리를 스치듯 비볐고 그는 순간적으로 치솟는 충동을 느꼈다.자신의 반응을 깨달은 그는 재빨리 움직임을 멈췄다.변여름에게 들킬까 봐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조명의 밝기를 낮추며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막 눕자마자 변여름의 부드러운 몸이 다시 양혁수의 품에 파고들었고 변여름은 그의 어깨에 기대어 그를 바라보았다.양혁수는 고개를 돌려 그녀의 시선을 마주했으며 단 한 번의 눈 맞춤으로 그녀가 이미 모든 것을 알
양혁수의 ‘착하지’라는 한마디에 변여름의 입꼬리는 하늘까지 닿을 듯 환하게 올라갔다.그녀는 사람의 마음을 꿰뚫는 데 능했고 사실 그가 자신을 놀리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특히 밤 11시 30분이 넘도록 그가 나타나지 않자 아마도 자신이 먼저 찾아오기를 기대하며 방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로 생각했다.‘아이고.’변여름은 그의 장난에 넘어가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간질이는 마음을 안고 그녀는 문가에 서서 발끝을 들어 여러 번 밖을 내다보았다.밤이 깊어 12시가 다 되어도 그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자 그녀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고 외투를 걸쳐 입은 채 문을 열고 나섰다.양씨 가문의 저택은 워낙 넓어서 그녀가 양혁수의 방에 닿기 위해선 한 층 아래로 내려가 길게 이어진 복도를 걸어야 했다.몰래 발걸음을 옮겨 문 앞에 선 그녀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문고리를 돌렸다. 예상대로 잠겨 있지 않았다.문을 열고 들어선 방 안은 숨 막힐 듯 어두웠다.침실은 더 깊은 어둠에 잠겨 있었고 그녀는 익숙한 감각과 뛰어난 시력에 의지해 침대를 더듬어 앉았지만 그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변여름은 숨을 죽인 채 주변을 감지했고 방 안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혹시 오빠가 나를 찾으러 간 걸까?’그렇게 생각하며 조용히 침대에서 내려왔다.작은 거실로 발걸음을 옮기던 중 무언가가 벽에 부딪히는 소리가 두 번 울렸다. 그녀는 즉시 멈춰 섰다.달빛이 비추는 거실 그 한쪽 소파 팔걸이에 몸을 기댄 양혁수가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그는 침실 문을 빠져나온 그녀가 멈추는 순간까지 눈을 떼지 않았고 입가에 짙은 미소가 번졌다.그의 손에는 라이터가 들려 있었고 그는 그것을 가볍게 던지며 조용히 그녀에게 다가갔다.변여름은 품에 안긴 이가 양혁수라는 걸 분명히 알고 있었지만 그가 갑작스레 뒤에서 안아오는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이어진 그의 키스가 그녀의 옆얼굴에 가볍게 닿자 그녀는 본능적으로 숨을 멈췄다.양혁수는 평소 그녀가 마음껏 표현하게 두었지만 자신이 먼저 유혹
식사가 끝나자 양지원의 마음속에는 여러 감정이 스쳐 지나갔지만 이제야 비로소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식사 후 그녀는 아래층 소파에 편히 앉아 야경을 바라보며 시간을 재어 양석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위층에서는 양혁수와 변여름 사이에 또다시 작은 충돌의 기운이 맴돌기 시작했다.양지원이 집에 머무는 동안 양혁수는 변여름과 같은 방에 머무를 수 없었다.변여름은 몹시 언짢은 기분이었다. 그가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 휴대전화에는 세 글자의 짧은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양혁수.]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끝내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꽤 화가 난 모양이네. 성까지 붙여 부르다니.’풀네임으로 불린 건 처음이라 문득 그것도 꽤 재미있었다.수건을 툭 던지고 침대에 앉은 그는 변여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화났어?]잠시 후 변여름에게서 한 장의 사진이 도착했다.사진 속에는 줄에 매달린 막대 인형이 있었고 그 옆에서 날아온 주먹이 인형의 배를 강하게 가격하고 있었다. 인형 옆 상자에는 화살표가 가리키고 있었고 상자 안에는 ‘양혁수’라는 이름이 또렷이 적혀 있었다.양혁수는 순간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어디서 배운 거야? 너희 천재들은 이런 것도 다 할 줄 아는 거야?]예전에 변여름은 허예나의 이름으로 그와 채팅할 때 일부러 평범한 여고생처럼 꾸미며 어색하고 오래된 이모티콘을 보내곤 했었다.하지만 지금은 달랐다.그녀는 모든 걸 이해했고 재치 넘치고 독특한 이모티콘으로 그의 휴대폰을 장악했다.[이런 게 아주 유용하죠.]변여름이 말했다.[그러니까. 이제는 원격으로도 때릴 수 있지.]양혁수가 답장을 보냈다.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영상 통화가 걸려왔다.양혁수는 전화를 받았다.화면 속 변여름은 침대 머리맡에 기대 앉아 있었고 아마 두 손으로 휴대전화를 들고 있었는지 아래에서 위로 비추는 각도는 썩 좋지 않았다.양혁수가 웃으며 말했다.“집에 재밌는 공간 많잖아. 잠 안 오면 나가서 산책이라도 해.”“나가기 싫어요.”변여름은 기운 없이 대답했다.